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근한 신앙은 자신을 망친다

2025.2.24

중국 무처(沐澈)

2024년 2월 초, 저는 교회에서 문서 본분을 맡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의욕이 넘쳤습니다. 제 생명 진입이 얕고 모든 면에서 부족하니 문서 본분을 통해 더 많이 훈련받고, 진리를 깨달아 원칙을 파악하면 생명이 더 빨리 성장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책임자는 저와 친란(秦兰) 자매가 한 팀을 이뤄 설교문 사역을 책임지도록 안배했습니다. 친란 자매는 저보다 문서 본분을 이행한 지 더 오래돼서 업무와 원칙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자매와 협력하면 많은 것을 배우고 본분 이행에서도 더 빨리 성장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저는 무척 기뻤습니다. 제가 막 훈련을 시작한 것을 보고 친란 자매는 저를 세심하게 지도해 주었습니다. 설교문을 검토할 때는 먼저 제 의견을 물었고, 제가 꿰뚫어 보지 못하는 부분은 하나하나 차근차근 교제해 주었습니다. 저는 열심히 배우며 꼼꼼히 필기했고, 그렇게 본분을 이행하니 무척 수월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사역을 정리하면서 제가 해야 할 일이 아주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설교문을 선별하는 것뿐만 아니라, 팀원들의 상황과 사역 진도를 파악해야 했고, 사역 성과가 떨어지면 각종 편차와 문제를 정리해야 했습니다. 또 업무 학습을 조직하고 사람을 양성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런 일들은 하나하나 너무 복잡하잖아. 이 많은 사역을 잘하려면 얼마나 신경을 쓰고 대가를 치러야 하는 거야!’ 이런 생각을 하니 골치가 아프고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자매들과 사역의 편차를 정리할 때 저도 참여하고 싶었지만, ‘나는 이제 막 왔고 아는 것도 없잖아. 친란 자매는 모든 사역에 익숙하니 자매에게 더 의지하자. 나는 그냥 라디오처럼 듣기만 하면 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편차를 바로잡으려고 편지를 쓸 때도, 저는 친란 자매와 다른 자매들이 토론한 핵심 내용만 정리해서 끝냈습니다. 그렇게 하면 신경을 덜 써도 됐기 때문입니다. 사역 성과가 떨어지자 자매들은 모두 몹시 조급해하며 자신을 반성하고 사역의 편차를 정리했지만, 저는 태평했습니다. 성과가 좋든 나쁘든 저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저는 이제 막 왔으니 이것도 모르고 저것도 못하는 게 당연하며, 문제를 보는 시각도 얕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당연하다는 듯이 시키는 일만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매일 기계적으로 사역을 점검할 뿐, 깊이 고민하고 싶지 않았고, 때로는 밤 9시가 되기도 전에 졸음이 쏟아졌습니다.

3월 초, 며칠 연속으로 무릎이 심하게 아프고 가슴에도 통증이 있었습니다. 한 자매가 저에게 이렇게 일깨워 주었습니다. “요즘 자매님은 본분에 별로 부담이 없는 것 같아요. 병고가 임한 것도 자신을 좀 성찰해 보세요.” 자매는 또 다른 자매의 체험을 결부해 저에게 교제해 주었습니다. 그 자매는 본분을 이행하는 동안 늘 남의 말을 듣고 남에게 의지하기만 할 뿐 자신의 관점이 없었고, 나중에는 본분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해 교체되었습니다. 교체된 후에야 후회하며 본분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자매의 말을 듣고 저는 마음이 무척 괴로웠습니다. 요즘 제 내적 상태가 바로 그렇지 않았습니까? 어떤 일이든 신경 쓰고 싶지 않아 그저 시키는 일만 했습니다. 며칠 전 제 내적 상태에 딱 맞는 하나님 말씀을 본 것이 생각나 그 말씀을 찾아 읽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이는 본분을 이행할 때, 겉으로는 순종하는 모습을 보이며 상부에서 배치하는 대로 따르지만, “당신은 본분을 이행할 때 대충 건성으로 임하지는 않습니까? 원칙대로 하고 있나요?”라는 질문을 들으면 확실하게 대답하지 못하면서 “상부에서 시키는 대로 할 뿐입니다. 제멋대로 굴지는 않습니다.”라고만 한다. 