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오해하고 경계한 결과
2013년 저는 본분 이행에서 원칙을 구하지 않고 교만한 성품으로 일을 처리해서 교회의 복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시켰다는 이유로 거짓 리더로 판정되어 교체되었습니다. 그 시기에 저는 매우 소극적이게 되었고 또 많이 통회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며 스스로 반성한 후에야 저는 제 교만한 성품을 어느 정도 깨닫게 되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하나님에 대한 깊은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같이 패괴 성품이 심하고 심각한 과오를 범한 사람은 앞으로 절대 중요한 본분을 이행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일 또다시 과오를 범한다면 가벼운 경우 교체되겠지만, 심각한 경우에는 완전히 드러나 도태되어 구원받을 기회조차 잃게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주변에 은사와 자질이 있고 중요한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들이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오로지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며, 교만한 성품으로 일을 처리하고도 회개할 줄 몰라 결국에는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시켰습니다. 그 결과 이들 중에는 거짓 리더로 드러나서 교체된 사람도 있었고, 적그리스도에 속해 출교된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본 저는 제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고 더욱 확신하게 되었고, 앞으로는 덜 책임을 지고 덜 위험한 사역을 해야지 하나님 사역이 끝날 때 끝까지 살아남을 기회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리더가 저에게 교회 정리 사역을 안배하자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전에도 정리 사역을 하던 자매들이 패괴된 성품으로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지 않아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시켜서 결국 교체된 적이 있었지. 진리를 이해하는 정도로 따지면 나는 그 자매님들만도 못할뿐더러 교만한 성품도 이렇게 심한데, 자칫 방해와 교란을 일으키면 이건 정말 악행이 될 거야!’ 이런저런 고민 끝에 저는 결국 그 사역을 거절했습니다. 그 후 리더가 저를 문서 사역에 안배했을 때 저는 매우 기뻤습니다. 문서 사역은 교회의 대사를 결정할 필요도 없고, 어떤 위험도 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 저는 이 사역을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2017년이 되었을 때 리더가 다시 저를 찾아와 교회의 정리 사역에 급하게 협력할 사람이 필요하니 제가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서 이 사역을 맡아 주길 바란다고 했습니다. 당시 저는 마음속에 여전히 거부감이 있었지만 지난번에 이미 한 번 거절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자신의 앞날과 뒷일을 위해 또다시 거절한다면 이는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양심 없이 행동할 수 없었습니다! 고통 속에서 저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저를 잘못된 내적 상태에서 벗어나도록 이끌어 주시길 간구했습니다.
그 후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어떤 이들은 패괴 성품이 얼마나 드러나든 진리를 구해 해결하지 않기 때문에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고도 성품에 변화가 없다. 그는 ‘내가 무슨 일만 했다 하면 패괴 성품이 드러나니까,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패괴 성품이 드러나지 않겠지. 그러면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겠어?’라고 생각한다. 이는 음식이 목에 걸릴까 봐 식음을 전폐하는 격이 아니냐? 그러면 결국 어떻게 되겠느냐? 굶어 죽는다. 사람에게 패괴 성품이 드러나는데도 해결하지 않으면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쓰러져 죽는 것과 같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겠느냐? 멸망을 자초하게 된다. 패괴 성품은 네가 하나님을 믿는 일에 있어서 원수 같은 것이다. 네가 진리를 실행하거나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거나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게 가로막아, 결국 끝까지 하나님을 믿어도 구원받을 수 없다. 이는 멸망을 자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사탄의 성품이 네가 진리를 받아들이거나 실행하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어도 너는 도망쳐서는 안 되고 그것을 직시해야 한다. 네가 그것을 이겨 내지 않으면 그것이 너를 통제할 것이고, 그것을 이겨 내면 거기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워질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저는 제 내적 상태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것처럼 작은 두려움 때문에 큰일을 포기하고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전에 제가 리더를 맡았을 때 진리를 구하지 않고 교만한 성품으로 일하다가 복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시켜 교체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사건 이후로 저는 경계하고 오해하며 다시는 중요한 사역을 맡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본분을 이행하되 큰 잘못이나 문제만 없으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게 중요한 본분이 주어질 때마다 저도 모르게 자기 방어적인 내적 상태에 빠져서 또다시 교만한 성품으로 일을 처리하여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시켜 결국에는 교체되거나 도태되진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핑계 대며 거절했고, 이렇게 해야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자신의 패괴된 성품에 대해 회피하는 태도를 취했고 진리를 구해 해결하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계속 이렇게 산다면 생명 성품에 전혀 변화가 없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구원받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저에게 실천의 길을 알려 주셨습니다. 