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심판이 최고의 구원임을 깨닫다

2026.5.29

중국 산둥 장신

1995년, 저는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설교자는 요한계시록의 예언과 결부해 거룩한 성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들려주었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천국으로 데려가기 위해 곧 이 땅에 오실 거라면서, 주님을 위해 버리고 헌신해야만 장차 거룩한 성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말에 너무나도 감격해서 그 후로 적극적으로 예배드리고 헌금했습니다. 남편과 오빠 내외가 아무리 말려도 예수님을 따르려는 제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3년 후, 제가 끝까지 주님을 믿는 걸 보고 남편은 이혼을 요구했고, 저도 수락했습니다. 그 후 저는 전 재산을 교회에 바치고, 집을 나와 주님을 위해 전도하고 사역하기로 단단히 결심했습니다. 두 달 뒤 저는 70여 개 교회를 책임지는 사역자가 되었습니다. 2000년이 되었을 때, 리더가 사역자 모임에서 저희에게 말했습니다. “최근에 하나님께서 다시 육신을 입고 돌아오셨다고 주장하는 ‘동방번개’라는 교파가 등장했어요.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분이 새로운 단계의 사역을 하신다고 하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죠! 그들은 성경조차 보지 않아요.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성경에 있고, 성경 외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니 성경을 떠나면 주님을 믿는 게 아니에요! 그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전도하면서 각 종교와 교파에서 좋은 양들을 많이 훔쳐 갔어요. 우리는 주님의 충성스러운 종이 돼서 형제자매들을 잘 지켜야 해요. 그래야 나중에 주님 앞에서 할 말이 있죠! ‘동방번개’의 도는 절대 믿으면 안 돼요. 그랬다가는 주님의 도를 떠나 주님께 버림받는 자가 되고 맙니다!” 리더의 말을 듣고 저는 속으로 ‘조심해야겠어. 주님의 도를 굳게 지켜서 양들을 잘 보호해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저는 교회를 봉쇄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맡고 있는 예배 장소는 어디든 낯선 사람을 들이지 말고, ‘동방번개’의 도를 믿어서는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지요. 교인들도 그 말을 듣고 ‘동방번개’ 사람들을 경계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자매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받아들였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저는 곧장 자매들의 집으로 달려가 마음을 돌리려고 설득했습니다. 하지만 자매들은 제 말을 듣지 않고 계속해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겠다고 고집했습니다. 몹시 화가 난 저는 다른 형제자매들을 더욱 엄격하게 단속했습니다. 그 후, 한 부부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받아들였다는 것을 알고 황급히 그 부부의 집을 찾아가 그들을 다시 데려왔습니다. 그때는 제가 결국 주님의 양을 구해 냈으니, 주님께서 틀림없이 제가 한 일을 칭찬하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002년 2월, 저는 한 자매의 초대로 그녀의 집에서 친척들과 함께 성경을 탐구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일부터 여호와 하나님의 율법시대 사역, 예수님의 은혜시대 사역에 이르기까지 각 단계 사역의 배경과 전환점을 아주 명확하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축복하시고 어떤 사람을 저주하시는지 등에 대해서도 무척 명쾌하게 교제해 주었습니다. 모두 처음 들어보는 내용들이었는데, 정말 훌륭한 도 같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저에게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증거해 주었습니다.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형제자매들의 교제를 들으면서, 성경은 단지 하나님께서 율법시대와 은혜시대에 하신 사역만을 기록한 역사책일 뿐 하나님의 모든 사역을 대표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오래됨이 없이 늘 새로우시고, 하나님의 사역은 계속 앞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말세에 하나님께서 다시 오셔서 성경을 뛰어넘어 새로운 사역을 하려 하십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께서 하신 구속 사역의 기초 위에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는 사역을 한 단계 더 하심으로써, 인류를 죄에서 완전히 구원해서 아름다운 종착지로 이끌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진리를 선포하시고 말세 심판 사역을 하셔서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예언을 정확히 성취하셨습니다.