또 그에게 책임을 다했느냐고 물으면 “어쨌든 제가 해야 할 일은 다 하고 있습니다.”라고 답한다. 보아라. 그는 늘 이런 태도로 본분을 이행한다. 서두르지 않고, 느릿느릿 행동하며, 안일하게 대한다. 막상 결점을 찾으려면 딱히 없지만, 진리 원칙대로 가늠해 보면 그가 이행한 본분은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불합격이다. 그런데도 그는 신경 쓰지 않고 계속 예전에 하던 대로 한다. 자발적으로 해야 할 일도 늘 그랬던 것처럼 하지 않으며 아무런 변화가 없다. 이는 구제 불능 아니겠느냐? ‘당신이 천 가지 묘책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내 생각은 변함없어. 60kg짜리 몸뚱이 하나밖에 없는 나를 당신이 어쩔 건데? 내 태도는 그냥 이거야!’라고 생각하며 줄곧 이런 태도를 고수하는 것이다. 그는 비록 심각한 악행을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선행도 그다지 많지 않다. 너는 그가 어떤 길을 걷고 있다고 보느냐? 하나님을 믿는 것과 본분 이행을 대하는 이런 태도가 좋으냐? (좋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이 나온다.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계 3:16) 미지근한 물처럼 차지도 더웁지도 않은 이런 태도가 좋으냐? (좋지 않습니다.) 혹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악을 행하고 방해하면 금방 정죄되겠지. 하지만 적극적이고 주동적으로 임하면 고생스럽잖아. 게다가 만에 하나 실수라도 하면 책망받고, 심하면 교체될 수도 있다고. 그러면 얼마나 창피하겠어! 그러니 차지도 더웁지도 않게, 미지근하게 있으면서 시키는 것만 좀 하고 시키지 않는 건 절대 하지 말자. 그러면 힘들지도 않고, 남들도 흠을 잡을 수 없을 테니 얼마나 좋아!’ 이렇게 처신하는 것이 좋으냐? (좋지 않습니다.)』(<말씀ㆍ7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1)>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나니 제 마음에 큰 울림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폭로하신 것이 바로 제 본분 이행의 상황이었습니다. 겉으로 보면 책임자가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다 했고, 사역 점검이나 설교문 선별 같은 일도 하나도 빠뜨리지 않았으며, 악행을 저지르거나 사역을 교란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본분을 수동적으로 대했습니다. 문서 사역 훈련을 받은 지 한 달이 넘도록 매일 멍하니 긴박감 없이 지냈고, 본분을 이행할 때도 그저 뒤따르는 역할만 했습니다. 편지에 답장할 때도 늘 친란 자매의 관점을 따랐고, 사역을 정리할 때는 아예 신경도 쓰지 않았습니다. 사역에 진전이 없어도 조급해하거나 애태우지도 않았고, 늘 ‘이제 막 왔다’, ‘할 줄 모른다’, ‘아는 게 없다’는 핑계를 댔습니다. 모든 일에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며 본분 이행에 대한 부담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본분에 부담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어떻게 하면 사역을 빨리 책임질 수 있을지 고민하며, 사역상의 문제도 진리를 구해 해결할 수 있습니다. 또한, 마음속으로 올바른 일을 생각하며 적극적이고 주동적으로 임합니다. 하지만 저는 제 육체가 어떻게 하면 고생하지 않을까만 생각하며 모든 일을 파트너 자매에게 의지했고, 책임은 조금도 지지 않았습니다. 그때서야 저는 자매의 일깨움에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계속 이런 태도로 본분을 대한다면 무척 위험할 것이고, 결국 제 자신을 망치게 될 것이었습니다. 이 점을 깨닫자 마음속에 약간 위기감이 들어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사람에게 의지하려는 마음이 너무 심합니다. 그저 뒤따르기만 하면서 신경 쓰고 고생하기를 원치 않고, 본분에 대한 부담도 조금도 없습니다. 하나님, 저는 더 이상 이런 미지근한 상태에 빠져 당신의 혐오를 받고 싶지 않습니다. 변화하고 싶으니 저를 인도해 주십시오.” 그 후, 저는 의식적으로 본분을 대하는 태도를 바로잡으려 노력했고, 마음속으로 올바른 일을 생각하니 밤에도 졸리지 않았습니다.

