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체포되어 수감되었을 때 배운 공과

2026.5.29

중국 윈난 샤오위신

2023년 8월, 엄마가 본분을 이행하던 중 중국 공산당에 체포되었습니다. 당시 저와 형제자매들은 그 사실을 모른 채 계속 소식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2024년 9월에 감옥에서 보내 온 엄마 편지를 받고서야 엄마가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는 순간 온몸에 힘이 쫙 빠지고 마음이 너무 괴로웠습니다. ‘엄마는 예전에도 복음을 전하다가 구류된 적이 있고, 석방된 후로는 줄곧 밖에서 본분을 이행했어. 그동안 경찰이 자주 집에 와서 엄마의 행방을 캐물었는데, 이번에 또 경찰의 손아귀에 들어갔으니 어떤 혹독한 고문을 당할지 몰라. 감옥 생활이 여간 힘들지 않을 텐데 엄마가 굳게 설 수 있을까?’ 당시에 한 자매님이 우리 각자가 평생 어떤 환경을 겪고 얼마나 고생할지는 모두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것이니, 엄마를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해야 한다고 교제해 주었습니다. 저도 순종해야 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중국 공산당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얼마나 가혹하게 대하는지 생각하면 엄마가 꽤 고생할 게 뻔해서 마음이 몹시 심란했습니다. 자매님의 교제도 별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 후, 저는 본분을 이행하긴 했지만 한가할 때, 혹은 밤에 잠이 오지 않을 때면 체포된 형제자매들이 경찰에게 고문을 당하거나 감옥에서 죄수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하는 장면이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엄마가 무척 걱정되었습니다. ‘감옥에서 어떻게 지내실지 모르겠네. 형기가 4년이면 아직도 남은 나날이 한참인데 어떻게 견디실까? 어떤 사람들은 체포된 후 경찰의 잔혹한 학대와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유다가 되었고, 어떤 사람들은 ‘3서’에 서명하고 하나님을 배반했는데, 만약 엄마가 굳게 서서 증거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배반하면 어떡하지? 그럼 그동안 겪은 고생이 다 물거품이 되는 거잖아?’ 또 몇 달 전, 어떤 자매님이 자기 남편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징역 5년 6개월을 선고받았는데, 만기 출소를 눈앞에 두고, 교회를 팔아먹지 않고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게 맞아 죽었다고 했던 얘기가 떠올랐습니다. 심지어 경찰은 그 형제님이 자살한 것이라고 사실을 왜곡했습니다. 또 다른 형제님도 체포된 지 1년 만에 경찰에게 무참히 고문당해 죽었습니다. 이런 일을 생각하니 걱정은 더욱 커졌습니다. ‘엄마가 경찰의 고문으로 죽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나님께 구원받을 수 있겠어?’ 저는 속으로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하나님을 믿은 후부터 적극적으로 본분을 이행했고, 예전에 잡혔을 때도 배반하지 않았어. 그 후 경찰의 체포를 피해 계속 밖에서 본분을 이행하셨는데, 그동안 하나님이 다 돌봐 주시고 지켜 주셔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 그런데 하나님이 이번에는 왜 지켜 주시지 않은 걸까? 왜 하나님은 중국 공산당이 우리를 체포하고 핍박하도록 허락하시는 걸까? 이런 핍박이 없으면 우리가 제대로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할 수 있지 않을까? 엄마도 감옥에서 고생할 필요가 없을 텐데.’ 며칠 동안 저는 마음이 몹시 무겁고 답답했습니다. 기도를 할 때도 하나님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고, 본분을 이행할 때도 마음을 평온히 할 수 없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엄마가 지금 어떨까 하는 생각에 빠져들어 마음이 몹시 괴롭고 고통스러웠습니다. 저는 제가 내적 상태가 잘못되고 하나님께 관념이 생겼음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을 떠올렸습니다. 『관념은 아주 심각한 문제로, 사람이 하나님에게 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벽이 있는 것과 같아 사람은 하나님의 진면목과 진실한 성품, 진실한 본질을 볼 수 없게 된다. 무엇 때문이겠느냐? 사람이 관념과 상상 속에서 살면 관념으로 하나님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뿐 아니라 하나님이 하는 모든 일을 판단하고 평가하고 정죄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사람은 어떤 내적 상태에 자주 빠지겠느냐? 사람이 관념 속에 살면 하나님에게 진실로 순종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믿음을 가질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설령 하나님에게 어느 정도 순종한다 한들 그 역시 관념과 상상에 근거한 것이다. 