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르게 본분을 대하는 법을 배우다

2025.5.7

중국 류창(劉强)

저는 평범한 농가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늘 어머니가 밥을 하고 청소하는 모습만 보았지, 아버지가 요리나 집안일을 하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외할아버지도 마찬가지셨습니다. 가끔 외할머니가 하루 종일 집에 안 계시면 외할아버지는 차라리 굶을지언정 밥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요리는 여자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다른 가정을 봐도 대부분 “남자는 바깥일을, 여자는 집안일을 한다”는 식이었습니다. 여자는 집에서 밥을 하고 남자는 밖에서 바쁘게 일하는 것이었죠. 결혼 후에는 아내가 당연하다는 듯이 모든 집안일을 도맡았습니다. 가끔 아내가 저에게 집안일을 좀 해달라고 하면 썩 내키지 않았습니다. 저는 늘 요리나 집안일은 여자의 몫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020년 여름, 리더가 제게 한 팀에 접대 인원이 급히 필요하다며 접대 본분을 맡을 의향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겉으로는 아무 말 안 했지만 속으로는 ‘접대 본분을 해 본 적도 없고 요리도 할 줄 모르는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급히 필요하다는 말에 결국 수락했습니다. 접대 본분을 하는 동안, 저는 매일 부엌을 떠나지 못하고 온갖 씻고 닦는 일을 해야 했습니다.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본분은 자매들이 하는 건데 왜 나한테 시키는 거지? 게다가 다 큰 남자가 맨날 시장에 가서 장을 보고, 가끔은 채소 장수랑 가격 흥정까지 해야 하다니, 이게 얼마나 체면 깎이는 일이야!’ 시장에 갈 때마다 저는 늘 골치가 아팠고, 사람들이 저를 얕볼까 봐 두려워 늘 서둘러 들어갔다 나왔고 오래 머물고 싶지 않았습니다. 때로 몇몇 형제들이 음식이 짜다거나 싱겁다고 말하면 저는 무척 창피해서 속으로 따졌습니다. ‘집에서 집안일이나 요리는 전부 아내 몫이었고 난 해 본 적도 없는데! 더구나 난 남자고 이건 다 여자들이 하는 일이잖아. 내가 잘 못하는 게 당연하지, 왜들 그렇게 이해심이 없어?’ 저도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시큰했습니다. ‘이 본분은 대체 언제쯤 끝나는 거야?’ 평소 몇몇 형제들이 사역에 관해 웃으며 이야기하는 것을 봐도 저는 도무지 즐겁지가 않았습니다. 등에 큰 돌덩이라도 짊어진 듯 마음이 무거웠고, 언제쯤 이 본분을 그만둘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 며칠간 저는 요리에도 정성을 들이지 않았습니다. 아침마다 국수를 끓였는데, 형제들이 조금밖에 먹지 않는 것을 보고도 입에 맞지 않는지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배추가 많아서 그저 삶아서 내놓기만 했고, 형제들이 거의 먹지 않아도 저는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배추는 어떻게 요리해도 별맛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형제들이 본분 조정으로 이사를 갔는데, 책임자는 저에게 계속 접대 본분을 맡으라고 했습니다. 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다 큰 남자인 나한테 왜 자꾸 접대 본분을 맡기는 걸까? 요리하고 설거지하는 건 원래 자매들 일이잖아. 사람들이 형제인 내가 왜 이런 본분을 하냐고 수군대지 않을까? 내 체면이 뭐가 되겠어?’ 이런 생각에 저는 제가 남들보다 못한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무렵 저의 내적 상태는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너무 창피해서 본분을 그만두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면 이성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다고 계속하자니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저는 겉으로는 본분을 이행했지만 마음은 답답하고 억울했습니다. 무엇을 하든 적극적이지 않았고 정성을 들이지도 않았습니다. 청소해야 할 곳을 보고도 청소하지 않았고, 몇 번은 다른 사람이 보다 못해 대신 청소해 주기도 했습니다. 교회가 가져다준 식료품도 제때 햇볕에 말리지 않아 결국 곰팡이가 슬어 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리더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식료품에 곰팡이가 다 슬었네요. 형제님이 마음만 썼더라면 말릴 건 말리고, 먹을 건 제때 먹어서 낭비하지 않았을 텐데요. 이런 문제가 생겼으니 우리 본분을 대하는 태도를 반성해 봐야 해요.” 리더의 말을 듣고 저는 마음속으로 자책했습니다. 제가 마음을 쓰지 않아 식료품이 상한 것이 맞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또 자신을 위해 이유를 찾았습니다. ‘집에서는 이런 식료품 말리는 일을 전부 어머니와 아내가 처리했고 난 한 번도 신경 쓴 적이 없는데, 이제 와서 이런 걸 하라니 정말 창피해!’ 저는 늘 모욕을 당하는 것만 같았고 이런 환경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저 리더가 저에게 다른 본분을 맡겨 주기만을 바랐습니다. 당시 저는 너무나 소극적이어서 하나님께 기도해도 할 말이 없었고, 하나님 말씀을 읽어도 빛 비춤이 없었습니다. 매일이 힘들고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했습니다.

