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삐 보낸 이유

2025.2.24

미국 데이지(Daisy)

작년 12월에 저는 맡은 본분에 무책임하게 임해서 책망 훈계를 받았는데, 반성을 통해 그동안 제가 확실히 본분에 무책임했다는 걸 깨달았어요. 저는 교회 리더로서 문서 사역만 신경 쓰고 그 외에 제가 직접 책임지지 않거나 제 명예나 지위에 크게 연관되지 않는 본분은 신경 쓰지 않았어요. 매일 시간을 조금만 더 내면 사역을 하나라도 더 체크할 수 있었을 테지만, 저는 그걸 귀찮게 생각하고 힘들게 생각하다 보니 신경 쓰고 싶지 않았어요. 결국 영상 관련 사역에 지장이 생겼는데도 저는 모르고 있었어요. 확실히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못했죠. 그럼에도 하나님 집에서는 저를 해임하지 않았고 여전히 본분을 이행할 기회를 줬죠. 그때 저는 꼭 회개해서 잘못을 만회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뒤로 낮에는 체험 간증 촬영 영상을 체크했고, 밤에는 문서 정리를 했는데 하루 동안 스케줄이 꽉 차 있었어요. 여유 시간은 조금 줄었지만 그래도 하루가 알찬 느낌이었어요. 나중엔 거의 매일 새벽 두세 시 돼서야 잠을 자고 아침에는 7시 조금 넘어서 일어났어요. 그땐 크게 힘든 것도 모르겠더라고요. 밤을 좀 새워도 사역을 더 할 수 있다면 전에 안일함을 탐하던 것보다는 낫겠지 싶었어요. 나중에 주변의 자매들이 제가 자주 밤을 새워 얼굴이 누렇게 뜬 걸 보더니 일찍 자라고 권유했어요. 한 자매는 “밤에 그렇게 늦게 자고, 점심시간에 잘 쉬지도 않는데 하루를 잘 버틸 수 있어요?”라고 묻더라고요. 그때 저는 ‘내가 이렇게 고생하는 걸 형제자매들도 다 알고 있구나. 그럼 이 고생은 할 만하네. 적어도 형제자매들은 나한테서 회개하려는 태도를 보고 내가 안일함을 탐하지 않고 고생을 감내하며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이라고 볼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 시기에 어떤 형제자매들은 밤 11시면 취침을 했는데, 저는 그런 모습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어요. ‘안일함에 너무 빠져 있잖아! 당신들이 본분 이행에 애타고 다급한 마음이 없는 걸 보니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사람들이 아니네!’ 저는 주변 사람들한테 저만큼은 본분에 임하는 자세가 다르다는 걸 보여 주기 위해서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는 걸 견지했어요. 하지만 계속 밤에 늦게 자니까 몸에 이상 반응이 생기는 문제가 발생했어요. 밤 11시, 12시가 조금 넘으면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어요. 저도 늦게 자면 몸에 안 좋다는 걸 알고 있고 하나님께서도 정상적으로 휴식하라고 여러 번 말씀하시기도 하셨잖아요. 근데 일찍 자면 형제자매들이 저를 어떻게 볼까 싶은 게 처음에 책망 훈계 받았을 때는 고생도 좀 하면서 노력을 하더니 시간이 지나자 아니나 다를까 본색이 드러나고, 변화가 없다고 하지 않을까 싶은 거예요. 형제자매들한테 그런 이미지를 남기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뭔가 책임감이 넘치는 모습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밤에 정말 피곤해도 이를 악물고 버텼어요. 점심에도 오래 쉬지 못하겠는 거예요. 형제자매들이 보면 육을 너무 생각한다고 할까 봐요. 가끔 점심에 쉬지 않아 너무 졸릴 때면 저는 커피를 마시면서 정신을 차렸어요. 밤늦게까지 일 처리 할 때 아직 사무실에 남아 있는 형제자매가 있으면 일부러 더 소리를 냈어요. 제가 늦게까지 전투적으로 일하고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던 거죠. 다른 나라에 있는 형제자매들과는 시차가 있잖아요. 하지만 그런 분들이 메시지를 보내면 저는 자려고 누웠어도 답장을 했어요. 그리고 상대가 “늦었는데 아직 안 자고 있네요. 일찍 쉬세요.”라고 하면 뭔가 제가 고생하는 걸 형제자매들이 다 알아주는 것 같아서 뿌듯하더라고요. 나중에 윗선 리더가 저에 대해서 물어봐도 제가 사역을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본분에 임하는 태도는 꽤 좋으니까 공로는 없더라도 노고는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고, 형제자매들도 분명 제게서 회개하는 모습이 보였고 실제 사역을 하는 리더라고 평가할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생각을 할 때면 뭔가 마음이 든든하고 편했어요.

