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행운을 추구하지 않겠습니다

2025.5.20

2023년 4월 말, 저는 윗선 리더로부터 편지를 받았습니다. 한 교회의 리더가 실제 사역을 하지 않아 교체되었고, 적합한 후임자를 바로 구하지 못해 임시로 저를 보내 그 교회 사역을 맡기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편지를 보고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 교회에 가게 되었습니다. 가서 보니, 일부 양육자는 본분 이행에 게으르며 부담이 없어 교체가 필요했고, 많은 새 신자들은 소극적이고 연약해 정상적으로 예배 모임을 가지지 못해 하루빨리 양육하고 붙들어 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교회의 복음 사역의 성과도 좋지 않았습니다. 저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 교회 사역의 성과가 이렇게 형편없는데, 리더는 왜 날 여기에 보낸 걸까? 여기서 오랫동안 사역해도 잘하지 못하면, 윗선 리더가 나를 어떻게 볼까? 내가 적합하지 않다고 하지 않을까? 기왕 왔으니까 하나님께 의지해 최선을 다해 협력하자.’ 사역을 잘 하려면 먼저 인원 조정을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밤늦게까지 바쁘게 이 일들을 했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인원이 다 조정되었고, 양육 사역도 서서히 성과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복음 전파자 리밍 자매가 교회 리더로 선출되었을 때, 저는 무척 기뻤습니다. 자매는 본분 이행에 부담을 가지고, 생명 진입에도 집중했기에 자매가 저와 함께 교회 사역에 협력하는 것이 무척 좋았습니다. 그런데 자매가 선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저희는 갑작스레 윗선 리더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리밍 자매가 중공에 추적을 당하고 있어 현지에서 본분을 이행하면 위험하니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편지를 보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렵게 교회 리더를 한 명 선출했는데 또다시 이동시켜야 한다니, 리밍이 복음 사역을 맡으면 나도 부담을 덜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부담이 줄기는커녕 복음 전파 베테랑만 이동시키게 됐네. 나중에 사역 성과가 나쁘면 윗선 리더가 날 어떻게 볼까?’ 마음은 내키지는 않았지만 순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중에 또 복음 사역에 협력할 복음 전파자 2명을 구했지만, 대대적인 체포로 인해 저의 계획이 모두 무너졌습니다. 그 며칠간 형제자매가 체포되었다는 소식이 계속해서 들려왔고, 막 구한 복음 전파자들도 모두 체포되었습니다. 이런 결과를 보고 나니 저는 한순간에 무너졌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재수가 없지? 이 교회에 온 지 두 달여 만에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겪다니. 겨우 인원 조정을 마쳐서 이제 됐다 싶었는데, 사역 성과가 나아지기는커녕 지금 협력할 수 있는 사람들도 다 체포되었어. 난 정말 운이 나쁜 거 같아! 전임 리더는 본분을 이행하는 동안 순조롭고 안정적이었는데, 나는 왜 이렇게 재수가 없지. 나쁜 일은 왜 다 나한테 닥치는 걸까? 그동안 애써온 노력이 다 헛수고가 돼버렸어! 윗선 리더는 분명 내가 사역 능력이 없다고 할 거야.’ 생각하면 할수록 저절로 울음이 터졌고 마음이 심히 울적했습니다. 사역에 성과가 없다 보니 점검하고 해결할 마음도 없었고, 심지어 그곳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저는 그런 내적 상태로 지내며 마음이 점점 어둡고 침체되었습니다.

