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교만한 성품을 해결한 과정
미얀마 치천 2019년 6월, 전 전능하신 하나님 사역을 받아들이고 1년 후엔 교회 리더 본분을 맡게 됐어요. 하나님이 주신 기회라 감사했고, 기쁘게 본분에 임했어요. 실제적으로 사역을 파악하고 형제자매들 어려움을 해결하곤 했었죠. 좀 지나니까 새...
2024년 2월 초 즈음, 전 교회에서 문서 본분을 맡고 있었어요. 초반에는 제가 생명 진입의 깊이도 얕고 다방면적으로 부족한 것도 많으니 문서 본분에서 훈련을 많이 하면서 진리를 많이 깨닫고 원칙을 많이 파악하면 생명이 빨리 성장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의지가 불타올랐어요. 그러다 책임자가 제게 친란(秦蘭) 자매를 사역 파트너로 붙여 줬는데, 다른 팀의 설교 원고 작성과 관련 팀원들의 학습을 맡으라고 했어요. 친란 자매는 문서 본분을 이행한 게 저보다 오래된 만큼 업무적으로나 원칙적으로나 더 많이 알고 있었죠. 저는 기뻤어요. 자매랑 협력하면 더 많은 걸 배울 거고 본분 이행 역량도 강화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제가 초보니까 자매는 업무에 관해 정말 자세하게 이끌어 줬어요. 설교 원고 검사를 할 때에는 제 관점을 먼저 물어봐 줬고, 제가 잘 이해 못 하는 부분은 하나하나 교제를 해 줬어요. 그럴 때면 저는 성실하게 배우면서 메모했고요. 그러니까 본분 이행이 어렵지 않았어요. 근데 나중에 사역을 종합적으로 정리할 때가 되니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더라고요. 원고 선별 외에도 팀원들의 상황과 사역 진도를 체크해야 했고, 사역 성과가 떨어질 때면 어떤 오류가 있었는지 종합해야 하고, 업무에 관해 공부도 해야 하고, 다른 사람을 육성도 해야 하는 등 일이 많았어요. 전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거 하나하나 다 해야 하니 너무 복잡하네. 이 많은 일을 다 잘하려면 얼마나 신경 쓰고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 거야?’ 그런 생각을 하니 막 골머리가 아프고 몸이 너무 피곤해지더라고요. 자매랑 사역의 오류에 대해 종합해야 할 때에도 같이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저는 지금 초보라 아는 것도 없는 것에 비해 친란 자매는 여러 사역에 대해 잘 알고 있으니 저는 그냥 자매한테 많이 의존하며 듣기만 하자는 편이었어요. 그리고 치우친 부분을 정리해서 피드백 해야 할 때는 자매가 이야기했던 핵심만 정리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럼 제가 신경을 덜 써도 되니까요. 그러니까 사역 성과가 떨어졌을 때 다른 자매들은 다들 안타까워하면서 자아 성찰하고 사역에 존재하는 오류를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저는 효과가 어떻든 저랑 크게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느긋한 태도를 취했어요. 저는 팀에 합류한 초보니까 이것도 모르고 저것도 잘 모르고, 피상적으로 문제를 바라본다는 생각에 태연하게 뒤꽁무니만 따라가는 역할을 했어요. 매일 정해진 일만 순서대로 할 뿐, 깊이 고민도 하지 않았고, 가끔은 저녁 9시부터 졸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3월 초 즈음, 며칠 연속 무릎이 너무 아프고 가슴도 아팠어요. 그때 자매가 조언을 해 줬어요. 저보고 “자매님이 최근 본분에 책임감이 없어 보이던데, 이렇게 아플 때 한번 성찰해 보면 좋겠어요.”라고요. 그리고 다른 자매의 사례에 결부해서 교제해 줬어요. 그 자매도 본분을 이행할 때 계속 남의 말만 따르고 남한테 의존만 했을 뿐, 자기 관점은 하나도 없었는데, 결국 본분에서 아무 역할을 못 해 교체됐다고 했어요. 나중에 교체되고 나서야 본분의 중요성을 알고 많이 후회했다고 했어요. 자매의 조언을 들으면서 ‘최근에 나도 아무 일에도 신경 쓰지 않고 그저 뒤꽁무니만 따라다니는 그런 상태에 있었는데.’라는 생각에 마음이 찔렸어요. 그리고 며칠 전에 봤던 하나님의 이 말씀이 생각났어요. 