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과 실패 속에서의 성장
필리핀 실라(Sheila)2020년 12월,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몇 달 후에는 교회 리더로 뽑혔죠. 교회에는 처리해야 할 사역과 문제들이 산적해 있었고, 저는 열심히 교회 사역에 집중했습니다. 시간이 좀 지나자...
저는 교회에서 영상 제작을 하고 있었는데, 한동안 작업량이 줄어들자 리더가 저에게 새신자를 양육하라고 안배했습니다. 그러다가 영상 사역에서 필요하다고 하면 저는 영상을 제작했고, 바쁘지 않으면 또 새신자를 양육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왔다 갔다 두 번이나 조정되었습니다. 한 자매가 저를 보며 “필요한 곳마다 자매님이 조정되네요!”라고 말했을 때 저는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서 팀 내 작업량이 또 줄어들자 저는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앞으로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필요 없을 텐데, 그럼 또 나를 새신자 양육에 보내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자 저는 코끝이 찡해졌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쓸모가 없을까? 작업량이 줄어서 사람이 많이 필요 없어질 때마다 나만 조정되는 걸 보면, 난 팀에서 있으나 마나 한 존재야. 이번에도 정말 조정된다면 주변 형제자매들이 보고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왜 남들은 가만있는데 항상 나만 조정된다고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분명 내가 부족하고 팀에서 별로 중요한 역할도 아니라서 그런 거라고 생각할 거야.’ 이런 생각들이 떠오르니 저는 마음이 괴롭고, 이런 환경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한 번은 팀 내에서 한 영상 문제에 관해 토론을 했습니다. 모두를 각자의 의견을 활발히 발표하며 적극적으로 토론에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한참을 고민해도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어쩔 수 없이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두다 한마디씩 의견을 내며 토론하는데 저는 끼어들지도 못하니 마치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속으로 ‘안 되겠다. 나도 뭔가 말해야지. 모두 나를 무시하지 못하게 통찰력 있는 의견을 내야 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한참을 고민한 끝에 어렵게 제 의견을 발표했는데, 형제자매들이 모두 찬성하지 않을 줄은 몰랐습니다. 체면이 구겨졌다고 느낀 저는 속으로 ‘너무 창피해. 다들 나를 어떻게 볼까? 내가 8개월 동안 이 사역을 떠나 있었던 것은 맞지만 지금 내 업무 기술, 원칙에 대한 이해는 그때보다도 더 형편없어. 다른 사람들보다도 한참 떨어져 있고. 영상 제작 업무 기술은 계속해서 공부해야지 실력이 느는데 말이야. 다른 사람은 계속 영상을 제작하면서 업무든 원칙에 대한 이해든 점점 발전하고 있는데, 나는 여기서 조금 또 저기서 조금씩만 일하다 보니 어디서도 꾸준히 훈련받거나 공부하지 못했어. 결국 어떤 분야에서도 업무를 깊이 있게 알지 못하니까 작업량만 줄어들면 내가 제일 먼저 조정 대상이 되는 거야. 여기서는 내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야. 지금 작업량이 줄어든 걸 보니, 또 언제 담당자가 나를 새신자 양육으로 보낼지 몰라.’ 이런 생각이 들자 저는 너무 괴로워 자꾸만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왜 나는 항상 이런 환경에 처하게 되는 걸까? 팀 내 다른 형제자매들을 보면, 어떤 사람은 업무 능력이 뛰어나고, 어떤 사람은 사역 능력이 강하고, 또 어떤 사람은 이 본분을 오랫동안 이행해서 경험이 풍부하고, 또 어떤 사람은 효율이 높고… 모두 각자 특출난 장점을 가지고 있는데, 그에 반해 나는 자질도 남보다 부족하고, 업무 기술도 상대적으로 떨어지니 무슨 일을 하든 항상 남들보다 반 박자가 느려. 그러니까 작업량이 줄어서 사람이 많이 필요 없을 때마다 자연스럽게 내가 가장 먼저 조정되는 거야.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업무 기술과 자질이 뛰어났다면 이렇게 자꾸 조정되지 않았을 텐데, 아쉽게도 나는 그렇지 않으니까! 왜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뛰어난 업무 기술을 갖추지 못했을까?’ 저는 생각할수록 마음이 울적해지고, 하나님에 대한 오해까지 생겼습니다.
그 후로 저는 본분을 이행하기는 했지만 무기력해졌고, 무슨 일을 하든 매뉴얼대로 형식적으로만 일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사역 효율을 높여 좋은 성과를 거둘지는 생각하지도 않았고 문제들이 생겨도 진리를 구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떠날지도 모르니 그냥 이렇게 하자’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팀장이 저를 찾기만 하면 혹시 저에게 본분 조정에 관한 일을 꺼내지 않을까 추측하고선 마음이 굉장히 불안했습니다. 팀장이 단지 평소처럼 업무에 관해 소통하려는 것임을 알게 되면, 그제야 긴장했던 마음이 풀리곤 했습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저는 매일 사는 게 지치고 힘들었습니다. 