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쇄
중국 리모(李默)저는 2004년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복음을 전파한다는 이유로 신고당했습니다. 그날도 병원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동료가 갑자기 원장이 부른다고 하더라고요. 원장실에 들어가자마자 제복을 입은...
2018년, 저는 교회에서 영상을 제작하고 있었습니다. 업무 관련 기술이 빠르게 발전했던 저는 평소 형제자매들의 문제나 어려움 해결을 도와주곤 했는데, 그 덕분에 모두들 저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고, 리더도 일부 중요한 사역들을 저에게 맡기곤 했습니다. 리더의 신임과 형제자매들의 우러름을 받게 되자 저는 성취감을 느꼈고 더욱 의욕이 생겨났습니다. 비록 팀장은 아니었지만 저는 사역에 있는 문제를 즉시 발견해 정리할 수 있었고, 평소 리더와 팀장이 저에게 안배해 주는 사역도 최선을 다해 해냈습니다. 저는 제가 본분에 책임감이 있고 비교적 순종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주변에서 교회가 안배한 사역이 자신의 뜻에 맞지 않으면 소극적이고 태만해져 성실하게 본분을 이행하지 않는 형제자매들을 볼 때면 저는 저런 환경이 닥쳐도 저들처럼 되지 않고 순종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2022년 어느 날, 팀장은 문서 사역에 사람이 부족하다면서, 저에게 문서 사역이 안배될 계획이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현재 팀의 사역량이 많지 않은 점, 제가 문서 관련 능력을 좀 갖췄고 평소 진리를 교제하며 약간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점을 리더들이 종합적으로 판단한 결과라고 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저는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이건 내 본분을 조정하겠다는 거잖아? 나는 지금 팀에 있는 게 좋아. 형제자매들의 인정도 받고 있고, 다른 팀에서도 내게 문제에 대해 물어보려고 찾아오는걸. 얼마나 체면이 서! 만약 문서 사역을 하게 되면, 난 원칙도 잘 모르는 데다, 처음부터 배우려면 대체 얼마나 오래 배워야 다른 사람을 따라잡을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어. 난 팀에서 제일 부족한 사람이 되는 거잖아? 정말 이해가 안 돼. 왜 하필 나를 선택한 거지?’ 전에 알던 몇몇 자매들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그녀들도 문서 관련 능력이 좋았지만, 문서 사역을 맡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역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본분이 조정되었습니다. 그녀들보다 부족한 제가 가서 사역을 잘 못하면 역시 망신을 당할 터였습니다. 아무리 비교해도 지금 하고 있는 본분이 더 안정적이고 면이 서는 일이었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수록 리더의 판단이 너무 성급했다고 여겨졌습니다. 저의 특기를 파악하지도 않고 저의 본분을 조정하다니 말입니다. 저는 팀장 앞에서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리더가 제대로 판단하지 않은 것 아닌가요? 저는 영상 제작에 능한 편이지, 문서 사역은 제 특기가 아니에요. 맡아봤자 잘하지 못해요. 저의 특기를 고려해 다시 생각해 보시겠어요?” 팀장은 저의 입장을 생각해 리더와 상의하여 저의 조정 건을 다시 고려해 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팀장은 교회 사역의 필요를 우선적으로 생각해 보라고 교제해 주었습니다. 저는 이치를 따질 것이 아니라 우선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중에 저는 본분을 조정하는 방면의 원칙을 찾아서 읽어 보았습니다. 『사람에게 어떤 본분을 안배할 때, 하나님 집에서는 사람의 기호에 근거하는 게 아니라 사역상의 필요와 성과를 낼 수 있을지에 근거한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하나님 집에서 개인의 기호에 맞춰 본분을 안배해야 하겠느냐? 개인의 기호를 충족시키는 것을 전제로 사람을 써야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어느 것이 하나님 집에서 사람을 쓰는 원칙에 부합하겠느냐? 어느 것이 진리 원칙에 부합하겠느냐? 하나님 집 사역의 필요와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는 성과에 근거하는 것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12조 복받을 희망이나 지위가 없으면 물러나려 한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교회가 사람의 특기에 따라 본분을 안배하는 것은 하나의 측면일 뿐이고, 본분 안배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교회 사역의 필요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현재 문서 사역에는 사람이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영상 제작팀은 사역량이 많지 않으니, 제가 없어도 진도가 지체되지 않을 터였습니다. 