『어떤 이는 본분을 이행할 때, 겉으로는 순종하는 모습을 보이며 상부에서 배치하는 대로 따르지만, “당신은 본분을 이행할 때 대충 건성으로 임하지는 않습니까? 원칙대로 하고 있나요?”라는 질문을 들으면 확실하게 대답하지 못하면서 “상부에서 시키는 대로 할 뿐입니다. 제멋대로 굴지는 않습니다.”라고만 한다. 또 그에게 책임을 다했느냐고 물으면 “어쨌든 제가 해야 할 일은 다 하고 있습니다.”라고 답한다. 보아라, 그는 본분을 이행할 때 늘 이런 태도를 보인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하며 이도 저도 아닌 식이다. 흠을 잡으려 한다면 잡을 수 없지만, 그가 이행한 본분을 진리 원칙으로 판단한다면 효율성도 없고 합격점에도 이르지 못한다. 합격점에 이르지는 못해도 어느 정도는 할 수 있을 테지만, 그는 할 수 있음에도 주동적으로 하지 않는다. 이는 구제 불능 아니겠느냐? 그는 늘 이런 태도를 보인다. ‘때리고 욕해도 난 이럴 거야.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인데 당신이 어쩔 수 있겠어? 이게 내 태도야!’ 그는 악행을 많이 쌓지 않았지만 선행도 많이 쌓지 않았다. 너는 그가 어떤 길을 걷고 있다고 보느냐? 하나님을 믿는 것과 본분 이행을 대하는 이런 태도가 좋으냐? (좋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이 나온다.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계 3:16) 미지근한 물처럼 차지도 더웁지도 않은 이런 태도가 좋으냐? (좋지 않습니다.) 혹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악을 행하고 방해하면 금방 정죄되겠지. 그런 건 오래갈 수 없어. 하지만 적극적이고 주동적으로 임하면 고생스럽잖아. 게다가 만에 하나 실수라도 하면 책망받고, 심하면 교체될 수도 있다고. 그러면 얼마나 창피하겠어! 그러니 차지도 더웁지도 않게, 미지근하게 있으면서 시키는 것만 좀 하고 시키지 않는 건 절대 하지 말자. 그러면 힘들지도 않고, 남들도 흠을 잡을 수 없을 테니 얼마나 좋아!’ 이렇게 처신하는 것이 좋으냐? (좋지 않습니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하)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1)> 중에서) 이 말씀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죠. 하나님께서 폭로하신 말씀은 딱 제가 본분을 이행하는 모습이었어요. 외적으론 책임자가 시키는 대로 다 하고 있었거든요. 사역 진도도 체크하고, 설교 원고 선별 등 하나도 빠짐없이 하고 있었고, 방해하는 악행을 저지른 것도 없었지만, 본분에 임하는 제 자세는 수동적이었어요. 문서 사역을 시작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아무런 긴박감도 없이 본분을 이행할 때 그저 뒤꽁무니만 쫓아다니는 역할만 계속하고 있었어요. 회신을 줄 때조차도 다 친란 자매의 관점을 따랐고, 사역에 대한 종합 정리를 할 때에는 더더욱 신경을 안 썼고, 사역에 진전이 없어도 속상해하거나 급해하지도 않았어요. 오히려 ‘난 할 줄 모른다.’, ‘난 모른다.’라는 핑계만 대면서 모든 일을 도외시하는 태도로 대했고, 본분에 대한 책임감이 아예 없었어요. 본분에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면서 어떻게 하면 빨리 사역을 짊어질지 고민하고, 사역에 존재하는 문제를 진리로 해결하려고 찾고 구하고, 항상 바른 일을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임하잖아요. 근데 전 항상 제가 어떻게 하면 고생을 하지 않을지만 고민하고. 모든 일에서 책임을 다하지 않고 항상 협력 파트너에게만 의존했어요. 자매의 조언을 듣고 나서야 여기에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걸 느끼고 계속 이런 태도로 나간다면 언제든 저 자신을 망칠 수 있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걸 인지했죠. 그제야 위기감을 느끼고 하나님께 회개 기도를 했어요. ‘하나님, 저는 남에게 의존하려는 마음이 너무 강합니다. 항상 남의 뒤만 쫓아가려고 할 뿐, 하나라도 더 신경 쓰면서 고생하려고 하지 않고 본분에 책임감을 갖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저는 더 이상 이렇게 차지도 더웁지도 않은 상태로 지내다 도태되고 싶지 않습니다. 이제 바뀌고 싶습니다. 저를 이끌어 주세요.’ 그 뒤로 저는 본분 이행 태도를 바꾸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는데, 정당한 일들을 고민하니까 졸리지도 않더라고요.
