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 간증문 작성의 단맛을 알게 되다

2025.4.18

중국 광춘(廣醇)

2020년에 교회 리더를 맡게 됐는데, 좋은 체험 간증문을 써내는 형제자매들을 보면 너무 부러웠어요. 근데 저는 글쓰기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죠. 글이라는 건 소질이 있고 글재주가 있어야 잘 쓰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전 그쪽에 소질도 없고 진리를 아는 깊이도 얕으니까 저한테 글 쓰는 건 시간 낭비에 불과하니 그럴 시간이면 사역을 하나라도 더 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괜히 사역을 제대로 못 하면 제가 책임감이 없게 보일 수 있고, 형제자매들도 저를 좋게 생각하지 않을 거니까요. 더구나 글쓰기는 개인적 선택이니까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거라 차라리 사역을 더 많이 하고 예배를 더 많이 인도해서 오히려 형제자매들한테 책임감 있다고 칭찬받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저는 글쓰기에 시간을 투자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매일 사역이나 형제자매들과 모임을 하는 일에만 치중했지 무슨 일이 닥쳤을 때 자아 성찰하는 경우는 드물었어요. 가끔 제가 어떤 패괴 성품을 드러냈는지 인지는 했지만 그걸 해결하려고 진리를 구하지는 않았어요. 또 협력하는 형제자매들이 생명 진입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 짚어 줘도 오히려 이유를 대면서 받아들이기 싫어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매일 예배 모임 한다고 바삐 보내긴 했지만, 자신을 반성하고 알아 가고, 진리를 구하는 일에 크게 신경 쓰지 않다 보니 생명 진입은 거의 없었어요. 결국 예배 시간에 할 수 있는 거라곤 이치에 맞는 말로 격려나 해 줄 뿐이지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했어요. 한 번은, 한 책임자가 그러는 거예요. 자기가 실질적인 사역을 못 하다 보니 늘 의기소침한 상태에 빠져 있다며 책임자의 본분을 그만 내려놓고 싶다고요. 근데 전 그 사람이 의기소침해진 근원을 간파하지 못하니까 해결책도 내놓지 못하겠더라고요. 결국은 저의 파트너 자매가 교제를 나누면서 문제를 해결해 줬죠. 그런데도 저는 제 내적 상태를 반성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제가 열심히 뛰어다니고 예배 모임을 많이 인도하면 그게 책임감 있는 거라고 여겼죠. 근데 그렇게 한동안 해도 남는 건 허전함뿐이고, 얻은 게 없더라고요.

그러다 한 번은, 한 자매가 저한테 체험 간증문을 썼냐고 물어보면서 글쓰기는 우리가 마음을 평온히 하여 진리를 구하고 생명 진입할 수 있게 하는 촉진제 역할을 한다고 교제해 줬어요. 그리고 저도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체험 간증문을 대하는 태도를 바로잡게 됐어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나의 진리와 길과 생명뿐 아니라 요한보다도 더 큰 이상(異象)과 계시를 받았다. 너희는 더 많은 비밀을 깨달았고, 나의 본모습도 보았다. 너희는 나의 심판을 더 많이 받았고, 나의 공의 성품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다. 그렇기에 너희는 말세에 태어났지만 예전 것과 지난 것들을 깨닫고, 오늘날 내가 친히 행한 것까지 체험했다고 하는 것이다. 너희에 대한 내 요구는 과하지 않다. 내가 너희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주었고, 너희도 내게서 매우 많은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너희가 역대 성도들을 향해 나를 증거하기를 바란다. 이것이 나의 유일한 바람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믿음’에 대해 너는 어떻게 알고 있느냐> 중에서) 돌아보면 제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를 조금 알게 되고 저 자신의 패괴 성품에 대해서도 조금 알게 되고, 일을 보는 관점이 조금 바뀌게 된 것도 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있었기 때문이거든요. 그럼 제가 얻은 걸 글로 표현하는 건 하나님을 증거하는 일이자 제 책임이기도 하고, 더더욱 제 본분이잖아요. 그러니 당연히 제 책무로 대하는 게 하나님 뜻에도 부합하는 자세죠. 근데 전 여태 체험 간증문을 쓰는 일을 제 본분으로 생각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걸로 간주하면서 체험 간증문을 쓰는 것을 매우 가볍게 대했고,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임하려는 마음이 없었어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체험하고도 그걸 글로 써서 하나님을 증거하지 않는다면 그건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을 묻어 버리는 거고, 양심도 이성도 없는 모습이죠.

