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일함을 추구하다가 자신을 망칠 뻔했다
한국 바이쉐(白雪)2019년, 교회에서 영상 제작하는 일과 교회 리더를 동시에 맡은 저는 본분을 꼭 제대로 이행하리라 다짐했습니다. 그 후 저는 본분에 전념하면서 파트너 자매에게 교회 사역을 하는 방법도 배웠습니다. 평소 크고 작은 예배에 가급적...
2021년 11월, 저는 교회 리더로 선발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이 본분을 이행하면 진리로 문제를 해결하는 훈련을 할 수 있고 생명 성장도 빠를 것이라는 생각에 비록 제가 부족한 점은 많지만 기꺼이 받아들이고 순종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얼마간 훈련을 하고 나니 교회 리더가 책임져야 할 사역 항목이 매우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교회 생활과 양육 사역, 복음 사역을 잘 챙겨야 할 뿐만 아니라 문서 사역과 교회 정리 등 여러 사역도 협조해야 했습니다. 일주일 내내 저는 거의 매일 각 예배 장소에서 형제자매들과 교제하며 내적 상태를 해결해 주고, 여러 사역을 안배하고 이행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습니다. 저녁에 집에 돌아와서도 편지들을 처리해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본분이 너무 힘들게 느껴졌고, 언제쯤 한가해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몸이 힘든 것은 그렇다 쳐도, 사역에는 온갖 어려움과 문제가 존재했고, 사역으로 인한 스트레스까지 감당해야 했습니다. 당시 파트너 자매는 가정에 크게 얽매여 저와 함께 처리할 수 없는 사역이 많았고, 저는 혼자서 이것저것 다 감당하기가 벅찼습니다. 점차 복음 사역자, 양육자, 그리고 문서 사역 담당 형제자매까지 다들 리더를 만날 수 없어 사역을 소통할 수 없다며 저에게 불만이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역을 두루 잘 챙기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력을 쏟아야 할지 생각하니, 단일 항목의 본분을 이행하는 형제자매들이 정말 부러웠습니다. 그렇게 피곤하지도 않고 신경도 그렇게 많이 쓰지 않아도 되니까요. 이렇게 생각하다 보니 본분을 이행하는 데 있어 처음의 적극성이 사라져서, 때로는 윗선 리더가 사역 실행 상황을 보고하라고 해도 적극적으로 답하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윗선 리더로부터 어떤 사역에 기술 인력이 필요한데, 기본적인 컴퓨터 능력과 심미안을 갖추어야 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저는 속으로 솔깃했습니다. ‘예전에 영상을 제작해 본 경험이 있으니 기본적인 컴퓨터 능력은 좀 있고, 단일 항목의 본분을 이행하면 한 가지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잖아. 새로운 것을 배울 수도 있고, 리더처럼 힘들거나 신경 쓸 일도 많지 않을 거야.’ 저는 윗선 리더에게 제 자질과 사역 능력이 부족해 리더 본분에 적합하지 않다고 편지를 쓸 작정이었습니다. 바로 그때, 제 내적 상태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전에 영상을 제작하다가 어려움을 만났을 때, 저는 대가를 치르며 업무를 파고들지 않고, 다른 본분은 업무에 대한 요구가 까다롭지 않은 것을 보고는 리더에게 본분을 바꿔 달라고 신청했습니다. 본분을 바꾼 후 처음에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어 사역에 성과가 보이자 의욕적으로 협력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요구 수준이 높아지고 어려움이 많아지자, 대가를 치르며 어려움을 극복하기 싫어 또 다른 본분으로 바꾸고 싶었습니다. 결국 저는 본분 이행의 성과가 좋지 않아 조정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리더 본분을 이행하다가 어려움을 만나니 또 본분을 바꾸고 싶어 하다니요. 이런 내적 상태는 이미 본분 이행에 지장을 주고 있었기에 저는 서둘러 진리를 구해 해결해야 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묵상할 때 제 상태와 딱 들어맞는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추구하지도 않는 사람이 아주 많은데, 그들은 본분 이행을 무엇으로 여기겠느냐? 