문제는 이전에 본분에 책임감도 없었고 본연의 일을 하지 않은 탓에 악결과가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제가 맡은 사역에는 효과가 전혀 보이지 않았고, 일부 형제자매들은 맡은 본분에 매우 수동적이었어요. 정말 콩 심은 데 콩 나는 격이었어요. 며칠 후, 제가 맡은 팀 업무 교육에 아무런 진전이 보이지 않으니까 책임자는 그 사역을 친란 자매한테 맡겼어요. 그 순간 정말 너무 괴로웠어요. 보니까 저는 교육 시간을 정기적으로 정하지 않았고, 매번 친란 자매가 정해 줄 때까지 기다리기만 했던 거예요. 물론 친란 자매가 일을 잘하지만 저는 감독하고 일깨워 줘야 하는 기본적인 책임도 다하지 않은 거예요. 평소에 조금 더 신경 쓰고, 조금 더 마음을 쏟으면서 제때에 학습 교육을 감독했더라면 그렇게 본분이 조정되는 일도 없었을 거잖아요. 그 일로 하나님께서 저를 드러내신 거니까 마음이 정말 너무 괴롭고 자책하게 됐죠. ‘내가 어쩌다 본분을 이런 식으로 이행하게 된 거지? 난 정말 신뢰성이 없는 사람이잖아? 인격도 존엄성도 찾아볼 수 없잖아?’ 그러다 하나님의 이 말씀을 봤어요. 『사람이 어떤 내적 상태와 상황에서 어떻게 정의로운 일을 해야 선행을 예비했다고 할 수 있겠느냐? 최소한 일을 할 때 적극적이고 주동적인 태도가 있어야 하고,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충성심을 보여야 하며, 진리 원칙대로 일을 하고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적극적이고 주동적인 것이 핵심이다. 늘 수동적으로 군다면 그것은 문제가 된다. 그런 너는 마치 하나님 집 사람이 아니며, 본분을 이행하는 것도 아닌 듯하다. 너는 급여를 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고용주의 요구대로 일하며, 자발적이 아니라 매우 수동적으로 행동하고 있는 듯하다. 이익과 관계된 것이 아니라면 아예 하지 않을 것이고, 또는 아무도 네게 요구하지 않는다면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니, 이런 방식은 선행이 아니다. 그래서 이런 부류의 사람을 가리켜 몹시 어리석다고 하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하든 수동적이고, 생각이 미치는 것도, 시간과 정력을 들이면 할 수 있는 것도 하지 않으며, 그저 기다리고 관망하기만 하니 골칫거리가 된다. 이는 참으로 가련한 일이다. … 하나님은 네가 그 일을 꿰뚫어 보고 감당할 수 있도록 너에게 자질과 수많은 좋은 조건을 주었건만, 너는 올바른 태도도, 충성심도, 진심도 없었으며, 온 힘을 다해 잘하려 하지도 않았으니, 하나님을 너무나 실망시킨 것이다! 그러므로 많은 일이 닥쳤을 때 사람이 게을러서 번거롭다고 생각하며 하기 싫어하고, 마음속으로 ‘왜 다른 사람은 시키지 않고 나한테 하라고 하는 거야?’라고 불평한다면, 이는 어리석은 생각이다. 본분이 너에게 주어지는 것은 불운한 일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일이니, 그것을 기쁘게 받아들여야 한다. 사람이 그런 일로 지치거나 죽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런 일을 잘 처리하고 온 힘을 다해 제대로 해내면, 마음이 편안하고 든든해질 것이며 하나님을 실망시키지 않았으니 하나님 앞에 올 때 자신 있게 고개를 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네가 그 일을 하지 않았거나 건성으로 대충 했다면, 비록 손실은 없다고 할지라도 너 자신에게는 평생의 유감으로 남을 것이다! 그 일은 끝없는 블랙홀과 같아서 너를 평생 고통스럽고 불안하게 할 것이다. 