분명 충분히 수면을 취했는데도 묵상 시간에는 항상 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도 빛이 없었습니다. 저는 제 내적 상태가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얼른 하나님 앞에 나와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자신의 문제를 반성하고 인식했습니다. 이후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자신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사람으로 처신하는 원칙은 무엇이냐? 착실한 사람으로 살아가며, 자신의 자리를 제대로 찾고, 자신이 이행해야 할 본분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자가 바로 이성을 갖춘 사람이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어떤 분야의 업무 기술에 능하고 원칙도 잘 파악할 수 있다면, 마땅히 책임감을 갖고 그 분야를 제대로 점검해야 한다. 그런가 하면 아이디어와 빛 비춤을 제공하여 다른 사람들이 깨우침을 얻어 이 본분을 더 잘 이행하도록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으면, 아이디어를 제공해야 한다. 자신의 위치를 제대로 찾고 형제자매와 조화롭게 협력할 수 있다면 본분을 이행하고, 자신의 위치에 따라 처신할 수 있을 것이다. 단지 아이디어를 조금 제공할 수 있으나 다른 것들을 제공하고 싶어서 무척 애를 써 보지만 역부족이었는데, 다른 사람이 그런 것들을 제공하면, 심기가 불편해져서 듣고 싶어 하지 않으며 마음이 괴롭고 속박받는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공의롭지 않다며 하나님을 원망한다. 이것은 야심이다. 사람의 야심은 어떤 성품의 지배를 받느냐? 교만한 성품의 지배를 받는다. 이런 내적 상태는 분명 너희에게 수시로 나타날 수 있다. 너희가 진리를 구해 해결하지 않아서 생명에 진입하지 못하면 이 방면에 변화가 생길 수 없다. 그렇게 되면, 너희 본분 이행의 합격률과 순결도는 매우 낮을 것이고, 성과 또한 별로 좋을 리가 없다. 이것은 바로 본분 이행이 불합격한 것이며, 하나님이 너희에게서 영광을 얻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각자에게 준 특기와 은사는 모두 다르다. 두세 분야에 특기를 가진 사람들도 있고, 한 분야에 특기를 가진 사람들도 있고, 아무런 특기가 없는 사람들도 있다. 너희가 이러한 일들을 모두 바르게 대할 수 있으면 이성이 있는 것이다. 이성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자리를 찾을 수 있고, 착실하게 살아갈 수 있고,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있다. 항상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는 사람은 늘 야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마음속으로 늘 지위와 이익을 추구하고,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듯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 손을 길게 뻗어 늘 자신의 사치스러운 욕망을 충족시키려 한다. 그는 자신이 은사가 있고 자질이 훌륭하니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치스러운 욕망을 좀 갖고 있어도 그게 뭐 대단한 잘못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이 이성이 있겠느냐? 항상 사치스러운 욕망을 가지고 있으니, 이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 아니겠느냐?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면 절대 이런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양심과 이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바로 알 수 있다. 만약 네가 충성을 다해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여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고자 한다면, 너의 이 소망은 결코 사치스러운 욕망이 아니다. 이는 정상적인 인성의 양심과 이성에 부합하며,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이다. 사람이 진정으로 자신의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고 싶다면, 우선 자신의 자리를 정확히 찾아야 한다. 그 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해내고, 네 온 힘을 다한다면 그것은 합격이다. 이렇게 본분을 이행하면 순결도가 높아지고,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피조물이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처신의 원칙>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제가 의기소침했던 이유가 저의 야심과 욕망이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임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우러름과 중시를 받지 못하고 현재 상황을 바꿀 능력도 없었기에 마음속으로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것이 별로 좋지 않다며 하나님을 오해하고 원망했고, 세상과 사람을 탓하게 되었습니다. 