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냥함이 좋은 인성을 의미할까요?

2025.6.2

저는 2023년 8월에 교회에서 문서 사역을 담당했습니다. 평소 형제자매들이 업무나 사역에 어떤 어려움이 있으면 늘 참을성 있게 지도하고 도와주었고, 교제가 끝나고 사람들의 미소 띈 얼굴을 볼 때마다 무척 기분이 좋고 만족스러웠습니다. 다들 저를 꽤 긍정적으로 본다고 생각했습니다. 얼마 후, 저는 팀장인 왕잉 자매가 본분 이행에 부담이 없고 사역을 비교적 불손하게 대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매는 사역 성과가 좋지 않아도 주도적으로 사람들을 데리고 문제를 정리하지도 않았고, 평소에 본분을 이행할 때도 다른 사람에게 가서 하라고 호령하고 지휘하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설교문을 고를 때도 마음을 기울이지 않아서 몇몇 간단한 문제도 늘 착오가 생겼습니다. 협력하는 자매가 짚어 주면 입으로는 받아들이지만, 나중에는 여전히 건성으로 대했습니다. 처음에는 자매가 나이도 어리고 하나님 믿은 시간도 짧으니까 도와주고 인도해 주었는데, 시간이 지나도 별다른 변화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자매의 문제를 교제하고 폭로해서 심각성을 인식시켜 주어야 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막상 폭로하려고 하니 우려가 되었습니다. ‘내가 말을 호되게 하면, 자매가 나를 매정하고 모질다고, 자신의 연약함을 헤아려 주지 않는다고 하지 않을까? 혹시라도 다른 형제자매들에게 나를 그런 식으로 얘기해 버리면, 다들 내가 사랑도 없고 인성도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러면 앞으로 누가 나를 좋게 생각하겠어? 아무래도 폭로하고 책망하는 것은 관두는 게 낫겠어. 많이 인내하고 도와주자.’ 그렇게 해서 왕잉에게는 사역에서 제대로 되지 않은 부분만 간단하게 얘기하고, 본분을 이행할 때 건성으로 임하는 태도들만 몇 가지 지적해 주었습니다. 이를 들은 왕잉은 본인에게 부담이 없다는 것은 인정했지만, 본인이 본분을 건성으로 이행해서 사역에 손실을 입힌 것에 대해서는 별다른 반성이나 인식이 없었습니다. 잠깐 사이에 자신이 관심 있는 화제를 꺼내더니,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그런 자매의 태도를 보니 제 교제가 성과가 없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나도 일깨워 주었고, 본인도 바로잡겠다고 했으니, 앞으로 잘 지켜보자.’ 그 후에도 알아보니 왕잉은 여전히 본분에 부담이 없었습니다. 속으로 무척 조바심이 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에는 왕잉의 문제를 엄하게 폭로해야지, 안 그러면 사역이 너무 영향을 받겠어.’ 한번은 사역을 지도할 때, 왕잉을 몇 마디 호되게 나무랐습니다. 고개를 떨구고 미간을 찌푸린 채 힘들어 하는 왕잉의 모습을 보니, 또 내가 말을 너무 심하게 했나 싶었습니다.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내가 인정머리도 하나 없고 말을 너무 기분 나쁘게 한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런데도 앞으로 내가 좋은 인상을 줄 수 있을까?’ 결국 저는 재빨리 위로와 격려의 말을 덧붙였습니다. “훈계와 책망을 받는 것은 좋은 일이니까 소극적으로 변할 필요 없어요. 앞으로 바로잡으면 되죠.” 하지만 왕잉은 이후로도 여전히 본분에 부담을 갖지 않아서 사역을 심각하게 지연시켰고, 저는 하는 수없이 그녀를 교체했습니다.

