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다른 사람의 문제를 감히 폭로하지 못하는가?

2025.4.14

타이완 록사나(Roxana)

학교 다닐 때, 직설적으로 말하기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그 다른 사람이 잘못하면 그걸 바로 말해서 사람들이 종종 미워하고 멀리했습니다. 저는 ‘좀 바보 같은 사람들 아닌가? 옛말에 ‘’라고 했는데, 보여도 굳이 얘기하지 않아야 사람들 사이에서 좋은 관계를 유지할 텐데. 저렇게 직설적으로 말하면 나쁜 의도가 없더라도 사람들이 반감을 품고 멀리할 텐데 친구를 사귈 수나 있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다른 사람의 문제점을 직접적으로 지적하지 않았고, 친구들은 제가 사교성이 좋고 모든 이와 잘 지낸다며 저와 친구가 되려고 했습니다. 저도 제 인성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후에도 저는 다른 형제자매님들과 같은 방법으로 어울렸고, 다른 사람의 잘못을 봐도 지적하지 않았습니다. 직접적으로 말하면 다른 사람이 곤란할 수 있는 데다가 그 사람은 제가 일부러 자신의 부족한 점을 드러내며 공격한다고 느낄 수도 있어서, 결국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해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한 번 드러나는 것을 겪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나서야 저는 그간 저의 처세가 진리를 거스르고 하나님께 대적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2015년, 저는 파트너 리란과 함께 영상을 제작했습니다. 리란은 저보다 하나님을 믿은 시간이 길었고 나이도 저보다 많았습니다. 우리는 항상 예의를 차려 서로를 대했고 마찰도 거의 없이 사이좋게 지냈습니다. 그 후 저는 책임자로 선발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형제자매들은 리란이 본분을 이행할 때 대강하고 꾀를 부리는 바람에 사역 진도가 지체된다고 말했습니다. 리란의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한 저는 파트너 자매와 상의하여 리란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리란이 반성하고 스스로 인식하며 회개하여 바뀔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파트너 자매도 동의하며 누가 리란에게 교제할지 물어봤습니다. 저는 옆에서 가만히 있으며 제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없기를 바랐습니다. 속으로 ‘내가 리란의 문제점을 지적한다면 리란은 내가 일부러 공격한다고 느끼지 않을까?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잘 지낼 수 있겠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모두 리란과 교제할 사람으로 저를 추천했습니다. 전 도망가고 싶었지만, 리란의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으면 교회의 사역에 영향을 미칠 것을 알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리란에게 갔습니다. 저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리란의 문제를 얘기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격려하면서 머릿속에서 어떤 순서로 말할지 계속 연습했습니다. 하지만 리란을 보는 순간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목구멍이 막힌 것처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온화한 말투로 리란에게 물어봤습니다. “요즘 내적 상태는 어때요? 힘든 점은 없어요? 영상 제작 속도가 왜 이렇게 느린 거죠?” 그러나 리란은 최근 아들이 공부하지 않는 일로 골치가 아픈 바람에 사역이 지체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리란이 사정이 있었다고 얘기까지 했는데, 내가 여기서 본분을 대충 이행하고 꾀를 부렸다고 말하면 리란은 내가 너무 엄격하고 자신을 공격한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우리 관계가 나빠지면 나중에 같이 지내기가 얼마나 불편하겠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저는 리란의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고 오히려 리란을 위로하는 말을 해주었으며 리란의 본분 이행 상황에 대해 간단하게 대화를 나눴습니다.