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요 12:48),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요 16:12~13) 특히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성경의 모든 비밀을 열어 주신 것과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이 바로 요한계시록에 예언된 ‘어린양이 펼친 작은 두루마리’이자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하시는 말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그제야 전 제가 줄곧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던 ‘동방번개’가 바로 예수님께서 말세에 나타나 하시는 사역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러고 나니 가슴속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괴로움이 몰려왔습니다. 주님을 믿은 이후로 남편의 핍박을 이겨 내고 가난한 과부처럼 봉헌하며,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위해 사역했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나름대로 주님의 도에서 흔들리지 않고 충성스럽게 주님의 양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저는 주님께서 돌아오셨는데 구하기는커녕, 무조건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여 오실 리 없다’, ‘하나님의 사역이 성경을 뛰어넘을 리 없다’는 등의 관념과 상상만 고집했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교만하게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정죄하고 대적했으며, 교회를 봉쇄하여 형제자매들이 참도를 알아보지 못하게 가로막았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이미 받아들인 부부마저 종교계 종파로 다시 끌고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을 이렇게 꾸짖으셨습니다. “위선적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에게 화가 있으리라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천국 문을 닫고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는 사람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마 23:13) 제 행동이 바리새인과 똑같지 않습니까? 자기가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신도들이 받아들이는 것까지 극구 가로막다니, 사람들을 지옥으로 끌고 간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많은 악을 저질렀으니 저 역시 화를 당할 대상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마음속 깊이 후회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저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과 긍휼임을 생각했습니다. 저는 복음을 전해 과오를 만회해야 했습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제가 복음을 많이 전하는 것을 보시고 제 과오를 기억하지 않으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저는 한 자매와 함께, 저한테 교란당해 다시 끌려왔던 그 부부에게 복음을 전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아무리 이야기해도 그들은 듣지 않았고, 오히려 제가 교회를 봉쇄할 때 그들에게 했던 말로 되받아쳤습니다. 저는 마음이 더욱 괴로웠고, 뼈저리게 후회했습니다. 과오를 만회하기 위해 저는 복음을 더 많이 전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고생도 많이 했지만 물러서지 않고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내 충성심과 회개하는 모습을 보시고 내 과오를 묻지 않으실지도 몰라. 그리고 구원받을 기회를 주실 수도 있고.’

2004년 어느 날, 저는 묵상 시간에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예전에 나를 핍박하고 나에 대해 알지 못하며(내 이름을 증거하기 이전도 포함) 나를 사람으로 여긴 자, 또한 나를 모독하고 비방한 자들을 나는 단 한 명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설령 그들이 현재 누구보다 나를 힘 있게 증거한다고 해도 안 된다. 예전에 나를 핍박한 것은 나를 위해 봉사한 것이므로 오늘날 나를 증거한다고 해도 여전히 나의 도구에 불과하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그리스도의 최초의 말씀ㆍ제85편>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다 보고 나서, 순간 저는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고, 머릿속도 하얘졌습니다. 한참 지나서야 겨우 정신을 차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과거에 하나님을 핍박하고 비방했던 사람은 하나님께서 단 한 명도 용서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이제 와서 하나님을 증거한다 해도 하나님께 용서받지 못하고 그저 하나님을 위해 봉사할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에 제가 관념과 상상만 고집하면서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구하거나 알아보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을 비방하고 대적했던 일, 교회를 봉쇄해 신도들이 참도를 알아보지 못하게 가로막는 것도 모자라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이미 받아들인 사람들까지 종파로 다시 끌고 왔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이렇게 큰 악을 저질렀으니 하나님께서는 분명 저를 용서하지 않으실 텐데, 그럼 전 끝난 게 아닐까요? 