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환경 속에서 더 이상 물러서지 않다

2026.5.29

중국 허난 한펑

2024년 9월 10일, 리더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난청 교회의 리더인 자오후이가 잡힌 후 유다가 되어 수많은 형제자매를 팔아먹었고, 교회에서 이미 30여 명이 잡혀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리더는 제가 예전에 지역 리더를 한 적이 있어 그곳의 보관 가정들을 잘 안다는 점을 고려해 저에게 제물을 옮기는 일을 맡기고 싶어 했습니다. 긴박한 상황에서 저는 하나님의 제물을 잘 지키는 것이 제가 마땅히 다해야 할 책임이라는 생각에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기꺼이 잘 협력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난청 교회에 도착해 보니, 교회의 집사와 중요 사역자들이 모두 경찰에게 잡혀간 상태였습니다. 게다가 매일 여러 형제자매가 잡혀갔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어떤 형제자매들은 경찰이 집까지 찾아와 소란을 피웠습니다. 잡혀간 형제자매 중 몇 명은 제물 보관 가정을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지금 상황이 이렇게 험난한데, 제물을 옮기러 갔다가 미행이나 감시를 당하면 어떡하지? 자오후이는 내가 예전에 리더 본분을 이행했던 걸 아는데, 나도 팔아먹지는 않았을까? 게다가 난 2019년에도 유다에게 배신당한 적이 있어. 그때 경찰이 나를 추적했지만, 하나님의 기묘하신 보호로 위기를 넘길 수 있었지. 만약 이번에 제물을 옮기다가 잡히면 경찰이 절대 날 가만두지 않을 거야. 살아남아도 반죽음이 될 텐데!’ 영상에서 형제자매들이 경찰에게 혹독한 고문을 당하던 장면이 떠오르자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만약 잡히면 버텨 낼 수 있을까?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하나님을 배반해 유다가 된다면, 내 믿음은 실패로 끝나는 게 아닐까? 만약 잡혀서 몇 년 동안 징역형을 받고 감옥에 갇혀 하나님 말씀도 못 보고 본분도 못 하면 어떻게 선행을 예비하고 구원받기를 추구하겠어?’ 생각할수록 겁이 났습니다. 저는 제 내적 상태가 잘못되었음을 의식했습니다. ‘이전에도 위험한 환경을 여러 번 겪으며 그동안 하나님의 기묘하신 보호를 봤으면서 어째서 지금도 믿음이 전혀 없을까?’ 저는 속으로 제게 믿음을 더해 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 후,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온전케 하는 사역을 할 때 사람은 그것을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데, 그런 상황에서는 너의 믿음이 필요하다.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일에서 사람의 믿음이 필요하고, 네가 관념을 내려놓지 못할 때 너의 믿음이 필요하며, 네가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알지 못할 때는 너의 믿음이 필요하다. 너는 이러한 입장을 지키고 굳게 설 필요가 있다. 욥이 이 경지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나타나 말씀했다. 다시 말해, 네가 믿음 가운데 있어야만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네게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이 너를 온전케 하지만, 네게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도 너를 온전케 할 수 없다. 하나님은 네가 바라는 것을 베풀어 준다. 너에게 믿음이 없으면 온전케 될 수 없고, 하나님의 행사를 볼 수 없으며, 하나님의 전능은 더더욱 볼 수 없다. 네가 실제 체험 중에서 하나님의 행사를 볼 믿음이 있다면 하나님은 너에게 나타나 네 안에서 너를 깨우쳐 주고 인도할 것이다. 그러나 네게 그런 믿음이 없다면 하나님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네가 하나님께 희망을 잃으면 어떻게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할 수 있겠느냐? 그러므로 네게 믿음이 있고,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으며, 하나님이 어떻게 행하든 그에 대한 참된 믿음을 지녀야 체험 속에서 그의 깨우침과 빛 비춤을 얻을 수 있고, 그의 행사를 볼 수 있다. 이런 것들은 모두 믿음으로 이루어진다. 연단이 있어야 믿음이 생기고, 연단이 없으면 믿음도 생기지 않는다. 믿음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이냐? 