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결함을 올바르게 대할 수 있게 되다

2025.6.9

어렸을 때 제가 말을 하면 어른들은 종종 저를 비웃곤 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에는 어찌 된 영문인지 몰랐지만, 어른이 된 후에야 제가 말을 더듬는 버릇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고치려고도 해 봤지만 아무리 애써도 고쳐지지 않아서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이 결함 때문에 종종 남들에게 놀림을 당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점점 말수가 적어지고, 사람 만나는 것을 꺼리면서 늘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친구들끼리의 모임에도 나가지 않고, 방학 때도 외출이나 친척 방문도 기피하면서, 무척 괴팍해지고 열등감에 사로잡힌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가끔 집에서 제가 말 더듬는 것을 들은 어머니는 이렇게 잔소리를 하셨습니다. “말 좀 천천히 하지 못 하겠니? 말 끊지 말고! 계속 그러다가는 커서 장가도 못 가겠다!” 직장에 들어간 뒤, 한번은 제가 말을 더듬자 동료가 장난스럽게 말했습니다. “왜 말을 더듬거려요? 정말 재밌는 사람이네요!” 농담이었지만 저는 얼굴이 화끈거렸고, 그 버릇을 고치지 못하는 저 자신이 미웠습니다.

2008년 9월, 저는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을 받아들였습니다. 형제자매들은 말을 더듬는 제 결함을 보고도 비웃거나 얕잡아보기는커녕 격려하고 도와주었습니다. 가끔 예배 때 낯선 형제자매를 만나면 속으로 긴장하곤 했는데, 말씀을 읽다가 막힐 때는 형제자매들이 같이 읽어 주기도 하고, 거기에 얽매이지 말라고 격려도 해 주었습니다. 저에게는 하나님 집이 무척 따스하게 느껴졌습니다. 3년 후, 형제자매들은 저를 교회 리더로 선출했고, 저는 그것이 하나님의 높여 주심임을 알았습니다. 다만 리더 본분에는 진리 교제로 문제를 해결하는 일도 포함되어 형제자매들과 종종 예배드려야 했습니다. 특히 여러 사람이 예배드릴 때면 말 더듬는 버릇에 심하게 얽매여서 무척 긴장했고, 교제할 때 말문이 막혀서 못난 모습을 보이면 형제자매들이 비웃을까 봐 겁이 났습니다. 한번은 예배드리러 갔는데, 잘 모르는 자매가 있었습니다. 그러자 교제를 제대로 못하면 그 자매가 나를 어떻게 볼까 걱정되었습니다. 결국 저는 하나님 말씀을 읽을 때 심하게 더듬거렸고, 그 자매는 참다 못해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제 자존심이 와르르 무너졌습니다. 자매는 진심으로 사과했지만, 저는 속으로 무척 괴로웠습니다. 늘 스스로를 남들보다 열등하다고 여기며 제 처지를 자주 원망했습니다. ‘왜 나는 이런 결함이 있을까? 어째서 고치지 못할까?’ 그 뒤로 형제자매들을 접할 때면 아주 예민해져서, 매번 하나님 말씀을 읽거나 교제를 마친 뒤에는 늘 형제자매들의 표정과 반응을 살폈습니다. 사람들에게서 부자연스러운 행동이 보이면 혹시 나를 비웃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하며 속으로 더욱 긴장했습니다. 긴장한 나머지 손에서 계속 땀이 난 적도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예배가 두려웠습니다. 특히 사람이 많은 예배는 파트너 형제에게 미루기도 했습니다. 오랫동안 그토록 고통스럽고 억압된 정서로 지내다 보니, 나중에는 정말로 중압감을 견딜 수 없었고, 그래서 저는 자리에서 물러나고 말았습니다. 리더에서 물러난 후 저는 문서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하루 종일 글만 선별했고, 사람들과 얘기하거나 어울릴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말 더듬는 버릇에 얽매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2020년 9월, 저는 다시 한번 교회 리더로 선출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역 중압감도 크고 낯선 형제자매들과 자주 접하다 보니 말 더듬는 문제가 또 심해졌습니다. 예배드릴 때만 되면 다른 사람이 저를 어떻게 볼지 굉장히 의식했고, 속으로 무척 얽매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도 모르게 문서 사역을 이행할 때가 그리웠습니다. 사람을 많이 만나지 않아도 되고, 압박감도 크지 않아서 저는 다시 문서 사역을 하게 되기만 바랐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2021년 7월, 형제자매들은 저를 또 설교원으로 추천했습니다.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게 가당키나 해? 교회 리더를 하면서 받은 스트레스로도 충분하고, 다시 선발되는 건 바라지도 않아.’ 하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한 끝에 경선에 나섰습니다. 그런데 예배 시간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설교원은 만나야 하는 사람도 많고 담당하는 교회도 많은 데다, 사역을 할 때는 진리를 교제하며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말을 이렇게 심하게 더듬어서야 제대로 교제할 수 있을까? 만약 형제자매들이 또 비웃으면 창피해서 견디겠어?’ 결국 저는 기권하고 말았습니다. 그 후에도 선거를 몇 번 맞닥뜨렸습니다. 저도 하나님을 오래 믿었으니 하나님 마음을 헤아려서 짐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제 결함만 생각하면 기가 죽어서 전부 기권하고 말았습니다.