이후 저는 제 내적 상태에 꼭 맞는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 먹고 마셨습니다. 그러다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항상 자기 운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부류의 문제점은 대체 무엇이겠느냐? 그는 언제나 운이 좋은지 나쁜지를 기준으로 삼아 자기가 한 일의 옳고 그름을 가늠하고, 자기가 마땅히 걸어야 할 길을 가늠하며, 마땅히 겪어야 할 일과 직면한 모든 문제를 가늠한다. 이것이 옳은 태도냐? (옳지 않습니다.) 나쁜 일은 재수가 없었다고 표현하고 좋은 일은 행운이라든지 이득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이러한 관점이 옳은 것이냐? (옳지 않습니다.) 이렇게 사물을 가늠하는 관점은 틀린 것이다. 이는 극단적이고 올바르지 않은 가늠 방식이자 기준이다. 이러한 가늠 방식은 사람을 늘 의기소침하게 만들고 불안감을 느끼게 만든다.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는 일이 없고 모든 것이 자기 뜻대로 안 된다는 생각에 그 사람의 심리는 항상 애타고, 초조하고, 불안하다. 이와 같은 부정적 정서가 해결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점점 더 의기소침한 상태에 빠져 하나님마저 자기를 돌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남은 선대하면서 자기는 선대하지 않고, 남은 보살피면서 자기는 보살피지 않는다고 여기는 것이다. ‘왜 나는 항상 불안감을 느끼고 애가 타는 거지? 왜 나쁜 일은 꼭 나한테만 일어나지? 왜 좋은 일은 항상 내 몫이 아니지? 한 번쯤이라도 나한테 좋은 일이 일어나면 좋을걸!’ 이렇게 잘못된 사상 관점으로 일을 바라보면 너는 행운과 불운이라는 굴레에 얽매이게 된다. 이 굴레에 점점 더 단단히 얽매일수록 네 정서는 계속해서 의기소침해진다. 그렇게 계속 의기소침해지는 과정에서 너는 네게 닥친 일이 행운인지 불운인지에 대해 아주 민감해진다. 네가 그렇게 민감해졌다는 것은 이미 행운과 불운이라는 관점 혹은 논조에 지배당했다는 뜻이다. 그러한 관점에 지배당하면 네가 사람, 일, 사물을 대하는 관점과 태도가 정상 인성의 양심과 이성의 범위를 벗어나 일종의 극단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극단에 빠지면 너는 의기소침한 정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반복적으로 의기소침해진다. 평소에는 전혀 의기소침함을 느끼지 못하더라도 일단 무슨 일이 생기면, 불운한 일이 생겼다는 생각이 들면 너는 곧바로 의기소침해진다. 이러한 의기소침함은 네 정상적인 판단과 결단에 영향을 주고, 더 나아가 네 희로애락에까지 영향을 끼친다. 네 희로애락에 영향이 가면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을 따르고자 하는 의지와 염원이 전체적으로 교란되고 파괴된다. 이렇게 긍정적인 것들이 파괴되면 네가 깨달은 얼마 안 되는 진리가 연기처럼 사라져 아무런 작용도 못 하게 된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2)> 중에서) 하나님은 나쁜 일은 재수 없다고 표현하고 좋은 일은 행운이고 득 보았다고 표현하는 사람들을 극단적인 사람이라고 말씀하시며, 관점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바로 그랬습니다. 그 교회에 본분을 이행하러 가서 그 교회의 각종 사역 성과가 나쁜 것을 알았고, 양육자가 본분에 부담이 없고, 많은 새 신자도 소극적이고 연약해 복음 전파 성과도 나쁜 것을 알고 자신이 재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역을 잘 하려고 저는 매일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밤늦게까지 바쁘게 움직이며 예배하고 교제하며 인원을 조정했습니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후 양육 사역이 점차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는 것을 보았고, 속으로 기뻐하며 본분 이행에도 의욕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복음 전파 베테랑이 다른 곳으로 이동되고 이어서 대대적인 체포에 직면해 복음 전파자가 체포되고 복음 사역에 협력할 사람이 없자 저는 울적한 내적 상태에서 살며 무슨 일을 하든 의욕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저의 이런 모습은 다 일을 바라보는 관점이 틀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역 성과가 좋고 하는 일마다 순조로우면 윗선 리더의 인정을 받을 수 있다며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사역 성과가 좋지 않고 하는 일마다 뜻대로 되지 않으면 소극적이고 연약해졌고, 자신의 운 나쁨을 탓하며 심지어 본분까지 포기하고 싶어 했습니다. 