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은 후의 반성
2019년 8월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리더로부터 외지에서 온 자매 한 명을 데려오라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자매의 집 주소를 보니 인근 교회의 구역 내에 있더군요. 보자마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우리 교회로 보내지? 가까운 곳 놔두고 굳이 먼 곳으로?’ 그러다 곧 생각을 바꿨죠. ‘우리 교회는 모든 사역에서 일손이 필요해. 우선 자매를 데려온 후에 다시 생각하자. 어떤 본분을 이행하게 되든 한 명이라도 협력할 사람이 많다면 좋은 거잖아.’ 편지에서 또 이 자매 이름이 주윈(朱雲)인 것을 보고 단번에 기억났습니다. ‘주윈 자매라면 몇 년 전에 만난 적이 있어. 마흔 살 좀 넘었는데 이해력이 좋은 자매였지 아마. 그 사람이 맞고 우리 교회로 온다면, 모르긴 몰라도 충분히 리더 일꾼이 될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되면 나한테 큰 도움이 되겠지.’ 이런 생각에 저는 너무 기뻤고,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당장이라도 그녀를 교회로 데려오고 싶었습니다.
저는 편지에 적힌 주소 대로 주윈의 집에 찾아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런데 막상 문이 열리고 눈앞에 나타난 사람은 너무 늙어 보였고, 제가 알던 주윈도 아니었습니다. 얼른 “죄송합니다. 잘못 찾아왔네요!”라고 말하고 돌아서 가려는데 그녀가 따라오더니 다급하게 묻더군요. “누굴 찾아오셨어요?” 제가 “주윈 씨요.”라고 대답하자 그녀가 황급히 말했습니다. “저예요!” 저는 주윈 자매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매가 중국 공산당에 잡혀가 삼 년 넘게 옥살이를 했고, 출소 후에도 여전히 경찰의 감시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향에서는 예배할 수 없으니 하는 수 없이 이곳 아들 집으로 왔다며, 교회 생활을 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자매의 상황을 안 저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멍해졌습니다. ‘내가 알던 주윈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녀를 교회에서 받아들이면 큰 도움이 돼 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의 주윈 자매는 여전히 경찰의 감시를 받고 있으니 어떤 본분도 이행할 수 없어. 게다가 안 그래도 교회에 양육 인원이 부족한데, 그녀와 따로 예배해 줄 사람까지 배정해야 해. 그러다 그녀와 만난 형제자매들이 경찰에게 감시당하기라도 한다면 득보다 실이 훨씬 더 클 거야. 안 되겠다. 그녀를 우리 교회에 데려올 수는 없어. 돌아가서 리더에게 편지를 보내 아무래도 그녀는 인근 교회로 보내는 게 좋겠다고 말해야겠어.’ 자매의 상황을 다 알게 된 후 저는 곧바로 나오려고 했습니다. 그녀에게 내적 상태가 어떤지, 어려움은 없는지 묻지도 않고 말입니다. 자매가 다급하게 묻더군요. “언제 다시 오시나요?” 저는 대강 얼버무리듯 대답했습니다. “우선 기다리고 계세요. 돌아가서 의논해 보고 다시 얘기할게요.”