그 후, 저는 하나님을 증거하는 체험 간증문을 쓰기 싫어하는 건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모습이라는 걸 조금은 인지하게 됐어요.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라 찾아봤어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진리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가장 분명하게 나타나는 내적 상태는 바로 진리와 긍정적인 사물에 관심이 없고, 심지어 반감을 갖거나 혐오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시류를 좇는 것에 열광하며, 하나님이 좋아하는 사물이나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는 마음속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런 것을 거들떠보지 않으며 냉담하게 대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요구한 이 기준이나 원칙을 자주 경시하곤 한다. 그는 긍정적인 사물에 반감을 갖고 있으며, 언제나 마음속에 반발하고 대항하고 경시하는 감정을 품고 있다. 이것이 바로 진리를 싫어하는 자의 주된 특징이다. …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을 위해 사역하고 열심히 뛰어다니기를 좋아한다. 그들은 은사와 재능을 발휘하고 자기 기호대로 자신을 드러내는 데 기운이 넘친다. 그러나 그에게 진리를 실행하고 진리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라고 요구하면, 마음이 차갑게 식고 열정도 사라진다. 스스로를 뽐낼 수 없으면 힘이 생기지 않고 기운이 빠지는 것이다. 스스로를 뽐낼 때는 왜 힘이 생기겠느냐? 진리를 실행할 때는 왜 힘이 생기지 않겠느냐? 이는 무슨 문제겠느냐? 사람은 모두 남들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며 허영을 좇는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복을 얻고 상을 받기 위해서는 기운이 넘친다. 그런데 왜 진리를 실행하고 육을 저버릴 때는 힘이 없어지고 기운이 빠지는 것이겠느냐? 그 이유는 무엇이겠느냐? 이는 사람의 마음에 불순물이 있으며, 오로지 복을 받기 위해, 솔직히 말하자면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추구할 만한 복과 이익이 없다면 힘이 없어지고 기운이 빠지며 어떤 열정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이는 전부 진리를 싫어하는 패괴 성품으로 초래된 것이다. 이러한 성품에 지배되면 진리를 추구하는 길을 선택하지 않고 스스로의 길로 치우치며 잘못된 길을 택하게 된다. 또 명리와 지위를 추구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면서도 포기하지도 내려놓지도 못한 채 명리와 지위를 좇아 사탄의 길을 걷게 된다. 이는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사탄을 따르는 것이다. 사람이 행하는 이 모든 일은 사탄을 위해 힘쓰는 것이며, 사탄을 섬기는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께서는 진리를 싫어하는 자는 긍정적인 걸 싫어하고 부정적인 걸 좋아한다고 폭로하셨어요. 제가 그런 사람이었죠. 열심히 뛰어다니면서 많은 사역을 하면 형제자매들한테 책임감 넘치는 사람으로 보일 거고, 윗선 리더 눈에도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는 힘이 넘쳐 났던 거고,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부어도 마다치 않았어요. 근데 체험 간증문을 쓰는 문제에서는 그게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일이고, 제 생명 진입에 있어서도 유익하다는 걸 분명히 알고 있었지만, 저는 글을 쓰면 사역하는 데 시간만 뺏긴다고 생각해 오히려 반감을 느꼈어요. 그래서 항상 할 일이 많아서 글을 쓸 시간이 없다는 이유를 대고 미루기만 했죠. 사실 쓸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진리를 싫어하는 본성 때문에 쓰고 싶지 않았던 거고, 진리를 추구하는 면에서 노력하고 싶지 않았던 거예요. 보니까 저는 진리를 매우 차가운 자세로 대하고 있었고, 긍정적인 거에 대해 반감과 거부감, 싫증을 느끼고 있었어요. 저는 잘못된 길을 가고 있었고 하나님의 요구와 어긋난 길로 향하고 있었던 거예요. 이걸 깨닫게 되니까 두려워져서 빨리 바로 잡고 변화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반성을 통해 글을 쓰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가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관점에 지배 받고 있기 때문임을 깨닫게 됐어요. 바로 저는 필력이 좋지 못하니까 좋은 체험 간증문을 쓰지 못할 거라는 관점이었어요. 