일종의 일이나 취미, 흥미에 몰입하는 것으로 여길 뿐, 하나님이 맡긴 임무나 사명, 자신이 다해야 할 책임으로는 여기지 않으며, 더욱이 본분 이행 과정에서 진리나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본분을 잘 이행해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하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본분 이행 과정에서 어떤 사람은 조금만 고생해도 싫어하고 도피하려 하고, 어려움에 조금 부닥치거나 좌절을 조금 겪으면 중도에 포기하고 또 도피하려 한다. 그는 진리를 구하지 않고, 무슨 일만 생기면 등딱지 안으로 숨었다가 별일 없으면 다시 나오는 거북이처럼 그저 도피할 생각만 한다. 이런 사람이 적지 않다. 특히 사역을 하나 책임지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충성을 다할 수 있을지, 어떻게 그 본분을 잘 이행하고 그 사역을 잘 할 수 있을지 고민하지 않고, 어떻게 해야 책임을 전가할 수 있을지, 책망받거나 책임지지 않을지, 문제가 생기거나 실수했을 때 빠져나올 수 있을지만 궁리하는 사람도 있다. 그는 우선적으로 자신의 퇴로와 자신의 기호나 흥미를 충족시키는 것만 고려하지 어떻게 자신의 본분을 잘 이행하고 충성을 다할지는 고려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이 진리를 얻을 수 있겠느냐? 그는 진리에 공을 들이지 않고 본분을 이행할 때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그는 오늘은 이걸, 내일은 또 저걸 하려 하고 누구의 본분이든 다 자신의 본분보다는 좋고 수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진리에 공을 들이지 않고 자신의 이런 생각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도 고민하지 않으며 진리를 구해 문제를 해결하지도 않는다. 마음속으로 늘 자신의 꿈이 언제 이루어질지, 누가 남의 주목을 받는지, 누가 상부의 눈에 드는지, 누가 사역할 때 책망도 받지 않고 진급하는지만 신경 쓴다. 그의 마음속에는 이런 것들만 가득하다. 너희가 보기에 늘 이런 일들만 생각하는 사람이 본분 이행에 합격할 수 있겠느냐? 영영 그럴 수 없다. 그럼 이렇게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은 어떤 부류에 속하겠느냐?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겠느냐? 우선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런 사람은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 집에서도 사회에서 살 때처럼 복을 누리고 유명해지고 체면을 세우는 것만 추구한다. 이런 사람은 본질을 놓고 보면 어떤 부류에 속하겠느냐? 바로 불신파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8조 그는 사람들이 진리와 하나님이 아닌 오직 그에게 순종하도록 한다(1)>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니 제 마음에 크게 와닿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드러내신 것이 바로 제 상태였습니다. 저는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어려움을 만나면 물러서고 피하려고만 했고, 늘 더 수월한 본분으로 바꾸고 싶어 했습니다. 예전에 영상을 제작할 때 사역상 어려움을 만났을 때도 저는 하나님을 의지해 기술을 배우며 어려움을 극복한 것이 아니라, 어려움을 보고 물러섰습니다. ‘이 본분은 요구 조건이 너무 높고 업무를 파고드는 데 많은 시간과 정력이 들어가니까, 차라리 업무 기술에 대한 요구가 까다롭지 않은 본분으로 바꾸는 편이 낫겠어. 그러면 그렇게 고생스럽고 힘들게 일할 필요도 없잖아.’ 저는 육의 안락함을 위해 본분을 바꿔 달라고 신청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본분을 맡아서도 어려움을 만나자 여전히 고생하고 대가를 치르기 싫어 또 본분을 바꿀 궁리를 했습니다. 줄곧 이런 내적 상태를 진리를 구해 해결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어려움을 만나도 여전히 그런 식이었습니다. 본분이 너무 어렵게 느껴지면 또다시 더 수월한 본분을 고르고 싶어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폭로하신 바로는, 이런 부류의 사람은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어려움이 닥쳤을 때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며, 하나님께 기도하고 진리를 구해 해결하려 하지 않습니다. 