저한테 무슨 좋은 결말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저는 그래도 요행을 바라며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내가 잘못 이해한 건 아닐까? 하나님께서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신 건 이미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사역을 알고 난 뒤에도 하나님을 모독하고 비방한 사람들을 두고 하신 말씀이 아닐까?’ 저는 다급히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한 글자 한 글자 읽어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아주 분명했습니다. 말씀이 가리키는 대상에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본 적이 없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면서 모독하고 비방한 사람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제야 저는 제가 바로 하나님께 용서받지 못할 사람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제 마음을 치는 하나님의 준엄한 말씀에 저는 두렵고 무서워 온몸에 힘이 쫙 빠졌습니다. ‘아무래도 나한텐 회개할 기회조차 없는 거 같아. 본분을 이행할 때 아무리 순종하고, 아무리 고생해도, 또 아무리 힘 있게 증거한다 한들 하나님께 용서받지 못할 테니, 구원받을 희망이 전혀 없어.’ 그 당시 저는 복음을 전하고는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저를 구원하지 않으실 거라는 생각만 하면 마음이 몹시 의기소침해져서, 예전처럼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하지 못했습니다. 한번은 자전거를 끌고 거리를 걸어가다가 오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사람들은 다 자기 집이 있는데, 나는 뭐지? 주님을 처음 믿었을 때는 교회를 내 집처럼 생각했는데, 주님의 재림을 알지 못해 주님을 대적하고 용서받지 못할 과오를 저지를 줄이야.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해 예비하신 집, 하나님 나라에 나는 아무런 상관도 분깃도 없게 됐구나.’ 그 순간 너무 처량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어느 날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마음에 큰 감동을 받았고, 의기소침했던 내적 상태가 조금 바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피조물로서 마땅히 피조물의 본분을 다해야 한다. 양심을 거스르며 일하지 마라. 네가 해야 할 일은 창조주를 위해 자신을 바치는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모압의 후손을 구원하는 의의> 중에서) 저는 피조된 인간입니다.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 저의 본분입니다. 좋은 결말이 없다고 해서 제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양심과 이성이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후로 저는 계속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복음 전도에 성과가 있을 때는 기쁘기도 했지만, 늘 마음속 깊은 곳은 조금 무거웠습니다. 남들과 달리 제게는 과오가 있어서 남들은 복음을 전하면 하나님께 칭찬받고 구원의 희망이 있지만, 저는 아무리 전도해도 하나님께 용서받지 못할 거라 생각하니 시도 때도 없이 의기소침해졌습니다.

그 후,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제 내적 상태에 대해 약간의 인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따르지만 오로지 자신이 어떻게 해야 복을 받을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재난을 피할 수 있을지에만 관심을 갖는다. 하나님의 사역과 경영을 언급하면 그들은 입을 다물고 아무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이런 지루한 문제를 이해한다고 해서 자신의 생명이 성장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에게 어떤 이득이 있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경영에 관한 메시지를 들어도 건성으로 대할 뿐 보배로 여겨 받아들이지 않으며 더욱이 생명의 일부로 삼아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들이 하나님을 따르는 목적은 아주 간단하다. 그들의 목표는 오직 하나, 복을 받는 것이다. 그 외에 그들의 목표와 전혀 무관한 일은 귀찮아하며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어 복을 받는 것이 가장 정당한 목적이며, 또 자신들이 하나님을 믿는 가치가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면 그 어떤 것도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현재 하나님을 믿는 많은 사람의 상태가 이렇다. 그들의 목적과 속마음은 얼핏 들으면 아주 정당한 것 같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헌신하고 희생하고 본분을 이행하고 있으며, 청춘을 바치고 가정과 직장을 버리고, 심지어 오랫동안 외지에 나가 동분서주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궁극적인 목적을 위해 자신의 취미도 인생관도 바꾸고, 심지어는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까지 바꾸지만, 하나님을 믿는 목적은 바꾸지 못한다. 