팀 내 작업량이 줄어들면서 저는 두 번이나 본분이 조정되었고, 이번에 복귀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는데 세 번째 조정을 받게 될 지도 몰랐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는 스스로 팀 내에서 가장 부족하고, 있으나 마나 한 사람으로 아무런 존재 가치가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고 괴로웠습니다. 문제를 토론할 때 자신이 너무 형편없게 보이지 않으려고 저는 고심해가며 가치 있고 통찰력 있는 의견들을 발표하고 싶었습니다. 결국 제 의견이 부정당하자 저는 체면이 깎였다고 느꼈습니다. 특히 제 업무 기술이 다른 사람보다 한참 뒤처져 있다는 것을 깨닫고 마음이 불편하고 불만이 생겼습니다. 본분이 자꾸 조정되는 바람에 자신이 어느 분야에서도 깊이 있게 알지 못하고 어디에서 본분을 하더라도 항상 밑바닥 위치에 있으며, 언제든지 조정될 위험에 처해 있는 것 같았습니다. 다른 형제자매와 비교했을 때 그들은 각자 장기와 특출난 장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에 반해 저는 어느 면에서도 남들보다 못하다고 느꼈습니다. 특히 치명적인 결함은 무엇을 하든지 느리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현실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하나님이 저에게 좋은 자질을 주지 않았다고 원망했고, 마음이 울적하고 억울해서 본분을 이행할 의욕마저 사라졌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은사, 특기, 자질을 다 다르게 주셨고, 우리가 이행하도록 맡긴 본분도 다 다릅니다. 여기에는 모두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가 있습니다. 진정으로 이성적인 사람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위치에 똑바로 서서 자신의 역할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전혀 순종하지도 않았고 기꺼이 가장 작은 역할을 맡으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언제나 사람들 사이에서 지위를 얻고 우러름과 중시를 받으려고 했습니다. 이런 것들을 얻지 못하면 소극적으로 되고 사역에 소홀해졌으니, 정말 이성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그렇게 좋은 자질을 주지 않으셨지만 저에게 높은 요구를 하시지도 않으셨습니다. 단지 제가 자신의 위치를 제대로 찾고 마음과 힘을 다해 자신의 본분을 이행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기만을 바라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너무 교만하고 비이성적이어서 모든 면에서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마주하려고 하지 않았고 항상 남들을 놀라게 하고 싶은 야심과 욕망으로 가득해 남들의 우러름과 중시를 받고자 했습니다. 결국 아무리 노력해도 이루지 못했고 여전히 소극적인 상태로 살고 있습니다. 이것은 결국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 아닙니까?
나중에 저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나는 항상 다른 사람들이 가진 은사와 특기를 부러워할까? 왜 항상 사람들 사이에서 지위를 얻으려고 하고,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을 참지 못할까? 이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일까?’ 구하는 과정에서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적그리스도에게 있어 지위와 명예는 그의 생명이자 평생 추구해야 할 목표이다. 그는 무슨 일을 하든 가장 먼저 이런 것을 고려한다. ‘내 지위는 어떻게 될까? 내 명예는 또 어떻게 될까? 내가 이 일을 하면 좋은 명성을 얻을 수 있을까? 사람들 마음속의 내 지위가 올라갈 수 있을까?’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들인데, 이것으로 그에게 적그리스도의 성품과 본질이 있음이 충분히 증명된다. 그래서 그는 문제를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적그리스도에게 지위와 명예는 부가적인 요구 사항이 아니고,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신외지물(身外之物)은 더더욱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적그리스도의 본성과 뼛속, 핏속에 들어 있는 것으로, 선천적으로 갖고 있는 것이다. 적그리스도의 태도는 지위와 명예가 있어도 괜찮고 없어도 괜찮은 것이 아니다. 그럼 어떤 것이겠느냐? 명예와 지위는 그에게 있어 매일의 삶과 상태, 추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적그리스도에게 있어 지위와 명예는 그의 생명이다. 그가 어떻게 살아가든, 어떤 환경에서 생활하든, 어떤 직업에 종사하든, 추구하는 것과 목표가 무엇이든, 인생의 방향이 어디를 향하고 있든 모두 좋은 명예와 높은 지위를 갖는 것을 중심에 놓는데, 이 목적은 바뀌지 않는다. 이는 그가 영원히 내려놓지 못하는 것들이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진면목이자 그의 본질이다. … 만약 그들이 어떤 명예와 이익, 지위도 얻지 못하고, 다른 이의 앙망과 우러름, 추종도 받지 못했다고 생각된다면, 깊은 실의에 빠져 하나님을 믿는 것은 의미도 가치도 없다고 여길 것이다. 그들은 속으로 ‘이렇게 하나님을 믿는 건 실패한 거 아닌가? 