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임성이 좋은 것이 좋은 인성의 기준인가
필리핀 프랭크(Frank)어렸을 때부터 주변 사람들은 제가 철들고 말 잘 듣는 착한 아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사람들에게 화도 거의 안 내고 말썽을 부리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믿고나서 형제자매들과 만날 때도 붙임성이 좋고 포용하고 인내할 줄도...
어려서부터 부모님은 제게 사람들과 어울릴 때는 때와 장소를 가려 말해야 하고, 남에게서 문제가 보여도 지적하지 말며, 상대방의 기분을 살피면서 말해야 하고 이해심 많고 붙임성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야 자신에게 화를 자초하지 않고 남들에게도 예쁨 받아 사회에서 설 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그 말씀이 참 일리있고, 그렇게 처신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들과 지내면서 다툼이나 갈등이 거의 없었고, 상대방에게 어떤 문제가 보여도 지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후에도 저는 여전히 그런 식으로 사람들을 대했고, 형제자매에게서 문제가 보여도 지적하거나 폭로하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특히 파트너 자매와 함께 지낼 때, 저는 자매가 본분을 이행하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을 분명히 보고 지적해 주고 싶었지만, 그때마다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가 다시 삼키곤 했습니다. 자매의 문제를 지적했다가 자매가 받아들이지 않고 제게 정색하거나 편견을 가질까 봐 늘 두려웠던 것입니다. 나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저는 비로소 ‘때려도 얼굴은 때리지 말고,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는 전통문화 사상에 대해 조금 분별하게 되었습니다.
2021년 10월, 저는 류린 자매와 파트너가 되어 교회 사역을 책임지게 되었습니다. 얼마 후, 저는 류린 자매가 본분에 부담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매는 복음 사역을 책임지고 있었지만 점검하지도 감독하지도 않았고, 리더가 사역에 대해 물어도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왜 보고하지 않느냐고 묻자, 몸이 좋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런 자매의 모습을 보고 저는 본분을 대하는 태도가 매우 소홀하고 책임감이 없다며 지적하고 싶었지만, 말은 목구멍까지 나왔다가 다시 삼켜졌습니다. 속으로 ‘그냥 말하지 말자. 자매가 받아들이지 않고 정색하면 앞으로 어색해질 거야’라고 생각하며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몸이 좀 나아지면 사역에 신경 쓸 거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당시 류린 자매는 목이 아프다고 했고, 저는 자매에게 괄사를 해 주고 운동을 꾸준히 하라고 하며 몇 마디 권면의 말을 해 주었을 뿐, 본분 이행의 문제는 지적하지 않았습니다. 3개월 후 어느 날, 설교자가 저희와 복음 전파에 관한 세부적인 사역을 교제했습니다. 그 후에 저는 류린 자매에게 형제자매들과 교제하고 실행에 옮겼는지 물었고, 자매는 간단히 이야기만 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화가 치밀어 ‘정말 무책임하군요. 이건 사역을 지체시키는 거잖아요?’라며 따끔하게 훈계하고 싶었지만, 말은 목구멍까지 나왔다가 다시 삼켜졌습니다.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내가 만약 모든 사람 앞에서 자매를 훈계해서 체면을 상하게 하면, 자매가 나에게 편견을 갖지 않을까? 내가 일부러 형제자매들 앞에서 망신을 줬다고 하지 않을까? 그냥 말하지 말자.’ 그래서 저는 직접 사역을 실행에 옮겼고, 그 후에도 그녀의 문제를 교제하며 지적하지 않았습니다.