저는 마땅히 교회 사역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여 개인의 선택과 요구는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만약 제가 자신의 취향만을 충족시키려 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이기적인 짓이었습니다. 여기까지 인식하자 더 이상 마음에 거부감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 후, 저는 또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만약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으며 하나님의 배치와 안배에도 순종하지 않는다면, 오직 좋은 행위만 얼마간 있을 뿐, 육을 버리거나 자신의 이익과 체면을 조금도 포기하지 못한다면, 겉보기에는 본분을 이행하고 있는 것 같아도 여전히 사탄 성품으로 살아가면서 사탄의 철학과 사탄의 생존 방식을 조금도 버리거나 바꾸지 못한다면, 이것이 어떻게 하나님을 믿는 것이겠느냐? … 하나님을 몇 년 믿었든, 그와 하나님 사이에는 정상적인 관계가 수립되지 않았으며, 무슨 일을 하든 또는 어떤 일이 닥치든, 그가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은 ‘내가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해야 나에게 유리할까, 어떻게 하는 것이 나에게 이익이 되지 않을까, 이렇게 하면 어떤 결과가 생길까’이다. 그는 이런 것들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어떻게 실행해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을지,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을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또한, 하나님이 무엇을 요구하고 하나님 말씀에서는 뭐라고 하는지를 전혀 기도하여 구하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지, 하나님의 요구는 무엇인지, 사람이 어떻게 실행해야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비록 때로는 그도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고 하나님과 교제하기는 하지만, 이는 모두 혼잣말일 뿐, 결코 진심으로 진리를 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 말씀을 읽어도, 현실 생활 속에서 직면한 일과 결부시키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마련해 준 환경 속에서 그는 어떻게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 지배를 대하느냐? 자신의 염원을 만족시킬 수 없는 일에 직면하면, 그는 회피하고 마음속으로 반발한다. 자신의 이익이 손해를 보고 자신의 이익을 충족시킬 수 없는 일에 직면하면, 그는 온갖 방법을 생각해 출로를 찾아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아무런 손실도 입지 않도록 애쓴다. 그는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는 것을 구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것만을 구하는데,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겠느냐? 이런 사람이 하나님과 관계가 있겠느냐? 아무 관계가 없다. 그의 삶은 아주 비열하고, 야비하며, 강퍅하고, 추하다. 그는 하나님과 어떤 관계도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여러 측면에서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를 어긴다. 그는 말끝마다 “하나님께서 저의 모든 것을 주재하시고 주관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제 마음속 보좌에 오르시어 왕권을 잡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고자 합니다.”라고 말하지만, 직면한 일이 그의 이익에 손해를 끼칠 때는 순종하지 못한다. 하나님이 마련한 환경에서 그는 진리를 구하지 않고 오히려 이런 환경을 전환시키려 하고 벗어나려 한다. 그는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려 하지 않고, 자기 뜻대로 하고자 한다. 자신의 이익이 조금이라도 손해를 입지 않아야만 하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이익, 자신의 처지, 자신의 기분과 느낌이 어떠한지에만 관심을 갖는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종교를 믿으며 종교 의식을 행하면 구원받을 수 없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관념에 맞지 않는 일이나 자신의 이익에 손해를 끼치는 일이 닥치면, 자발적으로 진리를 구해 자신의 패괴를 해결하고, 하나님 말씀 가운데 답을 찾으며, 하나님의 깨우침과 인도를 기다린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진리를 구하지 않고, 어처구니없게 구는 사람은, 관념에 맞지 않는 일이 닥치면 사람과 일에 대해 온갖 트집을 잡고, 심지어 하나님을 원망하며 하나님의 배치와 안배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저 자신과 대조해 보았습니다. 