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진입은 크고 작은 일을 가리지 않는다
2024년 2월, 저는 교회에서 문서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점차 원칙들을 파악하게 되었고, 사역에도 별다른 어려움이 없자 매일 평범하게 지내는 것이 약간 무미건조하게 느껴졌습니다. 문서 사역을 막 시작했을 무렵을 떠올리면, 본분을 이행하면서 항상...
2023년 8월, 저와 쉬신(许欣) 자매는 복음 사역의 책임자로 선출되어 쉬신은 청베이 교회를, 저는 청난 교회를 맡았습니다. 청난 교회는 복음 사역 성과가 떨어지는 편이었습니다. 몇 년 전 제가 그 교회의 복음 사역을 담당했는데, 그때도 성과는 줄곧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또 저에게 그 교회를 맡으라고 하니 그다지 내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몇 년이나 지났으니 어쩌면 지금은 사역 성과가 조금 나아졌을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긴박하고 바쁜 사역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눈 깜짝할 새에 사역을 총정리하는 날이 왔는데, 여전히 사역 성과가 좋지 않았습니다. 복음 전도자들은 원칙을 파악하지 못했고, 복음을 전하는 진리도 밝히 알지 못했습니다. 복음 전도자들과 양육 담당자들을 육성하는 사역도 별다른 진전이 없었습니다. 상황을 알게 된 리더는 서신을 통해 저희의 문제를 지적하며 교제해 주었습니다. 또한 사역에 성과가 없으니 스스로 실제적인 사역을 했는지 잘 반성해 보라고 조언하면서 청베이 교회의 성과가 좋은 편이니, 그들에게 구하고 배우라고 했습니다. 저는 편지를 보고 생각했습니다. ‘나랑 쉬신은 같은 시기에 복음 사역을 맡았는데, 아무래도 쉬신은 운이 좋아서 사역 성과가 좋은 교회에 안배되었어. 그런데 나는 성과가 좀 떨어지는 교회에 안배되어서 오자마자 이렇게 많은 문제점을 지적당하다니, 정말 운도 없지! 성과가 계속 좋지 않으면 책임자에게 사역 능력이 없다는 소리를 들을 텐데, 그러면 얼마나 창피하겠어! 난 정말 운도 없지!’ 그 시기 저희 교회는 복음 성과가 계속 좋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구하고 알아보던 사람들도 유언비어를 들은 뒤로는 관념이 생겨 알아볼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어떤 복음 전도자는 복음 대상의 질문에 대해 정확히 교제해 주지 못하면 저에게 편지를 써서 구했습니다. 저는 일일이 답변을 해 주었지만 그래도 사역에서는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저는 더욱 제가 운이 안 좋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교회에 걸렸지? 이러면 책임자가 날 어떻게 보겠어? 내가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고, 본분을 게을리한다고 하지 않을까?’ 생각할수록 의기소침하고, 마음은 부정적인 감정으로 가득 찼습니다. 무엇을 하든 의욕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복음을 전하는 어떤 사람의 내적 상태가 좋지 않아 본분 이행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신경 쓰고 싶지 않았고, 속으로 어차피 나는 운이 나쁘니까 아무리 사역을 해도 성과는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면서 즉각 교제를 통해 해결해 주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사역 문제에 대해 문의하는 편지를 보내도 며칠 동안 답장도 하지 않고, 사역에 문제가 생겨도 이를 구하거나 곰곰이 생각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온종일 마음이 텅 비고 하나님에게서 멀어진 기분이었습니다. 기도드릴 때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저는 이런 내적 상태를 해결하지 않으면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의식적으로 진리를 구하며 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하루는 묵상 시간에 제 내적 상태에 맞는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항상 자기 운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부류의 문제점은 대체 무엇이겠느냐? 