희망이 없는 거 아닌가?’라고 느낀다. 그들은 늘 마음속으로 이런 것을 궁리한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 집에서 한자리 차지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교회에서 높은 명망을 얻어 자기가 말하면 사람들이 들어주고 행동하면 지지해 줄지, 어디를 가든 자신을 따를 대상이 있을지, 교회에서 발언권과 명예, 이익, 지위를 갖게 될지 등을 궁리한다. 그들은 속으로 이런 것들을 특별히 중시한다. 이것이 바로 이 부류 사람들의 추구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9조(3)> 중에서) 하나님은 적그리스도가 특히 명예와 지위를 애지중지하게 여기며 무슨 일을 하든 사람들 사이에서의 지위를 고려하여 명예와 지위를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이자 자신의 생명으로 삼기 때문에, 만약 명예와 지위를 얻지 못하고 사람의 우러름을 받지 못하면 실망하고 의기소침하며 무엇을 해도 재미없게 느낀다고 밝히셨습니다. 제 모습과 대조해 보니 저도 이들과 똑같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본분이 자꾸 조정되면서 저는 자신이 팀에서 있으나 마나 한 주변인이 된 것 같았고, 별다른 지위도 없고 특별히 중요해 보이지도 않아서 마음이 굉장히 괴로웠습니다. 문제에 대해 토론할 때 제가 가치 있는 제안을 하지 못하고 발표한 의견도 다른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자 마음속으로 자신은 팀에서 가장 부족한 사람이라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아무도 저를 우러러보거나 중시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아무런 존재 가치가 없는 것 같고, 연약하고 소극적인 상태로 변해 하나님을 오해하고 원망까지 했습니다. 저는 명예와 지위를 자신의 생명처럼 여기고 이것들을 얻지 못하면 소극적이 되고 사역에 소홀히 하며 무슨 일을 해도 의욕이 없었습니다. 명예와 지위에 대한 저의 집착이 이렇게 강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항상 명예와 지위를 추구한 이유는 ‘출세하면 남들 위에 군림한다’, ’사람은 이름을 남기고 짐승은 가죽을 남긴다’, ‘살아서는 걸출한 인물이 되어야 하고 죽어서도 귀신 중의 영웅이 되어야 한다’와 같은 사탄의 독소에 깊이 영향을 받아 이를 인생에서 가장 정당한 목표로 여기고 그렇게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패기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학창 시절, 저는 특히 열심히 공부하여 중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시험을 보면 종종 반 1등을 차지하곤 했습니다. 어디를 가든 인기가 많았고, 항상 반 친구들과 선생님의 칭찬을 받아 마음속으로 큰 만족감을 느꼈습니다. 교회에 와서 본분을 이행하게 된 후, 저는 여전히 이러한 사탄의 독소에 따라 살면서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자신의 지위에 유난히 신경을 쓰고 항상 남들의 우러름과 중시를 받으려 추구했습니다. 비록 팀장, 담당자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되려고 했습니다. 일단 명예와 지위를 얻지 못해 야심과 욕망이 충족되지 않으면 저는 원망을 품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입으로는 감히 말하지 못했지만,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거역하고 반항하며 본분을 이행하는 데 소극적이고 게을러졌습니다. 제가 사탄의 독소에 따라 살면서 자신에게 고통과 괴로움만 주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자신이 하나님과 대립하는 입장에 서서 하나님과 이치를 따지며 흥정하고 하나님의 공의를 의심하며 하나님에게 대적했다는 사실조차 몰랐습니다. 계속 이렇게 살다가는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고 도태당할 것입니다!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사람은 절대 야심을 품거나 헛된 꿈을 꾸지 말고, 명리나 지위를 추구하지 말고, 두각을 드러내기를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 초인이나 위인이 되는 것, 사람들 속에서 남보다 돋보여 다른 사람의 숭배를 받는 것은 더더욱 추구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패괴된 인류가 동경하는 것으로, 사탄의 길이다. 하나님은 그런 부류의 사람을 구원하지 않는다. 계속 명리나 지위를 추구하면서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자들은 구제 불능이고, 결말은 오직 하나, 즉 도태되는 결말을 맞이할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려면 조화로운 협력이 필요하다> 중에서) 이전에는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는 것이 이렇게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줄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또한 제가 적그리스도처럼 그렇게 큰 악을 저지르며,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기껏해야 사람들의 우러름을 받지 못하면 소극적이고 연약해져 자신이 괴롭고 고통스러운 것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저는 큰 악을 저지르지 않았지만 하나님이 주신 환경에 불복하며 불만을 품었고 항상 원망하며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반항하고 대립했으니, 이것은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예전에 저와 함께 협력했던 한 자매가 생각났습니다. 