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은혜에 대한 자세

2024.5.27

중국 젠시(簡稀)

전 어렸을 때, 몸이 좀 허약해서 자주 아팠어요. 가끔은 부모님이 한밤에 절 안고 진료소를 찾곤 했는데, 아무리 의사의 말투가 거슬리고 태도가 불친절해도 제가 제때 치료받을 수 있게 하려고 그런 걸 다 감내하셨죠. 부모님은 제가 혹시라도 더 아플까 봐 밤을 새우면서 저를 챙겼어요. 나중에 제가 조금 컸을 때는 부모님들이 밤늦게 퇴근하셨고 항상 피로해 보였어요. 전 그런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팠는데, 부모님은 늘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엄마 아빠가 하나라도 더 벌어야 네가 편하게 살 수 있어. 네가 좋아하는 것도 돈이 있어야 사 줄 수 있는 거야.” 부모님이 절 위해 그렇게 희생하시니까 나중에 커서 부모님 고생시키지 말고 잘 효도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래서 부모님이 출근하시면 전 집 정리를 해 놨어요. 그리고 빨래하고 밥하는 것도 배웠고요. 저녁에 부모님이 돌아오셔서 제가 정리해 놓은 걸 보면 “내가 자식 하나 정말 잘 키웠다.”라고 하시면서 흐뭇해하셨죠. 부모님에게서 그런 얘길 들으면 너무 기뻤고, 부모님의 고생을 조금이라도 덜어 드리고 조금이라도 더 쉴 수 있게 해 드릴 수 있다면 제가 조금 힘들어도 좋았어요.

나중에 우리 세 식구가 다 하나님을 믿게 됐는데, 저는 다른 지역에 가서 본분을 이행하게 됐어요. 엄마는 제가 본분을 이행하는 걸 많이 지지해 줬어요. 아빠는 썩 내켜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제 선택을 존중해 주셨죠. 그러다 중국 공산당의 체포와 박해가 갈수록 심해지면서 많은 형제자매들이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잡혀가곤 했어요. 어느 날 집에 들렀는데, 아빠가 애타서 그러는 거예요. “내가 지금까지 널 어떻게 키웠는데, 난 너한테 큰 거 안 바란다. 그냥 우리 곁에 있으면 돼. 근데 네가 맨날 본분 이행한다고 멀리 나가 있으니까 평소에 보고 싶어도 못 보잖니. 요즘 경찰이 쌍심지를 켜고 잡으러 다니는데, 네가 잡히기라도 하면 난 어떡하냐? 그리고 네 앞날은 또 어떡할 건데?” 예상치 못했던 아빠의 말에 전 조금 놀랐어요. 경찰에 잡혀가는 게 두려워 본분 이행을 포기한다면 그건 하나님을 배반하고 탈주병이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진지하게 대답했죠. “아빠, 제가 본분 이행하는 걸 이렇게 막으면 안 되잖아요! 이제 저도 컸어요. 지금 나가서 본분을 이행하는 건 제가 충분히 고민하고 내린 결정이에요. 아빠는 당연히 응원해 주셔야죠.” 그러자 아빠가 화를 내면서 그러는 거예요. “내가 지금까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이렇게 그냥 가 버리냐. 내가 이제야 눈을 제대로 떴네, 지금까지 그냥 고마운 줄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자식을 키운 거였어.” 그런 말을 들으니까 가슴이 시리고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그리고 어렸을 때, 아빠가 절 보살핀다고 밤새 주무시지도 못했던 모습, 엄마 아빠가 절 잘 먹여 살리겠다고 열심히 일하던 모습들이 떠올랐어요. 근데 저는 부모 공경은 고사하고 같이 있는 것조차도 못 해 드리니까 딸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것 같은 거예요. 씩씩거리면서 가 버리는 아빠의 뒷모습을 보니까 마음이 편치는 않았어요. 그래서 최대한 부모님하고 같이 있고 싶어서 집 근처에서 최대한 할 만한 본분을 이행할까 싶은 생각도 했어요. 근데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생각해 봤어요. 하나님을 믿기 전에는 많이 공허했고, 제가 왜 이 세상에 왔는지 몰랐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사람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하나님께서 주신 생기로 숨을 쉬고, 저는 제 사명을 위해 이 세상에 오게 됐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 그러면서 제가 존재하는 가치를 알게 됐고 공허함과 막막함을 떨치게 됐고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누린 제가 양심 없이 본분 이행을 포기할 수는 없겠더라고요. 이런 생각 끝에 육을 이길 힘이 생겼고 그냥 집을 떠나 계속해서 본분을 이행했어요.

