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거부에 대한 반성

2025.4.14

중국 미후이

2021년, 저는 교회에서 양육 사역을 맡고 있었습니다. 당시 리더는 사역을 감독하고 체크하느라 사역 진도가 어떤지, 본분 이행 과정에서 문제점이나 어려움에 부딪히지는 않았는지 수시로 물어봤습니다. 처음에는 적극적으로 보고했지만, 조금씩 짜증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매일같이 사역을 체크하니 정말 귀찮네. 그것 때문에 시간이 지체되잖아. 계속 이런 식으로 간다면 내 사역 성과에도 지장이 생기지 않을까? 성과가 안 나오면 리더가 나를 교체시킬지도 몰라.’ 이런 생각이 들자 리더의 사역 감독에 커다란 거부감이 생겼습니다.

한번은 리더가 편지를 보내 저희의 사역 상황에 대해 알아보면서 지난 몇 달간 복음을 받아들인 새 신자가 얼마나 되는지, 정상적으로 예배에 참석하지 않는 사람은 얼마나 되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그들에게는 어떤 종교 관념이 있는지, 어떻게 그 문제를 교제하여 해결했는지 등등을 물어보았습니다. 일련의 질문들을 보자 곤혹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질문이 너무 많잖아. 이 질문들에 대답하려면 양육 인력들과 토론하고 상황을 정리해야 하는데 그러면 시간이 너무 낭비돼!’ 이렇게 생각하자 거부감이 생겼습니다. ‘사역에 대해 너무 시시콜콜 물어보네. 이 질문에 다 답변하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어! 그래 놓고 양육 사역 성과가 잘 안 나오면 내가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고 사역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하겠지?’ 협력하는 자매들도 난색을 보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자 ‘저들도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다면 리더에게 같이 의견을 얘기해야겠어. 그러면 앞으로는 사역을 체크하면서 이렇게 자세하게 물어보지 않겠지. 사역 과정에서 나타난 내 부족한 점도 그만큼 덜 드러날 테고 말이야.’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반농담조로 말했습니다. “리더가 우리에게 관심이 너무 많은 것 같네요. 이렇게까지 자세하게 물어본다니 말이에요.” 제 말이 끝나자마자 한 자매가 맞장구를 쳤습니다. “정말 꼼꼼해도 너무 꼼꼼하죠!” 그 자매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저는 웃으며 덧붙였습니다. “가뜩이나 바쁜데 이 질문들에 대답하려면 자세히 조사하고 알아봐야 하잖아요. 너무 번거롭네요. 이러다가 우리 양육 성과에 지장이 생기는 건 아닐까요?” 다른 자매 몇 명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습니다. 저는 은근히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다른 자매들도 이 일에 대해 불만이 있는 것 같네. 나중에 모두 함께 의견을 제시하면 리더도 이렇게 수시로 우리 사역을 체크하지는 않겠지.’ 협력하는 자매들은 제 부추김 때문에 리더가 사역에 대해 알아보려고만 해도 난색을 표하곤 했습니다. 답장도 마지못해 대충 몇 마디 써서 보내는 게 전부였죠. 사역 과정에 존재하는 문제나 오류 등을 구체적으로 정리해서 보내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 결과, 리더는 저희의 사역에 존재하는 문제들을 파악하거나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고, 양육 사역은 계속 지지부진했습니다.