리란이 자신에 대해 참된 인식이 없는 바람에 그 후 본분을 이행할 때에도 대충했고, 제작한 영상에는 문제가 많았습니다. 저는 리란의 문제가 매우 심각해서 바뀌지 않는다면 교체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에는 반드시 리란의 문제점을 지적하겠노라 생각하며 다시 리란을 찾아가 교제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자리에 앉자,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말해야 리란이 곤란하지 않고 리란이 스스로 문제점을 깨닫게 하면서도 제가 리란을 공격하는 것처럼 보이거나 제게 편견을 가지지 않도록 할지를 고민했습니다. 고민 끝에 저는 조심스레 말을 꺼냈습니다. “왜 본분 이행할 때 항상 대충하세요?” 리란은 가끔 취향을 좇아 소설을 보느라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괴로움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는 ‘리란이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내가 여기서 리란이 본분을 이행할 때 꾀를 부렸다고 말하면 리란이 견딜 수 있을까? 그냥 말하지 말자. 어차피 리란도 본인에게 문제가 있었다고 인정했으니, 앞으로는 좀 나아지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리란에게 그녀의 내적 상태를 이해한다며 앞으로 본분을 이행할 때 조금 더 신경 써달라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그 후에도 리란은 계속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본분을 대충 이행하는 문제는 나날이 심각해졌고, 결국 교체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일이 벌어졌는데도 저는 제가 배워야 할 공과가 무엇인지 반성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을 본 후에야 제 내적 상태에 대해 약간의 인식이 생겨났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여 처신해야 한다. 이는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다. 사람됨의 원칙을 알지 못하면서 무슨 진리 실행을 운운하겠느냐? 진리 실행은 빈말을 하고 구호를 외치는 것이 아니다. 삶 속에서 어떤 일을 만나든, 그것이 사람됨의 원칙이나 일을 바라보는 관점, 본분 이행과 관련되는 문제라면 선택을 하게 된다. 이때, 진리를 구해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에서 근거와 원칙을 찾은 다음 실행의 길을 찾아야 한다. 이렇게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아무리 큰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이렇게 진리를 추구하는 것, 이것이 바로 베드로의 길, 진리를 추구하는 길을 걷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과 함께 지낼 때는 어떤 원칙을 지켜야겠느냐? 원래 네 관점은 화합은 귀하고, 인내는 고귀하다는 것이 훌륭한 처세법이라는 것이다. 남들과 두루두루 어울리면서 타인의 체면을 해치지 않고 누구에게도 미움을 사지 않으면 나중에 함께 잘 지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너는 이런 관점에 얽매여 누가 나쁜 일을 하거나 원칙을 위배하는 것을 보아도 침묵을 지키고, 남에게 미움을 사느니 차라리 교회의 사역이 손해를 입는 편을 택하며, 누구와 지내든 두루두루 어울리고, 말할 때도 인지상정과 체면을 고려해 항상 듣기 좋은 말로 상대를 기분 좋게 했다. 설령 어떤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것을 보아도 참는 쪽을 택하고, 뒤에서 말할 뿐 그를 만났을 때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해치지 않고 관계를 유지했다. 이런 처신이 어떠하냐? 이는 무골호인이 아니냐? 너무 교활하지 않으냐? 이는 사람됨의 원칙에 어긋난 것이다. 이런 식의 처신이 비천하지 않으냐? 이런 자는 좋은 사람이 아니며, 이런 처신은 귀하지 않다.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고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렀든, 사람답게 처신하는 측면에서 원칙이 없다면 너는 사람됨에 있어 실패한 것이고, 하나님 앞에 나아갔을 때 하나님께 인정받지도, 기억되지도, 열납되지도 않을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양심과 이성이 있어야 한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삶에서 어떤 일에 맞닥뜨리더라도 됨됨이나 어떤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과 관련된 것은 모두 진리 원칙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줄곧 다른 형제자매들의 문제를 굳이 지적하지 않으려 하면서 이런 제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과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만 지내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고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렀든, 사람답게 처신하는 측면에서 원칙이 없다면 너는 사람됨에 있어 실패한 것이고, 하나님 앞에 나아갔을 때 하나님께 인정받지도, 기억되지도, 열납되지도 않을 것이다.” 이 문장에 제 마음은 흔들렸습니다. 저는 겉으로 아무 잘못이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른 사람의 미움을 살까 봐 두려워했고, 다른 형제자매들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기 꺼렸습니다. 