돌아오는 길 내내 걸으면서도 제 머릿속은 온통 원망뿐이었습니다. ‘리더는 정말 인원 배치를 못 하는 것 같아. 주윈 자매 집이 인근 교회에서 그렇게 가까운데 왜 그 교회로 가게 하지 않는 거지? 우리 교회까지 거리가 그렇게 먼데, 오게 된다면 앞으로 그녀와 예배할 때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길에다 낭비하겠어….’ 이렇게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계속 북쪽으로 걸었습니다. 넋 놓고 걷고 또 걷다가 문득 길을 잃었다는 걸 알았고, 주위에 길을 물어보고 나서야 제가 반대 방향으로 너무 많이 와서 도시를 벗어나 버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가슴이 턱 막히며 심란하더군요. ‘전에 와 본 적도 있는데 어떻게 길을 잃을 수가 있지?’ 그때는 저도 이 일을 그리 깊이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집에 돌아온 저는 서둘러 리더에게 주윈을 인근 교회로 보내자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답신을 보낸 후 며칠 동안 마음이 줄곧 불안했습니다. 꼭 무슨 일이 일어난 것처럼요. 하나님 말씀을 읽어도 진정되지 않고, 설교를 들어도 머릿속이 흐리멍덩했습니다. 제가 뭔가 하나님 뜻에 부합하지 않은 일을 했다는 것을 깨닫고 곧바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스스로를 인식할 수 있도록 저를 이끌어 달라고요. 기도를 마친 후 불현듯 며칠 전 길을 잃었던 일이 떠올랐고, 주윈을 받아들이는 일에서 고려했던 거라고는 제 이해득실뿐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에게 이익이 된다고 생각했을 때는 기꺼이 하려고 했다가, 저에게 이득이 없다고 생각했을 때는 거절하고 푸념까지 늘어놓았던 겁니다. 형제자매의 생명을 위한 고려는 조금도 없었지요. 하나님 말씀을 몇 대목 보고 나서야 제 문제를 조금이나마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익과 관련된 일은 사람을 가장 잘 드러내며, 이익은 모든 사람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사람이 매일 접하는 모든 일은 다 이익과 연관된다. 예를 들어, 말을 하고 일에 관해 논할 때 어떤 이익과 관계가 있겠느냐? 두 사람이 어떤 일에 관해 논하는 것은 누구의 말재간이 좋고 누구는 말재간이 좋지 않은지, 누가 사람들에게 우러름을 받고 누구는 무시당하는지 등과 관계가 있다. … 사람이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또 어떤 부분과 관계가 있겠느냐? 일을 처리할 때 사람은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판단하고 계산하고 궁리하며, 어떻게 해야 자신에게 이롭고 어떻게 하면 이롭지 않은지, 어떻게 해야 더 큰 이익을 얻고 어떻게 하면 최소한 이익을 잃지 않게 될지, 어떻게 해야 최고의 명예와 물질적인 대우를 받을 수 있고 자신이 최대 수혜자가 될 수 있을지 등에 관해 머리를 쥐어짜며 생각한다. 이는 일이 닥쳤을 때 사람이 쟁취하려는 두 가지 측면의 이익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9조(1)> 중에서),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고 진리를 깨닫기 전까지는 사탄의 본성이 사람의 내면에서 주도권을 잡고 사람을 지배한다. 그 본성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겠느냐? 예를 들어, 너는 왜 이기적으로 구는지, 왜 자신의 지위를 지키려 하는지, 왜 그렇게 정에 치우치는지, 왜 그 불의한 것과 악을 좋아하는지, 그러한 것들을 좋아하는 근거는 무엇인지, 그것들은 어디에서 왔는지, 너는 왜 그것들을 받아들이기 좋아하는지 등이 있다. 너희는 그것이 주로 사람의 내면에 사탄의 독소가 들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제 알았다. 사탄의 독소는 무엇이냐?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느냐? 예를 들어, 네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합니까?”라고 물으면 사람들이 모두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 말은 문제의 근원을 보여 준다. 사탄의 철학이나 논리는 이미 사람의 생명이 되었다. 