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요독증 환자의 반성
중국 허무(何慕)저는 40대가 되었을 때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세에 하시는 사역은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이며, 사람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그분의 말씀을 읽고 본분을 이행해야만 진리를 깨닫고 얻을 수 있고,...
2012년, 제가 교회 리더로 섬길 때 한 유다에게 팔려 현지 파출소 경찰에게 체포되었습니다. 경찰은 4일 밤낮으로 저를 잔혹하게 고문했습니다. 3교대로 돌아가며 저를 감시했고, 제가 졸기만 하면 사기그릇으로 머리를 내리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그들은 윗선 리더가 누구냐고 악착같이 캐물었고, 제가 입을 열지 않자 제 수갑을 있는 힘껏 뒤로 잡아당겼습니다. 심지어 불지 않으면 저의 두 아이를 대학에서 퇴학시키겠다고 협박까지 했습니다. 저는 그들의 계략에 넘어가지 않고 끝까지 버텼습니다. 나중에는 너무 졸려서 귀에서 이명이 들리고 머릿속이 윙윙거렸습니다. 한 경찰이 비아냥거렸습니다. “일주일을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우리한테 시간은 얼마든지 있어. 뇌가 고장날 때까지 괴롭히면 뭐든 다 실토하게 돼 있어.” 당시 저는 고문에 시달려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도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습니다. 어떤 경찰은 자백하지 않으면 다른 성(省)으로 비밀리에 보내 가족들도 찾지 못하게 만들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그 말을 듣자 덜컥 겁이 났습니다. 그들이 저를 다른 성으로 보내면 분명 계속 고문할 것이고, 그러다 고문으로 죽기라도 하면 구원받을 기회마저 사라질 테니까요. 당시 경찰은 최소 일곱 명의 이름을 대라고 했습니다. 저는 고문에 시달려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만약 뇌가 통제 불능 상태가 되어 교회의 중요한 정보를 실토해 버리면, 하나님을 배반한 유다가 되어 더 큰 징벌을 받을까 봐 두려웠습니다.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며칠 전에 잡혔던 형제자매 네 명은 벌금을 내고 이미 풀려났으니 그들을 말해도 경찰이 당분간은 다시 잡아가지 않을 거야. 또 예전에 잡혔다가 나를 팔아넘긴 사람은 이미 교회에서 제명됐으니, 경찰이 그를 잡더라도 그는 교회 정보를 모를 테고 교회에 별다른 손실이 없을 거야.’ 그래서 저는 그 다섯 사람의 이름을 말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경찰 간부 한 명이 공책을 제 앞에 힘껏 내동댕이치고 삿대질을 하며 고함쳤습니다. “감히 날 갖고 놀아? 그놈들은 다 ‘교육’받았던 놈들이잖아!” 부하 경찰 몇몇은 상사가 격노하는 것을 보고는 전기장판으로 제 머리를 감싸고, 무릎을 짓밟아 신발과 양말을 벗긴 뒤 허리띠로 발바닥을 사정없이 후려쳤습니다. 그러면서 계속 불지 않으면 대꼬챙이로 손톱 밑을 쑤시겠다고 했고, 한 경찰은 그렇게 말하며 차로 대꼬챙이를 가지러 갔습니다. 당시 저는 너무 무서웠습니다. ‘저들이 정말 대꼬챙이로 찌르면 내가 어떻게 견딜 수 있겠어? 기어이 날 고문해 죽일 작정이구나.’ 저는 마음이 너무나 연약해져서, 저를 자주 맞아 주던 한 형제가 떠올랐습니다. 그 형제는 연세가 많아 집에서 예배 장소만 제공했기에, 그를 팔아넘겨도 교회에 큰 손실은 없을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 형제의 실명과 주소를 적었습니다. 하지만 말한 사람이 너무 적다며 그들은 계속 저를 심문했습니다. 그때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넋이 나간 듯 마음이 텅 비어 버렸고, 극심한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형제자매를 팔아넘겨 유다가 되었으니, 하나님은 절대 저를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고, 하나님을 믿는 제 여정도 거기서 끝이 날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악마들이 미웠고, 그들의 계략에 넘어간 제 자신도 증오스러웠습니다. 그 후, 그들이 다시 말하라고 윽박질렀을 때 저는 단호히 거부했고, 결국 그들은 저를 풀어 주었습니다.