또 한번은 저희가 양육자 양성에 집중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리더가 편지를 보내 이 사역의 중요성에 대해 교제하며, 좋은 실행의 길을 제시해 준 적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저희가 이 사역을 하면서 부담을 갖지 않으며 일을 질질 끌어 효율이 안 난다고, 그런 식으로 하면 형제자매들을 훈련시키는 건 고사하고 양육 사역에도 영향을 줄 거라고, 이 문제에 신경 써서 하루라도 빨리 새 신자들이 양육 훈련하도록 양성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 편지를 보자 반발심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요구치가 너무 높잖아. 우리 새 신자들은 이제 막 본분 이행 훈련을 받고 있다고. 사람을 양성하는 게 그렇게 쉬워? 당신들은 경험이 있으니까 다르겠지. 당신들의 기준을 우리한테 적용하지 말란 말이야!’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대놓고 불평을 하면 내 사역 능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안 되겠어! 우리 팀은 그 요구대로 할 수 없다는 걸 알게 해야지. 그러면 리더도 우리를 어쩌지 못하겠지. 추궁한다고 해도 나 개인의 문제는 아닌 거니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미간을 찌푸리고 난색을 표하며 말했습니다. “리더의 요구치가 너무 높네요. 우리는 아직 그들만큼 경험이 없는데 말이에요.” 제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자매 몇 명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습니다. “그 리더는 자질도, 업무 효율도 좋겠죠. 우리가 어디 비교나 되겠어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요구치가 너무 높아요. 이 사역을 대체 어떻게 하라는 거냐고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모두 같은 의견인 것을 보고 기분이 좋아진 저는 ‘이제는 리더도 우리를 어쩌지 못하겠지. 우리 팀 전체를 다 교체시킬 순 없을 테니까!’ 이튿날, 저는 리더에게 회신을 하면서 본분 이행 과정에서 저희가 부딪힌 어려움들을 전부 적었습니다. 저희를 좀 이해해 줬으면 하는 생각에서였죠. 마지막에는 특별히 “저희의 사역 성과는 일단 이렇습니다. 성과를 내기가 쉽지 않네요.”라고 덧붙이면서 ‘저희’라는 이 두 글자를 강조했습니다. 그건 저희 팀 전체의 의견임을 알려 주려는 의도였죠. 그러면 그들도 더 이상 저희에게 그렇게 높은 요구를 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죠.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예배 때 리더가 저를 책망하고 폭로하면서 본분 이행에 부담이 없고 열정이 부족하다고, 형제자매들 사이에서 소극적인 기운을 퍼뜨린다고 한 겁니다. 리더는 또 제가 무리를 짓고 형제자매들을 선동해 함께 대항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로 인해 새 신자 양육에 지장을 주고 교회 사역을 교란했으며, 팀에서 좋은 역할을 전혀 하지 못했다고 했죠. 그리고 마지막에는 저를 교체시켰습니다.

교체된 후, 저는 무척 자책이 됐고 또 괴로웠습니다. 제가 화를 자초했으며, 악을 행해 하나님께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저는 일이 닥쳤을 때 진리를 구하기는커녕 관념을 퍼뜨려 모두가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상태로 살게 했습니다. 그렇게 교회 사역에 지장을 준 건 사실입니다. 얼마 후, 저는 반성하면서 하나님 말씀을 읽었습니다. 『적그리스도는 속으로 늘 그리스도의 신성 본질을 의심하고, 늘 불복하는 성품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그에게 이행하라고 한 일은 언제나 가져와서 연구하고 논의한 다음 모두에게 옳고 그름을 분별하게 한다. 이 성질은 심각하지 않으냐? (심각합니다.) 이것은 진리에 순종하는 입장에 서서 그 일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반대편에 서서 그 일을 대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성품이다. 그는 그리스도가 분부하거나 사역을 안배하면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가져와서 상의한다. 그는 무엇을 상의하는 것이냐? 어떻게 순종할지를 상의하는 것이냐? (아닙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말씀, 그리스도의 분부가 옳은지 그른지를 상의하고, 이행해야 할지 말지를 연구한다. 그의 태도가 이행하려는 태도냐? 아니다. 그는 더 많은 사람이 자기와 같이 그 일을 이행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행하지 않는 것, 이것이 순종의 진리를 실행하고 있는 것이냐? 분명히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무얼 하고 있느냐? (대항하는 것입니다.) 그는 혼자서만 하나님에게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모아서 대항하려 한다. 이런 성질이 아니냐? 사람들을 모아서 대항하는 것은 사람들이 그와 생각을 통일하고, 말과 태도를 통일하고, 의견을 통일하게 해서 그와 일치시켜 공동으로 그리스도의 결정, 그리스도의 분부에 대항하는 것이다. 