어떤 본분이든 제대로 마음을 쏟은 적이 없고, 그저 본분을 이행하여 죽지 않는 결말을 얻으려는 것뿐이니,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이 바로 불신파라고 하셨습니다. ‘불신파’라는 세 글자를 보자, 저는 마음이 찔리고 부끄러웠습니다. 교회가 저를 이렇게 오랫동안 양성해 주었는데, 저는 본분을 이행하며 고생이 두려워 어려움을 보면 물러섰고, 어떤 본분도 끝까지 해내지 못해 실질적인 성과가 전혀 없었으니, 정말 하나님께 너무나 죄송했습니다! 만약 제가 계속 착실하게 본분을 이행하지 않고, 진리에 대해 진지하게 대하지 않고 공을 들이지 않는다면, 결국 드러나 도태될 것입니다. 사실 교회가 저를 리더로 양성한 것은 저에게 훈련의 기회를 준 것입니다. 비록 어려움과 문제도 많고, 사역이 바쁘고 힘들기는 하지만, 어려움과 문제를 만났을 때 하나님께 기도하고 구할 수 있다면 저는 수확을 거두고 생명도 조금 성장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높여 주심입니다! 이 점을 깨닫고 나니, 저는 육을 저버리고 어려움을 만났을 때 진리를 많이 구하고 싶었고, 이전보다 더 착실하게 본분을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석 달 후, 저는 지역 리더로 선발되었습니다. 이 본분을 이제 막 맡게 되어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는 문제가 많았지만, 갓 훈련을 시작했으니 못하는 것도 정상이라고 생각하며 마음속으로는 노력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두 달이 지나 제가 담당하는 양육 사역은 나아질 기미는커녕 오히려 성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는 속으로 맥이 탁 풀렸습니다. ‘이 본분은 정말 어렵구나! 양육자 예배도 거의 한 번도 빠뜨리지 않았고, 매번 모든 새신자의 양육 상황을 자세히 물어보고 연약한 새신자는 따로 사람을 배정하여 붙들어 주게 했는데, 왜 성과가 나아지지 않는 걸까?’ 저는 속으로 몹시 의기소침해졌습니다. ‘이런 실질적인 문제들을 나도 해결할 수 없으니, 차라리 단일 항목의 본분으로 바꾸는 게 낫겠어. 단일 항목의 본분은 나에게 맡겨진 일만 잘하면 되니 전체 사역에 신경 쓸 필요도 없고, 이렇게 힘들거나 어렵지도 않을 거야.’ 이런 생각이 든 후로는 본분을 이행할 때마다 마음이 계속 짜증스러웠습니다. 매일 회신해야 할 많은 편지를 보면 불평이 절로 나왔습니다. ‘이렇게 많은 편지를 우리가 다 회신할 수 있겠어?’ 저는 더 이상 신경 써 가며 자세히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어떤 편지는 대충 훑어보고 복잡하다고 느껴지면 한쪽에 제쳐 두고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때 양육 사역에 있던 문제와 편차를 제때 발견하고 결산하지 못해 사역을 지체시켰습니다. 하루는 윗선 리더로부터 저희가 담당하는 사역에 많은 문제가 존재하고 성과도 없다는 편지를 받고는 마음속으로 반발심이 들었습니다. ‘사역에 왜 이렇게 문제가 많지? 왜 계속 해결되지 않는 걸까? 잘못하면 책망까지 받아야 하니, 이 사역은 못 해 먹겠어!’ 저는 제 내적 상태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압박감이 크고 마음속에 반발심이 생겨 이 본분을 이행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나님, 제가 진리를 구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그렇게 구하던 중,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이 생각나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가 몇몇 구체적 사역에서 사람이 시행하고 책임져야 하는 구체적인 항목을 교제할 때, 사람은 아마 여러 가지 어려움에 부딪힐 것이다. 구호를 외치고 도리를 얘기하는 것은 간단하겠지만, 구체적으로 시행하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최소한 사람이 에너지와 대가, 시간을 들여서 실제적으로 그 일들을 해야 한다. 적합한 사람도 찾아야 하고, 업무도 배워야 한다. 각각의 업무에 관련된 상식과 이론, 구체적인 조작 방식과 방법을 알아봐야 할 것이다. 그 외에도 난이도 높은 문제에 부딪히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보통 정상적인 사람은 난이도가 높다는 말을 들으면 속으로 난처해하고 압박감을 느낀다. 