문제를 발견하더라도 속으로만 짜증 내고 실제로는 웃는 얼굴로 대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해결해야 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교회의 사역에 손실을 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이 교활하고 사람이 되는 데에 원칙이 없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리란의 사건에서 저는 리란이 본분을 할 때 꾀를 부리고 사역 진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너무 직설적으로 말하면 리란이 기분 나빠하며 제가 너무 엄격하다고 생각하면서 제게 편견이 생길까 두려웠고, 제 지적을 받아들이지 않은 리란이 저와 얼굴을 붉혀 나중에 같이 지내기가 곤란해질까 두려웠습니다. 저는 리란과의 관계를 지키기 위해 드러내거나 대척하는 말은 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리란의 불성실함 문제가 나날이 심각해진 후에도 저는 속으로는 화났지만, 리란과 교제할 때는 적을 만들까 두려워 리란의 문제를 지적하며 드러내지 않고, 아주 가볍게만 언급했으며, 심지어는 생각하는 바와 달리 리란을 위로해 주었습니다. 저는 이런 행동들이 모두 후회되었습니다. 책임자로서 문제를 발견한 후 드러내어 해결하지 않는다는 것은 책임지지 않는 태도이며 심각한 직무상 과실입니다. 저는 늘 사람 좋은 모습을 하며 다른 사람을 알아주고 이해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드러냄을 통해 자신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의 문제점을 보고도 이를 지적하여 도와주지 않았고, 결국 그 사람은 문제의 본질과 이로 인해 초래될 결과를 인식하지 못했으며, 생명은 손실을 보았고 교회의 사역도 지체되었습니다. 이런 저는 이기적이고 비열하며 교활한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어찌 인성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한번은 예배에서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 ‘’문제가 보여도 말하지 않아야 좋은 친구다.”, “때려도 얼굴은 때리지 말고,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라는 것을 해부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제야 다른 형제자매들의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으려고 했던 예전의 제가 이런 사상 관념의 영향을 받았음을 깨달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처세 철학 중에 “문제가 보여도 말하지 않아야 좋은 친구다.”라는 말이 있다. 좋은 친구라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상대의 문제점을 간파했어도 말해서는 안 되며, 얼굴은 때리지 말고 약점은 들추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라는 것이다. 서로 기만하고 숨기고 음모를 꾸미며, 마음속으로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분명히 알고 있음에도 솔직히 말하지 않고, 교활한 수법으로 그 관계를 지키는 것이다. 왜 그런 관계를 지키려 하겠느냐? 이 사회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적을 만들어 자신이 수시로 위험한 상황에 처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상대의 단점을 들추거나 상대에게 상처를 주면 상대가 너의 원수가 되어 너에게 해악을 끼칠 것을 알고, 너 스스로도 그런 상황에 처하는 것을 원치 않기에 “때려도 얼굴은 때리지 말고,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라는 처세 철학을 취하는 것이다. 이 점으로부터 봤을 때 이런 관계의 두 사람을 진정한 친구라고 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진정한 친구라고 할 수 없다. 마음을 나눈 사이는 더더욱 아니다. 그럼 이들은 과연 어떤 관계겠느냐? 기본적인 인간관계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런 인간관계에서는 서로 마음을 나눌 수 없고, 깊이 사귈 수 없으며,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도 없다. 또 자신의 마음에 있는 말, 자신이 본 상대의 문제점, 상대에게 도움이 되는 말을 할 수도 없다. 상대의 비위를 맞추려고 그저 듣기 좋은 말만 찾아서 한다. 다른 사람들의 적의를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감히 참말을 하지 못하고 원칙도 견지하지 못한다. 아무도 자신을 위협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평안하게 살 수 있지 않겠느냐? “때려도 얼굴은 때리지 말고,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라는 말을 제창하는 이유는 이런 것 때문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는 남에 대한 경계심이 들어 있는, 완곡하고 간사한 생존 방법으로, 자기 보호에 그 목적이 있다. 이런 식으로 살아가면 누구와도 마음을 나눌 수 없을 것이며, 무엇이든 말할 수 있는 친한 친구가 하나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저 피차간에 서로 경계하고 이용하며 수작을 부리고 원하는 것을 취할 뿐이다. 그렇지 않으냐? “때려도 얼굴은 때리지 말고,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라는 말의 근본적인 목적은 남의 원망을 사거나 상대와 적이 되지 않고,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음으로써 스스로를 지키려는 것이다. 이는 스스로 상처받지 않기 위한 수법이자 방식이다. 이 몇 가지 측면의 본질을 봤을 때, 사람의 덕행 중 “때려도 얼굴은 때리지 말고,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라는 요구를 고상하고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럼 이것이 사람을 어떻게 가르치느냐? 