본분을 이행할 때 충성심과 진심을 갖고 전력을 다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때마다 마음이 바늘로 찌르는 듯 괴로울 것이다. 너는 그 일로 기쁨이나 자부심, 영광을 느끼기는커녕 고통스러운 감정에 평생 시달릴 것이다. 양심의 감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괴로워할 것이다. 그럼 하나님이 보기에는 어떻겠느냐? 하나님이 진리 원칙으로 이 일을 규정하면, 그 성질은 네가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해진다. 알겠느냐? 그래서 하나님은 네 일상적인 모습, 진리와 본분을 대하는 태도를 종합하여 네가 걷는 길을 바라본다고 하는 것이다. 만약 진리와 본분을 대하는 태도가 늘 건성이고 회피적이며, 겉으로는 수락하지만 뒤에서는 게을리하고, 꾸물거리며 서두르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려는 적극적인 태도가 없다면, 비록 겉보기에는 방해하거나 교란하지 않고 악을 행하지도 않으며 제멋대로 굴지 않고 나쁜 짓을 일삼지도 않아서 점잖고 주제를 아는 사람으로 보일지라도 하나님이 요구한 일을 적극적이고 주동적으로 하지 않고 몸을 사리고 농간을 부리며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는다면 너는 도대체 어떤 길을 걷고 있는 것이겠느냐? 적그리스도의 길은 아니라 해도 최소한 거짓 리더의 길을 걷고 있을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하)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1)> 중에서), 『멸망하여 지옥에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많은 사람이 자기도 모르게 계속 멸망으로 향하는 길을 걷는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 집에서 준 본분 이행의 기회를 무시하고, 성령의 감동과 질책을 무시하며, 하나님의 기대 역시 무시한다. 그저 건성으로 대충 대하려고 하고, 제멋대로 함부로 행동하려 하며, 방해하고 교란하려고 하고, 약삭빠른 사람이 되려 하고, 악을 행하려고 한다. 아무도 네게 이런 일을 하라고 압박하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이 너에게 기대한 바도 아니고, 하나님이 요구한 바는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분명 너 개인의 선택으로, 네가 스스로 하기를 원하고, 좋아하고, 열중하는 일이다. 네가 걷는 길이 지옥으로 향하는 멸망의 길이라고 하면 괴로워하고 소극적이 되는데, 그럴 게 뭐가 있느냐? 그것은 네가 자초한 일이고 자업자득 아니겠느냐? 당연한 결과 아니겠느냐? 어떤 사람은 “저는 어쩔 수 없이 악을 행했습니다. 항상 좋은 쪽으로 행동하고 싶었지만, 일을 마치고 보니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한다. 너는 악을 행하여 방해와 교란을 일으키고, 교회 사역에 손실을 끼쳤다. 네 과오를 추궁하지 않을 수는 있다. 하지만 네 과오는 잠재적 위험을 남겼으며, 이후에도 똑같은 잘못을 범할 수 있으니 이는 매우 위험하다. 사람이 걸어간 길에는 반드시 발자국이 남는 것처럼 말이다. 네가 남긴 과오를 깨달았느냐? 후회는 하고 있느냐? 죄스럽고 괴로운 마음이 드느냐? 통곡하며 눈물을 흘리겠느냐? 뉘우쳤느냐? 네가 저지른 악행을 진정으로 증오하느냐? 손으로 행하는 악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진정으로 회개했느냐? … 네가 진실로 회개하지 못하면서도 서원으로 하나님을 기만한다면, 네가 걷는 길은 멸망으로 향하는 길일 것이다. 네가 저지르는 모든 악행은 지옥문을 두드리는 것이 될 테니, 언제 지옥문이 열려 죽음이 닥칠지 알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을 때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악행을 쌓으면서 지옥문을 두드리고 있고, 이와 동시에 하나님의 진노를 쌓으며 하나님의 징벌이 임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하)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1)> 중에서) 이 말씀을 보니까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 하나님은 본분에 수동적이고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도 하지 않는 사람, 본분에 무책임하고 건성으로 임하는 사람은 실질적으로 사역을 하지 않는 사람이자 거짓 리더의 길을 걷는 사람으로 정죄받는다고 하셨더라고요. 