2023년 12월, 리더에게 편지를 받았습니다. 형제자매들이 저를 지역 리더로 추천했으니, 선거에 참가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애초에 이런 단점을 가지고 선거에 나가는 것은 무리야. 설령 당선된다 해도 감당할 수 없어. 이를 어쩌지?’ 기권하자니 교회 사역을 지키지 않는 것이 되고, 선거에 나가자니 제 조건으로는 자격 미달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무척 갈등했습니다. 영 생활 시간에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말을 더듬고 어눌한 것, 이는 어느 방면의 문제이냐? (선천적인 조건입니다.) 이는 선천적인 조건이자 신체에 있는 한 방면의 결함이다. 물론 말더듬의 형태는 다양하다. 어떤 사람은 한 글자를 길게 늘여 발음하고, 어떤 사람은 한 글자를 반복해서 말하느라 한참 동안 말 한 마디도 온전히 내뱉지 못한다. 어쨌든 이는 선천적인 조건이고, 당연히 신체에 있는 한 방면의 결함이기도 하다. 이것이 패괴 성품과 관련 있느냐? (관련 없습니다.) 패괴 성품과는 관련이 없다. 만약 누가 “말을 더듬는 걸 보니 당신은 꿍꿍이속이 많군요!”라고 하거나 “당신은 말도 더듬으면서 어쩜 그렇게 교만하죠?”라고 한다면 그런 말이 정확하겠느냐? (정확하지 않습니다.) 말을 더듬는 결함이나 흠은 사람이 가진 특정 방면의 패괴 성품과는 관련이 없다. 따라서 말을 더듬는 것은 선천적인 조건이자 사람의 신체에 있는 한 방면의 결함일 뿐이고, 분명 사람의 패괴 성품과는 관련이 없다. 사람의 패괴 성품과는 그 어떤 연관도 없다.(<말씀ㆍ7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9)> 중에서), 『사람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있다. 예를 들어, 남들과 대화할 때 쉽게 긴장하거나 어떤 일을 맞닥뜨릴 때 자신의 생각과 관점이 있어도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것, 많은 사람 앞에서 극도로 긴장하며 두서없이 말하고 입술까지 덜덜 떨리는 것 등이 있다. 심지어 말을 더듬는 사람도 있고, 이성이 있는 자리에서는 더욱 말실수를 하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도 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가 쉽겠느냐? (쉽지 않을 것입니다.) 최소한 단기간 내에는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는 너의 선천적 조건이기 때문이다. … 그러니 이 결함과 문제점을 단기간에 극복할 수 있다면 극복하고, 극복하기 힘들다면 그냥 신경 쓰지 마라. 그것과 힘겨루기를 하거나 자신에게 도전할 필요는 없다. 물론 극복하지 못한다고 해서 소극적인 상태에 빠져서도 안 된다. 네가 평생 극복하지 못한다고 해도 하나님은 정죄하지 않는다. 그것은 패괴 성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장소 공포증을 갖고 긴장하며 두려워하는 것, 이런 모습은 패괴 성품이 아니다. 그것이 선천적인 것이든 후천적으로 어떤 환경 때문에 생겨난 것이든, 기껏해야 인성의 한 가지 결함이자 문제점일 뿐이다. 오랫동안, 혹은 평생 바뀌지 않는다고 해도 그것을 마음에 둘 필요는 없다. 그것에 속박되지 말고 그것 때문에 소극적인 상태에 빠지지도 마라. 그것은 패괴 성품이 아니니 바꾸려 하고 힘겨루기를 해 봤자 소용이 없다. 그것을 바꿀 수 없다면 받아들이고 존재하도록 내버려두며, 올바르게 대해야 한다. 너는 그 결점, 문제점과 공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점과 문제점이 있어도 네가 하나님을 따르고 본분을 이행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 진리를 받아들이고 힘닿는 데까지 본분을 이행할 수만 있다면 여전히 구원받을 수 있다. 그것은 네가 진리를 받아들이는 데에도, 구원받는 데에도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인성의 어떤 결점이나 문제점 때문에 늘 속박받고 소극적인 상태에 빠지거나 낙담해서는 안 된다. 나아가 본분과 진리 추구를 포기하여 구원받을 기회를 놓쳐서도 안 될 것이다. 그것은 하등의 가치가 없으며, 그런 자는 어리석고 무지한 사람이다.