하지만 장기간 밤을 새우니까 아침에 일어날 때면 가슴이 두근거렸어요. 더구나 머리가 계속 피로 상태에 있으니까 문서를 봐도 집중이 잘 안 됐어요. 낮에 일해도 효율적이지 못하니까 밤에 늦게까지 일을 좀 더 할 수밖에 없었죠. 문제는 늦게 잘 경우 다음 날 일어나 아침을 먹고 나면 거의 8시가 되고 아침에 영 생활 하려고 해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거였죠. 그러니까 하나님 말씀도 대충 한 단락 보고는 깊이 묵상도 못 하고 사역을 시작해야 했어요. 간증문 쓰는 건 더 마음에 없었어요. 본분이 바쁘니까 시간을 못 낸다고 생각했죠. 그러다 본분에서 문제가 속출하자 그제야 다시 성찰해 보기 시작했어요. ‘나는 본분을 잘 이행하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왜 갈수록 문제가 많이 생기고 본분 효과는 점점 안 좋아지는 걸까?’ 그러면서 이 악순환이 계속된다면 제 몸이 망가질 뿐만 아니라 사역에도 효과가 없을 거란 걸 느꼈어요. 얼른 이런 상태를 바로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 후에 저도 밤늦게 자면 건강에 좋지 않고 본분상 효율이 떨어진다는 것도 아는데, 왜 계속 그걸 고집했던 건지 생각해 봤어요. 그러면서 제가 그동안 사람들한테 보여 주기 식으로 했던 게 생각났어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적그리스도 유형의 행태를 파헤치셨던 말씀이 생각나서 찾아봤어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을 증거할 때 언어로 자신을 과시하는 말을 어느 정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행동으로 과시하는 사람도 있다. 행동으로 자신을 증거하는 것에는 어떤 모습들이 있느냐? 겉으로 보기에 비교적 사람의 관념에 부합하고 사람의 이목을 끌 수 있는, 사람들이 보기에 꽤 고상하고 도덕적 기준에 부합해 보이는 행동을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이 그가 존귀하고 인격적이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주 경건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가득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한다. 항상 겉보기에 좋은 행위를 보여 주는 것으로 사람을 현혹하는데, 이것도 자신을 높이고 증거하는 느낌이 들지 않느냐? 자신을 높이고 증거하는 가장 흔한 방식이 바로 말하는 것이다. 자신이 얼마나 뛰어나고, 남다른 고견을 가지고 있는지 명확한 말로 표현해서 남들이 그를 높이 보고 우러러보게 한다. 그러나 명확한 말을 사용하지 않고 겉면의 행동으로 그가 남보다 낫다는 것을 증거하는 경우도 있다. … 가장 간단한 예를 들겠다. 어떤 사람은 본분을 이행할 때 겉으로는 몹시 바빠 보인다. 그는 굳이 남들이 밥을 먹거나 잠을 잘 때 계속 일하고 남들이 본분을 이행하기 시작하면 밥을 먹거나 잠을 자러 간다. 그가 이렇게 하는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바로 남들이 그가 침식도 잊고 바쁘게 본분을 이행하는 모습을 볼 수 있도록 관심을 끄는 것이다. 그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기도 한다. ‘너희는 참 부담도 없네. 밥 먹고 잠자는 데 어쩜 저리도 적극적일까? 못난 것들! 나를 좀 봐. 나는 당신들이 밥 먹을 때나, 밤에 잠잘 때도 일하잖아. 당신들이라면 이런 고생을 견딜 수 있겠어? 나니까 견딜 수 있는 거지. 솔선수범하는 거라고.’ 너희에게는 이런 행동과 모습이 어떻게 보이느냐? 그는 일부러 그러는 것 아니겠느냐? 일부러 이렇게 행동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는 어떤 행위겠느냐? 남들과 다르게 행동하려는 것이다. 남들과 달라지려 하고, 밤새 본분을 이행하고 고생을 특별히 잘 견디는 것을 남들에게 보여 주고 싶어 한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를 안타까워하고 알아줄 것이고, 매일 온갖 일을 돌보느라 침식을 잊을 정도로 그가 어깨에 짊어진 짐이 무겁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그가 구원받지 못한다면 다들 그를 위해 하나님에게 간구하고 사정하며 기도할 것이다. 그가 이렇게 하는 것은 바로 그가 고생하고 대가를 지불하는 등의 사람의 관념에 부합하는 좋은 행위와 행동 방식으로 남을 기만하여 동정과 찬사를 얻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어떤 결과를 낳겠느냐? 그와 접하고 그가 대가를 지불하는 것을 보는 모든 사람이 모두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하게 만들 것이다. “우리 리더는 가장 자격 있는 리더입니다. 가장 잘 고생을 견디고 대가를 지불할 수 있는 리더죠!” 이는 사람을 현혹하는 목적을 이룬 것 아니겠느냐? 언젠가 하나님 집에서 “너희 리더들은 실제적인 사역은 하지도 않으면서 쓸데없이 바쁘고 엉망으로 일하는 데다가 제멋대로 못된 짓을 저지르고 독선적으로 행동했다. 