그들은 모두 자신들의 꿈을 경영하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으며, 그 길이 얼마나 멀든, 얼마나 많은 위험과 어려움이 있든,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죽음까지 불사한다. 어떤 힘이 그들을 그토록 끊임없이 바치게 하는 것이겠느냐? 그들의 양심이겠느냐? 그들의 위대하고 고상한 인격이겠느냐? 사악한 세력과 끝까지 맞서겠다는 결심이겠느냐? 대가를 바라지 않고 하나님을 증거하려는 그들의 믿음이겠느냐?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치려는 충성심이겠느냐? 아니면 단 한 번도 사적으로 무언가를 바란 적이 없는 그들의 희생정신이겠느냐? 하나님의 경영 사역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그토록 많은 심혈을 쏟아붓고 대가를 치를 수 있다니, 그야말로 대단한 기적이다!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바쳤는지는 차치하자. 그들의 행위만 해도 자세히 해부해 볼 가치가 있다.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그토록 많은 대가를 치를 수 있다니, 거기에 사람과 밀접한 이익 외에 또 다른 이유가 있겠느냐? 여기까지 말하다 보니, 우리는 지금껏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던 문제를 발견하게 된다. 즉,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는 노골적인 이익 관계, 그러니까 복을 받는 자와 복을 베푸는 자의 관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이는 피고용인과 고용인의 관계다. 피고용인의 수고는 오직 고용인이 주는 품삯을 받기 위함이다. 이런 이익 관계에는 애정은 없고 거래만 있으며, 사랑을 주고받는 것은 없고 베풂과 연민만 있다. 또 이해는 없고 어쩔 수 없이 참는 것과 기만하는 것만 있으며, 친밀한 관계는 없고 영원히 넘을 수 없는 깊은 골만 있다. 상황이 이미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누가 이 흐름을 되돌릴 수 있겠느냐? 또 이런 관계가 위험하다는 것을 진정으로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 확신컨대, 모두가 복을 받는 기쁨에 도취되어 있을 때,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가 이처럼 난감하고 차마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깨달은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부록 3 사람은 하나님의 경영 안에 있어야 구원받을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나니 마음이 분명해지면서도 부끄러웠습니다. 하나님과 저의 관계는 하나님께서 폭로하신 대로 철저한 이익 관계였습니다. 주님을 믿을 때는 복을 받고 천국에 가기 위해 핍박을 견디고 가정을 버렸습니다. 혹한이나 무더위 속에서도 아무리 고생스러워도 꿋꿋이 교회를 이끌고 복음을 전했지요. 하지만 하나님의 말세 사역 앞에서는 구하고 알아보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정죄하고 대적했으며, 심지어 교회를 봉쇄하여 신도들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가로막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인 후, 제가 악을 행하며 하나님을 대적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어떻게 하나님께 회개할지 생각한 것이 아니라, 복음을 더 많이 전해 과오를 만회해서 하나님의 긍휼을 얻어 내고 하나님께서 제게 천국에 들어갈 기회를 주시기만을 바랐습니다. 과거에 하나님을 모독하고 비방했던 사람을 하나님께서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신 말씀을 보았을 때는, 제가 본분을 아무리 열심히 이행해도 하나님께 용서받지 못할 것이고 구원받을 희망도 없을 거라는 생각에 본분을 소극적이고 수동적으로 이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제 머릿속에는 오로지 복받을 생각뿐이었습니다. 제가 버리고 헌신하며 고생하고 사역한 것은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 알기를 추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대가로 천국에 가는 복을 얻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폭로하신 ‘어쩔 수 없이 참는 것과 기만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저는 하나님의 뜻을 구해 본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가 무엇을 추구하기를 바라시는지, 제게 무엇을 요구하시는지,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려야 하는지, 어떻게 진리를 추구하여 성품 변화에 이르러야 하는지는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제 머릿속에서 하나님을 믿으며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부수적인 일인 것 같았고, 복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인 일이었습니다. 저는 정말 복을 받으려는 욕망에 눈이 멀어 줄곧 잘못된 길을 걷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이 떠올랐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역하실 때 그는 듣지도, 구하지도 않고 오히려 주 예수님을 정죄하고 대적했으며, 예수님의 제자들을 쫓아가 죽이는 등 수많은 악을 저질렀습니다. 