한 번은 본분을 이행하다가 경찰에 잡혀갔는데, 취조 과정에서 경찰이 제 둘째 삼촌을 구치소에 데리고 온 거예요. 경찰은 둘째 삼촌이 제 생부라고 하면서 빨리 교회 상황을 말하면 제 친부모님과 상봉할 수 있게 해 주겠다고 했어요. 그래도 전 하나도 말하지 않았어요. 결국 삼촌이 보석금을 지불하고 보증을 서면서 보석으로 풀려났죠. 경찰은 제가 키워 준 부모님을 따라 하나님을 믿게 됐다고 의심했기에 고향에 가지 못하게 했고, 삼촌에게 저를 다른 지역에 데리고 가라고 했어요. 더구나 삼촌이 보증을 서다 보니 경찰은 사흘이 멀다 하고 삼촌한테 전화해 겁을 줬어요. 결국 삼촌은 공산당의 유언비어에 넘어가 제가 하나님 믿는 걸 반대했어요. 그러면서 “너도 이만큼 컸으면 철이 들어야지. 나랑 너 엄마, 그리고 양부모님이 언제까지 뒤치다꺼리해야겠니. 네가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경찰이 매일 전화해서는 못살게 굴잖아. 내가 이 나이에 경찰한테 혼나면서도 웃으면서 사정하는 것도 다 너 때문이야. 너는 네 아빠가 얼마나 힘든지 아니?”라고 말했어요. 저를 낳아 주신 부모님부터 키워 준 부모님까지 모두 제 일에 연루되니까 너무 괴로웠어요. 옛말에 “모든 선행 중 효가 으뜸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부모한테 효도하고 걱정을 안 끼치는 게 자녀의 도리라고 생각했거든요. 양부모님이 지금까지 키워 주셨고, 낳아 준 부모님은 절 빼내 주겠다고 경찰한테 14만 위안을 갈취당했는데, 저는 자녀로서의 효를 다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니 너무 가책이 드는 거예요. 예전에는 본분 이행한다고 곁에서 챙겨드리지 못했는데, 이제는 하나님 믿는다는 이유로 경찰에 잡혀 고생까지 시키니까 자녀의 도리도 못 하고 짐만 더해 줬다는 죄책감이 들었죠. 생각할수록 너무 괴로웠어요. 심지어 ‘내가 하나님을 더 이상 믿지 않으면 가족들이 편하게 지낼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죽으면 경찰도 우리 집을 주시하던 걸 멈추지 않을까? 부모님들도 더 이상 이런 수모를 안 당하지 않을까?’라는 생각까지 했죠. 그때는 정말 심적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그런 생각은 하나님을 배반하려는 의도라는 걸 깨닫고 하나님께 너무 면목이 없었어요. 근데 절 낳아 준 부모님과 키워 준 부모님까지 저 때문에 고생하시니까 미안한 마음이 너무 컸고, 양쪽으로 신경 쓰이면서 안정이 안 됐어요.

