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 주신 부모님의 은혜를 대하는 법
일본 다이앤(Diane) 2012년 우리 가족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게 됐어요.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란 뭔지 알게 됐고 누구든 이 세상에 올 때는 사명을 가지고 오며 사람은 살면서 진리를 추구하고...
2012년, 저는 본분을 하다가 경찰에 잡혀 5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당시 예순이 넘으신 어머니는 반신불수의 몸을 이끌고 감옥에 면회를 오셨습니다. 거동이 불편하고 서 있기조차 불안정한 어머니를 보니 말할 수 없이 착잡한 심정이었습니다. ‘이때까지 날 키우셨는데, 내 덕분에 호강은 못 할망정 노년에도 나 때문에 마음을 졸이시는구나.’ 출소 후, 제가 감옥에 있는 동안 경찰이 저를 조사하러 집으로 찾아가 녹음을 하고 협박까지 하는 바람에 어머니가 놀라서 병이 더 악화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죄스러운 나머지 앞으로는 덜 고생하시게 어머니를 잘 보살펴 드리겠다고 생각했지만, 일은 마음처럼 되지 않았습니다. 계속되는 경찰의 조사와 감시에 안전을 위해 하는 수 없이 집을 떠나 본분을 이행해야 했던 것입니다.
2년 후, 언니네 집에 어머니가 와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몰래 어머니를 뵈러 갔습니다. 어머니는 눈이 흐려서 길도 잘 안 보이고, 지팡이를 짚고 비틀비틀 걸으셨습니다. 동작 하나하나가 힘들고 말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보고 있자니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특히 어머니가 “다음에 또 언제 오니?” 라고 물으시는데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몰랐습니다. 경찰이 여전히 저를 찾고 있어서 위험을 무릅쓰고 왔는데, 이번에 가면 또 언제 올 수 있을지 저도 알 수가 없었으니까요. 어머니는 저를 멀뚱멀뚱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리셨지만 속으로 자신할 수가 없어서 어머니 어깨만 어루만지며 아무 소리도 못 했습니다. 언니네 집을 떠난 뒤, 어머니가 물어보시던 말씀이 자꾸만 귓전을 맴돌아서 생각할수록 괴로웠습니다. 어머니에게 약속 한 마디도 해 드리지 못한 것이 못내 죄송스러웠습니다. 얼마 후 언니도 하나님을 믿다 잡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언니네 집을 찾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연로하신 어머니가 자리에 누워 거동도 못하시고 언제 떠나실 지도 모르는데, 딸인 저는 책임을 다할 기회도 없다고 생각하니 애가 탔습니다. 얼마 후에는 전염병이 크게 유행해서 여러 지역에서 사망자가 속출했습니다. 그러자 또 저절로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가 감염되지는 않을까? 이 고비를 잘 넘기실 수 있을까? 만에 하나 돌아가시면 마지막 얼굴도 못 보는 건데.’ 나중에 방법을 짜 내어 가족에게 연락했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한 달이 다 되어 간다고 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는 멍하니 의자에 앉아 쏟아지려는 눈물을 애써 참았습니다. ‘떠나기 전 마지막 얼굴도 뵙지 못했는데, 어머니가 나보고 양심도 없다고 하지 않을까? 나보고 독하다고 하지 않을까?’ 저는 집으로 돌아가 대성통곡했습니다. 어머니가 지금껏 저를 키워 주셨는데, 살아 계실 때 잘 보살펴 드리지도 못하고, 돌아가실 때 마지막 얼굴도 한 번 뵙지 못해서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고 일종의 죄책감이 엄습했습니다. 한동안은 자기네 집 문 앞에서 볕을 쬐거나 곁에서 자식들의 보살핌을 받는 노인들만 보면, 어머니를 모시고 문 앞에서 같이 볕도 쬐지 못하고, 어머니 손톱이나 머리도 한번 손질해 드리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접대 가정 자매가 맛있는 음식이라도 하면, 나는 어머니에게 이런 식사도 한번 못 차려 드렸는데 이제는 기회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설 연휴에는 아래층에서 사람들이 너도 나도 서둘러 고향으로 떠나고, 누군가 차를 몰고 아이와 함께 부모님을 뵈러 가는 모습이 보이면, 저는 어머니와 함께하지 못한 햇수가 얼마나 되는지 헤아렸습니다. 한동안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지냈습니다. 비록 본분을 이행하고는 있었지만, 조금이라도 한가해지면 어머니가 생각나고, 어머니에게 빚을 진 것 같아서 하나님 말씀을 보아도 마음이 평온해지지 않고 늘 졸기만 했습니다. 본분도 성의 없이 형식적으로 이행하기 시작했습니다. 파트너 형제자매와 얘기도 하고 싶지 않고, 같이 업무를 학습할 때도 딴생각을 했습니다. 리더가 편지로 사역 상황을 물어도 답장도 하기 싫고, 답장을 하더라도 몇 마디로 대충 넘겼습니다. 