제가 그동안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부담을 갖지 않은 탓에 이내 그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제가 맡은 사역은 조금의 성과도 없었고, 일부 형제자매들마저 본분을 소극적이고 수동적으로 이행했습니다. 그 장수에 그 병사라는 말이 딱 맞았습니다. 며칠 후, 제가 맡은 팀의 원칙 학습마저 진전이 없자 책임자는 그 사역을 친란 자매에게 맡겼습니다. 그 순간 저는 마음이 몹시 괴로웠고, 그제야 제가 정기적으로 학습을 안배하지 않았고, 매번 수동적으로 친란 자매가 안배하기만을 기다렸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평소에 제가 조금만 더 신경 쓰고 부담을 가지며, 제때에 모두의 원칙 학습을 조직하고 감독했더라면 이렇게 조정당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 일이 닥친 것은 하나님께서 저를 드러내신 것이었습니다. 생각할수록 괴롭고 자책감이 들었습니다. ‘어쩌다 본분을 이렇게까지 망쳐 놓았을까? 이건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잖아? 인격과 존엄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네.’ 그 후,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람이 어떤 내적 상태와 상황에서 어떻게 정의로운 일을 해야 선행을 예비했다고 할 수 있겠느냐? 최소한 일을 할 때 적극적이고 주동적인 태도가 있어야 하고,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충성심을 보여야 하며, 진리 원칙대로 일을 하고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적극적이고 주동적인 것이 핵심이다. 늘 수동적으로 군다면 그것은 문제가 된다. 그런 너는 마치 하나님 집 사람이 아니며, 본분을 이행하는 것도 아닌 듯하다. 너는 급여를 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고용주의 요구대로 일하며, 자발적이 아니라 매우 수동적으로 행동하고 있는 듯하다. 이익과 관계된 것이 아니라면 아예 하지 않을 것이고, 또는 아무도 네게 요구하지 않는다면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니, 이런 방식은 선행이 아니다. 그래서 이런 부류의 사람을 가리켜 몹시 어리석다고 하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하든 수동적이고, 생각이 미치는 것도, 시간과 정력을 들이면 할 수 있는 것도 하지 않으며, 그저 기다리고 관망하기만 하니 골칫거리가 된다. 이는 참으로 가련한 일이다. … 하나님은 네가 그 일을 꿰뚫어 보고 감당할 수 있도록 너에게 자질과 수많은 좋은 조건을 주었건만, 너는 올바른 태도도, 충성심도, 진심도 없었으며, 온 힘을 다해 잘하려 하지도 않았으니, 하나님을 너무나 실망시킨 것이다! 그러므로 많은 일이 닥쳤을 때 사람이 게을러서 번거롭다고 생각하며 하기 싫어하고, 마음속으로 ‘왜 다른 사람은 시키지 않고 나한테 하라고 하는 거야?’라고 불평한다면, 이는 어리석은 생각이다. 본분이 너에게 주어지는 것은 불운한 일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일이니, 그것을 기쁘게 받아들여야 한다. 사람이 그런 일로 지치거나 죽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런 일을 잘 처리하고 온 힘을 다해 제대로 해내면, 마음이 편안하고 든든해질 것이며 하나님을 실망시키지 않았으니 하나님 앞에 올 때 자신 있게 고개를 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네가 그 일을 하지 않았거나 건성으로 대충 했다면, 비록 손실은 없다고 할지라도 너 자신에게는 평생의 유감으로 남을 것이다! 그 일은 끝없는 블랙홀과 같아서 너를 평생 고통스럽고 불안하게 할 것이다. 본분을 이행할 때 충성심과 진심을 갖고 전력을 다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때마다 마음이 바늘로 찌르는 듯 괴로울 것이다. 너는 그 일로 기쁨이나 자부심, 영광을 느끼기는커녕 고통스러운 감정에 평생 시달릴 것이다. 양심의 감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괴로워할 것이다. 그럼 하나님이 보기에는 어떻겠느냐? 하나님이 진리 원칙으로 이 일을 규정하면, 그 성질은 네가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해진다. 알겠느냐? 그래서 하나님은 네 일상적인 모습, 진리와 본분을 대하는 태도를 종합하여 네가 걷는 길을 바라본다고 하는 것이다. 만약 진리와 본분을 대하는 태도가 늘 건성이고, 겉으로는 받아들이는 것 같지만 뒤에서는 실행하지 않고, 꾸물거리며 서두르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려는 적극적인 태도가 없다면, 비록 겉보기에는 방해하거나 교란하지 않고 악을 행하지도 않으며 제멋대로 굴지 않고 나쁜 짓을 일삼지도 않아서 점잖고 주제를 아는 사람으로 보일지라도 하나님이 요구한 일을 적극적이고 주동적으로 하지 않고 몸을 사리고 농간을 부리며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는다면 너는 도대체 어떤 길을 걷고 있는 것이겠느냐? 