그래서 반성해 봤어요. 제가 본분은 이행하고 있었지만 저 자신을 하나님 집의 일원으로 생각하지 않았더라고요. 충성된 본분 이행은 둘째 치고 가장 기본이 되는 책임감도 없었던 거예요. 협력 파트너 자매가 자주 사역을 종합해서 정리했던 이유는 오류를 바로잡고 본분을 더 잘 이행하기 위함이었는데, 저는 참여도 하지 않았고 신경도 쓰지 않았어요. 또 피드백 회신에도 신경 쓰지 않고 자매가 말하는 대로 받아 적기만 했어요. 정말 속이 빈 강정처럼 살았죠. 그리고 형제자매들의 교육에도 신경 쓰지 않아 진도를 지체하게 됐어요. 이 모든 결과는 다 제가 본분에 신경 쓰기 싫어하고 책임감이 없어서 벌어진 거였어요. 생각해 보면 본분을 그 모양으로 이행했으니 하나님도 싫어하시고 사람도 반감을 느낄 만하죠. 정말 믿음직스럽지 못했어요. 저는 계속 자기 육만 생각하면서 본분에 심혈을 쏟으려고 하지 않고, 그저 들러리가 되어 다 된 밥상에 숟가락만 올리려고 했을 뿐, 교회 사역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도 헤아리지 않았어요. 저처럼 이런 태도로 본분을 이행한다면 하나님께 실망감을 안겨 드릴 수밖에 없잖아요. 저는 모든 일에서 그저 자매한테 의존했는데, 물론 몸이야 편했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선행을 예비할 기회는 놓쳤어요. 이미 쏟아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는 거잖아요. 정말 많은 아쉬움과 빚진 마음만 남겼어요. 특히 하나님께서 “네가 저지르는 모든 악행은 지옥문을 두드리는 것이 될 테니”라고 하신 말씀은 정말 마음에 크게 와닿았어요. 지옥문을 두드리는 존재는 유다나 악을 저지른 사람만 해당한다고 생각했는데, 본분 이행 시 안일을 탐하고도 계속 회개하지 않는 저 같은 경우, 하나님 편에서는 하나하나 다 기록하고 계셨고, 하나씩 기록될 때마다 그건 지옥문을 두드리는 행위였어요. 지옥문은 바로 진리를 실행하지 않아서 두드리게 되는 거잖아요. 생각하니까 너무 겁이 났어요. 성찰의 결과를 알게 됐을 때, 제가 얼마나 위험한지 느꼈고, 후회도 밀려왔어요. 하나님께서 아직 회개할 기회를 주실 때 이 본분 이행의 기회를 소중하게 대하고 저의 과오를 잘 만회하기로 다짐했어요. 그리고 이렇게 기도했죠. ‘하나님, 저는 정말 인간성도 없고 이성도 없습니다. 그저 육의 안락함만 탐하면서 제가 이행해야 할 본분은 하나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마음을 너무 아프게 해 드렸습니다. 하나님, 제가 이런 식으로 본분을 이행하면 저 자신을 망칠 뿐만 아니라 교회 사역도 망치게 된다는 걸 압니다. 이제 회개합니다. 당신의 감찰하심을 받겠사오니 제가 저 자신을 인식하고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릴 수 있도록 채찍을 많이 주십시오.’
그 후에도 생각해 봤어요. ‘난 왜 이렇게 신경 쓰고 머리 쓰는 걸 겁낼까? 그 근원은 대체 뭘까?’ 그러다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게 됐어요. 『게으른 사람은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다. 이런 자를 두 글자로 정의하면 ‘폐인’이다. 정상인이 아니라 장애인이다. 게으른 사람의 자질이 아무리 좋아도 그것은 장식에 불과하다. 자질이 좋아도 그는 너무 게으르기에 그것을 발휘하지 못한다. 자신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알면서도 하지 않고,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지만 해결 방법을 찾지 않으며, 어떤 고생을 해야 성과가 날지 아는데도 그 가치 있는 고생을 하지 않으려 한다. 