예배 때, 한 자매가 제 내적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을 보고는 자신을 반성하며 공과를 배워야 한다고 일깨워 주었습니다. 하루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본분이란 무엇이냐? 하나님이 사람에게 맡긴 부탁이 바로 사람이 이행해야 하는 본분이다. 하나님이 너에게 무엇을 맡기면, 그것이 바로 네가 이행해야 하는 본분이다. … 자신의 역할과 위치를 제대로 정확하게 찾아야 한다. 이런 사람만이 이성적인 사람이다. 그런 다음에 착실하게 자신의 본분을 제대로 이행해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고 하나님을 만족게 해야 한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본분을 이행하면 사람의 마음이 평안하고 평온해진다. 그러면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진리를 받아들여 점차 하나님의 요구에 따른 본분 이행을 할 수 있다.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릴 수 있으며, 하나님의 모든 안배에 순종할 수 있고, 기준에 맞게 본분을 이행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다. 네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올바른 마음가짐과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만족게 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본분을 이행한다면, 성령이 역사하여 이끌고 인도해 줄 것이다. 또한 본분을 이행하면서 진리를 실행하고 원칙대로 하려 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진정한 사람의 모습을 완전히 살아 내게 된다. 사람의 생명은 모두 본분을 이행하면서 점차적으로 성장한다. 본분을 이행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이 없기 때문에 아무리 오래 믿어도 진리와 생명을 얻지 못한다. 하나님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만을, 자신의 능력을 다해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만을 축복한다. 네가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네가 무엇을 할 수 있든, 너는 그것을 자신의 책임과 본분으로 받아들이고 제대로 이행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제대로 이행할 수 있느냐? 하나님이 요구한 대로 하면 된다. 하나님이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서 제대로 이행하라고 한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고, 어떻게 해야 마음을 다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사람이 어떤 부탁을 받든 그것을 자신의 책임과 본분으로 여겨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마음과 뜻을 다해 잘 해내고,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려는 마음으로 본분을 해야 하나님께서 칭찬하신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접대 본분은 자매가 하는 일이며, 저는 형제이므로 이 본분을 해서는 안 되고, 저에게 접대 본분을 맡긴 것은 저를 무시하고 얕보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이런 잘못된 관점 때문에 저는 본분을 대함에 있어 진지하고 책임감 있는 태도가 조금도 없었습니다. 형제들을 접대할 때 저는 늘 국수나 배추 삶은 것만 내놓았고, 그들이 좋아하지 않는 것을 보고도 형제들이 맛있고 배부르게 먹을 수 있도록 조리법을 바꿔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청소도 제때 하지 않았고, 교회가 보내준 식료품도 바로 처리하지 않아 결국 상하게 만들었습니다. 제가 어디 마음과 힘을 다해 본분을 대한 것이겠습니까? 이건 명백히 마음을 쓰지 않고 건성으로 대충 한 것이지요! 교회는 제게 본분을 이행할 기회를 주었지만 저는 소중히 여기지 않았고, 오히려 계속 불평하고 반항하며 건성으로 임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너무나 슬프게 하고 실망시켜 드린 것입니다! 만약 바로잡지 않는다면 결국 본분을 이행할 기회마저 잃게 될 것입니다. 이것들을 깨닫고 저는 마음속으로 다짐했습니다. 앞으로는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고, 마음을 다해 접대 본분을 잘 이행하겠다고 말입니다. 저는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고, 적극적으로 청소했으며, 접대와 관련된 모든 일을 힘써 잘 해냈습니다.