교회 사역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고 해야 할 사역은 하지도 않았다. 복음 사역도, 영상 사역도 하지 않았다. 교회 생활도 엉망으로 해서 형제자매는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생명 진입도 없어 간증 문장도 쓰지 못한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거짓 리더와 적그리스도에 대해서도 분별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리더는 너무나 자격이 없고 거짓 리더이므로 교체해야 한다!”라고 말한다면, 이런 상황이라면 쉽게 교체할 수 있겠느냐? 쉽지 않을 것이다. 형제자매가 모두 그에게 동조하고 그를 옹호하기 때문에 누군가 그를 교체하면 형제자매는 항의할 것이고 상부에 그의 유임을 요구할 것이다.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나겠느냐? 거짓 리더와 적그리스도가 겉으로 보기에 고생하고 대가를 지불하는 좋은 행위와 듣기 좋은 말로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회유하며 현혹했기 때문이다. 이런 허상으로 사람을 현혹하고 나면 사람들이 모두 그의 편에 서서 말하고 그를 떠나지 못하게 된다. 그가 실제적인 사역을 얼마 하지 않았고 하나님 선민이 진리를 깨닫고 생명 진입이 있도록 이끌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면서도 그를 옹호하고 그에게 동조하고 그를 따르며, 설사 진리 생명을 얻지 못해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4조 자신을 높이고 증거한다> 중에서) 하나님께서 폭로하신 말씀을 보니까 딱 제 모습이었어요. 저는 리더한테서 본분을 이행할 때 책임감이 없고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는다는 책망을 받은 후에 회개와 변화의 모습을 보여 주겠다고 다짐했거든요. 그래서 처음에는 실제 행동으로 저 자신의 과오를 만회하겠다고 긍정적인 측면에서 실행했지만 조금씩 제 행동은 변질되기 시작했어요. 제가 밤을 새우면서 노력하는 게 형제자매들의 관심과 주목을 받게 되니까 저는 저의 실제 행동을 통해 그동안 제가 회개했고 본분에 대가를 지불하고 있다는 걸 증명해 보이고 싶었던 거예요. 그래서 언젠가 리더가 형제자매들한테 저에 대해 물어보면 형제자매들은 절 위해 좋은 말을 해 줄 것이고 제가 잔머리를 굴리거나 무책임한 거짓 리더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줄 거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저는 그렇게 열심히 밤을 새우면서 고생을 했는데, 사실 그걸 충성을 다해 본분을 이행하는 모습이라고 생각했고 의도적으로 형제자매들한테 더 티를 냈어요. 어떤 때는 분명 너무 피곤해서 쉬고 싶었지만 리더는 ‘다사다망’한 사람이라는 걸 어필하려고 제일 늦게까지 버티다 잠자리에 들곤 했어요. 늦게 자다 보니까 가끔은 낮에 피곤해서 집중도 잘 안 됐어요. 좀 쉬어 주는 게 정상인데, 저는 책임감 넘치는 제 이미지를 지키려고 점심시간에도 쉬지 않았어요. 정말 도저히 못 버틸 정도가 돼서야 조금 쉬었는데, 그것도 괜히 안일함을 탐하는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게 될까 봐 많이 자지도 못했어요. 늦게까지 밤을 새워도, 아직 잠을 안 자는 사람이 있으면 저는 제가 아직도 견지하고 있다는 걸 보여 주려고 했어요. 아니면 다른 나라에 있는 형제자매들한테 메시지를 보내 저는 본분을 위해서라면 고생도 감내하는 사람이라는 걸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 주면서 ‘모범 일꾼’ 이미지를 만들어 갔어요. 하나님께서 자신을 증거할 때 언어로 자신을 과시하는 말을 어느 정도 해서 자신을 우러러보게 만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비교적 사람의 관념에 부합하고 사람들이 보기에 꽤 고상하고 도덕적 기준에 부합해 보이는 행위를 보여 주는 것으로 사람을 현혹하고 자신을 우러러보고 숭상하게 만드는 사람도 있다고 하셨어요. 보니까 저는 밤을 새우면서 고생하는 것으로 좋은 이미지를 만들고 있었는데, 그걸로 사람들의 호감을 사려고 했던 거죠. 저는 고난과 대가를 지불하는 행위로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었어요. 이건 적그리스도의 모습이죠. 바리새인들이 외식하기 좋아한다는 게 생각났어요. 그들은 의도적으로 회당과 큰 거리에 서서 기도하고 금식할 때에도 일부러 슬픈 기색을 보이고 경문 띠를 넓히고 옷술을 길게 만들어 보이고 남을 구제할 때에도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하죠. 바로 그런 외적인 좋은 행동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증거하는 거잖아요. 바리새인의 모든 행동은 사람을 미혹하고, 현혹하고 자신을 내세워 숭상받게 하는 것이었는데, 하나님을 대적하는 길로 가고 있었죠. 전 본분을 이행한다면서 진리 원칙은 알려고 하지 않고 잘못된 길로 가고 있었어요. 그저 겉으로 보여지는 행동에 치중하면서 사람들을 미혹해 저를 우러러보게 했는데, 전 정말 너무 비열했던 거죠!