이것이 적그리스도의 수법이다. 적그리스도는 다수가 그렇게 하면 책임이 없다고 생각해서 자신과 함께 하나님에게 대항하도록 사람들을 선동한다. 그러면 하나님 집도 자신을 어쩌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리석지 않으냐? 적그리스도는 혼자서 하나님에게 대항하려면 역량이 너무 작고 혼자 세력으로는 역부족이므로 사람들을 모아서 대항하는 이런 수법을 쓴다. 그는 생각한다. ‘사람들이 나와 같은 사상 관점을 품고 나와 같은 방법을 취하도록 미혹한 다음 연합해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부결해야지. 그래서 하나님 말씀이 여기서 통하지 못하고 이행되지 못하게 할 거야. 누가 와서 사역을 점검할 때는 다 같이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다고 하면 돼. 당신이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보겠어! 난 처리해 주지 않을 거고 이행하지 않을 거야. 당신이 날 어쩔 수 있나 두고 보겠어!’ … 적그리스도의 이런 모습은 너희가 볼 때 몹시 가증스럽지 않으냐? (너무나 가증스럽습니다!) 어떤 면이 가증스러우냐? 그는 하나님 집에서 권력을 잡으려 하고, 그리스도의 말씀이 그에게서는 이행될 수 없다. 그는 이행하지 않는다. 물론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경우는 또 한 가지가 있다. 이를테면 어떤 사람은 자질이 떨어져서 하나님 말씀을 못 알아듣고, 어떻게 이행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네가 가르쳐도 할 줄 모른다. 이런 건 별도로 처리해야 한다. 지금 교제하는 주제는 적그리스도의 본질에 대한 것으로, 이것은 이행할 수 있느냐 없느냐, 자질이 어떠냐가 아닌 적그리스도의 성품, 본질에 관계된다. 그는 전적으로 그리스도에게 대항하고, 하나님 집의 사역지침에 대항하고, 진리 원칙에 대항한다. 순종하지 않고 대항만 할 뿐이다. 이런 자가 바로 적그리스도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10조 진리를 멸시하고 공공연하게 원칙을 위배하며 하나님 집의 안배를 무시한다(4)>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읽고 나서야 제 행위의 성질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었습니다.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요구와 하나님 집의 사역지침을 받아들이거나 순종하는 법이 없고 마음에 거부감과 반항심뿐이라고, 또 사람을 미혹해서 무리를 지어 대항한다고 폭로하는 말씀이 특히 그랬습니다. 돌아보니 그동안 제가 보인 태도가 바로 이런 성질을 띠고 있었습니다. 리더가 저희의 사역을 꼼꼼하게 체크하자 저는 귀찮아했고, 본분을 이행할 시간이 줄어들어 사역 성과에 지장을 줄까 봐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리더에 대한 편견을 퍼뜨렸으며, 팀 자매들을 선동해 저와 같은 노선에 서게 한 뒤 함께 리더에게 대항했습니다. 리더가 저희의 사역 진도가 느리고 성과가 부진하다고 지적하면서 사역 효율을 어떻게 높일지 교제할 때도 저는 거부하고 이치를 따졌으며 불복했습니다. 그러면서 리더의 요구치가 너무 높고 저희의 실제 어려움을 파악하지 못한다고 생각했고, 그들이 교제하는 사역 효율을 높이는 법에 대해서도 제대로 듣지 않았죠. 리더를 굴복시키고 저희에 대한 요구치를 낮추기 위해서, 또 사역 성과가 나지 않는 건 저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해서, 저는 형제자매들 앞에서 리더의 요구치가 너무 높다고 토로하며 리더가 무리한 일을 강요한다고 생각하게 했습니다. 형제자매들을 선동해서 저와 함께 대항하려고 한 거죠. 저는 너무도 간사했습니다. 제 말에는 사람들을 이용해 목적을 이루려는 속셈과 사탄의 간계가 들어 있었습니다. 리더가 꼼꼼하게 사역을 체크한 것은 사역 과정에 존재하는 문제점과 오류를 제때 발견해 바로잡기 위함이었고, 또 저희가 사역 성과를 높여 되도록 빨리 새 신자를 양성함으로써 새 신자들이 본분을 이행하는 것을 돕기 위함이었습니다. 리더는 하나님의 요구와 교회의 안배대로 세부 사역을 한 거였죠. 하지만 저는 불복하고 대항했으니, 이는 리더에게 잘못한 것이 아니라 교회 사역과 하나님의 요구에 대항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과 대척점에 서 있었습니다. 저는 모두를 미혹하고 선동해 저와 같은 편에 서게 했고, 저와 같은 사상, 입장을 갖게 한 후 다 같이 교회의 안배에 맞서게 했습니다. 저는 적그리스도의 성품을 드러냈고, 사탄의 종 역할을 했습니다. 또 소극적인 말로 형제자매를 미혹해서 모두 열정을 잃고 현실에 안주하는 상태로 살게 했으며, 매일 대충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하게 했습니다. 그 결과, 양육 사역은 줄곧 성과가 좋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렇게 교회 사역을 가로막고 교란했습니다. 그건 악을 행하는 행위였죠! 여기까지 생각하자 덜컥 겁이 났습니다. 계속 이대로 나간다면 더 많은 악을 행해 결국 적그리스도가 되어 드러나고 도태될 게 뻔했으니까요! 저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교체된 일을 통해 당신의 공의를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폭로와 심판으로 저는 자신의 적그리스도 성품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됐습니다. 