그녀도 처음에는 열심히 본분을 이행하고 리더로 뽑히기까지 했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조정당해서 교체되고, 지위까지 잃게 되자, 사람들의 우러름과 중시를 받지 못한 그녀는 계속 소극적이 되고 결국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나버렸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항상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깨달았습니다. 일단 야심과 욕망이 충족되지 않으면 소극적이 되고 하나님을 오해하고 원망할 수 있으며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반항하고 하나님을 배신까지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자 저는 제 내적 상태가 위험하다는 것을 깨닫고, 더 이상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지 말고 명예와 지위의 속박과 통제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묵상 중에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많은 일을 하고 큰 사업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뭔가 위대한 업적을 남기는 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사람이 자신의 능력에 따라 착실하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다. 하나님은 네가 아주 위대해지는 것도, 존귀해지는 것도, 어떤 기적을 만들어 내는 것도 필요하지 않다. 또 하나님은 너에게서 그 어떤 놀라움을 보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이런 것들은 다 필요 없다. 하나님은 오로지 네가 착실하게 하나님 말씀에 따라 실행하기만을 바란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해했으면 바로 행하고, 듣고 깨달았으면 이행하고, 들었으면 마음속에 새기고, 그리고 실행해야 할 때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너의 생명과 실제가 되고 그 말씀을 살아 내기를 원할 뿐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만족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려면 조화로운 협력이 필요하다> 중에서), 『하나님이 너를 어리석게 한 데는 그만한 의미가 있고, 너를 똑똑하게 한 데는 또 그만한 의미가 있다. 하나님이 네게 어떤 재능을 주었든, 네가 무엇을 잘하든, 네 지능이 얼마나 높든 하나님에게는 다 의도가 있고, 전부 하나님이 미리 정해 놓은 것이다. 네가 평생 어떤 역할을 할지, 어떤 본분을 이행할지 그것은 전부 하나님이 오래전에 정한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이의 장점이 자신에게는 없다는 것을 알고 불만을 가지며, 더 많이 공부하고 보고 노력하여 바꿔 놓으려 한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한계가 있고, 은사와 재능이 있는 사람을 뛰어넘지는 못한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소용이 없다. 너는 하나님이 정해 놓은 대로이고, 이는 누구도 바꿀 수 없는 일이다. 네가 어떤 분야에 재능이 있다면 그 분야에서 많이 노력하고, 네가 어떤 본분 이행에 적합하다면 그 본분을 이행하면 된다. 네가 잘하지 못하는 것을 억지로 잘하려고 하지도 말고 남을 질투하지도 마라. 사람은 다 각자의 기능이 있으니, 자신은 무엇이든 잘한다고, 다른 사람들보다 완벽하고 뛰어나다고 생각하며, 늘 남을 대신하고 스스로를 뽐내려고 하지 마라. 이는 패괴 성품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잘하는 게 하나도 없다고, 재능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럼 고분고분 말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라. 네가 할 수 있는 것을 제대로 보여 주고 전력을 다하면 된다. 하나님은 그것으로 만족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처신의 원칙>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은 저희가 위대한 사람, 뛰어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성실하고 착실한 사람이 되어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데 집중하고 복종하고 순종할 수 있는 피조물이 되기를 바라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신의 자질 정도와 업무 능력 정도는 모두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달려 있으므로 저는 마땅히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제 특기에 따라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모든 것을 발휘하여 최선을 다해 본분을 이행해야 합니다. 