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억압된 감정을 해결했는가

2025.9.26

중국 화솽(華霜)

2023년 12월, 저는 지역 리더로 선출되어 매일 수많은 사역을 점검하고 시행해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마음가짐이 비교적 괜찮았고, 제게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윗선 리더가 사역을 지도하는 편지를 보는 데 집중하며 거기서 길을 찾았고, 파트너 자매와 함께 상의하고 소통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점차 어떻게 사역을 점검해야 하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며칠 후, 파트너 자매가 월말에 저희가 사역 보고를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보니까 보고할 항목이 아주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각 사역의 진도 및 나타난 문제와 편차, 형제자매들이 본분을 이행하면서 겪는 부족한 점과 어려움, 그들의 내적 상태 등, 이런 문제들을 전부 명확히 파악해야 했고 사역 계획과 해결 방안까지 작성해야 했습니다. 저는 순간 속으로 짜증이 났습니다. ‘사역 보고에 이렇게 세부적인 내용이 많다니, 얼마나 신경을 쓰고 머리를 써야 하는 거야?’ 뒷부분으로 갈수록 머리에 쥐가 나는 것 같았습니다. 특히 제가 잘 모르는 일부 사역은 관련된 원칙과 업무를 익히고 배우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나는 이제 막 이 본분을 접했으니까 이번 달 사역 보고서는 써 내지 못 해도 파트너 자매에게 기댈 수 있지만, 다음 달에는 내가 일일이 다 해야 하지 않겠어? 그럼 얼마나 신경 쓰고 고생해야 하는 거야!’ 게다가 요 며칠간 쌓인 사역들까지 생각하니 머리가 터질 것 같았고, 본분에서 도망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이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에, 하나님께 기도하는 동시에 방법을 찾으며 일을 해 나갔습니다. 하지만 때로 자매들이 사역상 존재하는 문제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들으면, 일부러 이어폰을 끼고 찬양을 들으며 토론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제가 문제 해결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그렇게 신경쓰고 수고할 필요도 없으니까요.

사역에 대해 깊이 알아갈수록, 저는 각 사역마다 관련된 세부 사항이 많고, 어떻게 해결하고 실행해야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지 마음 써서 궁리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제가 이전에 단일 사역을 할 때보다 사역량이 훨씬 많았습니다. 저는 반발심이 들었습니다. ‘내가 뭐 하러 이렇게 힘들게, 이렇게 신경을 많이 써야 해? 단일 사역 본분을 이행하면 얼마나 좋아, 매일 이렇게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되잖아!’ 육적인 편안함을 생각할수록 리더를 하는 것이 정신적으로 너무 피곤하게 느껴졌습니다. 한동안 저는 매우 억눌리고 괴로웠으며, 시도 때도 없이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파트너 자매가 저에게 사역을 상의해도 대꾸를 하는 둥 마는 둥 건성으로 대했고, 그저 제 앞에 놓인 일에만 고개를 파묻고 있었습니다. 저는 제 내적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자꾸 이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신경 쓰이고 골치 아파서 싫어하고, 육적인 편안함만 찾으려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꺼이 본분을 이행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내적 상태 속에서 살고 싶지 않사오니, 제가 자신의 패괴 성품을 인식도록 이끌어 주시옵소서.” 그 후,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제 내적 상태를 조금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자유와 해방을 맛볼 수 있고, 사는 것이 실로 즐거우며, 평안과 기쁨이 있다고들 하는데, 왜 저는 남들처럼 행복하거나 평안하지 않을까요? 왜 저는 기쁘지 않을까요? 왜 이렇게 억압과 피로 속에 살아가는 걸까요? 남들은 어떻게 저렇게 행복하게 사는 거죠? 