한동안 삼촌과 숙모는 제가 신앙을 포기하게 만들려고 동료한테 절 감시해 달라고 부탁했고, 제가 조금만 집에 늦게 들어가도 “어디 갔었니? 누굴 만났니?”라고 캐물었어요. 숙모는 하나님을 믿지 말라고 반대하면서 아예 무릎 꿇고 사정했고 단식 투쟁까지 벌였죠. 그런 상황이 생기니까 정신적으로 무너질 것 같은 거예요. 이 집에서는 제 자유를 찾아볼 수 없고, 인권도 없었고, 누군가 목을 조여 오는 것처럼 숨이 막힐 정도였어요.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것 때문에 이렇게까지 해야겠어요? 왜 저한테 이러는 거예요?”라고 따지고 싶고 반항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저 때문에 연루되어 거액의 벌금까지 문 걸 생각하면 따지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어요. 반대로 제가 불효해서 그런 거라고, 어쩔 수 없어서 그런 거라고, 세상에 틀린 부모는 없다고 생각하면서 넘어갔죠. 한동안은 어떻게든 부모님께 잘해서 미안한 마음을 채워 보려고 했어요. 건강식품도 사 드리고, 가사를 혼자 다 하고, 죽도록 일하면서 열심히 돈을 벌었고, 매일 늦게까지 야근해도 싫지 않았어요. 한 푼이라도 더 벌어서 부모님을 편하게 해 드리고 싶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어느새 하나님과는 점점 멀어졌고, 심지어 기도조차도 하지 않게 되더라고요. 나중에 경찰한테서 연락이 왔는데, 절 데려가겠다는 거예요. 절 통해서 교회 상황을 더 파악하고 싶은 거였죠. 계속 집에 있으면 다시 잡혀갈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피신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떠나면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었고, 더구나 경찰이 저를 못 찾으면 부모님과 삼촌 내외한테 화풀이하지는 않을지 걱정됐어요. 그렇게 되면 제가 진짜 불효하는 것 같았어요. 머릿속에는 온통 부모님이 해 준 말뿐이었어요. 숙모는 제가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고, 제대로 된 가정을 원한다고 했으며, 삼촌은 제가 다 컸고 철이 들었으니까 부모님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었고, 아빠는 당신이 배은망덕한 자식을 키운 게 아니길 바란다면서 부모를 공경할 줄 아는 자식을 원한다고 했었죠. 정신적으로 무너질 것 같았어요.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죠. ‘하나님, 경찰의 체포 때문에 이제 집에는 있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렇게 떠나면 그것은 불효가 되고 양심적이지 못한 것 같아 너무 괴롭습니다. 하나님, 제가 어떻게 선택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절 이끌어 주십시오.’ 기도하고 난 후에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이 떠올랐어요. 『새로운 생명이 이 세상에 올 때 창조주의 예정과 인도가 없다면 가족, 귀속, 진정한 집도 없이 어디로 가야 할지, 어디에서 머물러야 할지 알지 못할 것이다. 창조주가 세심히 안배해 머무를 곳을 주었기에 그에게 부모와 귀속, 가족이 생기는 것이다. 이로부터 이 생명의 인생 여정이 시작된다. 이 과정에서 새 생명의 탄생은 창조주의 안배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며, 장차 이 생명이 가지게 될 모든 것 역시 창조주가 부여하는 것이다. 이 새 생명은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표류체에서 조금씩 피와 살이 있고 모양을 갖춘 사람이 되어 간다. 그 생명은 사고를 하고 숨을 쉴 수 있다. 따뜻함과 차가움을 느끼고 물질세계의 여느 피조물과 다를 바 없이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있다. 또한, 창조된 사람이라면 누구나 반드시 겪게 될 세상만사를 경험하게 된다. 창조주가 한 사람의 출생을 결정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사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부여해 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한 사람이 태어난다는 것은 사는 데에 필요한 모든 것을 창조주로부터 얻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장차 또 다른 형태로 창조주의 공급과 그의 주재 아래에서 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알게 됐어요. 저는 고독한 표류체에 불과한 존재이고, 단지 하나님께서 저를 위해 가족과 부모를 예비해 주신 거죠. 그건 하나님의 주재잖아요. 제가 세상에 온 건 단지 가족의 따뜻함을 누리고 부모에게 효도하기 위해 온 게 아니라 피조물로서 져야 할 책임과 사명을 위해 온 거잖아요. 근데 오직 부모님의 바람을 채워 주기 위해 제 본분을 버린다면 그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모습이 아니죠. 제 모든 건 하나님께서 주신 건데, 어떻게 제 본분을 버리고 하나님을 배반하겠어요. 결국 저는 집을 떠나 본분 이행을 시작했어요.