하지만 하나님에게 충성하고 순종하는 사람은 어려움을 만나서 압박감을 느끼면 마음속으로 조용히 기도할 것이다. 하나님에게 인도해 달라고, 믿음을 더해 달라고 구하고, 깨우침과 도움을 구하고, 일을 그르치지 않게 보호해 달라고 구하고, 또한 충성을 다하고 온 힘을 다해 양심에 부끄러움이 없게 해 달라고 구할 것이다. 하지만 적그리스도 부류는 이렇게 하지 않는다. 그리스도가 사역에서 구체적인 지침을 내려 그에게 시행하도록 했을 때, 또한 그 사역에 어려운 부분이 있을 때, 그는 속으로 반발하며 하기 싫어한다. 하기 싫어하는 태도에는 어떤 것이 있느냐? 그는 말한다. “왜 좋은 일은 저한테 안 오는 겁니까? 어떻게 저한테는 어려운 문제만 주고, 요구만 하십니까? 제가 한가한 사람인 줄 아세요? 노예나 심부름꾼인 줄 아세요? 전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닙니다! 이 일을 그렇게 쉽게 말씀하시는데, 그럼 직접 한번 해 보세요!” 이것이 순종이냐? 받아들이는 태도이냐? 그가 하는 행동은 무엇이냐? (반발이고 대항입니다.) … 어려움이 닥쳐서 육이 고생해야 하고 편하게 있을 수 없게 됐다고 반발하는 것이 아니냐? 이것이 조건 없이, 불평 없이 순종하는 것이냐? 어려움이 좀 있으면 하기 싫어하고,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이라면, 자기가 볼 때 어려운 일, 안 좋은 일, 천한 일, 남들이 무시하는 일이라면 기를 쓰고 반발하고 반항하고 거절하며 전혀 순종하지 않는다. 그리스도가 하는 말씀, 그리스도의 분부, 그리스도가 교제하는 원칙을 대할 때, 그것 때문에 자신에게 어려움이 생기고, 자신이 고생하고 대가를 치러야 할 경우, 적그리스도가 맨 처음 보이는 태도는 바로 반발하고 거절하며 속으로 반감을 갖는 것이다. 하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일, 이익을 얻는 일에는 그런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적그리스도는 안일함을 누리려 하고 체면을 세우고 싶어 한다. 육이 고생해야 하고, 대가를 치러야 하고, 심지어 남에게 미움을 사는 일이라면 그들이 기분 좋게, 기꺼이 받아들이겠느냐? 절대적인 순종에 이를 수 있겠느냐? 전혀 도달하지 못하며, 완전히 불복하고 불평하는 태도를 보인다. 이것이 적그리스도 부류가 하기 싫은 일을 만났을 때, 자신의 취향과 입맛,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일을 만났을 때 보이는 태도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는 절대적인 거절, 절대적인 반발이고, 일말의 순종도 없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10조 진리를 멸시하고 공공연하게 원칙을 위배하며 하나님 집의 안배를 무시한다(4)> 중에서) 하나님 말씀의 폭로를 통해 깨달았습니다. 사람은 본분을 이행할 때 누구나 어려움과 스트레스가 있습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여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진리를 구해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본분을 잘 이행하지만, 적그리스도는 육의 안락함을 즐기며 수월하고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일을 할 때만 기뻐하고, 난이도가 높거나 육적인 고통을 받고 마음을 써야 하는 본분을 만나면 어려움을 해결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반발하고 대항합니다. 제 모습이 바로 적그리스도와 같았습니다. 오직 육의 안락함만을 즐기고, 본분을 이행할 때 대가를 치르려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책임진 양육 사역에 어려움이 닥치고 성과가 없을 때, 저는 그 본분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느껴져서 육이 좀더 편해지도록 다른 본분으로 바꾸고 싶어 했습니다. 또 매일 회신해야 할 편지가 많은 것을 보고는 반발하고 불평하며, 아예 편지를 한쪽에 제쳐 두고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사역의 편차를 제때 바로잡고 해결하지 못해 양육 사역의 성과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제가 리더 본분을 이행하며 주로 책임진 것은 더 많은 새신자가 참된 도에 뿌리내리도록 하는 양육 사역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양육 사역의 직무를 태만히 하고 안일하게 생각했으며, 존재하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에 공을 들이지 않아 결국 양육 사역을 정체 상태에 빠뜨리고 말았습니다. 본분을 그렇게 이행하다니, 저는 정말 신뢰할 가치가 없고, 너무나 인성이 없었습니다!