저는 왜 이렇게 불쌍하게 살고 있을까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너희는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그의 이런 억압이 어디서 비롯된 것이냐? (육이 만족을 얻지 못하고 괴롭기 때문입니다.) 육이 괴롭고 억울한데 만약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육의 괴로움은 그다지 괴롭지 않다고 생각되지 않겠느냐? 마음에 안위와 평안, 기쁨이 있어도 억압을 느끼겠느냐?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억압이 육의 괴로움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성립하지 않는다. 만약 육의 괴로움이 너무 커서 억압을 느끼는 것이라면, 너희는 괴롭지 않으냐? 너희가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억압을 느끼겠느냐? 너희가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억압이라는 정서에 빠지겠느냐?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너희는 하루 종일 사역으로 분주하지 않느냐? (다소 분주합니다.) 모두가 분주하고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일한다. 하루에 수면 시간, 식사 시간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시간을 컴퓨터 앞에서 보낸다. 눈과 머리가 피로하고 몸도 피곤하지만 억압을 느끼느냐? 이 피로가 너희에게 억압을 가져다주느냐? (아닙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이런 억압은 어찌하여 생기는 것이냐? 분명 육적인 피로로 인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에서 비롯되는 것이겠느냐? 만약 사람이 늘 육의 안일과 쾌락만을 찾거나 추구하며 고생하려 하지 않는다면, 그의 육이 조금이라도 괴롭거나 남보다 더 고생하거나 혹은 평소보다 피로할 때 그는 억압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것이 억압을 야기하는 원인의 하나이다. 만약 사람이 육적인 고생을 별것 아닌 것으로 생각해서 육의 안일을 추구하지 않고 진리를 추구하고 본분을 잘 이행하여 하나님을 흡족게 하기를 추구한다면, 육적인 고생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설령 때로 분주하고 피곤하여 지치더라도 한숨 자고 나면 괜찮아진다. 괜찮아지면 계속 분주히 보낸다. 그의 마음은 본분과 사역에 있으니 육적으로 조금 피곤하더라도 별것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람의 생각에 문제가 생겨 늘 육의 안일만 추구하고자 한다면, 육적으로 조금 억울하거나 만족을 얻지 못할 때 부정적 정서가 생겨난다. 그렇다면 이렇게 항상 마음대로 하고 육을 방종하며 삶을 즐기려는 부류의 사람이 만족을 얻지 못할 때 늘 억압이라는 부정적 정서에 빠지는 이유가 대체 무엇이겠느냐? (안일과 육의 즐거움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일부 사람의 경우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5)>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나서야 저는 제가 편안함을 추구하는데 육이 만족을 얻지 못했고, 그 때문에 억압되고 의기소침한 부정적인 감정 속에서 살면서 본분을 이행할 때 늘 괴로워하고 짜증스러워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단일 사역을 할 때 사역량이 많지 않았고, 게다가 제가 비교적 잘하는 일이라 수월하게 해낼 수 있어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힘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리더가 되어 책임져야 할 사역도 많고 신경 써야 할 일도 많으며, 해결하고 궁리해야 할 문제도 많아졌습니다. 게다가 익숙하지 않은 사역이 많아서 문제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고 처음부터 배워야 했습니다. 그러자 저는 억압감과 짜증을 느끼며 이런 환경에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만약 제가 본분을 중요하게 여기고, 육적인 편안함을 누리고자 추구하지 않았다면, 조금 힘들더라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고 여기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제 생각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그 후 저는 사람이 왜 억압된 감정을 느끼는지에 대해 하나님께서 밝히신 말씀을 찾아보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본분을 이행하려 하지도 진리를 교제하려 하지도 않는다. 