관념과 상상에 근거한 것에는 사탄과 세상에 속하는 개인적인 불순물이 섞여 있기 때문에 그것은 진리에 부합하지 않는다.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관념을 품는 문제는 아주 심각한데, 이는 하루빨리 해결해야 할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큰 문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관념을 해결해야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진입할 수 있다(1)>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관념을 가지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며,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오해와 벽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일어난 일 이면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면 사람은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할 수 없습니다. 그동안 제 상태가 바로 그랬습니다. 엄마가 체포되어 수감된 소식을 듣고, 엄마가 감옥에서 고생도 많이 하실 테고 살아 나올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나머지 하나님께 관념을 품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큰 붉은 용이 하나님 믿는 사람들을 체포하고 핍박하도록 허락하시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왜 엄마를 지켜 주시지 않느냐며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본분을 이행할 때도 마음이 딴 데 가 있었습니다. 만약 제가 계속 관념 속에 살면서 진리를 구하지 않는다면, 저와 하나님 사이의 벽이 점점 더 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엄마가 잡혀가 수감된 일에 대해 계속 순종하지 못하고, 그만 당신께 관념까지 생겼습니다. 더 이상 이렇게 당신을 거역하고 싶지 않으니, 당신의 뜻을 깨달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묵상 시간에 본 하나님 말씀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 있는, 하나님 마음에 합하지 않는 것들과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종종 성찰해야 한다. 이러한 오해는 어떻게 생겨나느냐? 사람은 어째서 하나님에게 오해가 생기느냐? (사람의 이익이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유대인이 유대 땅에서 쫓겨난 그 사실을 알고 상처를 받는다. ‘처음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너무나 아끼셨어. 그들을 이끌고 애굽을 탈출해 홍해를 건너게 하셨고, 또 만나와 마실 샘물도 주셨어. 그런 다음 또 친히 율법을 반포해서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 가르치며 그들을 이끄셨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정말 사랑이 가득하셨으니 그 시대 사람들은 너무나 행복했겠구나! 그런데 어떻게 눈 깜짝할 사이에 하나님 태도가 180도 달라질 수 있나? 하나님의 사랑은 어디로 간 거지?’ 사람은 감정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아서 이 순간 의심하기 시작한다. ‘하나님은 과연 사랑일까? 예전에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대하던 태도는 어째서 전혀 안 보일까? 하나님의 사랑은 지금 이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 하나님은 과연 사랑이 있는 걸까?’ 이렇게 오해가 생겨난다. 그렇다면 사람이 오해가 생겨난 배경은 무엇이냐? 설마 하나님이 한 일이 사람의 관념 상상에 맞지 않아서 그 사실이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이냐? 사람이 이렇게 하나님을 오해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규정하기 때문이 아니냐? 사람은 이렇게 생각한다. ‘하나님은 사랑이니까 사람을 보살피고, 지켜 주고, 은혜와 축복도 내려 주셔야 해. 그게 하나님의 사랑이지! 나는 하나님이 이렇게 사람을 사랑하시는 게 마음에 들어. 특히 사람을 이끌고 홍해를 건너게 하신 걸 보니 하나님이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겠어. 그 시대 사람들은 정말 행복한 사람들이야. 나도 그중 한 명이었으면 좋았을걸!’ 거기에 도취된 너는 하나님이 그 순간 나타낸 사랑을 최고의 진리로 생각하고 하나님 본질의 유일한 상징이라고 생각한다. 너는 하나님을 네 마음속으로 규정하고, 하나님이 그 순간 행한 모든 것을 최고의 진리라고 규정해서 그것이 하나님의 가장 사랑스러운 부분이자 사람이 제일 존경하고 경외하는 부분이고, 그게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하나님이 그렇게 행한 것 자체는 긍정적인 일이다. 