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떠나서는 본분을 잘할 수 없다

2022.5.28

필리핀 테레사

2021년 5월에 전 리더 본분을 하게 되면서 여러 지교회 사역을 맡게 됐어요. 그러니 하나님께 인정받으려면 열심히 노력해서 잘해야겠다 다짐했어요. 그래서 매일 교회 사역에 신경 썼죠. 많은 시간과 힘을 교회 집사들과 예배하는 데 쏟았고 복음 사역과 양육 사역을 어떻게 체크할지 토론했어요. 시간이 나면 새 신자들 영적 상태도 파악했고요. 이런 사역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그러니 매일 할 일이 많아서 밥도 제때 못 먹고 영 생활 하면서 하나님 말씀 볼 시간도 없었어요. 제 생각엔 열심히 노력하고 대가를 들여 본분에서 좋은 성과를 내면 하나님께 인정받고 복도 받고 좋은 종착지가 있을 것 같았어요.

본분을 잘하려고 전 육을 버리고 본분에 온힘을 쏟아부었어요. 심지어 점심 때도 새 신자랑 연락하거나 예배 내용을 생각했는데, 힘들지 않더라고요. 나중에 복음팀을 세워야 해서 서둘러 사람을 찾아 양성 인원을 뽑았어요. 새 신자들이 본분에 소극적이면 하나님 말씀을 찾아 교제하고 본분의 의의를 알게 해 줬어요. 그렇게 한동안 노력하니 복음팀이 세워졌어요. 그래도 전 만족을 몰랐죠. 제 바람은 대가를 더 들이고 실제 사역을 더 많이 하고 복음 효과를 더 끌어올리는 거였어요. 그래야 공헌이 커서 하나님께 인정받고 좋은 종착지가 있을 거라 여겼죠. 근데 본분하다 어려움이 생기면 항상 소극적이 되는 거예요. 말하자면, 지교회 리더가 사역을 어떻게 할지 몰라 하고, 새 신자가 본분에 적극적이지 않고, 또 일들을 제대로 안배하지 못하면 전 이 본분에 역량이 안 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잘하지 못하면, 좋은 종착지를 얻지 못할 것 같았거든요. 이런 생각이 들 때면 압박감이 많이 들고 힘들고 답답하고 고민이 많이 됐어요. 그땐 제 문제를 인지하지 못했어요. 그냥 내적 상태가 많이 안 좋을 때만 말씀을 보고 그랬지 그 외엔 다 본분에만 신경 썼거든요. 제가 말씀 보고 묵상하는 데 시간을 많이 쓰면 본분을 다 못 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미뤘다가 저녁에 보려고 생각했었죠. 근데 저녁이면, 몸이 너무 피곤한 거예요. 그래서 안 보고, 그렇게 생명 진입은 중시하지 않고 외적인 일에만 집중했어요. 계속 이렇게 본분하니까 너무 피곤했어요. 하루는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 본분하는 게 하나님 뜻에 맞을까? 하나님이 인정해 주실까?’ 근데 뭔가 아닌 것 같고, 본분 자세에 문제가 있다는 게 느껴졌어요. 전 그냥 일하기 바빴지, 생명 진입에 신경을 안 썼고 하나님이 주신 본분을 어떻게 해야 하나님 뜻에 합당할지 생각도 안 했었어요.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하나님, 전 본분에 효과가 없어서 하나님께 인정 못 받으면 미래가 없을까 걱정돼요. 하나님, 제가 잘못된 길을 간다면 어디가 잘못됐는지 알 수 있게 절 깨우쳐 주세요. 전 하나님을 흡족게 해 드리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절 이끌어 주세요.”

