꿰뚫어 보았다면 솔직히 털어놓는 것이 진정한 친구다

2025.9.26

중국 즈옌(子言)

2023년, 저는 예쉰(葉尋) 자매와 함께 문서 본분을 협력해서 이행했습니다. 예쉰은 저보다 사역 능력이 좋고 일 처리도 효율적이었습니다. 평소 제게 어떤 내적 상태가 있으면 하나님 말씀을 교제하며 도와주기도 해서 저희는 아주 잘 지냈습니다. 2024년 2월, 한번은 예배 시간에 예쉰이 하나님 말씀을 바탕으로 자신의 교만 성품을 인식했지만 그 인식이 비교적 구체적이지 못했습니다. 그 후 란신(蘭馨) 자매가 예쉰이 본분을 이행하면서 교만하게 사람을 속박했던 몇몇 모습들을 지적했습니다. 예쉰이 평소 문제를 지적해 줄 때 말투에 업신여기는 기색이 있어서 자신이 많이 속박받았고, 한동안은 자신이 자질이 부족해 이 본분을 감당할 수 없다고 느꼈는데, 예쉰이 업신여기는 투로 “정말 못 하겠으면 그만두면 되죠!”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마음이 아주 소극적으로 변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란신이 이야기하는 동안 예쉰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졌습니다. 란신의 교제가 끝나자 예쉰은 자신이 사람을 속박하는 악을 행했다며 울었고, 다소 의기소침해 보였습니다. 저는 예쉰이 란신의 지적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예쉰이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이라 란신이 문제를 지적했을 때 잠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도 정상이고, 조금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해서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식사 시간에 란신이 몇 번이나 예쉰에게 말을 걸었지만 예쉰은 대꾸도 하지 않았고, 분위기가 다소 어색해졌습니다. 예쉰과 저는 함께 일했는데, 식사 후 란신이 제 컴퓨터를 손봐주러 저희 사무실에 오자 예쉰은 밖으로 나가 버렸습니다. 의도적으로 란신을 피하는 듯했습니다. 예전에는 란신과 웃으며 잘 이야기하더니 지금은 딴사람이 된 것 같았습니다. 저는 예쉰이 란신에게 편견을 갖게 된 것을 알아차리고, 그녀의 내적 상태에 대해 물어보며 그런 태도는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고 사람을 속박할 수 있다고 지적해 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란신이 문제를 지적한 지 얼마 안 돼서 아직 예쉰의 내적 상태가 회복되지 않았는데, 이때 나까지 나서서 지적하면 더 소극적으로 변하지 않을까? 그러다 나에 대해 안 좋은 생각을 품고 나까지 상대해 주지 않으면 어떡하지? 우리는 한 방에서 일하며 매일 얼굴을 마주보고 지내야 하는데, 관계가 틀어지면 앞으로 지내기 얼마나 힘들겠어. 나중에 내게 무슨 내적 상태나 사역상의 문제가 생겼을 때 그녀가 도와주지 않으면 어떡하지? 그러면 내 스스로 망신을 자초하는 꼴이 아닐까?’ 이런 생각에 목구멍까지 나왔던 말을 다시 삼켰습니다. 하지만 예쉰의 내적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을 뻔히 보고도 교제하지 않으려니 양심의 가책을 느껴 용기를 내어 물었습니다. “내적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데, 혹시 란신이 지적한 문제를 당장 받아들이기 힘든가요? 무슨 생각이 있으면 마음을 열고 교제해 봐요. 혼자 끙끙 앓지 말고요.” 예쉰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괜찮아요, 받아들이는 중이에요.”라고 말하고는 더는 말을 잇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마음을 열고 교제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저는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제가 더 말했다가는 그녀가 반감을 느끼고 저에 대해 안 좋은 생각을 품을까 봐 걱정되어 격려 몇 마디만 건네고 서둘러 대화를 끝냈습니다.