하지만 네가 규정하는 바람에 그 일은 네 마음속에서 관념이 되고, 하나님을 규정하는 근거가 되어 네가 하나님의 사랑을 오해하게 만들었다. 마치 하나님의 사랑이 긍휼과 보살핌, 보호, 인도, 은혜, 축복과 같은 것 외에 다른 것은 없고, 하나님의 사랑은 그 정도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다. 너는 어째서 그런 면을 그토록 애지중지하느냐? 네 이익과 관계가 있어서가 아니냐? (그렇습니다.) 너의 어떤 이익과 관계가 있느냐? (육적인 즐거움과 편안한 생활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에게서 그런 것들만 바란다. 다른 것들, 이를테면 심판과 형벌, 시련과 연단, 하나님을 위해 고통받고, 버리고, 헌신하고, 심지어 목숨을 내던지는 것 등은 원하지 않고, 단지 하나님의 사랑과 보살핌, 보호, 인도만을 누리려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하나님 본질의 유일한 상징으로 규정하고, 하나님의 유일한 본질로 규정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홍해를 건너게 한 사실에서 하나님이 행한 일들이 사람이 관념을 품게 된 근원이 된 것 아니냐? (그렇습니다.) 그것이 인류가 하나님에게 관념을 품게 된 배경이다. 이런 관념이 생긴다면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 하나님의 성품을 진실로 인식할 수 있겠느냐? 인식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해와 관념이 생겨날 게 뻔하다. 이것은 사람의 인식이 너무나 단편적이고 진실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그것은 진리가 아니라, 사람이 자신의 관념 상상과 사욕으로 분석하고 해석한 사랑이자 인식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실한 본질에는 부합하지 않는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사람에게 긍휼과 구원, 보살핌, 보호를 베풀어 주고 간구를 들어주는 것 말고 또 어떤 것이 있느냐? (채찍질과 징계, 훈계와 책망, 심판과 형벌, 시련과 연단이 있습니다.) 맞다. 하나님의 사랑에 해당하는 것은 너무나 많다. 매질, 징계, 꾸짖음, 심판, 형벌, 시련, 연단… 이런 것이 모두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래야 비로소 전면적이 되고, 진리에 부합하는 사랑이 된다. 이런 걸 인식한다면,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성찰할 때 자신의 치우친 면을 인식하고, 자신의 잘못된 점을 잘 반성할 수 있지 않겠느냐? 네가 하나님에 대한 오해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렇게 되려면 진리를 구해야 한다. 사람은 진리를 구하면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없앨 수 있고,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없애면 하나님의 모든 안배에 순종할 수 있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깨달아야 하나님의 행사를 알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보고, 제가 하나님이 하신 이 모든 일을 이해하지 못한 주된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일종의 규정을 내렸기 때문임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사랑하신다면 마땅히 사람을 보살피고 지켜 주며 은혜와 축복을 베풀어 주셔야지 고통과 환난을 겪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이 제 관념에 맞지 않으면 받아들여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이게 다 제가 하나님의 사역을 알지 못해서 비롯된 것입니다. 어릴 적, 엄마가 해 주신 이야기를 떠올렸습니다. 하나님은 인류를 창조하시고 인류를 위해 모든 것을 예비하셨습니다. 율법시대에는 모세를 시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애굽을 벗어나 홍해를 건너게 하셨고, 광야에서 메추라기와 만나를 내려 먹이시며 가나안 복지로 사람들을 인도하셨습니다. 은혜시대에는 예수님께서 사람을 위해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시며, 인류를 구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속으로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곧 보살핌과 보호이고, 은혜와 축복을 내려 주시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 후 하나님을 믿게 되면서 하나님께서 저희를 평안하게 지켜 주시고 생활 속에서도 하나님의 축복과 은총을 누리게 되자, 더더욱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신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엄마가 감옥에 잡혀가 육적으로 많은 고생을 하게 되자, 저는 엄마가 굳게 서서 증거하지 못하거나, 혹은 경찰의 고문으로 죽기라도 하면 구원받을 기회를 잃을까 걱정되어, 왜 엄마를 지켜 주시지 않느냐며 하나님을 원망하고, 심지어 엄마가 하나님을 믿은 후 적극적으로 본분을 이행하고, 예전에 잡혔을 때도 배신하지 않았다는 점을 내세워 하나님께 따지려 들었습니다. 