얼마 안 돼, 경찰이 저를 찾지 못하니까 둘째 삼촌을 잡아 가뒀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소문에는 제가 나타나면 삼촌을 풀어 주기로 했다는 거예요. 기절초풍할 일이었고, 삼촌한테 너무 미안했죠. 당장 돌아가서 저랑 삼촌을 맞바꾸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어요. 마음은 본분에 있지 않았고, 머릿속에는 온통 함께 웃고 떠들던 가족들의 모습뿐이었어요. 제가 가족들한테 불행을 안겨 준 것 같았거든요. 특히 삼촌이 경찰에 잡혀가 무슨 봉변을 당할지, 심하게 폭행당하지는 않을지 걱정됐죠. 생각할수록 너무 괴로워서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하나님, 오늘 저한테 이런 상황이 닥쳤는데,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마음이 아프고 본분을 이행하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근데 이런 상태에 빠져 있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나님, 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가 이런 상태를 바로잡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세요.’ 기도를 하고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게 됐어요.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하기 위해 가정을 버린 사람이 있다. 그로 인해 이름이 알려지자 정부에서는 수시로 그의 집을 찾아가 수색하며 그의 부모를 괴롭히고, 그를 내놓으라고 협박했다. 이에 이웃사람들은 “양심도 없지. 부모를 봉양하지도 않고 말이야. 효도는 고사하고 부모에게 이렇게 많은 폐를 끼치다니 불효자야!”라고 비난했다. 이 비난에 진리에 부합하는 말이 한마디라도 있느냐? (없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말이 이방인의 눈에는 옳은 것으로 보이지 않겠느냐? 이방인들 사이에서 이런 관점은 가장 정당하고 합리적이며, 윤리에 부합하며, 이렇게 말하는 것은 처신의 기준에도 부합한다. 그 기준 안에 얼마나 많은 내용이 들어 있든, 예컨대 부모를 어떻게 공경해야 할지, 부모를 어떻게 죽을 때까지 책임져야 할지, 부모에게 얼마나 보답해야 할지 등의 기준이 진리에 부합하든 부합하지 않든, 그 기준은 이방인의 눈에 긍정적인 사물이자 긍정적 에너지, 옳은 것으로 보이며, 어떤 집단에서도 질책받지 않는다. 이방인들 사이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기준은 바로 이런 것인데, 네가 이런 것들을 해내야 남들 눈에 합당한 자격을 갖춘 좋은 사람으로 보인다.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깨닫기 전까지, 너 또한 이렇게 처신하는 자가 좋은 사람이라고 확신하지 않았더냐? (그렇습니다.) 게다가 너는 이러한 것들로 자신을 평가하고 제약하며, 스스로에게 이런 사람이 되라고 요구했다. 만약 네가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네 처신의 기준 안에는 분명 이 한 가지가 들어 있을 것이다. 부모에게 어떻게 효도할 것인지, 어떻게 부모의 걱정을 덜어 줄 것인지, 어떻게 부모를 자랑스럽게 하고 체면을 살려 주고 조상을 빛낼 것인지 등은 네 마음속에서 처신의 기준이자 방향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설교를 듣고 난 후, 네 관점은 바뀌기 시작했다. 너는 모든 것을 버리고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해야 한다는 사실을, 하나님은 사람이 그렇게 처신하기를 요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진리임을 아직 확신하지 못했을 때, 너는 마땅히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고 생각했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모순적인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 말씀의 끊임없는 양육과 목양을 통해 조금씩 진리를 깨닫게 되면서 너는 비로소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이치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이 진리를 받아들이고, 사람의 전통 관념과 상상 속 처신의 기준을 철저히 저버렸다. 이러한 것들을 완전히 내려놓으면, 하나님을 따르고 본분을 이행할 때 이방인의 판단과 정죄의 말에 통제되지 않고 자유롭게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 실제란 무엇인가>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많은 걸 느꼈어요. 전 대부분 세상 사람의 윤리를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있었는데, 그건 다 진리에 부합하지 않는 거죠. 제 생명은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됐고 하나님께서 제 영혼을 이 세상에 보내시고, 가족과 부모를 예비하시고, 말세의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택하시고,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할 기회를 마련해 주셨잖아요. 그건 온전히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이죠. 근데 가족이 경찰에 끌려가게 되자 제가 하나님을 믿어서 가족한테 재앙을 초래했다고 생각하고 본분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배반하려고 했었으니 그게 얼마나 어리석은 거예요. 제 가족들이 그런 수난을 당하는 건 완전히 공산당 악마가 벌인 짓이잖아요. 그들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크리스천을 핍박하고, 제 가족들을 괴롭히고 체포하면서 우리 부모님에게 하루도 편한 날을 허락하지 않았어요. 사실 원흉은 공산당이거든요. 근데 저는 공산당을 증오하는 게 아니라 제가 하나님을 믿어서 가족한테 누를 끼치게 됐다고 생각했으니 천지 분간을 못 하는 존재였죠. 그제서야 깨달았어요. 제가 하나님을 따르면서 본분을 이행하는 건 당연한 거고, 양심과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거였죠. 그때 이 말씀이 떠올랐어요. 『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얼마나 많은 길을 가야 하는지는 모두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것이라 그 누구도 누구를 도와줄 수 없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길 … 6> 중에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모든 사람의 일생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고, 하나님께서 다 주관하시고 주재하시잖아요. 누가 고생을 얼마나 해야 할지도 하나님께서 다 정해 놓으신 거라 제가 바꿔 놓을 수 없는 거죠. 저를 낳아 주신 부모님이나 키워 주신 부모님이나 다 하나님께 달려 있으니까 제가 할 일은 다 하나님께 맡겨야 하는 게 맞는 거죠. 그래서 조용히 기도했어요. 모든 걸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안배하심에 순종하겠다고요.