교회 생활에도 적응이 안 되고 적응하지도 못해 항상 너무나도 고통스러워하며 무력감을 느낀다. 그럼 알려 주겠다. 속히 떠나 세상으로 가서 네 개인적 목표와 방향을 찾고 네가 원하는 삶을 살아라. 하나님 집에서는 한 번도 사람에게 강요한 적 없다. … 이런 부류의 사람이 늘 억압을 느낀다는 것은 정확히 말해 자기의 육체를 방종하고 자기의 욕망을 채우는 것이 그들의 바람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사심이 너무 커 무슨 일이든 제멋대로, 하고 싶은 대로만 하려 하고 규칙을 지키지 않고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지 않으며 자기 생각과 기호, 욕망, 사적인 이익에 따라 일을 처리하고자 한다. 정상적인 인성을 갖추지 못한 이런 부류의 사람은 본연의 일을 하지 않는다. 본연의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 어디에 가든 억압을 느끼고 혼자 살아도 억압을 느낀다. 좋게 말해서 이런 사람은 앞날이 유망하지 않고 본연의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인성이 정상적이지 않고 머리가 약간 아둔한 사람이다. 본연의 일을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더냐? 그는 의식주를 무척 단순하게 여겨 이런 일은 보통이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가 중시하는 것은 인생의 길, 사람의 사명, 인생관, 가치관이다. 앞날이 유망하지 않은 사람은 하루 종일 무엇에 골몰하느냐? 항상 어떻게 하면 게으름을 피우고 요령을 피울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잘 먹고 잘 놀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육의 안위를 확보하고 몸이 편할 수 있을지 고민하지 중요한 일은 고민하지 않는다. 그러니 하나님 집의 본분을 이행하는 장소와 환경에서 그는 억압을 느끼는 것이다. 하나님 집에서는 사람이 본분을 더 잘 이행할 수 있도록 본분 이행에 연관되는 일부 상식과 업무 지식을 배우기를 요구하고, 더 많은 진리를 깨달아 진리 실제에 진입하고 모든 일을 하는 원칙이 무엇인지 알 수 있도록 사람이 늘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기를 요구한다. 하나님 집에서 교제하고 언급하는 이 모든 것은 사람이 생활하고 본분을 이행하는 범위에 속하는 주제나 실제의 일과 관련된 것으로, 사람이 본연의 일을 하고 올바른 길을 걷게 한다. 본연의 일을 하지 않고 제멋대로인 사람은 이런 중요한 일을 하려 하지 않는다. 제멋대로 해서 이루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육의 안위와 기쁨, 평안이며 구속받지 않고 손해 보지 않으며 먹고 싶은 것을 실컷 먹고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하는 것이다. 그들의 인품, 그리고 그들이 마음속으로 추구하는 바로 인해 그들은 항상 억압을 느낀다. 그들과 아무리 진리를 교제해도 그는 바뀌지 않고 자신의 억압을 해결하지도 못한다. 그는 이런 부류의 사람이고 본연의 일을 하지 않는 인간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5)>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나서야 저는 늘 편안함을 즐기고 육의 욕망을 채우려는 사람은 모두 본연의 일을 하지 않는, 가망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제멋대로 살고 싶어 하고, 막상 제대로 된 일을 할 때가 되면 게으름을 피우고 요령을 부리며, 육이 조금이라도 수고하고 고생하면 억압감과 괴로움을 느낍니다. 이런 사람은 양심과 이성이 부족합니다. 제 최근의 내적 상태에 비춰 보니, 저는 매일 각 사역의 문제와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는 데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가벼운 본분 한 가지만 이행해서 육이 좀 편안하기를 바랐습니다. 파트너 자매들이 사역을 상의하는 것을 듣고는 일부러 이어폰을 끼고 찬양을 들으며 토론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또 자매가 저와 사역상의 문제를 상의할 때도 상대하고 싶지 않아서 되도록 피하고, 정 피할 수 없을 때는 건성으로 몇 마디 대답하는 식이었습니다. 그 결과 일부 사역은 시행 과정에서 실수가 생겨 여러 번 다시 해야 했는데, 이는 모두 제가 육을 따랐기 때문에 초래된 결과였습니다. 