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삼촌이 출교된 후

2025.3.6

중국 예추(葉秋)

저희 외삼촌은 한의사입니다. 제가 열 살 때 사고로 피를 토하는 증상이 그치지 않았는데, 위급한 순간에 외삼촌이 저를 살려 주셨습니다. 제 목숨을 구해 준 은혜를 늘 마음속에 깊이 새기며 나중에 커서 꼭 보답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2008년,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셔서 온 가족이 고통 속에 빠져 있을 때 외삼촌은 저희에게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복음을 전해 주었습니다. 덕분에 저희는 의지할 곳이 생겼을 뿐만 아니라 진리를 추구하여 구원받을 기회까지 얻게 되어, 외삼촌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더욱 커졌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 혼자서 저희 삼 형제의 학비를 감당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러자 외삼촌은 저를 자기 집으로 데려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의학을 배우게 했고, 먹고 자는 것도 모두 자기 집에서 해결하게 했습니다. 허약한 제게 외삼촌은 영양가 있는 보양식을 자주 만들어 주며 저를 친딸처럼 대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전 마음속으로 외삼촌께 한없이 감사했고, 나중에 외삼촌에게 어떤 어려움이 닥치든 제가 할 수 있고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반드시 온 힘을 다해 돕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2011년, 교회 조사 결과 저희 외삼촌이 악인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는 교만하고 거만하며 억지를 부렸고 진리는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누구든 자기에게 건의하면 그 사람을 괴롭혔고, 늘 리더 일꾼을 판단하고 공격하며 정죄했습니다. 심지어 형제자매와 리더의 관계를 이간질하여 교회 생활과 교회 사역을 심각하게 교란했습니다. 형제자매들은 그를 만날 엄두도 못 낼 정도로 억압당했습니다. 여러 차례 교제했음에도 그가 끝까지 회개하지 않아, 결국 교회는 그를 출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당시 리더가 저에게 서명에 동의하는지 물었을 때, 전 무척 고민되었습니다. 외삼촌의 행태는 명백했고, 심지어 저조차도 외삼촌에게 미움과 구박을 받아 운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서명하면 외삼촌이 저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렸을 때 외삼촌이 제 목숨을 살려 주신 일,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 주신 일, 제게 의학을 가르쳐 주신 일 등, 제게 잘해주셨던 그 모든 일을 생각하면, 제가 서명했을 때 나 보고 배은망덕하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때 리더가 읽어 준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이 제 마음에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에서 어떤 원칙으로 사람을 대하라고 요구하느냐?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을 미워하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이 지켜야 할 원칙이다. 하나님은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을 사랑한다. 이 또한 사람이 사랑해야 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미워하거나 거역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혐오하는 사람으로, 우리도 마땅히 혐오해야 한다. 이것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이다. … 은혜시대에 예수는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라고 했다. 은혜시대에 벌써 이 말씀이 있었고, 오늘날 하나님이 한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을 미워하라.”라는 말씀은 더욱 명확하고 단도직입적이다. 그러나 사람은 흔히 하나님이 한 이 말씀의 참된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자신의 잘못된 관점을 알아야 진정으로 돌이킬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나니 마음에 찔렸습니다. 외삼촌이 지니고 있는 악인의 모습이 그렇게 명백한데도 제가 서명하지 않는다면, 그가 교회에서 계속 방해하고 교란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정에 이끌려 행동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을 미워하라”를 실행해야 했기에 서명했습니다.