그 후 이틀 동안 예쉰은 줄곧 말없이 밥을 먹고 일만 했습니다. 저희가 무슨 일로 물어볼 때만 몇 마디 대답할 뿐, 평소에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예전에는 사역적으로 잘 모르는 문제가 있으면 예쉰이 먼저 나서서 관점을 제시하고 조언을 해주었고, 제가 쓴 교제 편지에 내용이 불분명한 부분이 있으면 보완해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틀 동안에는 저희가 사역에서 어려움을 겪어도 예쉰은 교제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문제를 꺼내 함께 소통하고 싶었지만, 예쉰의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사역을 상의해도 좋은 성과를 내기 어렵겠다고 생각해 말을 꺼내지 않았고, 결국 사역에 지장을 주었습니다. 그 후에 저는 예쉰의 모습을 폭로해서 그녀가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란신이 그녀의 교만 성품을 조금 지적했을 뿐인데도 내적 상태가 저렇게 안 좋아졌는데, 만약 제가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또 말하면 그녀가 제게 편견을 갖고 마음에 거리감을 둔 채 본분을 이행할 텐데, 그럼 얼마나 지내기 힘들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예쉰에게 완곡하게 말했습니다. “무슨 생각이 있으면 말해 봐요. 자매님이 계속 이렇게 말을 안 하면 다른 사람이 속박받을 수 있어요. 하나님께서 이런 환경을 마련해 주신 것은 우리 자신의 패괴 성품을 반성하게 하시려는 것이고, 우리 생명 진입에 유익해요.” 그녀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천천히 받아들이고 있어요. 괜찮아요, 차라리 잘됐어요. 앞으로 말을 좀 적게 하면 다른 사람이 속박받을 일도 없겠죠.” 예쉰이 토라져서 하는 말인 것을 알고 저는 또 망설여졌습니다. ‘만약 내가 그녀의 문제를 지적했는데 받아들이지 않으면, 나도 상대해 주지 않는 건 아닐까? 됐어, 그녀가 마음을 열고 싶어 할 때 다시 교제하자.’ 그 후 함께 사역을 상의할 때도 예쉰은 여전히 별로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란신은 그런 예쉰의 모습을 보고 어쩔 줄 몰라 하며 모든 게 자기 탓인 것 같다고 마음속으로 자책했고, 내적 상태도 다소 침체되었습니다. 그 이틀 동안 저는 온통 이런 일들만 생각하느라 본분도 마음 편히 이행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제 내적 상태를 하나님께 기도로 아뢰며, 저 자신을 인식할 수 있도록 이끌어 달라고 구했습니다.

