책망과 훈계를 통해 깨달은 것

2025.5.20

2022년 8월, 저는 교회에서 양육 사역을 맡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리더는 몇몇 형제자매가 제가 예배 전에 새 신자들의 상태와 어려움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아 예배에서 교제로 실제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어떤 새 신자가 예배에 나오지 않았을 때도 즉시 물어보며 상황을 파악하지 않았다고 얘기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저는 겉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이치를 따졌습니다. ‘나도 새 신자 몇 명에게 사전에 상태를 물어보긴 했어. 그들이 답을 주지 않아서 파악하지 못했을 뿐이야. 어떤 새 신자가 예배에 안 온 것도, 내가 모를 때도 있었지만, 나중에는 모두 정상적으로 예배에 참석했어. 이게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잖아!’ 저도 모르게 문제를 얘기한 형제자매에게 약간 불만을 품었고,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문제를 얘기하기 전에 먼저 나한테 말하고, 어떤 상황인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물어볼 수 있잖아. 내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때 가서 리더에게 이야기해도 될 텐데, 아무 말 없이 곧장 리더에게 얘기하다니. 리더가 날 어떻게 생각하겠어? 나를 의견도 받아들이지 않고, 진리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으로 여기지 않겠어?’ 이런 생각이 들자, 제 마음은 답답하고 불편해졌습니다. 비록 저도 형제자매들의 제안이 제 본분 이행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먼저 받아들여 스스로 반성하며 인식하며 이치로 따지며 변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체면과 지위가 손상되는 것을 생각하니, 이런 상황을 직면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후 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형제자매들이 얘기한 문제들을 다시 돌이켜 보니, 확실히 바로 잡아야 할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단체 대화방에 저에게 어떤 문제가 더 있는지 발견한 것이 있다면, 모두 말해달라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잠시 후 정이(郑义)는 자신이 발견한 문제점을 보내주면서 몇 가지 제안도 해주었습니다. 내용을 보아하니 리더가 말한 것과 거의 같아서 속으로 이렇게 짐작했습니다. ‘아마 정이가 리더에게 얘기했나 보군.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이렇게 내용이 비슷할 수 있겠어?’ 이런 생각이 들자, 저는 정이가 제기한 문제와 제안을 올바르게 대하지 못했고, 하나하나 조목조목 반박했습니다. 그때 정이는 단체 대화방에 이렇게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문제가 있으면 제안하고 소통해도 된다고 한 건 당신이잖아요. 지금 저희가 제안했는데, 왜 전부 자기변명만 하고, 조금도 구하거나 받아들이려는 마음이 없나요?” 정이가 이렇게 많은 형제자매 앞에서 저를 드러내자 저는 체면이 너무 깎였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정이에 대해 편견을 품게 되었습니다. ‘이건 내 체면을 조금도 남겨주지 않는 거잖아! 내 문제를 리더에게 몰래 얘기한 것도 모자라,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에게 제안하고 나를 드러내다니, 정말 내 체면은 어디에 두라는 거야? 앞으로 내가 형제자매들을 어떻게 마주하겠어? 나한테 무슨 문제가 있으면 따로 얘기하거나 제안할 수도 있었잖아. 굳이 이렇게 사람들 많은 데서 나한테 뭐라고 해야겠어? 일부러 사람들 앞에서 나를 망신 주고 난처하게 만들면서 대놓고 나를 괴롭히려는 것 아냐? 내가 단호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나를 얕보겠어.’ 심지어 제 마음속엔 악독한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양육 사역은 내가 맡고 있는데, 앞으로 또 이렇게 내 체면을 깎는다면, 그때는 적당한 이유를 대서라도 당신에게 새 신자 양육을 맡기지 않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당신 때문에 내 이미지가 사람들 앞에서 완전히 무너지지 않겠어?’ 이런 생각이 떠오르자, 제 마음은 철렁했습니다. ‘내가 어떻게 이렇게 악독한 생각을 드러낼 수 있지? 이건 사람을 공격하고 보복하려는 거잖아!’ 저는 마음속으로 두려움을 느껴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제가 마음을 가라앉히고 제 패괴 성품에 따라 행동하지 않게 지켜주세요. 제가 이 환경을 체험해 나갈 수 있게 이끌어주시기를 바랍니다.’ 기도를 마친 후, 여러 형제자매가 단체 대화방에서 정이가 제안한 의견에 찬성하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제야 저는 이런 환경이 임한 것에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먼저 받아들이고 순종하며 진리를 구하며 자신을 반성하고 공과를 배워야 합니다.