나중에 저는 몇몇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제가 늘 접대 본분에 반감을 가졌던 문제의 근원을 어느 정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네게 본분 하나를 이행하게 한다면 원래는 순종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얼마나 순종할 수 있느냐? 예를 들어, 형제인 너에게 매일 형제자매를 위해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하게 한다면 너는 순종할 수 있겠느냐? (순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잠깐은 순종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오랜 기간 네게 이 본분을 이행하게 한다면 순종할 수 있겠느냐? (가끔은 순종할 수 있겠지만 기간이 길어지면 순종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는 불순종이다. 그러면 어째서 불순종하게 된 것이겠느냐? (사람의 마음속에는 바깥일은 남자가, 집안일은 여자가 해야 한다는 전통 관념이 있기 때문입니다. 밥을 하는 것은 여자의 일이고 형제가 밥을 하면 체면을 구긴다고 생각하므로 쉽게 순종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 역할 분담에 성차별이 있는 것이다. 남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 남자들은 밖에서 열심히 일해야 해. 요리나 설거지 같은 건 여자들이 해야 할 일이잖아. 우리 남자들에게 시키면 안 되지.’ 하지만 지금처럼 특수한 환경에 처해서 너에게 시킨다면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 너는 어떤 어려움을 해결해야만 순종할 수 있겠느냐?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너는 성차별을 타파해야 한다. 남자가 할 일, 여자가 할 일 같은 건 없다. 이렇게 먼저 역할을 분담해 놓아서는 안 된다. 어떤 본분을 이행할지를 성별에 따라 구분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집에서 살림살이하면 그렇게 역할을 분담해도 되겠지만 지금은 본분에 관련된 것이니 너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느냐? 하나님으로부터 이해하고 이 본분을 받아들여서 네 안의 옳지 않은 관점을 바로잡아야 한다. 너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저는 남자이긴 하지만 교회의 일원이고 하나님께는 피조물입니다. 성별을 따지지 않고 교회에서 저에게 안배한 일을 하겠습니다.” 우선 잘못된 관점을 내려놓은 뒤 자신의 본분을 받아들여야 한다. 받아들이기만 하면 진실로 순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앞으로 누군가 음식이 짜거나 싱겁다고 한다면, 또는 어떤 음식이 맛없어서 먹기 싫다고 하거나 새로운 메뉴를 만들어 달라고 한다면 너는 마음속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 그러면 너는 기분 나빠서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사내대장부인 내가 이렇게 많은 형제자매에게 밥을 해 주는데 이것저것 지적질이나 당하다니 정말 체면이 말이 아니구나.’ 이럴 때면 순종하기 싫어지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어려움이 생긴 것이다. 모든 불순종은 네가 진리를 실행하지 못하고 하나님에게 순종하지 못하도록 패괴 성품이 드러나 말썽을 일으킬 때 나타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실행해야 생명 진입이 있다> 중에서), 『남자는 이렇게 남성 우월주의적 사상을 가지고 있는데, 남성 우월주의가 심각한 일부 사람은 아이 돌보기, 방 정리, 빨래나 설거지, 청소 같은 일을 무시해서 하려 하지 않는다. 한다 해도 마지못해 하는 식이다. 남들에게 무시당할까 걱정하면서 ‘맨날 이런 일이나 하고 있으니 이러다 아줌마 되는 거 아냐?’라고 생각한다. 이는 어떤 사상 관점에 지배된 것이겠느냐? 이는 사상에 문제가 있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이런 사상엔 문제가 있다. 생각해 보아라, 어떤 지역에는 하루 종일 앞치마를 두르고 밥을 하는 남자가 있다. 여자가 퇴근해서 집에 오면 그는 밥을 차리고 말한다. “먹어 봐. 다 당신이 좋아하는 거라 맛있을 거야.” 여자는 태연하게 차려진 음식을 먹고, 남자는 태연하게 밥을 차리면서도 자기가 가정주부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앞치마를 풀고 밖으로 나가면 여전히 남자가 아니냐? 어떤 지역의 사람은 남성 우월주의가 굉장히 심각하다. 이는 가정에서 비롯되는 교육과 영향 때문에 네가 잘못 길들여진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는 너를 해롭게 한 것이냐 아니면 너를 구한 것이냐? (해롭게 한 것입니다.) 너에게 해를 끼친 것이다. … 부모가 주입한 이런 사상 관점은 사람의 가장 기본적이고 단순한 생활의 규칙과 연관되고 사람에 대한 잘못된 견해와도 관련된다. 한마디로 말해, 이는 모두 사람의 사상 측면에 대한 가정의 영향인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 과정이나 살아가는 과정에서 사람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사람에게 얼마나 큰 곤란과 불편을 초래하든, 근본적으로 보면 부모의 사상 교육과 어느 정도 관계가 있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4)>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저는 제가 접대 본분을 하면서 늘 억압과 고통을 느끼고 순종하지 못했던 것이 주로 “남자는 바깥일을, 여자는 집안일을 한다”는 그릇된 관점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전에 집에서 농사를 지을 때, 어머니와 아내는 밖에서 바쁘게 일하고 집에 돌아와서도 빨래하고 밥 짓고 가축에게 먹이를 주는 등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습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보고도 저는 조금도 돕지 않았습니다. 빨래, 요리, 집안일은 모두 여자가 하는 일이고, 남자는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하고 바깥일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남자가 집안일을 하는 것은 못나고,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할 일이라고 여겼습니다. 