문서 사역을 하게 되면 다른 사람의 우러름을 받을 수 없고, 또 뭐 하나 잘하는 게 없다고 드러날 거라는 생각이 들자, 저는 갖은 이유와 핑계를 댔습니다. 그 일에 서툴다는 사실을 방패막이로 삼아, 저는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한다는 것을 일부러 강조했습니다. 그렇게 팀장의 동정과 이해를 사서 원래 팀에 남아 저의 지위를 지키려고 했습니다. 일이 닥치기 전 체면이 서던 시절에는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겠다고 떠들어 댔으면서, 막상 관념에 맞지 않고 저의 이익이 침해당하는 일이 닥치자, 저는 이치를 따져대며 반항했습니다. 하나님의 배치에 불만을 품고 순종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서 원인을 찾아 리더의 안배가 합리적이지 않다고 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리더는 사역의 필요에 따라 합리적으로 조정한 것이 맞았고, 저는 문서 능력이 좀 있으니 전혀 못할 일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이번 조정이 저의 명예와 지위에 손해를 입히자 불만을 품고 반항했던 것이었습니다. 정말이지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고 순종하여, 힘닿는 한 문서 사역을 하겠다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본분이 조정되고 보니, 대부분의 형제자매들이 저보다 문서 실력이 좋았습니다. 어떤 이는 일찍이 리더를 했던 적이 있었고, 어떤 이는 몇 년 동안 문서 사역을 해서 원칙에 대해 비교적 잘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문제에 대해 토론하거나, 관점을 발표할 때도 비교적 내용이 명확했고 견해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들이 참 부러웠고, 저도 모르게 울적해졌습니다. ‘처음부터 다른 사람들이랑 이렇게 차이가 나는데, 나는 언제쯤 저 사람들처럼 될 수 있을까?’ 하지만 저는 크게 낙담하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원칙과 업무의 여러 방면에서 모두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시간을 들여 원칙을 익혔고,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형제자매들에게 구하며 배웠습니다. 하지만 막 훈련을 시작해서 형제자매들과 문제에 대해 토론할 때, 저에게는 좋은 견해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가끔 관점들을 발표하기도 했지만 적절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망신스러웠고, 이렇게 가다 가는 남들의 우러름은커녕 하면 할수록 저의 부족함이 드러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형제자매들은 저를 보고 자질이 너무 떨어져서 아무 양성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을까요? 이 사역의 중요성과 높은 난이도를 본 저는 더 걱정이 되었습니다. 사역을 잘 못해서 조정된다면 무척 창피할 것 같았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본분을 이행할 때면 늘 정신을 딴 데 팔고 있었습니다. 머릿속은 텅 빈 채로 두 눈은 컴퓨터를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업무를 배우는 데도 아무 흥미가 느껴지지 않았고 동기 부여가 되지 않았습니다. 마음은 늘 왠지 모르게 의기소침했고, 가끔은 언젠가 리더가 생각이 바뀌어 나를 돌려보내 줬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하곤 했습니다. 그편이 여기서 잘하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드러나거나 관심을 못 받는 것보다 나을 것 같았습니다. 그 후, 제 업무를 지도해주는 자매가 저의 본분 이행에 존재하는 원칙 문제를 확인해 정리해 주는데 하필이면 팀에서 이런 문제와 오류들을 지적했습니다. 너무 창피했던 저는 저도 모르게 영상을 제작하던 과거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참 체면이 서던 시절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늘 저를 찾아와 문제에 대해 물어보았고, 저는 자주 남들의 잘못을 지적해 주곤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제가 반면교사가 되어 항상 잘못을 지적받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정말 양극단의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격차는 저를 더 소극적으로 만들었고, 심지어 리더를 찾아가 이 사역을 감당할 수 없다고 말하고 영상 제작 사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다들 저보고 순종하지 않는다고 할까 봐 억지로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하루는 문득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바로 해결하지 않고, 네 내면에 이런 문제들이 쌓여서 심각해질 때까지 내버려둔다면, 너의 그 얼마 안 되는 열정이나 다짐이 본분 이행을 지탱해 주지 못할 것이고, 너는 소극적으로 변해 쓰러질 것이다. 