누구에게도 원한을 사거나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마지막에 상처 입는 사람은 너 자신이 된다고 말이다. 또한,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네가 친하게 지내는 친구 누구라도 상처를 주는 순간 그 관계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하는데, 그는 친하고 가까운 친구에서 네게 낯선 사람, 적으로 변할 것이다. 사람을 이렇게 가르쳐서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느냐? 설령 네가 이렇게 행동해서 적을 만들지 않고 몇 명의 원수를 줄여 사람들에게 탄복과 동조를 샀다고 할지라도, 영원히 너와 친구가 될 수 있겠느냐? 이것이 완벽하게 덕행의 기준에 도달한 것이겠느냐? 이는 기껏해야 처세 철학에 불과하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8)> 중에서) 하나님께서 “문제가 보여도 말하지 않아야 좋은 친구다.”, “때려도 얼굴은 때리지 말고,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라는 처세 철학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해부하실 때 저는 마치 하나님께서 제 앞에서 직접 저를 폭로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처세 철학으로 살아가니 제가 했던 말과 행동은 모두 스스로를 지키기 위함이었고, 어떤 사람들 사이에 있건 적을 만들지 않고 미움을 사지 않겠다는 원칙으로 사람을 대했던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학창 시절 직설적으로 말하는 친구들이 배척되는 모습을 보며 저는 사람들과 지낼 때 제가 실제로 생각하는 바를 절대 드러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문제를 봐도 굳이 이를 언급해서 미움을 사지 않아야 사람들이 저를 좋아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굳건히 설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후에도 저는 이러한 처세 철학으로 형제자매들과 지냈습니다. 사람들에게 미움받거나 좋은 관계를 깨지 않기 위해 다른 사람을 폭로하거나 미움을 사는 일에서 저는 한발 물러서 있거나 파트너 형제자매들에게 가서 얘기하게 시켰습니다. 제가 교제하러 가야 할 때에도 저는 중요하지 않은 말들로 넘어가려고 했고 결국 많은 문제가 제때 해결되지 못했습니다. 저는 “친구가 많으면 길이 많고, 원수가 많으면 벽이 많다.”, “문제가 보여도 말하지 않아야 좋은 친구다.”와 같은 처세 철학을 사람됨의 준칙으로 삼아 한 번도 다른 사람에게 제가 가진 진짜 생각을 말하지 않았으며, 결국 점점 가식적이고 교활한 사람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저는 속으로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나와 지내는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한다면 다른 사람의 동의를 얻는 것도 쉬울 것이고, 내가 원칙을 위배하는 행동이나 말을 하더라도 사람들이 저를 추궁하지 않고 제 체면을 차려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저는 사람들과 아무런 원칙도 없이 지냈습니다. 그저 우리가 모두 좋으면 좋은 것이고, 웃은 얼굴로 서로를 대하며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의 부족한 점을 드러내지 않아야 얼굴 붉히는 일도 없고, 그래야 제 지위와 이미지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건 결국 사람들의 마음을 이용하고 농락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겉으로는 제가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내며 상냥하고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이면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는 목적이 숨어있던 것이었습니다. 정말 너무 사악합니다! 리란의 일을 돌이켜보면, 전 리란이 본분을 할 때 꾀부린다는 것을 명확히 알고 있었음에도 적을 만들지 않기 위해 이를 지적하거나 리란의 문제점을 폭로하지 않아 사역 진도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처럼 저는 사람들과 지낼 때 다른 사람을 곤경에 처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교회의 사역도 지체시켰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나 일을 대할 때, 그리고 됨됨이나 일을 처리하는 데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 삼고 진리를 준칙으로 삼아야 한다고 늘 얘기하셨습니다. 하지만 실생활에서 전 사탄의 철학으로 살았고, 말과 행동이 이러한 철학에 얽매여 정상적인 교제를 통해 다른 형제자매를 도와줄 수 없었으며 리더의 책임도 다하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말해야 다른 형제자매를 육성할 수 있고, 교회의 사역을 지킬 수 있는지 고민하지 않았으며, 교회의 사역이 손해 보는 것을 보고도 마음을 거슬러 다른 사람의 환심을 사려고 했습니다. 이런 저는 교회의 이익을 희생시켜 제 이익을 지키려고 했던 것으로 너무 가식적이고 비인간적인 짓이었습니다! 계속 이렇게 하다가는 하나님께서 저를 혐오하고 증오하실 것이며 다른 형제자매들의 반감을 사고 버려질 것이 뻔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교회의 사역이 손해 입는 것을 보고도 좋은 사람이 되고자 교회의 이익을 지키지 않아 당신의 혐오를 사기에 충분했습니다. 하나님, 전 회개하고 싶습니다. 부디 제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세요. 저는 정의감이 있는 사람으로서 교회의 사역을 지키고 싶습니다.”