적그리스도의 길은 아니라 해도 최소한 거짓 리더의 길을 걷고 있을 것이다.(<말씀ㆍ7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1)> 중에서), 『아무도 멸망해 지옥으로 떨어지기를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어쩔 수 없이 거듭 악을 행하며, 지옥으로 통하는 길을 질주한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 집에서 준 본분 이행의 기회를 무시하고, 성령의 감동과 질책을 무시하며, 하나님의 기대 역시 무시한다. 그저 건성으로 대충 대하려고 하고, 제멋대로 함부로 행동하려 하며, 방해하고 교란하려고 하고, 약삭빠른 사람이 되려 하고, 악을 행하려고 한다. 아무도 너에게 그 일을 하라고 강요하지 않았고 하나님 집에서도 너에게 그렇게 하라고 요구하지 않았으니, 그것은 분명 너 개인의 선택이자 너 개인이 원하고, 좋아하고, 열중하는 일이다. 네가 걷는 길이 지옥으로 향하는 멸망의 길이라고 하면 괴로워하고 소극적이 되는데, 그럴 게 뭐가 있느냐? 그것은 네가 자초한 일이고 자업자득 아니겠느냐? 당연한 결과 아니겠느냐? 어떤 사람은 “저는 어쩔 수 없이 악을 행했습니다. 항상 좋은 쪽으로 행동하고 싶었지만, 일을 마치고 보니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한다. 너는 악을 행하여 방해와 교란을 일으키고, 교회 사역에 손실을 끼쳤다. 네 과오를 추궁하지 않을 수는 있다. 하지만 네 과오는 잠재적 위험을 남겼으며, 이후에도 똑같은 잘못을 범할 수 있으니 이는 매우 위험하다. 사람이 걸어간 길에는 반드시 발자국이 남는 것처럼 말이다. 네가 남긴 과오를 깨달았느냐? 후회는 하고 있느냐? 죄스럽고 괴로운 마음이 드느냐? 통곡하며 눈물을 흘리겠느냐? 뉘우쳤느냐? 네가 저지른 악행을 진정으로 증오하느냐? 손으로 행하는 악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진정으로 회개했느냐? … 네가 진실로 회개하지 못하면서도 서원으로 하나님을 기만한다면, 네가 걷는 길은 멸망으로 향하는 길일 것이다. 네가 저지르는 모든 악행은 지옥문을 두드리는 것이 될 테니, 언제 지옥문이 열려 죽음이 닥칠지 알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을 때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악행을 쌓으면서 지옥문을 두드리고 있고, 이와 동시에 하나님의 진노를 쌓으며 하나님의 징벌이 임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말씀ㆍ7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1)>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나니 제 마음은 몹시 불안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본분을 수동적으로 대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조차 하지 않으며, 본분을 건성으로 대하고 무책임한 사람은 실질적인 사역을 하지 않고 거짓 리더의 길을 가는 자로, 하나님께 정죄받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 자신을 반성해 보니, 비록 본분을 이행하고는 있었지만, 저 자신을 하나님 집의 일원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본분에 대한 충성은 고사하고 가장 기본적인 책임조차 다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파트너 자매들이 사역을 정리하는 것은 편차를 바로잡고 본분을 더 잘 이행하기 위함이었는데, 저는 참여하지도 않고 묻지도 않았습니다. 편차를 바로잡으려고 편지를 쓸 때도 마음을 쓰지 않고, 마치 영혼 없는 사람처럼 자매가 말하는 대로 받아 적기만 했습니다. 모두의 업무 학습도 대수롭지 않게 여겨 학습 진도를 지체시켰습니다. 이 모든 것은 제가 본분을 이행할 때 신경 쓰기를 두려워하고 부담을 갖지 않았기 때문에 초래된 결과였습니다. 제가 본분을 이렇듯 망쳐 놓았으니 하나님께서 혐오하시고 사람들도 싫어했습니다. 정말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모든 일에서 제 육체만 생각하고, 본분을 이행하며 신경 쓰고 대가를 치르려 하지 않은 채, 그저 뒤따르며 차려 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으려 했습니다. 교회 사역은 조금도 고려하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도 헤아리지 않았으니, 본분을 대하는 저의 이런 태도는 하나님을 너무나 실망시켜 드린 것이었습니다. 저는 모든 일을 파트너 자매에게 의존했고, 비록 육체는 편했지만,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선행을 예비할 기회를 잃어버렸습니다. 