집에 돌아오자 온몸의 기력이 다 빠져나갔습니다. 예전에 보았던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이 떠올랐습니다. 『환난 가운데서 나에 대한 충성심이 조금도 없었던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 긍휼을 베풀지 않을 것이다. 나의 긍휼은 여기까지이고, 또 나는 나를 배반했던 자를 좋아하지 않으며 친구의 이익을 팔아먹은 자와 왕래하는 것은 더더욱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나의 성품이다. 그 사람이 누구든 상관없다.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누구든 내 마음을 심히 상하게 하는 사람은 두 번 다시 나의 관용을 얻지 못하고, 누구든 나에게 충성하는 사람은 내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너는 종착지를 위해 충분한 선행을 예비해야 한다> 중에서) 하나님은 공의롭고 거룩하신데, 저는 형제자매를 팔아넘겨 유다가 됨으로써 하나님의 성품을 거슬렀으니, 하나님은 저 같은 사람을 원치 않으실 게 분명했습니다. 제가 형제자매를 팔아넘겼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저며 오는 아픔을 느꼈습니다. 연로하신 형제님이 저를 재워 주셨는데, 저는 그 형제님마저 팔아넘겼습니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짐승만도 못한 제 자신이 미웠고, 하나님을 배반한 것이 뼈저리게 후회스러웠습니다. 그 며칠간 저는 거의 매일 눈물로 밤낮을 지새웠습니다. 형제자매와 함께 예배드리고 본분을 이행하던 때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돌이켜보았지만, 이제는 영영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버림받은 유다가 되었고,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었으니, 다시 믿는다 해도 하나님은 저 같은 사람을 구원하지 않으실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말씀 책을 들어도 읽고 싶지 않았고, 기도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생활이 끝났다는 생각에 너무 괴롭고 의기소침해져서, 차라리 죽으면 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소극적인 상태가 극에 달했을 때, “단 한 줄기 희망만 있어도 하나님은 구원하신다.”라는 아주 부드러운 음성이 귓가에 들려왔습니다. 저는 서둘러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과거의 과오를 기억하든 안 하든, 지금 너희에게 일말의 희망이라도 있다면, 어떤 마음가짐을 지녀야 하겠느냐? ‘나는 성품 변화를 추구하고 하나님 알아 가기를 추구해야 해. 더 이상 사탄에게 속지 않으며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짓을 해서는 안 돼.’』(<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의 권면이 담긴 말씀을 구절구절 읽으면서 저는 감동의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고, 마음이 한없이 부끄러웠습니다. 하나님은 저의 과오대로 저를 대하지 않으시고 회개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저는 계속 진리를 추구해야 했습니다. 본분을 이행할 수 없다면 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더는 자포자기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나중에 형제자매에게 들어 보니 제가 팔아넘긴 다른 몇몇 사람은 경찰이 다시 잡으러 가지 않았고, 저를 재워 주던 형제님 댁에는 경찰이 찾아갔지만, 형제님이 인기척을 듣고 몸을 숨겨 잡히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교회에 큰 손실을 끼치지 않았기에 교회는 저를 출교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것이 저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과 관용임을 알았기에 하나님께 무척 감사하면서도 죄송했고, 후회와 자책감에 휩싸였습니다. ‘그때 경찰이 심문할 때, 내가 그들의 간계를 간파하고 하나님을 의지해 조금만 더 버텨서 유다가 되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면 이런 지울 수 없는 오점을 남기지도 않았을 텐데. 앞으로 다시 경찰에 잡히게 되면 무슨 일이 있어도 굳게 서서 증거하고, 맞아 죽는 한이 있어도 사탄에게 굴복하지 않고 형제자매를 팔아넘기지 않을 거야.’
