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나이 때문에 슬퍼하지 않습니다

2025.7.2

슈쥐안(秀娟) 자매에게,

안녕하세요! 보내주신 편지 잘 받았습니다. 편지를 보니 요즘 젊은 형제자매들과 협력하여 본분을 이행하려니 기력과 체력이 달려 마음의 격차를 느끼고, 앞으로 나이가 들수록 이행할 수 있는 본분이 점점 줄어들어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갈 희망도 희박해질까 봐 걱정된다고 하셨더군요. 자매님의 이런 걱정, 저도 요즘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제 체험을 좀 얘기하고자 이렇게 자매님께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작년 8월, 저는 양쉰(杨寻) 형제와 함께 컴퓨터 기술 방면의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그땐 따로 시간을 내어 복음 설교문이나 생명 체험 간증문도 쓸 수 있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매우 기뻤고 이 본분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양쉰 형제는 젊어서 젊은이의 패기와 활력이 넘쳤고, 두뇌 회전도 빨라 기술을 배우는 데에 제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비록 제 두뇌 회전이나 자질, 기력이 젊은이만 못했지만, 얼마 동안 양쉰 형제에게 많은 업무 지식을 배우게 되어 속으로 매우 기뻤고, 이번 본분 이행의 기회를 잘 잡겠다고 남몰래 다짐했습니다. 그 후, 저는 양쉰 형제와 함께 업무를 배우고, 시간을 내어 설교문을 쓰는 훈련도 했으며, 복음 전파 방면의 진리도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본분을 이행하니 굉장히 알차다고 느꼈고, 동시에 두 가지 본분을 겸하니 구원받아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희망이 더 커졌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후, 저는 양쉰 형제와의 격차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양쉰 형제는 젊고 깨달음이 있어, 일이 닥쳤을 때 반응이 빨랐고 업무를 배우는 데에서도 성장이 빨랐습니다. 형제자매들이 기술적인 문제에 부딪히면 그는 배운 업무 지식으로 즉시 답하여 해결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기초적인 문제는 처리할 줄 알았지만, 난도가 조금만 높아져도 반응이 둔했고, 잘 잊어버리기까지 했습니다. 방금 배운 것도 금세 생각이 나지 않아 다시 자료를 찾아보고 튜토리얼을 봐야 했으며, 일부 절차는 여러 번 반복해야 겨우 익힐 수 있었습니다. 제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해 양쉰 형제가 모두 해결하고 저는 그저 보조적인 사역만 했던 문제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함께 설교문을 쓰기 시작했을 때, 양쉰 형제가 한 편을 다 써서 제출한 지 며칠이 지나서야 저는 겨우 다 썼습니다. 늘 그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고, 격차는 뚜렷했습니다. ‘만약 시간을 20년 전으로 되돌릴 수 있다면, 나도 양쉰 형제처럼 새로운 것을 빨리 받아들이고 이 본분을 감당할 수 있을 테니, 얼마나 좋을까!’ 하고 아쉬워했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제 기력, 체력, 시력, 기억력, 반응 속도 모두 따라가지 못했고, 게다가 혈압과 혈당도 높아 약으로 조절해야 했습니다. 낮에 컴퓨터를 오래 쳐다보면 시야가 좀 흐릿해졌습니다. 밤에 조용히 앉아 설교문을 쓰려 해도 얼마 못 가 온몸에 힘이 빠지고 졸음이 쏟아지는 데다 종아리까지 부었고, 억지로 버텨보아도 금세 정신이 몽롱해지기 일쑤였습니다. 양쉰 형제가 쉬라고 권해도 저는 좀 내키지 않았습니다. 제 나이가 많거나 몸이 조금 아프다는 이유로 본분을 지연시키고 싶지 않았습니다. 만에 하나 이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게 되면, 제가 이행할 수 있는 본분은 점점 더 줄어들 것이고, 결국 구원받아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겨우 30대인 양쉰 형제를 보니, 생기 넘치고 활기찬데, 저는 예순이 넘어 신체적인 조건이나 기억력, 반응 속도 모두 젊은이보다 훨씬 못하니, 더욱더 제 자신이 싫어졌습니다. 역시 젊은이가 좋고, 본분을 이행할 기회도 많으니 앞날이 창창하구나 싶었습니다! 남들은 갈수록 길이 넓어지는데, 내 길은 갈수록 좁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근심과 고통 속에서 살았고, 글이나 설교문을 쓸 의욕도 없어졌으며, 하루하루 본분을 이행하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라는 마음으로 지내게 되었습니다. 시우졘 자매님, 제 상태가 정말 엉망진창이었죠?