바로 사람이 볼 수도, 느낄 수도 없을 때, 하나님의 사역이 사람의 관념과 맞지 않아 이를 수 없을 때, 갖춰야 하는 참된 믿음과 진실한 마음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말하는 믿음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온전케 될 사람은 모두 연단을 겪어야 한다> 중에서), 『사탄이 아무리 ‘재주가 신통하다’ 할지라도, 아무리 오만하고 야심이 크다 할지라도, 아무리 강력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또 아무리 사람을 미혹하고 패괴시키는 수단이 다양하고 사람을 협박하는 수법과 간계가 뛰어나다 할지라도, 아무리 그것의 존재 형식이 변화무쌍할지라도 상관없다. 사탄은 지금껏 생명 있는 그 어떤 것도 만들어 내지 못했고, 만물의 생존 법칙과 규율을 정하지도 못했으며, 생명이 있는 것과 생명이 없는 것을 주관하거나 주재하지 못했다. 우주 창공에는 사탄에 의해 생기고 사탄으로 인해 존재하는 사람이나 사물은 아무것도 없고, 사탄이 주재하고 주관하는 사람이나 사물 또한 아무것도 없다. 반대로, 사탄은 하나님의 권세 아래에서 존재해야 할 뿐 아니라, 나아가 하나님의 모든 지시와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 사탄은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땅 위의 물 한 방울, 모래 한 알도 함부로 만질 수 없다.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땅 위의 개미조차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거늘, 하물며 하나님이 만든 인류는 어떠하겠느냐? 하나님의 눈에 사탄은 산속의 백합만도 못하고, 하늘을 나는 새만도 못하며, 바닷속의 물고기만도 못하고, 땅 위의 구더기만도 못하다. 만물 가운데 사탄의 역할은 만물과 인류를 위해 봉사하고, 하나님의 사역과 경륜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만사 만물을 주재하시며,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사탄이 아무리 기고만장하고 사악하게 굴어도 제 목숨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욥이 시련을 겪을 때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욥의 생명을 해치지 못하게 하시자 하나님이 그어 놓으신 선을 사탄이 감히 넘지 못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너무 작아, 험난한 상황을 보자 유다에게 지목당하거나 경찰에게 감시당하고 잡힐까 봐 두렵고 겁에 질려 제물을 옮기러 갈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더 이상 겁쟁이처럼 숨어 있을 수 없었습니다. 만사 만물이 다 하나님의 손에 있는데, 제가 잡히고 안 잡히고도 하나님의 주재 안에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만약 하나님께서 제가 잡히는 것을 허락하신다면, 그것은 저에 대한 하나의 검증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죽는 한이 있어도 유다가 되지 않고, 하나님 집의 이익을 팔아먹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드렸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당신에 대한 제 믿음이 너무나 작습니다. 더 이상 두려움 속에 살고 싶지 않사오니, 제게 믿음과 힘을 더해 주시옵소서. 저 자신을 당신의 손에 맡기고 당신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여 하루빨리 제물을 옮기겠습니다.”

그 후, 저는 먼저 한 보관 가정에 제물을 옮기러 갔습니다. 그 보관 가정은 예전에 한 번밖에 가본 적이 없어서 입구와 층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밖에서 보관 가정 자매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근처에 사는 한 자매가 몇 달 전에 잡혀간 적이 있었고, 얼마 전에는 경찰이 형제자매들을 몰래 감시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면 경찰의 표적이 될까 봐 두려워 오래 머물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제가 막 떠나려던 참에 마침 보관 가정 자매가 밖에서 장을 보고 돌아왔고, 그날 낮에 우리는 무사히 제물을 옮길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저는 다른 보관 가정의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신청(辛程) 자매를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자매의 집에 들어서자마자 자매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잡혀가서 5일 동안 구류됐다가 어젯밤에야 풀려났어요. 