그는 언제나 운이 좋은지 나쁜지를 기준으로 삼아 자기가 한 일의 옳고 그름을 가늠하고, 자기가 마땅히 걸어야 할 길을 가늠하며, 마땅히 겪어야 할 일과 직면한 모든 문제를 가늠한다. 이것이 옳은 태도냐? (옳지 않습니다.) 나쁜 일은 재수가 없었다고 표현하고 좋은 일은 행운이라든지 이득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이러한 관점이 옳은 것이냐? (옳지 않습니다.) 이렇게 사물을 가늠하는 관점은 틀린 것이다. 이는 극단적이고 올바르지 않은 가늠 방식이자 기준이다. 이러한 가늠 방식은 사람을 늘 의기소침하게 만들고 불안감을 느끼게 만든다.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는 일이 없고 모든 것이 자기 뜻대로 안 된다는 생각에 그 사람의 심리는 항상 애타고, 초조하고, 불안하다. 이와 같은 부정적 정서가 해결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점점 더 의기소침한 상태에 빠져 하나님마저 자기를 돌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남은 선대하면서 자기는 선대하지 않고, 남은 보살피면서 자기는 보살피지 않는다고 여기는 것이다. ‘왜 나는 항상 불안감을 느끼고 애가 타는 거지? 왜 나쁜 일은 꼭 나한테만 일어나지? 왜 좋은 일은 항상 내 몫이 아니지? 한 번쯤이라도 나한테 좋은 일이 일어나면 좋을걸!’ 이렇게 잘못된 사상 관점으로 일을 바라보면 너는 행운과 불운이라는 굴레에 얽매이게 된다. 이 굴레에 점점 더 단단히 얽매일수록 네 정서는 계속해서 의기소침해진다. 그렇게 계속 의기소침해지는 과정에서 너는 네게 닥친 일이 행운인지 불운인지에 대해 아주 민감해진다. 네가 그렇게 민감해졌다는 것은 이미 행운과 불운이라는 관점 혹은 논조에 지배당했다는 뜻이다. 그러한 관점에 지배당하면 네가 사람, 일, 사물을 대하는 관점과 태도가 정상 인성의 양심과 이성의 범위를 벗어나 일종의 극단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극단에 빠지면 너는 의기소침한 정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반복적으로 의기소침해진다. 평소에는 전혀 의기소침함을 느끼지 못하더라도 일단 무슨 일이 생기면, 불운한 일이 생겼다는 생각이 들면 너는 곧바로 의기소침해진다. 이러한 의기소침함은 네 정상적인 판단과 결단에 영향을 주고, 더 나아가 네 희로애락에까지 영향을 끼친다. 네 희로애락에 영향이 가면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을 따르고자 하는 의지와 염원이 전체적으로 교란되고 파괴된다. 이렇게 긍정적인 것들이 파괴되면 네가 깨달은 얼마 안 되는 진리가 연기처럼 사라져 아무런 작용도 못 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악순환에 빠졌을 때 너는 네가 깨달은 얼마 안 되는 진리 원칙을 실행하기가 어렵다. 너는 행운이라고 느낄 때만, 의기소침한 정서에 억눌리지 않았을 때만, 가까스로 네가 하고 싶은 일에서 약간의 대가를 치르고 고생을 조금 한다. 아주 조금이지만, 진심이 있기는 있다. 그러다가 행운이 너를 떠나고 불운이 다시 네게 임했다는 느낌이 들면 의기소침한 정서가 빠르게 너를 다시 지배한다. 진심, 충성심, 그리고 고생하려는 의지가 그 즉시 너를 떠난다. 그러므로 자기가 운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 또는 운을 유달리 따지는 사람은 자기 팔자가 안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대단히 극단적인 정서를 가지고 있을 때가 많다. 특히 그들은 의기소침과 같은 부정적 정서에 잘 빠진다. 또한, 지극히 소극적이고 연약하며, 더 나아가 감정의 기복이 지나치게 큰 경우도 흔하다. 운이 좋다고 느낄 때, 그의 가슴은 기쁨으로 가득하고 온몸에는 힘이 넘친다. 고생하고 대가를 치를 수 있으며, 밤에 잠을 덜 자도 괜찮고 낮에 밥을 덜 먹어도 괜찮다. 그 어떤 고난도 마다하지 않고, 흥분하면 자기 목숨도 바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자기가 운이 나쁘다는 생각이 들고 하는 일마다 바라는 대로 되지 않으면, 의기소침한 정서가 바로 그의 마음을 점령한다. 