주님께 치심을 당한 후에도, 그는 과거에 하나님을 대적했던 자신의 행동과 본질을 조금도 반성하지 않았고 주님 알기를 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복음을 전해 더 많은 사람을 얻어서 그 공으로 본인의 죄를 만회하려고만 했고, 사역을 많이 하고 나서는 노골적으로 하나님께 면류관을 요구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딤후 4:7~8) 제가 버리고 헌신하며 본분을 이행한 것 역시 하나님께 복을 요구하기 위함이었으니, 제가 걸었던 길이 바로 바울의 길이었습니다. 저는 너무 후회되고 자책감이 들어, 울면서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제가 너무나도 비열하고 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오랫동안 복음을 전하고 본분을 이행했지만, 사실은 본분 이행을 빌미로 복을 받으려는 목적을 이루려 한 것이었습니다. 전 정말 하나님 앞에 살 자격이 없습니다. 하나님, 제가 성품 변화를 추구하고 하나님 알기를 추구하도록 저를 인도해 주십시오.”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어느 정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너희를 심판하고 형벌하고 또 정죄하지만, 정죄는 너희 스스로를 인식하게 하기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정죄하고 저주하고 심판하고 형벌하는 것 모두 너 자신을 알게 하고 너의 성품을 변화시키기 위함이며, 더욱이 너의 몸값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하나님이 행하는 모든 일은 공의롭고 그의 성품에 따라 한 것이며, 그의 사역의 필요에 따라 한 것이자 사람을 구원하는 그의 계획에 따라 한 것임을 보게 하려는 것이다. 그는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을 구원할 뿐만 아니라 사람을 심판하고 형벌하는 공의로운 하나님이다. 네가 만약 자신의 지위가 낮다는 것과 자신이 패괴되었고 패역하다는 것만 알 뿐, 하나님이 오늘날 너에게 하는 심판과 형벌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을 나타내려 한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너는 체험할 수 없고 계속 나아갈 수도 없다. 하나님은 사람을 치거나 멸망시키려고 온 것이 아니라 심판하고 저주하고 형벌하고 구원하러 온 것이다. 6천 년 경륜이 끝나기 전, 즉 각 부류 사람들의 결말을 드러내기 전에, 하나님이 땅에 와서 하는 사역은 모두 구원을 위한 것이며,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철저히 온전케 하여 그의 권세 아래로 돌아와 복종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 하나님이 땅에 와서 사역을 하는 것은 패괴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여기에는 조금의 거짓도 없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은 절대로 친히 사역을 하지 않을 것이다. 과거의 구원 방식은 하나님이 모든 긍휼과 자비를 다 베풀고 자신의 전부를 사탄에게 넘겨주면서까지 전 인류를 맞바꾸는 것이었다. 지금은 과거와 다르다. 지금은 너희를 구원함에 있어 각기 부류대로 나누는 마지막 때이므로 긍휼과 자비가 아닌 형벌과 심판의 방식으로 더 철저하게 인류를 구원한다. 따라서 너희는 형벌, 심판, 무자비한 매질만 받게 된다. 하지만 너희는 그 무자비한 매질 속에 징벌은 전혀 들어 있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말씀이 아무리 엄할지라도 너희에게 임하는 것은 그저 무정해 보이는 몇 마디 말일 뿐이며, 나의 분노가 아무리 클지라도 너희에게 임하는 것은 여전히 꾸짖는 말일 뿐, 너희를 해치려는 뜻도, 너희를 사지로 몰아넣으려는 뜻도 전혀 없다. 이 모든 것은 사실이 아니냐? 너희도 알다시피, 지금의 공의로운 심판이나 무자비한 연단과 형벌은 모두 구원을 위한 것이고, 지금 각기 부류대로 나누려고 하든 아니면 각 부류의 사람을 드러내려고 하든, 모든 말씀과 사역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공의로운 심판은 사람을 정결케 하기 위한 것이고, 무자비한 연단도 사람을 정결케 하기 위한 것이며, 엄한 말씀이나 채찍질은 모두 정결케 하고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지위의 복을 내려놓고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한다> 중에서), 『하나님이 이번에 사역하러 온 것은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최대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다. 과오 없는 사람이 없는데 만약 모두 죽인다면 그게 구원이겠느냐? 사람은 일부 과오는 고의로 저지르고 일부 과오는 자기도 모르게 저지른다. 자기도 어쩔 수 없는 일에서 네가 인식하고 나서 변화할 수 있다면 하나님이 네 변화를 기다리지 않고 너를 죽여 버리겠느냐? 하나님이 이런 식으로 사람을 구원하겠느냐? 그렇지 않다! 네가 패역 성품이 있든 자신도 어쩔 수 없든, 기억해라.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하며 서둘러 돌아서서 힘을 다해 진리에 공을 들여야 하고, 어떤 상황이 나타나든 자포자기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하는 것은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이다. 하나님은 구원하려는 사람을 아무렇게나 죽이지 않는다. 이는 분명하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하신 말씀은 심판이든 정죄이든 저주이든 모두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의 패괴 성품과 신앙의 불순물,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신의 본질, 공의로우며 위엄 있고 거스를 수 없는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게 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기게 하고, 이로써 그릇된 속셈을 내려놓고, 사탄의 패괴 성품을 벗어 버려 하나님의 구원을 얻게 하려는 것이지요. 