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총과 복을 좇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인가
영국 클라우드 전 2018년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사역을 받아들였습니다. 재림주를 맞이하게 되니 너무나 가슴이 뛰었죠. 그리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는데, 낮에는 일을 하다 보니 저녁엔 많이 피곤해서 본분에 집중하기 어려웠습니다. 일을 그만두고 전도만...
2024년 4월, 제 두통 증세가 심해졌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머리가 터질 듯 아프고 멍했으며, 약간의 어지럼증도 있었습니다. 밤이 되면 종종 팔과 손이 저리고 목이 아파 고개를 돌릴 수조차 없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예전에도 두통은 있었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보통 괜찮아졌는데, 왜 요즘은 아침부터 머리가 터질 듯 아프고 멍한 걸까?’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 보니 의사는 뇌혈류 부족에 혈압도 높은 편이라고 했습니다. 이건 노인들에게 흔한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병으로, 치료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의사는 곧바로 제게 물약을 건네주었습니다. 저는 약을 받아 들고 조금 긴장하며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심각하다고? 그럴 리 없어. 의사가 겁을 주려는 게 아닐까? 게다가 난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가 있을 텐데!’ 그래서 저는 약을 조금만 받아 와서 먹었습니다.
얼마 후에도 두통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인터넷으로 자료를 좀 찾아보니 고혈압이 심해지면 뇌출혈을 유발할 수 있고, 뇌혈류 부족은 허혈성 뇌졸중으로 이어질 수 있는데, 이 병은 사망률이 매우 높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정보를 보고 나니 마음이 불안해졌습니다. 요즘 들어 저는 늘 머리가 어지럽고 멍했으며, 자꾸 졸리고 온몸에 기운이 없었습니다. 타자 속도도 많이 느려졌고 반응도 꽤 둔해졌습니다. 제가 여덟 살 때 뇌출혈로 쓰러지셨던 아버지가 떠올랐습니다. 아버지도 처음에는 두통으로 시작했습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치매 증상을 보이더니 팔다리가 저리기 시작했고, 또 며칠 후에는 반신불수가 되어 뇌졸중을 앓으셨습니다. 몇 달간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돌아가셨습니다. 그러자 걱정과 근심이 한꺼번에 몰려왔습니다. ‘나도 아버지처럼 뇌졸중에 걸리는 건 아닐까? 그렇게 되면 난 끝이잖아. 어떻게 진리를 추구하고 본분을 이행하겠어? 만약 아버지처럼 반신불수가 되어 마비라도 되면 본분을 이행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언제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데, 그럼 지난 수년간 하나님을 믿었는데도 구원받을 수 없게 되잖아? 난 곧 예순이고, 류마티스 관절염도 있는데다 목과 허리의 고질병도 시도 때도 없이 재발해. 지금 몇몇 교회의 복음 사역까지 책임지고 있는데, 일이 이렇게 많은 상황에서 계속 이렇게 마음 쓰고 머리 쓰다간 병세가 더 악화되는 건 아닐까?’ 그때 젊었을 적에 점을 볼 줄 알던 한 동료가 제 손금을 봐 주며 예순에 병으로 죽을 것이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당시에는 마음에 두지 않았지만, 이제 그 나이가 눈앞에 다가오니 ‘정말 예순까지만 살 운명인 걸까? 정말 죽게 되면 하나님나라의 아름다운 광경을 볼 수 없게 되잖아.’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며칠간 저는 이런 생각들로 마음이 복잡하고 심란했으며, 심지어 원망하는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지난 몇 년간 줄곧 본분을 이행했고, 아파도 본분을 멈춘 적이 없는데, 하나님은 어째서 병을 없애 주지 않으시는 걸까?’ 생각할수록 의기소침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생활 습관을 조절하고, 최대한 휴식을 취하려 애썼으며, 운동도 하고 민간요법을 찾아 치료를 병행했습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온통 몸을 돌보는 데에만 신경 쓰느라 본분에 대한 책임감은 사라졌고, 과로하면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걱정뿐이었습니다. 제가 사역을 느슨하게 점검하는 바람에 복음 사역의 성과는 점차 떨어졌고, 문제를 해결하려 서두르지도 않는 바람에 몇몇 교회의 복음 사역은 거의 중단된 상태에 빠졌습니다. 심지어 이런 생각까지 했습니다. ‘나는 나이도 많고 아픈 곳도 이렇게 많은데, 리더에게 집에 가서 본분을 이행하게 해 달라고 말해 볼까? 만약 병세가 심각해지면 돌봐 줄 가족이라도 있잖아.’ 그 후, 제가 책임지고 있던 여러 복음 전도자들의 내적 상태가 좋지 않았고, 복음 성과도 계속해서 떨어졌습니다. 저는 덜컥 겁이 났고, 제 상태가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나서야 서둘러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뇌혈류 부족과 고혈압 진단을 받고 아버지처럼 뇌졸중으로 쓰러져 반신불수가 되거나 죽게 될까 봐 두려워 본분에 마음을 쓰거나 애쓰고 싶지 않아했습니다. 그 결과 복음 사역의 성과가 심각하게 떨어졌습니다. 하나님, 저는 회개하고 싶습니다. 제 병에 대한 진리를 구해 걱정과 근심을 해결하도록 저를 인도해 주십시오.”