사람이 무엇을 추구하든 사실 모두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모두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라는 이 말은 사람의 생명 철학으로, 사람의 본성을 대변하기도 한다. 이 말은 이미 패괴된 인류의 본성이 되었다. 바로 패괴된 인류의 사탄 본성을 생생하게 묘사한 말인 것이다. 사탄의 본성은 이미 완전히 패괴된 인류의 생존의 토대가 되었다. 몇천 년간 패괴된 인류는 사탄의 이 독소에 의지해 오늘날까지 살아왔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어떻게 베드로의 길을 갈 것인가> 중에서) 하나님 말씀에서 폭로한 것은 바로 저의 내적 상태였습니다. 저는 확실히 이기적이고 비열했습니다. 어떤 일을 마주할 때 번번이 제 이익을 따져 보고,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그 이익을 극대화하면서도 형제자매에게는 추호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교회의 사역은 말할 것도 없었고요. 리더에게서 주윈을 받아들이라는 편지를 받았을 때, 저는 자매가 우리 교회에 오면 여러 사역을 하면서 큰 도움이 돼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제 부담도 한결 덜 수 있고, 사역 성과를 높이는 동시에 제 체면도 세울 수 있을 테니 하루빨리 그녀를 데려오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죠. 그런데 막상 만나 보니 제가 알던 그 자매가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안전상의 위험 요소까지 안고 있어서 교회에서 본분을 이행하기도 힘든 데다 그녀만을 위해 일대일로 예배드리도록 인원을 따로 배정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거부감이 들더군요. 사역 성과를 높여 제 체면을 세워 주기는커녕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도 높았으니까요. 저는 리더의 인원 배정이 불합리하다고 원망하며 서둘러 자매를 인근 교회에 떠넘겼습니다. 저는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라는 사탄의 독소에 기대 살면서 점점 이기적이고 비열해진 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해득실 외에는 안중에도 없고 머릿속에 온통 저 자신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지요. ‘사람의 마음을 속속들이 감찰하시는 하나님이신데, 어떻게 내가 했던 이 모든 생각들을 혐오하지 않으실 수 있겠어? 주윈 자매가 이미 인근 교회로 가게 됐으니 이 일에서는 나도 아쉬움이 남지만, 앞으로 더는 내 이익만 고려하지 말고 꼭 하나님 말씀에 따라 실행해야겠어.’
시간이 지나 리더에게서 또다시 편지를 받았습니다. 중국 공산당에 쫓겨 외지에서 도피 중인 형제자매들이 있는데, 우리 교회로 배정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편지를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이번에는 더 이상 내 이익을 따져선 안 돼. 이 형제자매들이 본분을 이행할 수 있든 없든, 기꺼이 받아들여서 교회 생활을 할 수 있게 해 주고 싶어.’ 저는 리더가 전해 준 주소로 찾아가 그들을 교회로 데려왔고, 적절하게 배치했습니다. 이렇게 실행하고 나니 마음이 정말 편하고 차분해졌습니다.
그 후 저 역시 경찰의 감시를 받게 됐고, 안전상의 위험 요소 때문에 형제자매들을 만날 수 없어 예배는 물론이고 본분도 이행할 수 없게 됐습니다. 정말 힘들고 괴로운 나날이었습니다. 저는 형제자매들과 함께 예배하고 본분을 이행하던 때를 자주 그리워했고, 다시 만나 모두 함께 진리를 교제하며 속 얘기를 나눌 수 있기를 고대했습니다. 교회 생활에 대한 갈망과 형제자매들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쳐 애가 탔습니다. 그제야 저는 중국 공산당에 쫓기던 그 형제자매들이 교회 생활을 할 수 없고, 다른 형제자매들을 만날 수 없었을 때 어떤 심경이었을지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제가 인근 교회로 떠넘겼던 주윈 자매가 떠올랐습니다. 저는 그저 그녀가 본분도 이행할 수 없고, 교회에서 그 어떤 역할도 못 할 거라는 생각만 했을 뿐, 그녀가 중국 공산당에 붙잡혀 삼 년 넘게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얼마나 고통받았을지, 출소 후에도 여전히 감시받으며 형제자매들을 못 만나고 교회 생활도 하지 못하는 심경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었을지는 조금도 고려하지 않았던 겁니다! 