이런 관점으로 살았기에 저는 집안일을 거의 분담하지 않았고, 가족에 대한 관심과 보살핌도 부족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후 접대 본분을 맡게 되었을 때도, 저는 온갖 허드렛일과 장보고 요리하는 일은 자매의 본분이지 형제가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남성 우월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아 본분에 반감을 느끼고 마음을 쓰지 않았습니다. 시장에 가서 채소 장수와 가격을 흥정해 물건도 좋고 값도 싼 채소를 사는 것은 아주 정상적인 일이지만, 저는 늘 창피하고 사람들이 얕볼까 봐 두려웠습니다. 요리할 때도 늘 제 마음대로 생각나는 대로 했을 뿐, 형제들의 입맛에 맞는지는 조금도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접대 본분에 대한 반감 때문에 마땅히 해야 할 청소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남성 우월주의 사상이 제 생각을 왜곡시켜, 저는 정말이지 너무나 인성과 이성이 없었던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본분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고, 높고 낮음이나 귀하고 천함으로 나뉘지 않으며,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마땅히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고, 그것을 하나의 책임으로 여기고 아끼고 소중히 여겨야 하며, 본분에 충성을 다해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남자는 바깥일을, 여자는 집안일을 한다”는 사상 관점에 따라 살면서 오직 제 감정만 고려했을 뿐, 제 책임과 본분이 무엇인지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순종이 조금도 없었으니,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 맞서는 것이 아닙니까? 이 점을 깨닫자 저는 몹시 후회스럽고 자책감이 들어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남자는 바깥일을, 여자는 집안일을 한다’는 사상 관점의 지배를 받아 접대 본분을 하면서 조금도 순종하지 않았고, 사사건건 당신께 맞섰습니다. 저는 너무나 이성이 없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당신께 회개하기 원합니다.”

나중에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을 보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평가하시는 기준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성별에 대해 특수하게 얘기한 적이 없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모두 하나님이 지었으며,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인류의 말로 풀자면,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남성과 여성을 차별하지 않으며, 서로 다른 요구를 하지 않고, 언제나 동일하게 대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네가 남성이든 여성이든 상관없이, 네 인성 본질이 무엇인지, 어떤 길을 걷는지, 어떤 태도로 진리를 대하는지,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인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는지,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는지 등을 보고자 하며, 이 몇 가지 기준으로만 사람을 판단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택하고 양성하여 한 가지 본분을 이행하게 하고 책임을 맡길 때, 그가 남성인지 여성인지는 보지 않는다. 하나님은 사람을 발탁하고 쓸 때, 네가 남성인지 여성인지를 보는 게 아니라 양심과 이성을 갖추었는지, 자질이 합격점에 이르렀는지,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 어떤 길을 걷는지 등을 본다. 물론,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하고 온전케 할 때도 네가 남성인지 여성인지를 보지 않는다. 만약 여성이라면 하나님은 네가 현명하고 어질고 정숙하고 유덕한지, 말 잘 듣는 여자인지를 보지 않는다. 만약 남성이라면 하나님은 네게 남성적인 강건한 기질이 있는지를 보지 않는다. 이러한 것들은 전부 하나님이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아니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7)>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저는 하나님의 성품은 공의로우시며, 성별에 따라 사람을 차별 대우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지으셨을 때 그들을 성별로 차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보살핌은 똑같았고, 어느 한쪽을 편애하지 않으셨습니다. 말세에 하나님께서 말씀을 선포하여 사람을 구원하시는 것 역시 온 인류를 대상으로 하며, 국가나 종족, 남녀를 구분하지 않으십니다. 체험을 통해서도 하나님 집에서 사람을 발탁하여 쓰는 것은 성별을 보지 않고, 그 사람이 진리를 사랑하는지, 양심과 이성이 있는지, 어떤 길을 가는지를 보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리더 일꾼은 반드시 형제가 맡아야 한다거나 접대 본분은 전부 자매가 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제가 아는 한 형제도 접대 본분을 이행하는데, 평소에 시간이 날 때마다 하나님 말씀을 읽는 데 집중하고, 예배 때는 마음을 열고 자신의 내적 상태와 어려움을 교제하며, 일이 생기면 진리를 구하고 진리 원칙에 따라 실행하는 데 중점을 둡니다. 