2012년, 교회에서 외삼촌을 출교한다는 공고가 내려왔고, 저는 외삼촌을 마주할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제가 서명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외삼촌은 저더러 분별력 없는 얼간이라고 꾸짖었습니다! 외삼촌의 말을 듣고, 저는 그가 자신의 악행을 전혀 반성하거나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제가 서명한 것이 그에게 너무 매정하고 배은망덕한 짓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후, 저는 본분 사정상 외삼촌 집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비록 외삼촌을 마주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그가 저를 꾸짖던 말은 계속 제 마음속에 맴돌았습니다. 특히 훗날 일어난 한 사건으로 인해 외삼촌에게 빚을 졌다는 생각이 한층 강해졌고, 급기야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2016년 연말, 저는 타지에서 본분을 이행하다가 폐렴과 흉막 삼출로 병세가 심해져 형제자매의 도움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곧이어 외삼촌도 병원으로 달려오셨고, 저를 간호하느라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물심양면으로 지원했습니다. 제가 혈압이 심하게 떨어지자 혈자리를 마사지하여 치료해 주기도 했습니다. 퇴원 후에는 몸조리에 좋은 한약을 지어주었습니다. 제가 외삼촌의 출교에 동의하는 서명을 한 걸 아시고도 한결같이 저를 아껴 주는 모습을 보니, 외삼촌에 대한 죄책감이 더더욱 밀려왔습니다. 그 기간에 외삼촌은 제게 지난 몇 년간 출교되었음에도 꾸준히 복음을 전해 여러 사람을 전도했다는 이야기도 해 주었습니다. 또한 복음을 전하다가 큰 붉은 용에게 체포되어 가산을 몰수당했고, 한의원은 폐쇄되어 10만 위안이 넘는 손실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큰 붉은 용이 그렇게 박해했음에도 하나님 말씀 서적을 보관하고 있는 집은 팔아넘기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큰 붉은 용이 사진을 보여 주며 형제자매를 지목하라고 했을 때, 그가 한 자매가 리더라고 실토했는데, 바로 자신을 출교시켰던 그 리더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외삼촌은 제가 양심도 없다며, 자기는 저를 친딸로 여겨서 아버지처럼 대했는데 저는 인정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냉혈한 같다고 꾸짖었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외삼촌에게 죄책감이 들었고, 동시에 측은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마침 그 무렵 윗선 리더로부터 이전에 출교된 사람이라도 회개하는 모습이 보이고 믿음을 지키며 복음을 전하면 교회가 다시 받아들일 수 있다는 말을 듣고는 외삼촌이 떠올랐습니다. ‘비록 출교되긴 했지만 지난 몇 년간 외삼촌은 꾸준히 복음을 전했고, 큰 붉은 용에게 체포되어 심문을 받을 때도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았으니, 교회가 다시 받아들이지 않을까? 복음을 전하며 힘쓰는 것으로 속죄해도 좋을 거야. 그때 가서 하나님 말씀을 더 많이 교제해 주면, 그도 점차 과거의 악행을 반성해서 회개하고 변화될 수 있지 않을까? 외삼촌을 다시 받아들인다면, 저를 배은망덕한 사람이 아니라 그래도 양심은 있는 사람으로 봐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는 순간, 저는 마치 외삼촌의 은혜를 갚을 기회를 찾은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편지에 외삼촌의 이런 바람직한 모습들만 적어 리더에게 보내고, 그가 경찰에게 리더의 사진을 지목했던 일이나 제 앞에서 불평하고 저를 꾸짖었던 안 좋은 말들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리더는 사람을 보내 외삼촌이 교회에 다시 돌아올 조건에 부합하는지 알아보게 했습니다. 며칠 후, 한 자매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자매님 외삼촌 댁에 찾아가 자신을 어떻게 반성하고 인식하는지 물었더니, 저희더러 사실이나 진상을 조사하러 온 게 아니라면서 리더랑 제 식구만 감싸는 한패라며 노발대발하더군요. 금방이라도 저희를 때릴 듯한 기세라 자매님 외숙모께서 옆에서 계속 말리고 붙잡았어요. 그러고는 또 손을 내저으며 예전 일을 들먹이셨어요. 꼬투리를 잡고 늘어지며 리더를 공격하고 판단하더라고요. 저희가 보기에는 외삼촌분이 자신을 전혀 인식하고 계시지 않아서 교회가 다시 받아들이기는 부적합해 보입니다.” 이어서 자매는 제가 외삼촌의 본질을 분별하고 꿰뚫어 보아야 한다고 교제하면서 이 일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물었습니다. 외삼촌의 그런 모습을 듣고 나니 저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확실히 외삼촌은 교회가 받아들이기에 부적합했습니다.