(<말씀ㆍ7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3)>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말을 더듬고 버벅대는 것은 선천적인 조건으로 신체적인 결함에 속합니다. 이는 패괴 성품이 아니기에 하나님께서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이는 제가 진리를 추구하거나 구원을 추구하는 데에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에 저는 그 결함에 얽매여서는 안 됩니다. 만약 제가 신체적 결함 때문에 진리 추구를 포기하고 발탁되어 양성 받을 기회를 포기하는 바람에 구원받는 큰 일을 지체한다면 이는 소탐대실이고 너무 어리석고 가치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 말씀을 보며 커다란 위안을 받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저는 어릴 때부터 말을 더듬는 단점을 심각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저는 이 단점이 제 삶과 사역, 본분 이행에 많은 불편과 영향을 초래한다고 생각했고 그 결과 저는 과묵해졌고, 열등감에 시달렸으며 괴팍해졌습니다. 어떤 일을 해도 자신감과 성취욕이 없었습니다. 예배 때는 형제자매들이 각자의 체험적 인식을 서로 솔직하게 터놓고 교제하면서, 자유와 해방감을 느껴야 했습니다. 또한 교제를 통해 쉽게 성령 역사를 얻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말을 더듬는 버릇 때문에 예배 때도 억눌려서 해방감을 얻지 못했고, 심지어 예배를 겁내면서 틈만 나면 피하느라 진리를 얻을 많은 기회를 놓쳤습니다. 교회 선거를 마주할 때도 늘 선거에 나갈 기회를 포기함으로써, 교회 사역에 협력할 사람이 급히 필요할 때 짐을 지지 못했고, 하나님 뜻도 헤아리지 않았습니다. 제가 항상 말 더듬는 버릇에 얽매이고 구속되어 고통스럽고 억눌린 삶을 살았던 건 제 단점을 바르게 대하지 못했기 때문임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사람과 일을 바라볼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구속하고 옭아맸을 뿐만 아니라, 매번 본분을 밀어 냈습니다. 심지어 나는 말을 더듬으니 리더를 하기에 부적절하다고 규정하며, 하나님을 오해하고 거리감을 두었습니다. 정말 너무나 어리석었습니다! 더 이상 이렇게 소극적으로 행동할 수 없습니다. 내 단점을 바르게 대하고 담담하게 이번 선거를 마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며칠 뒤, 두 자매가 사정상 선거에 참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그 둘이 당선될 가능성이 가장 높았는데, 둘이 빠지면 내가 당선될 확률이 더 커지잖아?’ 제 결함이 떠오르자, 순간 엄청난 압박감을 받았습니다. 교회에서 당한 창피는 그렇다 쳐도, 지역 리더가 되어서 당하는 창피는 그만큼 클 것입니다. 저는 한 자매에게 제 내적 상태를 얘기했습니다. 자매는 제가 너무 남들 시선을 의식하고, 체면을 중시하고, 허영심이 강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자매의 조언을 계기로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람의 내면에는 모두 옳지 않은 상태가 있다. 소극성이나 연약함, 우울함, 나약함을 지니고 있을 수도 있고, 혹은 비열한 속셈이 있을 수도 있으며, 혹은 체면이나 사욕, 이익 등에 연연할 수도 있고, 혹은 자신의 자질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소극적인 상태가 생길 수도 있다. 늘 이런 내적 상태에서 살면 성령 역사를 얻기가 매우 힘들다. 성령 역사를 얻기가 매우 힘들면 내면에 적극적인 것이 적고, 소극적인 것이 나와 너를 교란한다. 사람은 늘 의지로 자제하려고 하며 어떻게든 극복하려고 노력하지만,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 주된 원인은 소극적인 것이나 부정적인 사물을 분별해 내지 못하고 본질을 꿰뚫어 보지 못해 육을 버리거나 사탄을 저버리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다. 