하루는 묵상 시간에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읽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책망과 훈계가 닥치면, 사람이 무엇보다 가져야 할 태도는 무엇이겠느냐? 먼저 받아들여야 한다. 누가 너를 책망하는지, 왜 책망하는지 신경 쓰지 말고, 또한 그의 말이 듣기 거북한지 그렇지 않은지, 그의 어조나 어휘 선택이 어떤지도 신경 쓰지 말고 전부 받아들여서 자신이 어떤 부분에서 잘못했고, 어떤 패괴 성품을 드러냈는지, 그 일을 할 때 진리 원칙대로 했는지를 인식해야 한다. 이것이 먼저 가져야 할 태도이다. 하지만 적그리스도가 이런 태도를 갖췄겠느냐? 그렇지 않다. 그는 언제나 반발심과 반감을 표출한다. 이런 태도를 갖고 있는데 하나님 앞에 마음을 평온히 하며 겸허히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 불가능하다. 그럼 그는 어떻게 행동하겠느냐? 먼저 온 힘을 다해 해명하고 변명하며, 자신이 저지른 잘못과 표출한 패괴 성품에 대해 변호하고 해명하면서 사람들의 이해와 관용을 얻고자 한다. 그리하여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자신을 책망하고 훈계하는 말들을 받아들이지 않아도 될 수 있도록 말이다. 그가 책망과 훈계를 받을 때 드러내는 태도는 무엇이겠느냐? ‘나는 죄짓지 않았어. 잘못한 게 없다고. 설령 잘못이 있다고 해도 거기엔 이유가 있어. 잘못해도 고의가 아니었단 말이야. 내가 책임을 질 필요도 없어.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그는 이런 주장과 말을 고집하며 놓지 않는다. 진리를 구하지 않고, 자신이 저지른 잘못과 표출한 패괴 성품을 인정하지도 않으며, 자신이 악행을 저지른 속셈과 목적은 더더욱 인정하지 않는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이 아무리 눈에 띄어도, 초래된 손실이 아무리 커도 그는 본체만체하면서 전혀 괴로움이나 죄스러움을 느끼지 않고, 양심에 어떤 가책도 받지 않는다. 오히려 극력 변명하며 설전을 벌인다. 그는 ‘이건 말하는 방식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다 일리가 있는 거라고. 말재간 있는 사람이 말하는 거지. 내 해명과 변명이 많은 사람 앞에서 통과된다면 내가 이긴 거야. 그럼 당신이 말한 진리는 진리가 아닌 게 되고, 당신이 말한 사실도 성립하지 않는 거지. 나를 정죄하려고? 꿈 깨시지!’라고 생각한다. 적그리스도는 책망과 훈계가 닥쳤을 때, 마음속 깊이, 영혼 깊이 절대적으로 단호하게 반발하고 반감을 가지며, 받아들이지 않는다. ‘당신이 어떻게 말하든, 당신의 말이 아무리 옳아도 나는 받아들이지 않을 거고 인정하지도 않을 거야. 이건 내 잘못이 아니라고!’라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그의 패괴 성품이 어떻게 사실로 드러났든 그는 인정하지도 받아들이지도 않으며 한사코 반항하고 반발한다. 또 다른 사람이 어떻게 말하든 그는 받아들이거나 인정하지 않으며, 마음속으로 ‘누가 말로 이기나 보자. 누구의 입심이 센지 보자고.’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책망과 훈계를 대하는 적그리스도의 태도 중 하나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9조(8)> 중에서), 『적그리스도가 책망과 훈계를 대하는 태도와 갖가지 모습, 그리고 책망과 훈계를 받을 때 생겨나는 사상 관점, 생각과 마음 등, 이런 것들은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르다. 책망과 훈계를 받을 때 적그리스도는 마음 깊은 곳에서 먼저 반발하고 거부하고, 반항하는 것이다. 어째서 그렇겠느냐? 적그리스도는 진리를 싫어하고 증오하는 본성 본질을 지니고 있으며,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12조 복받을 희망이나 지위가 없으면 물러나려 한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곱씹고 나서야 전 깨달았습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책망과 훈계를 받을 때 다른 사람의 말투나 어투가 어떻든, 어떤 환경이고 상황에서 지적받은 것이든 우선 받아들이고 스스로 어떤 점에서 원칙을 어겼는지, 어떤 패괴 성품을 드러냈는지를 반성하며, 진리를 구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반면, 적그리스도와 같은 부류 사람들의 본질은 진리를 싫어하고 진리를 증오합니다. 그래서 이들은 다른 사람에게 책망이나 지적을 받으면 마음 깊은 곳에서 저항하고 거부합니다. 