왕잉을 교체한 뒤, 윗선 리더가 물었습니다. “형제님은 전에도 왕잉의 문제를 발견했는데, 왜 책망하고 폭로하지 않았나요? 그랬으면 자매도 좀 일찍 돌아섰을 거고, 자매가 회개하지 않는 것을 알았으면 좀더 빨리 교체할 수도 있었을 거예요. 자매가 계속 본분을 건성으로 이행해서 사역을 얼마나 지연시켰는데요!” 리더의 말에 저는 돌이켜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는 진작부터 왕잉의 문제를 발견하고, 또 여러 번 일깨워 주었어. 그런데 문제의 성질을 해부하지 않았고, 단지 수박 겉핥기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얘기하기만 했지. 나에게는 전에도 이런 태도가 있었어. 왜 나는 다른 사람의 문제를 발견하고도 지적해서 폭로하지 못하고, 호되게 얘기해서 남에게 안 좋은 인상을 주는 것을 겁낼까? 이건 도대체 무슨 문제일까?’ 저는 하나님께 자신의 문제를 인식할 수 있도록 깨우쳐 달라고 기도드렸습니다.

그 후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어떤 교회 리더는 형제자매가 건성으로 대충 본분을 이행하는 것을 보고 책망을 해야 하는데도 책망하지 않고, 분명 하나님 집의 이익이 손실 입는 것을 보아도 신경 쓰지도 묻지도 않으면서 조금도 사람들에게 미움을 사려고 하지 않는다. 사실 그가 진심으로 다른 사람의 연약함을 헤아리는 것은 아니다. 그의 속셈과 목적은 사람의 마음을 구슬리기 위한 것이다. 그는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다. ‘내가 이렇게 해서 아무에게도 미움을 사지 않으면 사람들은 나를 좋은 리더라고 생각하고 나를 좋게, 높게 평가하고 내게 찬성하고 나를 좋아할 거야.’ 그는 하나님 집의 이익이 얼마나 손해를 보든, 하나님 선민의 생명 진입이 얼마나 피해를 입든, 교회 생활이 얼마나 큰 방해를 받든 상관하지 않고 그저 사탄 철학을 지키며 사람들의 미움을 사지 않으려 한다. 마음속에는 어떠한 가책도 없다. 누군가 방해하고 교란하면, 기껏해야 말로 어물쩍 넘어갈 뿐 진리를 교제하지 않고 그 사람에게 문제의 본질을 지적하지도 않으며 사람의 내적 상태를 분석하거나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교제하는 법이 없다. 거짓 리더는 사람들이 항상 어떤 잘못을 저지르고 어떤 패괴 성품을 표출하는지 폭로하거나 해부하는 법이 없고, 어떤 실제적인 문제도 해결하지 않는다. 대신 사람의 그릇된 행동 방식과 패괴 표출을 항상 눈감아 주며, 사람이 아무리 소극적이고 연약하더라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그저 글귀와 도리를 늘어놓고 격려의 말 몇 마디로 대충 넘어가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유지할 뿐이다. 그 결과, 하나님의 선민들이 자신을 반성하거나 인식하지 못하고, 어떤 패괴 성품을 표출해도 해결하지 못하며, 글귀와 도리, 관념과 상상 속에서 살면서 생명 진입이 전혀 없다. 그런데도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의 리더는 하나님보다도 우리의 연약함을 더 잘 이해해 줘. 우리의 분량이 작아 하나님의 요구에 미치지 못해. 우리는 리더의 요구에 맞출 수 있기만 하면 돼. 우리가 리더에게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거야. 만약 어느 날 상부에서 우리의 리더를 교체하겠다면 우리가 목소리를 내야 해. 리더가 교체되지 않도록 상부와 협상하고, 상부에서 우리 요구를 들어주도록 압박해야지. 그러면 리더에게도 면목이 설 거야.’ 사람들의 마음에 이러한 생각이 생기고 리더와 이러한 관계가 형성된다. 마음에 리더에 대해 이러한 의지, 부러움, 숭배가 생기면 갈수록 리더를 믿게 되고, 리더의 말을 듣기 원하면서 하나님 말씀에서 진리를 구하지 않게 된다. 이런 리더는 사람들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만약 리더가 하나님의 선민과 이런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하고, 또한 그 관계를 즐기며 하나님 선민이 응당 자신을 이렇게 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 리더는 바울과 다를 바 없고, 이미 적그리스도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하나님의 선민은 이미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되어 분별력이 전혀 없다. 