2022년 6월 말, 급히 검토해야 할 설교 원고가 몇 편 있었습니다. 장팅(張婷) 자매가 이전에 협력한 경험이 있어서 저는 류린 자매를 보내 교제하게 했습니다. 저녁에 저는 류린 자매에게 장팅 자매와 세부적인 원칙을 교제했는지 물었고, 류린 자매는 얼굴을 굳히고 짜증스럽게 말했습니다. “자매는 다 알아요. 그렇게 자세히 말할 필요 없어요!” 저는 ‘세부적으로 교제하지 않으면 장팅 자매가 원칙을 잘 모를 수도 있잖아요. 그럼 사역이 지체되지 않겠어요?’라고 자매에게 일깨워 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제 말은 목구멍까지 나왔다가 다시 삼켜졌습니다. ‘방금 물었을 때도 언짢아했는데, 부족한 점을 또 지적하면 더 화를 낼 거야. 그럼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지내겠어?’ 저는 자매를 지적하지 않고, 나중에 바로잡아야 한다고만 나지막이 말했습니다. 결국 장팅 자매가 원칙을 파악하지 못해 재작업하게 되었고, 원래 하루면 끝날 일이 열흘 남짓 지체되고 말았습니다. 윗선 리더에게서 저희가 본분에 부담이 없고 사역 효율이 떨어진다는 편지가 왔을 때, 저는 마음은 큰 가책을 느꼈습니다. 이번 사역 지체는 저와 관련이 있었습니다. 저는 류린 자매가 본분에 무책임한 것을 보았지만, 저희 사이를 유지하기 위해 계속 그녀의 문제를 폭로하지 않았고, 결국 사역은 지체되고 말았습니다. 한동안 저는 마음이 무척 억눌리고 괴로웠습니다. 조용히 있을 때면 ‘하나님께서 이런 일들을 마련하신 것은 내게 어떤 공과를 배우게 하시려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파트너 자매가 본분 이행에 부담이 없어 사역을 지체시키는 것을 보았지만, 저는 자매가 정색할까 봐 두려운 마음에 문제를 지적할 용기가 없었습니다. 하나님, 부디 저를 깨우쳐 주시고 인도하시어 이 일에서 공과를 배우게 해 주십시오.”
어느 날, 저는 체험 간증 영상 한 편을 보았는데, 그 자매의 체험과 영상에 인용된 하나님 말씀으로 저 자신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진리 실행은 빈말을 하고 구호를 외치는 것이 아니다. 삶 속에서 어떤 일을 만나든, 그것이 처신의 원칙이나 일을 바라보는 관점, 본분 이행과 관련되는 문제라면 선택을 하게 된다. 이때, 진리를 구해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에서 근거와 원칙을 찾은 다음 실행의 길을 찾아야 한다. 이렇게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아무리 큰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이렇게 진리를 추구하는 것, 이것이 바로 베드로의 길, 진리를 추구하는 길을 걷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과 함께 지낼 때는 어떤 원칙을 지켜야겠느냐? 원래 네 관점은 화합은 귀하고, 인내는 고귀하다는 것이었다. 남들과 화기애애하게 지내면서 타인의 체면을 구기지 않고 누구에게도 미움을 사지 않으면 나중에 함께 잘 지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너는 이런 관점에 얽매여 누가 나쁜 일을 하거나 원칙을 위배하는 것을 보아도 침묵을 지키고, 남에게 미움을 사느니 차라리 교회의 사역이 손해를 입는 편을 택하며, 누구와 지내든 화기애애하게 지내고, 말할 때도 인정과 체면을 고려해 항상 듣기 좋은 말로 상대를 기분 좋게 했다. 설령 어떤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것을 보아도 참는 쪽을 택하고, 뒤에서 말할 뿐 그를 만났을 때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깨지 않고 관계를 유지했다. 이런 처신이 어떠하냐? 이는 무골호인이 아니냐? 너무 교활하지 않으냐? 이는 처신의 원칙에 어긋난 것이다. 이런 식의 처신이 비천하지 않으냐? 이런 자는 좋은 사람이 아니며, 이런 처신은 귀하지 않다.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고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렀든, 처신하는 측면에서 원칙이 없다면 너는 처신함에 있어 실패한 것이고, 하나님 앞에 나아갔을 때 하나님께 인정받지도, 기억되지도, 열납되지도 않을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양심과 이성이 있어야 한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거울처럼 모든 것을 명확히 보여 주셨습니다. 진리를 실행한다는 것은 사람을 대하고 일을 처리할 때 개인적인 감정이 아닌 진리 원칙에 근거하고, 사람들에게 미움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른 사람과 지내면서 진리 원칙에 근거하지 않고 늘 개인적인 감정에 따라 행동하며, 사람들에게 미움받을까 봐 두려워하고 관계를 유지하는 데에만 급급했습니다. 저는 류린 자매가 리더로서 사역에 전혀 마음을 쓰지 않는 것을 보았고, 파트너인 저는 마땅히 자매가 본분을 이행하는 데 존재하는 문제를 지적해 주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혹시라도 자매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관계가 틀어지고 앞으로 어색하게 지내게 될까 봐 늘 걱정했습니다. 저희 사이의 좋은 관계를 지키기 위해, 저는 자매에게 핵심을 비껴가는 형식적인 권면의 말을 하며 제가 이해심 많고 배려심 깊은 사람으로 보이게 했습니다. 저는 겉으로는 류린 자매와 다투지 않고 원만하게 지내며, 듣기 좋은 말만 골라 자매와 육적인 관계를 유지했지만, 교회 사역은 그로 인해 손해를 입었습니다. 제가 한 행동이 어찌 인성이 있는 것이겠습니까? 너무나 이기적이고 간사했습니다! 