심지어는 하나님을 떠날 위험성도 있는데, 절대 굳게 서지 못할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11)> 중에서) 저는 이런 소극적인 내적 상태를 해결하지 않는 것이 매우 위험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겉으로는 본분을 이행하고 있었지만, 전혀 몰입을 하지 않았습니다. 남들의 우러름과 칭찬을 받던 장면들을 자주 떠올리며 현재 본분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더 이상 이렇게 건성으로 굴며 자신을 속이고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후 저는 반성하면서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아무도 자신이 완벽하거나 존귀하거나 고상하거나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지 마라. 이 모든 것은 사람의 교만한 성품과 무지에서 나온다. 언제나 자신은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것, 이것은 교만한 성품에서 비롯된다. 늘 자신의 결점을 인정하지 못하고, 자신의 실수와 실패를 직시할 수 없는 것, 이것은 교만한 성품에서 비롯된다. 타인이 자신보다 높거나 자신보다 나은 것을 늘 용납하지 않는 것, 이것도 교만한 성품에서 비롯된다. 늘 다른 사람의 장점이 자신을 압도하거나 자신을 추월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것도 교만한 성품에서 비롯된다. 항상 타인이 자신보다 더 나은 생각, 제안, 견해를 갖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누군가 자신을 추월한 것을 알게 되면 소극적이 되고 말하기 싫어하며 괴로워하고 마음이 가라앉으며 속상해하는 것, 이 모든 것은 교만한 성품 때문에 생긴 것이다. 성품이 교만하면 자신의 체면을 지키게 되고, 타인의 지적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자신의 결점을 직시하지 못하고, 자신의 실패와 잘못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뿐만 아니라 누군가가 너보다 나을 때 네 마음에 미움과 질투가 일어나고 마음이 위축되어서 본분을 이행하고 싶어 하지 않게 되고 본분을 건성으로 대충 이행하게 된다. 교만한 성품은 네게 이러한 행동과 방식을 유발할 수 있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처신의 원칙> 중에서) 하나님 말씀은 제가 소극적인 이유를 찾게 해주었습니다. 저는 항상 제가 잘났다고 생각했고, 스스로를 높이 샀습니다. 어디를 가든 1등이 되고 싶었고, 사람들에게 둘러 쌓여 받들어지고 싶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우러름을 받지 못하고 얼굴을 드러내지 못하면 소극적이 되어 그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습니다. 이것은 모두 저의 본성이 너무 교만하여 생긴 것들입니다. 막 문서 사역을 훈련했을 때 저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어떤 원칙도 듣기만 하고 몇 번 본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어서, 반드시 일정 기간 착실하게 익혀야 했고, 그러는 동안 실수와 실패는 피할 수 없었습니다. 정말 이성이 있는 사람은 이런 일들을 올바르게 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저 자신을 전혀 모른 채 어디를 가든 제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어 했습니다. 훈련을 시작하자마자 좋은 성적을 내서 저를 한 차례 드러내고 싶어 했습니다. 그렇게 형제자매들에게 제가 자질이 좋다는 것을 보이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다 잘하지 못하고, 해내지 못하고, 얼굴을 드러낼 수 없게 되자, 저는 소극적이고 태만해졌고, 업무를 익히는 데도 의욕을 잃었습니다. 심지어 본분을 버리고 여기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너무나 교만하고, 스스로를 무척 대단하게 여기는 저 자신을 보았습니다. 제가 받는 이런 고통들은 순전히 제가 자신을 괴롭히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 영상을 제작할 때는 그렇게 의욕이 넘쳤는데, 어째서 문서 사역을 맡은 후에는 아무리 해도 힘이 나지 않는 걸까?’ 그 후,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보고 자신의 내적 상태에 대해 조금이나마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에게 진리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진리를 추구하는 힘이 있고, 열심히 진리를 실행할 것이다. 버려야 할 것은 버리고 포기해야 할 것은 포기할 수 있다. 특히 자신의 명리와 지위에 관련된 일은 더 당연히 내려놓을 것이다. 만약 내려놓지 않는다면 이는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진리를 추구하는 힘이 없다는 의미이다. 일이 닥쳤을 때는 진리를 구하고 실행해야 한다. 진리를 실행해야 할 때마다 사심을 품으면서 자신의 이익을 내려놓지 못한다면 진리를 실행할 수 없다. 