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역사에 순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상하이시 샤오웨이 저와 함께 본분을 이행하는 자매님은 최근 하나님 말씀을 읽으며 얻은 깨우침과 빛 비춤을 자주 저와 나누었습니다. 새로운 빛들이 있고 도움도 되는 말들이었지만, 한편으론 자매님이 자신을 과시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이...
2023년에 저는 교회 리더 본분을 맡게 됐고 허리(何麗) 자매랑 파트너로 협력하게 됐어요. 자매는 리더를 한 경력이 있어서 여러 사역에 관한 원칙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죠. 우리는 업무 분담을 했는데, 자매가 맡은 사역은 제가 거의 신경 쓸 필요가 없었어요. 가끔 제가 맡은 사역에 어려움이 있으면 자매가 도와주곤 했죠. 우리 두 사람이 같이 협력을 하니까 사역량이 조금 많아도 마음은 가벼웠어요. 그러다 7월에 허리 자매가 설교자로 뽑혀 여러 교회 사역을 맡게 되면서 우리 교회 사역은 저 혼자 짊어지게 됐어요. 그러니까 저는 업무를 분담해 줄 사람이 빨리 나타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죠. 나중에 자오신(趙鑫) 자매가 교회 리더로 당선되면서 같이 협력하게 됐어요. 저는 기분이 좋았어요. 자매는 양육 집사를 한 경험이 있다 보니 교회 사역을 어느 정도 알고 있어서 적응이 빠를 것 같았어요. 그럼 업무를 더 많이 분담할 수 있고 또 그러면 저도 일을 좀 덜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자오신 자매가 해야 할 사역을 인수인계했는데, 자매님은 나이가 좀 있다 보니까 제대로 정리가 안 돼서 대부분 사역을 제가 처리해야 했어요. 그러니까 ‘내가 해야 할 일도 있는데 자오신 자매의 사수 역할까지 해야 하니까 업무량이 원래보다 더 많아졌잖아.’라는 생각에 조금 불평이 생겼어요. 하지만 자매는 이제 처음 훈련받는 과정이고 이제 며칠 지나서 조금 익숙해지면 잘하겠지 싶었어요.
어느 날 예배를 마친 후 양육 사역을 아직 확인하지 못한 게 생각났어요. 하지만 자오신 자매는 양육 사역에 대해 좀 잘 아니까 자매가 알아서 확인하겠지 생각했죠. 집에 가서 자오신 자매한테 양육 사역을 확인했는지 물어봤더니 저한테 아직 같이 예배드린 것도 없어서 잘 모른다는 거예요. 순간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오르더라고요. ‘자매가 뭘 조금만 해 주면 내가 부담을 좀 덜 수 있잖아. 이런 상황이면 말이 두 사람이지 나 혼자 하는 거랑 뭐가 달라?’ 싶었어요. 그래서 질타하는 말투로 한마디 했죠. “할 수 있는 사역은 좀 해 주세요. 그래야 효율적으로 할 수 있지 않겠어요? 어떤 패괴 성품 때문에 자매가 할 수 있는 것도 안 했는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자매는 한동안 말이 없더라고요. 저도 그런 말투로 말하면 구속감을 준다는 걸 인지했어요. 게다가 자매는 최근에 정 때문에 내적 상태도 안 좋은데 제가 그렇게 대하는 건 좀 아니지 않을까 싶은 게 마음에 조금 가책이 들더라고요.