이들의 문제가 이미 명백히 드러나 사역에 손해를 끼쳤을지라도 그들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온갖 핑계를 대며 변명하고 책임을 회피하려 듭니다. 제가 책망과 훈계를 받았을 때의 태도와 모습을 돌이켜 보니, 제가 드러낸 성품이 사실 적그리스도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형제자매들이 저에게 제안을 해주었을 때, 저는 재빨리 이를 받아들여 제 문제와 치우침을 반성하고 정리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저항하고 반감을 품었고, 심지어 마음속으로 온갖 이유와 핑계를 찾으며 이치로 따지고 변명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진리를 싫어하는 성품입니다! 사실 자세히 생각하고 반성해 보면, 형제자매들이 제기한 문제들은 모두 사실이었습니다. 어떤 이유가 되었든 새 신자 양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제가 본분 이행에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입니다. 또한 형제자매들은 새 신자가 예배에 오지 않았을 때 제가 제때 물어봐서 원인을 파악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저는 오히려 변명하면서 새 신자가 잠깐 빠진 것이고, 나중에 다시 정상적으로 예배에 참석했으니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저는 양육 담당자로서, 새 신자가 예배에 오지 않았는데도 몰랐고, 즉시 점검하여 파악하지도 않았습니다. 이 자체가 본분을 태만히 하고 대충 이행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형제자매들이 제기한 문제와 제안에 온갖 이유를 찾아 부인하고 반박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로 큰 문제처럼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이것은 제가 본분을 대하는 태도와 직결된 문제이며, 제가 진리와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를 드러냅니다. 여기까지 반성하고 나서야, 이 문제의 성질이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만약 이런 환경을 겪지 않았다면, 저는 스스로를 반성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고, 저희 진리를 싫어하는 사탄 성품도 인식하지 못했을 겁니다. 이런 상태로 계속 나아갔다면 결국 하나님의 혐오를 사고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반성하는 중에 저는 또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적그리스도는 마음속으로 책망과 훈계를 받는 일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주된 이유는 책망과 훈계가 닥칠 때 망신을 당했다고, 명예와 지위, 존엄을 잃었다고, 사람들 앞에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게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들이 마음속에서 작용하기에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이기가 무척 힘든 것이다. 그는 누가 자신을 책망하고 훈계하면 그것은 자신을 괴롭히는 거라고, 그 사람은 자신의 원수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책망과 훈계가 닥쳤을 때 적그리스도가 보이는, 있는 그대로의 심리 상태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9조(8)> 중에서), 『적그리스도는 명예와 지위를 무척 좋아한다. 명예와 지위는 그들의 목숨줄로, 그것이 없으면 살아갈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무엇을 하든 힘이 없다. 적그리스도에게 있어서 명예와 지위 두 가지는 그의 실질적인 이익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데, 그의 치명적 약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적그리스도의 모든 행동은 지위와 명예를 중심으로 하며, 이 두 가지를 위해서가 아니라면 그들은 어떤 사역도 하지 않을 거라고 하는 것이다. 적그리스도에게 지위가 있든 없든, 그가 분투하는 목표와 노력하는 방향은 이 두 가지, 바로 명예와 지위를 위한 것이다. … 그가 대가를 치를 때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보아라. 어떤 사건을 두고 극력 논쟁할 때, 그가 왜 논쟁을 벌이는지 보아라. 