그는 이전에 했던 맹세와 다짐을 몽땅 부정하고 대번에 바람 빠진 고무공처럼 맥을 추지 못하며, 진흙 덩어리처럼 축 처져서 아무 일도, 아무 말도 하려 하지 않는다. ‘무슨 진리 원칙, 진리 추구, 구원받는 것,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전부 나하고는 상관없어. 나는 운이 나쁘니까 진리를 얼마나 실행하든, 대가를 얼마나 치르든 소용없을 거야. 구원받지도 못할 거야. 다 끝장이라고. 나는 재수 없는 놈이고 불운한 인간이야. 될 대로 되라지. 어차피 난 운이 나쁘니까!’ 보아라, 언제는 터질 만큼 부푼 공 같더니 금방 또 바람 빠진 공처럼 된다. 아주 골치 아프지 않으냐? 그렇다면 어쩌다가 이렇게 골치 아픈 상황이 된 것이냐? 근원이 무엇이냐? 그는 언제나 자기 운세에 주목한다. 마치 주식 시장을 보듯이 상승하는지 하락하는지, 강세장인지 약세장인지, 불 마켓인지 베어 마켓인지 보면서 종일 신경을 곤두세운다. 그는 운에 대해 유독 민감하고, 또 고집스럽기도 하다. 이렇게 극단적인 사람은 의기소침한 정서에 빠질 때가 많다. 자기 운세에 너무 관심이 많고 기분에 따라 살아가는 게 그 이유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2)>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제 내적 상태가 이토록 의기소침했던 것은 제가 행운, 불운과 같은 그릇된 관점으로 하나님께서 저에게 마련해 주신 환경을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본분을 이행할 때 별다른 압박도 어려움도 없고, 고생하거나 대가를 치르지 않아도 주변 사람들의 우러름과 찬사를 받는 것이 바로 운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본분을 이행할 때 어려움이 끊이질 않고 사역에서 성과가 없거나 책망과 훈계를 받으면 그건 재수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의기소침한 정서로 살았고, 본분을 이행할 때도 힘이 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사역에 성과가 없었는데 리더가 지적해 주고 도와주며 저희더러 성과가 좋은 교회를 보고 배우라고 한 것은 원래 좋은 일입니다. 덕분에 저는 스스로를 반성하고 인식하는 한편, 사역의 문제점과 오류를 정리해서 즉각 바로 잡을 수 있고, 이는 제 생명 진입과 교회의 사역에 모두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사역 성과가 나빠 제 명예와 지위에 영향을 미치자 저는 스스로 운이 나쁘다고 생각했습니다. 쉬신이 맡은 교회가 좋은 사역 성과로 리더의 높은 평가와 중시를 받자 저는 매우 부러워하면서 쉬신은 운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맡은 교회의 복음 사역은 성과가 좋지 않은 것을 보며, 더욱 스스로 운이 나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운의 좋고 나쁨이라는 그릇된 사상 관점으로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환경을 바라보았습니다. 일이 제 뜻대로 되지 않으면 불평하고, 하나님께서 쉬신을 편애하고 저에게는 은총를 베푸시지 않는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부정적인 감정 속에 살며 소극적으로 변하고 대항했습니다. 이방인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진리를 깨우치지 못해 행운과 불운으로 자신에게 닥친 모든 일을 판단합니다. 명예와 이익을 얻거나 승진하고 돈을 벌면 운이 좋다고 생각하고,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생기면 불공평하다며 하늘을 원망하고 남 탓을 합니다. 그런데 저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매일 닥치는 사람과 일, 사물이 사람이 보기에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모두 하나님께서 주재하시고 안배하신 것으로, 그 안에 제가 배워야 하는 공과가 있음을 잘 알면서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지 않고 이방인이 일을 바라보는 관점으로 하나님께서 저에게 마련하신 환경을 판단했습니다. 정말 황당하기 이를 데 없었고, 이게 바로 불신파의 관점입니다! 여기까지 인식하자 저는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진리를 구해 일을 바라보는 이런 그릇된 관점을 바로 잡고 싶었습니다.