이번 교체는 저에 대한 당신의 보호이자 나아가 구원이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이어서 저는 또 이러한 측면의 패괴 성품을 드러내는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적그리스도는 항상 이론을 퍼트려 사람을 미혹한다. 어떤 사역을 시행하든 모두 자기가 결정해서 완전히 진리 원칙을 위반한다. 이런 적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볼 때 적그리스도의 성품은 과연 무엇이냐? 그가 긍정적인 사물을 사랑하고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냐?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순종이 있느냐? (없습니다.) 그의 본질은 진리를 싫어하고 진리를 증오하는 것이다. 또한, 그는 이성을 상실할 정도로 교만하며, 사람이 최소한 지녀야 할 양심과 이성조차 없다. 그러니 사람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고, 그저 사탄에 속하는 부류이고 마귀라고 할 뿐이다.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모두 마귀라는 사실은 추호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10조 진리를 멸시하고 공공연하게 원칙을 위배하며 하나님 집의 안배를 무시한다(4)> 중에서), 『적그리스도가 마음속으로 진리를 실행하고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는 일을 대하는 태도는 무엇이냐? 바로 한 단어, ‘대항’이다. 끈질기게 대항하는 것이다. 대항 안에 담긴 성품은 무엇이냐? 어떻게 해서 생기는 것이냐? 불복에서 생겨난다. 성품으로 말하자면, 이것은 진리를 싫어하는 것이다. 이는 속으로 불복하는 것, 즉 순종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 집에서 리더 일꾼에게 조화롭게 협력하는 법을 배우라고 요구하고, 혼자서 결정하지 말고 사람들과 상의하는 법을 배우라고 요구하는 것에 대해 적그리스도는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무슨 일이든 사람들과 상의하려면 얼마나 번거로운데! 이런 일은 나 혼자 결정해도 돼. 남들하고 협력하고 상의하면서 원칙대로 일하긴 무슨. 그게 얼마나 무능하고, 얼마나 쪽팔린 일인데!’ 적그리스도는 자신이 진리를 깨달았기에 무슨 일이든 간파할 수 있고, 주관이 있고, 방법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누구와도 협력하지 못하고, 무슨 일을 해도 사람들과 상의하지 않고, 누가 뭐래도 자기 식대로 한다. 그는 누구에게도 불복한다! 적그리스도는 입으로는 순종하겠다고, 사람들과 협력하겠다고 하지만, 겉으로는 아무리 알았다고 잘 대답해도, 아무리 듣기 좋게 말해도 자신의 패역한 내적 상태를 고치지 못하고, 자신의 사탄 성품을 고치지 못한다. 그는 내면에서 거세게 대항한다. 어느 정도로 대항하느냐? 지적인 말로 설명하자면 두 가지 다른 성질의 것이 한데 놓여져서 생기는 일종의 현상, 즉 배척이다. 우리는 그것을 ‘대항’으로 해석한다. 적그리스도의 성품, 그것은 바로 상부에 대항하는 것이다. 상부에 대항하기 좋아하고 누구에게도 불복한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10조 진리를 멸시하고 공공연하게 원칙을 위배하며 하나님 집의 안배를 무시한다(4)> 중에서) 하나님은 적그리스도가 진리를 증오하고 하나님께 대항하는 본성 본질을 지니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드러낸 성품은 적그리스도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저는 리더의 사역 감독을 싫어하고 반항했으며, 그것 때문에 시간이 지체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역 성과를 높여 주려는 것을 요구치가 너무 높다고 여기며 불복했고, 늘 대항했습니다. 사실, 리더가 사역상의 문제점과 오류를 지적하면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사역 성과가 좋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본분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 소홀해서인지, 아니면 일을 밝히 알지 못해 진리로 형제자매들의 어려움과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해서인지 열심히 반성한 후 원인을 찾아 한시바삐 뉘우치고 달라져야 했죠. 하지만 저는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고 스스로를 돌아보지도 않았습니다.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데 대해 자책하거나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았고요. 또 저는 교체되지 않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두를 선동해 함께 리더에게 대항했습니다. 리더가 사역을 체크하고 감독하는 것은 하나님의 요구이자 긍정적인 사물입니다. 하지만 저는 거부감을 느끼고 대항했죠. 겉으로 볼 때는 리더에게 반발한 것 같지만, 사실 그 본질은 진리를 싫어하고 긍정적인 사물을 증오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교회 사역을 가로막고 방해하게 됐고요. 