하루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형제자매 중 일부 연로한 사람들, 다시 말해 60대에서 80, 90대의 사람들도 많은 나이로 인한 고충을 가지고 있다. 나이가 많다고 해도 그들의 생각이 그렇게 정확하거나 이성적으로 보이지 않고 생각과 관점이 진리에 부합해 보이지도 않는다. 이들 연로한 사람도 마찬가지로 고충이 있으니 그들은 항상 이렇게 걱정한다. ‘이제 몸도 따라 주지 않고 이행할 수 있는 본분도 한정적이구나. 이 정도 본분만 이행해서 하나님이 기억해 주시려나? 병에 걸려 돌봐 줄 사람이 필요할 때도 있을 텐데 돌봐 줄 사람이 없을 때는 홀로 본분을 이행할 수도 없으니 이를 어쩌면 좋을까? 나이를 먹으니 하나님 말씀을 읽어도 기억이 안 나고 진리를 깨닫기도 쉽지 않다. 진리를 교제할 때 횡설수설하며 논리적이지 않고 이렇다 할 체험도 없구나. 나이를 먹으니 기운도 없고 시력도 나빠지고 체력도 달린다. 다방면으로 고충이 많으니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툭하면 깜빡하고 실수한다. 때로는 흐리멍덩해서 교회나 형제자매에게 폐를 끼치니, 이래서는 구원받고 싶어도, 진리를 추구하고 싶어도 힘들겠다. 이를 어쩌면 좋을까?’ … 특히 일부 연로한 사람은 풀타임으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본분을 이행하고 싶어 하지만 병을 앓고 있다. 혈압이나 혈당이 높거나 위장병이 있어 체력도 달리니 근심한다. 젊은이들이 잘 먹고 마시며 잘 뛰고 달리는 것을 보면 부러울 따름이니 이런 젊은이들을 볼수록 근심만 깊어진다. ‘본분을 잘 이행하고 진리를 추구하며 진리를 깨닫고 실행하고도 싶은데 어쩌면 이렇게도 어렵기만 할까? 정말 늙으면 쓸모가 없어지는구나! 설마 하나님에게 노인은 필요 없는 걸까? 나이를 먹으면 정말 쓸모없어지는 걸까? 구원받지 못하는 걸까?’ 어떻게 생각해도 괴롭고 즐겁지 않다. 이렇게 좋은 시기와 기회를 그냥 보내고 싶지 않지만 젊은이들처럼 전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본분을 이행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런 연로한 사람들은 자기 나이 때문에 깊은 근심과 염려, 걱정에 빠진다. 고충과 좌절, 우여곡절과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자신의 나이를 원망하고 심지어 자신을 미워하며 싫어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어떻게 하든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별수도 없고 선택의 여지도 없다. 진정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냐? 방법이 없겠느냐? (노인도 힘닿는 데까지 자신의 본분을 이행해야 합니다.) 노인이 힘닿는 데까지 본분을 이행할 수 있는 것이 가능하다. 그렇지 않으냐? 노인이 설마 늙었다는 이유로 진리를 추구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노인이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느냐? 그들도 부분적으로 깨달을 수 있다. 젊은이들도 전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노인이 항상 착각하는 한 가지는 자신이 흐리멍덩하고 기억력도 없으니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진정 그런 것이냐? (아닙니다.) 청년은 노인보다 기운이 넘치고 체력도 좋지만 이해하고 깨닫고 인식하는 능력은 사실 노인과 똑같다. 노인도 청년을 거쳐 온 것이 아니더냐? 태어날 때부터 늙은 것도 아니다. 청년 역시 결국은 늙기 마련이다. 노인은 자기가 늙어서 체력이 달리고 건강하지 않으며 기억력이 나쁘다고 청년과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사실은 차이가 없다. 여기서 차이가 없다는 것은 무엇을 가리켜 하는 말이더냐? 노인이든 청년이든 패괴 성품이 같고 여러 사물을 대하는 태도, 관점이 같으며, 여러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과 입장 역시 같다는 말이다. 그러니 노인은 자기가 늙었으니 젊은이에 비해 지나친 욕망이 적어 침착할 수 있다거나, 자기에게 야심과 욕망이 없다거나 패괴 성품이 적다고 여기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착각이다. 청년이 지위를 놓고 경쟁한다면, 노인은 지위를 두고 경쟁하지 않겠느냐? 청년이 원칙을 위반하고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한다면, 노인은 안 그러겠느냐? (그럽니다.) 청년이 교만하면 노인도 교만하지 않겠느냐? 단지 노인이 교만할 때는 나이가 들어 그렇게 날뛰거나 흥분하지 않을 뿐이다. 청년은 몸과 사고가 유연하기에 교만한 모습이 좀 더 확연한 데 반해 노인은 몸이 굳고 사고도 유연하지 않다 보니 교만한 모습이 그렇게 확연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교만한 본질과 패괴 성품은 똑같다. 