무슨 일이 닥쳐도 진리를 구하거나 실행하지 않는다면 이는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다. 이런 자는 하나님을 아무리 오래 믿어도 진리를 얻지 못한다. 언제나 명리와 이익을 추구하면서 교회에서 어떤 사역을 안배하든 ‘이 일이 내게 도움이 될까? 도움이 되면 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안 할 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은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데, 제대로 본분을 이행할 수 있겠느냐? 절대 그럴 수 없다. 설사 악을 행하지는 않는다고 할지라도 너는 진리를 실행하는 사람이 아니다. 너는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긍정적인 사물을 사랑하지 않으며, 어떤 일이 닥치든 늘 네 명예와 지위, 이익과 이점을 생각한다. 이는 오직 이익만을 꾀하는 사람이자, 이기적이고 비열한 사람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 말씀에 의하면, 사람에게 진리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자신의 체면과 지위, 이익과 관련된 일이 닥쳤을 때 이것들을 내려놓을 수 있고, 육을 저버리고 진리를 실행할 수 있습니다. 과거 영상을 제작할 때 스스로 책임감이 있고 순종한다고 여겨, 저를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반성했습니다. 진실 앞에, 과거 저의 행동들은 하나님을 만족시켜 드리기 위한 것이 아니었고, 그저 제 이익이 저촉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사역을 좀 할 수 있었던 것뿐임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지금의 저는 늘 영상 제작 본분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데, 그 본분을 좋아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형제자매들의 추대와 우러름을 내려놓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에 비록 겉으론 팀장이라는 직함은 없었지만, 저는 형제자매 마음속에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매번 문제를 해결하고 일을 잘 처리할 때마다, 형제자매들의 우러름과 칭찬을 받았습니다. 저는 이것들을 매우 즐겼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많은 대가를 치르고 고생을 해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문서 사역은 저를 매우 창피하게 했습니다. 여기서 저는 모든 것을 처음부터 배워야 했고 아무에게도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예전처럼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입장은 다시는 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자신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에게 각종 기초적인 문제를 물어봐야 했을 뿐 아니라, 업무적으로도 너무 부족해 수시로 다른 사람의 지적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저는 저의 부족한 점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고, 그저 꽃과 박수 속에 살며 남들의 우러름과 칭찬을 즐기고 싶었습니다. 심지어 언젠가 리더가 다시 나를 제작 영상을 맡도록 하게 해주지 않을까 상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저는 다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받들어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를 기다리는 것은 제가 상상하던 결과가 아닌 저의 패괴와 부족함이 끊임없이 드러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소극적이 되었고 괴로워했으며, 본분을 이행할 의욕을 잃었습니다. 그제야 제가 과거에 명예와 지위를 위해 본분을 이행했지, 마음속으로는 전혀 본분을 하나의 책임으로 생각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기간 동안, 저는 항상 제 내적 상태에 대해 구하고 반성했습니다.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적그리스도에게 있어 지위와 명예는 그의 생명이다. 그가 어떻게 살아가든, 어떤 환경에서 생활하든, 어떤 직업에 종사하든, 추구하는 것과 목표가 무엇이든, 인생의 방향이 어디를 향하고 있든 모두 좋은 명예와 높은 지위를 갖는 것을 중심에 놓는데, 이 목적은 바뀌지 않는다. 이는 그가 영원히 내려놓지 못하는 것들이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진면목이자 그의 본질이다. 깊은 산 숲속에 데려다 놓아도 그는 명예와 지위에 대한 추구를 내려놓지 못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 가운데 갖다 놓아도 그가 마음속으로 신경 쓰는 것은 여전히 명예와 지위이다. 적그리스도 부류 사람들 역시 하나님을 믿긴 하지만, 그들은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는 것과 하나님을 믿는 것 사이에 등호 기호를 그려 넣곤 이 두 가지를 대등한 위치에 둔다. 