저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사역도 알지 못한 채, 교만한 성품에 따라 하나님을 대적했습니다. 하나님나라 복음이 우리 교파에 전해졌을 때, 저는 구하거나 알아보지는 않고 오히려 신도들이 알아보는 것을 교란하고 가로막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이런 행동을 심판하고 정죄하신 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완전히 나타내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심판하고 정죄하시는 것이 제 결말을 규정짓는 것은 아니며, 더욱이 저를 사지로 몰아넣으려 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며 위엄 있고 사람이 거스를 수 없는 하나님의 성품을 제가 인식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갖게 하시려는 것이었고, 또한 제 행동의 성질을 인식해서 실패의 근원을 반성하고 회개하며 변화할 수 있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방식으로 저를 정결케 하고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시든, 그것은 다 제가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한 사탄 성품을 반성하고 인식하여 회개하고 변화할 수 있기를 바라시며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하는 것은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이다. 하나님은 구원하려는 사람을 아무렇게나 죽이지 않는다. 이는 분명하다.” 저는 하나님의 사역을 성경 안으로만 규정짓고는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정죄하며 대적했고, 심지어 신도들이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가로막았습니다. 이를 통해 제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조금도 없었고, 성품도 몹시 교만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나 겸손한 마음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많은 악을 저질렀으니 응당 하나님의 저주와 징벌을 받았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저의 악행대로 저를 대하지 않으시고, 형제자매들의 복음 전도를 통해 저를 그분 앞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정죄, 폭로 속에서 저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하게 하셨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이런 심판이 없었다면, 저는 평생 하나님을 믿어도 저 자신을 반성하거나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고, 저의 교만한 본성도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바치고 헌신한 것이 복을 받기 위해서였다는 것도 모른 채, 계속해서 잘못된 길을 걸으면서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며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다가 결국엔 하나님께 버림받고 도태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이 저를 구원했고, 그 덕분에 저 자신을 인식하고 하나님께 회개할 기회가 비로소 제게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저를 심판하기만 하셨을 뿐 징벌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제가 그렇게 많은 하나님 말씀의 공급을 누리게 하셔서 많은 진리를 깨닫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너무나도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 설령 힘쓰는 자가 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은총이자 높여 주심이니, 장차 좋은 결말과 종착지가 없다 해도 저는 제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것입니다. 다행히도 제가 창조주 앞에 나아와 창조주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으니 인생을 헛되이 살지는 않았습니다. 앞으로의 결말이 어떻든 저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 후, 저는 하나님의 말씀들을 보면서 저의 과오를 올바르게 대할 수 있게 되었고, 실행의 길도 한층 더 분명해졌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과거의 과오를 기억하든 안 하든, 지금 너희에게 일말의 희망이라도 있다면, 어떤 마음가짐을 지녀야 하겠느냐? ‘나는 성품 변화를 추구하고 하나님 알아 가기를 추구해야 해. 더 이상 사탄에게 속지 않으며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짓을 해서는 안 돼.’ 요즘 사람은 너무 깊이 패괴되어 가치가 별로 없다.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는지, 희망이 있는지 여부를 결정하는 관건은 무엇이겠느냐? 네가 설교를 듣고 진리를 이해할 수 있는지, 진리를 실행할 수 있는지, 변화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이것이 관건이다. 