노인이 하나님을 믿은 지 얼마나 되었든 몇 년간 본분을 이행했든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패괴 성품은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다. … 그러니 노인이 할 일이 없는 것도, 본분을 이행할 수 없는 것도 아니며, 진리를 추구할 수 없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해야 할 일이 많은 것이다. 네가 현세에서 축적한 여러 그릇된 견해와 황당한 논리 그리고 여러 전통적인 생각과 관념, 우매하고 완고한 것, 보수적인 것, 비이성적인 것, 치우친 것들이 마음속에 너무 많이 쌓여 있다. 청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이것들을 파헤치고 해부하여 인식해야 한다. 너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도 아니고, 툭하면 근심하고 염려하며 걱정하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네 임무도 아니고 네 책임도 아니다. 먼저, 노인은 올바른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비록 나이는 많고 몸도 상대적으로 더 노화되었지만 마음가짐은 젊어야 한다. 비록 네가 늙어 생각도 느리며 기억력도 나쁘지만 여전히 자기 자신을 인식할 수 있고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으며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면, 이는 네가 늙지 않았고 자질이 떨어지지 않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만약 70, 80대가 되어서도 진리를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분량이 너무 작아 아직 닿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 진리 앞에서 나이의 구분은 없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3)> 중에서) 하나님께서 교제하신 것이 바로 우리 노인들의 내적 상태였습니다. 노인들은 나이가 들면서 건강이 점점 나빠지고, 본분을 이행할 때 몇 가지 어려움이 생기며, 종종 힘에 부쳐 젊은이들을 부러워하곤 합니다. 저처럼 말입니다. 저는 양쉰 형제가 젊고 기억력과 건강이 좋은 것을 보니, 그가 이행할 수 있는 본분은 많고 구원받을 희망도 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반면 저는 나이도 많고 건강도 좋지 않은 데다 기억력까지 쇠퇴하고 있어 보조적인 일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만약 이 본분마저 잘 이행하지 못하면, 더 이상 할 수 있는 본분이 거의 없을까 봐, 또 구원받을 희망이 사라질까 봐 걱정되어 의기소침해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저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시는 것은 사람의 나이가 많고 적음이나 본분을 이행한 많고 적음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노인들은 단지 신체 기능이 일부 퇴화하거나 몇 가지 질병이 생긴 것일 뿐,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 데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제가 나이가 많다고 해서, 축적된 사탄의 처세 철학이나 각종 전통적인 사상 관념, 그리고 사탄의 패괴 성품이 젊은이보다 적은 것은 아닙니다. 작년 봄, 제가 복음을 전할 때, 제가 하나님을 믿은 햇수가 많아 복음 전도 경험이 좀 쌓였다는 이유로, 그 얼마 되지 않는 체험을 가지고 형제자매들 앞에서 뽐내고, 허풍을 떨며 자신을 드러내어 사람들이 저를 우러러보게 하려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제가 해결해야 할 패괴 성품과 진입해야 할 진리가 아직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것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며 진리를 실행하여 해결해야 하고, 동시에 힘닿는 데까지 제 본분을 다해야 합니다. 저는 소침한 감정 속에 살며 진리 추구하기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일들을 해낼 수 있습니다. 돌이켜보니 리더가 제게 안배해 준 본분이 꽤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양쉰 형제가 본분을 이행하느라 바쁠 때 저는 도와서 보조적인 일을 하고, 양쉰 형제가 바쁘지 않을 때는 제가 글이나 설교문을 쓰며, 평소에는 다시 본분 이행 중 드러나는 각종 패괴 성품에 유의하며 진리를 구해 해결하면 됩니다. 이렇게 실행해도 여전히 구원받을 기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늙으면 진리를 추구할 수 없고, 진리를 깨달을 수 없다고 말씀하신 적이 결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높지 않으며, 그저 사람이 힘닿는 데까지 본분을 다하고 진리 추구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나이에 관계없이 모두 구원받을 기회가 있습니다. 이 점을 깨닫고 나니 제 마음이 훨씬 환해졌고, 그렇게까지 괴롭지도 않았습니다.