전 계속해서 제가 그렇게 밤을 지새우면서 고생하는 행동의 이면에 어떤 패괴 성품이 감춰져 있는지 반성해 봤어요. 그러다가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게 됐죠. 『적그리스도 부류는 진리를 싫어하고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다. 여기에서 하나의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바로 적그리스도는 결코 진리 원칙대로 행하지 않고,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적그리스도에게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모습이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명예와 지위, 복과 상을 얻는 것 외에, 육적인 편안함과 지위의 복을 누리는 것이다. 이러면 자연스럽게 방해하고 교란하는 짓을 저지를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그의 추구, 그의 행위와 태도가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이 아니며,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마땅히 갖춰야 할 방식과 행위가 절대 아님을 보여 준다. 바울과 같은 적그리스도들을 예로 들어 보자. 그들은 본분을 이행할 때 고생을 감내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침식을 잊은 채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부지런히 사역할 수 있고, 자신의 몸을 쳐 복종시켜 몸이 불편하고 병이 나도 모두 참을 수 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냐? 자신이 하나님의 부탁을 대함에 있어 자신을 잊고 오직 본분만을 생각하는 무아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음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다. 그는 이런 행동을 사람들 앞에서 한다.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상황에서 쉬어야 할 때 쉬지 않고, 심지어 일부러 사역 시간을 연장하기까지 하며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잠을 잔다. 적그리스도가 이렇듯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바쁘게 보내면 그 사역 효율과 본분 이행 효과가 어떻겠느냐? 이런 것은 그의 고려 사항이 아니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이런 행동을 하여 자신이 고생하고 있고, 이렇게 자신을 잊은 채 헌신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싶은 것뿐이다. 그가 이행하는 본분과 하고 있는 일이 정말로 진리 원칙에 따라 행해지고 있는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겉면의 이런 자신의 좋은 행위를 모든 사람이 봤는지, 모두가 알고 있는지만 생각한다. 그리고 모두의 마음속에 강한 인상을 남겼는지, 그 인상으로 인해 모두가 속으로 그에 대해 감탄하고 인정하는지, 심지어 뒤에서 은근히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이 사람은 정말 고생을 견딜 줄 아는 사람이야. 고생을 감수하는 정신과 범상치 않은 끈기는 우리가 따라갈 수 없을 정도지. 이 사람이야말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자 고생하며 중임을 맡을 수 있는 사람이야. 이런 사람이야말로 교회의 기둥이지.”라고 칭찬하는지만 따진다. 적그리스도는 이런 칭찬을 들으면 만족해하며 이렇게 생각한다. ‘이렇게 위장한 건 너무 똑똑한 것이었어. 이렇게 하다니 난 정말 지혜로워! 사람들이 겉모습만 볼 줄 알았어. 사람들은 이런 좋은 행위를 좋아해. 이렇게 하면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고, 사람들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마음속 깊이 내게 감탄하고, 나를 다시 보게 만들 수 있고, 앞으로 더 이상 아무도 나를 얕보지 않을 거란 걸 알았다고. 언젠가 상부에서 내가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하고 나를 교체하려고 하면, 분명 많은 사람이 나를 위해 억울함을 호소하거나 울고, 나를 붙잡으려 하고, 나를 대변해 주려고 할 거야.’ 그는 속으로 자기 위장 행위를 은근히 기뻐하는데, 기뻐하는 동시에 적그리스도의 본성 본질을 드러내지 않느냐? 그게 어떤 본질이냐? (사악함입니다.) 맞다, 이것이 바로 사악한 본질이다. 