그 후에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면서 제 내적 상태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됐어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중국 전통문화의 영향으로 중국인의 전통 관념에는 마땅히 부모에게 효도해야 하고,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는 자는 불효자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사람은 어릴 때부터 이런 것을 주입받았으며, 거의 모든 가정에서 이렇게 가르치고, 학교와 사회에서도 이렇게 교육한다. 사람의 머릿속에 이런 것이 주입되면,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해. 부모님께 효도하지 않는다면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라 불효자야. 사회 여론의 질타를 받을 거고, 양심 없는 사람이 될 거야.’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이 관점이 옳으냐? 하나님이 선포한 그 많은 진리를 사람들은 모두 보았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반드시 부모에게 효도하라고 했느냐? 하나님을 믿으며 반드시 깨달아야 하는 진리 가운데 그런 내용이 있느냐? 그런 내용은 없다. 하나님은 몇몇 원칙들만 교제했을 뿐이다. 하나님은 말씀에서 어떤 원칙으로 사람을 대하라고 요구하느냐?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을 미워하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이 지켜야 할 원칙이다. 하나님은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을 사랑한다. 이 또한 사람이 사랑해야 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미워하거나 거역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혐오하는 사람으로, 우리도 마땅히 혐오해야 한다. 이것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이다. 만약 네 부모가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 믿는 것이 올바른 길이고 하나님을 믿어야 구원받을 수 있음을 분명히 알면서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들은 틀림없이 진리를 싫어하고 증오하는 사람일 것이며, 틀림없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증오하는 사람일 것이다. 하나님도 당연히 그들을 혐오하고 증오할 것이다. 너는 이런 부모를 혐오할 수 있겠느냐? 그들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욕한다면, 틀림없이 마귀이자 사탄일 것이다. 너는 그들을 증오하고 저주할 수 있겠느냐? 이는 다 현실적인 문제이다. 네 부모가 네가 하나님 믿는 것을 막는다면, 너는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겠느냐?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을 미워하라.”라는 하나님의 요구대로 대해야 한다. 은혜시대에 예수는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라고 했다. 은혜시대에 벌써 이 말씀이 있었고, 오늘날 하나님이 한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을 미워하라.”라는 말씀은 더욱 명확하고 단도직입적이다. 그러나 사람은 흔히 하나님이 한 이 말씀의 참된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가령 하나님을 부인하고 대적하여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사람이 있다고 치자. 하지만 그 사람이 너의 부모나 가족이라면, 그가 겉으로는 악인 같아 보이지 않고 네게도 잘해 준다면, 너는 그를 미워할 수 없으며, 심지어 가까이 왕래하며 변함없는 관계를 유지할 것이다. 하나님이 이런 사람들을 증오한다는 말을 들을 때면 너는 마음이 괴롭다. 하나님 편에 서지 못하고 모질게 그들을 버리지 못하며 정에 얽매여 여전히 그들과의 인연에 연연하는데, 이는 무엇 때문이겠느냐? 네 정이 너무 깊어 그것이 네가 진리를 실행하는 걸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너를 잘 대해 주므로 네가 증오할 수 없는 것이다. 네게 해를 끼쳤을 때 그제야 증오하기 시작한다면, 너의 그 증오가 진리 원칙에 맞겠느냐? 