그가 어떤 사람을 비판하고 정죄할 때, 그에게 어떤 속셈과 목적이 있는지 보아라. 그가 어떤 일 때문에 분노를 터뜨릴 때, 어떤 성품을 드러내는지 보아라. 사람은 사람의 내면을 보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내면을 볼 수 있다. 사람의 내면을 보았을 때, 하나님은 사람 언행의 본질을 무엇으로 판단하겠느냐? 진리로 판단한다. 자신의 명예와 지위를 지키는 것은 사람의 눈에 무척 정당한 일로 보인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그것을 적그리스도의 표출이자 모습, 본질로 규정하겠느냐? 이는 적그리스도가 일을 하는 출발점과 동기에 근거한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이 일하는 출발점과 동기를 감찰한 결과, 그들의 모든 행동이 본분 이행을 위한 것이나 나아가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에게 순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명예와 지위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규정하였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9조(2)> 중에서) 하나님 말씀에서 전 깨달았습니다. 적그리스도가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본질적으로 진리를 싫어하고 진리를 증오하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중요한 원인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들이 마음속으로 명예와 지위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입니다. 적그리스도는 누가 자신의 문제를 지적하거나 자신을 책망하고 훈계하는 것이 자신을 괴롭히고 체면과 지위를 손상하려는 것으로 여깁니다. 자기의 명예와 지위를 지키기 위해 적그리스도는 끊임없이 저항하고 반발합니다. 심지어 자신을 책망하고 훈계한 사람을 원수처럼 대하기도 합니다. 저 역시 이와 같은 관점을 가지고 있었음을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몇몇 형제자매가 리더에게 제가 본분을 이행하는 데 문제점이 있다고 이야기한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저는 그들이 일부러 제 문제를 리더 앞에 드러내어 저를 망신 주려고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상대가 제 문제를 발견했다면 먼저 저에게 이야기하거나, 따로 저에게 지적해 준 다음 제가 받아들이지 않을 때 리더에게 알리는 것이 맞다고 여겼습니다. 사실 제가 정말로 제안을 받아들이고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다면, 상대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했는지를 개의치 않고, 그들이 지적한 문제의 내용 자체를 신경 쓰면서 어떻게 바로잡고 개선해야 할지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제가 그렇게 생각했던 것은, 명예와 지위를 지키고, 리더 앞에서의 좋은 인상을 유지하려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정이가 형제자매들 앞에서 제게 제안하고 문제를 드러냈을 때, 저는 더욱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그것이 사람들 앞에서 저를 곤란하게 하고 망신 주는 일이라고 여겼고,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제 좋은 이미지를 심각하게 훼손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명예와 지위를 향한 욕심에 이끌려 저는 돌려 말하며 정이의 제안을 반박함으로써 제 체면을 회복해 보려 했습니다. 심지어는 악독한 생각까지 드러내어, 제 권력과 지위를 이용해 정이를 억압하고, 새 신자 양육 사역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려는 생각까지 품었습니다. 명예와 지위에 대한 제 욕심이 너무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제 언행의 출발점은 모두 자신의 체면과 지위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고, 심지어는 다른 사람을 억압하려는 생각까지 품었습니다. 이렇게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는 것은 올바른 길이 아니라, 결국은 하나님을 대적하게 만드는 길입니다!