그 후 저는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왜 나는 본분을 이행할 때 늘 편하고 쉬운 일만 골라 하고, 어렵고 힘든 일은 피하는 걸까?’ 그러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본분을 이행함에 있어 늘 수월하고, 힘들지 않고, 몸이 고생하지 않아도 되는 것만 고른다. 이는 몸을 사리는 것이고, 육적인 안일을 탐하는 모습이다. 또 있느냐? (본분을 이행할 때 조금 힘들고 고생스럽고 대가를 치러야 할 경우 늘 불평을 합니다.) (평소에 먹고 입는 것, 육적인 즐거움을 중요시합니다.) 그러한 것들은 다 육적인 안일을 탐하는 모습이다. 너무 힘들고 위험 부담이 있는 일을 보면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고 자신은 편한 일만 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자질이 부족하고 사역 능력이 없어 그 일을 감당할 수 없다고 핑계를 대지만, 사실상 그것은 육적인 안일을 탐하는 데 목적이 있다. … 이 밖에도 본분을 이행하면서 어렵다고만 하고 열심히 노력하려고 하지 않고, 틈만 나면 쉬거나 잡담하거나 여가를 즐긴다. 사역이 바빠져서 생활 리듬과 규칙이 깨지면, 언짢아하면서 불만을 품고,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는가 하면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한다. 이는 육적인 안일을 탐하는 것 아니겠느냐? … 육적인 안일을 탐하는 사람이 본분 이행에 적합하겠느냐? 본분 이행에 관한 얘기만 꺼내면, 고생하고 대가를 치르는 얘기만 꺼내면 그는 한사코 고개를 젓는다. 어려움이 너무 많다며 불평을 가득 늘어놓으며 소극적으로 군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쓸모가 없다. 그는 본분을 이행할 자격이 없으니 도태돼야 마땅하다.』(<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2)> 중에서), 『너는 지금 내가 한 말을 믿지 않고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지만, 어느 날 이 사역이 전개되는 것을 전부 보게 되면 그때는 후회하고 아연실색할 것이다. 있는 복도 누릴 줄 모르고, 있는 진리도 추구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망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 아니겠느냐? 비록 아직은 다음 단계의 사역이 시작되지 않았지만 지금 너에게 요구하고 어떤 모습으로 살라고 하는 것이 그 사역과 무관한 일은 아니다. 이렇게 많은 사역과 진리가 모두 네가 알 가치가 없는 것이냐? 형벌과 심판은 너의 영을 깨어나게 할 수 없느냐? 형벌과 심판이 너로 하여금 너 자신을 증오하게 할 수 없단 말이냐? 너는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면서 평안하고 즐겁고 육의 편안함을 조금 얻는 것에만 만족하느냐? 그런 사람은 가장 비천한 사람 아니더냐? 구원을 보고도 구원을 얻으려 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보다 미련한 사람이고, 육적인 것을 탐하는 사람이며, 사탄을 즐기는 사람이다. 너는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어려움과 환난, 고통이 조금도 없기를 바란다. 너는 늘 이런 가치 없는 것들만 추구하고, 정작 생명은 한 푼의 가치도 없다고 여기며 자신의 사치스러운 생각을 진리보다 앞자리에 놓는다. 너는 너무도 무가치한 사람이다! 네가 돼지처럼 산다면 개돼지 따위와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육적인 것을 좋아하는 자는 모두 짐승 아니겠느냐? 영이 없는 죽은 자는 모두 걸어 다니는 송장 아니겠느냐? 내가 너희 가운데서 얼마나 많이 말했더냐? 내가 너희 가운데서 행한 사역이 적더냐? 너희 가운데서 너희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공급했느냐? 그런데 너는 어째서 얻지 못했느냐? 또 무슨 불평이 있단 말이냐? 