그러고 나서 보름 후에 류원(劉文) 자매가 리더로 뽑혀 저희랑 협력하게 됐죠. 류원 자매는 본분에 책임감이 있었고 일 처리도 꼼꼼한 편이었어요. 물론 처음 맡은 직책이라 아직 사역 원칙을 잘 파악하지 못해서 사역에 자꾸 문제가 발생하긴 했어요. 더구나 자매는 느린 성향이고 사역 능력이 조금 부족해서 제가 자주 도와주고 보완해 줘야 했죠. 처음엔 협력자가 두 명이니까 조금 부담을 덜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는데, 부담을 덜기는커녕 오히려 부담이 늘어난 거예요. 그러니까 스트레스가 생겼고 이 본분은 너무 고생스럽고 기가 빨리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러니까 자연히 두 자매를 싫어하게 됐고 말도 많이 하고 싶지 않은 거예요. 또 평소에 자매들이 저한테 뭘 물어봐도 짜증이 났고요. 자매들도 제가 그렇게 하니까 눈치 보여서 뭘 잘 물어보지도 못했는데, 그래서 어떤 사역은 진도에 지장이 생기기도 했어요. 그때 두 자매가 소극적인 상태였는데, 자기들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뭘 해도 역부족이라고 생각했어요. 게다가 제가 자매들이 제대로 하는 게 없다고 불평까지 했거든요. 말이 협력자가 생긴 거지 협력자가 없을 때보다 더 힘든 것 같았어요. 분명 세 명이 사역했지만 제가 혼자 하는 느낌이라서 손해 보는 것 같았거든요. 근데 안 하려니 사역에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지게 되는 게 겁나기도 했죠. 그런 생각들을 하니까 정말 너무 억울함을 당한 것처럼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는 거예요. 이런 상황을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할지 모르겠고 매일 한숨만 나오고 마음은 너무 괴로웠어요. 그러니까 이 지역 교회를 떠나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하지만 피하는 게 해결책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했죠. ‘하나님, 제가 패괴 성품을 많이 드러낸 걸 압니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인식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제게 저의 패괴 성품을 알 수 있게 깨우쳐 주시고 이끌어 주세요.’ 구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이 말씀을 봤어요. 『사람의 원래 성품은 혈기에 속한 것이고, 사람의 이익과 허영, 체면이 손상됐을 때, 만약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진리 실제가 없는 사람이면 패괴된 성품대로 행동하여 충동적이고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한다. 그럴 때 그가 나타내고 드러내는 것이 바로 혈기이다. 혈기는 긍정적인 사물이냐, 부정적인 사물이냐? 부정적인 사물임이 명백하다. 사람이 혈기대로 사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며 화를 부르기 쉽다. 어떤 일이 닥쳤을 때 사람이 혈기와 패괴를 드러낸다면 이런 사람은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겠느냐?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을 것임이 명백하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배치해 준 갖가지 사람과 일, 사물, 환경에 대해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지 못하고 사람의 방법으로 대응하고 해결한다면 결국 어떤 결과가 초래되겠느냐? (하나님께 혐오받고 버려질 것입니다.) 하나님께 혐오받으면 사람에게 유익이 있겠느냐? (없을 것입니다.) 자기 생명이 손해를 입을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유익이 없으며 더욱이 하나님을 욕되게 하여 하나님께 혐오받고 버려진다. 그런 사람은 증거를 잃게 되고 어딜 가도 환영받지 못한다. 네가 하나님 집의 일원이지만 모든 일을 혈기로 행하고 항상 천연적인 것을 드러내고 항상 패괴된 성품을 드러내며 사람의 방법, 사탄의 패괴 성품대로 일을 처리한다면, 그 최종의 결과는 바로 악을 행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만약 계속 회개하지 못하고 진리 추구의 길을 가지 못하면 결국 드러나 도태될 수밖에 없다. 사탄의 성품으로 살면서 진리를 구해 해결하지 않으면 심각한 문제가 아니더냐? 자기 생명에 발전도 변화도 없을 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교회에서 좋은 역할을 할 수 없는데, 오래 지속되면 교회와 하나님의 선민들에게 큰 피해를 주게 된다. 마치 역겨운 파리가 식탁 위를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사람들을 구역질 나게 하고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것과 같다. 너희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냐? (아닙니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받아들여야 패괴 성품을 해결할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께서 폭로하신 게 딱 제 상태였어요. 협력하는 자매들을 마주할 때 왜 자꾸 짜증이 났는지, 심지어 혈기를 쏟아내면서 자매들한테 화를 냈는지 생각해 봤어요. 그건 자매들이 리더로 뽑혔지만 제가 기대했던 사람과 달랐기 때문이죠. 저는 곧바로 업무를 분담해서 제 부담을 줄여 주길 바랐는데, 오히려 신경을 더 써서 자매들과 교제를 나누고 도와줘야 할 처지가 됐고 사역의 부족한 걸 제가 다 보완해야 하는 상황이 됐으니까 전 자매들이 제 시간을 빼앗고, 저를 더 고생하게 한 것 같아서 불만이 커졌던 거예요. 저는 진리를 구하지 않고 오히려 패괴 성품에 따라 살면서 자매들을 싫어했고 혈기를 부리면서 화를 냈어요. 결국, 자매들은 제 눈치를 보게 됐고 사역에도 지장이 생겼어요. 저는 정말 너무도 인성이 없었죠!