이런 사악한 본질의 지배 아래 생겨난, 스스로에게 만족하고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는 내적 상태로 인해 적그리스도는 속으로 몰래 하나님에게 대들고 대항한다. 겉으로 볼 때 적지 않은 대가를 치르고 육적으로도 적지 않은 고생을 했지만, 그렇다고 그가 하나님의 부담을 진실로 헤아리겠느냐?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겠느냐? 충실하게 본분을 이행할 수 있느냐? 그럴 수 없다. … 적그리스도의 성품은 사악하지 않으냐? 그가 고생하는 이면에는 이런 야심과 불순물이 담겨 있고, 그래서 하나님은 이런 사람, 이런 성품을 혐오한다. 하지만 적그리스도는 영원히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인정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사람의 폐부를 감찰하지만 사람은 사람의 겉모습만을 본다. 적그리스도의 가장 우매한 부분은 바로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알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능력을 총동원해서 좋은 행위로 자신을 포장하고 미화한다. 그리하여 남들이 볼 때 그가 고생을 참고 견딜 수 있고, 그가 보통 사람은 못 견디는 고생을 견디고, 보통 사람은 못하는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한다. 그는 또한 남들이 볼 때 자신은 끈기가 있고, 자기 몸을 쳐 복종시킬 수 있고, 자신의 육적인 이익과 즐거움을 돌보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한다. 심지어 간혹 일부러 더러워진 옷도 씻지 않고 계속 입고, 몸에서 냄새가 나도 씻지 않는다. 남들에게 숭배받을 수 있다면 무조건 그렇게 한다. 남들 앞일수록 그는 극구 자신을 드러낸다. 그리하여 다른 사람에게 자신은 보통 사람과는 다르고,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마음이 보통 사람보다 크고, 고생을 견디려는 의지도 보통 사람보다 크고, 고생을 견디려는 끈기도 보통 사람보다 강하다는 것을 보여 주려 한다. 그런 상황에서 적그리스도는 그렇게 행동하며, 그런 행동의 이면에는 바로 사람들로부터 숭배와 우러름을 받으려는 적그리스도의 의도가 깊이 숨어 있다. 목적이 이루어질 때,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듣고, 부러움의 시선과 감탄의 시선, 칭찬의 시선을 받을 때 적그리스도의 마음은 기쁘고 만족스럽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9조(10)> 중에서) 하나님의 이 말씀을 봤는데, 적그리스도는 사악한 성품을 갖고 있기에 어떤 일이 생겨도 진리 원칙을 구하지 않고, 어떻게 해야 하나님 뜻에 부합하는지 구하지 않고 그저 외적인 행동에만 치중한다고 하셨어요.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고, 육을 저버리는 등 좋은 외적 행위로 사람들을 미혹하는 거였죠. 제가 그랬더라고요. 제가 한동안 그렇게 밤을 새워 본 결과 좋은 반응이 보이고 형제자매들이 저를 주목하고, 대단하다는 눈길을 보내 주니까 저는 고생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꼈어요. 책임감 있어 보이는 이미지를 지키려고 고의로 업무 시간을 늘렸죠. 분명 일찍 쉴 수 있는데도 늦은 시간까지 버티다 잤어요. 하나님은 적그리스도가 사람들한테 보여 주는 식으로 일하고 자신의 행동을 사람들이 보는지를 중시하고 좋은 이미지를 남겼는지에 신경 쓴다고 하셨어요. 그 외에 사역의 효과가 좋은지, 효율적인지 등 긍정적인 것은 전혀 고민하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제가 그랬어요. 얼마 전 본분에 무책임하고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아 책망과 훈계를 받게 됐는데, 정말 회개하려고 했다면 제가 어떤 패괴 성품을 갖고 있는지 성찰하고 어떻게 사역 효율을 높일 건지 고민하고 진리 원칙을 알려고 더 노력하는 게 맞잖아요. 근데, 저는 밤을 새우면서 업무 시간을 늘린 것처럼 보이게 했어요. 사실 밤을 새워 본분을 이행하면 머리가 맑지도 않고 낮에도 정신이 흐릿하고 집중력도 떨어지니까 전반적으로 효율적이지 못하잖아요. 근데 저는 하나님 집의 사역에 지장이 갈 거는 생각하지 않고 그저 제가 형제자매들한테 좋은 이미지로 남는 것만 중시했어요. 본분 이행의 기회를 이용해 저는 자신을 드러내서 사람들이 저를 우러러보게 만들었어요. 저는 지위를 위해 일했지 본분을 잘 이행해서 하나님을 흡족게 해 드리려고 하지 않았어요. 저의 모든 생각과 행동은 정말 비열하고 사악했어요. 