또 사람이 항상 이런 소극적이고 침체되고 타락한 상태에 빠져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을 앙망하지도 않고 그날그날 그럭저럭 살다가 결국에는 성령의 역사를 얻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진리를 깨달을 수 없고, 무슨 일을 해도 길이 없으며, 무슨 일을 보아도 꿰뚫어 볼 수가 없다. 네 안에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것이 너무 많아 네 마음을 다 차지해 버린 탓에 너는 항상 소극적이고 영적으로 침체되어 있으며 하나님에게서 점점 멀어지고 점점 약해진다. 사람이 성령의 깨우침을 얻지 못하고 성령의 역사를 얻지 못하면, 이런 상태에서 빠져나올 수 없고, 소극적인 상태를 바꿀 수도 없다. 성령이 역사하지 않으면 네가 길을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너는 소극적인 상태에서 벗어나 정상 상태에 들어가기가 몹시 어렵다. 비록 너희가 지금 본분을 이행할 때 고생을 묵묵히 참으며 많은 노력을 했고, 집을 떠나고 직업을 버리고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도 있지만, 내면의 소극적인 상태에는 아직 진정한 변화가 없다. 너희의 진리 추구와 진리 실행을 얽매는 것들이 너무 많고, 개인의 관념, 상상, 지식, 처세 철학, 개인의 사욕과 패괴 성품, 이런 부정적인 것들이 너희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패괴 성품을 벗어 버려야 자유와 해방을 얻을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제가 선거에 줄곧 수동적이었던 것은, 말을 더듬는 단점과 약점에 얽매인 것 말고도, 허영과 체면의 속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사역을 많이 담당하면 그만큼 만나야 하는 형제자매도 많아지는 데다, 리더는 진리를 교제하고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만약 예배 드리면서 교제하다가 막히면, 말을 더듬는 단점을 더 많은 사람이 알게 되겠지. 그러면 나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널리 퍼지지 않을까?’ 이런 생각 때문에 선거에 나설 엄두가 나지 않았고, 발탁되어 양성 받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사람은 체면으로 산다’는 사탄 독소로 살면서, 늘 제 단점을 포장하려고 애썼고, 남들에게 안 좋은 면은 보여주지 않으려 했습니다. 저는 교회 사역의 필요를 고려하지 않은 채 번번이 선거에 나설 기회를 포기했고, 교회 사역에 협력할 사람이 급히 필요하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기권하려 했습니다. 저는 정말 너무 이기적이고 비열합니다! 몇 년간 하나님의 집에서 저를 양육하고 양성시켰으니, 저로서는 마땅히 교회 사역을 담당해야 합니다. 이는 피조물로서 져야 할 책임이기도 하므로, 책임감을 가지고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합니다. 하지만 저는 체면을 지키기 위해 경선을 피하고 거절했습니다. 하나님 집을 위한 짐을 지지 않으려 했고, 하나님의 높여 주심을 전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혐오하고 증오하시는 일입니다.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제가 억눌리고 고통스럽게 살았던 것은 허영심이 강해서 체면을 너무 중시하고, 남들 시선을 너무 의식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저는 하나님의 고심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은 제게 단점이 있다는 이유로 저를 싫어하지 않으셨고, 매번 저에게 발탁되어 양성 받을 기회를 주셨습니다. 제가 단점과 패괴 성품에 얽매이고 구속되어 의기소침하고 움츠러들 때는, 말씀의 깨우침과 빛 비춤으로 제가 진리를 깨닫고 부정적인 정서의 속박에서 벗어나도록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진실한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더는 의기소침하고 수동적인 태도를 보일 수 없습니다. 그릇된 속셈을 내려놓고 열심히 협조해서 경선에 참여해야 합니다.