본분을 방치한 채 신경쓰지 않고 타락한 상태로 지내서 본분에 별로 성과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풀타임으로 헌신하고 싶지 않아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본분을 하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그 후 저는 이렇게 계속 가는 것은 위험하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서둘러 기도드리고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중 이런 말씀이 있었습니다. 『부모가 병에 걸린 것도 아주 뜻밖인데 부모가 세상을 떠난다면 더 뜻밖일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런 일로 생긴 뜻밖의 충격이 네 본분 이행과 걸어가는 길에 타격이나 지장을 주고 영향을 미치는 것을 사전에 해결할 수 있겠느냐? 먼저 죽음이 대체 무엇인지, 세상을 떠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이것은 인간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육의 형상을 가지고 있는 생명이 눈으로 볼 수 있는 물질세계에서 제명되어 사라지면 다른 세계에서 또 다른 형태로 살아갈 것이다. 그렇다면 그 생명이 세상을 떠난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너와 그의 관계가 제거되고 사라지며 종료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또 다른 형태로 다른 세계에서 살게 되는데, 그 다른 세계에서 어떤 삶을 사는지, 다시 인간 세상으로 올 수 있는지, 너와 만날 수 있는지, 너와 어떤 육적인 관계나 감정적인 갈등이 생길 수 있는지에 관한 것은 하나님이 정하는 것이니 너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결론적으로 그가 세상을 떠나는 것은 인간 세상에서의 사명이 끝났고 매듭지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그의 평생의 사명이 끝나면 너와 그의 관계도 그렇게 끝나게 된다. … 부모의 죽음은 이 세상에서 네가 듣는, 그들에 관한 마지막 소식이자 네가 보고 듣는, 그들이 인생에서 경험하는 생로병사의 마지막 관문이다. 그뿐이다. 그들의 죽음이 네 무언가를 가져가지는 않을 것이고 네게 무언가를 주지도 않을 것이다. 그냥 죽는 것이고, 사람으로서의 이번 여정을 마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죽음이 사고사인지, 자연사인지 아니면 병사인지 등 이런 것을 상관할 필요가 없다. 결국,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가 아니라면 어떤 사람이나 세력도 그들의 생명을 앗아갈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의 죽음은 오직 그들의 육적 생명의 종료를 의미할 뿐이다. 네가 만약 부모를 보고 싶어 하고 그리워하며 또는 정 때문에 부모에게 죄스럽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옳지 않다. 그럴 필요도 없다. 사람은 죽었으니 네가 아무리 생각해 봤자 부질없는 짓이다. 그렇지 않겠느냐? 네가 만약 ‘오랜 세월 부모님은 내가 보고 싶지 않으셨을까? 이렇게 오랫동안 부모님 곁에서 효도하지 못했으니 얼마나 힘드셨을까? 줄곧 부모님 곁에서 며칠이라도 모시고 싶었는데 이렇게 빨리 돌아가실 줄 몰랐어. 너무 괴롭고 죄스러워.’라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생각할 필요 없다. 이는 너와 무관한 일이다. 왜 관계가 없겠느냐? 네가 부모에게 효도하든, 부모와 함께하든 그것은 하나님이 네게 준 의무나 임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이 너로 인해 얼마나 복을 누리든, 얼마나 고생하든 그것은 모두 하나님이 정해 놓은 것이다. 너와 추호도 관련이 없다. 네가 곁에서 함께한다고 해서 그들의 수명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며, 네가 부모와 떨어져 있어서 늘 곁을 지켜 주지 못한다고 해서 수명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그들의 수명은 하나님이 정해 놓은 것으로, 너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러니 네가 살아 있는 동안 부모의 사망 소식을 들으면 죄책감을 갖지 말고 올바르게 대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7)>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무척 감동받았는데 특히 이 말씀이 와닿았습니다. “그들이 너로 인해 얼마나 복을 누리든, 얼마나 고생하든 그것은 모두 하나님이 정해 놓은 것이다. 너와 추호도 관련이 없다.”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어떤 고통을 받고, 마지막에 어떻게 세상을 떠나든 그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정하신 일입니다. 