불신파는 어떤 일이 닥쳐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지 않고,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닥치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오해하며 심지어 배반하기까지 합니다. 제 내적 상태도 바뀌지 않으면 꽤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이런 내적 상태를 바꿀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저를 인도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그 후에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항상 운이 좋은지 나쁜지에 관심을 기울이는 부류의 사람들이 일을 바라보는 관점은 과연 옳으냐? 운이 좋고 운이 나쁘다는 게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습니다.) 존재하지 않는다는 근거가 무엇이냐? (매일 만나는 사람들과 일어나는 일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재하고 안배하신 것입니다. 운이 좋으니 나쁘니 하는 말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닥치는 모든 일은 일어나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고, 의의를 지닌 것입니다.) 맞는 말이냐? (맞습니다.) 이 말은 맞는 말이고, 이는 이론적 근거이다. 닥친 일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 모든 것은 정상이다. 각 계절의 날씨처럼, 매일이 맑은 날일 수는 없다. 너는 맑은 날만 하나님이 안배한 날이고 흐리거나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거나 폭풍이 몰아치는 날은 하나님이 안배한 날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전부 다 하나님이 주재하고 안배한 것이며, 자연환경에 의해 생겨난 것이다. 자연환경은 하나님이 안배하고 제정한 법칙과 규율에 따라 생긴 것이다. 그 전부가 필요한 것이며,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니 어떤 날씨든지 자연법칙에 따라 생기고 나타나는 것이므로 거기에는 좋고 나쁘고가 없다. 그저 사람이 느끼기에 좋거나 나쁠 뿐이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거나 날이 흐리면, 더 나아가 우박이라도 오면 사람은 기분이 나빠진다. 특히 비가 와서 습한 날은 모두가 싫어한다. 그런 날은 관절이 아프고 몸에 기운도 없다. 하지만 네 기분이 나쁘다고 해서 비 오는 날은 운이 안 좋다고 말할 수 있느냐? 네 운이 좋고 나쁘고는 이 사실 자체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것은 그저 날씨가 사람에게 불러일으키는 느낌일 뿐이다. 너는 맑은 날이 좋다고 한다. 그렇다면 석 달 내내 비 한 방울 내리지 않고 맑은 날씨가 이어진다고 치자. 사람은 좋다고 느낄 것이다. 매일 해를 볼 수 있고 가끔은 바람도 분다. 상쾌하고 따뜻해서 외출하고 싶으면 언제든 나갈 수 있다. 그러나 식물들은 견디지 못한다. 농작물이 말라 죽게 되고 그 해에는 수확할 게 없어진다. 네 기분이 좋다고 해서 그게 정말 좋은 일이라 할 수 있겠느냐? 가을이 되어 먹을 곡식이 없으면 너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어휴, 맑은 날이 너무 오래 이어져도 안 좋네. 계속 비가 안 오면 농작물이 피해를 입고, 곡식을 수확하지 못하면 사람도 굶어야 해.” 그때가 되면 너는 항상 맑은 날인 것도 좋지는 않다고 느낀다. 좋다 혹은 나쁘다는 사람의 느낌은 사실 자기 사심과 욕망에 기반한 것이요, 자기 이익에 따라 말하는 것이다. 사물 자체의 본질에 근거한 것이 결코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어떠한 일을 두고 좋으니 나쁘니 할 때, 그의 근거는 정확하지 않다. 근거가 정확하지 않기에 최종적으로 가늠된 결과도 정확하지 않다. 그리고 운이 좋으니 나쁘니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이제 다들 운이라는 말 자체가 성립하지 않고 좋고 나쁜 게 따로 없음을 알고 있다. 네게 임한 사람과 일, 사물은 좋든 나쁘든 모두 하나님이 주재하고 안배한 것이므로 올바르게 대해야 한다. 좋은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고, 좋지 않은 것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좋은 것이 닥쳤다고 자기 운이 좋다고 할 수는 없으며, 좋지 않은 것이 닥쳤다고 해서 운이 나쁘다고 할 수도 없다. 어디에나 자기가 배워야 할 공과가 있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사람은 이를 거절해서도 안 되고 도피해서도 안 된다. 좋은 것이 임하면 하나님께 감사하고 좋지 않은 것이 닥쳐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이 안배한 까닭이다. 좋은 사람과 일, 사물, 환경에는 자신이 배워야 할 공과가 있기 마련이고, 좋지 않은 것에는 더더욱 자신이 배워야 할 공과가 있다. 