그 후, 저는 제 문제를 두고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보았습니다. 저는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탄에 의해 패괴된 사람은 모두 패괴 성품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들 중 일부는 그저 성품이 패괴된 것에 그치는 데 반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들은 사탄의 패괴 성품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본성 자체가 이미 극도로 악독해진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은 언행에서만 사탄의 패괴 성품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영락없는 사탄 마귀이다. 그들이 하는 짓은 모두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며, 형제자매들의 생명 진입을 방해하고, 정상적인 교회 생활을 파괴하는 것이다. 양의 탈을 쓴 이리들은 언젠가 모두 쫓겨날 것이다. 그런 사탄의 종들에게는 가차 없이 내치는 태도를 취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하나님 편에 서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자는 다 사탄과 손을 잡은 자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진리를 행하지 않는 사람에 대한 경고> 중에서), 『사탄은 누구이고 마귀는 누구이며 하나님의 원수는 또 누구더냐? 바로 하나님을 믿지 않고 대적하는 그 무리들 아니더냐?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들 아니냐? 입으로는 믿는다고 말하나 진리가 없는 자들 아니더냐? 복만 받으려 하며 오히려 하나님을 증거하지 못하는 자들 아니더냐? 네가 오늘날에도 이 마귀들과 손잡고 그들을 양심과 사랑으로 대한다면, 그것은 사탄에게 선의를 베푸는 것 아니겠느냐? 마귀와 한통속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오늘날에 이르렀는데도 선악을 구분하지 못하고 한결같이 사랑과 긍휼만 강조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려는 생각은 전혀 없이 하나님의 마음을 자기 마음으로 여기지 못한다면, 이런 부류가 맞이하는 결말은 더욱 비참할 것이다. 육신에 거하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는 모두 하나님의 원수이다. 네가 원수에게도 양심과 사랑을 베푼다면 정의감이 없는 것 아니겠느냐? 내가 증오하고 반대하는 자와 네가 오히려 마음이 통해 그들을 사랑이나 사적인 감정으로 대한다면 패역 아니겠느냐? 고의로 대적하는 것 아니겠느냐? 그런 자에게 진리가 있겠느냐? 원수를 양심으로 대하고 또 마귀를 사랑으로 대하며 사탄에게도 긍휼을 베풀려고 한다면, 고의로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는 자 아니겠느냐?(<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안식에 들어갈 것이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제 마음을 심판하는 듯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외삼촌이 출교된 지 벌써 몇 년이 지났습니다. 그에게 양심과 이성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교회 생활을 방해하고 교란하며 하나님을 대적했던 많은 일들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자신을 반성하며 뉘우치고 회개했을 것입니다. 특히 그동안 저와 형제자매들이 그에게 교제하고 지적해 주었는데도, 그는 자신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것도 모자라 몇 년 동안 저를 미워했고, 리더는 더 미워했습니다. 자신이 출교된 것이 모두 다른 사람 탓이라고 여기며, 자신을 출교시킨 리더에게 원한을 품고 경찰에게 그녀의 사진을 지목하기까지 했습니다. 그 후에도 그는 계속해서 리더에 대한 편견을 퍼뜨리고, 남들을 거짓 리더, 적그리스도로 정죄했습니다. 이를 통해 볼 때 외삼촌은 악인의 본질을 지녔고, 진리를 싫어하고 증오하는 본성을 지녔기 때문에 언제까지나 회개하거나 변화되지 않을 것임이 분명했습니다. 이런 영락없는 악인을 앞에 두고도 저는 오로지 양심과 은혜만 따졌고, 심지어 그를 감싸고 두둔하며 그가 교회에 다시 받아들여지기를 바랐습니다. 저는 정말이지 너무나 눈이 어둡고 어리석어 선악을 분별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사탄에게 아첨하고, 악인의 편에 서서 하나님을 대적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나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나서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어느 정도 인식하게 되었고, 나아가 교회가 외삼촌을 다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고생 끝에 큰 공을 세웠든, 대단한 관록을 가지게 되었든, 나의 곁을 따랐든, 명망이 자자하든, 태도가 나아졌든 관계없이, 네가 나의 요구를 따르지 않았다면 영원히 나에게 칭찬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아무래도 너희가 서둘러 온갖 생각과 계획을 완전히 지우고 나의 요구를 진지하게 대하는 것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모든 사람을 잿더미로 만들어 나의 사역을 끝낼 것이다. 