설령 제가 어머니 곁에 있으면서 생활할 때 보살펴 드린다 해도, 어머니의 육적인 병을 조금도 가볍게 해 드릴 수 없고, 어머니의 생명은 더욱 붙잡아 둘 수 없습니다. 생로병사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예정하신 생존 법칙이고, 누구나 마주해야 하는 것으로, 어느 누구도 깨뜨릴 수 없습니다. 저는 양심의 가책과 부끄러움 속에 살 것이 아니라, 이성적인 태도로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를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합니다. 어머니는 연로하셨기에 정상적으로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어머니의 죽음은 이번 생애 이 세상에서의 사명이 끝났다는 뜻입니다. 또한 어머니께서 이십 년 가까이 병을 앓으셨는데, 같은 병을 앓는 사람들은 몇 년 안에 세상을 떠났는데도 지금까지 살면서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는 것을 들은 것부터가 하나님의 은총이자 축복입니다. 이 부분을 인식하자 마음이 훨씬 홀가분하고,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서도 그렇게 자책하거나 억압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예배 시간에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하기 위해 가정을 버린 사람이 있다. 그로 인해 이름이 알려지자 정부에서는 수시로 그의 집을 찾아가 수색하며 그의 부모를 괴롭히고, 그를 내놓으라고 협박했다. 이에 이웃사람들은 “양심도 없지. 부모를 봉양하지도 않고 말이야. 효도는 고사하고 부모에게 이렇게 많은 폐를 끼치다니 불효자야!”라고 비난했다. 이 비난에 진리에 부합하는 말이 한마디라도 있느냐? (없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말이 이방인의 눈에는 옳은 것으로 보이지 않겠느냐? 이방인들 사이에서 이런 관점은 가장 정당하고 합리적이며, 윤리에 부합하며, 이렇게 말하는 것은 처신의 기준에도 부합한다. 그 기준 안에 얼마나 많은 내용이 들어 있든, 예컨대 부모를 어떻게 공경해야 할지, 부모를 어떻게 죽을 때까지 책임져야 할지, 부모에게 얼마나 보답해야 할지 등의 기준이 진리에 부합하든 부합하지 않든, 그 기준은 이방인의 눈에 긍정적인 사물이자 긍정적 에너지, 옳은 것으로 보이며, 어떤 집단에서도 질책받지 않는다. 이방인들 사이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기준은 바로 이런 것인데, 네가 이런 것들을 해내야 남들 눈에 기준에 맞는 좋은 사람으로 보인다.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깨닫기 전까지, 너 또한 이렇게 처신하는 자가 좋은 사람이라고 확신하지 않았더냐? (그렇습니다.) 게다가 너는 이러한 것들로 자신을 평가하고 제약하며, 스스로에게 이런 사람이 되라고 요구했다. 만약 네가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네 처신의 기준 안에는 분명 이 한 가지가 들어 있을 것이다. 부모에게 어떻게 효도할 것인지, 어떻게 부모의 걱정을 덜어 줄 것인지, 어떻게 부모를 자랑스럽게 하고 체면을 살려 주고 조상을 빛낼 것인지 등은 네 마음속에서 처신의 기준이자 방향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설교를 듣고 난 후, 네 관점은 바뀌기 시작했다. 너는 모든 것을 버리고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해야 한다는 사실을, 하나님은 사람이 그렇게 처신하기를 요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진리임을 아직 확신하지 못했을 때, 너는 마땅히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고 생각했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모순적인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 말씀의 끊임없는 양육과 목양을 통해 조금씩 진리를 깨닫게 되면서 너는 비로소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이치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이 진리를 받아들이고, 사람의 전통 관념과 상상 속 처신의 기준을 철저히 저버렸다. 이러한 것들을 완전히 내려놓으면, 하나님을 따르고 본분을 이행할 때 이방인의 판단과 정죄의 말에 통제되지 않고 자유롭게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 실제란 무엇인가> 중에서) 하나님께서 폭로하신 것은 정말 제 속마음과 같았습니다. 제 생각에는 부모를 공경하고 끝까지 모시는 사람은 효자이자 좋은 사람이고, 부모에게 효를 다하지 못하며 양심이 없는 것이고, 좋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윤리와 삼강오륜, 덕행을 근거로 한 사람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것으로, 하나님 말씀에도, 진리에도 전혀 부합하지 않습니다. 