정말이지 너무나 이성이 없었습니다! 저는 사람의 육이 이익을 얻고 축복을 얻는지를 기준으로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가늠했는데, 이는 전혀 진리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는 은혜와 축복뿐만 아니라 심판과 형벌, 시련과 연단도 있습니다. 사람에게 은혜와 축복을 내려 주시는 것도 하나님의 사랑이지만, 환경을 마련하여 사람을 시련하고 연단하시는 일에는 더 큰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엄마가 체포된 일만 해도 그렇습니다. 저는 육적인 관점에서 그것이 좋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라고 규정했는데, 사실 제 인식이 너무 단편적이었던 것입니다. 생각해 보니 이런 일이 닥치지 않았다면, 저는 제가 하나님에 대해 규정하고, 관념과 오해를 품었다는 사실과,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참된 인식을 갖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엄마가 체포와 수감을 겪으며 육은 고통을 받겠지만, 기도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면 진리를 깨달아 생명이 자라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도 커질 수 있으니, 이 역시 엄마에게는 좋은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많은 사역을 하시는 것이 우리의 관념이나 육적인 이익에 맞지 않을지라도, 우리의 생명에 유익하다면 이는 더더욱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런 점들을 묵상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밝아졌습니다.

그 후 저는 또 반성해 보았습니다. 엄마가 체포되는 일이 닥쳤을 때 제가 순종하지 못한 원인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러다 이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나는 사람에게 감정을 ‘표출’할 기회를 남겨 두지 않는다. 내게는 감정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의 감정에 대한 나의 증오는 이미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사람은 사람과의 ‘정’ 때문에 나를 한쪽에 밀쳐 두었고, 그로 인해 나는 사람의 눈에 ‘제삼자’가 되었다. 또한, 사람은 사람과의 ‘정’ 때문에 나를 잊었고, 사람의 정 때문에 기회를 틈타 다시 ‘양심’을 주워 들었으며, 사람의 정 때문에 언제나 나의 형벌을 싫어했다. 사람은 정 때문에 늘 내가 공정하지도 의롭지도 않다고 말하고, 내가 일을 처리할 때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설마 땅에 내 ‘친족’이라도 있단 말이냐? 누가 나처럼 내 모든 경륜을 위해 침식을 잊고 밤낮으로 애썼더냐? 사람이 어찌 하나님과 비교할 수 있겠느냐? 어찌 하나님과 합할 수 있겠느냐?(<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ㆍ제28편> 중에서), 『사람은 모두 ‘정’ 속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어떤 사람도 피하지 않고 전 인류의 마음속에 숨겨진 비밀을 드러냈다. 왜 감정을 떨쳐 버리지 못하느냐? 그것이 양심의 기준보다 높단 말이냐? 양심이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느냐? 감정이 난관을 헤쳐 나가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느냐? 하나님의 눈에 감정은 하나님의 원수다. 설마 하나님이 이를 명확히 말씀하지 않았단 말이냐?(<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의 비밀 계시ㆍ제28편> 중에서) 반성해 보니 제가 순종하지 못한 것은 바로 육적인 정 속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매일 닥치는 사람과 일, 사물은 좋든 나쁘든 모두 하나님의 허락이 있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이치상으로는 알지만, 막상 엄마가 잡혀가 수감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일 수 없었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도 않았습니다. 엄마가 감옥에서 심신이 고통받고 시달리고 있다는 생각만 하면 너무 마음이 아팠고, 엄마가 그런 고생을 하도록 두고 싶지 않았습니다. 또한, 엄마가 굳게 서서 증거하지 못하고 유다가 되어 구원받지 못하거나, 수감 중에 경찰에게 박해받아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엄마를 잃게 될까 봐 걱정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육적인 정의 편에 서서 하나님께 따지고, 왜 엄마를 지켜 주시지 않느냐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제 생각과 마음은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었고, 이는 하나님과 반대편에 서서 하나님께 맞서는 것이었습니다. 