그 후에 또다시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네 인성과 이성이 정상이라면 자신의 결함과 문제를 바르게 마주하며,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너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속박되는 것이 아니며, 그것 때문에 늘 소극적인 상태에 빠지게 되는 것도 아니다. 그것에 속박되지 않고, 자신이 그저 평범한 패괴 인류 중 한 명임을 분명히 인식하는 것이다. 너 자신에게 문제와 결함이 있고 아무것도 자랑할 게 없음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사람을 높여 주어 본분을 이행하게 한 것이다. 하나님이 말씀과 생명을 사람 내면에 만들어 사람이 구원에 이르고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 이는 완전히 하나님의 높여 줌이다. 누구나 문제와 결함이 있다. 그 문제와 결함이 자신과 공존하도록 허용해야지, 그것을 회피하거나 감춰서는 안 되며, 그것 때문에 늘 마음이 억눌리거나 심지어 자기는 남보다 못하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너는 결코 남보다 못하지 않다. 본분 이행에 마음과 힘과 뜻을 다하고 힘닿는 데까지 노력하며 진실한 마음을 보인다면, 너는 하나님 앞에서 황금같이 귀한 존재일 것이다. 반면, 본분 이행에 대가를 치르지 않고 충성심도 보이지 않는다면, 설령 네가 타고난 조건이 남보다 좋을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너는 귀하지 않으며, 모래만도 못한 존재이다.(<말씀ㆍ7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3)>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무리하게 요구하지 않으시며, 자기 역량에 따라 실행하도록 하십니다. 본인의 자질과 사역 능력에 따라, 선천적인 조건을 바탕으로, 자신이 원래 가진 능력을 발휘해서 마음과 힘을 다해 하나님께 협조하면, 그분은 만족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과장하고 위장하는 것을 싫어하시고, 정직한 마음으로 본분을 이행하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생각해 보면 예전에 저는 말을 더듬는 단점 때문에 의기소침하고, 열등감도 강하고, 예민하고, 연약했습니다. 남들 시선도 많이 의식했습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매번 선거에 나가지 않겠다고 거절하면서 중요한 임무를 맡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제가 가진 말 더듬는 결함은 극복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니 저는 이를 받아들여 바르게 대하는 법을 배우고, 필요할 때는 형제자매에게 자신의 결함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스스로 위장하거나 포장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자신의 결함을 대할 때 지녀야 할 태도입니다.