그 후 저는 의식적으로 병의 고통과 관련된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 읽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또 한 부류의 사람은 건강이나 체질이나 체력이 좋지 않아 크고 작은 병치레가 잦고 심지어 일상의 기본적인 생활마저 무리가 되니 정상인처럼 생활하고 활동할 수 없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본분 이행 과정에서 컨디션이 좋지 않고 아플 때가 많다. 허약한 사람, 실제로 병이 있는 사람은 물론 이미 알고 있거나 잠재하고 있는 병이 있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자신의 이런 실제적인 고충의 존재로 인해 부정적 정서에 빠져 근심하고 염려하며 걱정한다. 무엇을 근심하고 염려하며 걱정하느냐? 자신이 늘 그렇게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며 동분서주하느라 늘 피곤하니 몸이 갈수록 허약해지지는 않을지, 40, 50살이 되면 몸져눕는 것은 아닐지 걱정한다. 이 모든 걱정이 성립하겠느냐? 성립한다면 이에 대해 어떤 구체적인 대응법이라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누가 이를 책임지거나 값을 치를 수 있겠느냐? 몸이 허약하고 체질이 안 좋은 사람은 이를 근심하고 염려하며 걱정한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3)> 중에서), 『생로병사라는 것이 일평생 피할 수 없는 인지상정이지만, 특이한 체질이나 특이한 질병을 앓는 사람들은 본분을 이행하거나 이행하지 않는 과정에서 자기 육신의 고충이나 질병으로 근심, 염려, 걱정에 빠진다. 자신의 질병을 걱정하고, 질병이 자기 생활에 초래하는 많은 불편을 걱정하며 병세가 심해질까, 심해지고 나면 마지막은 어떨지, 죽지는 않을지 걱정한다. 이 일련의 문제는 특수한 환경에서, 특정 배경에서 사람을 근심, 염려, 걱정 속에 깊이 빠트려 헤어 나오지 못하게 만든다. 심지어 일부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는 심각한 질병이나 벗어날 수 없는 잠재적 질병으로 인해 근심, 염려, 걱정 속에 살아가면서 그런 부정적 정서에 의해 좌우되고 영향받으며 통제받는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3)> 중에서) 하나님께서 폭로하신 것이 바로 저의 상태였습니다. 저는 몸에 여러 가지 병이 있었고, 의사도 치명적인 병이라고 말했습니다. 약을 먹어도 호전되지 않자 저는 걱정과 근심 속에 살게 되었습니다. 온통 몸을 돌보는 데에만 신경 쓰느라 본분에 대한 책임감은 사라졌고, 더 이상 마음을 쓰거나 대가를 치르려 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을 쓰면 쓸수록 뇌혈류 부족과 고혈압이 더 심해질까 봐 두려웠고 허혈성 뇌졸중이라도 되면 본분을 이행할 수 없게 될까 봐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 무렵 저는 매일 팔과 손이 저렸습니다. 저는 이런 증상들이 심해지면 아버지처럼 반신불수가 되고 심할 경우 죽음에까지 이르게 될까 봐 걱정했습니다. 설령 죽지 않고 식물인간이 된다 해도 제가 어떻게 본분을 이행하고 선행을 예비하여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또 젊었을 적에 누군가 제게 점을 봐 주며 예순에 병으로 죽을 것이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예순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정말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더욱 커졌습니다. 저는 걱정과 근심 속에 살면서 본분을 이행할 마음도 사라졌고, 사역에 문제가 생겨도 서둘러 해결하려고 하지 않아 복음 성과가 심각하게 떨어졌습니다. 저는 서둘러 하나님 앞에 나아가 제 걱정과 근심을 해결하도록 진리를 구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병에 걸렸을 때 한편으로는 네 여러 무리한 요구와 하나님에 대한 여러 현실에 맞지 않는 상상과 관념을 드러내고,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에 대한 네 믿음과 순종을 검증한다. 