그러면 기껏해야 나의 오랜 사역과 고난이 무(無)로 돌아갈 뿐이다. 나는 나의 원수와 사악한 기운을 풍기며 사탄의 본모습을 가진 자들을 나의 나라, 다음 시대로 데려갈 수 없기 때문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과오는 사람을 지옥으로 끌고 갈 것이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나서 저는 하나님의 거룩하고 공의로우며 거스를 수 없는 성품을 느꼈고, 사람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원칙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윗선 리더로부터 이전에 출교된 사람이라도 믿음을 지키며 복음을 전하고 회개하는 모습을 보이면 교회가 다시 받아들일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외삼촌의 겉모습을 대조해 보았습니다. 그가 출교된 후에도 계속 복음을 전했고, 큰 붉은 용에게 체포되어 박해를 받을 때도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았으니, 반성과 인식이 부족하더라도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나서야 저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판단하시는 데에는 기준이 있고, 교회가 사람을 받아들이는 데에도 원칙이 있습니다. 특히 이전에 악을 행하여 제명되거나 출교된 사람은 자신의 악행을 진실하게 인식하고 회개하여 변화되었는지를 더욱 중요하게 보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그러지 않으면 교회는 절대 다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외삼촌은 출교된 후에도 계속 복음을 전하며 바람직한 행실을 어느 정도 보였지만, 과거에 저지른 악행과 자신의 패괴 본성을 전혀 반성하거나 인식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이 아무리 지적하고 교제하며 책망하고 폭로해도 그는 전혀 깨닫지 못했고, 심지어 자기한테 스스로 반성하라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적대시했으며, 리더에 대한 편견을 퍼뜨려 사람들을 미혹하고 교회 생활을 방해하고 교란했습니다. 이처럼 살아 있는 악인이자 마귀 같은 사람이 출교된 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공의였습니다. “나는 나의 원수와 사악한 기운을 풍기며 사탄의 본모습을 가진 자들을 나의 나라, 다음 시대로 데려갈 수 없기 때문이다.”라는 하나님의 말씀처럼 말입니다. 그런데도 저는 그를 위해 목소리를 내며 그를 교회에 다시 받아들여지게 하려 했으니, 이는 제가 하나님을 대적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를 깨닫고 나니, 더더욱 제가 진리를 깨닫지 못한 너무나도 무지하고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후, 전 병에 걸려 몸조리하느라 외삼촌과 계속 마주쳐야 했는데, 그의 행태는 이전보다 더 심각해졌습니다. 리더를 판단하는 것을 넘어, 거만한 말로 성령께서 쓰시는 사람까지 판단했습니다. 이를 통해 저는 그가 진리를 증오하고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본질을 지녔다는 것을 한층 분명히 알게 되었고, 아울러 과거 그를 두둔했던 것을 자책하고 후회했습니다. 저는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 나는 이런 영락없는 악인에게 은혜를 갚으려고만 했을까? 전에는 그 이유를 찾지 못했는데, 나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나서 비로소 문제의 근원을 찾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와 같은 도덕적 행위에 관한 말은 사람이 이 사회, 이 인류 가운데서 다해야 할 책임이 과연 무엇인지 알려 주지 않는다. 그저 이런 방식으로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속박하고 강요할 뿐, 사람이 원하는지는 신경 쓰지 않고, 사람에게 닥친 일이 어떤 상황, 어떤 배경에서 벌어진 것인지도 상관하지 않는다. 고대 중국에는 다음과 같은 일이 무척 많았다. 예를 들어, 굶어 죽을 지경이 된 거지를 어떤 집안에서 거두어 먹여 주고 입혀 주고 무예나 각종 지식을 가르쳐 준 다음 그가 성인이 되면 돈벌이 수단으로 삼아 악행, 살인 등 그가 원치 않는 일을 시키는 것이다. 그가 입은 은혜를 생각한다면, 그가 그들 덕에 목숨을 구하게 된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가 압박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저지른 일들을 생각한다면, 이것이 좋은 일이겠느냐, 나쁜 일이겠느냐? (나쁜 일입니다.) 그런데도 사람은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는 전통문화에 물들어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다. 