그 후에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게 됐어요. 『특별한 본분이나 고통스럽고 힘든 본분을 이행할 때, 사람은 한편으로는 이 본분을 어떻게 이행해야 하는지, 어떤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어떻게 자신의 본분을 굳게 지켜야 하는지, 어떻게 순종해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또 한편으로는 자신의 마음가짐에 어떤 불순물이 섞여 있는지, 본분 이행에 어떤 장애물이 있는지를 성찰해야 한다. 사람은 천성적으로 고통을 받기 싫어한다. 고통을 받을수록 힘이 나고 즐거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런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의 육은 고통을 받으면 우울하고 괴로워지는 것이 본성이다. 하지만 지금 너희가 이런 본분을 이행하면서 받는 고통이 뭐 얼마나 되느냐? 그저 육이 좀 힘들고 고생할 뿐이다. 만약 네가 이 정도의 고통도 견딜 수 없다면 의지가 있다고 할 수 있겠느냐?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수 있겠느냐? (그렇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러면 안 된다. … 본분을 이행하면서 고통을 받는 것, 이는 간단한 일이 아니다. 한 측면의 일을 제대로 하는 것, 이 또한 간단하지 않다. 분명 하나님 말씀에 담긴 진리가 그의 내면에 작용한 것이다. 그가 선천적으로 고통과 힘듦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이 모든 것이 동력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에 담긴 진리가 그의 토대가 되었기 때문에 본분이 닥쳤을 때 그의 관점과 입장이 바뀌어 본분을 수월하게 이행하게 되는 것이다. 육이 고통을 좀 받고 좀 힘든 것은 별것 아니다.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일을 바라보는 관점이 변하지 않은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 관념, 사욕, 개인의 기호에 따라 살아가며, 본분을 이행하더라도 기꺼이 원해서 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보자. 똑같이 힘들고 더러운 일을 하는데, 어떤 사람은 “저는 하나님 집의 안배에 순종하고, 교회의 안배대로 본분을 이행합니다. 그것이 더러운 일이든 힘든 일이든, 영예로운 일이든 보잘것없는 일이든, 저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모두 본분으로 받아들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저에게 맡기신 부탁이니 좀 더럽고 힘들어도 제가 받아야 하는 고통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사역할 때 그다지 고통을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은 더럽고 힘들다고 느껴도 그는 수월하다고 느낀다. 이는 그의 마음이 편안하고, 하나님을 위해 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다고 느끼지 않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더럽고 힘든 일 또는 눈에 띄지 않는 일을 하면, 자신의 신분과 인격에 대한 모욕이자 자신을 존중하지 않고 괴롭히고 얕잡아 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같은 사역, 같은 업무량인데도 그는 매우 힘겹게 일한다. 무엇을 하든 그의 마음속은 원망으로 가득하며, 무엇을 하든 다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무엇을 하든 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그의 내면은 소극적인 것과 반발심으로 가득 찬다. 그가 소극적이고 반발할 수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그 근원은 무엇이냐? 대부분은 본분 이행이 월급을 받지 않고 무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상을 준다면 그것도 괜찮은데, 상을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본분을 이행할 가치가 없으며 공짜로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본분을 이행할 때 항상 소극적이고 반발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냐? 적나라하게 이야기하자면, 이 사람들은 본분을 이행하기 싫어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 말씀에서 진리를 실행하지 않고 육을 생각하는 자는 오직 육의 이득만 챙길 뿐 본분을 자신의 책임으로 간주하지 않고 뭐라도 더 하면 손해 보는 것 같아서 불평하고 반발하기도 하는데, 이건 본분을 이행하는 게 아니라고 하셨어요. 여기에 저를 비춰 봤어요. 협력하는 자매들은 아직 훈련 단계라 혼자서 본분을 짊어지지 못하는 상황이잖아요. 그럼 제가 더 신경 써서 교제를 해 주고 도와줘야 하는 게 맞는데, 저는 자매들이 제가 쉴 시간마저 뺏는다고 생각해서 불만을 품었고 화를 내면서 혈기로 대했고, 자매들과 말하기도 싫어서 자매들이 맡은 사역은 신경 쓰고 싶지도 않았어요. 