그 외, 저는 속으로 더 엉큼한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책망과 훈계를 받게 됐을 때, 윗선 리더와 형제자매들이 제가 달라졌는지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실제적인 사역을 하고, 실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건 힘든 데다 단기간에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보장도 없으니까 그나마 쉬운, 밤을 지새우면서 육을 저버리는 걸 택했죠. 그럼 나중에 사역은 잘 못했을지라도 형제자매들은 공로를 봐서 노고는 인정해 줄 거란 생각을 했고 그걸 봐서라도 제 편을 들어 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럼 해임돼도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을 거고 최소한 저는 고생을 감내하고 사역을 잘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건 보여 줄 수 있으니까요. 저의 이런 생각들을 반성해 보니까 저 스스로가 너무 혐오스러웠어요. 안 그래도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못해 이미 사역에 지장이 생겼고, 충분히 해임될 대상이 돼 버렸는데도 하나님 집에서는 계속 훈련할 기회를 준 거잖아요. 근데 저는 회개는커녕 겉면의 고생하는 모습으로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었으니 그건 잘못을 배로 하고 있는 거였죠! 설령 제가 밤을 많이 새우면서 사람들을 당분간 미혹할 수 있어도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잖아요. 제가 아무리 스스로를 포장하고 미화할 수 있다 해도 하나님은 역겨워하고 염증을 느끼시죠. 게다가 하나님은 리더가 실제적인 사역을 할 수 있는지를 보실 때 밤샐 수 있는지, 사역 시간이 긴지 짧은지를 보시는 게 아니잖아요. 아무리 업무 시간이 길어도 사역에 존재하는 문제를 발견하여 해결하지 못하고 형제자매들이 생명 진입에서 겪는 어려움을 진리로 교제해 도와주지 못하고 맡은 사역에 실제적인 효과를 보지 못한다면 이건 실제적인 사역을 하는 게 아니잖아요.

나중에 또 깊이 생각해 봤어요. 하나님은 계속 우리에게 바른 생활 습관을 가지고 우리 몸의 정상적인 패턴을 따르고 지켜야 한다고 요구하셨는데, 저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죽을 때까지 온몸을 바쳐야 한다.”라는 말이 사람들의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피곤한 줄도 모르고 그렇게 본분을 이행했어요. 과연 제 관점이 어디가 잘못됐는지 돌아보면서 그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봤어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하나님은 너에게 자유 의지와 정상 인성의 사유를 주었고,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양심과 이성을 주었다. 이러한 것들을 제대로 잘 이용하고, 육의 생존 법칙을 따르며, 자신의 몸을 지키고, 하나님이 시킨 일을 착실하게 해서 하나님의 요구에 이르면 그만이다. 무척 간단하다. 하나님이 네게 죽을 때까지 온몸을 바치라고 요구하더냐? 자학하라고 요구하더냐?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요구하지 않았다. 자학하지 말고 상식을 갖춰 몸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올바르게 대해야 한다.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고, 배가 고프면 음식을 먹으며, 몸이 피곤하면 쉬어야 한다. 또 오래 앉아 있었으면 몸을 좀 움직이고, 병이 나면 진료를 받으며, 하루 세끼 식사와 정상 인성의 삶을 유지해야 한다. 물론, 정상적으로 본분을 이행해야 하며, 본분을 이행하다가 이해하지 못하는 업무 지식이 있으면 공부하고 훈련받아야 한다. 이것은 정상적인 삶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제시한 각종 실행 원칙은 전부 정상 인성의 사유가 이를 수 있는 것, 사람이 알아듣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들로, 정상 인성의 범주를 전혀 넘어서지 않는다. 또한, 그것은 다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 것들로, 하나도 비상식적인 것이 없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초인이나 위인이 되라고 하지 않는다. 반면, 덕행 측면의 말은 사람에게 한사코 초인이나 위인이 되기를 추구하라고 한다. 국가와 민족의 대업을 짊어지라고 할 뿐만 아니라 죽을 때까지 온몸을 바치라고 요구한다. 이는 자기 목숨을 내놓으라는 것으로, 하나님의 요구와 완전히 상반된다. 하나님은 사람의 생명에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 하나님은 언제나 사람의 안전을 지키고, 사람이 시험이나 위험한 상황에 빠지지 않도록 지키며, 사람의 목숨을 보호해 준다. 