네가 얻지 못한 것은 육을 너무 귀하게 여긴 탓이 아니더냐? … 너처럼 육적인 것만 추구하는 못난 놈에게 마음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느냐? 영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느냐? 너는 짐승 아니겠느냐? 아무 대가도 없이 참도를 네게 베풀어 주었는데 너는 추구하지 않는다. 너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맞느냐? 진정한 인생을 베풀어 주었는데 추구하지 않는다. 그럼 너는 개돼지 따위가 아니겠느냐? 돼지는 인생을 추구하지 않고 깨끗함을 바라지도 않으며 인생이 무엇인지 모른 채 날마다 배불리 먹고 쿨쿨 잠만 잔다. 참도를 베풀어 주었건만 너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그런 돼지 같은 삶을 계속하고 싶으냐? 그런 사람이라면 살아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비루하고 저속하며, 더럽고 음란하게 살면서 추구하는 목표가 하나도 없으니 너의 일생은 가장 비천한 일생 아니겠느냐? 무슨 낯으로 하나님을 뵙겠느냐? 계속 그렇게 체험한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것 아니겠느냐? 네게 참도를 베풀어 주었지만 결과적으로 네가 얻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너 자신의 추구에 달려 있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베드로의 체험 ―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깨달았습니다. 제가 본분을 이행하며 어려움을 보면 물러서고 힘든 일은 회피했던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고생하기 싫어하고 육의 안락함을 즐기며, 진리를 얻기 위해 고생하고 대가를 치르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추구하는 관점이 잘못되었기에 본분을 이행하다가 어려움을 만나 육이 고생해야 할 때면 마음이 몹시 짓눌리는 듯 답답하고 불만이 가득했으며, 심지어 본분을 회피하려 했습니다. 학창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장래에 대학에 합격하고 출세하기 위해 힘들게 공부하는 것을 보면서도, 저는 그 고된 공부로 겪어야 할 고통을 생각하며 뒷걸음질을 쳤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처럼 높은 학력을 갖지 못했습니다. 예전에는 제 인생관이 남들과 다르고 명예와 지위에 대한 욕심이 그렇게 크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와서 보니 제가 명예와 이익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인생은 짧으니 자신을 잘 대하라.’는 사탄의 생존 법칙에 따라 살며 지나치게 육을 좇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을 믿고 있지만, 이런 사탄의 생존 법칙은 여전히 제 안에 깊이 뿌리박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역 중에 어려움을 만나면 힘들다고 아우성치며 좀 더 편한 본분을 이행하고 싶어 했습니다. 제가 양육 사역을 책임진 것은 새신자의 생명 진입과 관련이 있습니다. 새신자를 잘 양육해서 참된 도에 뿌리내리게 하지 않으면 새신자는 쉽게 떠나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저는 본분에서 대가를 치르며 진리를 구해 여러 어려움을 해결하려 하지 않고, 어려움을 보면 물러섰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도 헤아리지 않고 교회의 사역도 고려하지 않았으니, 정말 이기적이고 비열했습니다. 사실 하나님 집의 모든 본분은 잘 이행하려면 대가를 어느 정도 치러야 합니다. 예를 들어, 복음을 전하는 형제자매는 노력을 기울여 전도 방면의 진리를 갖추어야 하고, 복음 대상자의 비웃음과 욕설을 견뎌야 하며, 심지어 언제든 잡혀서 목숨을 잃을 위험도 있습니다. 기술 관련 본분도 시간과 정력을 들여 업무를 파고들어야 제대로 이행할 수 있습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형제자매는 이런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진리를 구해 공과를 배우고, 본분을 갈수록 잘하게 되며, 그 고생이 가치 있다고 느낍니다. 예전에는 저에게 이런 추구나 의지가 없었습니다. 본분을 대하는 태도가 마치 건달 같아서 무슨 일이든 대충 넘기려 했고, 무엇을 하든 오래가지 못해서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만약 제가 계속 육의 안락함을 추구하고, 진리를 제대로 추구하지 않으며, 본분을 잘 이행하기 위해 고생하고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면, 어떤 본분도 잘 이행하지 못하고 정말 폐물이 되어 도태될 것입니다.