표면적으로 볼 때, 그가 악을 행하고 다른 사람을 해치며 살수가 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보통 악을 행하고 남을 죽이는 짓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의 내면 깊은 곳을 본다면, 주인의 지시대로 악을 행하고 사람을 죽이는 것에는 보은의 의미가 있지 않겠느냐? 특히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는 중국 전통문화의 영향 아래에서 사람의 마음은 어쩔 수 없이 이런 사상에 물들고 지배된다. 그가 일하는 방식과 방법, 그리고 의도와 출발점은 분명 이런 것들에 통제될 것이다. 이런 일이 닥쳤을 때, 그가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겠느냐? ‘이 집안에서 나를 구해 줬으니 나는 이 집안에 은혜를 입은 거야. 은혜에 보답해야지, 배은망덕하게 굴어서는 안 돼. 내 목숨은 저들이 구해 준 거니까 저들을 위해 바쳐야 해. 저들이 뭘 시키든 해야 한다고. 설령 그게 악을 행하고 사람을 죽이는 일일지라도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고 온 힘을 다해 보답해야 해. 이렇게 큰 은혜에 보답하지 않으면 사람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겠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 집안사람들이 살인이나 나쁜 일을 시킬 때마다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어떤 의문도 품지 않는다. 그럼 그의 이런 행위와 행동, 어떤 의문도 품지 않는 태도는 전부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는 생각과 관점에 지배된 것 아니겠느냐? 그는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는 덕행의 준칙을 이행하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 사례에서 무엇을 알 수 있느냐?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는 말이 좋으냐? (좋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원칙이 없습니다.) 사실, 보은하는 사람에게도 원칙이 있다. 그의 원칙은 바로 은혜는 반드시 보답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입었으면 반드시 보답해야 하며, 보답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고, 정죄당한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는 것이다. “물 한 방울의 은혜라도 넘치는 샘물로 보답하라.”라는 말이 있는데, 하물며 이는 물 한 방울의 은혜가 아니라 목숨을 구해 준 은혜이니 더더욱 목숨으로 갚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보은의 원칙이 무엇인지, 보은의 마지노선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자기 목숨을 그 집안사람들이 구해 주었으니, 마땅히 그들을 위해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고, 그들이 무엇을 시키든, 심지어 그것이 악을 행하고 남을 죽이는 일일지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의 그런 보은은 원칙과 선을 잃어버리고 악인의 앞잡이가 되는 행위로, 스스로를 망치는 짓이다. 그의 그런 보은 방식이 옳으냐? 당연히 옳지 않다. 이는 어리석은 행동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7)>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나서 저는 깨달았습니다. 제가 외삼촌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자책하며 늘 은혜를 갚으려 했던 것은, 주로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 “물 한 방울의 은혜라도 넘치는 샘물로 보답하라”와 같은 도덕 사상에 얽매이고 속박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도움이 절실할 때 다른 사람이 손을 내밀어 주거나 위급한 상황에서 목숨을 구해 주면, 그 은혜는 영원히 기억하고 훗날 반드시 제대로 갚아야만 양심 있고 인성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은혜를 갚을 줄 모른다면 이는 배은망덕하고 인성이 없는 사람으로, 남들에게 손가락질받고 검은 머리 짐승이라는 욕을 먹게 될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5남매 중 한 분인데, 당시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큰외삼촌의 학비를 대기 위해 작은외삼촌과 어머니는 모두 진학을 포기했습니다. 결국 큰외삼촌은 안정된 직장을 구하게 되었고, 다들 그가 형제들을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돕기는커녕 친어머니조차 부양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모든 친척과 친구들은 그를 검은 머리 짐승이라고 욕했고, 그는 모두에게 손가락질받는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런 환경에 동화되어 저는 앞으로 반드시 양심 있고 은혜를 갚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로 이런 생각의 영향으로, 저는 일이 닥쳤을 때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하고, 은혜를 갚아야 할 대상이 어떤 사람인지도 분별하지 못했으며, 제가 그렇게 하는 것이 진리 원칙에 부합하는지 여부도 따지지 않았습니다. 