얼마 후, 저는 제가 드러냈던 악독한 생각을 두고 어떤 성품이 드러난 것인지 스스로 반성했습니다. 그러던 중,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을 보게 되었고, 마음에 큰 울림을 받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공격과 보복은 사탄의 악독한 본성에서 비롯된 행위와 표출이고, 또한 일종의 패괴 성품이기도 하다. 사람의 내면에는 ‘네가 모질게 굴면 나는 불의로 대응하겠다. 네가 내 체면을 봐주지 않는데 내가 왜 네 체면을 세워 줘야 한단 말이냐?’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이것은 어떤 생각이냐? 보복하려는 생각 아니겠느냐? 이런 생각과 관점이 보통 사람이 보기에 성립되지 않느냐? 통하지 않느냐? “남이 나를 범하지 않으면 나도 남을 범하지 않으며, 만약 남이 나를 범하면 나도 반드시 남을 범한다.”, “그 사람의 방법으로 그 사람을 다스린다.”, 이런 것은 이방인들이 자주 하는 말이고, 이방인들 사이에서 통하는 이치로, 사람의 관념에 완전히 부합한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겠느냐? 이런 사상과 관점이 맞느냐? (틀립니다.) 왜 틀리느냐? 어떻게 분별해야겠느냐? 이러한 것들은 어디서 왔느냐? (사탄에게서 왔습니다.) 사탄에게서 온 것은 의심의 여지 없다. 사탄의 어떤 성품에서 온 것이냐? 사탄의 악독한 본성에서 왔다. 그 속에는 독이 들어 있고, 사탄의 악독하고 추한 진면목이 들어 있다. 그런 본성 본질이 들어 있다. 그러한 본성 본질이 들어 있는 관점, 생각, 표출, 말, 나아가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 이런 것들의 성질은 무엇이냐? 바로 사람의 패괴 성품이자 사탄의 성품이다. 사탄에게 속한 그런 것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하겠느냐? 진리에 부합하겠느냐? 하나님 말씀의 근거가 있겠느냐? (없습니다.) 그런 것이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 해야 할 행동이고 지녀야 할 사상과 관점이겠느냐? 그런 생각과 행동이 진리에 부합하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패괴 성품을 해결해야 진실로 변화할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깨달았습니다. 제가 사람을 공격하고 보복하려는 생각을 드러낸 것은 ‘남이 나를 범하지 않으면 나도 남을 범하지 않으며, 만약 남이 나를 범하면 나도 반드시 남을 범한다.’, ‘그 사람의 방법으로 그 사람을 다스리다.’와 같은 사탄의 독소에 지배받은 결과였습니다. 저는 정이가 형제자매들 앞에서 제 문제를 드러내어 제 체면을 세워주지 않았기 때문에, 정이가 먼저 저에게 의리를 지키지 않았으니, 저도 그에게 의리를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정이에게 본때를 보여주지 않는다면, 정이가 저를 만만하게 볼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양육 사역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고, 어떻게 저를 또 책망할지 지켜보려고 했습니다. 지금 다시 이런 생각들을 돌이켜보니 저는 정말 악독하고 무서운 사람이었습니다. 정이가 제 문제를 발견하고 리더에게 알린 것은 교회 사역을 책임지고 지키려는 모습입니다. 게다가 제가 단체 대화방에 문제를 제기하라고 했을 때 정이가 적극적으로 자기 생각과 관점을 제시한 건, 책임감을 갖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저는 정이가 저를 곤란하게 하려 한다고 오해하고, 이치로 따지며 궤변을 늘어놓았습니다. 저를 드러낸 정이의 말은 사실이었고, 굉장히 적절했습니다. 이렇게 직접 문제를 제기해 주면, 제 본분 이행에도 도움이 되며 전혀 고의로 저를 곤란하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형제자매끼리 서로 제안하고, 책망하고 훈계하는 일에는 의리를 저버린다는 식의 개념이 없습니다. 제가 그렇게 받아들였던 것은 완전히 불신파의 관점이었습니다. 예전에 저는 스스로 인성이 괜찮다고 생각하면서 적그리스도처럼 사람을 억압하거나 괴롭히는 일은 하지 않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이번 사실로 드러난 것을 통해 제 본성 또한 상당히 악독하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제까지 문제가 드러나지 않았던 것은 그저 드러낼 상황이 없었을 뿐이었습니다. 특정한 상황에서 저는 자연스럽게 악독한 생각을 드러냈고, 이것이 바로 제 본성이 표출된 것입니다. 이제야 저는 책망과 훈계를 받게 된 것이 정말 너무나 잘된 일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제 안에 있는 그릇된 관점과 사탄 성품을 영원히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고, 이를 바로잡고 변화할 방법도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속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하나님 앞에 나아와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제 안에 진리를 싫어하는 마음이 있을 뿐 아니라, 본성이 악독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 명예와 지위를 지키기 위해 제게 제안을 해준 형제자매에게 공격하고 보복하려고까지 생각했습니다. 저는 인성이 없는 자이며,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부를 자격도 없는 사람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저는 진심으로 회개하고 변화되기를 원합니다. 부디 제가 실행하고 진입할 수 있는 길을 찾아 형제자매들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될 수 있게 이끌어주세요.’