어느 날 자매님이 그러더라고요. 자긴 무슨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진리를 구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본분을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고 자기 내적 상태도 모르겠다고, 어떻게 해야 자기의 내적 상태를 잘 파악할 수 있냐고, 패괴가 나올 때 어떻게 반성해야 하냐는 거예요. 그래서 말했죠. 자기 내적 상태를 알려면 자기 생각을 잘 잡고 생각과 관점, 속셈, 행동이 하나님 말씀에 맞는지 반성해야 한다고요. 그니까 저보고 저는 어떤 식으로 자기 생각을 잡고 반성하냐는 거예요. 말을 못하겠더라고요. 정곡을 찌른 질문이었거든요. 저도 그렇게 해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도와주겠어요. 제가 사역은 많이 했지만 본분에서 진리를 구해 본 적은 없었거든요. 저도 본분에서 많은 문제에 부딪히고, 패괴도 많이 드러냈어요. 새 신자를 붙들어 줄 땐 인내심과 애정이 없고 리더의 사역을 체크할 땐 사역을 못한다고 불평했어요. 제 뜻대로 되는 게 없어 보였죠. 그때도 자신을 반성하지 않았어요. 제 생각엔 본분을 잘하고 많이 하면 하나님이 인정하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생명 진입은 신경 쓰지 않고, 말씀을 보는 것도 신경 안 썼죠. 말씀 보고 묵상하면, 본분 시간이 낭비인 것 같았어요. 겉으론 바쁘게 보냈지만 전 기꺼이 하나님께 헌신한 게 아니라 일만 하고 임무만 다한 거였죠. 내적으로 안 좋아도 반성하지 않고 진리를 구하지도 않았어요.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이 아니고, 생명 진입을 소홀히 했어요. 그저 저만의 방식과 뜻대로 본분을 한 거예요. 그때 이걸 깨닫고 걱정되더라고요. ‘하나님이 날 어떻게 보고 대하실까? 이렇게 추구하는 걸 인정하실까?’

이런 문제를 인지하게 됐을 때 자매한테 말했죠. 자매의 문제가 제 문제이기도 하다고, 저도 제 상태를 모르고 일만 하고 있는데, 저도 옳지 못한 내적 상태가 많지만 마음 쓰지 않았고 반성이나 생명 진입이 없었다고요. 그리고 같이 말씀을 봤어요. 『하나님 앞에서 진실로 마음을 평온히 하려면 반드시 의식적으로 협력을 해야 한다. 다시 말해, 너희는 모두 자기만의 영 생활 시간을 가져야 하며, 모든 사람과 일, 사물을 피해 마음을 가다듬고 하나님 앞에서 평온해져야 한다. 사람마다 영 생활에 대해 기록을 해야 한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인식과 영적인 감동이 깊든 얕든 다 기록해야 하며, 의식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평온히 해야 한다. 만약 네가 하루에 한 시간이나 두 시간 가량 진실한 영 생활을 할 수 있다면 하루의 삶이 충실해짐을 느끼고 마음은 밝아질 것이다. 그런 영 생활을 매일 해서 네 마음을 더 많이 하나님께 드릴 수 있게 되면, 네 영은 갈수록 강해질 것이며, 너의 상태는 갈수록 좋아질 것이고, 성령이 인도하는 길에 더 잘 들어설 수 있고, 하나님은 너를 곱절로 축복할 것이다. 너희의 영 생활은 의식적으로 성령의 함께함을 얻기 위한 것이지, 규례를 지키고 종교 의식을 하기 위함이 아니다. 즉, 진실로 하나님과 협력하고, 진실로 자기 몸을 쳐 복종시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러니 너희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정상적인 영 생활은 사람을 정상 궤도로 인도한다> 중에서) 이 말씀에서 깨달았어요. 아무리 바빠도 매일 영 생활 하면서 말씀을 보고 묵상하고 자기의 생각과 행동이 하나님 뜻에 맞는지 돌아봐야 해요. 근데 전 말씀을 먹고 마시며 묵상하는 걸 신경 쓰지 않고 사역을 더 하려고 말씀 보는 것도 시간 낭비라 생각했죠. 진리를 구하지도 않고 제 모든 행동이 하나님의 요구에 맞는지 돌아보지도 않았어요. 문제가 생겨도 진리를 구하지 않고 일만 하면서 제 머리와 경험으로 본분했던 거예요. 어떤 때는 내적으로 정말 안 좋아서 성령 역사를 느끼지 못해도 억지로 계속 사역을 해 나갔어요. 겉으론 정말 바빴지만 마음은 공허하고 캄캄하고 얻는 게 없었어요. 근데 말씀을 보니 알겠더라고요. 말씀을 먹고 마시며 반성하는 게 정말 중요해요. 말씀을 안 보면 자기 생각과 행동을 말씀으로 대조할 수 없고 내가 어떤 패괴를 드러냈는지도 알 수 없어요. 패괴 성품의 변화가 없다면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없잖아요. 이걸 깨닫고 나니까 정신이 들더라고요. 제 상태가 두려워져 이러면 안 되겠다 싶었어요. 또 본분하면서도 영 생활에 신경 쓰고 하나님 말씀에 진입해야겠더라고요.