그 후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고 실행하기를 원하지만, 많은 경우 그런 의지와 소망만 있을 뿐, 내면에서 진리가 생명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사악한 세력을 만나거나, 악인, 못된 자들이 악행을 저지르거나 거짓 리더, 적그리스도가 원칙에 어긋난 일을 해서 교회 사역을 교란함으로써 하나님의 선민이 해를 입는 일이 생겼을 때, 너는 용기 있게 나서서 말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왜 용기가 없겠느냐? 담이 작아서, 말주변이 없어서, 또는 일을 꿰뚫어 보지 못해서 말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이겠느냐? 다 아니다. 이는 주로 패괴 성품에 속박받아 초래된 것이다. 네가 드러내는 패괴 성품 중 하나는 간사한 성품이다. 일이 닥치면 먼저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고, 먼저 그런 행동에 따른 결과가 자신에게 유리할지 고려한다. 이는 간사한 성품 아니겠느냐? 또 다른 하나는 이기적이고 비열한 성품이다. ‘저 사람이 하나님 집의 이익에 해를 입히든 말든 나랑 무슨 상관이야? 리더도 아닌 내가 왜 신경 써야 하지? 나랑 상관없는 일이고 내 책임도 아닌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 이런 말은 네가 일부러 생각해 낸 게 아니라 무의식중에 생겨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일이 생겼을 때 사람이 드러내는 패괴 성품이다. 이런 패괴 성품은 네 생각을 지배하고, 네 손발을 묶어 놓고, 네 입을 통제하기도 한다. 일어서서 말하고 싶은데도 한편으로는 우려가 돼서 말을 꺼내더라도 에둘러 말하며 여지를 남기거나 아니면 말을 얼버무리며 참말을 하지 않는다. 눈치 빠른 사람은 누구나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러나 사실 너도 속으로는 알고 있다. 네가 해야 할 말을 전부 다 하지는 않았으며, 효과도 내지 못했고, 그저 형식만 거치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않고도 뻔뻔하게 자신은 책임을 다했다고, 혹은 그 당시에는 꿰뚫어 보지 못했다고 말하는데, 그런 말이 사실에 부합하느냐? 솔직한 말이냐? 이는 완전히 사탄 성품에 통제된 것 아니냐? 네가 한 말에서 일부는 사실에 부합되는 부분이 있더라도, 중요한 부분이나 핵심 문제에서는 거짓말을 하여 사람을 기만했다. 이는 네가 거짓말하는 사람이고 사탄 성품으로 사는 사람임을 증명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진리를 실행하려는 마음은 있지만, 많은 경우 이기적이고 간사한 패괴 성품에 지배받아 자신의 이익을 너무 많이 고려하는 탓에 형제자매의 문제를 뻔히 보고도 감히 지적하거나 폭로하지 못하고, 지적하더라도 에둘러 말하며 할 말을 다 하지 않고 하나님 집의 이익은 고려하지 않는다고 폭로하셨습니다. 제 내적 상태가 바로 그랬습니다. 예쉰이 란신의 지적을 받아들이지 않고 란신이 말을 걸어도 대꾸하지 않아 사람을 속박하는 것을 보고, 저는 마땅히 제때에 교제하며 도와주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중요한 시점에 그녀가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또 지적했다가 그녀가 잠시 받아들이지 못하고 저에 대해 안 좋은 생각을 품게 되거나, 나중에 제게 어려움이 생겼을 때 그녀가 도와주지 않을까 봐 걱정되어 그저 완곡하게 그녀의 내적 상태만 물어보았습니다. 그녀가 마음을 열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을 보고는 그녀의 문제를 폭로했다가 그녀가 제게 반감을 품을까 봐 걱정되어 하려던 말을 삼켰습니다. 그 후에도 예쉰의 내적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고, 며칠 동안 저희와 거의 말을 하지 않아 사역에 대해 정상적으로 소통하고 상의할 수 없었고, 사역을 시행해도 좋은 성과를 낼 수 없었습니다. 저는 예쉰의 문제를 분명히 보았지만 제 자신을 지키느라 감히 폭로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내적 상태와 교회 사역이 영향을 받는 것을 빤히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제 마음속에는 오직 제 자신의 이익뿐이었고, 교회 사역은 조금도 지키려 하지 않았으니 너무나 간사하고 이기적이었습니다!