본연의 일을 하는 사람은 본분을 이행하는 데 마음과 수고를 들여야 하거나 일부 업무 지식을 배우고 갖춰야 할 때, 기꺼이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바칠 수 있고, 본분을 잘 이행함으로써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고자 합니다. 하지만 저는 무조건 안락함과 즐거움만 추구했고, 본분에 임하면서 마음을 쓰고 고생해야 할 때는 반발하고 회피했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제게 리더를 할 기회를 주신 것은 제 생명 성장에 유익한 일입니다. 리더를 하면 여러 사역을 접해야 하고, 각 방면의 원칙을 갖춰야 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진리 원칙을 구하고 더 많이 기도하며 하나님께 의지하도록 자신을 다그칠 수 있고, 동시에 관련된 업무 지식을 배우고 자신의 견문과 경험을 넓히는 한편, 모든 방면을 훈련할 수 있어서 빨리 성장하게 됩니다. 사람이 성장하여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어야 비로소 쓸모 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저는 무조건 육적인 편안함만 탐하느라 육이 편안하기만을 바라고, 무슨 일을 하든 마음 쓰고 걱정하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이런 제가 폐물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을 두고 ‘유망하지 않다’, ‘인성이 정상적이지 않다’, ‘머리가 아둔하다’고 말씀하신 것도 당연합니다. 여기까지 인식하자 제가 너무 한심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다짐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육을 저버리고 본연의 일을 하겠습니다. 본분을 이행하는 가운데 진리 원칙을 구하고 업무 지식을 배워 제 각 방면의 부족함을 채우고, 하나님의 집에서 쓸모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 후 제 마음가짐은 조금 바뀌었고, 본분을 이행하는 상태도 많이 좋아져서 예전처럼 억압되거나 짜증스럽지 않았습니다. 비록 매일 해야 할 사역이 많았지만, 저는 모두 최선을 다했고, 제가 할 줄 모르는 일을 만나면 관련된 진리 원칙과 업무 지식을 갖추었으며, 사역상의 문제를 발견하면 파트너 자매에게 제기하여 함께 상의하고 해결했습니다.

저는 제 억압된 감정이 이미 해결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한 달 후 어느 날, 윗선 리더에게서 저희 지역의 한 자매가 경찰에게 감시를 받고 있고, 경찰이 그 사람을 지목하여 체포하려 하니 빨리 자매에게 알려 숨도록 하라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이어서 근처 교회가 중공으로부터 일제히 단속을 당해 제가 책임지고 있는 범위의 적지 않은 형제자매들이 연루되었다는 편지도 받았습니다. 이 두 소식을 듣자 저는 순간 먹구름이 덮치듯 숨이 막혀오며 다시 억눌리고 근심스러운 기분에 빠졌습니다. 경찰의 체포는 교회의 각종 사역에 극심한 방해를 초래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안전 문제로 정상적으로 본분을 이행할 수 없게 되어 교회 사역을 잘 해내려면 더 많은 마음과 에너지를 쏟아야 했습니다. 이런 어려움을 생각하며 커다란 압박감을 느꼈습니다. 특히 사역상의 문제가 끊임없이 터져 나오고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마음이 주저앉았습니다. 무엇을 하든 의욕이 없었고, 그저 마지못해 사역을 할 뿐이었습니다. 한번은 파트너 자매가 제게 아직 회신하지 않은 편지가 있다고 알려주자, 그만 참지 못하고 “회신할 시간 없어요!”라고 쏘아붙이고 말았습니다. 말을 뱉고 나서야 제가 본분을 가지고 화풀이하고 있고, 그게 얼마나 이성이 없는 것인지 알아차리고, 마지못해 편지를 꺼내 회신했습니다. 그 후로도 일이 많아질 때면 짜증이 나서 자매에게 퉁명스럽게 말을 했습니다. 반성할 때, 저는 제가 또다시 육적으로 신경쓰고 수고하는 것 때문에 억압이라는 부정적인 감정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하나님 말씀 두 단락을 보았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사람의 생존의 토대가 된 사상은 사람의 마음과 영혼을 좀먹어 사람을 간사하고 나약하며 비열하게 만들어 버렸다. 사람은 끈기도, 의지도 없을 뿐만 아니라 탐욕스럽고 거만하게 변했다. 자신을 초월하려는 의지는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이 흑암 권세의 압제에서 벗어나려는 용기는 더더욱 없다. 사람의 사상과 삶은 썩어 문드러졌고, 이로 인해 하나님을 믿는 관점 또한 추하기 그지없다. 심지어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관점에 대해 말하자면 그야말로 듣기조차 민망할 정도다. 