저는 교회 사역을 제 본분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자매들이 빨리 사역을 잘 수행함으로 교회 사역에 손실이 생기지 않도록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말 몇 마디 더 하고, 시간과 에너지를 더 쓰는 것조차 하지 않았죠. 이런 저의 모습을 어떻게 충성을 다해 본분을 이행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양심과 이성이 있다면 어떤 상황이 닥치든 자기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아무리 힘들고 고생스러워도 하나님께 충성하는 마음으로 자기 본분을 다하죠. 근데 저는 계속 육의 안일을 탐하다 보니 조금만 힘들어도 서운하고 손해 보는 느낌을 받았고 그런 환경에서 도망가고 싶었어요. 이건 육적인 것을 탐하고, 이기적이고 비열한 제 성품 때문이었어요. 저는 패괴 성품에 따라 사는 바람에 협력하는 자매들한테 너무 큰 상처를 줬어요. 자매들은 매일 제 눈치를 보면서 말을 했어요. 그러니 가끔 자기 관점이 있음에도 괜히 말을 잘못했다가 제가 혈기를 낼까 봐 겁을 먹었어요. 그러니까 본분에서 자기의 역할을 발휘하지도 못했어요. 저는 본분을 이행한 게 아니라 악행을 저지르고 훼방을 놓고 있었죠! 지금 생각해도 저 자신이 정말 너무 혐오스러워요.
그 후에 찾고 구했죠. ‘나는 왜 계속 안일을 탐하면서 내 육의 이익만을 생각할까?’ 그러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됐어요.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고 진리를 깨닫기 전까지는 사탄의 본성이 사람의 내면에서 주도권을 잡고 사람을 지배한다. 그 본성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겠느냐? 예를 들어, 너는 왜 이기적으로 구는지, 왜 자신의 지위를 지키려 하는지, 왜 그렇게 정에 치우치는지, 왜 그 불의한 것과 악을 좋아하는지, 그러한 것들을 좋아하는 근거는 무엇인지, 그것들은 어디에서 왔는지, 너는 왜 그것들을 받아들이기 좋아하는지 등이 있다. 너희는 그것이 주로 사람의 내면에 사탄의 독소가 들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제 알았다. 사탄의 독소는 무엇이냐?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느냐? 예를 들어, 네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합니까?”라고 물으면 사람들이 모두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 말은 문제의 근원을 보여 준다. 사탄의 철학이나 논리는 이미 사람의 생명이 되었다. 사람이 무엇을 추구하든 사실 모두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모두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라는 이 말은 사람의 생명 철학으로, 사람의 본성을 대변하기도 한다. 이 말은 이미 패괴된 인류의 본성이 되었다. 바로 패괴된 인류의 사탄 본성을 생생하게 묘사한 말인 것이다. 사탄의 본성은 이미 완전히 패괴된 인류의 생존의 토대가 되었다. 몇천 년간 패괴된 인류는 사탄의 이 독소에 의지해 오늘날까지 살아왔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어떻게 베드로의 길을 갈 것인가>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깨달았어요. 저는 “사람은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라는 사탄의 독소에 따라 살다 보니 뭘 하든 다 저 자신과 제 이득을 먼저 챙겼고 자신을 먼저 챙기지 않으면 바보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그래서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도 제가 생각하고 행했던 건 다 제 이익을 중심으로 한 것이었어요. 허리 자매가 떠난 뒤로 저는 빨리 저의 부담을 덜어 줄 수 있는 사람이 와서 업무를 분담하길 바랐어요. 그럼 제가 덜 고생할 거고, 덜 힘들 거니까요. 근데 자오신 자매는 업무를 익히는 데 더디고, 크게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 저는 자매를 싫어했고 협력 파트너를 한 명 더 원했어요. 하지만 류원 자매도 리더가 됐지만 원칙을 잘 모르고, 했던 일을 재작업하기도 해야 하니까 저는 자매들한테 화를 내면서 혈기를 드러냈어요. 자매들이 업무 분담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제가 시간 내서 교제를 해 줘야 할 판이니 제가 쉴 시간이 더 줄게 된다는 생각에 자매들을 너무 싫어했어요. 자매들이 사역하면서 어려움을 겪어도 신경 쓰고 싶지 않았고요. 결국, 문제 해결이 안 돼서 사역에 지장이 생겼죠. 제가 조금 더 심혈을 쏟으면서 인내심을 갖고 자매들을 도와줬더라면 몸이 조금 힘들어도 함께하는 조화로운 협력으로 교회 사역은 더 순조롭게 진전됐을 거예요. 근데 제 육의 이익만 챙기고 “사람은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라는 사탄의 독소에 따라 살다 보니까 갈수록 이기적이고 비열하고 인간성이 없는 사람으로 변해서 사역을 지체하게 된 거예요. 이런데도 더 이상 뉘우치지 않으면 결국 하나님께 혐오받고 내쳐질 거잖아요. 그래서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했어요. ‘하나님, 전 최근에 계속 ‘사람은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라는 사탄의 독소에 따라 살면서 너무 힘들었어요. 사람을 탓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원망하곤 했는데, 계속 이렇게 살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사탄 독소의 얽매임에서 벗어날 수 있게 저를 이끌어 주세요.’