즉,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길을 걸으면서 동시에 명예와 지위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곧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는 것이며,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는 것이 곧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고, 명예와 지위를 얻으면 진리와 생명을 얻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할 수 있다. 만약 그들이 어떤 명예와 이익, 지위도 얻지 못하고, 다른 이의 앙망과 우러름, 추종도 받지 못했다고 생각된다면, 깊은 실의에 빠져 하나님을 믿는 것은 의미도 가치도 없다고 여길 것이다. 그들은 속으로 ‘이렇게 하나님을 믿는 건 실패한 거 아닌가? 희망이 없는 거 아닌가?’라고 느낀다. 그들은 늘 마음속으로 이런 것을 궁리한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 집에서 한자리 차지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교회에서 높은 명망을 얻어 자기가 말하면 사람들이 들어주고 행동하면 지지해 줄지, 어디를 가든 자신을 따를 대상이 있을지, 교회에서 발언권과 명예, 이익, 지위를 갖게 될지 등을 궁리한다. 그들은 속으로 이런 것들을 특별히 중시한다. 이것이 바로 이 부류 사람들의 추구이다. 그들은 왜 늘 이런 것들을 중시하겠느냐? 하나님 말씀을 읽고 설교를 들었는데도 이런 일에 대해 마음속으로 인식이나 분별이 생기지 않은 것이겠느냐? 하나님 말씀과 진리가 그들의 관념이나 사상 관점을 바꿔 놓지 못한 것이겠느냐? 절대 그렇지 않다. 문제는 그들 자신에게 있다. 전적으로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진리를 싫어하기 때문에 적그리스도는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는 그들의 본성 본질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9조(3)> 중에서) 하나님 말씀은 적그리스도가 얼마나 명예와 지위를 아끼는지 폭로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으며 다른 것을 버리고 헌신하는 것은 명예와 지위를 위해서입니다. 일단 지위를 잃으면 목숨을 잃은 것과 같아, 그들은 모든 일에 흥미와 의욕을 잃어버립니다. 생각해 보면 저의 모습은 적그리스도의 그것과 똑같았습니다. 저 역시 남들의 우러름과 추앙받는 것을 좋아하고, 심지어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는 것을 긍정적인 것으로 여겨, 지난 몇 년간 명예와 지위를 얻는 것을 추구해 왔습니다. 집에서 아버지는 항상 저에게 ‘두각을 나타내라’, ‘가문을 빛내라’고 말씀하시며, 남들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학교에서 선생님도 ‘사람은 높은 곳으로 가고,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관점을 주입했습니다. 이런 것들이 끊임없이 제 사상에 주입되어 저는 점점 더 명예와 지위를 좋아하게 되었고, 그것들을 위해서는 아무리 고생을 해도 기꺼웠습니다. 학교에 다닐 때, 좋은 성적을 얻고 선생님과 친구들로부터 칭찬과 우러름을 받기 위해, 커피로 버티며 밤새워 문제를 풀었습니다. 심지어 병이 났는데도 수업에 나가며 저는 모든 걸 견뎌냈습니다. 교회에서 영상을 제작했던 지난 몇 년간, 겉으로는 고생하며 대가를 치렀고, 기술을 배우며 사역도 많이 했지만, 저의 목적은 다른 사람의 우러름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본분이 조정된 후 다른 사람의 우러름을 받지 못하자, 그리고 실수를 해 저의 부족한 점과 모자란 점이 드러나자, 저는 의기소침해졌고, 마음속으로 오해하며,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환경에 불만을 품었고, 본분에도 의욕을 잃었습니다. 명예와 지위를 위해 살며 속으로 늘 어떻게 해야 남들의 우러름을 받을 수 있을지 생각하는 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요구에 역행하는 것을 추구하고 있었습니다.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지위를 추구하는 것을 가장 혐오한다. 그런데도 네가 목을 곧게 세워 지위를 두고 다투고, 언제나 그것을 아끼고 지키면서 가지려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대항하는 성질을 띠고 있지 않으냐?』(<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9조(3)> 중에서) 비록 당장은 적그리스도처럼 지위를 위해 사람의 마음을 농락하고, 자신을 세우고, 독립된 왕국을 만드는 등 눈에 띄는 악행을 저지르지 않았지만, 저의 속셈과 추구 관점은 잘못된 것으로, 항상 사람의 마음속에 지위를 가지는 것을 추구하고 있었습니다. 이대로 가는 건 위험했습니다. 분명 하나님의 혐오를 살 터였습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저를 지켜주신 하나님이 참 감사했습니다.