사실, 그 리더는 진리 실제가 없고, 하나님 선민의 생명 진입에 전혀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그저 글귀와 도리만 늘어놓으며 인간관계를 유지할 뿐이다. 그는 외식하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드러내는 데 능하다. 또 그의 말과 일 처리는 사람의 관념에 맞으며, 사람들을 미혹한다. 그는 진리를 교제할 줄 모르고, 스스로를 인식하지도 못하기에 사람들이 진리 실제에 진입하도록 인도할 수 없다. 그는 오직 명예와 지위를 위해서만 사역하며, 듣기 좋은 말을 해서 사람을 휘어잡을 줄만 안다. 그리하여 사람들로부터 숭배받고 앙망받는 결과를 초래했으며, 교회 사역과 하나님 선민의 생명 진입에 심각한 영향과 지장을 주었다. 이런 자는 적그리스도가 아니겠느냐?(<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1조 사람의 마음을 농락한다> 중에서) 하나님은, 거짓 리더는 형제자매가 본분을 이행하며 드러낸 문제를 발견하더라도, 폭로도 책망도 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거짓 리더는 상대가 사역을 어떻게 그르치든, 또 문제의 성질이 얼마나 심각하든, 그저 가볍게만 짚어 줄 뿐, 결코 진리 교제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무조건 달래고 관대하게 대해서 사람들에게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심어 줌으로써, 사람들이 자기를 인정하고 옹호하게 만듭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 마음을 구슬리고 사람을 미혹하는 적그리스도의 수법입니다. 사실 제가 바로 그랬습니다. 저는 왕잉이 본분을 건성으로 이행하고 실질적인 사역을 하지 않는 것을 보면서, 그렇게 본분을 이행하면 사역이 심각하게 지체될 것이므로, 본인이 회개하지 않으면 교체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자매의 문제를 지적하려고 하니, 자매가 저를 두고 자신의 연약함도 헤아려 주지 않는다고, 매정하고 모질고, 사랑도 없고, 인성도 좋지 않다고 할까 봐 겁이 났습니다. 자매 마음속에서 좋은 인상을 유지하려다 보니, 책망과 폭로의 말은 도저히 꺼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본분에 마음을 많이 쏟으라면서 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기고, 자매가 그렇게 행동하는 성질과 결과에 대해서는 폭로하지 못했습니다. 그 뒤로도 왕잉은 여전히 본분을 건성으로 이행했고, 이에 제가 몇 마디 나무랐습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고개를 떨구고 괴로워하는 자매의 모습을 보면서 자매가 나를 어떻게 볼까 걱정된 나머지, 저는 재빨리 위로와 격려의 말을 건넸습니다. 결국 자신의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왕잉은, 끝내 회개하고 달라진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급기야 교체되고 말았습니다. 저는 형제자매의 문제를 마주했을 때, 진리를 교제해서 해결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그저 사람들에게 상냥하고 애정 넘치는 좋은 이미지를 주려고 애쓰면서 언제나 자신을 위장했습니다. 이제서야 그런 저의 사랑이 거짓임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오로지 제 명예와 지위를 지키고 사람들에게 우러름 받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책임자로서 제가 할 일은, 진리 교제로 형제자매들의 문제를 해결하고, 그들이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고 교회 사역을 지키도록 돕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오직 사람들 마음속에서의 지위만 지켰을 뿐, 책임도 전혀 다하지 않았고, 언제나 사랑이 있는 사람인 체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을 미혹하고 사람 마음을 구슬리는 것이며, 이때 가는 길은 바로 적그리스도의 길입니다. 저는 그런 식으로 사역함으로써 형제자매들에게 해를 입혔습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 사역을 가로막는 것이고,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반성하니 몹시 괴롭고 자책감이 밀려오면서, 동시에 회개하고 싶었습니다.