자오후이가 자기가 아는 형제자매들을 모조리 팔아먹었어요. 빨리 하나님 말씀 서적들을 옮겨야 해요!”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신청이 갓 풀려났으니, 경찰이 집 근처에 잠복하면서 감시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나도 미행당하는 거 아니야?’ 저는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한 나머지 몇 분만 이야기를 나누고 황급히 그곳을 떠났습니다. 돌아오는 길 내내 저는 가슴을 졸이며 끊임없이 생각했습니다. ‘이미 미행당하고 있는 거 아닐까? 내일 밤에 하나님 말씀 서적을 옮길 때는 가지 말고 다른 형제자매들한테 해달라고 하자.’ 다음 날, 마음이 계속 편치 않았습니다. 그 서적 보관 가정들은 자오후이가 다 갔던 집이라 최대한 빨리 옮겨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협력할 적임자가 없으니 그 사역은 제가 맡아야만 했습니다. 수많은 형제자매가 큰 붉은 용에게 쫓기고 수배되어도 여전히 하나님을 의지하며 교회 사역을 하고 있고, 잡히더라도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서서 증거하는데, 저는 아직 잡힌 것도 아니고 단지 환경이 험난하다는 이유만으로 겁을 먹고 물러섰습니다. 그들에 비하면 저는 한참이나 부족해서 스스로가 너무 부끄럽고 창피했습니다. 그때 그저께 예배 때 읽었던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어떤 교회의 환경은 열악해서 항상 체포되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제물을 보관하는 집이 쉽게 팔아넘겨져 큰 붉은 용에게 몰수되거나 수색당할 수 있고 제물이 언제 어디서든 악마에게 약탈당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곳이 제물을 보관하기에 적합하겠느냐? (부적합합니다.) 그러면 예전에 이미 그렇게 보관했다면 어떡하느냐? 당장 옮겨라. … 이런 상황에 처하면 리더 일꾼은 머릿속에 생각이 있어야 한다. ‘제물을 보관하는 한 장소가 적합하지 않아. 너무 위험한 환경이야. 주위에 체포되거나 미행당하거나 감시당하는 형제자매가 꽤 많아서 어떻게 해서든 제물을 옮겨야 해. 상대적으로 안전한 장소로 옮기는 게 빼앗길 때까지 넋 놓고 있는 것보단 낫지.’ 환경이 나빠지자마자 제물에 위험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들면 큰 붉은 용이 침해하거나 착복 하지 않도록 제물을 제때 옮겨야 한다. 그래야 제물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고 그 어떤 잠재적 위험이나 실수도 생기지 않는다. 이것이 리더 일꾼이 해야 할 사역이다. 일단 조금이라도 변고가 생기고 체포되는 사람이 생기며, 상황이 나빠지면 리더 일꾼은 제물이 안전한지, 제물이 악인의 손에 넘어가진 않을지, 악인이 착복하지는 않을지, 악마에게 빼앗기진 않을지, 제물에 손실이 생기진 않을지를 먼저 생각하고 제때 조치를 취해 제물을 보호해야 한다. 이것이 리더 일꾼의 직책이다. 어떤 리더 일꾼은 말한다. “이 일들은 우리가 위험을 무릅쓰고 해야 할 일입니다. 안 하면 안 될까요? 인본주의적으로 제물이 아닌 사람을 우선순위에 둬야 하지 않겠어요?” 이것이 어떤 질문이냐? 인성이 있느냐? (없습니다.) 제물을 잘 보관하고 관리하며 지키는 것은 좋은 관리자가 다해야 할 책임이다. 심각하게 말하면 네가 목숨을 바쳐야 할지라도 그것은 가치 있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이것이 네 책임이다.(<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12)>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현재 보관 가정이 유다에게 배신당한 상황에서 제물과 중공에게 언제든 하나님 말씀 서적을 빼앗길 수 있기 때문에 하루빨리 그것들을 옮겨야 했습니다. 이는 제가 마땅히 다해야 할 책임이었습니다. 평소에 저는 형제자매들에게 중요한 순간에 교회 이익을 지켜야 한다고 교제했으면서, 정작 환경이 닥치자 자신을 보전하려고 그 사역을 다른 형제자매들에게 떠넘긴 채 몸을 숨기고 탈영병이 되려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에 대한 배반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제물과 말씀 서적을 잘 지키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이 마땅히 다해야 할 책임이자 의무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의지해 제 책임을 다해야 하고, 제때 하나님의 제물을 옮기고 잘 지켜내야 합니다. 잡히든 안 잡히든, 어떤 환경을 겪게 되든 저는 모두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할 것입니다.