저는 전통문화를 긍정적인 사물로 여기며 어머니가 저를 키워 주셨으니 당연히 어머니를 봉양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본문 때문에 부모에게 효도하지 못하고, 나중에는 또 잡혀가 수감되는 바람에 어머니까지 엮이게 되자 저는 스스로를 양심도 없고 인성도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물을 바라보는 제 관점은 아직도 이방인과 같았고, 불신파의 관점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 선교사들을 생각해 보면, 그들은 하나님의 복음을 알리기 위해 타향과 이국으로 떠났습니다. 사람이 볼 때 부모와 가족을 버린 그들이 냉정하고 매정하고 인성도 없는 것 같지만, 그들은 복음을 전하며 자신의 본분을 다했고, 그야말로 양심과 이성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친지와 친구, 아내(남편)와 자녀, 부모에게 매우 자상하고 충실하며, 여태껏 다른 이를 상대로 부당한 이득을 챙긴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네가 그리스도의 마음에 합하지 못하고 그리스도와 화목하게 지낼 수 없다면, 너의 모든 것으로 이웃을 구제하거나 부모와 가족을 세심하게 돌본다 하더라도 나는 네가 여전히 악인일 뿐만 아니라 그것도 간계가 많은 악인이라고 할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그리스도의 마음에 합하지 못하는 사람은 분명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이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자기 가족을 잘 보살펴도 진리를 실행해서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그리스도와 합할 수 없다면, 이런 사람도 역시 악인입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저는 시종일관 비통함 속에서 지냈습니다. 어떻게 본분을 잘 이행할지 생각하지도 않고, 심지어 풀타임으로 본분을 이행한 것을 후회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오래 믿었는데도 사물 보는 관점이 여전히 이방인과 같았고, 그야말로 불신파였습니다! 마음이 괴로운 나머지 울면서 하나님께 제 관점을 바로잡아 이런 소극적인 내적 상태로 살지 않겠다고 회개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어느 날 또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부모의 기대를 대하는 측면에서 사람이 지켜야 할 원칙과 내려놓아야 할 짐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게 되지 않았느냐? (네.) 여기서 사람의 짐이란 도대체 무엇이냐? 부모 말을 반드시 들어야 하고, 부모를 호강시켜 줘야 하고, 부모가 하는 일은 모두 너를 위한 것이고, 부모 말을 따라야 효도하는 것이다. 또한, 어른이 되면 부모를 위해 일해야 하는데, 부모의 은혜에 보답해야 하고, 부모에게 효도해야 하며, 그들 곁을 지켜야 하고, 그들을 상심하게 하거나 실망하게 해서도 안 되고, 그들을 저버려서는 안 되고, 힘닿는 데까지 그들의 고생을 줄여 주고, 더 나아가 아예 고생을 안 하게 해 줘야 한다. 만약 이걸 해내지 못하면 배은망덕한 것이고 불효자이며, 천벌을 받고 버림을 받아 마땅하며, 착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이 네 짐이 아니냐? (맞습니다.) 이것이 사람의 짐이라면 사람은 진리를 받아들여 이를 올바르게 마주해야 한다. 진리를 받아들여야만 이러한 짐과 잘못된 사상 관점을 내려놓을 수 있고 변화시킬 수 있다. 만약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네게 다른 선택지가 있겠느냐? (없습니다.) 그러므로 가정과 육체의 어떤 짐이든 그것을 내려놓는 일의 시작은 올바른 사상 관점과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네가 진리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네 안의 잘못된 사상 관점이 점차 무너지고, 분별되고, 간파당한 뒤에 차츰차츰 버려진다. 그러한 잘못된 사상 관점이 무너지고, 분별되고, 그런 다음 네가 그것을 내려놓고 버리는 과정에서 그러한 일들에 대한 네 태도와 행동 방식이 서서히 바뀐다. 사람의 양심 혹은 감정에서 비롯된 생각들이 점차 흐릿해지며, 더는 네 생각 깊은 곳에서 너를 괴롭히거나 결박하지 못하고, 네 생활을 좌우하지도, 네 생활에 영향을 미치지도, 네 본분 이행을 교란하지도 못한다. 예컨대, 네가 올바른 사상 관점과 이 측면의 진리를 받아들이면 부모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 그저 눈물만 조금 흘린다. 키워 준 은혜에 그간 보답하지 못했고, 부모를 너무 고생시켰고, 그들에게 조금도 갚은 것이 없고, 그들을 호강시켜 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자책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정상적인 인성의 감정적 필요에 따른 정상적인 표출이 있을 뿐이다. 잠깐 울고 나서 그들을 조금 그리워한다. 그리고 이것들은 곧 자연스러워지고 정상이 된다. 