만약 이런 측면에서 검증을 모두 통과한다면 하나님에 대한 네 믿음과 충성심 그리고 순종에 진정한 증거와 실증이 생기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고, 피조물이 갖추고 살아 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모두 긍정적인 것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이는 모두 사람이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또 하나님이 네게 병을 허락했다면 언제 어디서든 그 병을 거둬 가기도 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언제 어디서든 네 병을 거둬 갈 수 있다면, 병이 계속 네게서 떠나지 않게 할 수도 있다는 말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같은 병을 네게서 거두지 않는다면, 너는 계속 본분을 이행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지킬 수 있겠느냐? 이는 네게 검증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만약 네 병이 몇 달 후 완쾌되면 하나님에 대한 네 믿음과 충성심, 순종이 어떤지 검증되지 않으니 네게는 증거가 없는 것이다. 몇 달을 참는 것은 어렵지 않다. 만약 그 병이 2, 3년 이어져도 네 믿음, 하나님께 순종하고 충성하고자 하는 소망이 변하지 않고 점점 더 실제적이 된다면, 생명이 성장한 것이 아니겠느냐? 이것이 수확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러니 진정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병에 걸린 동안 병이 그에게 가져다주는 다양한 이로움을 경험하고 체험하지 조급하게 병에서 벗어나려 하거나 병세가 길어지면 어떤 나쁜 결과가 있을지, 어떤 번거로움을 불러오게 될지, 악화되거나 죽지는 않을지 등을 걱정하지 않는다. 그는 이런 것들을 걱정하지 않음과 동시에 적극적으로 진입하여 하나님에 대해 진정한 믿음과 충성심 그리고 순종을 갖는다. 한편으로는 증거가 생기고, 한편으로는 자신의 생명 진입, 성품 변화에 엄청난 수확을 가져오며, 자신이 구원받는 것에 견고한 기초를 쌓기도 한다. 이 얼마나 좋으냐!』(<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4)> 중에서), 『하나님은 질병을 통해 너를 구원하고 정결하게 하고자 한다. 너의 무엇을 정결하게 하겠느냐? 하나님에 대한 너의 여러 사치스러운 욕망과 요구, 더 나아가 생존을 위해, 살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여러 계산과 판단 그리고 계획을 정결하게 한다. 하나님은 너 스스로 계획하고 판단하며 하나님에 대해 사치스러운 욕망을 품는 것을 금하고 오직 네가 순종하기를, 순종을 실행하고 체험하면서 질병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와 하나님이 네게 준 이런 건강상의 조건에 대한 태도, 그리고 네 개인적 소원을 인식하기를 바란다. 이런 것들을 인식하면 너는 하나님이 네게 준 질병이라는 환경이나 신체 조건이 네게 무척 많은 이점이 있다는 것을 체득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네 성품의 변화, 네 구원, 네 생명 진입에 대단히 커다란 도움이 된다. 그러니 질병에 걸렸을 때 사람은 늘 벗어나려 하지 말고 도망치거나 거부하려고도 하지 마라.』(<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3)>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저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병고를 겪게 하신 것은 그것이 단기간의 병이든 장기간의 병이든, 또 하나님께서 병을 고쳐 주시든 안 고쳐 주시든 상관없이, 제가 병고 속에서 참된 순종이 있는지를 보시고, 제 본분에 충성심이 있는지를 검증하시며, 더 나아가 제 패괴 성품을 정결케 하고 변화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의사에게서 치명적인 병에 걸렸다는 말을 듣자마자 걱정과 근심에 빠져 버렸습니다. 제 병이 더 심해져 반신불수가 될까 봐 걱정했고, 또 언젠가 병세가 악화되어 죽으면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까 봐 두려웠습니다. 저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순종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집을 떠나 본분을 이행한 것을 밑천 삼아 하나님께 이치를 따지고, 왜 제 병을 없애 주지 않으시냐며 원망했으며, 심지어 교회 사역을 내려놓고 집으로 돌아가 본분을 이행하려고까지 했습니다. 제게 어찌 하나님에 대한 순종과 충성심이 있었겠습니까? 