그 후 또다시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운이 좋으니 나쁘니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이제 다들 운이라는 말 자체가 성립하지 않고 좋고 나쁜 게 따로 없음을 알고 있다. 네게 임한 사람과 일, 사물은 좋든 나쁘든 모두 하나님이 주재하고 안배한 것이므로 올바르게 대해야 한다. 좋은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고, 좋지 않은 것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좋은 것이 닥쳤다고 자기 운이 좋다고 할 수는 없으며, 좋지 않은 것이 닥쳤다고 해서 운이 나쁘다고 할 수도 없다. 어디에나 자기가 배워야 할 공과가 있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사람은 이를 거절해서도 안 되고 도피해서도 안 된다. 좋은 것이 임하면 하나님께 감사하고 좋지 않은 것이 닥쳐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이 안배한 까닭이다. 좋은 사람과 일, 사물, 환경에는 자신이 배워야 할 공과가 있기 마련이고, 좋지 않은 것에는 더더욱 자신이 배워야 할 공과가 있다. 전부 다 살면서 반드시 겪어야 할 체험이며, 빠뜨려서는 안 될 부분이다. 사람은 이를 운이라는 말로 가늠해서는 안 된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2)> 중에서), 『네가 운이 좋다느니 나쁘다느니 하는 말을 내려놓고 차분한 마음으로 이러한 일들을 올바르게 대할 수 있다면, 많은 일이 그렇게까지 뜻대로 안 되거나 대처하기 힘든 것만은 아님을 발견하게 된다. 네 야심과 욕망을 내려놓으면, 어떠한 불행이 닥쳐도 거부하거나 도피하지 않는다면, 운이 좋고 나쁨으로 이러한 일을 평가하지 않으면, 예전에 불행하거나 나쁘다고 생각했던 수많은 일들을 이제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나쁜 일이 좋은 일로 바뀌고, 네가 일을 바라보는 관점과 네 심리 상태가 바뀌면서 너는 인생에서 다른 체험을 하게 되는 동시에 다른 수확을 얻게 된다. 이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체험으로, 네게 생각지도 못한 수확을 안겨 준다. 그것은 나쁜 일이 아니라 좋은 일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2)>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저에게 닥친 것은 사람이 보기에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모두 하나님께서 주재하시고 안배하신 것으로 그 이면에는 모두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러니 저는 마땅히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고 순종하며 진리를 구하고 공과를 배워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제가 마땅히 가져야 하는 태도이자 실행입니다. 요셉이 형제들에 의해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가 많은 고난을 겪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이는 좋은 일이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요셉은 이집트의 총리가 되어 기근이 덮쳤을 때 기근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를 받았습니다. 그 후 요셉의 형제들은 이집트로 와서 식량을 구걸했고, 온 가족이 이집트로 이주하여 그들의 자식들과 후손들은 이집트에 400년을 살았습니다. 이를 통해 저는 어떤 일들은 사람이 보기에 재수가 없는 일이지만 꼭 나쁜 일만은 아니며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그 안에 깃들어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 제가 청난 교회를 맡은 것처럼 말입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사역의 필요에 의한 것입니다. 저는 그 교회 사람들의 상황에 대해 잘 아는 편이고, 복음 사역에서도 쉬신보다 경험이 더 많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안배하는 것이 교회 사역에 도움이 되며 제 생명 진입을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저는 육적인 편안함을 탐하는 성향이 있어 어떤 일이 닥쳤을 때 진리를 잘 구하지 못합니다. 담당한 교회의 문제가 많고 어려움이 크면 노력을 기울여 구하고 묵상하는 한편, 많이 교류하고 정리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육에 얽매어 사느라 현 상황에 안주하는 일도 피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치명적인 부분에 맞춰 이런 환경을 마련하신 것은 저를 향한 구원입니다! 또 생각해 보면, 몇 년 전에 제가 바로 이 교회를 맡았었는데, 그때 저는 실질적인 사역을 하지 않았습니다. 형제자매들의 본분 성과가 좋지 않은 것을 보고 저는 싫어하고 규정하는 모습을 표출했습니다. 그때 형제자매들의 생명 진입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해 아쉬움과 미안한 마음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가 다시 그들의 사역을 맡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저에게 지난 과오를 만회할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저는 즉각 본분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고, 마음을 다해 협력해서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께서 저에게 이 교회를 맡을 기회를 주신 것은 제 생명에 필요한 것이고, 거기에 하나님의 고심이 담겨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러니 이방인의 관점으로 일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환경에 저항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어떤 환경을 마련하셨든 그것은 모두 우리 생명을 위해 필요한 것이며, 운의 좋고 나쁨이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제가 더 이상 운의 좋고 나쁨으로 저에게 임한 사람과 일, 사물을 판단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람과 일을 바라보자 마음이 후련하고 더는 부정적인 감정으로 살지 않게 되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저는 항상 제 뜻에 맞지 않는 일이 닥치면 재수가 없다고 생각하며 항상 저에게 좋은 일이 오기만을 바랐습니다. 