전부 다 살면서 반드시 겪어야 할 체험이며, 빠뜨려서는 안 될 부분이다. 사람은 이를 운이라는 말로 가늠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일의 좋고 나쁨을 운으로 가늠하는 사람은 어떠한 사상 관점을 가진 것이냐? 그러한 사람의 본질은 무엇이냐? 그는 어째서 그렇게 운이 좋은지 나쁜지에 집중하는 것이냐? 운에 집중하는 사람은 자기 운이 좋기를 바라느냐, 안 좋기를 바라느냐? (운이 좋기를 바랍니다.) 그렇다. 사실 그는 자기가 운이 좋기를, 온갖 좋은 일이 다 자기에게 임하기를 추구한다. 자기만 실속을 차리고 이익을 얻으면 그만이요, 남들이야 어떤 고통을 받고, 어떤 고생을 하고, 어떤 어려움을 겪든 관심이 없다. 그는 자기가 생각하기에 재수 없는 일이 부디 닥치지 않기를 바란다. 나쁜 일은 하나도 닥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좌절, 실패, 난처함, 책망 훈계, 또는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손해를 보거나 사기를 당하는 등의 일은 닥치지 말라는 것이다. 만약 닥친다면 재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누가 안배한 일이든 간에 좋지 않은 일이 닥치면 곧 재수가 없다는 것이다. 반면 어디 발탁된다든지, 체면이 선다든지, 실속을 차린다든지, 이익을 얻는다든지, 큰돈을 번다든지, 높은 지위를 얻는다든지 등등의 좋은 일은 모두 자기에게 임해야 하며 이는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는 항상 운의 좋고 나쁨으로 자기에게 임한 사람과 일, 사물을 가늠한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나쁜 운이 아니라 좋은 운이다. 무언가가 조금이라도 자기 마음대로 안 되면 화를 내고 불만을 품는다. 솔직히 말해서 이런 부류는 이기적인 인간들이다. 자기 실속과 이익만 추구하고, 우위를 점하기를 추구하며, 체면을 세우기를 추구한다. 좋은 일은 자기가 혼자 다 차지해야 직성이 풀린다. 이것이 바로 그의 본성 본질이며, 진짜 모습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2)>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사람들이 말하는 운이 좋고 나쁨은 자신의 이익에 따라 평가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일이 닥쳤을 때 자신에게 유리하면 운이 좋다고 하고, 자신에게 불리하면 재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좋은 것은 자기가 독차지하려 하고 특히 이기적이며 자기밖에 모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환경은 다 좋은 것이고, 운이 좋다거나 재수가 없다는 말은 아예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보기에 좋은 환경이나 좋지 않은 환경도 모두 사람들이 공과를 배울 수 있고, 사람의 생명이 성장하는데 유익합니다. 날씨와 마찬가지로, 맑은 날이든 비 오는 날이든 다 인류에게 필요합니다. 만약 늘 맑은 날만 있으면 농작물이 말라죽고, 비가 너무 오랫동안 내리면 농작물이 물에 잠겨 죽습니다. 그래서 맑은 날이든 비 오는 날이든 다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가 있고, 인류에게는 모두 유익한 것입니다. 저는 원치 않는 일을 겪으면 늘 제가 운이 나쁘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안에 야심과 욕망이 있어서 늘 다른 사람들에게 우러름 받고 싶어 했기 때문에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재수가 나쁘다고 생각해서 하나님께 불평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며 소극적인 상태로 살았습니다. 제가 이 교회에 와서 처음에는 본분을 잘 이행하려고 했던 이유도 사람들의 우러름을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매일 아침 일찍 밤늦게까지 일해 불평하지 않았지만, 닥친 일이 제 마음에 들지 않고, 복음 전파자가 체포되니 사역에 협력할 사람이 없어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할까 봐 걱정했습니다. 