하루는 제가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본분 이행은 모든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본무이고 본분 이행에는 나름의 원칙이 있으며 모두가 마땅히 진리 원칙대로 자신의 본분을 이행해야 한다. 이것이 피조물이 해야 하는 일이다. 여기에서 보수를 언급했느냐? 상을 언급했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보수나 상은 언급한 적 없다. 이는 의무이다. 의무란 무엇이냐? 의무란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하는 일로, 일한 만큼 보수를 받는 것이 적용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본분을 많이 이행하면 나중에 큰 상을 받고, 본분을 적게 이행하거나 형편없이 이행한 사람은 작은 상을 받는다고 규정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한 적 없다. 그럼 하나님은 뭐라고 했겠느냐? 하나님은 본분 이행이란 모든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본무이자 피조물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이는 진리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4조 자신을 높이고 증거한다> 중에서), 『나는 사람의 종착지를 정할 때, 그의 나이나 관록, 또는 그가 겪은 고난의 양을 보지 않는다. 그가 얼마나 가련한지에 따라 종착지를 정하는 일은 더더욱 없다. 그에게 진리가 있는지 여부만 볼 뿐, 그 외에 다른 선택은 없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너는 종착지를 위해 충분한 선행을 예비해야 한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저는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모든 피조물의 의무이자 천직이며, 본분을 많이 이행하면 큰 상을 받고 적게 이행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적게 받는다는 말은 존재하지 않으며, 이는 순전히 제 관념과 상상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결말과 종착지를 정하시는 것은 그 사람에게 진리가 있는지 없는지를 보시는 것이며, 노인이든 젊은이든 진리를 구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길을 걷는다면 바로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려는 대상이 되며 하나님께서는 그 누구도 부당하게 대우하지 않으십니다. 그건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에 의해 결정됩니다. 저는 진리 원칙에 따라 사물을 보지 않고, 사람이 한 공헌의 크고 작음에 따라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는지를 판단했으니,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알지 못하는 것이고, 더욱이 하나님에 대한 신성모독이었습니다! 바울의 경우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며 유럽의 절반 이상을 돌아다니고 많은 교회를 세워 겉으로는 큰 공헌을 한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자신의 사역과 헌신을 거래의 담보로 삼아 하나님께 면류관을 요구했습니다. 또한 늘 자신을 높이고 증거하며 하나님은 전혀 증거하지 않았고, 심지어 자신이 사는 것이 그리스도라고 말하여 하나님의 성품을 심각하게 거슬렀습니다. 결국 그는 구원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지옥에서 징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본분을 이행한 공헌의 크고 작음이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지, 마음과 뜻을 다해 본분을 이행할 수 있는지를 봐야 합니다. 시우졘 자매님, 우리가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관념과 상상으로 문제를 보기 좋아하니, 그러다 보면 하나님의 마음을 오해하기 쉽습니다!