저는 진리를 싫어하고, 또 하나님께 대항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러한 사탄의 성품은 정말 너무도 두려웠습니다! 교회에서 출교된 적그리스도들이 생각났습니다. 그들은 지적과 도움, 책망과 훈계가 임했을 때 진리를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법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사역을 감독하고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이 있으면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그를 원수로 여기고 고집스럽게 불평하며 끝까지 대항했죠. 심지어는 악을 행해 교회 사역에 심각한 손해를 끼치고도 후회하지 않다가 결국 교회에서 출교된 거였죠. 이는 전부 진리를 싫어하고 증오하는 적그리스도의 본성으로 초래된 결과였습니다. 제가 드러낸 성품이 이들과 다를 바가 있을까요? 만약 회개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저 역시 하나님께 드러나 내쳐질 것이 뻔했습니다.

그 후, 저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나는 형제자매들을 선동해 리더의 감독에 대항했을까? 그 근원은 뭐지?’ 그렇게 구하던 중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되었죠.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고 진리를 깨닫기 전까지는 사탄의 본성이 사람의 내면에서 주도권을 잡고 사람을 지배한다. 그 본성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겠느냐? 예를 들어, 너는 왜 이기적으로 구는지, 왜 자신의 지위를 지키려 하는지, 왜 그렇게 정에 치우치는지, 왜 그 불의한 것과 악을 좋아하는지, 그러한 것들을 좋아하는 근거는 무엇인지, 그것들은 어디에서 왔는지, 너는 왜 그것들을 받아들이기 좋아하는지 등이 있다. 너희는 그것이 주로 사람의 내면에 사탄의 독소가 들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제 알았다. 사탄의 독소는 무엇이냐?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느냐? 예를 들어, 네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합니까?”라고 물으면 사람들이 모두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 말은 문제의 근원을 보여 준다. 사탄의 철학이나 논리는 이미 사람의 생명이 되었다. 사람이 무엇을 추구하든 사실 모두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모두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라는 이 말은 사람의 생명 철학으로, 사람의 본성을 대변하기도 한다. 이 말은 이미 패괴된 인류의 본성이 되었다. 바로 패괴된 인류의 사탄 본성을 생생하게 묘사한 말인 것이다. 사탄의 본성은 이미 완전히 패괴된 인류의 생존의 토대가 되었다. 몇천 년간 패괴된 인류는 사탄의 이 독소에 의지해 오늘날까지 살아왔다. 사탄의 모든 소행은 자신의 욕망, 야심, 목적을 위한 것이다. 사탄은 하나님을 뛰어넘고 하나님에게서 벗어나 하나님이 창조한 만물을 지배하고 싶어 한다. 지금 사람은 사탄에게 이 정도까지 패괴되어 모두 사탄의 본성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을 부인하고 대적하고 싶어 하며, 자기의 운명을 직접 자기 손에 장악한 채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대항하고 싶어 한다. 사람의 야심과 욕망은 이미 사탄의 그것과 완전히 같아졌다. 그러므로 사람의 본성이 곧 사탄의 본성이라고 하는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어떻게 베드로의 길을 갈 것인가>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읽고 난 뒤 저는 깨달았습니다. 제가 이런 일을 할 수 있었던 주 원인은 제 내면에 있는 사탄의 본성과 성품 때문이었죠. 저는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라는 사탄의 철학으로 살아가면서 더없이 이기적이고 간사하게 변했습니다. 오직 스스로를 보호하고 제 이익을 지키기 위해 말하고 행동했죠. 저는 리더가 사역을 감독하다가 제 본분 이행 과정에 존재하는 문제점을 발견하고 저를 교체할까 봐 잔꾀를 부리고 머리를 써서 리더에 대한 불만을 퍼뜨렸으며, 형제자매들을 끌어들이고 선동하여 저와 같은 노선에 서게 한 후 리더의 사역 감독에 대항했습니다. 제 사역 효율만 낮은 게 아니라 모두 똑같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게 하기 위해서였죠. 저는 지위를 지키기 위해 어떻게 해야 리더에게 대응하고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지 머리를 쥐어짰으며, 그 결과 교회 사역에 손해만 끼쳤습니다. 반성하면 할수록 저는 정말 인성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깊이 후회하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악을 행하고 교회 사역을 교란했습니다. 저는 제대로 회개하고자 합니다. 리더의 감독과 지도를 받아들여 성실하게 피조물로서의 본분을 이행하겠습니다.’