저의 명예와 지위가 만족을 얻지 못하면 자신이 재수가 없다고 생각하고, 예전의 열심은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원래 이 교회는 거짓 리더가 실제 사역을 하지 않아 각종 사역이 지체되었고, 형제자매들까지 잡혀가 많은 사역이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리더가 저를 그곳으로 안배한 것은 제가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각종 사역을 이끌고 교회 이익을 지키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어려움이 큰 것을 보고 울적한 상태에 빠져 본분을 이행할 마음이 없었고, 자신이 재수가 없고 운이 나쁘다고 원망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저의 모습은 정말 하나님께서 혐오하시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은 교회에 대대적인 체포가 닥쳐 그렇게 많은 형제자매들이 체포되는 것을 보면 최선을 다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내고, 새롭게 인원을 조정해 손실을 최소화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 중요한 때에 자신의 명예와 지위만 고려했으니 정말 양심과 인성이 없고 너무 이기적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이런 환경을 허락하신 것은 저의 패괴 성품을 변화시키기 위함임을 깨달았습니다. 저의 명예욕과 지위욕이 너무 강해서 이런 환경을 빌려 드러내고 변화시킬 필요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묵상을 하던 중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네 야심과 욕망을 내려놓으면, 어떠한 불행이 닥쳐도 거부하거나 도피하지 않는다면, 운이 좋고 나쁨으로 이러한 일을 평가하지 않으면, 예전에 불행하거나 나쁘다고 생각했던 수많은 일들을 이제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나쁜 일이 좋은 일로 바뀌고, 네가 일을 바라보는 관점과 네 심리 상태가 바뀌면서 너는 인생에서 다른 체험을 하게 되는 동시에 다른 수확을 얻게 된다. 이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체험으로, 네게 생각지도 못한 수확을 안겨 준다. 그것은 나쁜 일이 아니라 좋은 일이다. … 소위 말하는 ‘행운’을 추구하지 말고, 소위 말하는 ‘액운’을 거부하지도 말고, 자기 마음과 전 존재를 하나님께 맡겨 하나님이 행하고 지배하게 두고,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이 네게 필요한 것을 제때 네게 필요한 만큼 베풀어 줄 것이다. 하나님은 네게 필요하고 네게 부족한 것에 따라 네게 필요한 환경과 사람, 일, 사물을 배치하여 네가 자신에게 임한 사람, 일, 사물로부터 마땅히 배워야 할 공과를 배우도록 할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의 전제 조건은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는 네 심리 상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2)> 중에서) 하나님은 저희가 운이 좋고 나쁨의 관점에 따라 닥친 일을 더 이상 판단하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환경에서 예상치 못한 수확이 있을 수 있고, 체험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와 주재를 만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나쁜 일이 닥쳤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고 도망치거나 피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이 볼 수 없는 일의 배후에는 모두 하나님의 뜻이 있고, 우리가 겪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환경을 빌려 저희를 훈련시키는 것은 저희의 생명을 성장시키려는 것이고, 여기에는 하나님의 고심이 담겨 있습니다. 앞으로 저는 제 잘못된 관점을 바꾸고 하나님께 의지하여 제가 해낼 수 있는 것을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교회 사역에 협력할 적합한 사람을 예비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이렇게 생각했을 때 제 영적 상태가 훨씬 좋아졌습니다. 그 후 저는 복음 전파자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한 자매가 가정에 얽매여 소극적이고 연약한 상태일 때 저희는 자주 교제하며 붙들어 주었습니다. 한동안 교제를 나누면서 자매의 영적 상태는 조금씩 바뀌었고 본분을 이행하고 싶어 했습니다. 또 다른 한 자매도 교제를 나눈 후 본분을 이행하고 싶어 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이런 환경을 마련하신 이유가 제가 실제 사역하는 방법을 배우게 하시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형제자매의 문제를 교제하고 해결해 형제자매들이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면 적극적으로 협력하게 됩니다. 또한, 이런 환경을 빌려 더 많은 사람들이 일어나 본분을 이행하도록 양성하시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9월에 저는 갑작스럽게 복음 집사가 체포되었다는 내용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 후 며칠간 형제자매들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이 또 전해졌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어렵게 인원을 조정해서 사역에 성과가 약간 나타났는데, 이제 됐다 싶으니 복음 전파자가 또 잡혔네. 