묵상 시간에 저는 제 문제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보았고, 실행할 길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진리를 깨닫지 못했을 때 누군가 건의를 하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진리에 부합하는지 말해 준다면 먼저 받아들여 모두에게 교제하게 한 후 그 길이 옳은지, 진리 원칙에 부합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진리에 부합한다는 확신이 든다면 그렇게 실행하고, 진리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든다면 그렇게 실행하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간단한 일이다. 진리를 구할 때는 여러 측면으로 구해야 한다. 누가 말하든 일단 들어 보고 진지하게 대해야지, 보고도 못 본 척하거나 상대를 냉대해서는 안 된다. 이는 네 본분 범위 안에 포함되는 일이니 진지하게 대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올바른 태도이자 올바른 내적 상태이다. 네 내적 상태가 올바르다면 진리를 싫어하고 증오하는 성품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이런 실행은 사람의 패괴 성품을 대신하는 것이며, 이는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다. 이렇게 진리를 실행한다면 어떤 성과를 얻을 수 있겠느냐? (성령이 인도하실 것입니다.) 성령이 인도하는 것은 한 측면의 성과이다. 때로 어떤 일은 아주 간단해 네 머리로 해결이 가능하다. 타인이 낸 의견을 네가 이해한 후에 고치고 원칙대로 하면 된다. 이는 사람이 보기에 작은 일이지만 하나님이 보기에는 큰일이다. 왜 이렇게 말하겠느냐? 네가 그렇게 실행하면 하나님은 너라는 사람이 진리를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이고, 진리를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라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볼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네 마음을 보게 되는 동시에 네 성품도 보게 되는데, 이것이 큰일이다. 다시 말해, 네가 하나님 앞에서 본분을 이행하거나 일을 할 때 살아 내고 드러내는 것이 모두 사람이 갖추어야 할 진리 실제라는 것이다. 네가 각각의 일을 할 때의 태도와 마음, 내적 상태 등은 하나님 앞에서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나님은 이런 것을 감찰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늘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적이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저에게 실행할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다른 사람이 제기한 제안에 대해 진지하게 대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누가 제시한 의견이든 당시 제가 이해할 수 있든 없든, 제 뜻에 맞든 맞지 않든, 결코 가볍게 여기거나 무시하거나, 꺼리며 깎아내려서는 안 되고, 먼저 받아들여야 하며,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진리를 구하며 교제해야 합니다. 진리 원칙에 부합하는 것은 받아들여 실행하고,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 것은 받아들이지 않으면 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진리를 싫어하고, 완고하고, 교만한 패괴 성품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항상 구하는 태도로 형제자매들이 제기한 제안을 대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저는 형제자매들이 제기했던 여러 문제와 제안을 파트너 형제자매들과 상의하며 하나하나 해결해 나갔습니다. 이렇게 실행하고 나니, 양육 성과가 이전보다 훨씬 좋아졌고, 제 마음속에 있던 정이에 대한 편견도 사라졌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그 뒤로 저는 마음속으로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저는 제 문제를 지적해 주는 형제자매들을 어떤 태도로 대해야 할까요? 구하던 중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너는 네게 솔직한 말을 하는 사람을 가까이해야 한다. 그런 사람이 곁에 있으면 큰 도움이 된다. 특히 네 문제점을 발견하면 용기 있게 너를 질책하고 폭로해 주는 좋은 사람이 곁에 있으면 네가 잘못된 길로 들어서는 것을 피할 수 있다. 