묵상하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또 보게 되었습니다. 『너는 일이 닥치면 처세 철학에 따라 살며 진리를 실행하지 않고, 늘 다른 사람에게 미움을 살까 두려워하면서도 하나님께 죄짓는 것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하나님 집의 이익을 희생해서라도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지키려 한다. 이렇게 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겠느냐? 인간관계는 잘 지켜 내겠지만, 하나님께 죄지어 하나님이 너를 혐오하여 버리고 너에게 노하게 된다. 어느 쪽이 더 중요하냐? 만약 느끼지 못한다면, 그건 네가 정말 어리석으며 진리를 전혀 깨닫지 못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네가 이런 식으로 하며 줄곧 깨닫지 못한다면 너무나도 위험하다. 결국 진리를 얻지 못하게 되는데, 손해를 보는 것은 너 자신이다. 네가 이 일에서 진리를 구하지 않고 실패한다면, 나중에 진리를 구할 수 있겠느냐? 만약 계속 진리를 구하지 못한다면, 그때는 손해를 입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며, 결국에는 도태될 것이다. 너에게 무골호인의 속셈과 관점이 있다면, 너는 어떤 일에서도 진리를 실행하거나 원칙을 지키지 못하고, 늘 실패하고 쓰러질 것이다. 깨닫지 못하고 시종일관 진리를 구하지도 않는다면 너는 불신파이니, 영원히 진리 생명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겠느냐? 이런 일이 닥쳤을 때 하나님께 기도하고 부르짖으며, 구원해 달라고 해야 한다. 네가 원칙을 지키고 해야 할 일을 하며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고 마땅히 지켜야 할 입장을 지킬 수 있도록, 하나님 집의 사역에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킬 수 있도록 하나님께 믿음과 힘을 더해 달라고 해야 할 것이다. 만약 네가 자신의 이익과 체면, 무골호인의 관점을 저버리고 정직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다면, 이는 사탄을 이긴 것이며 이 부분의 진리를 얻은 것이다. 언제나 사탄의 철학으로 살기를 고집하면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지키고, 진리를 실행하지 못하며, 원칙을 지킬 엄두도 내지 못한다면 다른 일에서는 진리를 실행할 수 있겠느냐? 여전히 믿음도, 힘도 없을 것이다. 언제나 진리를 구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한다면 이렇게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를 얻을 수 있겠느냐? (얻을 수 없습니다.) 진리를 얻지 못한다면 구원받을 수 있겠느냐? 구원받을 수 없다. 언제나 사탄의 철학으로 살면서 진리 실제가 전혀 없다면 절대 구원받지 못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전 깨달았습니다. 저는 사람들과 지낼 때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지키고 적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으로 지내며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지 않았습니다. 진리에 부합하지 않는 일이 발생해도 타협하거나 참았으며, 모든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스스로 안전한 상태에 놓이도록 했습니다. 제가 걸었던 길은 중용의 길이며 일을 하는 데에 있어 아무런 원칙도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말과 행동을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하여서 하라고 하셨으며,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을 싫어하며 선악이 분명한 사람이 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과 지낼 때 사람들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하며 원칙에 따라 사람들을 대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해야만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리란이 본분을 하는 행태가 사역을 지체했음에도 이를 지적하거나 폭로하려고 하지 않았고, 리란이 우는 모습을 보고는 마음을 거슬러 오히려 리란을 위로하고 달래 주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지키기 위해 사탄의 편에 서서 리란을 방임한 것이었습니다. 정말 너무 어리석은 행동이었습니다! 예전의 저는 이런 저의 처세가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실을 통해 처세 철학으로 사는 것이 올바른 길은 아니라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저는 책임자로서 미움 사길 두려워했고, 정의감이 없었으며 문제를 봐도 이를 지적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교제를 통해 해결하려고도 하지 않아, 문제는 계속 반복되었습니다. 이건 실제 사역을 하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 후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실천의 길을 찾아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고 싶다면 반드시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해야 한다. 이 기초 위에서 다른 사람과도 정상적인 관계가 맺어진다. 만약 너와 하나님 사이에 정상적인 관계가 없다면, 네가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하든, 어떻게 노력하고 힘을 쓰든, 그것은 모두 사람의 처세 철학에 속할 뿐이다. 너는 사람의 관점과 처세 철학으로 사람들 가운데서 너의 위치를 지키고 사람들의 칭찬을 들으려는 것일 뿐,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다른 이와 정상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다. 