이 밖에도, 너의 내면은 전통 관념에 얽매여 있다. 너는 너의 부모나 가족인 그들을 증오하면 사회로부터 버림받고 여론의 질타를 받을 것이고, 인간이 아닌, 양심 없는 불효자라는 비난을 받을 것이며, 벌을 받고 벼락을 맞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설령 그들을 미워하려고 해도 양심에 찔리는 것이다. 그런 양심적 반응이 어디서 비롯된 것이냐? 어려서부터 가정의 유전과 부모의 교육, 전통문화의 영향이 너에게 일종의 사상을 심어 놓았고, 이 사상이 네 마음에 깊이 뿌리내린 탓에 너는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옛 조상의 유전이 영원히 좋은 것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네 마음속에 먼저 들어가 주인이 된 그것은 네가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을 크게 교란하고 방해한다. 또한, 네가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을 미워하지 못하게 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자신의 잘못된 관점을 알아야 진정으로 돌이킬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깨달았어요. 사탄은 이런저런 방식으로 사람을 패괴시키고 있었죠. 예를 들면, 부모의 가르침, 학교의 교육, 주변 사람들의 말들을 통해 부모가 낳아 주고 키워 주었으니 우리는 당연히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해야 하고, 그것을 못 하면 양심 없고, 불효자이니 사람들에게 버림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경우죠. 저도 어려서부터 그런 관점에 주입을 받았어요. 뭐 “모든 선행 중 효가 으뜸이다.”이라든가 “세상에 틀린 부모는 없다.”라든가, 이런 전통적 사상 관점이 제 안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저는 집을 떠나 본분을 이행하면 부모님을 보살펴 줄 수 없다는 생각에 죄책감을 느끼게 됐고, 본분을 이행하려는 마음을 잃게 됐죠. 심지어 본분 이행을 위해 다른 지역에 간 걸 후회했고, 둘째 삼촌이 14만 위안의 보석금을 내고 저를 빼내 주고, 나중에 경찰한테 잡혀가기까지 했을 때, 저는 제가 하나님을 믿은 탓에 그들에게 누를 끼쳤다고 생각하고, 본분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배반하려고 했어요. 심지어는 그냥 죽어 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었거든요. 삼촌과 숙모는 하나님 믿지 못하게 하려고 제 자유를 빼앗고 제 행적을 감시했고, 심지어 무릎 꿇고 사정하고, 단식하면서까지 하나님을 믿지 말라고 반대했었어요. 물론 그때도 너무 괴롭고 답답했지만, 반항을 감히 할 수도, 할 생각도 없었어요. “세상에 틀린 부모는 없다.”라는 생각이 컸고, 오히려 부모님이 무릎 꿇고 사정하게 만든 제가 자식된 도리를 다하지 못한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때도 저는 부모님의 요구에 따라 본분을 이행하지 않은 건 하나님에 대한 배반이고, 진리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될 수 있다는 걸 알았지만 반항할 힘이 없었어요. 물론 ‘하나님을 믿지 않겠다.’라는 말을 뱉지는 않았지만, 거의 6개월 동안 제가 했던 행동을 보면 사탄과 전통 사상 앞에 고개 숙인 거나 다름이 없었어요. 온통 과오와 오점만 남겼고, 매번 하나님을 배반하는 행동만 했었죠. 근데 이번에는 제대로 알게 됐어요. 부모 공경이 긍정적인 건 맞지만 진리는 아니잖아요. 근데 그런 관점 때문에 원칙을 잃게 되는 거였고, 선악을 구분 못 하고, 천지를 분간하지 못하게 되는 거였어요. 삼촌 내외가 하나님을 믿지 말라고 반대하고, 다른 형태로 저를 가두고, 하나님을 모독하고 심지어 ‘우리가 죽기 전까지는 네가 하나님 믿는 걸 눈 뜨고 볼 수 없다. 이 집에 하나님이 존재하면 우리가 살 수 없고, 우리가 있으면 하나님은 존재할 수 없다.’라는 말까지 했었거든요. 그들의 본질은 하나님과 적대적인 거잖아요. 그리고 키워 준 아빠는 계속 제 발목을 잡으면서 사탄의 심부름꾼이자 부정적인 역할을 했었어요. 그들을 분별하고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을 미워하는 것에 동참해야 하는 게 당연하지만, 저는 “모든 선행 중 효가 으뜸이다.”라는 전통 사상에 묶여 있다 보니까 천지를 분간 못 하고 하나님을 거역하기만 하고, 자칫 본분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배반할 뻔했어요. 그제야 사탄이 주입한 사상과 관점은 모두 간계였고, 사람을 미혹하고 해치는 거란 걸 분명히 알게 됐어요.