근데 깨닫고 보니까 그 관점은 매우 그릇된 거였어요. 사실 글쓰기는 필력에 달려 있는 게 아니고 미사여구를 쓴다고 좋은 체험 간증문이 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무엇보다 글을 쓰는 사람이 정말 실제적인 체험과 깨달음이 있는지가 중요하죠. 체험이 없으면 좋은 필력으로 써낸 글이라도 공허한 이치에 불과하니까요. 이걸 깨닫게 되니까 마음의 자세가 많이 바뀌었어요. 그래서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했죠. ‘하나님, 지금까지 저는 외적으로 열심히 뛰어다니며 사역하는 데에만 치중했을 뿐, 하나님 앞에 마음을 평온히 하고 말씀을 묵상하는 일이 없었어요.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서 많은 시간을 낭비했었는데, 이제는 하나님 앞에 마음을 평온히 하여 진리를 구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더 신경 쓰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 말씀을 봤어요. 『사역이라 하면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고, 곳곳에서 전도를 하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이는 옳긴 하지만 아주 단편적인 인식이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는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더 많이 섬기고 공급하는 것이다. 많은 형제자매들이 이렇게 오랫동안 체험했음에도 하나님을 위한 사역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사람의 관념 속 사역과 하나님이 요구하는 것은 하나도 일치하는 구석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사역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가지지 않게 되었고, 그로 인해 진입도 매우 단편적이 되었다. 너희는 모든 측면에서 더 잘 체험할 수 있도록 하나님을 위해 사역하는 것에서부터 진입을 시작해야 한다. 이는 너희가 마땅히 진입해야 할 것이다. 사역이란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 내는 것과 사람의 생명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사역이란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충성심과 인식을 바탕으로 하나님을 증거하고 사람을 섬기는 것을 말한다. 이는 사람의 책임이자 사람이 알아야 할 것이다. 너희의 진입이 곧 너희의 사역이라고 할 수 있다. 너희는 하나님을 위해 사역하는 과정에서 진입하기를 추구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실 줄 아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증거하고 섬길 줄 알며, 사람을 돌보고 공급할 줄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것이 사역이자 너희의 진입이며, 모든 사람이 마땅히 행해야 하는 바이다. 많은 이가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고 곳곳에서 설교하는 것만을 중시한 나머지 개인의 체험을 망각하고, 영 생활에 진입하는 것을 간과한다. 이로 인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 된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사역과 진입 2> 중에서) 이 말씀을 보고 나서야 깨달았죠. 제대로 사역했다고 말하자면 그건 생명과 영적인 섬김이 이뤄져야 하는 거고 생명 진입이 있어야 실질적인 사역을 할 수 있는 거였어요. 그게 진정한 본분 이행이 될 수 있는 거고요. 전에는 열심히 뛰어다니고 형제자매들과 많이 모여서 예배드리면 그것이 실질적 사역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건 옳지 못한 관점이었고, 하나님의 말씀에도 부합하지 않는 관점이었죠. 그리고 형제자매들과 교제를 나누던 제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어요. 형제자매들이 처한 내적 상태, 어려움 앞에서 저는 근원을 파악하지 못해서 핵심을 짚어 주지 못했어요. 그저 글귀와 도리로 권면하는 말을 해 주거나 규례적으로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고 알려 주는 게 전부였지 실행의 길은 아예 내놓지 못했거든요. 그런 식의 교제는 아무리 많이 해 봤자 실제적이지 못하고 형제자매들의 문제점을 해결해 줄 수 없잖아요. 그럼 형제자매들도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지 못하니까 어려움이 생겨도 패괴 성품대로 살게 돼 여전히 소극적인 상태나 연약한 상태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사역의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상황이 이어졌어요. 