그 뒤로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는 사람 마음을 잘 헤아리고, 상대를 이해하고 포용하는 것이 인성이 좋은 것이고, 다른 사람을 책망하고, 다른 사람의 문제를 폭로하면, 그것은 매정하고 모진 것, 사랑도 없고 인성도 안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어. 이런 내 관점이 옳을까? 진정으로 인성이 좋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하나님 말씀을 보니 마음이 환해졌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인성이 좋다는 것에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 중용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니다. 원칙을 견지하지 않으며, 누구에게도 미움받을 일을 하지 않는 것, 여기저기 비위를 맞추고 능란한 처세술을 보여 주며, 다양한 사람들에게 칭찬을 듣는 것, 이런 것은 기준이 될 수 없다. 그럼 어떤 기준이겠느냐? 하나님을 대할 때나 진리를 대할 때 순종할 수 있고, 본분이나 각종 사람과 일을 대할 때 모두 원칙이 있어야 하고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부분은 모두가 눈으로 보고 마음속으로 확실히 알 수 있다. 이 밖에도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기에 모든 사람의 실제 상황을 알고 있다. 그 누구도 하나님을 속이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인성이 좋다고 하면서 다른 이의 험담을 하는 법도 없고, 다른 이의 이익에 손해를 입히지도, 다른 이의 재물을 탐하지도 않는다고 내세운다. 심지어 이해 갈등이 생길 때면 자신이 손해를 보면 봤지 남에게서 이득을 챙기지 않아, 모두가 그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할 때 몸을 사리고 농간을 부리며, 늘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고, 하나님 집의 이익을 고려해서 하는 일이 하나도 없다. 하나님이 급해하는 것을 급해하지 않고, 하나님이 생각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으며, 본분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내려놓은 적이 없다. 그는 자신의 이익을 버린 적이 없고 심지어는 악인이 악행을 저지르는 것을 보고도 폭로하지 않으며, 어떤 원칙도 없다. 이는 어떤 인성이냐? 이는 인성이 좋은 것이 아니다. 그가 말하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말고, 그가 살아 내는 것과 드러내는 것을 보아야 한다. 그가 본분을 이행할 때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그의 내적 상태는 어떤지,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보아야 한다. 만약 그가 자신의 명리를 위하는 마음이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을 뛰어넘고, 하나님 집의 이익과 하나님을 헤아리는 마음을 능가한다면, 이런 사람이 인성을 지닌 사람이겠느냐? 이는 인성을 지닌 사람이 아니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께 마음을 바치면 진리를 얻을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인성이 좋다는 것은, 그 사람이 말을 상냥하고 부드럽게 하느냐, 아니면 엄격하고 직설적으로 하느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그 사람이 하나님과 진리에 순종하느냐, 본분을 책임 있게 이행하느냐를 보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리더 일꾼은 형제자매가 본분을 무책임하게 이행하는 것을 보면 책망하고 훈계할 수 있고, 하나님 말씀을 들어 그런 행동의 성질과 결과를 폭로해 줄 수 있습니다. 물론 형제자매가 듣고 당장은 괴로울 수 있지만, 만약 그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이를 계기로 스스로를 반성하고 인식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생명 진입과 본분 이행에 모두 유익이 됩니다. 어떤 사람은 겉으로는 무척 상냥하지만, 형제자매가 원칙에 위배된 행동으로 사역에 손해를 입히는 것을 보고 교제하고 폭로해야 할 때, 정작 자신을 보전하느라 듣기 좋은 소리만 하면서 어물쩍 넘기려 합니다. 어떻게 하면 상대를 진정으로 도와줄 수 있을지 고려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교회 이익을 지킬지도 고려하지 않습니다. 이기적이고 교활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인성이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제가 바로 그렇게 행동했습니다. 어떻게든 제 명예와 지위를 보전할 생각만 하고, 다른 사람이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을 보고도 도움 한 번 주지 못했습니다. 