저의 업무 기술이 다른 형제자매보다 부족하지만 그렇다고 이 사역을 전혀 할 수 없는 정도는 아닙니다. 지금 교회가 저에게 이 본분을 안배한 이상 저는 착실하게 최선을 다해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발휘해야 합니다. 문제를 토론할 때는 제가 아는 만큼만 이야기하고 꿰뚫어 보지 못하거나 원칙에 대해 분명히 알지 못할 때는 형제자매와 더 많이 구하고 교제하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많이 듣고, 다른 사람의 장점을 흡수해 자신의 단점을 보완해야 합니다. 이런 생각을 하니 저는 마음이 한결 밝아지고 실천할 길과 방향도 생겼습니다. 또한 이전에는 본분이 조정되는 것을 창피한 일로 여겼고, 정말로 조정되었을 때 자신이 가장 부족함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이를 올바르게 대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제 관점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주신 은사, 특기, 자질은 모두 다르고, 각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바도 다릅니다. 저의 업무 기술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팀 내 작업량이 그렇게 많지 않을 때 교회에서 제 특기에 따라 판단해서 저의 본분을 조정하고 안배한 것은 원칙에 맞는 일이고, 교회 사역에도 도움이 되므로 저는 이를 올바르게 대해야 합니다. 다른 한편, 하나님께서 사람을 판단하시는 기준은 단순히 한 가지 사역을 잘 수행하는지에 있지 않고, 그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지, 하나님께 진정으로 순종하며 본분을 이행할 때 충성심이 있는지를 보십니다. 묵상할수록 저의 마음이 한층 밝아지면서 더 이상 그렇게 얽매이지 않게 되었고, 자신이 무엇을 집중적으로 추구해야 하는지도 마음속에서 분명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를 깨우쳐 당신의 뜻을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언제 조정될지는 모르지만 당신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어디에서 본분을 이행하든지 최선을 다해 당신을 만족시켜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마음가짐을 바꾸자 본분을 이행하는 저의 상태도 달라졌습니다. 예전에 저는 항상 자신은 남들과 달리 이 팀에 단지 임시적으로 있을 뿐, 언제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고 여기고, 남들보다 열등한 것 같아서 소속감도 별로 없었고,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오해하고 거리감을 느끼며 본분 이행에 온 힘을 쏟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저는 더 이상 그렇게 생각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디에서, 얼마나 본분을 이행하든 모두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으며 저는 마땅히 순종하는 법을 배워, 나중에 떠나게 될지라도 지금 교회에서 영상을 만드는 동안에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열심히 본분을 이행하며, 주어진 모든 환경을 성실히 경험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본분을 이행하게 되었을 때 저는 항상 하나님께 기도하며 본분 이행의 효율을 높일 수 있도록 저를 인도해 달라고 구했고, 의식적으로 본분 중 어떤 문제가 있는지 고민하면서 즉시 정리하고 오류를 바로잡으려고 했습니다. 어떤 방면의 원칙을 분명히 알지 못하면 저도 형제자매와 함께 구하고, 교제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본분을 이행했을 때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고 하나님과의 관계도 가까워진 것 같았습니다.
후에, 한 예배에서,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마음에 무척 감동을 받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운명에 대한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대해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선은 왜 너에게 이러한 운명과 이러한 생활 환경을 안배했는지, 왜 너에게 이러한 일이 닥치게 하고 너로 하여금 이러한 일을 겪게 했는지, 네 운명이 왜 이러한지를 창조주에게 구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네가 마음속으로 갈구하고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한편,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를 인식해야 한다. 알아보고 인식한 다음에 사람이 할 일은 반항도, 선택도, 거부도, 반발도 아니며 도피도 아니다. 하나님과 흥정하는 것도 물론 아니다. 사람이 할 일은 순종하는 것이다. 왜 순종해야 하느냐? 너는 피조물이고 네 운명을 지배할 수도, 주재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네 운명은 하나님에게 달려 있다. 너는 운명 앞에서 수동적이고 선택권이 없다. 네가 해야 할 일은 오로지 순종뿐이다. 선택하려 들지 말고 도피하려 들지 마라. 하나님과 흥정하려 들지도 말고 맞서거나 불만을 품지도 마라. “하나님께서 안배해 주신 팔자가 안 좋습니다. 