그 후에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게 됐어요. 『자식의 입장에서 부모가 너를 극진하게 보살피든, 정성껏 보호하든, 결국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그들이 너를 키우는 목적이 무엇이든 이것은 그들의 책임이다. 그들이 너를 낳았으니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이렇게 본다면 부모가 네게 하는 것이 은혜라고 할 수 있겠느냐? 그렇다고 할 수 없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부모가 네게 그 책임을 다하는 것을 은혜라고 할 수 없다. 화초를 하나 키워도 물을 주고 비료를 주며 책임을 다하는데 그것도 은혜라고 할 수 있겠느냐? (은혜라 할 수 없습니다.) 더더욱 그렇다고 할 수 없다. 작은 화초는 밖에서 더 잘 자란다. 땅에 심으면 햇볕을 쬐고 바람과 비를 맞아 더 튼튼하게 자라지만, 집에서 화분에 옮겨 심어 키우면 밖에서 자라는 것만 못하다. 어디서든 못 살겠느냐? 어디에 있든 하나님이 정해 놓은 운명이 있다. 너는 생명을 가진 사람이다. 하나님은 모든 생명이 살아가도록, 그리고 모든 피조물이 준수하는 법칙을 준수하도록 책임진다. 한 사람으로서 너는 부모가 양육하는 환경에서 생활할 뿐이니 그 환경에서 성장하고 살아가야 한다. 이런 환경에서 살아가는 것은 거시적으로 보면 하나님이 정해 놓은 것이고, 미시적으로 보면 부모가 너를 키우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냐? 어찌 되었든 부모가 너를 키우는 것은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부모가 너를 성인이 될 때까지 키우는 것은 그들의 의무이자 책임이지 은혜라고 할 수는 없다. 만약 은혜라고 할 수 없다면 이것은 네가 누려 마땅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럴 수 있습니다.) 이는 네가 누려야 할 하나의 권리이다. 너는 마땅히 양육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미성년일 때는 양육받는 것이 네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네가 받은 것은 단지 너에 대한 부모의 책임이지 부모의 은혜나 은정이 아니다. 모든 생물이 새끼를 낳아 기르고 번식하며 후대를 양육하는 것은 하나의 책임이다. 예를 들어 새, 소, 양 심지어 호랑이도 새끼를 낳은 후에는 키워야 한다. 후대를 키우지 않는 생물은 없다. 물론 예외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아주 드물다. 이는 생물이 생존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생물의 본능이다. 그것을 은혜로 귀결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이는 그저 창조주가 동물과 인간에게 정해 준 법칙을 따르는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부모가 너를 키우는 것은 결코 은혜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부모가 너의 채권자가 절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이 네게 책임을 다하고 심혈을 쏟고 돈을 썼다고 해서 너더러 갚으라고 하는 것은 당치 않은 일이다. 그것이 부모로서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책임이고 의무라면 아무런 대가가 없어야 한다. 보상을 요구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부모가 너를 키우는 것은 단지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일 뿐이니 대가가 없어야 하고 거래가 되어서도 안 된다. 그러니 너는 갚을 생각을 가지고 부모를 대하거나 부모와의 관계를 다룰 필요가 없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상)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7)>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알게 됐어요. 부모가 자식을 낳고 키우고, 극진하게 보살피는 건 은혜가 아니라 부모로서 당연히 다해야 하는 책임이자 의무인 거죠. 하나님의 말씀처럼 밖에서 자라는 작은 화초를 집 마당에 옮겨 심으면 사람에게는 물을 주고, 비료를 주면서 키우고 챙겨야 하는 책임이 따르고, 고양이나 강아지 같은 작은 동물도 후대를 이어 나가기 위해 자기 새끼를 보살피는 건 본능적인 것과 마찬가지였어요. 부모와 자녀 사이도 다를 게 없었죠. 자식이 성인이 되기 전에 부모가 자녀를 키우고 돌보는 건 부모가 응당 해야 할 책임과 의무이자 하나님께서 주신 본능이기 때문에 자녀가 부모에게 빚진 건 결코 아니었어요. 전 여태 저를 키워 주신 부모에게는 정말 극진하게 보살펴 주신 은혜가 있으니 당연히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둘째 삼촌과 숙모에게는 낳아 주신 은혜가 있으니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이제는 정확하게 알았어요. 