만약 네가 사람과의 관계를 중시하지 않고,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마음을 하나님께 바치길 원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법을 배운다면, 모든 사람과의 관계도 자연스럽게 정상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너와 다른 이의 관계는 육적인 것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기초 위에서 맺어진 것으로, 육적인 왕래는 거의 없으나 영적으로 교제하고 서로 사랑하고 위로하며 공급하게 된다. 이 모든 행함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만족게 하는 기초 위에서 이뤄지며, 사람의 처세 철학으로 유지되지 않고 하나님에 대한 부담을 통해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또한 인위적인 노력이 필요 없이 하나님 말씀의 원칙에 따라 실행하면 된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정상적인 대인관계는 처세 철학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한다는 기반 위에 만들어지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어떠한 일이 닥쳤을 때 진리를 실천하고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하며 교회의 사역을 지키고 형재자매의 생명에 책임감을 가지며 실천해야 정상적인 대인관계를 가질 수 있던 것입니다. 다른 형제자매의 체험 간증을 보면 그들은 다른 사람의 문제를 발견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지적하고 도움을 주었습니다. 물론, 체면을 구기게 되는 일도 있었지만, 상대방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면 이러한 교제를 통한 지적으로 자신의 부족한 점을 발견하고 패괴된 성품을 인식하면 그릇된 성품은 고쳐져서 생명에 진보가 있고 본분을 할 때 효과도 점차 더 나아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다른 사람을 향한 진실한 애정의 도움입니다. 하지만,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들은 지적이나 대응이 그들을 드러낸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진리를 싫어하고 훈계받을 때면 교활하게 얘기하고 반발하며 조금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진정한 형제자매가 아니므로 반드시 인연을 끊고 멀리해야 합니다. 여기까지 깨닫자, 하나님의 말씀이야말로 우리의 사람 됨됨이나 일을 처리하는 데에 마땅히 가져야 하는 원칙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람을 대해야 한다는 것을 더욱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해야 제대로 된 사람이 되는 것이고 정상적인 성품의 기준에 부합하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자매가 교만하고 독선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지 않고 마음대로 일을 처리해서 사역을 지체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자매에게는 문제를 지적해 주는 교제를 하여 스스로 깨닫고 반성하게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조금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 자매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떡하지? 나에게 편견이 생겨서 내가 그 자매를 공격했다고 생각하진 않을까?’ 그러다 과거 저의 실패와 앞서 봤던 하나님의 말씀이 떠오르자 이런 생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만약 제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지키는 것만 생각하면서 교회의 사역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는 하나님의 미움을 사는 일이었습니다.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은 저의 태도와 제가 회개하고 바뀌었는지를 보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이번에는 예전처럼 다른 사람을 대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이런 일이 닥쳤을 때 하나님께 기도하고 부르짖으며, 구원해 달라고 해야 한다. 네가 원칙을 지키고 해야 할 일을 하며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고 마땅히 지켜야 할 입장을 지킬 수 있도록, 하나님 집의 사역에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킬 수 있도록 하나님께 믿음과 힘을 더해 달라고 해야 할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께서는 마치 제 곁에 계시면서 제가 이 한 발짝을 내디딜 수 있도록 격려해 주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게 자신감과 힘을 주시고 진리를 실천하며 교회의 사역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지키기 위해 미움 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드렸습니다. 기도를 마친 후 저는 그 자매를 찾아갔습니다. 그간 자매가 해온 본분을 바탕으로 그녀의 문제점을 드러냈고, 그 자매가 교만하고 독선적이며 다른 형제자매의 의견을 듣지 않는데, 이는 진리를 싫어하는 것이고 사탄의 성품이라 바뀌지 않는다면 교회의 사역을 계속 방해하게 되어 교체할 것이라고 얘기했습니다. 얘기를 마친 후 저는 예전처럼 상대방이 나를 싫어하지 않을지 두렵지 않았고 오히려 마음이 가볍고 편안했습니다.

그동안 저는 사탄의 처세 철학으로 살아오며 다른 사람들의 미움을 받길 두려워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분쟁이나 마찰이 생기거나 다른 사람들과 지낼 때 그들의 체면을 생각하며 관계를 지키려고만 했습니다. 그러면서 진리를 실천할 많은 기회를 놓쳤습니다. 이제 다른 사람을 지적하고 드러내야 하는 문제 앞에서 저는 아직 조금 두렵긴 하지만, 의식적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려 제 마음을 다잡고 원칙에 따라 실천하도록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체험으로 제 그릇된 생각을 바로잡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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