이번에 있었던 본분 조정으로, 저는 제가 걸어온 잘못된 길을 반성하고 제때 되돌릴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저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이었습니다. 비록 이제는 얼굴을 내밀 기회가 없지만, 저는 마음속으로부터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몇 년 동안 많은 시간을 헛되이 낭비했다는 게 조금 후회스럽기도 했습니다. 만약 제가 지위를 추구하던 에너지를 진리 추구와 자기 인식에 썼더라면, 지금처럼 패역하고 패괴되지 않았을 것이고, 좀 더 이성을 갖춰 하나님께도 더 순종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저는 또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일에 충성을 다해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려면 한 가지 측면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하며, 하나님이 맡기는 모든 부탁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네 입맛에 맞거나 흥미를 갖는 것이든, 네가 싫어하는 것이든,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어려운 것이든, 너는 다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한다. 받아들이는 것은 물론,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배우고 체험하고 진입도 해야 한다. 고생하고 수고스럽고 모욕을 당하며 고립된다 할지라도 충성을 다해야 한다. 이렇게 실행할 수 있어야 모든 일에 충성을 다하게 되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다. 너는 그것을 자신의 사업이 아닌 본분으로 여겨 이행해야 한다. 본분을 어떻게 이해해야겠느냐?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이 한 사람에게 행하라고 맡긴 일이다. 사람의 본분은 바로 이렇게 생겨난 것이다. 하나님이 네게 맡긴 부탁, 그것이 바로 너의 본분이다. 네가 하나님의 요구대로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것이 하나님이 맡긴 부탁임을,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이 임한 것임을 확실히 깨닫는다면 너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본분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고, 본분 이행 과정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것이며, 하나님을 만족게 하기 위해 모든 난관을 극복할 것이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부탁을 절대 거부해서는 안 된다. 그 어떤 본분도 거부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어떤 본분을 맡기든, 어떤 어려움이 있든 거부해서는 안 되며, 마땅히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이 실행의 길이다. 다시 말해, 매사에서 진리를 실행하고 충성을 다해 하나님을 만족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점은 어디에 있겠느냐? ‘매사’라는 말에 있다. 이 ‘매사’는 네가 좋아하는 일이 아닐 수도 있고, 네가 잘하는 일이 아닐 수도 있으며, 더욱이 네게 익숙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때로는 서투를 것이고, 때로는 배워야 할 것이며, 때로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고, 때로는 고생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일이든 하나님이 네게 맡긴 부탁이라면 너는 그것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여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여 충성을 다해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실행의 길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망신당한 것은 좋은 일이다. 네 부족함과 허영심을 알게 하고, 너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게 하며, 너 자신이 완벽한 사람이 아님을 똑똑히 알게 한다. 완벽한 사람은 없고 망신을 당하는 것은 정상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망신당할 때가 있고, 난처할 때가 있다. 사람이라면 모두 실패할 수 있고, 좌절을 겪을 수 있으며, 사람이라면 누구나 연약한 부분을 가지고 있다. 망신당한다고 해서 나쁠 것은 없다. 네가 망신을 당하고도 창피함을 느끼지 않고 마음이 의기소침해지지 않게 된다면, 이는 네 낯이 두꺼워졌다는 것이 아니라 망신당한 일이 네 평판에 끼칠 영향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고 네 허영심이 더는 네 마음을 점령하지 않는 것이며, 네 인성이 성숙해졌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좋으냐! 이는 좋은 일이 아니냐? 이는 좋은 일이다. 실력 발휘를 못 했다고, 운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마라. 객관적인 이유를 찾지 마라. 전부 정상이다. 너도 망신을 당할 수 있고, 그도 망신을 당할 수 있고, 모두 망신을 당할 수 있다. 