그 후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제가 진리를 실행하지 못하는 근원을 어느 정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처세 철학 중에 “문제가 보여도 말하지 않아야 좋은 친구다.”라는 말이 있다. 즉, 좋은 친구라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상대의 문제점을 간파했어도 다 터놓고 말해서는 안 되며, 얼굴은 때리지 말고 약점은 들추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라는 것이다. 서로 기만하고 숨기고 음모를 꾸미며, 마음속으로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분명히 알고 있음에도 솔직히 말하지 않고, 교활한 수법으로 그 관계를 지키는 것이다. 왜 그런 관계를 지키려 하겠느냐? 이 사회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적을 만들어 자신이 수시로 위험한 상황에 처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상대의 단점을 들추거나 상대에게 상처를 주면 상대가 너의 원수가 되어 너에게 해악을 끼칠 것을 알고, 너 스스로도 그런 상황에 처하는 것을 원치 않기에 “때려도 얼굴은 때리지 말고,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라는 처세 철학을 취하는 것이다. 이 점으로부터 봤을 때 이런 관계의 두 사람을 진정한 친구라고 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진정한 친구라고 할 수 없다. 마음을 나눈 사이는 더더욱 아니다. 그럼 이들은 과연 어떤 관계겠느냐? 기본적인 사회 관계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런 사회 관계에서 사람은 서로 마음을 나눌 수 없고, 깊이 사귈 수 없으며,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도 없다. 또 자신의 마음에 있는 말, 자신이 본 상대의 문제점, 상대에게 도움이 되는 말을 할 수도 없다. 상대의 비위를 맞추려고 그저 듣기 좋은 말만 찾아서 한다. 다른 사람들의 적의를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감히 참말을 하지 못하고 원칙도 지키지 못한다. 아무도 자신을 위협하지 않을 때면,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평안하게 살 수 있지 않겠느냐? “때려도 얼굴은 때리지 말고,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라는 말을 제창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는 분명 남에 대한 경계심이 들어 있는, 완곡하고 간사한 생존 방법으로, 자기 보호에 그 목적이 있다. 이런 식으로 살아가면 진심을 나눌 친구, 무엇이든 말할 수 있는 친한 친구가 하나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저 피차간에 서로 경계하고 이용하며 수작을 부리고 원하는 것을 취할 뿐이다. 그렇지 않으냐? “때려도 얼굴은 때리지 말고,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라는 말의 근본적인 목적은 남의 원망을 사거나 상대와 적이 되지 않고,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음으로써 스스로를 지키려는 것이다. 이는 스스로 상처받지 않기 위한 수법이자 방식이다. 이 몇 가지 측면의 본질을 봤을 때, 사람의 덕행 중 “때려도 얼굴은 때리지 말고,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라는 요구를 고상하고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럼 이것이 사람을 어떻게 가르치느냐? 누구에게도 원한을 사거나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마지막에 상처 입는 사람은 너 자신이 된다고 말이다. 또한,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네가 친하게 지내는 친구 누구라도 상처를 주는 순간 그 관계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하는데, 그는 친하고 가까운 친구에서 네게 낯선 사람, 적으로 변할 것이다. 사람을 이렇게 가르쳐서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느냐? 설령 네가 이렇게 행동해서 적을 만들지 않고 몇 명의 원수를 줄여 사람들에게 탄복과 동조를 샀다고 할지라도, 영원히 너와 친구가 될 수 있겠느냐? 이것이 완벽하게 덕행의 기준에 도달한 것이겠느냐? 이는 기껏해야 처세 철학에 불과하다. 이런 말과 방식을 지키는 것을 좋은 덕행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결코 그렇게 말할 수 없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8)>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제가 예쉰의 문제를 감히 직접 지적하지 못한 것은 바로 사탄의 처세 철학에 따라 살면서 ‘문제가 보여도 말하지 않아야 좋은 친구다’, ‘때려도 얼굴은 때리지 말고,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는 말들을 제 처세의 도로 삼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사람과 지내려면 상대를 헤아려야 하고, 말을 할 때도 상대방이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야 하며, 남에게 미움을 사서는 안 된다고, 그래야만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발붙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기 전에도 저는 다른 사람이 잘못하는 것을 보면 감히 직접 지적하지 못했고, 말하더라도 완곡하게 말했기 때문에 동료들과 비교적 원만하게 지냈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후 형제자매들과 지낼 때도 저는 여전히 이런 처세 철학에 따라, 형제자매가 원칙을 어기며 일을 처리해 교회 사역에 해를 끼치는 것을 보고도 감히 지적하지 못하고 그저 관계가 틀어질까 봐 두려워했습니다. 특히 예쉰이 다른 사람이 지적한 문제를 받아들이지 않고 패괴 성품 속에서 살며 본분을 지체시키는 것을 보고, 저는 마땅히 교제하고 지적하여 그녀가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의 심각한 결과를 인식하도록 도와주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 사이의 관계에 영향이 갈까 두려워 그저 에둘러 그녀의 내적 상태만 물어보았을 뿐, 그녀의 문제를 짚어 주지는 않았습니다. 그 결과 그녀는 계속 토라져서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고 사역에 지장을 주었습니다. 사탄의 처세 철학에 따라 사는 것은 사람에게 조금도 진심과 도움을 주지 못하고, 교회 사역도 지키지 못하며, 자신도 갈수록 간사하고 이기적으로 변하게 되니, 실로 남도 망치고 자신도 해치는 일이었습니다! 진정으로 인성이 있는 사람은 형제자매가 패괴 성품 속에서 사는 것을 보면 사랑으로 하나님 말씀을 교제하여 형제자매가 자신의 패괴 성품을 인식하도록 돕습니다. 하지만 저는 예쉰의 문제를 지적하고 났을 때 그녀가 저에 대해 안 좋은 생각을 품지는 않을지, 앞으로 잘 지내기 어렵지는 않을지만 고려했습니다. 마음속으로는 온통 어떻게 제 자신을 지킬지만 생각했고, 자매의 생명 진입이나 교회 사역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수년간 믿었음에도 전혀 변화하지 않았고 정상 인성도 없으니, 정말 하나님께서 혐오하실 만했습니다. 이 점을 깨닫고 나니 제 마음은 자책과 후회로 가득 찼습니다. 저는 제 내적 상태를 하나님께 기도하며, 제가 진리를 실행할 수 있도록 이끌어 달라고 구했습니다.