그때, 같이 이 말씀을 봤어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하나님께 칭찬받고 싶다면 먼저 사탄의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 네 마음을 하나님께 활짝 열고, 완전히 하나님께로 향해야 한다. 지금 너는 하나님이 칭찬하는 일들을 하고 있느냐? 네 마음은 하나님께로 향했느냐? 네가 하는 일은 하나님이 네게 요구하는 것이 맞느냐? 진리에 부합하는 것이냐? 언제나 자신을 돌아보고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셔야 한다. 그리고 마음을 하나님 앞에 두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충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 이런 사람은 필히 하나님께 칭찬받을 것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흑암의 권세에서 벗어나면 하나님께 얻어질 수 있다> 중에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살면 성령의 함께함과 성령의 역사를 얻을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살지 않으면 사탄에게 묶여 살게 될 것이다. 사람이 패괴 성품에 빠져 살면 성령의 함께함과 역사는 없다. 네가 하나님 말씀의 범주 안에서 살고, 하나님이 요구한 상태 가운데서 살고 있다면, 너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네게 역사할 것이다. 그러나 네가 하나님이 요구한 범주 안에서 살지 않고,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고 있다면, 너는 분명 사탄의 패괴 아래에서 사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살고, 마음을 하나님께 바쳐야만 하나님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 하나님이 말씀하는 대로 따르며, 하나님의 말씀이 네 삶의 토대와 삶 속의 실제가 되어야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된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흑암의 권세에서 벗어나면 하나님께 얻어질 수 있다> 중에서) 말씀에 비춰 반성해 봤어요. 제가 본분을 적극적으로 해도 다 제 뜻과 생각대로 했더라고요. 말씀에서 벗어나 진리를 구하지 않고 표면적인 것만 신경 썼으니 하나님 뜻에 안 맞죠. 그런데도 전 본분에서 최선을 다해 대가를 들이면 하나님이 인정하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그게 아니었어요. 하나님은 외적인 헌신을 원하지 않고 사람의 진심을 원하시죠.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고 본분하며 진리를 추구하고 말씀대로 행하면서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길 바라세요. 근데 전 일만 하려 하고 본분하며 진리도 구하지 않고 드러낸 패괴 성품을 반성하고 말씀대로 행하지도 않았어요. 그제야 잘못 가고 있는 게 보였어요. 계속 그러는 건 위험하고 하나님께 인정도 받을 수 없잖아요.

나중에 바울을 폭로하신 말씀이 생각났는데, 제 잘못된 추구 관점을 조금 알게 됐어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현재 많은 사람이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을 위해 헌신해야 해.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을 위해 어느 정도 대가를 치러야 해.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해.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완수하고 내 본분을 잘 이행해야 해.’라고 생각하며 이런 내적 상태로 살고 있다. 이는 복을 받으려는 속셈에 지배된 것으로, 순전히 하나님이 내리는 상을 받기 위해, 그리고 면류관을 얻기 위해 헌신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의 마음에는 진리가 없으며, 틀림없이 글귀나 도리를 얼마간 이해한 것으로 곳곳에서 뽐낼 것이다. 이런 사람이 걷는 길이 바로 바울의 길이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한결같이 사역만 한다. 