결국에는 누구나 똑같음을, 다들 보통 사람이고 평범한 사람임을, 남보다 대단한 사람도 없고 남보다 나은 사람도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다들 망신당할 때가 있으니 누구도 다른 사람을 조롱해서는 안 된다. 수많은 실패를 경험하면서 인성은 점점 성숙해지고 노련해진다. 비슷한 일이 다시 닥쳤을 때 너는 거기에 구애받지 않으며, 정상적으로 본분을 이행하는 데에 영향을 받지 않게 된다. 너의 인성이 정상이 되고, 인성이 정상이 되면 이성도 정상이 된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2)>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보고 나니, 어떻게 이 환경을 체험해야 할지 실행의 길이 생겨났습니다. 남들이 우러러봐 주든 말든, 얼굴을 드러낼 수 있든 없든, 저는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환경에 순종하고, 진심으로 본분을 대하며, 온 마음과 힘을 다해야 했습니다. 이것이 저의 책임이고, 제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 후, 사역을 하며 때로는 실수를 하고, 때로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문제를 한가득 지적받아 마음이 불편하기도 했지만, 저는 더 이상 소극적인 태도로 이를 대하지 않았습니다. 실수와 실패가 닥칠수록 이것들은 저를 더 다그쳐 주었습니다. 제가 즉시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 저의 패괴를 인식하고, 저의 오류와 부족함을 정리하고 반성할 수 있게 해주었고, 일부 원칙들을 더 깊이 기억하도록 해주었습니다. 이는 본분을 잘 해내는 데 유익했고, 저의 생명 진입에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받아들이니 저의 마음가짐도 많이 좋아져 다른 사람의 시선을 그렇게 신경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업무에 대해 말하자면, 저는 오류와 문제를 정리하고, 모르는 것은 형제자매에게 구하며, 관련된 원칙을 찾아 진입했고, 다른 사람의 좋은 실행의 길을 참고하기도 했습니다. 내적 상태에 대해 말하자면, 저는 시간이 날 때면 묵상하고 반성하였고, 제가 표출한 패괴에 대해 하나님 말씀 안에서 자신을 인식했습니다. 이렇게 얼마간 실행하자, 지금의 본분을 약간은 좋아하게 되었고, 본분의 성과도 예전보다 좋아졌습니다. 이 과정을 돌이켜보니 그제야 하나님의 애쓰시는 마음이 실감되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본분을 이행하며 저는 많은 수확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실패와 드러남으로 인해 저는 그제야 저의 부족함을 명확히 보고, 제 진짜 분량을 확실히 알았으며,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는 법을 배웠을 뿐 아니라, 본분 이행에 있어서도 더 많이 원칙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거기다 항상 이런 환경에서 단련을 받은 덕분에 저의 인성도 예전보다 조금 더 성숙해졌습니다. 일이 닥쳐도 그렇게 경솔하거나 나약해지지 않고, 자신의 부족함을 올바르게 대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진리 원칙을 구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이것들은 저를 훈련시키고, 온전케 합니다.
이번 본분 조정을 체험하면서, 저는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저의 얼굴이 빛나든 말든, 다른 사람의 우러름을 받을 수 있든 없든, 모두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순종했는지, 진리를 실행한 증거가 있는지 여부입니다. 과거에는 본분이 조정된 후 소극적이 되고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을 무시하며 저 자신은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진실 앞에서 비로소 저의 본성이 무척 교만하고,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으며, 남들 보다 나을 게 없다는 사실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환경을 통해 드러난 덕분에 저는 비로소 자신에 대해 약간이나마 인식이 생겼고, 조금은 변하게 되었습니다.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의 구원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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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와 샹샹 자매는 알게 된 지 2년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서로 대화가 꽤 잘 통하고 매번 수다를 떨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이어지곤 합니다. 우리는 자주 함께 서로의 체험과 수확을 나누며 교제했고 자매는 어떤 내적 상태에 처하든 직접 찾아와 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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