그 후 저는 한 체험 간증 영상을 보았는데, 그 안에 인용된 두 단락의 하나님 말씀이 제게 특별히 도움이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조화롭다는 것은 인내와 양보, 포용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입장을 견지하고 원칙을 견지하는 것이기도 하다.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것도 아니고, 무골호인 노릇을 하는 것도 아니고, 중용의 도를 지키는 것도 아니며, 어떤 사람의 환심을 사기 위한 것은 더욱 아니다. 이것이 원칙이다. 네가 이 몇 가지 원칙을 제대로 파악하면 말하거나 행동할 때 너도 모르는 사이 하나님의 뜻에 맞게 행하게 되고, 진리의 실제를 살아 내게 된다. 이러면 하나가 될 수 있다. 하나님의 집에서 사람이 처세 철학으로 살고, 관념과 자신의 뜻을 따르고, 욕망과 사심을 따르고, 자신의 은사와 잔머리에 의지해 사람들과 함께 지낸다면 하나님 앞에서 살 수 없고 하나가 될 수 없다. 무엇 때문이겠느냐? 그것은 사람이 사탄 성품으로 살면 하나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조화로운 협력에 관하여> 중에서), 『너에게 무골호인의 속셈과 관점이 있다면, 너는 어떤 일에서도 진리를 실행하거나 원칙을 지키지 못하고, 늘 실패하고 넘어질 것이다. 깨닫지 못하고 시종일관 진리를 구하지도 않는다면 너는 불신파이니, 영원히 진리 생명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겠느냐? 이런 일이 닥쳤을 때 하나님께 기도하고 부르짖으며, 구원해 달라고 해야 한다. 네가 원칙을 지키고 해야 할 일을 하며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고 마땅히 지켜야 할 입장을 지킬 수 있도록, 하나님 집의 사역에 손실을 주지 않고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킬 수 있도록 하나님께 믿음과 힘을 더해 달라고 해야 할 것이다. 만약 네가 자신의 이익과 체면, 무골호인의 관점을 저버리고 정직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다면, 이는 사탄을 이긴 것이며 이 부분의 진리를 얻은 것이다. 언제나 사탄의 철학으로 살기를 고집하면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지키고, 진리를 실행하지 못하며, 원칙을 지킬 엄두도 내지 못한다면 다른 일에서는 진리를 실행할 수 있겠느냐? 여전히 믿음도, 힘도 없을 것이다. 언제나 진리를 구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한다면 이렇게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를 얻을 수 있겠느냐? (얻을 수 없습니다.) 진리를 얻지 못한다면 구원받을 수 있겠느냐? 구원받을 수 없다. 언제나 사탄의 철학으로 살면서 진리 실제가 전혀 없다면 절대 구원받지 못한다. 진리를 얻는 것은 구원받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는 사실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진리를 얻을 수 있겠느냐? 진리를 실행하고 진리로 살아가며 진리가 네 생존의 토대가 되면 너는 진리를 얻고 생명이 있게 되고, 구원받은 사람이 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께서는 진정한 조화로운 협력은 그저 참고 포용하는 것이 아니라 원칙과 입장이 있어야 하며, 중용지도를 걷는 무골호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오직 진리 원칙대로 사람을 대하고 협력해야만 하나님의 뜻에 맞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늘 사탄의 처세 철학에 따라 살면서 사람과의 관계를 지키느라 진리 원칙을 고수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지 못한다면, 마지막에는 분명 진리를 얻지 못하고 하나님께 도태될 대상이 됩니다. 저는 무골호인의 사상 관점에 따라 살면서, 마땅히 예쉰의 문제를 지적하고 그녀가 자신을 인식하여 잘못된 내적 상태를 바로잡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지만, 지적했다가 관계가 틀어질까 봐 늘 걱정되어 마음을 열고 교제하는 것을 실행하지 않았습니다. 겉으로는 둘이 화목해 보였지만, 그녀는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지 못했고 내적 상태는 갈수록 나빠졌으며 모두가 속박받고 사역도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제가 진리를 실행하지 않아 초래된 결과였습니다. 저는 더 이상 그렇게 살 수 없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하여,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예쉰의 모습과 성질을 지적해야 했습니다. 만약 교제하고 폭로한 후에 그녀가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것은 그녀에게 좋은 일이고 진실한 도움이 될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만약 교제 후에도 그녀가 여전히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해서 반항한다면, 그때는 제가 분별력을 길러야 할 것이었습니다. 