사람은 모두 나약하고 무능하며 비열하고 연약하다. 흑암 권세에 대해 어떤 증오심도 느끼지 못하고, 광명과 진리를 사랑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온 힘을 다해 그것을 쫓아낸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너는 왜 부각물이 되기 싫어하느냐?> 중에서), 『너는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면서 평안하고 즐겁고 육의 편안함을 조금 얻는 것에만 만족하느냐? 그런 사람은 가장 비천한 사람 아니더냐? 구원을 보고도 구원을 얻으려 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보다 미련한 사람이고, 육적인 것을 탐하는 사람이며, 사탄을 즐기는 사람이다. 너는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어려움과 환난, 고통이 조금도 없기를 바란다. 너는 늘 이런 가치 없는 것들만 추구하고, 정작 생명은 한 푼의 가치도 없다고 여기며 자신의 사치스러운 생각을 진리보다 앞자리에 놓는다. 너는 너무도 무가치한 사람이다! 네가 돼지처럼 산다면 개돼지 따위와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육적인 것을 좋아하는 자는 모두 짐승 아니겠느냐? 영이 없는 죽은 자는 모두 걸어 다니는 송장 아니겠느냐? … 진정한 인생을 베풀어 주었는데 추구하지 않는다. 그럼 너는 개돼지 따위가 아니겠느냐? 돼지는 인생을 추구하지 않고 깨끗함을 바라지도 않으며 인생이 무엇인지 모른 채 날마다 배불리 먹고 쿨쿨 잠만 잔다. 참도를 베풀어 주었건만 너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그런 돼지 같은 삶을 계속하고 싶으냐? 그런 사람이라면 살아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비루하고 저속하며, 더럽고 음란하게 살면서 추구하는 목표가 하나도 없으니 너의 일생은 가장 비천한 일생 아니겠느냐? 무슨 낯으로 하나님을 뵙겠느냐? 계속 그렇게 체험한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것 아니겠느냐? 네게 참도를 베풀어 주었지만 결과적으로 네가 얻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너 자신의 추구에 달려 있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베드로의 체험 ―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다 읽고 나서야, 제가 그토록 육의 편안함과 즐거움을 중시했던 이유가 ‘인생은 괴롭고 짧으니, 어찌 제때에 즐기지 않겠는가?’, ‘오늘 술이 있으면 오늘 취하고, 내일 걱정은 내일 한다.’와 같은 사탄의 생존 법칙에 물들고 중독되었기 때문임을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런 것들을 지당한 명언으로 여겼습니다. 게다가 저는 본성이 게을러서 어릴 적부터 고생스럽고 힘든 것을 두려워했고, 안락하고 편안한 삶을 추구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생활이든, 직장 생활이든 너무 힘든 것은 원치 않았고, 자신에게 너무 크게 압박하지 않았으며, 근심 걱정 없이 사는 것만으로도 만족했고, 매일 배불리 먹고 마시고 잘 자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본분을 이행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번에 중공의 체포로 여러 사역이 막히는 바람에 본분을 잘 이행하려면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바쳐야 했을 때는, 저도 모르게 어렵다며 아우성을 쳤고, 이전에 단일 사역을 하던 시절을 그리워했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작은 대가로 큰 축복을 얻으려는 목적이었습니다. 본분에 문제와 어려움이 많아 어떻게 교제하고 해결해야 할지 늘 궁리하느라 육이 신경쓰고 수고해야 할 때면, 반발심이 들고 속에서 불이 났으며, 심지어 파트너 자매에게 화풀이까지 했으니, 저는 정말 인성이 없었습니다! 제가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기도 하고, 또한 저 자신을 위해 선행을 예비하는 것입니다. 본분 이행을 통해 진리를 추구하여 패괴 성품을 벗고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저는 리더를 하는 것이 제 육의 편안함을 누리는 데 방해가 된다고 여겨 억지를 부리며 맞섰으니, 정말이지 너무나 이성이 없었습니다! 저는 늘 육을 만족시키려 하고, 거듭 본분에 반발했으며, 본분을 건성으로 대충 이행하여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했고, 저 자신에게도 거듭 과오를 남겼습니다.