그는 네 지위가 어떠하든 상관하지 않고 네 일 처리가 진리 원칙에 위배될 경우, 질책해야 하면 질책하고 폭로해야 하면 폭로한다. 이런 사람이 바로 올곧은 사람이자 정의감이 있는 사람이다. 그가 어떻게 폭로하고 질책하든 너에게는 다 도움이 될 것이며, 그러한 것들은 전부 너에게는 감독이자 채찍질일 것이다. 너는 이런 사람을 가까이해야 한다. 이런 사람이 곁에서 도와주면 상대적으로 훨씬 안전하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보호이다. 진리를 깨닫고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 매일 곁에서 감독하면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고 사역을 잘해 내는 데 무척 큰 도움이 된다. 절대 아첨하고 알랑거리는 교활하고 간사한 사람을 너의 조력자로 삼지 마라. 그런 사람이 네 곁에 붙어 있는 것은 똥파리가 붙어 있는 것과 같은데, 얼마나 많은 세균과 바이러스를 옮기는지 모른다! 그들은 너를 교란하고 네 사역에 영향을 주기 쉬우며, 네가 시험에 빠져 잘못된 길에 들어서게 하고 재난과 화를 불러오게 한다. 그들을 반드시 멀리해야 하는데, 멀리하면 멀리할수록 좋고, 불신파인 그들의 본질을 분별해 내고 그들을 교회에서 제명할 수 있다면 더더욱 좋을 것이다. … 적그리스도의 길을 멀리하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겠느냐?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 올곧은 사람에게 주동적으로 다가가야 하며, 의견을 제시해 주는 사람, 네게 문제점이 발견되면 솔직하게 말하고 지적해 주는 사람, 특히 문제점이 발견됐을 때 너를 책망하고 훈계해 주는 사람을 가까이해야 한다. 이런 사람은 네게 가장 도움이 되는 사람이니 소중히 여겨야 한다. 이런 좋은 사람을 배척하고 제거하면 하나님의 보호를 잃게 될 것이고, 조금씩 화가 닥칠 것이다. 좋은 사람, 진리를 깨달은 사람을 가까이하면 평안과 기쁨이 생기고, 화를 멀리할 수 있다. 반면, 소인배, 몰염치한 사람, 아첨하는 사람을 가까이하면 위험해진다. 사기당하거나 속임수에 넘어가기 쉬울 뿐만 아니라 언제든 화가 닥칠 수도 있다. 너는 어떤 사람이 네게 가장 도움이 되는지를 알아야 한다. 네가 일을 잘못하거나 자신을 높이고 증거하고 남을 미혹할 때 일깨워 줄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이 네게 가장 큰 도움이 되는데, 이런 사람을 가까이하는 것은 옳은 길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4조 자신을 높이고 증거한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깨달았습니다. 본분을 잘 이행하려면, 용감하게 진실을 말할 수 있고, 정의감이 있는 사람들을 주도적으로 가까이해야 합니다. 그들은 지위나 권세,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정에 얽매이지 않고, 보이는 대로 말하며 필요할 때는 드러내고 책망합니다. 이런 사람이 제 곁에 있으면, 제 본분 이행에 감독과 경고의 역할을 해줄 뿐만 아니라 저의 패괴 성품을 제약하는 데에도 도움이 됩니다. 저는 성품이 교만하여 늘 제 뜻대로 일을 처리하고, 제 생각이 옳다고 고집하며, 진리 원칙을 구하는 데 소홀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형제자매들이 제 곁에 있으면서 제가 일할 때 원칙을 어기는 것을 보았을 때 바로 지적하고 드러내 준다면, 저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진리를 구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잘못된 길로 가거나 큰 오류를 범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며, 제 본성에 대해 더 정확하게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제 본분 이행에 정말 큰 도움이 됩니다. 정이의 경우를 보면, 정이는 교회 사역을 지킬줄 알고 문제가 보이면 바로바로 말하고 지적했습니다. 때로는 그의 말이 제 체면을 깎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제 본분을 잘 이행하는 데 있어 실제적인 도움이 됩니다. 저는 앞으로 이런 사람들을 더 가까이하고, 형제자매들의 감시와 경고를 많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하나님께서 이런 환경을 마련해 주신 것은 정말 너무나 좋은 일이었습니다. 형제자매들의 제안과 책망, 훈계를 통해, 저는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의 치우침을 바로잡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제 패괴 성품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마음 깊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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