그 후 저는 스스로 반성하며, 제가 걱정하고 괴로워하는 이면에 무엇이 저를 지배하고 있는지 구했습니다. 구하는 중에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적그리스도는 본분을 이행하기로 결정하기 전에 앞날이나 복받는 것, 좋은 종착지, 나아가 면류관에 마음속 깊이 한껏 기대를 품고, 큰 믿음을 갖는다. 또 그들은 이런 속셈과 포부를 갖고 하나님 집에 와서 본분을 이행한다. 그러니 그들이 이행하는 그 본분에 하나님이 바라는 진심과 참된 믿음, 충심이 있겠느냐? 이때는 참된 충심이나 믿음, 진심을 찾아볼 수 없다. 본분을 이행하기 전까지 그는 거래하겠다는 생각뿐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이익에 이끌리고 야심과 욕망으로 점철된 상황에서 본분을 이행하기로 결정한다. 그럼 적그리스도가 본분을 이행하는 속셈은 무엇이겠느냐? 거래와 교환을 하려는 것이다. 그가 본분을 이행하는 전제 조건은 ‘본분을 이행하면 반드시 복을 받고 좋은 종착지를 얻을 수 있어야 해. 하나님이 말씀하신, 인류에게 예비된 모든 복과 이점들을 다 얻어야 한다고. 그것을 얻지 못한다면 나는 본분을 이행하지 않을 거야.’라는 것이다. 그는 이런 속셈과 야심, 욕망을 품고 하나님 집에 와서 본분을 이행하는데, 얼마간 진심이 있는 것 같다. 물론 하나님을 믿은 지 얼마 안 되어 이제 막 본분을 이행하기 시작한 사람에게는 열정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안에는 진실한 믿음과 충심이 없다. 그저 그 정도의 열정이 있을 뿐, 진심을 이야기할 것은 못 된다. 적그리스도의 이런 본분 이행 태도를 통해 볼 때, 그의 내면은 거래 심리로 점철되어 있으며, 복을 받고 천국에 들어가고 면류관을 얻고 상을 받는 등 이점에 대한 욕망이 가득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표면적으로는 많은 적그리스도가 출교되기 전까지 본분을 이행한다. 심지어는 그들이 버린 것, 고생한 것이 평범한 사람들보다 많을 때도 있다. 그들의 헌신과 그들이 치른 대가, 그들이 뛰어다닌 길은 바울보다 부족하지 않다. 이는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들의 행위나 고생하고 대가를 치르려는 다짐에 관해 논한다면 그들이 아무것도 얻지 못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의 표면적인 행위에 근거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본질과 성품, 그 사람이 표출하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이 행한 모든 일의 성질과 본질에 근거한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9조(7)>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저는 적그리스도가 교회에서 본분을 이행할 때, 겉으로 아무리 포기하고 헌신하며 고생하고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것은 모두 복을 받기 위함이며, 본분을 통해 하나님과 거래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니 제 추구 관점이 적그리스도와 같았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후, 겉으로는 제가 교회의 안배에 순종하고 제 본분을 다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모두 복을 받으려는 속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복을 받기 위해 저는 자원하여 집 두 채를 빌려 접대 본분을 이행했고, 천국의 복을 얻기 위해 저는 기꺼이 고소득 직장을 그만두고 적극적으로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장래에 아름다운 종착지를 갖기 위해 저는 몸이 아파도 본분을 지체하지 않고, 더 많은 본분을 이행하면 더 큰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점점 나이가 들면서 제 본분 이행의 효율과 성과가 모두 젊은이들을 따라가지 못하자, 저는 제가 본분에서 조정되거나 교체될까 봐 걱정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제가 이행할 수 있는 본분은 더욱 줄어들고, 복을 받아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희망도 희박해질 것이라고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걱정과 근심, 고통스러운 감정 속에서 살며, 하루하루 버티는 태도로 본분을 대했습니다. 본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피조물의 직책이고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저는 본분을 복을 받는 담보로 삼았고, 복을 받을 수만 있다면 포기하고 헌신하며 고생하고 대가를 치르는 것이 아무리 많아도 상관없었습니다. 하지만 만약 복을 받을 희망이 없으면 저는 본분을 이행할 의욕도 잃었으니, 제게 양심이라고는 조금도 없지 않았겠습니까? 제가 하나님을 믿고 걸어온 길에서 이처럼 많은 하나님 말씀의 목양과 양육을 누렸다는 것을 돌이켜보면 제가 하나님께 그 어떤 요구도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생명을 주시어 제가 하나님 집으로 와서 제 본분을 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좋은 종착지가 없다고 하더라도 저는 하나님께 원망의 말을 품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해야 합니다. 저는 생각할수록 하나님께 큰 빚을 진 것 같아 복을 받으려는 욕망을 내려놓고 그릇된 추구 관점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며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묵상 시간에,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나이 든 형제자매들도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으므로 하나님은 결코 버리지 않는다. 