예전에 두통이 짧고 병세가 가벼웠을 때는 본분을 꾸준히 이행할 수 있었고, 스스로 하나님께 꽤 충성스럽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올해 검사를 받고 치료하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는 병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저는 더 이상 본분에 대가를 치르고 싶지 않았고, 느슨하게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하며 몇몇 교회의 복음 사역에 심각한 지장을 주었습니다. 저는 자신이 무척 이기적이고 비열하며, 하나님께 참된 순종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병은 저를 남김없이 적나라하게 드러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저는 뻔뻔하게도 하나님께 충성하고 순종한다는 영예로운 칭호를 제 머리에 썼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 몸의 병고를 통해 저를 정결케 하고 구원하고 계셨습니다. 이 병이 제게 임한 것은 하나님께서 제게 마련해 주신 풍성한 연회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고,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앞으로 제 병이 좋아지든 나빠지든, 저는 걱정과 근심을 내려놓고 당신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며, 속히 본분에 마음을 쏟기를 원합니다. 제가 계속해서 스스로 반성하고 공과를 배울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저는 또 ‘왜 나는 하나님을 이렇게 여러 해 믿었는데도 병고가 호전되지 않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고 본분을 이행할 의욕도 없어졌을까?’ 하고 자신을 반성했습니다. 반성하던 중에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너희들의 충성은 입술에만 머물고, 너희들의 앎은 머릿속 관념에만 머물며, 너희들의 수고는 하늘나라의 복을 위한 것이다. 그럼 너희의 믿음은 또 어떠하냐? 지금까지도 너희는 이 진리들을 무시하고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네가 예수의 영체를 볼 때는 하나님이 이미 하늘과 땅을 새롭게 바꾼 후이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제 비열한 속셈을 정곡을 찔렀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저는 지난 몇 년간 줄곧 본분을 이행하며 버리고 헌신했지만, 속으로는 복을 받으려는 속셈을 품고 있었습니다. 지난 세월 병을 앓으면서도 꾸준히 본분을 이행한 것이 공로는 없을지언정 고생은 했다고 여기며, 이것을 하나님과 거래하는 밑천으로 삼아 천국의 복과 맞바꾸려 했던 것입니다. 제 병이 악화되어 마비나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고, 천국에 들어가려는 제 소망이 깨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제 안에 있던 하나님을 배반하는 본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저는 본분에 대한 부담감이 조금도 없었고, 온통 민간요법을 찾아 병을 고치는 데에만 신경 썼습니다. 복음 사역의 성과가 떨어져도 해결할 마음이 없었고, 그저 과로하다가 정말 죽게 되면 천국의 복을 얻지 못할까 봐 두려워했습니다. 심지어 제 훗날을 위해 손에 쥔 사역을 내려놓고 집으로 돌아갈 생각까지 했습니다. 저는 정말이지 충성심이라고는 조금도 없었고, 제가 본분을 이행한 것은 오로지 복을 받기 위함이었습니다. 병고로 드러나지 않았다면, 저는 하나님을 믿으며 복을 추구하는 제 비열한 속셈과 하나님에 대한 이런 무리한 요구를 인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패괴 성품으로 가득한 제가 하나님나라에 들어가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려 하다니, 정말이지 뻔뻔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제 마음은 죄책감과 가책으로 가득 찼습니다. 저는 본래 피조물이니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이처럼 많은 진리의 공급을 누렸으니 마땅히 조건 없이 본분을 잘 이행하여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해야 했습니다.