이는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께 죄스럽고 후회스러운 일로 남았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네가 저지르는 악행은 모두 지옥문을 두드리는 것이다”라고 하신 말씀은 제 마음에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원래 저는 유다나 악을 행하는 사람만이 지옥문을 두드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본분을 이행하며 안일함을 탐하고 부담을 갖지 않은 채 계속 회개하지 않는 것을, 하나님께서 하나하나 다 기록하고 계셨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한 번 기록될 때마다 지옥문을 한 번씩 두드리는 것이고, 결국 지옥문은 사람이 계속해서 진리를 실행하지 않음으로써 열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를 생각하니 정말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여기까지 반성하고 나서야 제가 정말 위험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아직 제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으니, 저는 본분을 이행할 기회를 소중히 여기고 제 과오를 만회해야 합니다. 저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인성과 이성이 조금도 없습니다. 그저 육체의 안일함만 탐하며 마땅히 해야 할 본분을 하나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해 당신의 마음을 너무 아프게 해 드렸습니다! 하나님, 이렇게 본분을 이행하면 제 자신을 망칠 뿐만 아니라 교회 사역에도 해를 끼친다는 것을 압니다. 저는 회개하고 당신의 감찰을 받아들이기를 원합니다. 저를 더 많이 징계하시어 제가 자신을 알고 패괴 성품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 후 저는 또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는 왜 항상 신경 쓰고 머리 쓰는 것을 두려워할까?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일까?’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게으른 사람은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다. 이런 자를 두 글자로 요약하면 ‘폐인’이다. 바로 2급 장애인이다. 게으른 사람의 자질이 아무리 좋아도 그것은 장식에 불과하고, 자질이 좋아도 발휘하지 못한다. 그는 너무 게으르기에 자신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알면서도 하지 않고,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더라도 진리를 구해 해결하지 않으며, 어떤 고생을 해야 성과가 날지 아는데도 그 가치 있는 고생을 하지 않으려 한다. 그 결과 그는 어떤 진리도 얻지 못하고 어떤 실질적인 사역도 해내지 못한다. 그는 사람이 겪어야 할 고생을 겪지 않으려 하면서 그저 편안함을 즐기고, 즐겁고 여유로운 시간, 자유롭고 편한 삶을 누리는 것밖에 모른다. 그러면 아무 쓸모가 없지 않겠느냐? 고생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은 살아갈 자격이 없다. 언제나 기생충의 삶을 살고자 하는 자는 양심과 이성이 없는 자이며 바로 짐승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힘쓰는 것조차 자격이 없다. 그는 고생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힘쓰는 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며, 진리를 얻고자 한다면 희망은 더더욱 없다. 고생을 견디지 못하고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폐인이다. 힘쓰는 것조차 기준에 맞지 않으니 인성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짐승이다. 이런 사람은 반드시 도태시켜야 하나님의 뜻에 맞다.(<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8)> 중에서), 『폐인이란 어떤 부류의 사람이냐? 폐인은 어리석은 사람, 하루하루 시간만 보내는 사람이다. 이 부류의 사람은 어떤 일을 하든 책임감을 갖지 않고 진지하게 임하지도 않으며 엉터리로 처리한다. 또 아무리 진리를 교제해 줘도 신경 쓰지 않고 ‘나는 이렇게 되는대로 살 거야. 무슨 상관이야! 당장 본분을 이행하면서 먹을 것만 있으면 그만이야. 적어도 구걸은 안 해도 되잖아? 먹을 게 없어지면 그때 다시 생각하지 뭐.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으니까. 나더러 양심도 이성도 없는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하는데 그럼 어때? 내가 불법을 저지른 것도 아니잖아. 기껏해야 인품이 좀 나쁠 뿐인데. 내가 무슨 손해를 본 것도 아니잖아. 먹을 것만 있으면 그만이야.’라고 생각한다. 이런 관점이 어떠하냐? 말해 두겠는데, 이렇게 어리석은 사람, 하루하루 시간만 보내는 사람은 도태될 운명을 맞이하게 될 자로, 절대 구원받지 못한다.(<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8)> 중에서) 하나님의 엄한 말씀이 저의 무감각한 마음을 건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게으른 사람의 본질을 폭로하셨습니다. 