저는 예전에 제 인성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하나님 말씀의 폭로와 드러난 사실을 통해서, 비로소 제가 인성 좋은 사람이 전혀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여기까지 인식하자 무척 괴롭고 부끄러운 나머지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습니다. 저는 속으로 자신을 증오하며, 더 이상 그런 식으로 처신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 뒤로 저는 하나님 말씀을 읽고 실행의 길을 찾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사람과 함께 지낼 때는 가장 먼저 네 진심과 진솔함을 느끼게 해야 한다. 다른 사람과 함께 이야기하고 일하고 교류할 때 언제나 무성의한 말, 상투적인 말, 듣기 좋은 말, 아첨하는 말, 무책임한 말, 상상하는 말, 또는 상대에게 잘 보이기 위한 말만 한다면, 이는 진실한 것도, 성의도 전혀 없는 것이다. 누구와 함께 지내든 이런 방식을 취한다면, 그런 사람에게 정직한 마음이 없다. 그러면 정직한 사람이 아니다. 예를 들어, 소극적인 상태에 빠진 어떤 사람이 네게 진실한 마음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어쩌다가 소극적이 되었는지, 저 스스로는 도무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해 보자. 사실 네가 마음속으로는 그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알고 있지만, 솔직하게 말하지 않고 “괜찮아요. 그건 소극적인 것이 아니죠. 저도 그래요.”라고 말했다. 상대는 이 말을 듣고 무척 위안이 되었겠지만 네 태도는 진실한 것이 아니다. 너는 상대를 건성으로 대했고, 상대가 마음이 편하고 위로를 얻게 하려고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다. 너는 진심으로 그를 돕지 않았고 그의 문제를 분명히 말해 주어 그가 소극적인 상태에서 벗어나게 하지 않았으며, 정직한 사람으로서 해야 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 너는 그저 그를 위로하고, 그와 사이가 틀어지거나 갈등이 생기지 않게 하려고 무성의하게 대했을 뿐이다. 이는 정직한 사람이 아니다. 그럼 정직한 사람은 이런 상황을 마주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너는 자신이 보고 정확히 판단한 것을 그에게 말해야 한다. “저는 이렇게 생각하고 또 이렇게 체험했습니다. 제 말이 맞는지 보십시오. 맞지 않는다면 받아들이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러나 맞는다면 받아들였으면 합니다. 제 말이 귀에 거슬려 상처가 된다면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제 목적은 당신을 돕는 것입니다. 저는 이 일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당신은 자신의 체면 때문에 상처를 받았습니다. 다른 사람이 체면을 세워 주지 않자 무시당한다고 생각하고 충격을 받은 거죠. 당신은 여태까지 이런 억울함을 당해 본 적이 없으니 받아들이지 못하고 소극적이 된 것입니다. 이런 것 아닙니까?” 그는 듣고 네 말이 정확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실, 네가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정직한 사람이 되지 않는다면 이런 말을 하지 못하고, 그저 “저도 늘 소극적이 됩니다.”라고만 말할 것이다. 그럼 상대는 모두가 그렇다는 말을 듣고 자신이 소극적인 것도 정상이라고 생각할 테고, 결국 소극적인 상태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네가 정직한 사람이 되고 정직한 태도와 정직한 마음으로 그를 돕는다면, 그가 진리를 깨닫고 소극적인 상태에서 빠져나오게 할 수 있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은 우리에게 형제자매를 대할 때는 정직한 마음을 지니고, 상대가 안고 있는 문제를 발견하면 진심으로 도와주고 붙들어 주라고 하십니다. 이런 도움에는 형식과 규례가 없습니다. 교제와 일깨움이 성과를 낼 수 있다면 그렇게 하면 되고, 문제의 성질이 심각한 편이라면, 책망과 훈계, 폭로와 해부도 해야 합니다. 문제가 해결되고 성과에 이를 수 있는 교제 방법이 있다면, 그렇게 교제하면 됩니다. 만약 자신의 체면과 이미지만 고려하느라 문제의 본질을 피하고, 폭로하지 않고, 두루뭉술한 말만으로 어물쩍 넘긴다면, 그것은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해를 입히는 것입니다. 제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왕잉이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하는 것을 알고, 왕잉을 일깨우며 도와주었습니다. 하지만 왕잉은 본인이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왕잉을 훈계하고 책망했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들어 본인이 건성으로 대하는 성질과 결과를 해부하고, 이로써 그녀가 본인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매의 진입에 도움이 됩니다. 이런 점을 깨달은 후, 저는 사람을 도와주는 방면에서 실행의 길을 찾았고, 이 방면에서 실행을 훈련하기 시작했습니다.