그 후 저는 반성했습니다. ‘왜 위험한 환경이 닥치면 늘 내 육적인 이익만 생각하는 걸까? 근원이 무엇일까?’ 묵상하던 중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적그리스도는 이기적이고 비열한 것이 무엇보다 심각하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믿음이 없고, 충성심은 더더욱 없다. 일이 닥쳤을 때 자신만 보호하고, 자신만 지킨다. 그는 자신의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교회의 사역이 얼마나 큰 손실을 보든 상관없다고, 자기가 살아 있고 붙잡히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은 특별히 이기적이다. 그들은 형제자매, 교회 사역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안위만 생각한다. 이런 자가 바로 적그리스도다. 그럼 하나님에게 충성심이 있고 진실한 믿음이 있는 사람은 이런 일이 닥쳤을 때 어떻게 처리하겠느냐? 적그리스도의 행동과 어떤 다른 점이 있겠느냐? (하나님에게 충성심이 있는 사람은 이런 일이 임했을 때 온갖 방법을 생각해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킵니다. 하나님의 제물이 손실되지 않게 보호하고, 리더 일꾼과 형제자매들을 잘 안배해 손실을 최소화합니다. 반면, 적그리스도는 먼저 자기 자신을 보호합니다. 교회 사역과 하나님 선민의 안위는 신경 쓰지 않고, 체포에 직면할 때 교회 사역에 손실을 안겨 줍니다.) 적그리스도는 교회 사역과 하나님의 제물을 포기한 채 신경 쓰지 않으며, 사람을 안배해 뒤처리를 하지도 않는다. 이는 큰 붉은 용이 마음대로 하나님의 제물을 빼앗아 가고 하나님의 선민을 잡아가도록 내버려두는 것과 같다. 이는 변칙적으로 하나님의 제물과 하나님의 선민을 팔아넘기는 것 아니겠느냐? 하나님에게 충성심이 있는 사람은 환경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아도 위험을 무릅쓰고 제대로 뒤처리를 해서 하나님 집의 손실을 최소화한 후에 철수하는데, 그는 자신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지 않는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큰 붉은 용의 사악한 국가에서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하는 데에 위험이 전혀 없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느냐? 어떤 측면의 본분을 이행하든 다 어느 정도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본분 이행은 하나님의 부탁이니 하나님을 따름에 있어 반드시 위험을 무릅쓰고 본분을 이행해야 한다. 지혜를 발휘하는 것은 당연하고, 얼마간 안전 조치를 취할 필요도 있다. 하지만 개인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두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하나님 집의 사역과 복음 확장을 일 순위에 놓아야 한다. 하나님이 네게 맡긴 부탁을 완수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데, 이것이 일 순위이다. 하지만 적그리스도는 자신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둔다. 그는 다른 것은 자신과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누구에게 사고가 나든 개의치 않고, 자신만 사고가 나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러면 그는 편안해한다. 그에게는 조금의 충성심도 없는데, 이는 바로 적그리스도의 본성 본질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에게 전혀 충성심이 없다. 그에게 사역을 안배하면 흔쾌히 받아들이며 좋은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위험이 닥치면 누구보다 빨리 달아난다. 그는 가장 먼저 달아나고 가장 먼저 도망친다. 여기에서, 그가 몹시 이기적이고 비열하며, 책임감도 충성심도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일이 닥치면 도망치고 숨을 줄만 알고, 스스로를 보전하려고만 하며, 자기 책임과 본분은 생각하는 법이 없다. 적그리스도는 자신의 신변 안전을 위해 어디에서나 이기적이고 비열한 본성을 드러낸다. 그는 하나님 집의 사역과 자신의 본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 집의 이익은 더더욱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안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9조(2)> 중에서), 『하나님에게 충성심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일을 처리하는 성질은 다르다. 똑같이 위험한 일이 임했을 때, 충성심이 있는 사람은 위험을 무릅쓰고 움직이며, 지혜를 발휘하고 방법을 써서 사역지침을 시행한다. 반면, 적그리스도는 위험하든 위험하지 않든 세부 사역을 하지 않으며, 그에게서 사역지침은 시행되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차이점이다. … 충성심이 없고, 이기적이고 비열하며, 언제나 자신의 안위를 생각하는 것이다. 하나님 집의 사역지침이 시행되었는지, 하나님 집 사역의 진전 상황이 어떠한지 관여하는 법이 없고 마음에 담아 두지도 않는다. 그들은 충성을 다하지 않았고, 충성을 다하지도 않는다. 그들에게 이러한 일은 대충 형식만 취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 사역을 했다고 생각한다. 