하나님은 정직한 사람을 좋아하시고, 교활하고 간사한 무골호인을 혐오하신다는 생각이 들자, 제가 처신이 바로 하나님께서 혐오하시는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본분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맡기신 부탁이니, 저는 마땅히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켜야 했습니다. 류린 자매의 처신이 사역에 해가 되는 것을 보았다면 마땅히 지적하고 도와주어야지, 이것저것 두려워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하루는 예배 때 저희가 먹고 마신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을 통해 제 문제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처세 철학 중에 “문제가 보여도 말하지 않아야 좋은 친구다.”라는 말이 있다. 즉, 좋은 친구라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상대의 문제점을 간파했어도 다 터놓고 말해서는 안 되며, 얼굴은 때리지 말고 약점은 들추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라는 것이다. 서로 기만하고 숨기고 음모를 꾸미며, 마음속으로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분명히 알고 있음에도 솔직히 말하지 않고, 교활한 수법으로 그 관계를 지키는 것이다. 왜 그런 관계를 지키려 하겠느냐? 이 사회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적을 만들어 자신이 수시로 위험한 상황에 처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상대의 단점을 들추거나 상대에게 상처를 주면 상대가 너의 원수가 되어 너에게 해악을 끼칠 것을 알고, 너 스스로도 그런 상황에 처하는 것을 원치 않기에 “때려도 얼굴은 때리지 말고,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라는 처세 철학을 취하는 것이다. 이 점으로부터 봤을 때 이런 관계의 두 사람을 진정한 친구라고 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진정한 친구라고 할 수 없다. 마음을 나눈 사이는 더더욱 아니다. 그럼 이들은 과연 어떤 관계겠느냐? 기본적인 사회 관계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런 사회 관계에서 사람은 서로 마음을 나눌 수 없고, 깊이 사귈 수 없으며,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도 없다. 또 자신의 마음에 있는 말, 자신이 본 상대의 문제점, 상대에게 도움이 되는 말을 할 수도 없다. 상대의 비위를 맞추려고 그저 듣기 좋은 말만 찾아서 한다. 다른 사람들의 적의를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감히 참말을 하지 못하고 원칙도 지키지 못한다. 아무도 자신을 위협하지 않을 때면,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평안하게 살 수 있지 않겠느냐? “때려도 얼굴은 때리지 말고,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라는 말을 제창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는 분명 남에 대한 경계심이 들어 있는, 완곡하고 간사한 생존 방법으로, 자기 보호에 그 목적이 있다. 이런 식으로 살아가면 진심을 나눌 친구, 무엇이든 말할 수 있는 친한 친구가 하나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저 피차간에 서로 경계하고 이용하며 수작을 부리고 원하는 것을 취할 뿐이다. 그렇지 않으냐? “때려도 얼굴은 때리지 말고,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라는 말의 근본적인 목적은 남의 원망을 사거나 상대와 적이 되지 않고,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음으로써 스스로를 지키려는 것이다. 이는 스스로 상처받지 않기 위한 수법이자 방식이다. 이 몇 가지 측면의 본질을 봤을 때, 사람의 덕행 중 “때려도 얼굴은 때리지 말고,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라는 요구를 고상하고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럼 이것이 사람을 어떻게 가르치느냐? 누구에게도 원한을 사거나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마지막에 상처 입는 사람은 너 자신이 된다고 말이다. 또한,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네가 친하게 지내는 친구 누구라도 상처를 주는 순간 그 관계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하는데, 그는 친하고 가까운 친구에서 네게 낯선 사람, 적으로 변할 것이다. 사람을 이렇게 가르쳐서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느냐? 설령 네가 이렇게 행동해서 적을 만들지 않고 몇 명의 원수를 줄인다고 할지라도 사람들에게 탄복과 동조를 사고, 영원히 너와 친구가 될 수 있겠느냐? 이것이 완벽하게 덕행의 기준에 도달한 것이겠느냐? 이는 기껏해야 처세 철학에 불과하다. 이런 말과 방식을 지키는 것을 좋은 덕행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결코 그렇게 말할 수 없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8)>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저의 실제 상태를 폭로하셨습니다. 