네가 그저 뉘우치기만 하고 정작 일을 할 때는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여전히 낡은 방식이라면, 진리를 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낡은 관점, 방법, 규례를 고수한다면,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나쁜 쪽으로 변해 자신의 낡은 길을 고수한다면 너라는 사람은 희망이 없고 폐기되어야 할 것이다. 네가 하나님을 더 많이 알고 자신을 더 깊이 알수록 자신이 악을 행하지 않고 죄를 짓지 않도록 통제할 수 있다. 자신의 본성을 철저히 알수록 자신을 지킬 수 있고, 경험과 교훈을 종합한 후에는 다시는 실패하지 않게 될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사람이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해결하려면, 한 측면으로는 자신의 패괴 성품을 인식하고 자신이 저지른 잘못과 자신이 걸어온 굽은 길, 또는 자신의 과오와 과실을 해부하고 인식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본성을 정확히 알고 인식할 수 있다. 또한, 사람이 왜 잘못된 길을 가고 진리 원칙에 위배되는 일을 많이 저지르는지, 그런 일을 저지르는 성질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이 밖에도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요구가 과연 무엇인지, 사람은 왜 항상 하나님의 요구대로 행동하지 못하는지, 왜 늘 하나님 뜻을 어기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지 알아야 한다. 이런 것들을 하나님 앞에 가져와서 기도하고, 분명히 인식하면 자신의 내적 상태를 바로잡을 수 있고, 자신의 마음가짐을 바꿀 수 있으며,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오해를 해결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든 부정한 속셈을 품고, 허튼 생각을 하기 일쑤다. 그는 자기 내적 상태의 옳고 그름을 성찰하지 않고, 또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분별해 보지도 않는다. 이런 사람이 바로 바보다. 바보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바로 일을 잘못해서 책망과 훈계를 받으면 계속해서 소극적이 되고, 심지어 자포자기해서 자기는 끝났으니 구원을 못 받는다고 단정 짓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보의 가장 가련한 모습이 아니겠느냐? 바보는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스스로를 반성할 줄 모르고, 어려움을 만나도 진리를 구해 문제를 해결할 줄 모른다. 여간 어리석은 게 아니지 않으냐? 자포자기하면 문제가 해결되느냐? 소극적인 상태에서 발버둥친다고 문제가 해결되느냐? 사람은 잘못을 저지르거나 문제가 생기면 진리를 구해 해결해야 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자신이 무엇 때문에 악행을 저질렀는지, 악을 행한 의도와 출발점은 무엇인지, 왜 그렇게 하려고 했는지, 어떤 목적을 이루려고 했는지, 누가 자신을 선동하고 부추기고 미혹해서 그렇게 한 것인지, 아니면 자기 자신이 의식적으로 그렇게 한 것인지 이런 문제들을 반드시 돌아보고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알 수 있다. 자신이 악을 행한 본질을 인식하지 못하고 거기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이 문제는 해결할 방법이 없다. 많은 사람이 나쁜 짓을 저지르고도 끝내 자신을 반성하지 않고 인식하지 않는데, 그런 사람이 진실로 회개할 수 있겠느냐? 구원받을 희망이 있겠느냐? 사람은 본래 사탄의 후예로서, 하나님 성품을 거스른 적이 있건 없건 본성 본질은 똑같다. 자신을 많이 반성하고 인식해야 하며, 자신이 어느 정도까지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했는지, 또 진리를 받아들이고 실행할 수 있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이런 것들을 파악하고 나면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사람인지 알게 될 것이다. 사실, 패괴된 인류는 그 본성 본질을 놓고 볼 때 아주 위험하다. 진리를 받아들이기가 정말 버겁고, 쉽지 않은 일이다. 악행을 저질러서 본성 본질이 드러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당장에는 악행을 저지르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고 그 사람이 남보다 낫다고 할 수도 없는데, 단지 상황이나 기회를 만나지 못해서 악행을 저지르지 못했을 뿐이다. 네가 그런 과오를 범했다면, 지금 지녀야 할 태도는 무엇이고 하나님 앞에 털어놔야 할 것은 무엇인지, 하나님이 보려는 것은 무엇인지 등을 마음속으로 반드시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반드시 기도하고 구함으로써 이러한 일들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추구해야 할지 알 수 있고, 더는 과거에 저질렀던 그 잘못들에 영향과 속박을 받지 않게 된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을 걸어가고, 이행해야 할 본분을 이행하며 더는 자포자기하지 말고 소극적인 상태와 오해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 한편으로는 지금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과거의 과오와 과실을 메우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소극적인 면에 해당하므로 그다지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네가 최소한으로 갖춰야 할 마음가짐이다. 