이건 어떤 패괴 성품에 지배받은 것일까요? 영 생활 시간에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일의 좋고 나쁨을 운으로 가늠하는 사람은 어떠한 사상 관점을 가진 것이냐? 그러한 사람의 본질은 무엇이냐? 그는 어째서 그렇게 운이 좋은지 나쁜지에 집중하는 것이냐? 운에 집중하는 사람은 자기 운이 좋기를 바라느냐, 안 좋기를 바라느냐? (운이 좋기를 바랍니다.) 그렇다. 사실 그는 자기가 운이 좋기를, 온갖 좋은 일이 다 자기에게 임하기를 추구한다. 자기만 실속을 차리고 이익을 얻으면 그만이요, 남들이야 어떤 고통을 받고, 어떤 고생을 하고, 어떤 어려움을 겪든 관심이 없다. 그는 자기가 생각하기에 재수 없는 일이 부디 닥치지 않기를 바란다. 나쁜 일은 하나도 닥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좌절, 실패, 난처함, 책망 훈계, 또는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손해를 보거나 사기를 당하는 등의 일은 닥치지 말라는 것이다. 만약 닥친다면 재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누가 안배한 일이든 간에 좋지 않은 일이 닥치면 곧 재수가 없다는 것이다. 반면 어디 발탁된다든지, 체면이 선다든지, 실속을 차린다든지, 이익을 얻는다든지, 큰돈을 번다든지, 높은 지위를 얻는다든지 등등의 좋은 일은 모두 자기에게 임해야 하며 이는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는 항상 운의 좋고 나쁨으로 자기에게 임한 사람과 일, 사물을 가늠한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나쁜 운이 아니라 좋은 운이다. 무언가가 조금이라도 자기 마음대로 안 되면 화를 내고 불만을 품는다. 솔직히 말해서 이런 부류는 이기적인 인간들이다. 자기 실속과 이익만 추구하고, 우위를 점하기를 추구하며, 체면을 세우기를 추구한다. 좋은 일은 자기가 혼자 다 차지해야 직성이 풀린다. 이것이 바로 그의 본성 본질이며, 진짜 모습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2)>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늘 자기 운이 나쁘다고 원망하는 사람은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언제나 좋은 일은 모두 자신에게 생기기를 바라며, 모든 일이 잘 풀려서 사업도 성공하고, 두각을 나타내며 영광스럽게 살길 바랍니다. 그 어떤 좌절이나 실패도 만나지 않기를 바라고, 하나님 집에 와서 본분을 이행할 때도 가만히 앉아서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본분을 이행하며 고생하고 대가를 치러야 할 때는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책망과 훈계를 받는 것도 싫어합니다. 체면에 상하거나 조금이라도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돌아보면 저도 그랬습니다. 본분을 이행하다가 어려움에 맞닥뜨리거나 책망과 훈계, 좌절과 실패가 닥칠 때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안배해 주신 환경이 나쁘다며 원망했습니다. 항상 아무 걱정 없이 고생도 하지 않으면서 명예와 이익을 모두 얻고 싶어 했고, 안락한 둥지에서 살아야만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맡은 청난 교회는 문제는 많은 편이고, 사역에서 성과가 나지 않으므로 책망과 훈계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자 저는 이런 교회에서는 도모할 만한 이익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매일 아무리 많이 일해도 남들이 알아 주지 않으니 속으로 불만을 품고 소극적인 자세로 사역을 게을리했습니다. 형제자매들의 내적 상태가 좋지 않아 본분 이행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고도 신경 쓰지 않았고 사역에서 문제가 생겨도 해결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익이 없이 움직이지 않는다’, ‘누구도 손해 보는 장사는 하지 않는다’와 같은 사탄의 철학으로 살며 이기적이고 비열한 소인배가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교회는 저를 책임자로 양성하고 많은 훈련 기회를 주었고, 지금은 복음 사역 성과가 좋지 않은 교회를 담당하도록 했습니다. 저는 당연히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적극적으로 본분에 뛰어들어 사역의 문제와 어려움을 해결해야 합니다. 하지만 저는 육적으로 고생하고 체면이 상할까 봐 원망하며 저 자신의 본분조차 지키지 못했습니다. 제가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하나님을 만족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육적인 누림과 명예, 지위를 좇기 위함이었습니다. 저는 정말 너무 이기적이고 비열합니다! 여기까지 인식하자 속으로 자책감이 들었습니다. 더는 제 이익을 좇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하나님께 의지하며 제 책임을 다하기로 했습니다. 그 후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어려움이나 문제점을 안고 있거나 복음 전파의 원칙을 잘 파악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더 이상 원망하지 않고, 언제나 편지를 써서 교류했습니다. 또한 그들의 내적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을 보면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교제하며 도와주고 붙들어 주었습니다. 이렇게 실행하면서 매일 보람을 느꼈고, 저도 수확을 거두었습니다.