패괴된 성품에 맞서 회피하지 말고, 진리를 구해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저는 저 자신을 되돌아보았습니다. ‘난 항상 하나님을 경계하고 본분을 회피했어. 대체 어떤 패괴 본성에 지배받고 있는 것일까?’ 어느 날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나는 타인을 의심하지 않는 사람을 마음에 들어 하고, 기꺼이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을 매우 좋아한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특별히 보살피는데, 내 눈에는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이 정직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네가 매우 간사한 사람이라면 너는 모든 일과 모든 사람을 경계하고 추측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에 대한 너의 믿음 역시 의심의 토대 위에 세워졌을 것이다. 이러한 믿음을 나는 영원히 인정할 수 없다. 참된 믿음이 없다면 참된 사랑은 더욱 논할 것도 못 된다. 네가 하나님에 대해서도 의심하고 제멋대로 추측하기까지 한다면, 너는 틀림없이 누구보다 간사한 사람일 것이다. 너는 ‘하나님도 사람처럼 죄 사함을 못 받지는 않을까, 사람처럼 속이 좁지는 않을까, 사람처럼 불공평하고 불합리하지 않을까, 사람처럼 정의감이 없지 않을까, 사람처럼 수단이 악랄하고, 음험하고 간교하지 않을까, 사람처럼 사악함과 흑암을 좋아하지는 않을까….’라고 의심을 한다.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하나님을 전혀 모르기 때문이 아니냐? 그러한 믿음은 그야말로 죄업을 쌓는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땅의 하나님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저는 저의 본성이 간사하고 사악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항상 의롭지 못한 사람의 마음으로 나쁜 사람을 경계하는 듯 하나님을 추측하고 경계했습니다. 저에게 중요한 본분을 이행하라고 하는 것이 저를 드러나게 하고 저를 도태시키려 한다고 여긴 것입니다. 제가 전에 본분을 이행할 때 교만한 성품으로 일을 처리하다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시키는 과오를 범했기 때문에 이번에 본분을 이행하면서 또다시 과오를 범하면 도태될 위험이 크다고 걱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계하고 오해하는 내적 상태에서 살아가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리더가 저에게 교회 정리 사역을 책임지도록 안배했을 때 저는 제가 여러 사람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해 착오를 일으킬까 봐 두려웠습니다. 좋은 사람을 억울하게 만들거나 악한 사람이나 적그리스도는 교회에 잘못 남겨둬서 교회에 잠재적 위험을 안기게 되면, 이는 정말 큰 과오일 것이며 도태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문에 저는 이유를 찾아 핑계를 대며 거절했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제가 그때 교체되는 경험을 하지 않았다면 저는 제 교만한 성품이 이렇게 심각한 줄은 깨닫지도 못했을 것이고, 제가 사역할 때 진리를 구하지 않고 자기 뜻대로 행동하는 것이 적그리스도의 길을 걷는 것이라는 것도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적시에 주시는 채찍질과 징계가 저를 스스로를 반성하게 하고 잘못된 길에서 벗어나게 하였습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저는 교만 방자한 본성에 따라 어떤 악한 짓을 저질렀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제가 교체되었을 때 마음이 조금 아프기는 했지만, 이 모든 것은 저를 향한 하나님의 보호이자 구원이었고, 그 안에는 하나님의 고심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번 실패의 경험은 제 마음 깊이 새겨져 저는 교만한 성품으로 일 처리한 결과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은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본분을 이행하면서 다시는 교만한 성품으로 일을 처리하지 않도록 스스로 항상 경계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더 많이 구하고, 진리 원칙을 구해야만 큰 실수를 피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공의롭고 선하며, 사람에 대한 사랑과 구원은 진실하고 조금의 거짓도 없습니다. 제가 스스로 반성하고 깨달을 수만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저에게 훈련할 기회를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자꾸 하나님을 사람과 마찬가지로 도량이 좁고 야속하며 공평과 공의가 없다고 여겨 항상 추측하고 경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본분을 빌려 저를 드러내고 도태시키려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니 이는 하나님에 대한 모욕이 아닙니까? 저는 정말 너무나 간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정직한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정직한 사람은 진리를 받아들이고 기꺼이 진리를 실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저는 반대로 간사한 성품으로 하나님을 의심하고 경계해서 번번이 본분을 회피했고, 자신의 책임과 본분을 거리낌 없이 이행하지 못했습니다. 계속 이렇게 살아간다면 스스로를 곤경에 빠뜨리는 게 아닌가요? 이런 생각이 든 저는 통회하면서 묵묵히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본분을 이행할 기회를 소중히 여기고, 하나님께 의지해 정리 사역을 잘 해내며, 더 이상 저항하거나 거절하지 않겠다고요.