그저 다른 사람이 저에게 은혜를 베풀기만 하면 마음에 깊이 새겨 은혜에 보답하는 것을 몸소 실천하려고만 했습니다. 외삼촌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를 출교하는 서명을 해야 했을 때, 단지 그가 제 목숨을 구해 주었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세 복음을 전해 주었으며, 친아버지처럼 저를 대해 주었다는 은혜 때문에 저는 차마 서명하기 어려웠습니다. 제가 그렇게 하면 배은망덕하고 양심 없는 사람이 될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때 서명은 했지만, 양심에 찔려 늘 그에게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또한, 제가 타지에서 본분을 이행하다 병이 났을 때, 외삼촌이 바삐 뛰어다니며 물심양면으로 저를 돌봐주시니, 제 마음속의 죄책감은 커져만 갔습니다. 그래서 윗선 리더가 사람을 받아들이는 원칙에 대해 교제하는 것을 들었을 때, 저는 그 기회에 외삼촌의 은혜를 갚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저는 몇 년 동안 외삼촌이 자신의 악행을 전혀 반성하거나 인식하지 않고 심지어 자신이 출교된 것에 원한을 품고 큰 붉은 용 앞에서 자신을 출교시킨 리더를 지목했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은혜는 기억하고 보답해야 한다’는 사상에 지배되어 리더 앞에서 그를 두둔하고 그의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은 감싸고 숨겨 주었습니다. 이로써 교회가 그를 다시 받아들이게 하여 그에 대한 저의 빚을 갚으려고 했습니다. ‘은혜는 기억하고 보답해야 한다’는 전통 사상이 제가 선악이나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하고, 조금의 원칙이나 기준도 없이 행동하도록 저를 속박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교회를 정결케 하여 악인, 적그리스도, 불신파를 정리할 때인데, 저는 여전히 악인에게 양심과 은혜를 따지면서 교회가 그를 다시 받아들이게 하려 했으니, 제가 악인의 앞잡이가 되어 악행을 부추기고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한 행동의 성질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살인으로 은혜를 갚은 거지와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이를 깨닫고 나서야 저는 ‘은혜는 기억하고 보답해야 한다’는 전통 덕목의 그릇됨과 그것이 사람에게 끼치는 해악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이지 사람을 미혹하고 패괴시키는 황당한 논리입니다.

이어서 저는 또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는 전통문화의 관점은 반드시 분별해야 한다.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는 말의 골자는 ‘은혜’에 있다. 여기에서 ‘은혜’를 어떻게 봐야겠느냐? 이는 어떤 측면의 은혜겠느냐? 어떤 성질의 은혜겠느냐?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는 말에는 어떤 의미가 있겠느냐? 이런 문제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절대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는 말에 속박되어서는 안 된다. 이는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일이다. 사람의 관념에서 ‘은혜’란 무엇이냐? 작은 측면에서 보자면 이는 네가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누군가가 너를 도와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네가 피죽도 못 먹고 힘들어하고 있을 때 네게 밥 한 그릇을 주는 것, 갈증으로 죽을 것 같을 때 물 한 병을 주는 것, 넘어져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한 번 부축해 주는 것, 이런 것들이 전부 은혜에 속한다. 한편, 큰 은혜는 네가 심각한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누군가가 너를 구해 주는 것이다. 이는 목숨을 구해 준 은혜에 속한다. 네 목숨이 위험에 처했을 때, 누군가가 너를 도와 죽음에서 구해 준다면, 이는 목숨을 구해 준 것과 같다. 이런 것들이 모두 사람이 생각하는 ‘은혜’이다. 이런 은혜는 물질적이고 사소한 은혜의 범주를 넘어선, 크나큰 은혜에 속한다. 이는 금전이나 물질로 가늠할 수 없는 것으로, 감사의 말 몇 마디로는 상대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표현할 수 없다. 그럼 이런 식의 판단이 정말 정확하겠느냐? (정확하지 않습니다.) 왜 정확하지 않다고 하는 것이냐? (사람은 전통문화에 근거해 이 일을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식의 대답은 도리이고 이론이다. 