만약 작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면 억지로 어느 정도 하지만, 위험이 크고 체포될 가능성이 있으면 하지 않는다. 아무리 중요한 사역이라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본질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9조(2)>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보았습니다. 하나님께 충성심이 있는 사람은 위험이 닥쳤을 때 개인의 이익과 득실을 생각하지 않고, 제물이 위험에 처한 것을 보면 목숨을 내걸고 지키며, 죽을 각오로 하나님께 충성하고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킵니다. 반면, 적그리스도의 본성은 유독 이기적이고 간사하여 위험한 환경이 닥치면 오직 자신의 안위만 생각할 뿐 본분에 대한 책임감이 조금도 없습니다. 제 모습이 적그리스도와 같지 않은지 생각했습니다. 저는 자오후이가 유다가 되어 수많은 리더 일꾼과 형제자매를 팔아먹었고, 제물을 보관하는 가정이 위험해져서 당장 제물을 옮겨야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결정적인 순간에 가장 먼저 제 안위와 향후 대비책을 생각하며 겁쟁이처럼 숨으려 했으니, 너무나 이기적이고 비열했습니다! 만약 저의 이기심과 무책임 때문에 제물이 큰 붉은 용의 손에 넘어가게 된다면, 제가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려고 배은망덕하게 교회를 팔아먹은 유다와 다를 게 무엇이겠습니까? <뒤늦은 증거>에서 중(鍾) 형제가 하나님 말씀 서적을 옮기기 위해 목숨을 내걸고서라도 자신의 본분을 지켰던 일, 그리고 체험 간증 영상 <위험한 환경 속에서의 선택>에서 주인공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후속 사역을 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그 자매 역시 연약해지고 두려웠지만 진리를 구하여 자신의 패괴 성품을 해결하고 목숨 걸고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켰습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을 위해 아름답고 힘 있게 증거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저는 너무 부끄러워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지금 교회에 수많은 형제자매가 잡혀가서 하루빨리 후속 사역을 해야 하는데, 저는 잡힐까 두려워 늘 이 환경에서 도피하려고만 했습니다. 저는 너무 이기적이고 인성이 없습니다! 하나님, 회개하오며, 당신을 의지하여 후속 사역을 잘 해내겠습니다.”

저는 또한 일이 닥쳤을 때 제가 왜 늘 겁을 먹고 물러서는지 묵상해 보았습니다. 주된 원인은 바로 죽음을 두려워하고 죽음의 의미를 꿰뚫어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예수의 제자들은 모두 어떻게 죽었더냐? 어떤 자는 돌에 맞아 죽고, 어떤 자는 말에 끌리다가 죽었으며, 어떤 자는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죽었고, 어떤 자는 거열형에 처해지는 등 온갖 방법으로 죽임을 당했다. 그들이 죽은 이유는 무엇이더냐? 그들이 나쁜 짓을 저질러 법적 제재를 받은 것이냐? 그렇지 않다. 그들은 주의 복음을 전파했지만, 세상 사람들은 받아들이기는커녕 그들을 정죄하고 욕하고 때렸으며, 나아가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그들은 그렇게 순교했다. 순교한 사람들의 마지막 결말이 무엇인지, 하나님은 그들의 행위를 어떻게 규정했는지 등은 차치하고, 하나만 물어보겠다. 그러니까 그들이 마지막에 이르러 죽음을 맞이한 방식이 사람의 관념에 부합하느냐? (사람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관념으로 본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사역을 전파하기 위해 그렇게 많은 대가를 치렀고, 또 마지막에는 사탄에게 잔혹한 죽임을 당했으니 관념에 맞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에게 그런 일이 닥쳤고, 그것은 하나님이 허락한 것이다. 여기에는 구해야 할 어떤 진리가 있느냐? 하나님은 그들이 그렇게 죽도록 허락했다. 이는 하나님의 저주와 정죄겠느냐, 아니면 안배와 축복이겠느냐? 전부 아니다. 그럼 무엇이겠느냐? 그들의 죽음을 돌이켜 생각하면 사람들은 가슴 아파 하지만, 사실이 분명 그러하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그렇게 죽어 간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겠느냐? 이를 언급하면 너희는 그것을 자신에게 대입해 생각하게 되는데, 그러면 마음이 불편하고 은근히 아프지 않겠느냐? ‘그들은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했으니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 그런데 왜 그런 결말, 그런 말로를 맞이한 걸까?’라고 생각할 것이다. 사실 그들의 육은 그렇게 죽고 사라져 그런 방식으로 이 세상을 떠났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결말이 그런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들이 죽을 때, 세상을 떠날 때 어떤 과정과 방식을 겪었든 그것은 그들의 생명, 그 피조물들의 마지막 결말에 대한 하나님의 규정이 아니다. 너는 이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반대로, 그들은 바로 그런 방식으로 이 세상을 정죄하고 하나님의 행사를 증거한 것이다. 