며칠 후, 선거 결과가 나왔습니다. 저는 지역 리더로 선출되었습니다. 그 순간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그래서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오늘 제가 리더로 선출된 것은 당신의 높여 주심입니다. 본분을 이행할 이번 기회를 소중히 여기고, 최선을 다해 본분을 이행해서 당신 사랑에 보답하겠습니다.’ 그 후 속으로 고민이 되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결함을 가지고 본분을 잘할 수 있을까?’ 하루는 하나님 말씀을 보고 느끼는 바가 컸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저에게 실행의 길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본분을 이행한다거나 어떤 사역의 책임자가 되었다고 해서 성격을 바꾸려 하지 마라.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그럼 네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겠느냐? 어떤 성격을 지녔든, 어떤 선천적 조건을 갖추었든 네가 지키고 실행해야 할 것은 진리 원칙이다. 하나님은 마지막에 네가 하나님의 도를 준행하는지, 구원받을 수 있는지를 판단할 때, 네가 어떤 성격인지, 어떤 자질이나 능력, 재능, 은사, 재주를 타고났는지 등은 보지 않는다. 물론 네가 육체적 본능과 필요를 얼마나 억제했는지도 보지 않는다. 하나님은 네가 하나님을 따르고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고 체험했는지, 진리를 추구하고자 하는 의지와 다짐이 있는지를 본다. 결국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의 도를 준행하는 데 이르렀는지를 보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보고자 하는 바이다.(<말씀ㆍ7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3)> 중에서), 『진리 추구는 어떤 각도에서 말하든 가장 중요하다. 인성 측면의 결점과 부족함은 피할 수 있지만 진리 추구의 길은 절대 피할 수 없다. 네 인성이 아무리 완벽하고 고상해도, 혹은 다른 사람보다 결점이 적고 특기가 많아도 그것이 진리를 깨달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진리 추구를 대체할 수도 없다. 반면, 진리를 추구하여 깨달은 진리가 많으며 깨달은 진리가 매우 깊고 실제적이라면 인성 측면의 여러 결점과 문제를 보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네가 겁이 많고 내향적이며 말을 더듬는 데다가 소양 수준도 높지 않고 결함과 부족함이 많을지라도 실질적인 체험이 있다면, 비록 말은 더듬거려도 진리를 명확히 교제할 수 있을 것이고, 사람들은 듣고 나서 도움을 얻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소극적인 상태에서 벗어나고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오해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보아라. 말을 더듬더라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니 그 말들이 얼마나 중요하겠느냐! 잘 모르는 사람은 네 말을 듣고 네게 무식쟁이라고, 말할 때 문법도 틀리고 가끔 별로 적절하지 않은 단어를 사용한다고, 속어나 시쳇말을 쓴다고, 소양이 뛰어난 사람이 조리 있게 말하는 것처럼 품위가 있지도 않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네가 교제하는 말은 진리 실제가 있어서 사람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줄 수 있다. 사람들이 네 말을 듣고 나면 모든 먹구름이 사라지고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보아라. 진리를 깨닫는 것이 중요하지 않으냐? (중요합니다.) 네가 진리를 깨닫지 못했다면 설사 지식을 갖추고 말재주가 좋다고 해도 사람들은 네 말을 듣고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당신이 하는 말은 전부 도리일 뿐, 진리 실제는 하나도 없고 실질적인 문제도 전혀 해결하지 못해. 그러니 당신이 하는 말들은 다 빈말 아니겠어? 진리도 깨닫지 못하니 당신은 바리새인 아니겠냐고.’ 너는 수많은 도리를 이야기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다. 너는 속으로 ‘나는 진심을 다해 간절하게 말하는데 당신들은 왜 못 알아듣는 거지?’라고 생각한다. 너는 도리를 한 무더기 늘어놓았으니, 소극적인 사람은 여전히 소극적이고 하나님을 오해하는 사람은 여전히 오해하며 본분 이행 과정에서 존재하는 어려움은 조금도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네가 한 말은 모두 헛소리이다. 네 인성에 결함과 흠이 얼마나 되든 네가 하는 말에 진리 실제가 있다면 그 말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반면, 도리만 이야기할 뿐 실질적인 인식은 전혀 없다면, 아무리 많이 말해도 사람의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사람들이 너를 어떻게 생각하든 네가 말하는 것이 진리에 부합하지 않고 상대의 내적 상태에 맞지 않으며 상대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지 못한다면 사람들은 들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진리와 사람의 개인적인 조건 중 어느 측면이 중요하겠느냐? (진리가 중요합니다.) 