그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사람이 제대로 살아가게 하기 위함이다. 사람이 제대로 살아가게 하는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초인이 되라거나 마음에 천하를 품고 국가와 백성을 걱정하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대신해 만물을 주재하고 지배하며, 인류를 주재하라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피조물의 위치에 서서 피조물의 본분을 잘 이행하고 사람이 이행해야 할 본분, 해야 할 일을 하라는 것이다. 네가 해야 할 일은 무척 많다. 하지만 그 많은 일에는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고, 마음에 천하와 인류, 국가, 교회, 하나님의 뜻, 인류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대업을 품는 것이 절대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한 것들은 들어가 있지 않다. 그럼 네가 해야 할 일에는 어떤 것들이 포함되겠느냐? 너에 대한 하나님의 부탁과 하나님이 네게 맡긴 본분, 하나님 집에서 각 시기에 네게 제시한 요구들이 포함된다. 간단하지 않으냐? 실행하기 쉽지 않으냐? 무척 간단하고, 실행하기 쉽다. 하지만 사람은 늘 하나님을 오해하면서 하나님이 자신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여긴다. 어떤 이들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 스스로를 너무 소중히 여기거나 육을 돌봐서는 안 돼. 고난을 많이 겪어야지. 밤에는 너무 일찍 자지 말아야 하고. 너무 일찍 자면 하나님이 좋아하지 않으실 거야. 아침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자면서 밤을 새워 가며 본분을 이행해야 된다고. 성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새벽 두세 시까지는 버텨야 해.’라고 생각하는데, 그 결과 몸이 버티지 못하고 피로로 망가지며, 걷기도 힘든 지경이 된다. 그러면서 입으로는 본분을 이행하다가 지쳐서 그렇게 됐다고 하는데, 이는 사람의 무지몽매함으로 인한 결과 아니겠느냐? 또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특별하고 좋은 옷을 입으면 하나님은 좋아하지 않으실 거야. 매일 고기와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하나님께서 좋아하지 않으실 테고. 하나님 집에서는 오직 죽을 때까지 온몸을 바치기만 해야 해.’라고 생각한다. 그는 하나님을 믿으면 죽도록 본분을 이행해야 한다고, 그러지 않으면 하나님이 자기를 용서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정말 그렇겠느냐?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본분 이행에 책임감을 갖고 충성을 다하라고 요구하지만 자신의 몸을 돌보지 말라고 한 적은 없으며, 대충 건성으로 시간만 때우라고 한 적은 더더욱 없다. 몇몇 리더 일꾼은 사람들이 이렇게 본분을 이행하도록 안배하면서 효율을 구하지 않고 시간과 정력만 소모시키는데, 이는 사실 생명을 낭비하는 것이다. 결국, 시간이 흐르자 어떤 사람들은 몸에 문제가 생겼다. 허리가 안 좋아지고 무릎에도 통증이 생기며, 컴퓨터만 봤다 하면 눈이 침침해지니 어찌 된 것이겠느냐? 이는 누가 초래한 문제겠느냐? (스스로가 초래한 일입니다.) 하나님 집에서는 밤 10시에 시간 맞춰 자라고 요구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밤 11~12시가 되어야 잠을 청한다. 이는 다른 사람의 휴식에도 영향을 준다. 또 어떤 이는 정상적으로 쉬는 사람을 보고 안일을 탐한다고 정죄하는데, 이는 잘못된 일이다. 제대로 쉬지 않으면 어떻게 사역을 잘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은 이에 대해 뭐라고 했느냐? 하나님 집에서는 어떻게 규정하고 있느냐? 무엇이든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 집의 규정에 따라야 정확하다. 어떤 사람들은 터무니없이 이해하여 늘 극단을 달리면서 다른 사람을 속박하는데, 이는 진리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 또 몇몇 그릇된 부류는 분별력이 전혀 없어서 본분을 이행할 때는 그렇게 밤을 새워야 한다고, 일이 바쁘지 않아도 밤을 새워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졸려도 자지 말고, 병이 나도 말하지 말며, 진료는 더더욱 받지 말아야 한다고 여긴다. 진료를 받는 건 너무 시간 낭비고, 본분 이행에 지장을 준다면서 말이다. 이런 관점이 올바르냐? 