제 숨결은 부모님이 주신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거잖아요. 하나님께서 저에게 숨결을 주시지 않았더라면 부모가 낳았어도 사산밖에 안 되잖아요. 제가 클 때까지 부모가 저를 키우고 보살피고, 좋은 성장 환경을 만들어 준 건 부모로서 당연한 의무를 다하는 거였고, 또한 하나님의 정하심이자 안배하심이 있는 거였어요. 무엇보다 제가 성장하는 과정에 저를 진정으로 보살펴 주시고 보호해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죠. 일례로 제가 하교 때 스쿠터 속도 조절을 못해 석판과 트럭 사이에 낀 적이 있거든요. 그때 대형 트럭이 빠른 속도로 달렸고, 그 속도에 제 스쿠터도 부득이하게 앞으로 미끄러져 갔는데, 제 발이 스쿠터와 트럭 사이에 낀 채로 끌려갔어요. 그러다가 넓은 도로까지 가서야 제 스쿠터가 멈췄거든요. 정말 위험한 상황이었고, 보는 사람들도 제가 크게 다쳤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손에 땀을 쥐었어요. 물론 저도 걷지 못할 정도로 많이 다쳤을 거라고 생각했고요. 근데 놀랍게도 상처 하나 없었거든요. 그건 분명 하나님께서 묵묵히 보살펴 주시고 보호해 주신 거잖아요. 그리고 삼촌네가 14만 위안을 내고 제가 보석으로 풀려났을 때, 저는 정말 큰 은혜라고 생각하면서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깨닫고 보니까 외적으로는 삼촌네가 돈을 내 주었지만, 그 뒤에는 하나님의 주재하심과 안배하심이 있었어요. 한동안 삼촌네 자신도 놀랄 정도로 돈을 쉽게 벌었어요. 솔직히 하나님께서 그렇게 돈을 벌 수 있게 해 주시지 않았으면 절 위해 내줄 돈이 어디 있었겠어요. 그때 하나님의 이 말씀이 생각났어요. 『우리는 누구든 우리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을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여야 한다. 특히 우리 부모가 우리를 낳아 키운 것은 모두 하나님의 안배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재한 것이다. 사람은 단지 봉사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자신의 잘못된 관점을 알아야 진정으로 돌이킬 수 있다> 중에서) 겉보기엔 부모가 저를 낳고 키우고, 둘째 삼촌 내외가 돈으로 저를 뻬내 줬지만, 진리의 편에서 보면 모두 하나님의 주관하심과 안배하심이 있었어요. 부모는 저의 채권자가 아니기에 전 제 목숨과 하나님께 구원받을 기회를 담보로 빚을 갚을 이유가 없었어요. 부모 공경은 할 수 있지만 그건 제 능력이 되는 범위에서, 합당한 상황과 여건이 되는 만큼에서 하면 되는 거였죠. 그럴 여건이 안 되면 가책받을 것도 없고 오직 제 본분을 이행하는 데 집중하면 되는 거였죠. 만약 부모 공경 때문에 하나님을 포기하고, 진리를 포기한다면, 사람들한테 효자로 불리게 되더라도 창조주를 배반하게 되는 거잖아요. 그게 진짜 대역무도한 거고 인성도 없는 거죠. 사실 제가 진짜 미안해 해야 할 대상은 부모가 아니라 하나님이시죠.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저를 보살펴 주시고 보호해 주셨기 때문에 제가 감사해야 할 대상은 하나님이시거든요.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니까 가슴이 뭉클해지는 거예요. 그래서 기도했어요. ‘하나님, 지금 제 부모들이 어떤 일을 겪든, 경찰이 부모님을 어떻게 대하든 다 하나님 손에 있는 줄 믿습니다. 제가 바꿀 수 있는 건 없습니다. 부모님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고 저는 마음을 가다듬고 착실하게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고, 당신의 역사하심을 잘 체험해 나가겠습니다.’

그 뒤로는 가족들한테 닥치는 상황에 대해서도 한결 편하게 생각했고, 본분을 어떻게 잘 이행할지에 대해 생각했어요. 얼마 안 돼, 엄마랑 연락이 닿았어요. 편지를 통해 엄마의 체험을 들었는데, 엄마는 이번 상황을 겪으면서 진리를 추구해야겠다는 의지를 더 굳히게 됐다면서 집 걱정은 하지 말고 진리 추구에만 신경 쓰고 본분을 잘 이행하라고 했어요. 게다가 경찰도 제가 집에 돌아오지 않는 상황에서 삼촌을 억류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아니까 풀어 줬다고 했어요. 정말 너무 감동이었어요. 그리고 저에게 닥친 모든 상황 속에는 온전히 제 안의 불순물을 정결케 하고, 저의 일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로잡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하나님은 제 생명에 대해 끝까지 책임져 주셨어요.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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