너는 금방 정상적인 생활과 본분 이행에 몰입하고, 그 일로 인해 괴로워하지 않는다. 네가 이런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부모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 끝도 없이 울게 된다. 너는 부모가 가엾다고, 평생 힘들게 살면서 너 같은 불효자를 키웠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들이 아플 때 병상 곁에서 시중들어 주지 못했고, 그들이 사망했을 때 장례식장에서 상복을 입고 곡해 주지 못했다고, 그들을 저버렸고, 그들에게 실망감을 안겨 줬고, 그들을 호강시켜 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너는 오래도록 이런 죄책감을 품고 살아가게 된다.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고 마음이 찌릿찌릿 아프게 된다. 관련된 환경이나 사람과 일, 사물을 만날 때마다 감정이 표출된다. 이런 죄책감은 너의 여생 내내 계속될 수도 있다. 이유가 무엇이냐? 네가 진리와 올바른 사상 관점을 받아들여 네 생명으로 삼은 적이 없고, 낡은 사상 관점이 줄곧 네 안에서 주인 노릇을 하며 네 생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러면 네 여생은 부모의 사망으로 인해 쭉 고통스러울 것이다. 계속되는 고통은 네게 약간의 육적인 괴로움만을 초래하는 것이 아니라 네 생활, 네가 본분을 이행하는 태도, 네가 교회 사역을 대하는 태도,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네 심금을 건드리는 사람 혹은 일을 대하는 태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어쩌면 너는 더 많은 일에 대해 낙심하고, 의기소침해지고, 수동적으로 되고, 살아갈 자신이 없어지고, 모든 일에 대한 열정과 동력을 잃는 등의 문제를 겪을 수도 있다. 이러다 보면 간단한 일상생활만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네가 본분을 이행하는 태도와 네가 걷는 인생길에도 영향을 받게 되는데 이러면 아주 위험하다. 이러한 위험으로 인해 초래될 수 있는 결과는, 네가 피조물로서의 본분 이행에 합격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네가 본분 이행을 도중에 중단하거나 자신이 이행하는 본분에 반항하는 정서나 태도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일은 분명히 점점 더 악화될 것이고 그에 따라 네 기분, 정서, 심리 상태가 나쁜 방향으로 변해 갈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6)> 중에서) 생각해 보면 저는 지금껏 하나님을 믿어 오면서 줄곧 “모든 선행 중 효가 으뜸이다.”, “부모가 계실 때는 멀리 나가 놀지 마라.”와 같은 전통 문화를 긍정적 사물로 여기고 사람됨의 준칙으로 여겼습니다. 본분을 이행하는 일과 어머니를 보살피는 일이 충돌을 일으키면, 비록 제가 집을 떠나 본분을 이행하고 있기는 하지만 속으로는 늘 어머니를 염려하며 잘 보살펴 드리지 못한 것에 부채 의식을 느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후에는, 어머니를 끝까지 봉양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자책과 고통 속에 살았습니다. 어머니가 저를 키워 주셨는데, 저는 어머니를 보살펴 드리지도 못하고,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얼굴도 뵙지 못했다고 생각하니 스스로가 양심도 인성도 없게 느껴지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고 비난받을 것만 같았습니다. 제가 고통 속에 산 것은 “모든 선행 중 효가 으뜸이다.”, “부모가 죽을 때까지 책임져야 한다.”와 같은 말들을 진리로 여기며 지켰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렇게 하지 못하면 죄책감 속에 살면서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고, 소극적으로 본분을 대했습니다. 저는 이런 전통문화에 미혹된 나머지 어머니가 돌아가신 소식을 들은 뒤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지 못하고 침울하게 살면서 후회하고, 원망하고, 소극성을 띄고 사역을 게을리했습니다. 그러다 어느새 하나님 반대편에 서서 그분을 거역하고 대적했습니다.