그 후 저는 교회 정리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한 출교 자료가 저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곧 출교될 사람은 전에 저를 접대한 적이 있던 리(李) 모 씨였습니다. 그녀는 줄곧 교회에서 접대하는 일을 했습니다. 전에 저는 그녀가 중요한 본분을 이행하지 않아서 큰 과오를 범하긴 쉽지 않을 테니 그녀처럼 하나님을 믿는 게 가장 안전하다며 부러워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사실이 저의 관념을 깨부수었습니다. 그녀는 중요한 사역을 담당하지 않았음에도 교만한 성품에는 줄곧 변화가 없었고, 교회 리더인 딸을 이용하고 조종해서 교회를 장악하려는 망상에 사로잡혀 교회를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저는 또 과거에 드러났던 일부 불신파들과 악한 사람들이 생각났습니다. 그들 대부분도 그다지 중요한 본분을 이행하지 않았지만 결국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사탄의 성품에 따라 마음대로 행동하고 회개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악행을 반복하다가 도태되었습니다. 이런 생각들을 하니 저는 마음에 와 닿는 것이 있었습니다.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리더가 되는 사람은 모두 무지몽매해. 스스로 죽을 길을 찾는 거야. 리더가 되면 패괴를 드러내 하나님에게 보일 수밖에 없으니까. 만약 사역하지 않으면 패괴 표출이 이렇게 많을 리 있겠어?’ 이런 생각은 얼마나 황당하냐! 네가 리더가 되지 않으면 패괴를 드러내지 않겠느냐? 리더가 되지 않으면 드러내는 패괴는 적겠지만 그게 구원받는다는 뜻이겠느냐? 이런 주장에 따르면 리더가 되지 않는 사람들은 다 살아남아 구원받는 사람이겠느냐? 이런 주장은 너무나 황당하지 않으냐? 리더는 하나님 선민을 이끌고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며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한다. 이 요구 기준은 전보다 높아진 것이므로 막 훈련하기 시작할 때는 일부 패괴된 내적 상태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이는 정상적인 것으로, 하나님은 정죄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정죄하지 않을 뿐 아니라 깨우침과 빛 비춤으로 사람을 인도하고 사람에게 부담을 주기도 한다. 사람이 하나님의 인도와 사역에 순종한다면 생명 성장이 일반 사람보다 빠를 수 있다. 만약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에게 온전케 되는 길에 들어설 수 있다. 이는 하나님의 축복을 가장 많이 받는 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를 보지 못하고 사실을 왜곡하기까지 한다. 사람의 이해에 따르면, 리더가 얼마나 큰 변화가 있든 하나님이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리더 일꾼이 패괴를 얼마나 많이 드러냈는지만 보고 패괴 표출에 따라 정죄한다는 것이다. 리더 일꾼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들이 패괴를 적게 드러냈기 때문에 변화가 없다고 해도 하나님은 정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황당하지 않으냐?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 아니겠느냐? 네가 마음속에서 하나님을 이렇게 심각하게 대적하는데도 구원받을 수 있겠느냐? 너는 구원받을 수 없다. 하나님이 사람의 결말을 정할 때는 주로 사람에게 진리가 있는지 없는지, 진실한 간증이 있는지 없는지에 근거하고, 주로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본다. 만약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과오를 저질러 심판과 형벌이 닥쳐도 진실로 회개할 수 있다면,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과 일만 하지 않는 한 분명 구원에 이를 수 있다. 만약 너희의 상상대로라면 끝까지 따르는 평신도는 모두 구원받을 수 있고 리더들은 다 도태되어야 할 것이다. 너희에게 리더를 하라고 할 경우 너희는 안 하면 안 된다고, 하면 또 어쩔 수 없이 패괴만 드러내게 되어 그야말로 단두대에 오른 것과 같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는 모두 너희가 하나님을 오해해서 그런 것 아니겠느냐? 만약 사람의 패괴 표출에 따라 사람의 결말을 정한다면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이렇다면 하나님이 구원 사역을 하는 것이 또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정말 이렇다면 하나님의 공의는 어디에 있겠느냐? 사람은 하나님의 공의 성품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너희가 모두 하나님의 뜻을 오해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는 너희가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없다는 뜻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사람의 결말을 결정짓는 것은 그 사람이 어떤 본분을 이행하는지, 얼마나 패괴를 드러냈는지가 아니라 그 사람이 패괴를 드러낸 후 진리를 추구했는지, 자신의 패괴된 성품을 해결하는 데 집중했는지에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대상이 바로 사탄에 의해 패괴된 사람인데, 사람이 얼마나 패괴를 드러냈는지에 따라 그 사람의 결말을 결정한다면 우리 모든 사람이 다 도태되어야 할 대상입니다. 