옳은 것 같지만, 사실의 본질과는 부합하지 않는다. 실제적인 말로 표현한다면, 이 일을 어떻게 해석해야겠느냐? 묵상해 보아라. 얼마 전, 인터넷상에 다음과 같은 동영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 사람이 지갑을 떨어뜨렸는데,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런데 마침 옆에 있던 강아지 한 마리가 보고는 지갑을 물고 그를 따라갔다. 하지만 그 사람은 강아지가 자기 지갑을 물고 있는 것을 보고 강아지가 훔쳤다고 생각해서 흠씬 두들겨 패 주었다. 이 일이 황당하지 않으냐? 그 사람의 품격은 개보다 못하다! 그 강아지가 한 일은 사람의 도덕적 기준에 완전히 부합한다. 다만 사람은 말을 할 줄 알아 “지갑이 떨어졌어요!”라고 외칠 수 있었겠지만, 강아지는 사람의 말을 할 줄 모르니 조용히 지갑을 물고 따라갔을 따름이다. 개조차 전통문화가 제창하는 좋은 행위를 실행할 수 있다. 그럼 사람은 어떠하냐? 사람에게는 양심과 이성이 있다. 사람은 처음부터 이러한 것들을 갖고 태어났으니 이런 일들을 더더욱 잘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사람에게 양심이 있는 한, 노력하거나 대가를 치를 필요도 없이 아주 간단히 이런 책임과 의무를 해내고 타인에게 도움과 이로움이 되는 일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이 일의 성질을 ‘은혜’라고 할 수 있겠느냐? 은혜의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은혜의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없는데, 보답을 논할 필요가 있겠느냐? 그럴 필요는 없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7)> 중에서), 『하나님이 너를 구하려는 것이면 어떤 사람을 통해 봉사하게 하든 너는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여야 한다. 은혜를 완전히 사람에게 돌리거나 심지어 보은하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다른 이에게 바쳐서는 안 된다. 이는 크게 잘못된 것이다. 마음속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줄 알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이 핵심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7)>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나서 저는 ‘은혜는 기억하고 보답해야 한다’에서 ‘은혜’를 새롭게 인식하고 정의하게 되었습니다. 원래 저는 사람이 어려움이나 생명의 위험에 처했을 때 누군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거나 목숨을 구해 주면, 이는 큰 은덕이므로 마음에 깊이 새겨 훗날 반드시 갚아야 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이런 것들은 은혜라고 할 수 없으며, 단지 사람의 본능일 뿐이라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외삼촌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의사로서 생명이 위급한 저를 구해 주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며 그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또한 제 숨결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며, 더욱이 생사는 하나님께서 주재하십니다. 외삼촌이 저를 구해주었기 때문에 제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가 저희 형제의 많은 학비를 감당하기 어려웠을 때 외삼촌이 저를 데려가 직접 의학을 가르치고 먹고 자는 것을 해결해 주셨던 것이나, 허약한 제게 영양을 보충해 주셨던 것, 그리고 몇 년 후 제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저를 돌봐주셨던 것 등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이므로 저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외삼촌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세 복음을 전해 준 것 역시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이니, 저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마땅합니다! 이것을 깨닫고 나니, 외삼촌에 대한 저의 죄책감이 마침내 사라졌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저는 ‘은혜는 기억하고 보답해야 한다’는 전통 사상의 그릇된 점과 사람에 대한 속박과 해악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저는 계속해서 원칙과 기준 없이 무작정 은혜를 갚으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줄도 몰랐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저를 일깨워 주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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