욥이 시련을 겪었을 때를 떠올려 보았습니다. 산을 가득 메운 소와 양을 잃고, 가산도 전부 사라지고, 열 자녀마저 죽고, 본인도 온몸에 악창이 돋았지만, 욥은 원망 한번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만사만물이 하나님의 손에 있으며 화를 당하는 것조차 하나님의 허락임을 믿었기에, 여전히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했습니다. 욥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욥과 비교하면 저는 한참 멀었습니다! 저는 엄마가 잡혀가 수감되었다는 소식만 들어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완전히 정에 얽매여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허락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께 따지고 대항했으니, 제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조금이나마 있었겠습니까? 명백히 큰 붉은 용이 하나님을 증오하고, 하나님 믿는 사람들을 체포하고 핍박하는 바람에 엄마가 그토록 고생한 것인데도, 저는 중국 공산당을 증오하지는 않고 도리어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저는 정말이지 옳고 그름을 뒤집고 시비를 가리지 못했습니다!

그 후 저는 하나님 말씀을 몇 단락 더 보고,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핍박과 환난이 닥치도록 허락하신 의미를 조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역을 시작해서 지금껏 모든 사람에게, 즉 자신을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크고 작은 시련을 주었다. 어떤 사람은 가족에게 버림받는 시련을 겪었고, 어떤 사람은 열악한 환경에 처하는 시련을 겪었으며, 어떤 사람은 잡혀가거나 고문을 받는 시련을 겪었다. 또 어떤 사람은 선택을 해야 하는 시련을 겪었고, 어떤 사람은 지위와 재물의 시련에 맞닥뜨렸다. 결론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다양한 시련이 닥쳤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이런 일을 하는 것일까? 왜 모든 사람에게 이렇게 할까? 그는 어떤 결과를 보려고 하는 것일까? 이것이 내가 너희에게 알려 주고자 하는 핵심이다. 하나님은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인지를 보려 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네게 시련을 주어 어떤 환경에 처하게 할 때는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사람인지 검증하려 한다는 뜻이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역으로 맺게 될 결실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사람에게 장기적으로 공급해 주고 붙들어 주는 사역을 하는 동안, 하나님은 그의 뜻과 요구를 모두 알려 주었다. 또한 하나님의 행사,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함을 보여 주었다. 그 목적은 사람으로 하여금 믿음의 분량을 갖추고, 하나님을 따르는 동안 하나님으로부터 다양한 진리를 얻도록 하는 데 있었다. 그러한 진리가 바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준, 사탄과 싸울 수 있는 예리한 무기이다. 사람이 이러한 장비를 갖추려면 하나님의 검증에 직면해야 한다. 하나님의 검증에는 여러 가지 방식과 경로가 있지만, 그 모든 경로와 방식에는 다 하나님의 원수인 사탄의 ‘협력’이 들어간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사람에게 사탄과 싸울 예리한 무기를 준 다음, 사람을 사탄의 손에 넘겨 사탄이 그 사람의 분량을 ‘검증’하게 한다. 사람이 사탄이 쳐 놓은 진영에서 벗어나고, 사탄의 포위 공격에서 살아 나오면 그 검증을 통과한 것이다. 그러나 사탄의 진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사탄에게 항복한다면, 검증을 통과하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의 어떤 부분을 검증하든, 검증의 기준은 그 사람이 사탄의 공격 가운데서 굳게 설 수 있는지, 사탄의 올무 속에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무기를 버리고 사탄에게 굴복하는지 등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구원은 사탄을 이기고 물리치는 것에 달려 있다. 또한, 사람의 해방은 사람이 독립적으로 하나님이 준 무기를 들고 사탄의 결박을 끊어 사탄이 완전히 단념하고 포기하게 하는 데에 달려 있다. 