이렇게 하면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저의 이 관점은 분명 너무 터무니없었습니다. 저는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리더나 책임자가 되어 드러난 패괴와 부족함이 많을지라도, 진리를 추구하고 항상 스스로를 반성하며 자신을 알려고 하고 진리를 구해 해결하려 한다면, 이해하는 진리가 더 많아지고 생명 진입도 더 빨리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요. 과거에 드러나 도태된 거짓 리더들과 적그리스도들을 생각해 보면 그들은 리더로 중요한 사역을 담당했기 때문에 드러나 도태된 것이 아니라 진리를 혐오하고, 언제나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며, 악한 일을 하여 교회 사역을 교란시켰기 때문입니다. 여러 차례 책망과 훈계를 받고도 회개할 줄 몰라서 도태된 것이었습니다. 제가 예전에 리더를 했다가 교체된 것도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올바른 길을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중요한 본분을 이행하는지 여부와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사리에 밝지 못해 넘어지고 실패한 근본 원인을 자신한테서 찾아 반성하고 교훈을 얻어 스스로 경계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관점으로 하나님을 가늠하고 추측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기쁨으로 여길 수 있었던 베드로를 떠올렸습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이 그를 떠났다면 그는 두렵고 불안해서 살아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진리를 사랑하고 긍정적인 것을 갈망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질책과 징계를 귀하게 여겼기 때문에 그런 환경에서도 자신의 부족함과 단점을 반성하고 인식하며, 진리를 구하고 변화를 추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드러남과 실패를 겪은 저는 항상 하나님을 경계하고 오해하며 소극적이고 반항적인 내적 상태로 살았습니다. 중요한 본분을 이행하면 또다시 드러날까 두려워서 번번이 본분을 회피하면서 진리를 혐오하는 자신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항상 자신의 패괴된 성품을 숨기고 싶어했지만 그렇게 하면 자신을 알 방법이 없고, 더욱 제때에 진리를 구해 해결할 수 없게 됩니다. 결국 성품에 변화가 없어서 구원받을 기회를 영원히 잃을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베드로의 경험에서 몇 가지 길을 찾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패괴 성품이 표출될 때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하며 진리를 구해 해결하는 데 집중하는 동시에 실패한 사람의 교훈을 통해 스스로를 경계하는 것입니다.
2021년 8월, 형제자매들이 저를 교회 리더로 선출했습니다. 제 마음속에는 여전히 약간 염려되는 것이 있어서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도 이 본분을 맡아서 제 역량을 다하고 싶지만 마음속에는 항상 걱정이 있습니다. 저를 이끌고 인도해 주세요.” 기도를 드린 후에 저는 예전에 먹고 마셨던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본분을 이행하게 하시는 목적은 사람을 도태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진리를 구해 성품을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또 교회를 구분하고 있는 지금, 교회 사역에 협력할 사람들이 때마침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중요한 때에 저는 자신의 이익만 고려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또다시 본분을 거절한다면 정말 너무 비인간적인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서 자신이 해야 할 본분을 이행해야 했습니다. 그 뒤로 계속 이렇게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왜 나는 중요한 본분이 주어지면 겁내고 두려워하는 걸까? 그 뒤에는 또 어떤 잘못된 속셈이 숨겨져 있는 걸까?’ 구하는 중에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집의 안배에 순종하는 법이 없고, 시종일관 자신의 본분, 명예, 이익, 지위를 복받을 희망이나 훗날의 종착지와 긴밀하게 연관 짓는다. 마치 그의 명예와 지위를 잃게 되면 복받거나 상받을 희망이 사라지고, 자기 목숨을 앗아 가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는 ‘조심해야겠어. 경솔하게 굴면 안 돼! 하나님 집, 형제자매들, 리더 일꾼, 심지어 하나님까지도 믿을 수 없어. 모두 내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고. 