게으른 사람은 고생하고 대가를 치르려 하지 않고 늘 편안한 삶을 누리려고만 합니다. 이런 사람은 아무것도 이룰 수 없으며, 진리를 얻어 구원받는다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게으른 사람은 쓸모없는 사람, 짐승과 같은 자라 마땅히 도태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바로 그런 쓸모없는 사람의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본분을 이행하며 마음과 생각을 쏟고 대가를 치르려 하지 않고, 그저 기생충처럼 살며 모든 일을 남에게 의지하고 되는대로 살려고만 했습니다. 제가 처음 문서 본분을 맡았을 때는 곁에 의지할 사람이 없어 하나님을 의지하며 열심히 배우려 했고, 어느 정도 수확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자매와 협력하게 되자 오히려 마음을 쓰지 않고, 본분을 미지근하게 대하며, 어떤 일을 하든 마음과 생각을 쏟고 대가를 치르려 하지 않은 채, 그저 편하고 한가롭게 하루하루를 보내려고만 했습니다. 제가 본분에 부담이 없어 제 몫의 일조차 책임지지 않으니, 자매들이 저 대신 신경 쓰고 제 일까지 추가로 떠맡아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아무런 자각 없이 당연하게 자매들에게 의지하고 있었습니다. 문서 본분을 이행한 지 한 달이 넘도록 저는 늘 ‘이제 막 왔다’, ‘모른다’, ‘못 한다’는 핑계를 대며 사역을 제대로 점검하지 않았으니, 정말 부끄러움을 몰랐습니다! 저는 “인생은 괴롭고 짧으니, 어찌 제때에 즐기지 않겠는가?”, “오늘 술이 있으면 오늘 취하고, 내일 걱정은 내일 한다”와 같은 사탄의 철학을 신봉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타락하고 썩은 사상 관점이 저를 나태하게 만들었고, 오직 육체가 어떻게 하면 고생하지 않고 신경 쓰지 않을까만 생각하며, 어떻게 본분을 잘 이행할지는 조금도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사역이 제 손에서 지체되었으니, 실질적으로는 교회 사역을 방해하는 것이었고, 제가 바로 사탄의 하수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네가 하나님의 부탁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가장 심각한 배반인 것이다. 그런 사람은 유다보다 더 비참한 자로, 반드시 저주받게 되어 있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그 결과를 생각하니 두려웠습니다. 저 같은 사람은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고, 계속 이렇게 되는대로 살다가는 마지막에는 정말 도태될 것입니다. 돼지우리의 돼지가 매일 주인이 먹이를 주기를 기다리다가 배불리 먹고 나면 잠만 자고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는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만약 그렇게 육체의 안일함을 누리며 산다면 돼지와 다를 바가 없을 것이고, 하나님의 도태를 기다리는 것밖에 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더 이상 그런 게으른 사람, 쓸모없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더 이상 이렇게 하루하루를 의미 없이 보내고 싶지 않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은 너무나 비천하고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제가 마음을 다해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그 후, 저는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을 보고 실행의 길을 찾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본분을 이행하면서 악을 행하지 않는 것은 정상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선행을 예비한다는 것은 주동적이고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요구와 진리 원칙에 따라 진리를 실행하고 본분을 잘 이행하며, 충성을 다하고, 기꺼이 고생을 하며 대가를 치르고, 책임을 지고, 적극적이고 주동적으로 행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원칙에 따라 행한 것은 기본적으로 다 선행이다.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사람들이 기억할 만한 일이든 그렇지 않은 일이든, 사람들이 대단하게 여기는 일이든 언급할 가치도 없다고 여기는 일이든, 또 사람들이 눈여겨볼 만한 일이든 그렇지 않은 일이든 하나님에게는 다 선행으로 보인다. 네가 선행을 예비하면 마지막에 네게 오는 것은 화가 아니라 복이다. 선행을 전혀 예비하지 않고 그저 ‘시키는 대로 하고, 가라는 대로 갈 거야. 나는 함부로 말하거나 행동하지 않아. 