저는 줄곧 사람을 대할 때 남을 잘 배려하고 이해심이 많은 편이었고, 상대방에게 어떤 문제가 보여도 관계가 깨질까 봐 지적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류린 자매와 파트너로 본분을 이행할 때, 저는 자매가 본분을 대하는 태도가 매우 소홀하여 교회 사역을 지체시키는 것을 보았고, 그 문제를 지적하고 싶었지만, 자매가 언짢아하는 것을 보자 누군가 제 목을 조르는 것처럼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저희 사이의 관계가 깨질까 봐 괜히 두려웠던 것입니다. 저는 ‘너 좋고 나 좋고 모두가 좋은 게 좋다’, ‘문제가 보여도 말하지 않아야 좋은 친구다’, ‘때려도 얼굴은 때리지 말고,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는 사탄의 생존 법칙에 따라 살며, 교활하고 간사해져서 어디서든 제 이익을 따지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데에만 급급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저는 늘 이랬습니다. 다른 사람의 문제를 보고도 직설적으로 지적하지 않았고, 그렇게 하는 것이 남을 배려하는 것이고 인성이 좋은 표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진정으로 인성이 좋은 사람은 본분에 충성심과 책임감이 있고, 사람이든 하나님이든 정직한 마음으로 대하며,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킬 수 있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이 진리 원칙을 어기며 일하는 것을 보면 교제하고 도와주며 지적하고 폭로함으로써 그 사람이 제때 깨닫고 바로잡을 수 있도록 합니다. 저는 예전에 다른 사람의 문제를 보고도 말하지 않는 것이 상대의 체면을 세워 주는 것이고, 배려심이 깊고 인성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저의 이런 관점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겉으로 보면 이런 전통문화는 인성 도덕에 부합하는 것 같지만, 본질적으로는 사람들에게 잔꾀나 꼼수를 부리도록 부추겨 갈수록 교활하고 간사하게 만듭니다. 만약 제가 계속 이런 전통문화에 따라 산다면, 패괴 성품은 영원히 변화될 수 없고, 정상적인 인성으로 살아 낼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구하는 중에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에서 ‘들추다’라는 말은 좋겠느냐? 이 ‘들추다’는 단어에 하나님 말씀에서 사람을 드러내고 폭로하는 그런 의미가 들어 있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인류의 언어를 통해 이 ‘들추다’는 단어에 그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악의적으로 남을 폭로하는 성질을 갖고 있는데, 사람의 문제점이나 결점, 또는 아무도 모르는 일, 행위, 그리고 배후의 음모나 생각, 관점을 폭로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에서 ‘들추다’는 단어의 뜻이다. 만약 두 사람이 함께 어울리며 서로 마음이 통하고 마음의 벽이 없다면, 또 상대가 자신으로부터 이로움과 도움을 얻었으면 하며, 앉아서 문제를 솔직히 털어놓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면 이는 정당한 일이지 단점을 들추는 것이 아니다. 만약 네가 상대의 문제를 발견했는데 상대가 네 지적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아예 입을 닫고 분쟁이나 충돌을 피하면 된다. 네가 그를 도와주고 싶다면, 그의 의견을 구하며 먼저 “저는 당신의 문제점을 발견했고, 의견을 말해 주고 싶은데 당신이 받아들일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당신이 받아들이겠다면 말하겠습니다. 하지만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면 지금은 말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물어봐도 된다. 그가 “저는 당신을 믿습니다. 당신은 언제나 적절한 말을 하죠. 저는 다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라고 한다면 이는 인정받은 것과 같다. 그때 하나씩 문제점을 교제해 주면 된다. 상대가 전부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거기에서 도움을 얻는다면 너희는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솔직하게 서로를 대하는 태도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는 올바르게 함께하는 방식이지 약점을 들추는 것이 아니다. 그럼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에서 ‘약점을 들추지 말라’는 말은 무엇을 가리키겠느냐? 사람의 결점이나 상대가 가장 피하고 싶어 하는 문제를 말하지 말고, 문제의 본질을 폭로하거나 그렇게 노골적으로 들추지도 말며, 표면적인 부분, 모두가 자주 이야기하는 부분, 상대도 인식하고 있는 부분만 말하라는 것이다. 그가 예전에 저지른 잘못이나 민감한 부분은 들추지 말고 말이다. 이렇게 행동한다면 상대에게 어떤 유익이 되겠느냐? 그에게 원한은 사지 않고 그의 적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네 행동은 그에게 어떤 도움도, 유익도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에서 ‘약점을 들추지 말라’는 것은 솔직하게 대하는 게 아니라 교활하고 간사하며 수작을 부리는 것으로, 검은 속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사람들과 올바르게 지내는 방법이 아니다. 