사람한테 가장 믿음직하고 신뢰할 만한 존재는 바로 자기 자신이야. 스스로를 위해 계산하지 않는다면, 누가 남을 생각해 주겠어? 또 누가 남의 앞날을 생각해 주겠어? 남이 훗날 복을 받을지 말지를 누가 생각해 주겠어? 그러니까 난 스스로를 위해 세심하게 계획하고 계산해야지. 실수해서도 조금이라도 경솔히 굴어선 안 돼. 그러다가 이용당하면 어떡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집의 리더 일꾼을 경계하고, 다른 사람이 그를 분별하고 간파해서 교체할까 봐, 복받으려는 꿈을 망쳐 놓을까 봐 두려워한다. 그는 명예와 지위를 반드시 지켜야 복받을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적그리스도는 복받는 일을 하늘보다도, 목숨보다도 크게 생각하고, 진리 추구나 성품 변화, 구원받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며, 본분을 잘 이행하거나 합당한 자격을 갖춘 피조물이 되는 것보다도 더 중요하게 여긴다. 그는 합당한 자격을 갖춘 피조물이 되는 것, 본분을 잘 이행하는 것, 구원을 받는 일을 다 사소한 일, 언급할 가치도 없는 하찮은 일로 생각하고, 복받는 일만 평생에 영원히 잊지 못할 일로 여긴다. 어떤 큰일이나 작은 일이 닥치든 복받는 것과 연관 짓고 조심하고 신중하며 자신을 위해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해 둔다. 그래서 본분이 조정될 때, 만약 직급이 올라가면 적그리스도는 자신에게도 복받을 희망이 있다고 여긴다. 만약 직급이 내려가면, 팀장에서 부팀장이 되거나 부팀장에서 보통 멤버가 되면, 그는 상황이 심상치 않고 복받을 희망이 묘연하다고 예감한다. 이런 관점은 어떠하냐? 올바른 관점이냐? 절대 아니다. 이런 관점은 너무나 황당하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12조 복받을 희망이나 지위가 없으면 물러나려 한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을 믿는 이유는 복을 받기 위함이라는 것을 밝히셨습니다. 적그리스도가 본분을 이행할 때는 자신의 이익을 최우선에 두고, 복을 받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깁니다. 돌이켜 보니 제 모습이 바로 적그리스도와 같았습니다. 저는 피조물로서 본분을 어떻게 제대로 이행해야 할지는 고민하지 않고, 복을 받는 것을 유난히 중요하게 여기며 본분을 이행할 때 항상 위축되고 조심스러워했습니다. 자칫 실수라도 하여 과오를 범하면 복을 받을 기회를 잃어버릴까 봐 두려웠던 것입니다. 저의 이런 모습들을 반성하니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 “공은 바라지도 않으니 실수만 피하자.”와 같은 사탄 철학들이 제 마음속에 너무 깊이 뿌리내려 이미 저의 생존의 법칙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사람은 자신을 위해 살아야 하고, 하나님을 믿어 복을 받는 것도 매우 정당한 일이라고 여겨왔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저를 본분 이행에 필요로 할 때 저는 무슨 본분이 제가 복을 받는데 유리할지를 몇 번이고 따져 보았습니다. 저의 패괴와 부족함이 자주 드러나지 않으면서 큰 잘못을 할 리 없는 본분이라면 저는 원했고, 제가 복을 받는데 불리한 본분이라면 저는 저항하고 거절했습니다. 저는 본분 이행을 모두 복을 받는 것과 연결 짓고 본분에 대해 자신의 선택만 중시하며 교회 사역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어디 하나님께 순종하고 충성하는 것입니까? 저는 사탄의 처세 철학대로 살면서 항상 하나님과 거래하고 자신의 앞날과 종착지를 위해 본분 이행을 거절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 아닙니까? 곰곰이 생각할수록 하나님을 믿는 저의 속셈이 추악하기 그지없다고 느껴졌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제가 하나님을 믿고 올바른 길로 진입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었습니다. 계속 이대로 살면 생명 성품에 변화가 없고, 결국에는 하나님께 버림받고 도태될 것입니다. 바울이 평생 동안 하나님을 위해 헌신했던 것이 면류관과 상을 받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떠올렸습니다. 바울은 사역을 하면서 진리를 추구하지도, 성품 변화를 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오랜 세월 사역했음에도 내면의 사탄 성품은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어 결국에는 하나님께 대적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징벌을 받았습니다. 저도 바울과 같은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만약 회개하지 않으면 결국에는 진리를 추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하나님께 혐오받고 도태될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이렇게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저 자신이 너무 이기적이고 비열하다는 것을 이제서야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나서 오로지 복을 받기만 추구했습니다. 저는 더 이상 잘못된 길로 가고 싶지 않습니다. 오직 본분을 잘 이행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길을 걷길 원합니다.”