그럼 제가 본분을 이행한 게 아니잖아요? 그건 하나님과 형제자매들을 속이고 기만한 거죠. 그제야 외적인 책임감은 참된 책임감이 아니고, 열심히 뛰어다니며 많은 사역을 하는 것 또한 충성된 본분 이행이 아니고, 실제적인 사역을 하는 건 더더욱 아니란 걸 제대로 깨닫게 됐어요. 본분에 대한 진정한 책임감은 외적으로 뛰어다니는 게 아니라 생명에 관련된 영적인 공급을 해 주는 걸 말하는 거고, 본분 이행 과정에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체험하고, 임하는 일에서 진리를 구하는 것에 집중하고, 자기 부족함을 파악하고 실행의 원칙을 찾는 걸 말하는 거고, 그다음 자기가 겪고 깨달은 걸로 형제자매들의 실질적인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걸 말하는 거였어요. 본분 이행은 그렇게 해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고, 사람들의 생명 진입에도 도움이 되고 유익한 거죠. 또한 체험 간증문을 쓰는 건 제가 마음을 평온히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자신을 반성하도록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진리를 많이 알게 되면 자신의 패괴 성품을 알게 되고 해결할 수 있게 되는 거고, 그래야 형제자매들의 내적 상태도 정확하게 알고 해결할 수 있잖아요. 본분을 잘 이행하려면 생명 진입을 중시해야 하죠. 따라서 글을 쓰는 거 자체가 진리를 추구하는 데에 있어 좋은 길이 되는 거죠. 무엇보다 저는 리더니까 진리 추구를 더 중요시해야 하고, 하나님을 증거하는 글쓰기에 더 적극적으로 임해야 하죠. 그래야 본분을 잘 완수할 수 있으니까요. 보니까 글쓰기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문제가 아니더라고요. 저는 간증문을 쓰지 않을 이유가 없었죠.

그때 하나님의 이 말씀도 떠올랐어요. 『어떤 교회에 몇 명이 있든 상관없이 그 교회 리더가 바로 이끄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그 리더는 무리에서 어떤 역할을 하느냐? 그는 그 교회에 있는 모든 하나님 선민을 이끈다. 그는 교회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 그 리더가 잘못된 길을 가면, 그 교회의 모든 이가 리더를 따라 잘못된 길을 가게 된다. 이는 교회 전체의 하나님 선민에게 무척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바울을 예로 들어 보자. 그는 자신이 세운 많은 교회와 하나님 선민들을 이끌었는데, 바울이 엇나가자 그가 이끌던 교회와 하나님 선민들 역시 따라서 엇나가게 되었다. 그러므로 리더가 길을 엇나갈 경우, 스스로가 영향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그가 이끄는 교회와 하나님의 선민들까지 영향을 받게 된다. 만약 리더가 올바른 사람이고, 올바른 길을 가며 진리를 추구하고 실행하는 사람이라면, 한편으로는 그가 이끄는 사람들이 정상적으로 먹고 마시며 추구할 것이요, 또 한편으로는 그 개인의 생명 체험과 성장 또한 다른 이들의 눈에 들어올 것이고 다른 이들에게 영향도 줄 것이다. 그럼 리더로서 가야 할 올바른 길이란 무엇이겠느냐? 바로 사람들이 진리를 깨닫고 진리에 진입하도록 이끌며,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것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1조 사람의 마음을 농락한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리더 일꾼이 가는 길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진정으로 느꼈어요. 제가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진리 추구를 중시하지 않고, 그저 남들의 높은 평가만을 얻으려고 하고, 명예와 지위를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고, 제 머리와 은사로만 사역하고 설교한다면, 결국 제가 이끄는 형제자매들도 생명 진입을 중시하지 않고 그저 일만 하는 상태에 놓이게 될 수밖에 없는 거죠. 리더인 제가 생명 진입을 하지 않으면 그건 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수많은 형제자매들의 생명에 영향을 끼치고 해치는 게 되는 거였죠. 이걸 깨달으니 괴롭고 죄책감이 들어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하나님, 제가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잘못된 길로 가고 있었습니다. 리더의 역할을 제대로 못 하고 직무를 유기했습니다. 형제자매들에게 미안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부탁에 면목이 없습니다. 하나님, 저 이제 돌이키기를 원합니다. 저를 진리 추구의 길로 이끌어 주십시오.’