이방인은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는 말을 도덕적으로 고상한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하는 일로 여기는데, 단언컨대 이는 남과 함께하는 간사한 방법이자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방법이지, 절대 정당한 방식이 아니다. 약점을 들추지 않는 것 자체가 솔직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약점을 들추는 데는 다른 속내가 있을 수 있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8)>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나서, 저는 남의 단점을 들추는 것이 무엇이며, 어떻게 하는 것이 단점을 들추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돕는 것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남의 단점을 들추는 것은 개인적인 속셈과 간계를 가지고 상대방을 망신주거나, 개인적인 이익을 다투기 위해 상대방의 일부 문제나 결점을 무한정 부풀려 폄하하고 정죄함으로써 결국 자신이 이득을 얻으려는 목적을 가진 것입니다. 반면, 사람의 문제를 지적하고 폭로하는 것은 사람을 돕기 위함입니다. 상대방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는데도 스스로 깨닫지 못할 때, 사랑으로 상대방의 분량에 맞게 지적하고 교제하며 폭로하고 해부해 주는 것은 남의 단점을 들추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돕는 것이며, 정상 인성을 가진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저는 류린 자매가 본분에 부담이 없는 것을 보고 지적해 주고 싶어 하면서도, 제가 그렇게 하는 것이 자매의 단점을 들추는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저의 이런 관점은 그릇된 것이었습니다. 만약 제가 자매를 폄하하고 창피를 주며, 형제자매들이 자매에 대해 안 좋은 인상을 갖게 하여 제가 부담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속셈을 가졌다면, 그것이야말로 자매의 단점을 들추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 제게는 그런 속셈이 없었고, 단지 교회 사역을 지키고 자매를 돕고 싶었을 뿐이니, 이는 자매의 단점을 들추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후 류린 자매를 만났을 때, 막상 그녀의 문제를 지적하려니 속으로 망설여졌고 그녀가 제게 정색할까 봐 여전히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하나님께 진리를 실행하도록 이끌어 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이때, 이전에 보았던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라 찾아서 읽어 보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에게 무골호인의 속셈과 관점이 있다면, 너는 어떤 일에서도 진리를 실행하거나 원칙을 지키지 못하고, 늘 실패하고 넘어질 것이다. 깨닫지 못하고 시종일관 진리를 구하지도 않는다면 너는 불신파이니, 영원히 진리 생명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겠느냐? 이런 일이 닥쳤을 때 하나님께 기도하고 부르짖으며, 구원해 달라고 해야 한다. 네가 원칙을 지키고 해야 할 일을 하며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고 마땅히 지켜야 할 입장을 지킬 수 있도록, 하나님 집의 사역에 손실을 주지 않고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킬 수 있도록 하나님께 믿음과 힘을 더해 달라고 해야 할 것이다. 만약 네가 자신의 이익과 체면, 무골호인의 관점을 저버리고 정직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다면, 이는 사탄을 이긴 것이며 이 부분의 진리를 얻은 것이다. 언제나 사탄의 철학으로 살기를 고집하면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지키고, 진리를 실행하지 못하며, 원칙을 지킬 엄두도 내지 못한다면 다른 일에서는 진리를 실행할 수 있겠느냐? 여전히 믿음도, 힘도 없을 것이다. 언제나 진리를 구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한다면 이렇게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를 얻을 수 있겠느냐? (얻을 수 없습니다.) 진리를 얻지 못한다면 구원받을 수 있겠느냐? 구원받을 수 없다. 언제나 사탄의 철학으로 살면서 진리 실제가 전혀 없다면 절대 구원받지 못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제게 힘을 주셨습니다. 저는 더 이상 무골호인으로 살 수 없습니다. 반드시 진리를 실행해야 합니다. 류린 자매가 저에게 정색을 하든 안 하든, 저는 그녀의 문제를 지적하여 교회의 이익을 지키고, 이번 한 번은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용기를 내어 그녀의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류린 자매는 듣고 나서 조금 언짢아했지만, 자신의 문제점을 인정했습니다.