그는 사역을 많이 할수록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을 증명하고, 틀림없이 하나님을 만족게 하며, 하나님 앞에서 면류관을 얻을 자격이 있고 분명 하나님 집에서 가장 큰 복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그리스도를 위해 고생하고 전도하며 죽을 수 있는 사람, 목숨조차 돌보지 않는 사람, 또한 하나님이 맡긴 본분을 훌륭히 완수하는 사람이라면 바로 하나님이 가장 축복해 주는 사람, 바로 하나님께 가장 큰 복을 받는 사람이며, 확실히 면류관을 얻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상상하고 추구한 것이며, 바울이 걸은 길이다. 바울은 바로 이런 사상 속에서 사역하고 하나님을 섬겼다. 이런 사상과 속셈은 사탄의 본성에서 비롯된 것 아니겠느냐? 그들은 세상 사람들처럼 이 세상에서는 지식을 추구해야 하며, 지식을 갖추고 나면 남들보다 뛰어나고 관직에 나아가고 지위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지위를 얻으면 재능과 포부를 크게 펼치며 자신의 가업과 사업을 어느 수준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고 여긴다. 이방인들은 모두 이런 길을 가지 않더냐? 이런 사탄의 본성에 지배되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은 후에도 바울처럼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며 하나님 앞에서 충성심을 보여야 해. 그러면 나중에 가장 큰 면류관과 축복을 얻을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는 세상 사람들이 세상을 추구하는 것과 틀에 박힌 듯 똑같다. 그것들은 전부 똑같은 본성에 지배되는 것이다. 사람이 이런 사탄의 본성을 갖고 있으면, 세상에서 지식을 추구하고 지위를 추구하고 학문을 추구하고 남들보다 뛰어나기를 추구한다. 하나님을 믿으면 면류관과 큰 복을 얻기를 추구할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은 후에도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분명 이런 길을 걸을 것이다. 아무도 이 사실을 바꿀 수 없으며 이는 자연법칙이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어떻게 베드로의 길을 갈 것인가> 중에서) 전 제가 본분에 바른 마음으로 임한다고 여겼어요. 근데 말씀을 보면서 그 자세가 잘못된 자세라는 걸 알게 됐어요. 겉으론 본분에 적극적이었지만 하나님을 흡족게 해 드리거나 진리를 얻으려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과 좋은 종착지를 얻으려는 거였어요. 저는 책임을 다해서 사역을 많이 하고 노력도 하고 고생도 많이 하게 되면 좋은 종착지를 얻게 될 거라 여겼어요. 하나님께 복받으려고 먹고 자는 시간도 줄이고 시간을 단축하려고 말씀도 영 생활도 안 했어요. 그렇게 헌신해 아름다운 종착지를 얻으려고 한 거예요. 주인이 주는 삯을 받기 위해서 그저 일만 열심히 하는 고용인과 같았어요. 이건 하나님과 거래하는 거고 하나님을 속이는 거죠. 하나님은 사람이 거래나 토색 없이 진심으로 본분하길 바라시는데, 저는 고난받는 대가로 좋은 종착지를 얻으려고 거래하고 있었어요. 바울이 추구한 거랑 같죠. 바울이 사역을 열심히 하고 많이 한 건 면류관과 상을 얻기 위한 거였어요. 전혀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말씀을 마음에 두지도 않고 변화되려고 노력하지 않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길로 갔죠. 저도 그랬어요. 많이 사역하고 헌신해서 좋은 종착지를 얻고 복도 더 많이 받으려고 했어요. 제가 추구한 건 진리도 아니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아닌데, 하나님이 어떻게 인정하시겠어요? 말씀을 안 봤다면 제 패괴함을 몰랐을 거고 하나님의 도에 어긋난 것도 몰랐을 거예요. 나중에 리더가 잘못된 길을 가서 낳게 되는 결과를 폭로한 말씀을 봤어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리더나 일꾼들이 생겨난 연유는 무엇이고, 어떻게 생겨난 것이냐? 크게 보면 하나님 사역의 필요에 의해서, 작게 보면 교회 사역과 하나님 선민들의 필요에 의해서 생겨났다. … 그들이 이행하는 본분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은 바로 그들이 지닌 특수성에 있다. 어떤 특수성이냐? 