그 결과, 그는 어떤 진리도 얻지 못하고 어떤 실제적인 사역도 해내지 못한다. 그는 사람이 겪어야 할 고생을 겪지 않으려 하면서 그저 안일을 누리고, 즐겁고 여유로운 시간, 자유롭고 편한 삶을 누리는 것밖에 모른다. 그러면 아무 쓸모가 없지 않겠느냐? 고생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은 살아갈 자격이 없다. 언제나 기생충의 삶을 살고자 하는 자는 양심도, 이성도 없는 짐승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힘쓰는 것조차 과분하다. 그는 고생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힘쓰는 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며, 진리를 얻는 것은 더더욱 희망이 없다. 고생을 견디지 못하고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폐인이다. 또한, 힘쓰는 것조차 합격점을 받지 못하니 인성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짐승이다. 이런 사람은 반드시 내쳐야 하나님의 뜻에 맞다.』(<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8)> 중에서), 『폐인이란 어떤 부류의 사람이냐? 폐인은 어리석은 사람, 하루하루 시간만 보내는 사람이다. 이 부류의 사람은 어떤 일을 하든 책임감을 갖지 않고 진지하게 임하지도 않으며 엉터리로 처리한다. 또 아무리 진리를 교제해 줘도 신경 쓰지 않고 ‘나는 이렇게 되는대로 살 거야. 무슨 상관이야! 당장 본분을 이행하면서 먹을 것만 있으면 그만이야. 적어도 구걸은 안 해도 되잖아? 먹을 게 없어지면 그때 다시 생각하지 뭐.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으니까. 나더러 양심도 이성도 없는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그럼 어때? 내가 불법을 저지른 것도 아니잖아. 기껏해야 인품이 좀 부족할 뿐인데. 내가 무슨 손해를 본 것도 아니고 말이야. 먹을 것만 있으면 그만이야.’라고 생각한다. 이런 관점이 어떠하냐? 말해 두겠는데, 이렇게 어리석은 사람, 하루하루 시간만 보내는 사람은 도태될 운명을 맞이하게 될 자로, 절대 구원받지 못한다.』(<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8)> 중에서) 하나님의 이 엄한 말씀에 감각이 없던 제 마음이 깨어났어요. 하나님께서는 게으른 자의 실체를 폭로하셨어요. 바로 게으른 사람은 고난의 대가를 치르려고 하지 않고 계속 안락한 생활만 하려고 하는데, 그런 사람은 어떤 일도 이루지 못한다고 하셨고, 그런 사람이 진리를 얻고 구원에 이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셨죠. 또한 게으른 사람은 폐인이자 짐승 같은 부류라 도태되어야 한다고 하셨어요. 근데 제가 바로 그런 폐인의 역할을 하고 있었어요. 본분을 이행해도 마음을 쏟지 않았고 기생충처럼 살았는데, 무슨 일이든 남한테 의존하기만 하면서 그럭저럭 보내고 있었어요. 처음 제가 문서 본분에 투입됐을 때 곁에 아무도 없으니까 하나님께 의지하면서 마음 들여 공부하니 얻는 게 있었어요. 근데 자매랑 협력하게 되면서 마음도 쓰지 않았고, 본분에 미지근한 태도로 임했고, 무슨 일이든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냥 그렇게 쉽게 하루하루 시간만 보내기로 생각했어요. 제가 본분에 책임감이 없다 보니 제가 해야 할 일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고, 자매들이 절 대신해 신경 쓰고 제가 해야 할 일까지 분담해야 했어요. 그런데도 저는 아무 느낌이 없었고 자매에게 의존하는 것을 당연시했어요. 문서 본분을 이행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저는 여전히 처음이라 아직 ‘할 줄 모른다.’, ‘모른다.’라는 핑계를 대면서 사역 진도를 체크하지도 않았어요. 정말 낯 두꺼웠어요. 저는 “고통스럽고 짧은 인생 그냥 즐기자.” “오늘은 그냥 즐기고 내일 걱정은 내일 하자.”라는 사탄의 철학을 신봉했는데, 이런 타락하고 진부한 사상 관점이 저를 퇴폐적으로 만들었던 거예요. 