사탄이 사람을 단념하고 포기한다는 것은 더는 그 사람을 두고 하나님과 싸우지 않고, 그 사람을 참소하거나 교란하지 않으며, 제멋대로 그 사람을 해치거나 공격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하나님께 얻어진 자이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한 사람을 얻는 전 과정이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하나님을 진심으로 따르는 자는 모두 공사의 검증을 통과할 수 있지만, 진심으로 따르지 않는 자는 어떤 시련도 이겨 낼 수 없다. 그들은 언젠가 모두 쫓겨나겠지만, 이기는 자는 하나님나라에 남을 것이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찾는 사람인지는 공사의 검증, 즉 시련을 통해 결정되는 것이지 사람이 스스로 정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단 한 사람도 함부로 내치지 않는다. 그가 하는 모든 일에 사람들은 진심으로 탄복하게 된다. 하나님은 사람이 보지 못하는 일과 인정하지 않는 사역은 하지도 않는다. 믿음이 참된지 거짓된지는 모두 사실로 인증된다. 이는 사람이 규정할 수 없는 것이다. “밀은 가라지가 될 수 없고, 가라지는 밀이 될 수 없다.”, 이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마지막에 모두 하나님나라에 남을 수 있다. 하나님은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홀대하지 않을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실행>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핍박과 환난이 닥치도록 허락하시는 이유는 사람을 온전케 하여 하나님께 충성하고 순종하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함이며, 동시에 하나님께 진심이 없는 사람을 드러내 도태시키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말세에 진리를 선포하여 사람에게 공급하시고, 사람에 대한 여러 가지 요구를 알려 주신 후에는 실제적인 환경을 마련하여 사람을 시련하고 검증하심으로써 사람이 하나님께 진심이 있는지, 순종하는지를 보십니다. 만약 사람이 진리를 무기 삼아 사탄과 싸우고, 시련 속에서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서서 증거하여 사탄에게 철저한 치욕을 안긴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께 얻어지는 사람이 됩니다. 중국 공산당의 체포와 핍박이 닥쳤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비록 고통스럽고 연약해지기도 하지만, 하나님을 부인하거나 배반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탄의 핍박을 통해 마귀의 추악한 몰골을 똑똑히 확인합니다. 그들이 연약하고 고통스러울 때, 하나님 말씀의 깨우침과 인도는 하나님께 더욱 믿음을 갖게 해 주고, 목숨을 내걸고라도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서서 증거하게 합니다. 하나님 역시 이런 환경을 통해 사람의 진심을 얻으시고, 진리를 사람 안에 이루십니다. 영화 <연단>의 주인공이 그랬습니다. 경찰은 자매가 하나님을 배반하도록 강요하기 위해 자매의 옷을 모두 벗기고 온몸에 전기 충격을 가했습니다. 자매는 극심한 고통과 시달림을 겪었지만, 하나님 말씀이 그녀에게 믿음을 더해 주었습니다. 자매는 죽을지언정 하나님을 배반하거나 부인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힘 있게 증거하여 마침내 사탄에게 치욕을 안겼습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어떤 환경을 겪든, 얼마나 많은 고통과 시달림을 당하든 하나님께 충성을 지킬 수 있고, 그들에게는 환난과 고통이 온전케 되는 과정이자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반면, 하나님께 진심이 없는 사람들은 육체가 고통과 시달림을 받거나 죽음의 위협이 닥치면 자신을 보전하기 위해 하나님을 부인하고 배반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드러난 가라지이며, 바로 하나님이 도태시키려는 대상입니다. 하나님은 큰 붉은 용의 봉사를 이용하여 사람을 드러내시기도 하고 온전케 하시기도 하니, 참으로 지혜로우십니다! 엄마가 지난번에 체포된 후, 앞으로 또 잡히더라도 끝까지 하나님을 믿고 따르며 절대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이번 체포는 엄마에 대한 하나님의 검증입니다. 만약 엄마가 육을 보전하기 위해 하나님을 배반한다면 그것이 엄마에게는 드러남이 될 것입니다. 반대로 기도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탄이 아무리 핍박해도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서서 증거한다면, 이 환경은 엄마에게 온전케 함이 되고, 엄마의 믿음과 사랑을 늘려 줄 것이며, 또한 하나님이 엄마에게 증거할 기회를 주신 것이기도 하니, 이는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니 엄마에 대한 걱정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구하는 과정에서 저는 제 안에 있는 또 다른 잘못된 관점을 발견했습니다. 