특히 ‘인솔’이라는 역할이 두드러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교회에 몇 명이 있든 상관없이 그 리더가 바로 이끄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그 리더는 무리에서 어떤 역할을 하느냐? (이끄는 역할을 합니다.) 그는 그 교회에 있는 모든 하나님 선민을 이끈다. 그는 전체 교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 그 리더가 잘못된 길을 가면, 전체 교회의 하나님 선민에 무척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 교회의 모든 이가 리더를 따라 잘못된 길을 가게 된다. 바울은 자신이 세운 모든 교회와 자신이 복음을 전해 얻은 모든 사람을 이끌었는데, 바울이 엇나가자 그가 이끌던 교회와 사람들 역시 따라서 엇나가게 된 것처럼 말이다. 리더를 맡은 자가 엇나간 길을 걷게 되면 그들 자신에게뿐만 아니라 그들의 인솔 범위 안에 있는 형제자매들에게까지 영향을 준다.』(<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사람의 마음을 농락한다> 중에서) 말씀에서 리더가 어떤 길을 가느냐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어요. 제가 진리를 대하는 태도와 제가 가는 길과 본분에 임하는 자세는 모두의 진입에 영향이 가더라고요. 제가 잘못된 길을 가면 형제자매도 그렇게 돼요. 리더의 직책은 형제자매를 진리를 추구하는 정상 궤도로 이끄는 거죠. 근데 전 진리를 추구 안 하고, 겉면의 사역에만 신경 쓰고 하나님 말씀도 잘 안 보고 하나님과 멀어졌어요. 자기 생명 진입도 신경 안 쓰는데, 어떻게 사람들을 진리 추구로 이끌겠어요? 형제자매를 다 바울이 간 길로 이끌 수밖에 없는 거죠. 형제자매들이 진리를 추구 안 해서 결국 도태된다면 전 악을 행하는 거고, 구원받을 기회를 없애는 거잖아요. 그럼 제가 사역하고 본분한 건 선행이 아니라 악행이고 대적인 거죠. 형제자매를 이끌 때, 겉면의 일에만 신경 쓰고 말씀에서 멀어지게 하면 끔찍한 결과를 낳게 돼요. 제 패괴를 폭로하신 말씀을 보고 올바른 추구의 길과 리더의 직책이 뭔지 깨닫게 됐어요. 그래서 말씀을 보는 데 중시하기로 했어요. 진리를 구해 패괴 성품을 해결해야 잘못 가지 않잖아요.

그 후에 또 말씀을 봤어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바울과 베드로의 종착지는 그들이 얼마나 크게 기여했는지가 아니라 그들이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할 수 있었는지의 여부에 따라 판정되었다. 또 그들이 얼마나 많이 사역했는지, 그들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가 어떤지가 아니라 그들이 원래 추구한 것에 따라 결정되었다. 그러므로 자발적으로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고자 하는 것이 성공의 길이고, 진실하게 하나님을 사랑하고자 하는 길이 가장 옳은 길이며, 옛 성품을 변화시켜 순결하게 하나님을 사랑하고자 하는 것이 성공의 길인 것이다. 성공의 길이란 피조물이 원래의 본분과 모습을 되찾는 길, 즉 회복의 길이며, 하나님이 처음부터 끝까지 행한 모든 사역의 근본 취지이다. 사람의 추구에 여전히 자신의 사치스러운 요구와 불합리한 소망이 섞여 있고 성품 변화의 성과를 이루지 못한다면, 이것은 회복의 사역과 서로 어긋나며 틀림없이 성령이 행한 사역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런 추구는 하나님이 인정하는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는 추구가 또 무슨 의의가 있겠느냐?』(<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려 있다> 중에서) 『나는 사람의 종착지를 정할 때, 그의 나이나 관록, 또는 그가 겪은 고난의 양을 보지 않는다. 그가 얼마나 가련한지에 따라 종착지를 정하는 일은 더더욱 없다. 그에게 진리가 있는지 여부만 볼 뿐, 그 외에 다른 선택 기준은 없다. 너희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은 사람도 똑같이 징벌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는 어느 누구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징벌받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공의로 인해 징벌받는 것이고, 그들 스스로 저지른 갖가지 악행으로 인해 죗값을 치르는 것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너는 종착지를 위해 충분한 선행을 예비해야 한다> 중에서) 이 말씀에서 알게 됐어요. 