주윈 자매가 예배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쫓기듯 고향을 떠나 우리 지역까지 온 것은 오로지 형제자매와 만나 교제하고 싶은 마음에서였을 텐데, 그런 그녀를 제가 문밖으로 내쳤습니다. 위로의 말 한마디, 조금의 동정심도 없이 말입니다. 생각할수록 자책감이 들었습니다. 그때 왜 그렇게 냉정하고 무자비했을까요? 그러다 하나님께서 적그리스도를 폭로하신 말씀을 보고, 제 문제를 훨씬 더 명확하게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적그리스도의 음험함과 악랄함은 주로 무엇을 하든 목적성이 유난히 강한 모습으로 드러난다. 그들은 먼저 자기 이익부터 고려한다. 동시에 수법이 비열하고, 졸렬하고, 야비하고, 비루하고, 떳떳하지 못하다. 그가 일을 처리하는 방식과 사람을 대하는 방식 및 원칙에는 진정성이 조금도 없다. 그는 사람을 대할 때 그저 이용하고 우롱하며, 이용 가치가 없어지면 바로 걷어찬다. 만약 네가 그에게 이용 가치가 있다면 그는 거짓된 관심을 보일 것이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어려운 점은 없나요? 어려운 점이 있으면 제가 해결해 드릴 테니 말씀만 하세요. 제가 있잖아요. 우리 사이가 보통 사이도 아닌데요!” 참으로 ‘극진한 보살핌’이다. 하지만 어느 날 네게 이용 가치가 사라진다면 그는 바로 관계를 끊고 너를 한쪽으로 걷어찬 다음 상대도 안 해 줄 것이다. 마치 애초에 모르는 사이처럼 말이다. 네가 정말로 일이 생겨서 그를 찾아 도움을 청하면 그는 돌연 태도를 바꿔 처음 약속할 때처럼 듣기 좋은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 때문이겠느냐? 네가 이용 가치를 잃었기 때문에 상대해 주지 않는 것이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만약 그가 너의 잘못을 발견하고 약점을 잡는다면 빈정거리고 비웃을 것이요, 심지어 너를 정죄할 것이다. 이 수법이 어떠하냐? 선량하고 진정성 있는 모습이냐? 적그리스도는 사람을 대할 때 이렇게 음험함과 악랄함을 드러내는데, 여기에 조금이라도 인성이 있겠느냐? 사람에 대한 진정성이 조금이라도 있겠느냐? 절대로 없다. 그는 무슨 일을 하든 자기 이익과 자기 체면, 명성, 사람들 가운데서의 지위와 명망을 위한 것이다. 자기가 만난 사람 중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다 이용하고, 이용할 수 없는 사람은 하찮게 여기며 상대하지 않는다. 네가 먼저 다가가더라도 그는 상대해 주지 않으며, 심지어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만약 언젠가 그에게 네가 필요해진다면 갑자기 너를 대하는 태도가 바뀔 것이다. 몹시 친절해지고 서글서글해져서 너를 어리둥절하게 할 것이다. 너에 대한 그의 태도가 왜 바뀌었겠느냐? (이용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네게서 이용 가치가 보이면 그는 태도를 바꾼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부록 4 적그리스도의 인품과 성품 본질에 관한 정리(1)> 중에서) 하나님 말씀에서 폭로한 것을 보면서 너무 괴롭고 자책감이 들었습니다. 제가 한 모든 행동이 적그리스도와 똑같았으니까요. 무슨 일을 하든 목적성이 너무 강하고, 자신의 이익만 고려하며, 타인과의 관계에서 늘 계산적이고 남을 이용하며,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고, 정직하고 선량한 성분이 전혀 없었습니다. 장기간 중국 공산당에 감시당하며 교회 생활을 할 수 없었던 주윈 자매의 처지를 마땅히 헤아려서 사랑으로 그녀를 돕고 붙잡아 주었어야 했습니다. 또 신속히 예배를 마련하고 그녀가 할 수 있는 만큼 본분을 이행할 수 있게 해 주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자매가 안전상의 위험 요소를 안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그녀를 교회에 받아들이면 교회 사역에 이렇다 할 역할을 하기는커녕 도리어 그녀에게 정력을 쏟고 대가를 치르게 될까 봐 걱정했습니다. 심할 경우 다른 형제자매에게 안전상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고 교회의 사역 성과에도 영향을 미치리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그녀가 교회 생활을 못 하는 것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그녀의 내적 상태나 어려움에 대해서도 일언반구 묻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그녀를 밀어낼 생각뿐이었고, 그녀를 우리 교회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정말이지 냉혹하고 이기적이었죠. 