잡혀가 수감되었다가 핍박받아 죽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고 여겼던 제 관점은 하나님 말씀 한 단락을 보고 나서야 바로잡혔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순교한 사람들의 마지막 결말이 무엇인지, 하나님은 그들의 행위를 어떻게 규정했는지 등은 차치하고, 하나만 물어보겠다. 그러니까 그들이 마지막에 이르러 죽음을 맞이한 방식이 사람의 관념에 부합하느냐? (사람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관념으로 본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사역을 전파하기 위해 그렇게 많은 대가를 치렀고, 또 마지막에는 사탄에게 잔혹한 죽임을 당했으니 관념에 맞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에게 그런 일이 닥쳤고, 그것은 하나님이 허락한 것이다. 여기에는 구해야 할 어떤 진리가 있느냐? 하나님은 그들이 그렇게 죽도록 허락했다. 이는 하나님의 저주와 정죄겠느냐, 아니면 안배와 축복이겠느냐? 전부 아니다. 그럼 무엇이겠느냐? 그들의 죽음을 돌이켜 생각하면 사람들은 가슴 아파 하지만, 사실이 분명 그러하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그렇게 죽어 간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겠느냐? 이를 언급하면 너희는 그것을 자신에게 대입해 생각하게 되는데, 그러면 마음이 불편하고 은근히 아프지 않겠느냐? ‘그들은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했으니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 그런데 왜 그런 결말, 그런 말로를 맞이한 걸까?’라고 생각할 것이다. 사실 그들의 육은 그렇게 죽고 사라져 그런 방식으로 이 세상을 떠났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결말이 그런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들이 죽을 때, 세상을 떠날 때 어떤 과정과 방식을 겪었든 그것은 그들의 생명, 그 피조물들의 마지막 결말에 대한 하나님의 규정이 아니다. 너는 이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반대로, 그들은 바로 그런 방식으로 이 세상을 정죄하고 하나님의 행사를 증거한 것이다. 그 피조물들은 가장 귀한 생명, 그 생명의 마지막 순간을 이용해 하나님의 행사와 크나큰 능력을 증거함으로써 사탄과 이 세상에 하나님의 모든 행사는 옳은 것임을, 예수는 하나님이자 주이며, 하나님이 입은 육신임을 선고했다. 생명이 끝나는 순간에도 그들은 예수의 이름을 부정하지 않았다. 이는 이 세상에 대한 하나의 심판 아니겠느냐? 그들은 목숨으로 세상에 선고하고 인류에게 증명했다. 예수는 주이자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고, 그가 행한 구속 사역은 전 인류가 계속 살아갈 수 있게 했다는 것을, 이 사실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예수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순교한 사람들은 어느 수준까지 본분을 이행했느냐? 궁극의 경지에 오르지 않았느냐? 이 궁극의 경지를 무엇으로 보여 주었느냐? (목숨을 바침으로써 보여 주었습니다.) 그렇다. 목숨을 대가로 바쳤다. 사람의 삶에서 가정, 재물, 물질 등은 모두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며, 자신과 관계가 있는 것은 오직 생명뿐이다. 생명은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이 가장 귀하게 여길 만한 것, 가장 귀한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 가장 귀한 것을 바쳐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실증하고 증거했으며, 죽음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이름과 사역을 부정하지 않고, 생명의 마지막 순간을 이용해 이 사실의 존재를 증거했다. 이는 최고의 증거 아니겠느냐? 이는 가장 훌륭한 본분 이행으로, 책임을 다한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복음 전도는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이 마땅히 이행해야 할 본분이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보고 나니 마음이 밝아졌습니다. 저는 경찰의 핍박으로 죽으면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여겼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그렇게 보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 16:25) 유다가 된 사람들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그들은 체포된 후 경찰에게 고문받을 것이 두려워 리더 일꾼과 형제자매들을 팔아먹고 ‘3서’에 서명했습니다. 비록 육은 아무런 고통을 받지 않고 풀려나 지금까지도 살고 있지만, 구원받을 기회는 영원히 잃어버렸으며 앞으로 영원한 징벌을 받아야 합니다. 반면, 큰 붉은 용에게 핍박당해 순교한 사람들은, 비록 육은 고문을 받아 죽었지만 생명을 대가로 굳게 서서 증거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이며, 하나님께 기억되는 일입니다. 