그 후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모든 성인은 성인으로서의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 고난이나 병, 나아가 갖가지 어려움 등의 압박감이 얼마나 크든 그것은 모두가 겪고 감당해야 하는 부분이다. 이것이 바로 정상인의 삶이다. 그 압박감과 고통을 견디지 못한다면 그것은 네가 너무 연약하고 못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구든 살면서 이런 고통을 피할 수 없으며 감당해야만 한다. 사회에서든, 하나님 집에서든 모두가 똑같다. 이것은 네가 감당해야 할 책임이자 한 명의 성인으로서 짊어져야 할 중임이고 감당해야 할 일이니 피해서는 안 된다. … 성인으로서 갖고 감당해야 하는 책임과 의무를 감당하는 법을 배우는 한편, 자기가 처한 삶과 사역의 환경에서 정상 인성으로 타인과 조화롭게 어울리는 법을 배워야지, 제멋대로 굴면 안 된다. 조화롭게 어울리는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한 명의 성인으로서 완수해야 할 사역과 이행해야 할 의무, 책임을 더 잘 완수하기 위해서이며, 사역에서 직면한 문제들로 초래되는 손실을 최소화하고 네 사역이 이뤄야 할 성과와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함이다. 이것이 네가 해야 할 일이다. 정상 인성을 갖추고 사람들 속에서 사역할 때 너는 이것을 해내야 한다. 사역으로 인한 압박감의 경우, 그 압박감이 상부에서 오든 하나님 집에서 오든, 아니면 형제자매로부터 오든 그것은 네가 감당해야 하는 부분이다. “압박감이 있어 못 하겠어요. 하나님 집에서 이행하는 본분과 사역은 한가롭고 자유로우며 즐겁고 편안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런 말은 통하지 않는다. 이는 정상적인 성인이 가져야 할 생각이 아니며 하나님 집은 네 안일을 도모하는 곳이 아니다. 모두가 삶과 일에서 어느 정도의 부담과 위험을 감수한다. 어떤 사역이든, 특히 하나님 집에서 이행하는 본분은 모두 최고의 성과를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한다. 거시적으로 보면 이것은 하나님의 가르침이자 요구이고, 미시적으로 보면 이것은 모든 사람이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는 태도이자 관점, 기준, 원칙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5)> 중에서) 하나님께서는 성인이라면 성인의 책임과 의무를 감당할 수 있어야 하며, 생활에서든 본분에서든 어려움과 압박은 사람이 마땅히 직면하고 감당해야 할 것이지, 미루거나 회피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집에서 진심으로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은 사역상의 압박과 어려움으로 육이 고생해야 할 때,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려는 마음이 있어 하나님께 기도하며 진리를 구하고, 자신의 육체를 저버리며, 진지하고 실무적으로 본분을 대하여 최상의 성과를 내기 위해 힘씁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책임감 있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저는 줄곧 게으르고 발전을 추구하지 않는 타락한 사상에 따라 살았고, 조금의 고생도 견디지 못했으니,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것이 뻔했습니다. 솔직히 말해 폐물이나 다름없었고, 사람이라고 할 수도 없었습니다. 사실 육이 고생하고 압박을 좀 받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제가 진리에 대해 더 많이 공들여 묵상하도록 재촉하기 때문에 제 생명 성장에도 도움이 됩니다. 제가 비록 부족한 점이 많고, 일부 복잡한 문제를 아직 해결할 줄 모르지만, 도망치지 않고 책임감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더 많이 기도하고 하나님께 의지하며, 파트너 자매와 함께 진리를 구해 해결하고, 제 능력이 닿는 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성인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와 기대를 깨닫자 제 마음가짐이 조금 달라졌고, 스스로가 책임감 있는 성인이 되고자 하는 바람이 생겼습니다. 그 후로는 윗선 리더가 편지로 여러 사역을 점검할 때도 속으로 반발하거나 짜증내지 않고, 이것이 제 책임임을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본직 사역을 잘해내고 싶었습니다.