나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죽음에 대해 어느 정도 꿰뚫어 보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죽음의 문제가 다른 일과 같은 성질을 갖고 있다. 죽음은 사람이 선택할 수도 없고, 더욱이 사람의 의지에 의해 바뀌지도 않는다. 죽음은 인생의 여타 모든 큰일과 마찬가지로 창조주가 정한 운명과 주재 아래 있다. 한 사람이 죽고 싶어 한다고 해서 꼭 죽는 것도 아니고, 살고 싶어 한다고 해서 반드시 사는 것도 아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재와 정한 운명 아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권병과 공의로운 성품,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로 인해 바뀌거나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중병에 걸리면 그 중병이 죽음을 불러올 수 있지만 꼭 죽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그 죽음은 누가 결정하느냐?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결정한다. 어차피 이 일을 사람이 결정할 수 없고 하나님이 결정하는데 사람이 염려하고 근심할 게 무엇이냐? 어떤 부모에게, 언제, 어디에서 태어날지 네가 선택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이 일에서 가장 현명한 선택은 바로 순리에 맡겨 순종하는 것이다. 선택하지 않고, 이에 대해 아무런 신경이나 힘을 쓰지 않으며, 그 일로 염려하거나 걱정하지 않는 것이다. 어차피 선택할 수 없는데 그 일에 그토록 많은 힘과 신경을 쓰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미련한 짓이다. 사람이 죽음이라는 중대한 일에서 해야 할 것은 염려나 걱정, 두려움이 아닌 무엇이겠느냐? 기다리는 것이 맞느냐? (네.) 그런 것이냐? 기다린다는 것은 죽음을 기다린다는 말이냐? 죽음이 다가오면 죽기를 기다린다는 말이겠느냐? 그런 것이냐? (그렇지 않습니다. 적극적으로 마주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렇다. 죽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죽음이라는 것에 겁먹지 말고 이 일로 고민하는 데에 모든 힘을 쏟지도 말며, 온종일 생각하지도 마라. ‘내가 죽는 걸까? 언제 죽게 될까? 죽은 다음엔 어떡하지?’ 이 일을 생각하지 마라.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왜 생각하지 않나요? 죽음이 목전인데 왜 생각하지 말라는 건가요?” 왜냐하면 네가 죽을지 안 죽을지, 하나님이 너를 죽게 할지 말지는 미지수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언제 죽을지, 어디서 죽을지, 몇 시에 죽을지, 죽을 때 네 몸이 어떤 느낌일지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알 수 없는 일을 네가 생각하느라 그토록 애쓰고 고민하며 염려하고 걱정하니 어리석지 않으냐? 어리석은 짓이라면 그 일 때문에 애쓸 필요가 없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4)> 중에서), 『너는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동시에 미신에 의해 통제되고 방해받고, 더 나아가 미신이 주입한 생각을 추종하기도 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미신과 관련된 생각과 사실을 두려워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에 대한 가장 큰 모독이다. 너는 하나님을 증거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사탄을 따라 하나님의 주재에 저항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6)> 중에서) 하나님 말씀의 심판에 저는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생각해 보니 요즘 들어 병세가 악화되고 의사도 제게 치명적인 병이라고 말하자, 예전에 제 손금을 봐 주며 예순에 병으로 죽을 것이라고 했던 사람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순식간에 걱정과 근심에 사로잡혀 살며 정말 죽게 될까 봐 두려워했고, 어떻게든 병을 치료해서 서둘러 병고에서 벗어나려고 했습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저는 정말 눈멀고 무지했습니다! 저의 생사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고, 언제 어떻게 죽을지는 하나님의 정하심과 주재 아래 있습니다. 제가 병에 걸렸든 아니든 하나님께서 정하신 수명이 다하면 병이 없어도 죽어야 하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수명이 다하지 않았다면 아무리 심각한 병에 걸려도 죽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의 권병과 주재를 알지 못하고 손금을 봐 주는 사람의 말에 좌우되고 방해받으며 그 일이 정말 제게 닥칠까 봐 두려워했습니다. 제 마음에 어찌 하나님의 지위가 있었겠습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정하심과 주재를 부인하는 것이 아닙니까?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모독입니다! 제가 참으로 어리석었습니다. 제 입이라도 치고 싶었습니다. 