진리를 추구하고 깨닫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니 인성에든 선천적인 조건에든 어떤 결함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에 속박되지 말고 진리를 추구해야 하며, 진리를 깨달음으로써 네가 가진 여러 결함을 보완하고, 결점을 발견하면 서둘러 바로잡아야 한다. 어떤 사람은 진리 추구는 중시하지 않고 인성의 어려움과 흠, 결함을 해결하는 것과 자신의 인성 문제를 바로잡는 것만 중시한다. 그 결과 몇 년간 공들여도 두드러진 성과를 얻지 못해 자신에게 실망하고, 자신은 인성이 너무 형편없으며 구제 불능이라고 생각한다. 몹시 어리석지 않으냐?(<말씀ㆍ7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3)> 중에서) 하나님 말씀은 무척이나 감동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실제로 우리에게 길을 알려 주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본분을 이행할 때는 성격이나 자질, 나이에 얽매여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의 본분 이행이 합격인지 아닌지를 판단하실 때는 그 사람의 성격이 내향적인지 외향적인지, 지위가 높은지 낮은지를 보시는 것도 아니고, 그 사람의 자질이 어떤지, 몇 살인지를 보시지도 않으며 그 사람에게 어떤 결함이나 버릇이 있는지를 보시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보다는 그 사람이 진리를 실행해서 진리 원칙에 따라 본분을 이행할 수 있는지, 하나님의 도를 행하는 사람인지를 보십니다. 리더 본분을 이행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형제자매들의 생명 진입과 본분 이행 과정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열심히 진리를 갖추고 실행하면, 실제적으로 진리를 교제하고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을 얻어 형제자매들의 문제를 해결하고 실행의 길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말이 좀 어눌하더라도 형제자매들이 듣고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리 추구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말이 유창하고 말주변이 좋더라도 진리를 교제할 수 없고, 실제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리더의 사역 역시 할 수 없습니다. 예전에는 늘 리더 본분을 이행하려면 적어도 말재주가 좋고 말을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처럼 말을 더듬고 어눌한 사람은 리더 본분을 이행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문에 리더 선거를 번번이 거절했습니다. 이제 보니 리더 선거를 판단하는 저의 기준이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집에서 리더 선거를 할 때는 원칙이 있습니다. 그 원칙은 사람의 외모나 생김새, 혹은 사람이 선천적으로 어떤 단점을 가졌는지를 보는 게 아니라, 진리를 추구하는지, 인성과 자질이 어떤지를 봅니다. 생각할수록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제 선천적인 조건과 단점, 약점은 본분 이행의 걸림돌과 장애물이 아니며, 그것을 본분을 거절할 이유나 핑계로 삼아서도 안 됩니다.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 요구에 따라 실행하는 것이야말로 본분을 잘하기 위한 열쇠입니다! 그러자 실행의 길이 보였습니다. 비록 말을 더듬고 버벅거리지만 저는 하나님 요구에 따라 본분을 이행하며 진리 원칙을 갖추는 데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제 허영심과 체면을 내려놓고 실질적이고 착실하게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기로 했습니다. 지금도 예배 때 교제하거나 하나님 말씀을 읽을 때면 말을 더듬곤 하지만, 이제는 바르게 대할 수 있고, 마음 상태도 훨씬 평온해졌습니다. 가끔은 의식적으로 극복하기 위해 예전에 형제자매에게 들은 조언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형제님은 말이 좀 빨라요. 그러면 말을 더듬기가 쉬우니까, 말하는 속도를 좀 늦추면 괜찮을 거예요.”, “말하다 걸릴 때는, 마지막 글자를 좀 길게 끄세요. 그러면 훨씬 나을 거예요.” 예배 드리며 교제할 때 저는 말하는 속도를 적절히 늦추고 음을 길게 끄는 등 일부러 맞추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렇게 긴장되지도 않고, 예배도 훨씬 수월해졌습니다. 한번은 문서 사역 담당자를 만나 사역에 대해 소통하는데, 속으로 걱정이 좀 앞섰습니다. ‘그 사람이 나보다 원칙을 더 잘 알 텐데, 긴장해서 말을 심하게 더듬으면 날 어떻게 볼까?’ 하지만 그 사역이 어려움에 맞닥뜨린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지난 번 편지로 소통했을 때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으니까 꼭 만나서 해결해야 해. 내가 말을 더듬는다고 문제를 해결하러 가지 않을 수는 없잖아. 그러면 사역이 지체될 거야.’ 이렇게 생각하자 마음속에 있던 굴레가 사라졌고, 저는 팀장과 만나 예배드리며 사역에 대해 소통했습니다.

제가 매번 말 더듬는 결함 때문에 본분을 거절했을 때부터, 말 더듬는 결함에 얽매이지 않고 담담하게 본분을 받아들이기까지의 시간을 돌이켜 보면, 그 과정에서 줄곧 하나님 말씀의 위로와 격려, 이끄심이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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