은혜시대에 주 예수님의 이름을 전하다가 순교한 제자들처럼 말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충성한 사람들이었기에 죽은 후 영혼이 하나님께로 돌아갔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합당한 안배를 해 주셨습니다. 또한, 그들의 죽음은 바로 사탄이 하나님 선민을 박해하여 악을 행한 증거이자, 하나님께서 영광을 얻으시고 사탄을 물리쳐 승리하신 증거이기도 합니다. 엄마의 운명은 하나님의 손에 있으며, 앞으로 어떤 일을 겪게 될지는 모두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달려 있습니다. 설령 핍박으로 죽게 된다 해도 그것은 의를 위해 핍박받는 것이니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저는 그저 작은 피조물에 불과하니 하나님께 이래라저래라 요구할 자격이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해야 합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니 마음의 고통이 훨씬 줄어들었습니다.

올해 1월, 할아버지께서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엄마가 감옥에서 집으로 편지를 보냈는데, 감옥의 노동 강도가 너무 세서 시력이 심하게 떨어졌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으니 무척 화가 나고, 또 몹시 괴로웠습니다. ‘원래도 눈이 안 좋으신데, 감옥에서 매일 고된 노동까지 하셔야 하다니. 만약 눈이 보이지 않게 되면 어떡하지? 아직 형기도 많이 남았는데, 앞으로 남은 나날들이 얼마나 견디기 힘드실까?’ 그러다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여 가게 하는 길은 곧게 뻗은 순탄 대로가 아니라 가파르게 굽이지고 울퉁불퉁한 길이다. 게다가 하나님은 험난한 길일수록 우리의 사랑을 더 극명하게 보여 줄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우리 중에 그 길을 개척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 또한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면 험난하고 순탄치 않은 길을 많이 걸었으며, 크나큰 고통도 감내하였다. 심지어 때로는 가슴 찢어질 정도로 슬퍼서 크게 소리치고 싶은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오늘날까지 걸어왔다. 나는 이것이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이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모든 괴로운 고통을 참으며 나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이 정해 놓은 것일진대 누가 벗어날 수 있을까? 나는 복받는 것 따위는 원하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의 뜻에 따라 내가 가야 할 길을 가기만을 바랄 뿐이다. 나는 다른 사람을 따라가거나 그들의 길로 가고 싶지 않다. 오로지 충성을 다하며 내가 가야 할 길을 끝까지 갈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나는 다른 이의 도움을 원하지 않는다. 솔직히, 나 또한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 없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왠지 나는 이 부분에서 매우 예민한 것 같다. 나는 항상 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얼마나 많은 길을 가야 하는지는 모두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것이라 그 누구도 누구를 도와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길 … 6>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며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길은 순탄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언제나 많은 고통이 뒤따릅니다. 각자가 평생 어떤 고난을 겪어야 할지는 모두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것입니다. 경찰이 엄마를 어떻게 대할지, 엄마가 감옥에서 얼마나 고생할지, 눈이 멀게 될지 등은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께 많이 기도하며 엄마를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하나님께서 믿음을 더해 주셔서 엄마가 이 환경을 겪어 낼 수 있기를 바라는 것뿐입니다. 지금도 엄마 생각이 날 때면 비록 여전히 걱정되고 마음에 걸리지만, 그것이 제 내적 상태에 영향을 주지는 않습니다. 저는 마음을 평온하게 하고 본분에 몰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은 선하며, 그 안에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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