그 후,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현 상태에 만족하지 말고 의미 있는 인생을 추구해야 한다. 베드로의 모습으로 살려면 베드로의 인식과 체험을 갖춰야 한다. 더 높고 더 깊은 것을 추구해야 하고, 하나님에 대한 더 깊고 순결한 사랑을 추구해야 하며,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생을 추구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인생이고, 이런 사람이야말로 베드로 같은 사람이다. 너는 일시적인 편안함에 만족하며 소극적이 되어 후퇴하거나, 더 깊고, 더 세밀하고, 더 실제적인 진리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되며, 자신이 적극적인 면에 자발적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또 너는 실제적인 사랑을 갖추어야 하고, 어떻게 해서든 아무 근심 걱정 없이 타락해 살아가는 짐승 같은 삶에서 벗어나야 하며,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 스스로 자신을 우롱하지 말고, 자기 삶을 장난감 삼아 가지고 놀아서는 안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에게는 얻지 못할 진리도, 서지 못할 정의도 없다. 너는 일생을 어떻게 보내야 하겠느냐? 너는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해야 하겠느냐? 이는 모두 네 일생에서 가장 큰 일이다. 너에게 이런 의지와 끈기가 있어야 한다는 게 가장 중요하다. 기개 없는 나약한 자가 되지 마라. 너는 의미 있는 인생과 의미 있는 진리를 체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자신을 그렇게 건성으로 대해선 안 된다. 일생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 지나가 버리는데, 너에게 하나님을 사랑할 이런 기회가 또 오겠느냐? 사람이 죽은 후에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느냐? 너는 베드로와 같은 의지와 양심이 있어야 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자신을 우롱하지 마라.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너는 네 일생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자신을 어떻게 하나님께 바칠지,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야 더 의미 있게 믿을 수 있을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상, 어떻게 해야 더 순결하고, 더 아름답고, 더 선하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을지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베드로의 체험 ―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저는 하나님께서 사람이 모두 진리 추구를 일생의 큰일로 여기기를 바라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만약 제가 잠시의 육적인 안락함을 위해 진리를 얻을 기회를 잃어버린다면, 이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최후에 하나님께서 사역을 마치실 때, 제가 진리를 얻지 못하고 성품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평생의 한으로 남을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리더 본분을 이행해 오면서 비록 부족한 점도 많고 사역 중에 어려움과 스트레스도 많았지만, 단일 항목의 본분을 이행할 때보다 얻은 것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저의 사역 능력이 향상되었을 뿐만 아니라 일부 진리 원칙도 깨닫게 되었으니, 이런 어려움과 스트레스가 모두 하나님의 축복이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 제 육을 고려하느라 본분을 거절하고 피하지만 말고, 어려움을 만나면 더 많이 기도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진리를 구해 해결하기로 다짐했습니다. 