나중에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협력이란 무엇이겠느냐? 일이 생기면 상의하고 관점이나 견해를 밝히며 서로 보완하고 감독하는 것, 그리고 서로 구하고 의논하고 일러 주는 것이야말로 조화로운 협력이다. 예를 들어, 네가 자기 생각대로 일을 처리했을 때 어떤 사람이 “이 일은 잘못 처리했어요. 철저히 원칙을 위배했다고요. 왜 진리를 구하지 않고 제멋대로 처리했죠?”라고 말하는 걸 듣고 네가 “그러게요. 당신이 일깨워 줘서 다행이에요. 일깨워 주지 않았다면 큰 화를 부를 뻔했어요!”라고 말한다면 이것이 바로 서로 일러 주는 것이다. 그럼 상호 감독은 무엇이겠느냐? 사람은 모두 패괴 성품을 가지고 있고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하며 자신의 지위와 체면만 지키고 하나님 집의 이익은 지키지 않을 수도 있다. 모두가 이런 내적 상태를 가지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서 문제점을 발견하면 너는 그와 적극적으로 교제하며 원칙대로 본분을 이행하라고 그에게 일깨워 주면서 스스로도 경계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상호 감독이다. 상호 감독하면 무슨 작용을 하겠느냐?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키는 동시에 사람이 길에 잘못 들지 않게 할 수 있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8조 그는 사람들이 진리와 하나님이 아닌 오직 그에게 순종하도록 한다(1)>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파트너로 본분을 이행할 때는 마땅히 서로 감독해야 하며, 상대방이 원칙을 어기며 일하는 것을 발견하면 지적하고 교제하며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리 원칙에 따라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고, 사람이 진리를 깨닫도록 도울 수 있으며, 더 나아가 교회 사역을 지키는 것입니다. 동시에, 리더 일꾼은 마땅히 진리 원칙에 따라 형제자매를 대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분량이 작은 사람이 패괴 성품을 드러내거나 원칙을 어기며 일 처리하는 것을 발견하면 마땅히 사랑으로 교제하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반면, 하나님을 수년간 믿어 원칙도 깨달았으면서 사역에 무책임한 사람에 대해서는 지적하고 폭로해야 하며, 여러 차례 지적하고 폭로해도 전혀 회개하지 않는다면 원칙에 따라 교체해야 합니다. 나중에 저는 류린 자매의 본분을 대하는 태도가 여전히 바로잡히지 않은 것을 보고, 다른 파트너 자매와 상의한 후 류린 자매의 행실을 위에 보고했고, 윗선 리더는 류린 자매를 교체했습니다.
그 후, 저는 형제자매가 본분을 이행하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더 이상 제 체면이나 사람들과의 관계만 일방적으로 고려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분량에 맞게 지적하고 도와줄 수 있게 되자, 형제자매들도 어느 정도 유익을 얻었고 제 마음도 편안해졌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 원칙에 따라 실행하니 마음이 담담하고 평안해지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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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프랭크(Frank)어렸을 때부터 주변 사람들은 제가 철들고 말 잘 듣는 착한 아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사람들에게 화도 거의 안 내고 말썽을 부리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믿고나서 형제자매들과 만날 때도 붙임성이 좋고 포용하고 인내할 줄도...
중국 판이(凡依)2021년 2월, 저는 왕화(王華)와 함께 교회 리더로 선출되었습니다. 왕화는 이전에 리더를 맡은 적이 있고, 복음을 전한 경험도 있었기 때문에 왕화가 복음 사역을 주로 맡았고, 저는 다른 사역을 담당했습니다. 사역하면서 문제나...
스페인 리페이하나님을 믿기 전 저는 무골호인이라고 하면 성품이 온화하고 다른 사람에게 화내는 일도 없으며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학교의 교육과 사회의 영향으로 저는 “화합은 귀하고, 인내는...
리웨 자매는 설교원입니다. 저희 교회의 사역을 점검하며 평소 저희와 아주 잘 지냈습니다. 저에게 어떤 내적 상태가 있든 자매는 자신의 체험과 함께 교제해 주고 도와주었습니다. 과거 한때 저는 자매가 본분을 이행할 때 책임감이 없고, 일주일에 한 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