그 후, 저는 하나님 말씀을 읽으면서 리더의 감독과 지도를 어떻게 대하는 게 올바른 태도인지 알게 됐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수많은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고 있지만,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많지 않으며,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진리를 추구하고 실제에 진입하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대부분은 원칙 없이 일을 처리하며, 진실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저 말로만 진리를 사랑하고 추구하고자 하며, 진리에 공을 들이고자 할 뿐이다. 하지만 그 다짐이 얼마나 갈지는 알 수 없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든 패괴 성품을 드러낼 수 있다. 그런 자는 본분을 대할 때 조금의 책임감도 없으며 늘 건성으로 대충 임하고 그저 자기 뜻대로 행동한다. 심지어는 책망과 훈계조차 받아들이지 못한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이 일단 소극적인 상태에 빠지고 연약해지면 본분을 내팽개칠 수 있는데, 이는 자주 일어나는 일이자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이 모양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진리를 얻기 전까지는 믿을 수도 신뢰할 수도 없다.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 무슨 의미겠느냐? 어려움이나 좌절 앞에서 쓰러지고 소극적으로 변하며 연약해지기 쉽다는 것이다. 늘 소극적이고 연약해지는 사람을 신뢰할 수 있겠느냐? 틀림없이 그럴 수 없다.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다르다. 진실로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틀림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야말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다 신뢰할 수 없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겠느냐? 당연히 사랑으로 도와주고 붙들어 주며,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많이 점검하고 도와주고 지도해 줘야 한다. 그래야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보장된다. 이렇게 하는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주요 목적은 하나님 집의 사역을 지키는 데 있으며, 그다음으로는 제때 문제점을 발견하고 제때 공급하고 붙들어 주거나 책망하고 훈계하고, 또한 오류를 바로잡고 부족한 점과 단점을 보완하는 데 있다. 이는 사람에게 유익하며, 악의는 없다. 사람을 감독하고 관찰하고 알아보는 것은 그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진입하도록 돕기 위함이며, 방해하거나 교란하거나 헛수고하는 일 없이 하나님의 요구와 원칙대로 본분을 이행하게 하기 위함이다. 이렇게 하는 목적은 사람에 대해 책임지고 하나님 집의 사역에 대해 책임지기 위해서일 뿐, 어떤 악의도 없다.(<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7)> 중에서), 『하나님 집에서는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들을 감독하고 관찰하고 알아본다. 하나님 집의 이러한 원칙을 너희는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느냐? (네.) 하나님 집에서 너를 감독하고 관찰하고 알아보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너무 바람직한 것이다. 이는 네가 본분을 잘 이행하는데 도움이 되고, 기준에 맞게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 마음을 만족게 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사람에게 유익하고 도움이 될 뿐 조금도 해롭지 않다. 이 방면의 원칙을 알았으면 리더 일꾼과 하나님 선민의 감독에 거부하거나 경계하는 감정을 가지지 않는 게 맞지 않겠느냐? 가끔 너를 알아보고 관찰하고, 네 사역을 감독해도 그건 너라는 사람을 향한 것이 아니다. 왜 이렇게 말하겠느냐? 