또 한편으로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온 힘을 다해 이행해야 할 본분을 잘 이행하고, 자기의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 이는 피조물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네가 하나님에 대해 어떤 관념을 품었든, 혹은 패괴 성품을 드러내거나 하나님 성품을 거슬렀든 모두 자신을 반성하고 진리를 구해 해결해야 한다. 실패에서 교훈을 얻고, 부정적인 그늘에서 완전히 빠져나와야 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추구해야 하나님에 대한 관념과 오해를 해결할 수 있다> 중에서)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제 과오를 기억하시든 기억하지 않으시든, 저를 용서하시든 용서하지 않으시든, 구원받을 일말의 희망이라도 있다면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오직 진리를 추구하고 성품 변화를 추구할 생각만 하는 것이 올바른 길임을 깨달았습니다. 제게 과오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금 하나님께서는 저를 사탄에게 넘기지 않으셨고, 본분을 이행할 자격도 박탈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본분을 이행할 수 있는 데다가, 진리를 추구하고 성품 변화를 추구할 기회도 남아 있으니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제 과오를 기억하실지, 저를 용서하실지는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지, 제가 짐작할 일이 아닙니다. 저는 그저 진리를 추구할 생각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계속 과오에 얽매여 소극적인 내적 상태로 본분을 이행하기를 바라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제가 실패의 원인을 인식해서 회개하고 변화하게 하는 것, 더 이상 관념이나 상상으로 하나님을 규정하지 않게 하는 것, 나아가 수고하며 사역한 것을 복 받기 위한 근거로 삼지 않게 하는 것,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매사를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게 하는 것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저의 잘못된 관점도 바로잡아 주었습니다. 예전에 저는 늘 제가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본분을 이행하면 구원받을 희망이 있지만, 저는 과오가 있는 사람이기에 아무리 열심히 추구해도 힘쓰는 자일 뿐이라 구원받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이는 하나님에 대한 오해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우리는 모두 사탄에게 패괴된 인간이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본질은 다 똑같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단지 저의 경우는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는 짓을 저질러서 문제가 비교적 심각할 뿐입니다. 이는 사실입니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으며, 하나님께서 보시고자 하는 것은 저의 회개하는 태도와 실제적인 모습입니다. 저는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단 하루를 살더라도 진리를 추구하고 성품 변화를 추구하며 제 본분을 다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용서하셔도 저는 피조물이고 용서하지 않으셔도 저는 피조물입니다. 저를 힘쓰는 자가 되게 하신다 해도 저는 여전히 피조물입니다. 저는 착실하게 본분을 다하기를 원합니다.” 이것들을 깨닫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각 방면의 진리를 우리에게 다 알려 주셨으니, 오직 진리를 추구하는 것만이 가장 중요합니다. 앞으로의 결말이 어떻든, 하나님께서 저를 어떻게 대하시든, 저는 본분을 이행하면서 진리를 추구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제 생명이 되게 할 생각만 해야 합니다. 이것이 제가 추구해야 할 바입니다. 이 체험을 통해, 저는 하나님의 심판이 제게는 최고의 구원임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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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제가 교회 리더였을 때, 교만하고 독선적이고 독단적으로 모든 일을 제 마음대로 결정하려 해서 협력하던 형제가 제 통제를 받았고, 교회 사역도 방해했습니다. 리더는 제가 교만하고 독선적이며 완전히 적그리스도의 길을 걷고 있다고 폭로하고...

너무나 고통스러웠던 하나님을 오해했던 나날

네덜란드 마리사(Marissa)2017년, 저는 교회 리더로 선출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본분에서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저는 지위의 복을 탐하고 실질적인 사역은 하지 않으면서 늘 제 자질이 부족하고 업무를 모른다는 핑계를 대며...

본분을 이행하면서 늘 책임을 질까 봐 두려워하는 문제

2014년 7월, 저는 설교원으로 선출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분별력이 없어 동역자 자매를 따라 지역 리더를 고발했고, 그로 인해 사역에 혼란을 가져왔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지역 리더는 실질적인 사역을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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