어느 날, 저는 청난 교회의 한 복음 전도자가 보낸 편지를 받았습니다. 자신의 파트너인 징안(静安) 자매가 자질 부족으로 본분을 감당하지 못하고 그만두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며칠 후, 팀장으로부터 웨이전(维珍) 자매의 내적 상태가 좋지 않아 패괴 성품 속에 살면서 복음을 전하려 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팀장은 “저도 어려움 속에서 살고 있어요. 어떻게 협력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라고도 했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보자 속으로 매우 짜증이 났습니다. ‘다들 무슨 일이 이렇게 많은 거야? 사역 성과도 변변치 않으면서, 문제는 또 이렇게 많다니. 오늘 이 사람이 관두면, 내일은 저 사람이 내적 상태가 좋지 않고, 당신들 내적 상태를 해결해 주는 데에만 이렇게 많은 노력이 드는데 내가 복음 전할 시간이 어디 있겠어? 육적인 고생은 둘째 치고, 중요한 건 사역에 성과가 없는 건데, 그럼 책임자가 나를 어떻게 보겠어? 이 교회는 역시나 문제가 많다니까. 정말 재수도 없지!’ 저는 제 내적 상태가 옳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이와 관련한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 읽었습니다. 그때 보았던 하나님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의기소침한 정서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쉬운 일이냐? 사실은 쉽다. 자신의 잘못된 관점을 내려놓는 한편, 매사 잘 풀리고 뜻대로 이루어지고 순조롭기를 추구하지 않으면 된다. 또, 순조롭지 않은 일이 일어나는 것을 겁내고, 반발하고, 거부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반발심을 내려놓고 마음을 평온하게 하고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와 순종하는 태도로 하나님이 안배한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소위 말하는 ‘행운’을 추구하지 말고, 소위 말하는 ‘액운’을 거부하지도 말고, 자기 마음과 전 존재를 하나님께 맡겨 하나님이 행하고 지배하게 두고,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이 네게 필요한 것을 제때 네게 필요한 만큼 베풀어 줄 것이다. 하나님은 네게 필요하고 네게 부족한 것에 따라 네게 필요한 환경과 사람, 일, 사물을 배치하여 네가 자신에게 임한 사람, 일, 사물로부터 마땅히 배워야 할 공과를 배우도록 할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의 전제 조건은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는 네 심리 상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완벽을 추구하지 마라. 뜻대로 되지 않는 일, 난처한 일, 순조롭지 않은 일이 생기는 것을 거부하거나 두려워하지 마라. 또, 이렇듯 의기소침한 정서를 가지고서 안 좋은 일이 생기는 것에 대해 마음속 깊이 반발심을 느끼지도 마라.』(<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2)>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통해 저에게 이런 일이 닥친 데에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먼저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하며, 제 체면에 관계되고, 육적인 이익에 저촉된다고 해서 원망하거나 불평하면서 부정적인 감정 속에 살아서는 안 됩니다. 이 모든 것은 본분을 대할 때 가져야 하는 태도가 아닙니다. 현재 자매 세 명이 소극적이고 연약한 상태입니다. 패괴 성품으로 살면서 헤어 나오지 못해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즉시 교제해서 해결해 주지 않으면 복음 사역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생명 진입도 지체됩니다. 저는 그들을 미워할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교제하고 도와주며 제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서둘러 그들에게 서신을 보내 제 체험을 들어 교제해 주었고,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더는 어려움 속에 살지 않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복음을 전했던 체험과 수확도 교제해 주었습니다. 며칠 후 편지를 받았는데,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며 내적 상태가 조금 나아졌고, 정상적으로 본분을 이행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런 결과를 보자 마음이 아주 편안하고 믿음도 더 커졌습니다. 세상만사와 만물은 모두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어떤 어려움과 좌절을 마련하셨든 저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겪어 내야 하며 모든 일에서 진리를 구하고 진입을 실행해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제가 본분을 대할 때 마땅히 가져야 하는 태도입니다. 제가 거둔 이런 수확과 인식은 모두 안일함 속에서는 얻을 수 없는 것들입니다!
체험 후, 저는 늘 행운과 불운으로 저에게 임한 일을 판단하는 것이 정말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 깨달았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매일 저에게 마련해 주신 환경이 제 눈에 좋아 보이든 마음에 들지 않든, 그 안에는 늘 제가 배워야 할 공과가 있고 모두 제 생명 진입에 필요하며, 하나님의 아름다운 그 안에 뜻이 깃들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진리 추구에 더 노력을 기울여 사람과 사물을 바라볼 때 하나님의 말씀을 준칙으로 삼고, 하루빨리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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