그 후에 어떻게 사람을 대해야 원칙에 부합할지 묵상하고 있었는데, 하나님의 이 말씀이 떠올랐죠. 『우선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네가 진리를 깨달으면 하나님의 뜻을 쉽게 알게 되고, 하나님이 요구하는, 사람을 대하는 원칙도 알게 된다. 또한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고, 다른 사람을 대하는 일에서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게 된다.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하나님의 뜻을 틀림없이 알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대할 때도 원칙이 있을 수 없다.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이미 명확하게 제시되거나 설명되어 있다. 하나님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 그것이 바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대할 때 마땅히 지녀야 할 태도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각 사람을 어떻게 대하느냐? 사람 중에는 분량이 작거나 나이가 어린 자도 있고, 하나님을 믿은 지 얼마 안 된 자도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본성 본질이 나쁘거나 악독한 것이 아니라 단지 약간 어리석거나 자질이 조금 부족하거나 너무 많은 얽매임으로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생명 진입에 아직 들어서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들은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거나 어리석은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한때의 어리석음을 보지 않고, 사람의 마음을 본다. 만약 그 사람에게 진리를 추구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그것은 옳은 것이다. 그가 그런 추구 목표를 세웠다면, 하나님은 진입할 시간과 기회를 주고 지켜보며 기다린다. 한 번의 과오로 그를 전면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사람이 늘 저지르는 일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그렇게 대한 적이 없다. 하나님도 사람을 그렇게 대하지 않는데, 사람은 왜 다른 사람을 그렇게 대하느냐? 그것은 패괴 성품이 아니겠느냐? 그것이 바로 패괴 성품이다. 너는 하나님이 무지몽매한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분량이 작은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정상적으로 패괴 성품을 드러내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또 악독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사람에 따라 대하는 방식을 달리하고, 사람의 내적 상태에 따라 다루는 방식도 달리한다. 그러므로 너는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네가 이런 진리를 모두 깨달으면, 체험할 줄 알게 되고 어떻게 원칙에 따라 사람을 대해야 하는지를 알게 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얻으려면 주변의 사람과 일, 사물로부터 공과를 배워야 한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니까 하나님께서 사람을 대하시는 것에도 원칙이 있더라고요. 분량이 작은 사람에게 하나님은 포용과 인내를 베푸시면서 성장할 기회를 주셨어요. 근데 저는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높은 요구 기준을 세웠어요. 사실 자오신 자매는 연세도 있는 데다가 이제 처음 훈련하는 과정이니까 아직 사역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것도 정상인 거죠. 근데 저는 자매의 어려움을 생각해 주지 않았고, 사랑으로 도와주거나 붙들어 주지도 않았고 그저 이 본분을 맡았으면 무조건 일을 잘 해내야 한다고 요구했어요. 류원 자매는 느린 성격이라 일이 많으면 갈팡질팡해요. 하지만 자매는 본분을 성실하고 참답게 해내고, 실제적인 사역을 하기도 해요. 근데 저는 자매가 사역을 빨리 익힐 수 있게 도와주지는 않고 높은 요구 기준을 설정해 놓고는 자매가 못하면 눈치를 주면서 구속감을 느끼게 했어요. 돌아보면, 저도 처음 리더를 맡았을 때에는 아무것도 몰랐어요. 다 형제자매들이 계속 도와준 덕에 원칙을 조금 파악하게 된 거거든요. 근데 저는 협력자들한테 과한 요구 기준을 잣대로 들이대 힘들게 했어요. 정말 인간성이 너무 없는 거죠! 이런 생각을 하니 너무 부끄러웠어요.