그날 밤, 저는 예쉰의 문제를 지적할 수 있는 믿음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기도 후 저는 먼저 나서서 예쉰의 내적 상태를 물었고,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진리를 싫어하는 그녀의 모습을 지적해 주었습니다. 예쉰은 그 말을 듣고 자신의 내적 상태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하고 바로잡고자 했습니다. 그녀가 여전히 진리를 받아들이기를 원하며, 단지 처음에는 패괴 성품 속에서 살다 보니 잠시 돌아서지 못했던 것임을 알게 되었고, 저 또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하니 마음이 놓이고 평온해지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다음날 예배 시간에 예쉰은 내적 상태를 교제하며 자신이 교만 성품에 따라 사람을 속박하고 진리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은 알게 되었지만, 그렇게 하는 것의 성질과 결과에 대해서는 아직 인식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제 마음은 또다시 복잡해졌습니다. ‘그녀가 세부적으로 인식하도록 다시 한번 지적해 줘야 할까? 만약 개괄적으로만 인식한다면 나중에 바로잡고 진입하는 데 불리할 거야. 하지만 내가 지적하면, 그녀는 내가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만에 하나 받아들이지 못하고 또 소극적으로 변하면 어떡하지? 나에 대해 편견을 갖게 되면 앞으로 어떻게 지내지? 그냥 스스로 천천히 인식하도록 내버려 둘까?’ 이런 생각에 저는 또다시 위축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제가 망설이는 것이 여전히 사람과의 관계를 지키고 싶어서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하며, 자매를 정직한 마음으로 대할 수 있는 믿음을 달라고 구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말은 어떤 것이겠느냐? 주로 격려하고 일깨우고 인도하고 권면하고 이해하고 위로해 주는 말이다. 이 외에, 특수한 상황에서는 다른 사람의 단점을 들추고 책망 훈계를 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상대가 진리를 깨닫고 잘못을 뉘우치는 마음을 가져야 성과가 날 수 있다. 이렇게 실행하면 사람에게 큰 유익이 된다. 이것이 진정한 도움 아니겠느냐? 그 사람에게 유익이 되지 않겠느냐?(<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3)>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깨달았습니다. 격려하고 권면하는 말도 도움이 되지만, 사람의 문제를 겨냥하여 책망하고 훈계하며 결함과 부족한 점을 지적해 주는 것이 사람에게 더욱 유익하고, 사람이 자신의 내적 상태를 더 잘 인식하고 진리를 구해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울 수 있으며, 사람의 생명 진입에도 유익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당시 예쉰은 자신이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의 성질과 결과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지적해 주면 그녀가 자신을 더 깊이 인식하도록 도울 수 있고, 이는 그녀의 생명 진입과 교회 사역 모두에 이로울 것이었습니다. 예쉰이 저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여 자매에게 진실한 도움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예쉰의 내적 상태를 겨냥하여 하나님 말씀을 몇 단락 읽어 주고, 그녀가 말한 인식이 두루뭉술하고 세부적이지 않다고 지적했으며, 또 하나님 말씀을 바탕으로 그렇게 하는 것의 성질과 결과를 교제해 주었습니다. 교제를 통해 예쉰도 자신이 현재 그다지 깊은 인식이 없음을 인정했고, 바로잡고 변화되기를 원했으며, 그 자리에서 란신에게 사과까지 했습니다. 란신도 자신의 내적 상태를 교제했고, 모두가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자 서로 간의 벽이 허물어졌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하는 것이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유익하다는 것을 진실로 체험했습니다. 사람이 진리를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형제자매 사이의 지적과 도움, 교제와 폭로는 사람을 소극적으로 만들기는커녕 오히려 사람이 자신을 더 잘 인식하게 하고, 서로의 생명 진입에 모두 성장이 있게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진리를 실행해서 얻는 수확입니다.