말썽을 부리거나 방해하고 교란하지 않아. 그냥 말 잘 듣고 고분고분하게 굴 거라고.’라는 데만 만족한다면, 늘 이런 태도를 보이면서 본분을 이행할 때도 주동적으로 진리를 구하거나 원칙을 고수하지 않고, 자신의 문제나 잘못을 발견해도 제때 바로잡아 고치지 않으며, 자신이 패역과 패괴 성품을 드러내는 것을 발견해도 적극적이고 주동적으로 진리를 구하여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고 자기 뜻대로 행한다면 하나님 집의 이익에 손실을 끼치지는 않고 교회 사역에 영향을 주지도 않았을지라도 네가 한 일은 기껏해야 힘만 쓴 것에 불과하다. 힘만 쓴 것은 본질적으로 선행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선행은 결국 어떻게 정의되겠느냐? 네가 한 일이 최소한 너 자신과 형제자매들의 생명 진입에 도움이 되고, 하나님 집의 사역에 이로움이 되어야 한다. 너 자신과 다른 사람, 하나님 집에 모두 이로움이 되면, 네 행위는 하나님 앞에서 효과적일 것이고, 하나님에게 인정받을 것이며, 하나님은 네게 점수를 줄 것이다. 그러니 이 몇 년간 너희가 예비한 선행이 얼마나 되는지, 그 선행들이 너희의 과오를 상쇄할 수 있는지, 상쇄한 후에 선행이 얼마나 남는지 판단해 보아라. 스스로 점수를 매기고 마음속에 확신이 있어야지, 흐리멍덩해서는 안 된다.(<말씀ㆍ7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1)>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는 하나님의 마음과 요구가 가득 담겨 있었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실행의 길도 알려 주셨습니다. 피조물의 본분을 잘 이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본분을 이행할 때 원칙에 따라 마음을 다하고, 대가를 치르며 부담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적극적이고 주동적으로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바로 선행을 예비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것입니다. 본분을 그저 형식적으로만 이행하고, 시키는 일만 하면 겉으로 보기에는 사역을 방해하거나 교란하지 않았지만, 본분에 마음을 다하지 않아 하나님의 칭찬도 받을 수 없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동안 제가 본분을 대하는 태도가 바로 미지근했습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도 하지 않아 본분에 방해와 교란을 가져왔고, 선행을 예비하기는커녕 오히려 과오만 남겼습니다. 지금 제가 이행해야 할 본분은 좋은 설교문을 선별하여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을 증거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이 하나님 앞으로 와서 구원받게 하는 것입니다. 이 책임은 너무나 크기에 조금도 게을리할 수 없습니다. 저는 이제 막 훈련을 시작했고 부족한 점도 많습니다. 그러니 마음을 다해 깊이 생각하고 열심히 배워서 하나님의 요구와 원칙에 따라 본분을 이행해야 합니다. 또한, 신경 쓰고 살피는 법을 배워 진지하고 책임감 있는 마음으로 본분을 대하고 제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합니다.

그 후, 저는 자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제 육체를 저버리고, 더 이상 미지근하고 무심한 사람이 되지 않으며, 적극적이고 주동적으로 부담을 짊어지고자 했습니다. 동시에 저는 교회에서 저에게 파트너 자매를 안배해 주신 것이 제가 육체의 안락함을 누리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장점은 취하고 단점은 보완하며 여러 사람의 지혜를 모으는 법을 배우게 하려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본분을 이행하면 편차가 줄어들고 본분에도 유익하며, 제 생명 진입에도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저도 의식적으로 팀의 사역에 참여하면서, 사역을 정리할 때 마음을 다해 고민하니 몇 가지 관점을 발표할 수도 있었고, 부족한 부분은 자매들이 보충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모두가 함께 협력하니 교제가 더 완전해지고 길도 찾을 수 있었으며, 저 자신도 어느 정도 수확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 저는 더 이상 생각 없는 허수아비가 아니라, 본분에 대해 마음을 다해 고민하고 제가 아는 것을 모두 발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실행하니 마음이 평안하고 안정되었습니다. 얼마 후, 저는 더 이상 예전처럼 멍하게 지내지 않게 되었고, 업무와 진리 면에서 모두 어느 정도 수확이 있었으며, 하나님의 깨우침과 인도하심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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