난 왜 이렇게 일이 안 풀리지. 이런 재수 없는 일들이 항상 나를 따라다녀!’ 저는 제 내적 상태가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얼른 하나님 앞에 나아가 조용히 기도드리며, 제가 이런 환경을 겪도록 하나님께서 이끌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런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좋다 혹은 나쁘다는 사람의 느낌은 사실 자기 사심과 욕망에 기반한 것이요, 자기 이익에 따라 말하는 것이다. 사물 자체의 본질에 근거한 것이 결코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어떠한 일을 두고 좋으니 나쁘니 할 때, 그의 근거는 정확하지 않다. 근거가 정확하지 않기에 최종적으로 가늠된 결과도 정확하지 않다. 그리고 운이 좋으니 나쁘니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이제 다들 운이라는 말 자체가 성립하지 않고 좋고 나쁜 게 따로 없음을 알고 있다. 네게 임한 사람과 일, 사물은 좋든 나쁘든 모두 하나님이 주재하고 안배한 것이므로 올바르게 대해야 한다. 좋은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고, 좋지 않은 것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좋은 것이 닥쳤다고 자기 운이 좋다고 할 수는 없으며, 좋지 않은 것이 닥쳤다고 해서 운이 나쁘다고 할 수도 없다. 어디에나 자기가 배워야 할 공과가 있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사람은 이를 거절해서도 안 되고 도피해서도 안 된다. 좋은 것이 임하면 하나님께 감사하고 좋지 않은 것이 닥쳐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이 안배한 까닭이다. 좋은 사람과 일, 사물, 환경에는 자신이 배워야 할 공과가 있기 마련이고, 좋지 않은 것에는 더더욱 자신이 배워야 할 공과가 있다. 전부 다 살면서 반드시 겪어야 할 체험이며, 빠뜨려서는 안 될 부분이다. 사람은 이를 운이라는 말로 가늠해서는 안 된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2)>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사람이 닥친 일을 좋거나 나쁘다고 느끼는 것은 모두 진리가 아닌 사람의 사욕과 이익에 따라 판단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복음 집사가 체포된 일에는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있고,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들이 체포되는 것을 허락하신 데에는 하나님의 주재와 지배가 있으며, 이는 사람이 겪어야 하는 일입니다. 저는 마땅히 순종해 후속 사역을 처리해야 하고, 제가 협력할 수 있는 부분은 협력해야 합니다. 그 후 저는 후속 사역을 처리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복음 팀장이 새 신자 3명을 데리고 계속 예배 모임을 가지고,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큰 붉은 용의 협박에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복음 전파 성과는 이전보다 더 좋았습니다. 또한, 몇몇 자매는 교회 사역이 영향을 받을까 봐 적극적으로 본분을 이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저는 속으로 깊이 감동하며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모든 환경에는 다 의미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체포된 사람에게는 그들이 겪어야 할 일이 있었고, 체포되지 않은 사람에게도 해야 할 간증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큰 붉은 용의 체포와 봉사를 통해 사람을 온전케 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체험을 통해, 이런 환경이 닥친 데에는 저의 운이 나빠서가 아니고, 하나님에 대한 저의 요구가 높아서도 아니며, 하나님께서 저를 정결케 하시고 변화시키기 위해서였음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마음가짐을 바로잡고 실제로 협력했을 때 하나님의 사역이 스스로 역사하시는 것을 보았고, 진심으로 기도하며 마음을 다해 본분을 이행하면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앞으로 저는 계속해서 하나님께 의지해 제 본분을 다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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