그래서 제 몸이 고생 안 하고 신경을 덜 쓰고자 고민할 뿐 본분을 잘 이행하려는 고민은 하지 않았어요. 그렇게 중요한 사역이 제 손에서 지체된 거예요. 본질적으로는 교회 사역을 방해한 거고 사탄의 끄나풀 역할을 하게 된 거죠. 하나님께서 본분에 경솔한 사람은 유다보다 더 비참하다고 하셨는데, 하나님은 그런 자를 미워하시고 증오하신다고 하셨어요. 그건 정말 심각한 성격의 문제죠. 그 결과를 생각하니 너무 겁났어요. 저 같은 사람은 믿음직스럽지 못한 존재잖아요. 근데 계속 이대로 행동하면 나중에는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 될 것 같았어요. 돼지라면 매일 주인이 먹을 걸 가져다주기만 기다리고, 배부르게 먹으면 아무 걱정도 없이 그저 잠만 자다가 결국은 주인에게 죽임을 당하는 결말을 보게 되잖아요. 보니까 제가 육의 안락함만을 즐기면서 산다면 결국 돼지의 결말과 다를 게 없겠더라고요. 그저 하나님에 의해 도태되는 것밖에 없죠. 전 더는 그렇게 폐인, 게으른 사람처럼 살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죠. ‘하나님, 더 이상 이렇게 하루하루 시간만 보내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게 사는 건 천하고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제가 본분을 잘 이행하기 위해 마음을 쏟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그러고 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실행의 길을 찾게 됐어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본분을 이행하면서 악을 행하지 않는 것은 정상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선행을 예비한다는 것은 주동적이고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요구와 진리 원칙에 따라 진리를 실행하고 본분을 잘 이행하며, 충성을 다하고, 기꺼이 고생을 하며 대가를 치르고, 책임을 지고, 적극적이고 주동적으로 행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원칙에 따라 행한 것은 기본적으로 다 선행이다.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사람들이 기억할 만한 일이든 그렇지 않은 일이든, 사람들이 대단하게 여기는 일이든 언급할 가치도 없다고 여기는 일이든, 또 사람들이 눈여겨볼 만한 일이든 그렇지 않은 일이든 하나님에게는 다 선행으로 보인다. 네가 선행을 예비하면 마지막에 네게 오는 것은 화가 아니라 복이다. 선행을 전혀 예비하지 않고 그저 ‘시키는 대로 하고, 가라는 대로 갈 거야. 나는 함부로 말하거나 행동하지 않아. 말썽을 부리거나 방해하고 교란하지 않아. 그냥 말 잘 듣고 고분고분하게 굴 거라고.’라는 데만 만족한다면, 늘 이런 태도를 보이면서 본분을 이행할 때도 주동적으로 진리를 구하거나 원칙을 고수하지 않고, 자신의 문제나 잘못을 발견해도 제때 바로잡아 고치지 않으며, 자신이 패역과 패괴 성품을 드러내는 것을 발견해도 적극적이고 주동적으로 진리를 구하여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고 자기 뜻대로 행한다면 하나님 집의 이익에 손실을 끼치지는 않고 교회 사역에 영향을 주지도 않았을지라도 네가 한 일은 기껏해야 힘만 쓴 것에 불과하다. 힘만 쓴 것은 본질적으로 선행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선행은 결국 어떻게 정의되겠느냐? 네가 한 일이 최소한 너 자신과 형제자매들의 생명 진입에 도움이 되고, 하나님 집의 사역에 이로움이 되어야 한다. 너 자신과 다른 사람, 하나님 집에 모두 이로움이 되면, 네 행위는 하나님 앞에서 효과적일 것이고, 하나님에게 인정받을 것이며, 하나님은 네게 점수를 줄 것이다. 그러니 이 몇 년간 너희가 예비한 선행이 얼마나 되는지, 그 선행들이 너희의 과오를 상쇄할 수 있는지, 상쇄한 후에 선행이 얼마나 남는지 판단해 보아라. 