2023년 10월, 저는 저우신 자매가 본분을 무책임하게 이행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매는 문서 본분을 몇 년째 이행하고 있었고, 다른 형제자매들은 이제야 훈련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자매는 자기가 맡은 사역만 하고, 전체적인 사역은 전혀 부담을 지지 않았습니다. 이 문제는 제가 전에도 자매에게 교제해 준 적이 있었지만, 자매는 별로 진입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매에게 그런 행동의 성질을 해부해서 자매가 조금은 돌아설 수 있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자매의 문제를 지적하려니 또 우려가 조금 앞섰습니다. ‘저우신은 최근에 내적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는데, 거기다 내가 본인 문제를 지적하고 폭로하면, 자매가 나를 인정 없고 인성도 안 좋다고 하지 않을까? 그러면 나중에는 분명 내 이미지가 안 좋아질 거야.’ 이렇게 생각하니, 조금 망설여졌습니다. 그냥 폭로와 책망을 관둘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 순간, 불현듯 전에 왕잉과의 일에서 겪었던 실패가 떠올랐고, 전에 보았던 하나님 말씀도 떠올랐습니다. 『네가 정직한 사람이 되고 정직한 태도와 정직한 마음으로 그를 돕는다면, 그가 진리를 깨닫고 소극적인 상태에서 빠져나오게 할 수 있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 수 있다> 중에서) 저는 반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우신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고 폭로하지 않는 것이 본인에게 좋은 일일까?’ 사실 아닙니다. 저는 저우신이 저를 너무 가혹하다고 자신의 연약함을 헤아리지 않는다고 생각할까 두려웠고, 자매에게 좋은 인상을 주려고 했습니다. 또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지금 자매는 이기적이고 비열한 패괴 성품으로 살고 있고, 무책임하게 본분을 이행해서 사역이 이미 지체되었어. 이 문제를 자매에게 폭로해서 본인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시켜야 자매도 바로잡을 기회를 얻을 수 있어. 설령 가슴이 아파서 당장은 받아들이기 힘들더라도 그것이 자매를 진심으로 도와주는 것이고, 나도 양심에 떳떳할 거야.’ 저는 나중에 예배드릴 때 하나님 말씀을 인용하며 자매가 자기 사역만 챙기고 사역 전체를 신경쓰지 않는 성질과 결과를 폭로했습니다. 그때 자매를 보니 무척 괴로워했습니다. 하지만 교제가 끝난 뒤, 저우신은 본인 문제를 좀 의식하긴 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며, 이렇게 해부하니 비로소 자신의 문제가 너무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자기는 사역이 정체되어도 걱정하지 않고, 속으로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신경 써서 해결하지 않는 등, 나 몰라라 하며 사역을 지체시켰다며, 정말 너무 이기적이고 비열했다고, 열심히 반성하고 돌아서겠다고 했습니다. 자매가 그렇게 인식하는 것을 보니, 드디어 형제자매에게 도움이 한 번 되었다는 생각에 정말 기뻤습니다.

당시의 체험을 통해 저는 인성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원칙을 조금 깨달았고, 또한 제가 진심으로 사람들을 돕지 못하고 상대의 문제를 지적하지 못하는 것이, 자기만 보전하고 교회 사역을 지키지 않는 것이고, 좋지 않은 인성의 태도라는 것을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아울러 진정 사랑으로 사람을 돕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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