저는 팔자가 사나워요. 제 팔자는 남들만 못해요.”라거나 “저는 타고나길 팔자가 별로라서 복이 없어요. 하나님께서 좋게 안배해 주시지 않았어요.” 등의 말은 당연히 더더욱 해서는 안 된다. 이는 모두 판단하는 말이며 주제넘은 말이다. 피조물이 할 말이 아니고, 피조물이 가져야 할 관점과 태도도 아니다. 정반대로, 너는 운명에 대한 갖가지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이해와 정의,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견해와 깨달음을 내려놓는 동시에, 올바른 태도와 입장을 가지고 하나님이 네게 안배해 준 운명 속에서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에 순종해야 한다. 반항해서는 안 되며, 의기소침한 정서를 지닌 채로 불공평하다면서 하늘을 원망하거나 하나님의 안배가 안 좋다고, 네게 최고의 운명을 안배해 주지 않았다고 하나님을 원망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운명이라는 문제에 있어서 피조물에게는 선택할 권리가 없다. 하나님은 네게 그럴 의무를 주지 않았으며, 그럴 권리도 부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너는 선택하려 들어서도, 하나님께 따져서도, 하나님께 따로 무언가를 요구해서도 안 된다. 너는 하나님이 안배해 준 대로 거기에 적응하고 직면해야 한다. 하나님이 무언가를 안배했으면 너는 그것에 직면하고, 겪어 보고, 몸소 느껴야 한다. 하나님이 네게 안배해 둔, 네가 반드시 경험해야 할 모든 일에 완전히 순종하고, 하나님이 네게 안배해 둔 운명에 순응해야 한다. 네가 반드시 경험해야 하는 것이라면, 하나님이 너를 위해 배치한 것이고 하나님이 네게 안배한 것이라면, 설령 네가 그것을 좋아하지 않고, 그것이 너를 고생스럽게 하고, 너의 존엄과 인격이 도전받고 억압당할지라도, 반드시 순종해야만 한다. 네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사람의 운명이 하나님이 안배해 놓고 주재하는 것인 이상 사람은 하나님과 무엇도 협의할 수 없다. 그러니 현명한 사람이라면, 정상 인성의 이성을 갖춘 사람이라면, 항상 본인의 운명이 좋지 못하다고 탓하거나 자신의 이런저런 문제에 대해 불평해서는 안 된다. 운명을 잘못 타고났다는 생각에 의기소침한 태도로 자기 본분을 대하고, 자기 인생을 대하고, 자기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걷는 길을 대하고, 하나님이 안배한 모든 환경을, 혹은 하나님의 요구를 대해서는 안 된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2)>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저는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 깨닫고 마음이 한결 더 밝아졌습니다. 사람의 운명은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사람마다 어떤 가정에서 태어나는지, 어떤 교육을 받는지, 어떤 은사와 특기가 있는지, 언제 교회에 와서 본분을 이행하고, 어떤 본분을 이행하는지는 모두 하나님이 주재하고 안배하신 것이며, 모두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습니다. 예전에 저는 왜 자신이 항상 이런 환경에 처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니 확실히 저에게 꼭 필요한 환경이었습니다. 만약 이런 환경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저는 명예와 지위에 대한 저의 집착이 이렇게 강한 줄도 깨닫지 못했을 것이고 제가 약간은 변했다고 느꼈을 지도 모릅니다. 사탄 철학이 제 안에서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것도 보지 못하고 정상적인 인성의 이성을 잃어 하나님께 이치를 따지며 반항하면서 이런 식으로 계속 추구하면 하나님께 도태될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경험을 통해 저는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는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관점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하게 되었고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는 것은 바른 길이 아니며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고 해치는 수단이라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동시에 저는 자신의 자질을 올바르게 대하며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를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하고, 자신의 위치에 제대로 서서 이성이 있는 피조물이 되어야 한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앞으로 제가 조정될지 말지, 어떤 본분을 이행하는지와 관계없이, 제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해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적응하고 경험하며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모든 환경을 성실히 체험하면서 모든 환경에서 수확을 거두고 자신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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