그 형제는 본분을 이행하면서 성별에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예전에 남성 우월주의라는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관점에 따라 살았던 것이 잘못되었고 편협했으며, 완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르는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진리를 깨닫고 나니 저는 남성 우월주의 사상에 대해 분별하게 되었고, 마음으로 그것을 저버리고자 했으며, 접대 본분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어떻게 접대 본분을 잘 이행해야 할지 마음에 더 명확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간에, 실행해야 하는 진리와 알아야 하는 원칙은 모두 동일하다. 너희가 리더 일꾼이 되든, 섬김 본분을 이행해 요리를 하든, 아니면 바깥 일이나 힘을 들여 일을 하든, 이행하는 본분은 각기 다르더라도 따라야 하는 진리 원칙은 모두 같다. 바로 진리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가장 중요하고 주된 원칙이 무엇이겠느냐?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해 본분을 잘 이행함으로써 본분 이행이 기준에 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 예를 들어, 형제자매를 위해 음식을 만드는 것이 네 책임이고, 그것이 네 본분이라면, 너는 이 일을 어떤 태도로 대해야 하겠느냐? (진리 원칙을 구해야 합니다.) 진리 원칙을 어떻게 구할 것이냐? 이것은 실제와 진리에 관한 문제다. 너는 어떻게 하면 진리를 실행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이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을지, 이것이 어떤 측면의 진리에 관한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첫 단계로 우선 네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이것은 내가 먹으려고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 본분이다.’라는 것이다. 이것은 이상 측면이다. 두 번째 단계는 무엇이겠느냐? (어떻게 하면 음식을 잘할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잘한다는 기준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요구를 구해야 합니다.) 그렇다. 하나님의 요구가 바로 진리이자 기준이며 원칙이다.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행하는 것이 한 측면의 진리다. 우선 너는 이 측면의 진리를 생각한 뒤에 ‘하나님께서 내게 이 본분을 이행하게 하셨어. 그러면 하나님의 요구 기준은 무엇일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기초가 우선적으로 갖춰져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기준에 부합할 수 있을까? 바로 건강에 좋고, 맛있고, 깨끗해야 한다는 것이다. 먹고 난 다음 몸에 해롭지 않은 것은 세부적인 문제다. 네가 이 원칙에 따라 음식을 만들면 네가 만든 음식은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만든 것이다. 어째서 이렇게 말하겠느냐? 네가 이 일에서 이 측면의 원칙을 구하고 하나님이 부여한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다면 옳은 것이고, 네 본분을 잘 이행한 것으로, 기준에 달한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 원칙을 구해야 제대로 본분을 이행할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저는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모두 진리 원칙에 따라 실행해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마음과 힘을 다해 잘 해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접대 본분을 이행하는 것을 예로 들면, 만약 음식 맛이 없어 사람들이 먹기 싫어하거나 몸에 부작용을 일으킨다면 저는 본분을 잘 이행하지 못한 것입니다. 식료품의 경우, 말려야 할 것은 말리고 먹어야 할 것은 빨리 먹어서 낭비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하나님을 가장 심하게 대적하는 나라인 중국에서 접대를 하려면 시종일관 경계심을 잃지 않고 주위 환경을 잘 살펴 형제자매의 안전을 보호해야 합니다. 이것들을 깨달은 후, 다시 시장에 가서 장을 볼 때 저는 어떻게 하면 물건도 좋고 값도 싼 채소를 살 수 있을까를 생각했고,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보는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요리할 때는 맛있고, 영양가 있고, 건강한 것을 원칙으로 삼았고, 할 줄 모르는 요리는 형제자매에게 물어보거나 요리법을 보면서 배웠습니다. 얼마 후, 요리 실력이든 집 안 위생 상태든 예전보다 크게 나아졌습니다. 나중에는 한 형제와 함께 전자 기기를 수리하는 본분을 이행했는데, 요리나 집안일은 제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했습니다. 때로 형제자매들이 저희 집에 오면 저절로 이렇게 칭찬하곤 했습니다. “집이 정말 깨끗하네요!”, “이 음식은 보기만 해도 입맛이 도네요.” 그 말을 듣고 저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이제 저는 깨달았습니다. 본분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맡겨주신 부탁이며, 성별의 구분이 없고 모두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책임과 의무이므로, 사람은 무조건 받아들여 힘써 완수해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저는 또한 어떤 본분을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으며, 중요한 것은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진리를 구해 자신의 패괴 성품을 해결하고, 진리 원칙에 따라 실행하기를 구하는 것이라는 점도 깨달았습니다. 제가 이런 수확과 변화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하나님 말씀의 인도가 가져다준 성과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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