그들에게도 취할 만한 부분과 취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나이 든 형제자매들은 처세 철학과 종교 관념이 많고, 일 처리에 여러 가지 규정이 많다. 또 항상 교조적이고, 기계적이며, 융통성이 없다. 이런 것은 취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나 나이 든 형제자매들은 어떤 문제가 닥쳐도 침착하고, 성품이 안정적이며, 이랬다저랬다 하지 않는다. 이해하는 것이 조금 느리긴 하지만 그것은 큰 문제가 안 된다. 너희들은 오직 순종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현실적인 말씀을 받아들여야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태도로 대해서는 안 된다. 또 절대 판단하거나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지 말고, 순종하면서 따르고 받아들여 실행해야 한다. 이런 조건을 갖춘다면 온전케 될 수 있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각자의 역할을 다함에 관하여> 중에서), 『젊은 형제자매든 나이 든 형제자매든 모두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을 알아야 한다. 젊은 사람은 오만하게 행동하지 말고 나이 든 사람은 소극적이거나 뒷걸음치지 말아야 한다. 또 서로의 장점을 취해 단점을 보완하고, 어떠한 편견도 없이 서로를 섬겨야 한다. 젊은 형제자매와 나이 든 형제자매 사이에 우정의 다리를 놓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서로를 더 잘 이해해야 한다. 젊은 형제자매들은 나이 든 형제자매들을 무시하지 않고, 나이 든 형제자매들은 독선적이지 않으면 이것이 조화로운 협력이 아니겠느냐? 너희 모두에게 이러한 의지가 있다면 하나님의 뜻이 반드시 너희 세대에게서 이루어질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각자의 역할을 다함에 관하여>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저는 큰 격려를 받았고, 큰 믿음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 노인들이 비록 신체 능력은 좀 떨어지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하나님의 말씀 실행에 중점을 둔다면 모두 구원받을 기회가 있습니다. 노인들은 젊은이들과 비교할 필요 없이, 자신의 장단점을 올바르게 대해야 합니다. 젊은이들은 머리가 유연하고 배우는 것이 빠른 장점이 있는가 하면, 때로는 세심하지 못한 면도 있습니다. 그에 비해 노인들은 일을 처리하는 것이 비교적 차분하고 안정적입니다. 이렇게 함께 협력하여 본분을 이행하면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 줄 수 있습니다. 저는 기술적으로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면 양쉰 형제에게 가르침을 구했고, 양쉰 형제는 꿰뚫어 보지 못하는 문제가 있을 때 저와 함께 토론했으며, 우리는 금방 의견 일치를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 둘 다 꿰뚫어 보지 못하면 리더에게 구했고, 그렇게 해서 마침내 실행의 길을 찾게 되었습니다. 또한, 저와 양쉰 형제는 누구든 상대방에게서 패괴가 드러나거나 행동이 진리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 곳을 발견하면, 체면에 얽매이지 않고 상대방에게 지적해 줄 수 있었고, 함께 솔직하게 교제함으로써 서로 유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 저는 더는 제 나이가 많아 본분을 다하지 못할까 봐 걱정하거나 근심하지 않고, 어떻게 본분을 잘 이행하여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할 수 있을까만 생각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시우졘 자매님, 이것이 제가 이 기간 동안 겪은 소소한 체험인데, 자매님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실제적인 체험 속에서 저는 하나님께서 노인들을 차별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이런 환경을 마련하여 드러내지 않으셨다면, 저도 제 안에 진리에 부합하지 않는 관점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번 드러냄은 제게 하나의 수확이었습니다. 만약 자매님께 새로운 빛 비춤과 깨우침이 있다면 저와도 편지로 나눠 주시면 좋겠습니다. 자매님의 답장을 기다릴게요!

량즈 드림

2023년 11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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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62세에 주 예수를 믿었습니다. 주님께서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천국에 들어가 영생을 얻는다는 약속을 주셨다는 사실을 알고, 저의 인생에도 희망이 생긴 느낌이었습니다. 이렇게 큰 복이 저에게 왔다고 생각하니 무척 기뻤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아들이 병에 걸린 후

중국 양러(楊樂)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이성이 너무나 부족하고, 하나님에 대한 요구가 너무나 많고 너무 지나치기까지 하는데, 이성이라고는 전혀 없다. 사람은 늘 하나님에게 이렇게 저렇게 해 달라고 요구하지만, 하나님에게 완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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