저 자신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깟 사소한 일로 형제자매를 배려하지 못하고, 사람에 대한 사랑과 이해가 조금도 없다면, 이전에 내가 형제자매를 도왔던 것은 진심이 있었다고 할 수 있을까?’ 반성을 통해 제가 형제자매를 도왔던 것 대부분이 교회 리더였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형제자매를 돕고 잘 붙잡아 주어야만 모두가 정상적인 내적 상태를 유지해 본분 이행에도 성과가 있을 것이고, 그래야 제 체면도 선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그제야 제가 한 모든 행동이 하나님 마음을 헤아리며 리더의 책임을 다한 것이 아니라 제 명예와 지위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겉으로는 본분을 이행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본분을 이행한다는 명분 아래 개인의 이익을 채웠고, 형제자매를 제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는 발판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제가 한 모든 행동이 하나님이 몹시 혐오하는 행동이었고, 제가 걸은 길이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길이었습니다! 교회 생활을 잃은 상실감과 고통을 직접 느껴 보지 못했다면, 저는 형제자매들이 예배드리지 못하고 교회 생활을 할 수 없어 느끼는 심경의 고통과 괴로움을 영원히 느끼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 어둡고 악독한 적그리스도 성품은 더더욱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람이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것의 잘못은 추구하는 목표가 사탄에게 속하는 것, 사악하고 정의롭지 못한 것이라는 데 있다. 사람이 명리와 지위, 이러한 개인적 이익을 추구할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탄의 도구이자 출구, 나아가 사탄의 화신 노릇을 하게 된다. 교회에서 부정적 역할을 하는 것이다. 또한, 교회 사역과 정상적인 교회 생활, 하나님 선민들의 정상적인 추구를 방해하고 파괴하는 역할을 한다.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9조(1)> 중에서) 하나님 말씀의 폭로를 통해 저는, 본분을 이행하면서 진리를 실행하지 않고 자신의 명예와 지위만을 지키고자 한다면 아무리 대가를 치르고 헌신하더라도 교회에서 부정적인 역할만 하게 된다는 것, 그리고 이는 사탄의 출구로,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해 형제자매의 생명 진입에 손해를 끼칠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주윈 자매가 고향을 떠나 우리 지역까지 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 교회 생활을 하고 싶어서였음을 생각해 보면, 그녀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갈망했던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인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주윈 자매를 그런 식으로 대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교회 리더로서 주윈 자매가 어려움을 겪을 때 돕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그녀를 다른 교회로 떠넘길 생각만 했으니, 정말이지 냉정하고 무자비했습니다. 제가 한 일을 생각하면 저 자신이 너무 밉고 자매에게 미안했습니다. 특히 하나님께도 너무나 죄스러웠지요. 저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일할 때 제 이익만 생각했고 형제자매에 대한 사랑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너무 이기적이고 너무 악독했습니다! 하나님, 회개하길 원합니다.’