그 후 저는 양육 사역에 성과가 없는 원인을 찾고 묵상하기 시작했습니다. 반성하고 결산하는 과정을 통해, 주된 원인은 제가 본분을 이행하는 데 너무 수동적이었고 편차를 정리하는 데 소홀했으며, 모르고 못 한다는 핑계로 새신자의 문제를 보고도 해결하지 않은 탓에 많은 문제가 쌓여 해결의 길을 찾지 못했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제가 실제로 대가를 치르며 협력하자, 양육 사역은 점차 나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어려움 속에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실행하는 일이 얼마나 달콤한지 맛보았고, 더욱 자신감을 가지고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제가 담당하는 사역은 더 늘었습니다. 게다가 사역도 익숙하지 않고 진리를 교제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도 부족하여 일이 무척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저는 기꺼이 육을 저버리고 최선을 다해 협력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한두 달 노력해도 사역 성과가 별로 크지 않자 기운이 빠지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본분은 너무 어려워. 아무래도 이전 본분이 더 수월한 것 같아.’ 저는 제 내적 상태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진리를 구해 해결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본연의 일을 하며 기꺼이 본분을 이행한다. 그들은 한 가지 사역을 능히 감당할 수 있으며 자신의 자질을 바탕으로 하나님 집의 규정에 따라 사역을 제대로 해낸다. 물론 처음에는 이런 생활에 적응하는 게 좀 어려워서 몸과 마음이 힘들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진정으로 협력하고자 하는 의지나 정상인, 좋은 사람이 되어 구원받고자 하는 바람이 있다면, 어느 정도 대가를 치러야 하고 하나님이 징계하도록 해야 한다. 네 마음대로 하고 싶을 때 그것을 등지고 내려놓아 제멋대로인 성질과 사리사욕을 조금씩 줄여야 할 것이다. … “압박감이 있어 못 하겠어요. 하나님 집에서 이행하는 본분과 사역은 한가롭고 자유로우며 즐겁고 편안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런 말은 통하지 않는다. 이는 정상적인 성인이 가져야 할 생각이 아니며 하나님 집은 네 안일을 도모하는 곳이 아니다. 모두가 삶과 일에서 어느 정도의 부담과 위험을 감수한다. 어떤 사역이든, 특히 하나님 집에서 이행하는 본분은 모두 최고의 성과를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한다. 거시적으로 보면 이것은 하나님의 가르침이자 요구이고, 미시적으로 보면 이것은 모든 사람이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는 태도이자 관점, 기준, 원칙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5)>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정상적인 이성을 가진 성인이라면 하나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사역을 하다 보면 때로 어려움을 만나고 고생해야 할 때도 있지만, 이는 사람이 구원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마땅히 겪어야 할 일입니다. 생각해 보면 이방인들도 생계를 위해 많은 고생을 하는데, 우리가 본분을 이행하며 겪는 이런 고생은 의미가 있고 우리의 생명에 유익한 것입니다. 이 점을 깨달은 후, 저는 순종하며 체험하기를 원했습니다. 그 후 본분을 이행하며 어려움이 많을 때, 가끔은 마음이 의기소침해기지도 했지만, 저는 더 이상 그런 어려움 때문에 인책 사임을 택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힘써 노력할 수 있게 되었고, 본분 중의 어려움과 스트레스를 올바르게 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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