그 후 저는 또 하나님 말씀을 보고 부모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본분을 이행하고자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감정과 연관되어 있다. 만약 네가 항상 감정을 다루면서 부모와 가족들을 생각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생각하면서 진리에만 집중하자고 스스로에게 말하지만 여전히 참지 못하고 부모를 생각한다면, 이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 조상들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것, 사람의 관념에 부합하는 말, 지식, 이론을 해부해야 한다. 이 밖에, 부모를 대할 때 자녀의 의무를 다해 그들을 보살필 것인지 등 모든 것은 네 개인적인 여건과 하나님의 배치에 근거해야 한다. 확실하게 얘기한 게 아니냐? 어떤 사람들은 부모를 떠날 때 자기가 부모에게 너무 죄스럽다고, 부모를 위해 아무것도 해 주지 못했다고 생각하지만, 부모와 함께 살 때 전혀 효도하지 않고 어떤 의무도 다하지 않는다. 이런 자가 정말 효도하는 사람이겠느냐? 이는 입만 놀리는 것이다. 네가 어떻게 행동하든, 혹은 어떻게 생각하고 계획하든 그런 것들은 다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어떤 피조물이든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지, 진실로 믿는지 하는 점이다. 어떤 부모는 그런 복과 운명이 있어서 자손이 번창하고 천륜의 즐거움을 누리는데, 이는 하나님의 주재이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준 복이다. 반면 어떤 부모는 그런 운명이 없는데, 이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안배해 주지 않은 것이다. 그들에게는 자녀가 옆에서 지켜 주고 온 가족이 화목하게 지내는 그런 복이 없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배치로, 사람이 강요할 수 없는 부분이다. 어찌 됐든 결론적으로 부모에게 효도하는 일에 있어서 사람은 최소한 순종하는 마음가짐을 지녀야 한다. 환경이 허락하고 여건이 된다면 효도해도 된다. 환경이 허락하지 않고 여건도 되지 않는다면 무리해서는 안 된다. 이것을 뭐라고 하겠느냐? (순종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순종이라고 한다. 이 순종은 어떻게 생겨난 것이냐? 순종의 근거는 무엇이냐? 이 모든 것에 하나님의 안배와 주재가 있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사람이 선택하려고 해도 그럴 수 없다. 사람은 선택할 권리가 없으며 마땅히 순종해야 한다. 사람은 마땅히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또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배치라는 것을 느낄 때, 네 마음은 한결 편안해지지 않겠느냐? (그럴 것입니다.) 그럼 양심의 가책을 느끼겠느냐? 언제나 가책을 받는 일은 없을 것이며,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주를 이루지도 않을 것이다. 가끔은 그런 생각이 날 수도 있다. 인성에는 정상적인 생각이나 본능이 있는데, 이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부분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 실제란 무엇인가> 중에서) 하나님 말씀은 부모를 대하는 실행 원칙을 분명하게 제시하였는데, 주로 자신의 조건과 능력에 근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건이 허락하고 능력이 닿는 상황에서는 자신의 책임을 다해 부모에게 효도할 수 있지만, 상황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해야 합니다. 제가 최근에 어머니를 보살펴 드릴 수 없었던 것은 돌보기 싫어서, 책임을 다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경찰이 계속 저를 잡으러 다녔기 때문입니다. 제 안전조차 보장할 수 없는데 어떻게 어머니를 돌볼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저는 악한 공산당은 미워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사실을 왜곡하고 시비를 분별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 얼마나 기가 막힐 노릇인가요! 저는 항상 어머니를 보살펴 드리지 못했다고, 만년에 호강시켜 드리지 못했다고, 어머니를 끝까지 모시지 못했다고 생각하며 부채 의식을 느꼈습니다. 어머니가 제 보살핌만 받았더라면 행복하게 사셨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그것은 그릇된 관점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어머니는 오랜 세월을 반신불수로 지내시면서 온몸이 아프셨는데, 예전에 집에서 어머니를 보살필 때는 의사에게 연락도 하고 약도 타다 드리는 등 어떻게든 방법을 짜 내어 어머니를 치료하고 돌봐 드렸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병은 제 보살핌으로도 전혀 가벼워지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얼마나 고통받아야 하는지는 모두 하나님께서 예정하셨습니다. 지금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은 어머니 명이 다한 것이고, 어머니가 더 이상 육의 병으로 인해 고통받지 않게 된 것은 좋은 일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일에서 진리를 구하며 하나님의 예정하심에 순종하지 않고 소극적으로 본분에 임하며 사역을 게을리했습니다. 그 본질은 하나님께 대항하는 것입니다. 너무나 인성과 이성이 없었습니다!