아버지는 병에 걸린 후 많은 돈을 썼지만 낫지 못하고 마흔밖에 되지 않으셨을 때 돌아가셨습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운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날이 되니 누구도 아버지의 목숨을 붙잡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아는 한 자매님의 할아버지는 암을 앓은 지 십여 년이 되었고, 의사도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고 했지만, 나중에 치료를 받지 않고도 여러 해를 더 사셨고, 일흔이 넘어서도 자주 시장에 다니셨습니다. 비록 제 몸에 몇 가지 병이 있지만, 제 병세가 심각해질지, 뇌졸중이나 마비, 심지어 죽음으로 이어질지는 제가 예측하거나 주관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저는 걱정과 근심에 빠져 본분을 이행할 마음조차 없었으니, 이것이 어리석은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죽든 살든 저는 마땅히 하나님의 정하심과 안배에 순종해야 하며, 제가 예측하거나 주관할 수 없는 일로 걱정하고 근심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지금 제 머리가 아직은 정상적으로 생각할 수 있고, 본분을 이행할 기력도 좀 있으니 마땅히 어서 빨리 제 상태를 바로잡고 올바른 마음가짐으로 본분에 마음을 쏟아야 합니다. 힘이 닿는 데까지 복음 사역의 문제를 해결하고, 형제자매들의 소극적인 상태를 해결해 주며, 그들이 복음을 더 많이 전하고 하나님을 증거하도록 이끌어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갈망하는 더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 집으로 데려와 하나님의 구원을 받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저는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입니다.
나중에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한 사람의 삶의 가치는 무엇이겠느냐? 그저 육적으로 놀고먹기 위함이겠느냐? (아닙니다.) 그럼 무엇이냐? 너희가 말해 보거라.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이 살면서 최소한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말이 맞다. … 한편으로는 피조물의 본분을 잘 이행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힘이 닿는 것,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는 것이다. 최소한 양심에 참소가 없고, 본인의 양심에 떳떳하며, 다른 사람에게 받아들여지는 정도까지는 되어야 한다. 조금 더 나아가서는 태어난 가정, 교육 수준, 자질을 떠나 사람의 생존에서 알아야 할 도리를 어느 정도 알아야 한다. 예컨대 사람이 걸어야 할 길, 사람이 살아야 할 삶, 의미 있는 삶 등 인생의 참된 가치를 모색해야 하는 것이다. 한 번 사는 삶을 헛되이 살아서는 안 된다. 또 다른 한편으로 네가 사는 동안 너는 네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대단한 사명과 본분, 책임을 완수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최소한 한 가지는 성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교회에는 복음 전파 사역에 온 힘을 기울이며 평생을 쏟아붓고 많은 대가를 치르면서 많은 사람을 얻은 사람이 있다. 그로 인해 그는 자신의 삶이 헛되지 않고 가치 있다고 위안을 느낀다. 그가 병이 들어 죽음이 임박하거나 생을 마감할 때 그가 한 이 모든 일과 걸었던 길을 돌이켜 보면서 마음에 위로받고 참소가 없으며 아쉬움도 없다. … 사람의 삶의 가치, 걸어야 할 올바른 길은 가치 있는 일을 해내는 것이고, 한 가지 혹은 여러 가지 가치 있는 일을 완수하는 것이다. 이것을 사업이라고 할 수는 없으며 올바른 길, 올바른 일이라 한다. 네가 말해 보아라, 사람이 하나의 가치 있는 일을 완수하기 위해, 의미 있고 값진 삶을 살고 진리를 추구하고 얻기 위해 대가를 치르는 것이 가치 있지 않겠느냐? 네가 만약 진정으로 진리를 깨닫는 것을 추구하고 인생의 바른길을 걷기를 원하며,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고 의미 있고 값진 삶을 살기 원한다면 너는 온 힘을 기울이고 대가를 치르며 시간과 세월을 들이는 것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 기간에 약간의 질병을 겪더라도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이 너를 넘어뜨리지 못할 것이다. 평생 온종일 빈둥거리며 토실토실 건강하게 관리한 몸으로 장수하는 것보다야 훨씬 낫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이 둘을 비교하면 어떤 삶이 가치 있고 죽음에 직면했을 때 마음에 위안이 되고 아쉬움이 남지 않겠느냐? (의미 있는 삶을 살아 내는 것입니다.) 의미 있는 삶을 살아 내는 것은 마음속에 수확과 위안이 있는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6)> 중에서) 하나님 말씀의 인도로 저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의미 있고 가치 있는지 깨닫게 되었고, 마음속으로 큰 격려를 받았습니다. 