얼마 후, 사역이 비교적 바쁘고 윗선 리더가 사역을 꼼꼼하게 점검하자 여전히 압박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리더의 감독이 제게는 본분을 잘 이행하는 데 도움이 되고, 제가 본분에 좀 더 마음을 쓰도록 경계하고 일깨워 준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 덕분에 저는 육의 편안함을 즐기느라 본분을 느슨하게 대하는 일도 없었고, 본분 이행의 효율도 높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저는 파트너 자매가 책임지고 있는 사역에도 참여하여 함께 교제하며 문제 해결을 모색했습니다. 가끔은 쌓인 문제가 너무 많아 하나하나 세부적으로 교제하고 해결해야 할 때면, 속으로 여전히 억압되고 짜증스러운 감정이 드러나기도 했지만, 곧바로 잘못된 내적 상태를 저버리고 스스로에게 경고했습니다. ‘나는 성인이니, 성인의 책임감과 끈기를 가져야 해. 압박을 이겨 내고 앞으로 나아가야지.’ 동시에 하나님께 제 마음을 지켜주시어 본분에 몰두하고 본연의 일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한 후, 원칙에 따라 일의 경중과 완급을 가려 처리하면서 하나씩 해결해 나갔습니다. 처음 부딪히는 문제는 업무 학습 자료를 찾아보고 진리 원칙을 갖추었으며, 기도하는 동시에 문제의 본질과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묵상하다 보니, 서서히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형제자매의 내적 상태가 좋지 않아 본분 이행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면, 저는 서둘러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 교제하고 해결했습니다. 이렇게 하려면 더 많이 신경쓰고 더 많이 고생해야 했지만, 마음은 무척 뿌듯했습니다. 자주 형제자매와 사역상의 여러 문제에 대해 소통하고, 관련된 진리와 원칙을 묵상하면서 저는 내적 상태가 점점 더 좋아지고, 영적으로 예민해졌습니다. 문제도 예전보다 더 정확히 바라보게 되고, 일부 원칙과 길을 서서히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깨달았습니다. 『만약 네가 의지가 있는 사람이라면, 사람이 감당해야 할 책임과 의무, 정상 인성으로 해야 할 일, 성인으로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을 추구의 근본 취지이자 목표로 삼고 자신의 책임을 감당할 수 있다면, 어떤 대가를 치르든, 어떤 고통을 겪든 원망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요구이자 뜻임을 확신하는 순간 어떤 고통도 견뎌 낼 수 있고, 자신의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네 심경은 어떻겠느냐? 전과는 달라진다. 마음이 평안하고 안정되며 즐거움이 생길 것이다. 보아라, 그저 정상 인성을 살아 내는 것을 추구하고, 정상 인성으로 감당해야 할 책임과 의무 그리고 짊어져야 할 사명을 추구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속에 평안과 기쁨이 생기고 즐거움을 느낀다. 아직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하고 진리를 얻는 데 이르지도 않았는데 사람에게 어느 정도 변화가 생긴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5)> 중에서) 제가 마음을 다해 본분이 안고 있는 문제를 처리할 때, 어느 부분에 부족함이 있으면 그에 맞춰 배우고, 마음과 힘을 다해 제 책임을 다하니, 속으로 더 이상 힘들지 않고 오히려 마음이 편했습니다. 지금은 억압된 감정이 점점 줄어들었고, 가끔 솟아나와도 영향을 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속으로 올바른 일을 생각하고 본분에 책임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런 변화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하나님 말씀이 이룬 성과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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