저는 또다시 하나님 말씀을 보고 부모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더욱 명확히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겉으로 보면 네 육의 생명을 부모가 낳았고 부모가 준 것 같지만,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근원적으로 보면 네 육의 생명은 부모가 준 것이 아니다. 사람은 생명을 창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아무도 사람의 숨결을 만들 수 없다는 말이다. 각 사람의 육이 사람이 될 수 있는 까닭은 숨결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숨결에 생명이 깃들어 있고, 그 숨결이 바로 생명이 있는 사람의 상징인 것이다. 한 사람에게 숨결이 생기고 생명이 생긴 것의 뿌리와 근원은 부모가 아니다. 단지 부모의 출산이라는 방식을 빌려 네가 생겼을 뿐이다. 근원적으로는 하나님이 베풀어 준 것이다. 그러므로 네 생명의 주인은 부모가 아니라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고 인간의 생명을 창조하여 생명의 숨결을 인간에게 주었다. 이것이 사람 생명의 근원이다. 그러므로 “부모가 네 생명의 주인이 아니다.”라는 말은 이해하기 쉽지 않으냐? 네 숨결은 부모가 준 것이 아니니 부모가 그 숨결을 이어지게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하나님은 네 하루하루를 돌보고 주재한다. 네가 매일 어떻게 생활하는지, 하루하루가 순조롭고 즐거운지, 매일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환경에서 생활하는지는 부모가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네 부모를 통해 너를 돌보게 하였을 뿐이고, 그들은 단지 하나님이 너를 돌보라고 파견한 대상에 불과하다. 네가 태어난 것은 네 생명을 부모가 주어서가 아니다. 그럼 네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은 네 생명을 부모가 주어서겠느냐? 그 역시 아니다. 네 생명의 근원은 여전히 하나님이지 부모가 아니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7)> 중에서) 하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생명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비록 어머니가 저를 낳으셨지만 제 생명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하나님의 보호와 공급이 없이는 어머니도 저를 키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어머니를 통해 저를 키우고, 어머니를 통해 저를 당신 앞으로 데려오셨고, 또한 어머니를 통해 제가 생활하면서 겪는 근심거리를 없애 주셨습니다. 어머니가 저를 위해 얼마나 대가를 치르셨든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내려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본말을 뒤바꾸어 어머니가 저를 위해 너무나 많이 헌신하셨다고 생각하며 늘 보답하려고 하면서, 정작 하나님의 주재와 예정은 소홀히 여겼습니다. 사실 어머니가 저를 위해 얼마나 대가를 치르셨든 그것은 어머니로서의 책임을 다한 것이고, 이 역시 하나님의 안배와 주재입니다. 그러니 제가 마땅히 감사드려야 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저는 또한 제가 세상에 온 사명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어머니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는 것입니다. 이 점을 인식하고 난 뒤 저는 더 이상 죄책감 속에서 자책하며 부채 의식을 느끼지 않게 되었고, 마음을 평온히 하고 본분을 이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길을 밝히는 등불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제때 저를 깨우치고 인도하지 않으셨다면 저는 사탄이 주입한 “모든 선행 중에 효가 으뜸이다.”, “부모가 계실 때는 멀리 나가 놀지 마라.”와 같은 주장을 여전히 분별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어머니에 대한 부채 의식 속에 살면서 사탄에게 고통받았을 것입니다. 이제 저는 전통문화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반동적이고 황당한 논리라는 점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이런 사상 관점은 사람을 너무나도 미혹합니다! 하나님 말씀이 저를 사탄의 황당한 논리에서 구해 주신 덕분에 저는 어머니의 죽음을 바르게 대할 수 있게 되었고, 마음도 홀가분하고 자유로워졌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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