클릭하세요! 하나님에게서 온 기쁜 소식이 당신과 당신의 가족에게 임할 것입니다.

관련 콘텐츠

좋은 이미지 뒤에 가려진 모습

한국 웨이천2019년 12월, 저는 교회에서 복음 집사를 맡게 되었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리더들의 일하는 방식이 보였습니다. 형제자매들이 본분을 이행하다 문제점을 드러내면 곧바로 지적했고 엄한 말투를 쓸 때도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꿰뚫어 보고도 말하지 않는 친구가 진정 좋은 친구인가요?

저와 샹샹 자매는 알게 된 지 2년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서로 대화가 꽤 잘 통하고 매번 수다를 떨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이어지곤 합니다. 우리는 자주 함께 서로의 체험과 수확을 나누며 교제했고 자매는 어떤 내적 상태에 처하든 직접 찾아와 저와...

이런 사람으로 사니 참 좋다

일본 쉰추저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에게서 말을 할 때는 너무 직설적으로 하지 말고, 매사를 좋게 좋게 넘기는 것이 처세를 잘하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이나 동네 이웃들과 지낼 때도 항상 “문제가 보여도 말하지 않아야 좋은 친구다.”,...

의리를 지킨다고 좋은 사람인가요?

2012년, 제가 교회 리더를 맡고 있을 때, 정신 형제는 리더 자리를 차지하려고 일부 형제자매들을 구슬리고 미혹해 저를 판단하게 했고, 제가 거짓 리더라며 파면시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로 인해 교회가 혼란에 빠졌습니다. 그때 왕천 형제가 이런...

카카오톡으로 대화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