하나님은 사람의 공헌과 고난의 양에 따라 결말을 정하시는 게 아니죠. 사람이 사역한 대로 복을 주신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어요. 수고한 만큼 좋은 종착지를 주신다고 하신 적도 없고요. 근데 전 사역을 많이 하고 본분도 많이 하고 공헌만 하면 좋은 종착지를 얻을 거라 여겼어요. 그래서 형제자매의 문제 해결과 교회 사역에 적극적이었고 몸이 고생해도 기꺼이 했었죠. 근데 하나님의 말씀을 보니까 제 관점이 틀렸더라고요. 하나님은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고 성품 변화가 있는지에 따라서 결말을 정하시죠. 바울을 보면 헌신하면서 사역과 고생을 많이 하고 교회도 많이 세웠어요. 사람이 볼 땐 공이 크지만 다 상 받고 면류관을 얻기 위한 거였어요. 그래서 바울의 헌신은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했죠. 결국 성품 변화가 없어서 도태됐잖아요. 베드로는 바울처럼 일을 많이 안 했지만 진리를 구하는 데 힘쓰고 말씀에 따라 자신을 알아 가고 말씀대로 실행해서 결국 생명 성품이 변화됐어요. 베드로의 추구가 하나님 뜻에 맞는 거죠. 전엔 하나님이 결말을 정하시는 기준을 몰라서 제 상상대로 하나님을 믿었어요. 힘써 사역하면 좋은 종착지를 얻는 줄 알고 조금의 헌신과 겉면의 노력으로 좋은 종착지를 얻으려 했는데, 그런 추구는 하나님과 무관하고 진리를 추구해 하나님을 흡족게 해 드리려는 게 아니죠. 그건 하나님을 믿는 의의를 잃는 거예요. 겉으론 제가 아무리 바빠도 패괴 성품엔 변화가 없고 교만함, 탐욕, 거만, 질투, 간사함이 가득하죠. 이렇게 사탄의 패괴 성품으로 가득한데, 어떻게 좋은 종착지를 얻겠어요? 게다가 본분하면서 반성도 안 하고 하나님 뜻도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요구와 어긋나는데, 하나님 뜻에 맞게 어떻게 사역하겠어요? 말씀의 심판과 형벌로 제 추구 관점이 잘못된 걸 좀 알게 됐어요. 아니면, 전 계속 사역하는 것만 신경 쓰고 기만하고 거래만 했을 텐데, 그럼 결국은 하나님을 대적해 벌받을 수밖에 없는 거죠. 그제야 진리 추구의 중요성을 알게 돼서 잘못된 추구 관점을 바로잡고 겉으로 힘만 쓰는 상태로 살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 후론, 본분이 아무리 바빠도 시간 내서 매일 말씀을 먹고 마셨고 본분할 때도 말씀을 체험하는 데 신경 썼어요. 일이 생길 때는 먼저 진리의 원칙을 구하면서 진리로 형제자매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어요. 말씀대로 행하니까 본분하는 데 길이 생기고 애매한 게 없었어요. 예전엔 사역량이 많으면 제가 빨리 못하고 잘 못해서 종착지가 사라질까 걱정됐는데, 이젠 사역량이 아무리 많아도 그렇게 서두르지 않고, 먼저 진리의 원칙을 구하고 그 일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를 찾아봐요. 이렇게 협력하니까 하나님의 인도가 보였고 본분 효과도 점점 좋아졌어요. 나중에 한번은 형제자매들이 본분에 적극적이지 않길래 너무 속상하고 화가 나더라고요. 제가 그렇게 시간을 들여 교제했는데도 효과가 크게 없었거든요. 어떤 사람은 여전히 적극적이지 않아서 사역 진도가 많이 늦춰졌고요. 그 후에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면서 화가 난 이유가 뭔지, 어떤 마음이었는지 돌아봤어요. 나중에 말씀을 통해 알게 됐어요. 속상하고 화가 난 건 제가 본분에 효과가 좋지 못해서 체면이 떨어지고 제 자리가 흔들릴까 봐였어요. 그때 그건 패괴라는 걸 느끼게 됐어요. 그래서 진리를 행하기로 했어요. 제 체면과 지위는 둘째잖아요. 형제자매들이 절 어떻게 보든, 높은 지위가 있든 없든 제 본분을 잘하는 게 가장 중요한 거죠. 그다음 형제자매들이 본분에 수동적인 원인을 찾아보고 본분에 옳지 못한 자세를 찾아서 같이 말씀을 보고 문제를 해결했어요. 말씀을 교제하니까 모두 바른 상태로 돌아오게 됐고 본분 효과도 좋아졌어요. 이렇게 체험하면서 보니까 진리를 추구하는 길을 가는 게 진짜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거더라고요. 본분할 때도 일하는 것에 그칠 게 아니라 말씀을 많이 보고 하나님 역사를 체험하고 성품 변화를 추구해야 해요.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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