그 후 저는 또 하나님 말씀을 보면서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심 없는 공급과 보살핌을 느꼈고, 제 이기심과 악독함에 대해 한없이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많이 들었든, 얼마나 많은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든, 얼마나 많은 진리를 깨달았든, 얼마나 많은 실제를 살아 냈든, 그리고 얼마나 많은 성과를 얻었든 상관없이, 네가 알아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진리, 길, 생명은 모든 사람에게 대가 없이 공평하게 베풀어진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결코 사람이 하나님을 믿은 기간이나 겪은 고통의 양에 따라 다르게 대우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절대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오래 믿었고 고통을 많이 겪었다고 해서 우대하거나 축복하지 않는다. 또 나이, 외모, 성별, 가문 등을 이유로 사람을 차별하지도 않는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동일한 것을 받으며,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도 적게 주거나 많이 주지 않는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공평하고 합리적으로 대한다. 하나님은 제때에 적당량을 공급해 사람이 굶주림, 추위, 갈증에 시달리지 않게 하며, 사람의 마음에 필요한 모든 것을 충족시켜 준다. 하나님이 이런 일을 할 때, 사람에게 어떤 요구를 하느냐? 하나님이 이것들을 사람에게 베풀 때, 하나님에게 약간이라도 사심이 있느냐? (사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무런 사심도 없다.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은 모두 인류를 위한 것이며, 인류의 모든 고통과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이로써 인류가 하나님으로부터 진정한 생명을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이것이 사실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은 하나님 경륜의 가장 큰 수혜자이다> 중에서)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모두에게 하나님은 사심 없이 공급해 주시고, 크나큰 대가를 지불하시면서도 보답을 바라지 않으십니다. 오로지 그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고, 종국에는 성품의 변화를 이루어 진정 사람답게 살 수 있기만을 바라시지요. 그런데 저는 형제자매를 대할 때 언제나 이용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따져서 이용 가치가 있으면 대가가 크더라도 기꺼이 지불하고, 이용 가치가 없으면 상대하기도 싫어했습니다. 말 그대로 ‘이익이 없이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었죠.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 그렇습니다. 교회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형제자매라 할지라도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다면, 악인이나 적그리스도, 불신파가 아니라면 도와줘야 할 대상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도울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이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일입니다. 특히 중국 공산당에 쫓기거나 지명 수배되어 집이 있어도 돌아가지 못하는 형제자매들은 더 잘 접대해 주고, 안전을 보장해 주어야 합니다. 더구나 이는 선행이지요. 이런 형제자매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한 사람의 인성을 아주 명확하게 보여 줍니다. 저는 몹시 후회됐습니다. 다시 한번 본분을 이행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더는 이전처럼 이기적이고 비열하게 형제자매와 지내면서 제 이익만 따지지 않을 것입니다. 전심전력을 다해 형제자매를 돕는, 인성과 이성을 갖춘 사람이 될 것입니다.
몇 달 후 저는 마침내 본분을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리더가 제게 안전상의 위험 요소가 있는 한 자매를 붙잡아 주는 일을 맡겼지요.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렵게 본분을 이행하게 됐는데, 또다시 자매를 만난 일 때문에 만에 하나 연루되면 어떡하지?’ 순간 저는 제 내적 상태가 잘못됐음을 깨닫고 얼른 하나님께 자신을 저버리고 자매를 돕고 붙잡아 주는 일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기도했습니다. 함께 예배하고 하나님 말씀으로 교제하는 동안 자매는 소극적인 상태가 차츰 호전되고, 하나님을 증거하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온 힘을 다해 형제자매를 도울 때 마음이 한결 편안하더군요.
전에는 늘 본분 이행에 뒤따르는 괴로움과 고생은 거뜬히 감당할 수 있고,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마음도 가진, 인성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실을 통한 드러남과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폭로를 통해, 저는 자신이 오로지 제 이익만 꾀할 뿐 다른 데는 관심도 없는 이기적이고 냉정한 사람이며, 사탄에 의해 패괴되어 정말 사람다운 모습이 없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저는, 형제자매를 어떻게 대해야 비로소 인성과 이성을 갖춘 사람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형제자매와의 관계에서 늘 제 이익을 꾀했던 태도를 버릴 수 있게 되었고, 형제자매에 대해 어느 정도 참되고 진실한 마음으로 돕고 붙잡아 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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