저는 사탄에게 패괴되었던 사람이지만, 오늘날 하나님의 높여 주심으로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고, 복음을 전하여 창조주를 증거하며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고통과 흑암 속에서 사는 사람들을 하나님 앞으로 데려와 하나님의 구원을 받게 하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입니까! 먼지보다 못한 저희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그토록 많은 말씀의 공급을 누리고, 이처럼 많은 진리의 비밀을 깨달아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받고 대재앙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니, 이 얼마나 큰 복입니까! 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습니까! 만약 제가 제 몸만 돌보느라 본분에 마음을 쓰거나 대가를 치르려 하지 않는다면, 설령 몸이 좋아지더라도 제 본분을 다하지 못하고 피조물의 기능을 잃게 되는 것이니, 그렇게 사는 것이 산송장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마음의 고통은 그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을 것입니다. 그 후 저는 서둘러 복음 전도자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교제했고, 그들이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와 편차를 발견하면 즉시 교제하여 해결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복음 사역도 점차 활기를 띠기 시작했습니다. 두 달 후, 몇몇 교회의 복음 성과는 두 배로 증가했습니다. 그 후 저는 더 이상 약을 먹지 않았고, 혈압도 정상으로 돌아왔으며, 머리가 터질 듯 아픈 증상도 사라졌습니다. 일이 바쁘지 않을 때는 좀 더 휴식을 취했고, 가끔 일이 바빠 밤을 새워도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 예전처럼 머리가 아프지 않았으며, 밤이 되어도 팔과 손이 저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정말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 후 윗선 리더가 편지를 보내 저더러 십여 곳의 교회 복음 사역을 점검하고 책임지라고 했습니다. 편지를 본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교회의 복음 사역을 점검하려면 더 큰 대가를 치르고 마음과 힘을 써야 할 텐데, 머리를 너무 많이 쓰면 병이 재발하는 건 아닐까?’ 그 순간, 제 상태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병고에 대한 걱정과 근심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어째서 또 걱정하고 있는 거지?’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순종하겠다고 기도드렸습니다. 그 후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네가 질병 속에 있든 아니면 고통 속에 있든 네가 숨이 붙어 있는 한, 네가 살아 있는 한, 네가 말하고 걸을 수 있는 한, 본분을 이행할 힘이 있는 것이다. 그럼 너는 고분고분하고 착실하게 본분을 이행해야 한다. 피조물의 본분과 창조주가 네게 맡긴 책임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네가 죽지 않는 한 너는 너의 본분을 완수해야 하고, 제대로 이행해야 하는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3)>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제게 믿음과 힘을 주셨습니다. 살아 숨 쉬며 말하고 걸을 수 있는 한, 마땅히 정직하고 착실하게 피조물의 본분을 다해야 합니다. 생각해 보니 지금 제 병은 거의 다 나았고, 비록 사역량이 좀 많아지긴 했지만, 제 생활 습관을 합리적으로 조절하면 됩니다. 앞으로 병이 재발할지 여부는 모두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따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리더에게 답신을 보내, 교회의 안배에 순종하고, 모두와 조화롭게 협력하여 본분을 잘 이행하겠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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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야오위쉬안(姚鈺轩)1999년 9월, 저는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번 단계 사역을 통해 사람을 정결케 하고 온전케 하시며, 마지막에는 하나님나라로 데려가신다는 것을 알고 무척 기뻤습니다. 저는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중국 멍놘(夢暖)2002년 초, 저는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복음을 전하고 새신자를 양육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믿음이 충만했고, 몇 년 동안 한결같이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그동안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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