사람은 왜 하나님을 믿고 그렇게 많은 설교를 들었는데도 여전히 이렇게 황당한 관점을 갖고 있는 것이냐? 하나님 집의 사역지침은 어떻게 규정하고 있느냐? 밤 10시에 시간 맞춰 자고, 아침 6시에 일어나는 등 반드시 8시간의 수면 시간을 보장해야 한다. 이 밖에도 거듭 강조하는데, 업무 외에 남는 시간에는 몸을 관리하고 운동을 하며 음식을 건강하게 규칙적으로 섭취해야 한다. 이렇게 본분을 이행하면 몸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이해하지 못해 항상 원칙과 규칙을 지키지 않으며 쓸데없이 밤을 새우고 아무거나 먹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다가 몸에 병이 나면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게 되니 그때는 후회해 봤자 소용이 없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상)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12)>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니까 하나님의 요구는 정말 실제적이었어요. 배고프면 밥을 먹고, 졸리면 자고,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한다고 하셨죠. 하나님은 사람에게 슈퍼맨이 되거나 인간의 정상 패턴을 어기면서 본분을 이행하라고 요구하지 않으셨어요. 근데 저는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이해를 가지고 있었죠. 일찍 자면 그건 농땡이를 부리는 거고 침식을 잊고 밤을 지새우면 충성을 다해 본분을 이행한 거라고 생각했어요. 특히 이방인들이 직업 정신이 대단한 걸 보고 저도 그렇게 했어요. 그리고 학교나 사회에서도 그런 모범 노동자를 본받으라고 이야기하고요. 그들 중 일부는 직장에서 수십 시간을 버티다가 나중에 과로로 쓰러지기도 하고 심지어 일터에서 죽는 사람도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의 헌신적 정신을 후세들이 칭찬하고 추앙하고 있는데, 제가 그런 잘못된 관점을 받아들이고 있었어요. 그래서 밤을 새우는 행동으로 제가 책임감을 갖고 본분에 임하고 있다는 걸 증명하려고 했어요. 사실 밤 11시나 12시가 되면 심장이 두근거렸고 다음 날 일찍 일어나면 머리도 흐릿하고 몸도 무거웠어요. 한참 컨디션 조절을 하고 나서야 업무에 돌입하곤 했어요. 집중력이 떨어지니 본분에 오류도 더 많이 생겼고 효율성도 떨어지더라고요. 게다가 아침에 늦게 일어나니까 영 생활도 못 하고 일을 시작해야 했는데 매일 패괴 성품을 드러내고도 성찰하지 못했고, 본분에 생기는 문제점도 정리하지 못했어요. 본분 이행은 그저 힘만 쓰는 상태에 머물러 있었고, 생명 진입도 없었어요. 본분 효과도 점점 더 떨어졌죠. 저는 사람들에게 우러름과 인정을 받기 위해 두세 시간을 더 버텼지만 정작 사역 효율은 끌어올리지 못했고, 장기간 그러다 보니 몸도 더 망가졌어요. 밤샘으로 저의 충성된 본분 이행을 증명하려고 했는데, 이건 가장 어리석고, 치우친 방법이었어요. 그리고 사탄이 주입해 준 “죽을 때까지 온몸을 바쳐야 한다.”, “봄날의 누에는 실을 다 뽑아내야 죽고, 초는 다 타버려야 눈물이 마른다.”와 같은 이런 사상과 관점은 사람에게 해롭고, 사람의 생명을 파괴하는 거였어요. 하나님만이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셨고 사람에게 바른 생활 규칙을 정해 주셨고 정상적인 패턴에 따라 생활하고 일하라고 하셨어요. 이건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죠. 하나님은 사람에게 피조물로서의 본분을 잘 이행하면서 충성을 다하라고 하셨는데, 그 충성은 우리 몸을 병들고 망가뜨리라는 게 아니라 우리가 본분 이행에서 힘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며 진리를 구하고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고 자신의 패괴 성품을 잘 성찰하기를 바라시는 거였어요. 근데 제가 보인 건 어리석은 충성이었어요. 오직 사람들을 미혹하기 위해 가식적으로 만들어낸 좋은 행동에 불과했죠. 이걸 깨닫게 됐을 때, 후회와 미안함이 마구 밀려왔어요. 더는 이런 그릇된 마음으로 본분을 이행할 수 없었어요.

다음 날 저는 업무 시간을 다시 짰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아침저녁으로 운동했어요. 한동안 그렇게 하니까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떨리는 증상은 거의 없어졌어요. 그리고 일찍 일어나니까 집중해서 영 생활 할 시간도 생기고 체험 간증문을 쓸 시간도 생기니 마음도 차분히 할 수 있었어요. 합리적으로 시간을 잘 배분하니까 업무 효율도 올라가고 정신 상태도 많이 좋아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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