스스로 점수를 매기고 마음속에 확신이 있어야지, 흐리멍덩해서는 안 된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하)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1)> 중에서) 하나님의 이 말씀 속에 하나님의 뜻과 요구가 깃들어 있었어요. 또한 하나님은 실행의 길도 알려 주셨어요. 무엇보다 피조물의 본분을 잘 이행하는 게 가장 중요한 거였죠. 본분은 원칙에 따라 이행하고 마음을 쏟고 책임감을 갖고 심혈을 쏟아야 하고요. 그렇게 적극적으로 본분을 이행해야 선행을 예비했다고,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다고 할 수 있는 거죠. 본분을 이행한다면서 그저 형식적으로 시키는 것만 한다면, 겉보기에는 방해하거나 훼방을 놓은 게 없어도 본분에 마음을 다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인정받지도 못하더라고요. 돌아보니 그동안 제 본분 이행 자세는 차지도 더웁지도 않은 태도였더라고요. 제가 해야 할 일도 못 해서 본분에서 결국 방해하고 교란하는 역할을 하게 됐고, 선행을 예비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과오만 남겼어요. 지금 제가 해야 할 본분은 좋은 설교 원고를 선별해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을 증거함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구원받을 수 있게 하는 거죠. 그건 엄청 큰 책임이라 조금도 해이하면 안 되는 일이잖아요. 전 처음 훈련하는 단계라 부족한 게 많으니까 그만큼 신경 써서 생각하고 열심히 배워야 하고 하나님의 요구와 원칙에 따라 본분을 이행해야 하죠. 또 자주 문의하고 신경 쓰는 법도 배우고, 정말 참되고 책임지는 마음으로 본분을 대하고 제 책임을 짊어져야죠. 그래야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모습이죠.
그 후로 저는 자주 하나님께 기도드리면서 제 육을 등지고, 더는 차지도 더웁지도 않은 양심 없는 사람으로 살지 않고, 적극적으로 책임을 짊어지는 사람이 되기로 했어요. 그리고 교회에서 협력 파트너를 배정해 준 건 저더러 육적으로 누리고 육의 안락함을 탐하라는 게 아니라, 서로 장점을 배우고 단점을 보완하며 머리를 맞대라는 것임을 깨달았어요. 그래야 본분을 이행할 때 실수가 적고 본분에도 이롭고, 제 생명 진입에도 도움이 되는 거였어요. 그래서 저도 의식적으로 팀 내 사역에 참여했고, 사역 종합 회의를 할 때에도 깊이 생각하고 제 관점을 발표하기도 했어요. 부족한 부분은 자매가 보충해서 이야기했고요. 그렇게 다들 함께 협력하면서 나누니까 교제 내용이 보완되고 길이 생겼고, 저도 얻는 게 있었어요. 이제는 더 이상 속이 빈 강정처럼 살지 않으려고요. 본분에 신경 쓰는 법을 배우고 제가 아는 걸 다 발휘하려고 노력해요. 그러니까 마음도 편하고요. 그렇게 한동안 실행했더니 더는 예전처럼 흐리멍덩하게 살지 않게 되었어요. 업무에서나 진리에서나 조금씩 얻는 게 생겼고, 또 하나님의 깨우치심과 인도하심도 느낄 수 있었어요. 하나님께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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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치천 2019년 6월, 전 전능하신 하나님 사역을 받아들이고 1년 후엔 교회 리더 본분을 맡게 됐어요. 하나님이 주신 기회라 감사했고, 기쁘게 본분에 임했어요. 실제적으로 사역을 파악하고 형제자매들 어려움을 해결하곤 했었죠. 좀 지나니까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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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제리2015년, 교회의 연례 선거에서 저는 교회 리더로 뽑혔습니다. 무척 감격한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수십 명의 형제자매 중에서 리더로 뽑혔다는 건 내가 다른 이들보다 뛰어나다는 거 아닌가?’ 리더 본분을 이행하게 된 후, 형제자매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