그 후에 형제자매들이랑 하나님의 뜻에 대해 교제를 나누고 제가 체험하고 깨달은 것도 교제했어요. 그러니까 형제자매들의 내적 상태도 많이 좋아졌고, 본분에서 어려움이 생기면 반성하면서 자신을 알려고 하고, 의기소침한 상태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길을 찾는 법을 익히는 형제자매들도 생겼어요. 그러면서 본분의 효과도 조금씩 좋아졌고요. 그런 결과를 보면서 그건 성령님의 역사와 인도하심이자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한 결과라는 걸 확실히 느꼈어요. 또 본분을 잘 이행하려면 진리를 추구하고 생명 진입하는 게 매우 중요하단 것도 깨닫게 됐어요. 그때부터 저도 진리 추구를 중시했고, 체험을 통해 깨달은 게 있으면 글로 써내는 훈련을 했어요. 나중에 체험 간증문 몇 편을 쓰게 됐는데, 확실히 얻는 게 있더라고요. 그 당시 저의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관점에 초점을 맞춰 진리를 구하고 깨달은 것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마음을 하나님 앞에 평온히 하고 말씀을 묵상했더니 제가 갖고 있는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관점이 뭔지, 뭐가 잘못된 건지 알게 됐고, 그런 관점이 진리 실행을 가로막고 사역에 지장을 주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또 어떤 일에서 패괴 성품을 드러낸 문제를 반성한 글을 쓸 때는 하나님께서 폭로하신 말씀을 통해 저의 이기적이고 비겁하고 인간답지 못한 모습을 보게 되면서 정말 사탄에 의해 깊이 패괴된 걸 피부로 느낄 수 있었어요. 더구나 생명 진입을 중시하지 않을 때는 형제자매들의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했는데, 글쓰기를 통해 조금씩 진리를 알게 되니까 어떤 경우는 확실히 뭐가 문제인지 알게 되고, 교제를 나누면 형제자매들도 유익함을 얻게 되더라고요.

체험 간증문 쓰기에 임하는 제 태도를 돌아보면서 제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고, 생명 진입을 중시하는 사람도 아니고, 진리를 추구하는 데 방해되는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관점을 많이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런 것 때문에 저는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일에만 치중하면서 힘만 쓰는 길로 가게 됐던 거예요. 그러면 아무리 바삐 보내도 결국 진리를 얻지 못하잖아요. 그리고 이 일을 통해 진정한 본분 이행이 뭔지, 어떻게 실행해야 본분에 책임감을 가지는 건지 알게 됐고, 체험 간증문을 쓰는 건 진리를 추구하는 데 있어서 정말 좋은 길이라는 것도 알게 됐어요. 제가 이런 걸 깨닫게 된 건 온전히 하나님의 역사와 인도하심 덕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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