그 후 저는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을 보고 본분 이행의 의의와 가치에 대해 더욱 깨닫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그것은 가장 정당한 일이다. 이는 인류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정의로운 일이다. 피조물이라면 마땅히 자신의 본분을 이행해야 창조주의 인정을 받을 수 있다. 피조물은 창조주의 권세하에 살면서 하나님의 모든 공급과 하나님에게서 온 모든 것을 받아들이므로 마땅히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 이것은 당연한 것이고, 하나님이 예정해 놓은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봤을 때, 사람이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살면서 행하는 그 어떤 것보다 더 정의롭고 아름다우며 고상한 일이다. 인류 가운데 어떤 일도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보다 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은 없으며, 지음 받은 사람이 더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 수 있도록 하는 일은 없다. 땅에서 유일하게 진심으로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이 사람들이야말로 창조주께 순종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세상의 조류를 좇지 않고, 하나님의 인솔과 인도에 순종하며, 오로지 창조주의 말씀을 듣고, 창조주가 선포한 진리를 받아들이고, 창조주의 말씀대로 살아갈 뿐이다. 이는 가장 진실되고 힘 있는 증거요,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가장 훌륭한 증거다. 한 피조물이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고 창조주를 만족게 할 수 있는 것은 인류 가운데서 가장 아름다운 일이며, 인류 가운데서 아름다운 이야기로 전해져야 할 일이다. 창조주가 피조물에게 어떤 일을 부탁하든, 피조물은 마땅히 아무 조건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이는 인류에게 행복한 일이자 영광스러운 일이다.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있어 이는 무엇보다 아름답고 기념할 만한 일로, 긍정적인 사물이다. … 피조물로서 창조주 앞에 왔으면 마땅히 자신의 본분을 이행해야 한다. 이는 지극히 올바른 일이며, 사람이 이행해야 할 책임이다. 창조주는 피조물이 본분을 이행하는 이런 전제하에 인류 가운데서 더 큰 사역을 하고, 사람에게 한층 더 깊은 사역을 했다. 그것은 어떤 사역이겠느냐? 바로 인류에게 진리를 공급하여 인류가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진리를 얻게 하는 것이다. 또 이를 통해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고 정결케 되어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고 인생의 바른길을 걷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지막에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 더는 사탄의 괴롭힘을 당하지 않고 완전히 구원받게 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인류에게 본분을 이행하게 하여 최종적으로 이루려는 성과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9조(7)> 중에서) 그렇습니다. 피조물이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자식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이 마땅히 이행해야 할 책임이자 의무이며, 조금의 거래나 교환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피조물인 저에게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주셨고, 또 필요한 모든 것을 내려 주셨습니다. 또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제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 말씀의 공급을 받고 본분을 이행할 기회를 갖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게 저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며 긍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본분을 이행하면서 진리를 구하고 생명 진입을 추구하며, 하나님이 마련한 환경 속에서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하며, 자신의 패괴 성품을 해결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길을 걸어가 패괴에서 벗어남으로써 하나님의 구원을 받기를 바라십니다. 저는 자신이 복을 받으려는 속셈과 욕망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마음을 드려 거리낌 없이 자신의 책임과 본분을 다해 하나님의 마음을 위로해야 합니다. 그 후 저는 본분을 이행할 때 마음이 많이 편해졌습니다. 비록 가끔 여전히 경계하고 오해하는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이제는 의식적으로 진리를 구하고, 자신을 저버리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교회의 이익을 중시하고, 진리 원칙에 따라 본분을 이행하니 더 이상 그렇게 위축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실천할 때면 마음이 편안하고 평안함을 느낍니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돌이켜 보니 제가 리더 일꾼이었든 교체되었든 모두 하나님께서 제가 자신을 알고 패괴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세심하게 마련해 주신 환경이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깨우침과 빛 비춤 덕분에 저는 저의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관점과 본분 이행에서의 패괴된 불순물을 인식하게 되었고,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고심을 깨닫게 되었으며, 오해와 경계심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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