그 피조물들은 가장 귀한 생명, 그 생명의 마지막 순간을 이용해 하나님의 행사와 크나큰 능력을 증거함으로써 사탄과 이 세상에 하나님의 모든 행사는 옳은 것임을, 예수는 하나님이자 주이며, 하나님이 입은 육신임을 선고했다. 생명이 끝나는 순간에도 그들은 예수의 이름을 부정하지 않았다. 이는 이 세상에 대한 하나의 심판 아니겠느냐? 그들은 목숨으로 세상에 선고하고 인류에게 증명했다. 예수는 주이자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고, 그가 행한 구속 사역은 전 인류가 계속 살아갈 수 있게 했다는 것을, 이 사실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예수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순교한 사람들은 어느 수준까지 본분을 이행했느냐? 궁극의 경지에 오르지 않았느냐? 이 궁극의 경지를 무엇으로 보여 주었느냐? (목숨을 바침으로써 보여 주었습니다.) 그렇다. 목숨을 대가로 바쳤다. 사람의 삶에서 가정, 재물, 물질 등은 모두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며, 자신과 관계가 있는 것은 오직 생명뿐이다. 생명은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이 가장 귀하게 여길 만한 것, 가장 귀한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 가장 귀한 것을 바쳐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실증하고 증거했으며, 죽음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이름과 사역을 부정하지 않고, 생명의 마지막 순간을 이용해 이 사실의 존재를 증거했다. 이는 최고의 증거 아니겠느냐? 이는 가장 훌륭한 본분 이행으로, 책임을 다한 것이다.』 『목숨을 빼앗기는 순간에 마음이 편안하고 달갑다면, 원망 없이 순종한다면, 네 책임과 의무, 본분을 마지막까지 다했다고 생각하여 마음이 매우 기쁘고 평안하다면, 그렇게 갈 수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보기에 떠나간 것이 아니라 다른 공간에서 다른 형태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방식을 바꿔 살아가는 것일 뿐 정말로 죽은 것이 아니다. 사람은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하다니 정말 가엾구나!’라고 생각하겠지만, 하나님 눈에 그것은 죽음도 아니고, 고난을 겪으러 간 것도 아니다. 그것은 복을 누리러 간 것이고 하나님에게 더 가까워진 것이다. 네가 피조물로서 본분 이행이 하나님 눈에 기준에 맞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너는 네 본분을 마쳤고, 하나님은 네가 피조물의 대열에서 더는 그런 본분을 이행하기를 원치 않는다. 네 ‘떠남’을 하나님은 ‘떠남’이 아닌 ‘거둬 감’이나 ‘이끌고 감’, 또는 ‘데려감’이라고 한다. 이는 좋은 일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복음 전도는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이 마땅히 이행해야 할 본분이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부탁을 완성하기 위해 생명을 바친다면, 그러한 죽음은 의미 있고 가치 있으며 하나님께 기억되는 것입니다. 비록 육은 죽지만 영혼은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역대 성도들이 주님의 복음을 확장하기 위해 핍박을 받은 것처럼 말입니다. 사지가 찢기는 형벌을 당하기도 하고, 말에 끌려 죽기도 하고, 돌에 맞아 죽거나 십자가에 못 박히는 등, 그들은 자신들의 가장 귀한 생명으로 하나님의 행사와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증거했습니다. 비록 육은 죽었지만 그들의 영혼은 하나님 편으로 돌아갔고, 하나님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고문으로 죽을 것을 겁내고, 자신을 보전하기 위해 본분을 거부했으니, 이것은 하나님을 배반한 것입니다. 이렇게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며 살아가는 것은 가치도 없고 의미도 없으며, 그저 산송장에 불과합니다. 만약 제때 하나님의 제물을 옮기지 않아 경찰에게 빼앗기게 된다면, 그것은 저의 영원한 과오이자 오점이 될 것이고, 하나님의 징벌과 저주를 받아 마땅합니다. 이것을 깨달은 저는 모든 걱정과 우려를 내려놓고 생사를 하나님의 손에 맡기기로 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제가 잡히는 것을 허락하신다면, 저는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고 하나님을 의지해 굳게 서서 증거할 것입니다. 그 후 서적을 옮길 때 또다시 걱정과 우려가 생기기도 했지만, 속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앙망하며 더 이상 겁먹고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외출할 때는 변장을 하고 최대한 CCTV를 피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끄심으로 이 교회의 보관 가정 세 곳의 제물과 하나님 말씀 서적은 모두 안전하게 옮겨졌습니다.

이번 후속 사역을 통해 저는 제 이기적이고 비열한 사탄 성품에 대해 조금이나마 인식하고, 죽음의 의미에 대해서도 조금 깨달아 육을 저버리고 본분을 지키려는 의지가 생겼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큰 붉은 용의 봉사를 이용하여 사람을 드러내고 온전케 하시는 것이 얼마나 지혜로운지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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