그 후에 구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됐어요. 『형제자매들과 함께 지낼 때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 늘 다른 사람의 문제점만 봐서는 안 되고 수시로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그다음 자신의 어떤 행동들이 상대에게 교란이 되거나 피해를 주었는지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솔직하게 털어놓고 교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렇게 하면 서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밖에, 어떤 일이 닥치든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일을 바라봐야 한다. 진리 원칙을 깨닫고 실행의 길을 찾으면 한마음 한뜻이 될 수 있으며, 형제자매들의 관계도 정상이 될 것이다. 이방인처럼 냉담하고 냉혹하고 잔인하지 않을 것이고, 서로 의심하고 경계하는 마음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형제자매 간에 마음을 이해하고 서로 붙들어 주고 사랑할 수 있다. 또 선량한 마음을 갖고 관용을 베풀고 상대를 아끼며 서로 붙잡아 주고 도와줄 수 있다. 서로 배척하거나 질투하거나 비교하거나 몰래 경쟁하거나 불복하지 않게 된다. … 사람이 패괴 성품으로 살아가면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평온히 하기도, 진리를 실행하며 하나님 말씀으로 살아가기도 몹시 힘들어진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려면 먼저 스스로를 돌아보고 인식하며, 하나님께 진실한 기도를 할 줄 알아야 한다. 그 후 형제자매들과 화목하게 지내고, 서로 포용하고 관용을 베풀며, 다른 이의 장점과 뛰어난 점을 보는 법, 다른 이의 의견과 올바른 것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어요. 형제자매들 사이에서 계속 남의 단점에만 눈을 두지 말고 장점을 많이 찾아봐야 하고 서로 포용하고 장점을 취하면서 단점을 보완해 나가야 한다고요. 자오신 자매는 진리로 교제를 나누면서 문제 해결을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사람이었죠. 가끔 제가 형제자매들의 문제점이 뭔지 잘 간파하지 못할 때 자오신 자매는 알맞은 말씀을 찾아 교제하면서 해결해 주곤 했어요. 류원 자매는 조금 느린 성격이긴 하지만 문제를 다방면적으로 들여다보고 본분할 때에도 책임감 있고 성실한 편이었어요. 근데 저는 사역량이 많으면 얼렁뚱땅하는 게 많았어요. 그런 걸 류원 자매는 잘 짚어 주면서 저의 부족함을 채워 주고 있었어요. 그렇게 세 명이 함께 조화롭게 협력하면서 장점을 배우고 단점을 보완해 나간다면 사역을 추진시킬 수 있겠더라고요. 그 후에 저는 자매들한테 제 내적 상태를 털어놨고, 우린 서로 상대방의 문제점도 짚어 줬어요. 그렇게 교제를 나누면서 우리는 협력할 길과 방향을 찾게 됐는데 마음이 너무 편하더라고요. 정말이지 하나님께서 주신 환경은 제 생명 진입에 너무 이로웠어요.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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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시 샤오웨이 저와 함께 본분을 이행하는 자매님은 최근 하나님 말씀을 읽으며 얻은 깨우침과 빛 비춤을 자주 저와 나누었습니다. 새로운 빛들이 있고 도움도 되는 말들이었지만, 한편으론 자매님이 자신을 과시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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