지금 네가 하는 일, 네가 이행하는 본분, 네가 하는 모든 사역은 어느 개인의 일, 사적인 일이 아니라 하나님 집 사역과 관련된 일이자 하나님 사역의 일부와 관계된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군가가 너를 좀 감독하고, 관찰하거나 깊이 있게 알아보며 마음을 나누면서 요즘 너의 내적 상태가 어떤지 살피려 하고, 심지어 가끔은 좀 엄한 태도를 보이고, 너를 조금 책망하고 훈계하고 징계하고 꾸짖는다면 그것은 모두 하나님 집의 사역을 참답고 책임감 있게 대하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니 너는 어떠한 부정적인 생각을 품어서는 안 되고 부정적인 감정으로 이를 대해서도 안 된다. 다른 이가 감독하고 관찰하고 알아보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느냐? 네가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들일 수 있음을 뜻한다. 만약 다른 이가 감독하고 관찰하고 알아보는 것조차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에 반항한다면 하나님의 감찰은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감찰은 사람이 알아보는 것보다 훨씬 세밀하고, 심도 있고, 정확하다. 하나님의 요구는 훨씬 구체적이고, 엄격하고, 심도 있다. 하나님 선민의 감독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너의 그 말은 빈말에 지나지 않겠느냐? 네가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검증을 받아들일 수 있으려면 먼저 하나님 집, 리더 일꾼이나 형제자매들의 감독을 받아들여야 한다.(<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7)>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며 저는 깨달았습니다. 사람은 내면에 사탄의 패괴 성품이 있기에 본분을 이행하면서 늘 자기 뜻대로 일을 처리합니다. 게다가 건달 기질과 타성까지 심해서 언제나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하며 성과를 내려 하지 않죠. 일을 처리할 때는 원칙에 어긋나는 부분도 많고요. 그래서 리더 일꾼이 사역을 더 감독하고 체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교회의 각 사역이 질서정연하게 진행될 테니까요. 이는 또한 리더 일꾼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이자 그들 본연의 사역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리더 일꾼의 감독과 지도에 순종하고 받아들이는 게 마땅했습니다. 이 밖에, 저에게는 또 하나의 그릇된 관점이 있었습니다. 저는 리더가 수시로 사역을 감독하고 관련된 질문을 하는 것이 본분 이행을 지연시키고 사역 성과에 지장을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리더가 사역에 대해 꼼꼼히 알아보는 것은 문제를 발견하는 한편, 저희가 문제를 해결하고 오류를 바로잡도록 도와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시간이 지체되는 게 아니라 사역 효율을 더 높일 수 있고요. 이번처럼 말입니다. 리더는 사역에 관해 체크하다가 저희가 새 신자를 양육할 때 사랑과 인내심을 갖지 않으며 새 신자에 대한 요구치가 너무 높다는 것을, 그래서 소극적으로 변해 본분을 이행하지 않는 새 신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의 교제와 지적을 통해 저희는 본분 이행 과정의 문제점을 발견하게 됐고요. 그 후 저희는 새 신자의 어려움에 맞는 하나님 말씀을 찾아 교제함으로써 모두가 본분 이행의 의미를 깨닫게 했고, 또 새 신자들의 실제 분량에 맞춰 합리적으로 본분을 안배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새 신자들의 내적 상태는 호전되어 정상적으로 본분을 이행하게 됐습니다. 저는 리더의 감독과 지도가 사역 성과에 지장을 주는 게 아니라 본분 이행의 원칙을 파악하게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건 리더 일꾼이 사역을 감독하고 지도하면서 준 도움이었죠. 이제 저는 깨달았습니다. 리더 일꾼의 감독을 받아들이는 것은 교회 사역에 책임감을 갖는 태도이며, 본분 이행 과정에서 마땅히 갖춰야 할 실행 원칙입니다.

한동안 지나자 리더는 제게 다시 새 신자 양육 사역을 맡겼고, 저는 하나님께 깊이 감사드렸습니다. 그 후로는 리더가 사역을 체크하고 지도해도 거부감이 들지 않았습니다. 리더가 발견한 문제점을 종합한 뒤 주동적으로 협력하는 형제자매를 찾아가 함께 이야기하고, 본분 이행 과정의 문제점들을 정리했습니다. 이를 통해 저희에게 존재하는 문제를 더 정확히 알 수 있었고, 사역 성과도 점점 좋아졌습니다. 저는 본분을 이행하면서 리더 일꾼의 감독과 지도를 수용하고, 진리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지니며, 진리 원칙대로 일을 처리해야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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