2013년 늦가을, 현(縣) 국가보안대대의 지시를 받은 현지 파출소 경찰이 저를 공안국으로 강제 연행했습니다. 길을 걸으며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이번에는 경찰이 어떤 술수를 쓰든, 설령 고문으로 죽는 한이 있어도 형제자매와 교회 정보를 팔아넘기지는 않을 거야.’ 공안국에 도착하자, 국가보안대대 대장이 교회의 헌금 행방에 대해 캐물으며, 말하지 않으면 시(市) 여자 구치소로 보내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들이 교회의 돈을 노리고 온 것을 보고 너무나 비열하고 파렴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위협하든 저는 입을 굳게 다물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저를 풀어 주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에도 경찰은 계속 저를 감시했고, 가족을 시켜 저를 지켜보게 했습니다. 거의 2년 동안 저는 정상적으로 예배를 드리거나 본분을 이행할 수 없었습니다. 제 마음은 무겁게 가라앉았습니다. 과거에 하나님을 배반하고 유다가 되었는데, 지금은 아무 본분도 이행하지 못하고 죄를 만회할 기회도 없으니 결국에는 도태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생각에 저는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고통을 느꼈고,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기도하고 저를 이끌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나중에 예전에 자주 부르던 하나님 말씀 찬양 <시련 속에서 믿음이 있어야 한다>가 떠올랐습니다. 『시련을 겪는 과정에서 사람이 연약해지거나 소극적이 되거나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거나 실행의 길에 대해 잘 알지 못하거나 하는 것은 다 정상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너는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믿음이 있어야 하고, 욥처럼 하나님을 부인하지 말아야 한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온전케 될 사람은 모두 연단을 겪어야 한다> 중에서) 저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고난과 연단을 겪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것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믿음이었습니다. 저는 순종해야 했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어서는 안 됐습니다. 나가서 본분을 이행할 수 없다면, 집에서 체험 간증문이라도 쓰면 되었습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고통이 조금은 가시는 듯했습니다.
2015년, 교회는 제게 문서 본분을 이행하도록 안배했습니다. 한번은 장밍 형제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체포되었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형제가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저를 팔아넘겨서 제가 감옥에 가는 한이 있어도 저는 다른 사람을 팔아넘길 수 없습니다. 그건 너무 비인간적인 짓이니까요!” 형제의 말을 듣고 저는 고개조차 들 수 없었고, 마음이 칼로 에는 듯 아팠습니다. 형제는 감옥에 가는 한이 있어도 굳게 서서 증거하려 했는데, 저는 죽음이 두려워 형제자매를 팔아넘겼으니, 이 과오는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 같은 사람은 구원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생각에 저는 몹시 의기소침해졌습니다. 나중에, 죽기를 각오하고 유다가 되지 않아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서서 증거한 형제자매들의 체험 간증문을 여러 편 보았습니다. 비록 그들은 상처투성이였지만, 그들의 강인함과 당당하게 하나님을 증거하며 영화롭게 하는 그 의연한 모습은 찬탄과 경탄을 자아냈습니다. 다시 저를 돌아보았습니다. 저는 육적인 안락을 얻기 위해 부끄러운 유다가 되어 형제자매를 팔아넘기고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했습니다. 저는 정말 이기적이고 비열하며 짐승만도 못했고, 살아갈 자격조차 없었습니다! 저는 마음이 너무 괴로워서 차라리 죽으면 이 영적인 고통을 감당하지 않아도 되니 해방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뒤이어 여러 해 앓던 위장병이 심해지고 다리의 관절염까지 도져서 밤에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로 아팠습니다. 그 기간에 파트너 자매가 제게 진리를 구해 자신을 반성해야 한다고 일깨워 주었습니다.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반성은 무슨 반성이야? 이 병은 하나님의 징벌이고 내가 마땅히 받아야 할 보응이야. 애초에 죽음이 두려워 유다가 된 내 잘못이잖아? 이 오점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거고, 아무리 진리를 추구해도 다른 형제자매처럼 구원받을 기회는 없을 거야. 교회가 시키는 일이나 하면서 힘닿는 데까지 힘이나 쓰다가, 어느 날 그마저도 끝나는 날이 오면 죽으면 그만이지.’ 저는 진리를 구하지 않았기에 그렇게 오랫동안 과오 속에서 살면서도 해방되지 못했습니다. 그 일은 제 마음에 박힌 가시 같아서, 그 일이 언급될 때마다 마음이 특히 아팠습니다.
2023년 12월, 저는 한 체험 간증 영상을 보았는데, 그 안에 인용된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이 제 상황에 꼭 들어맞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의기소침한 정서에 빠지는 데는 또 하나의 원인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성인이 되기 전 또는 성인이 된 이후에 특수한 일을 겪었다. 바로 어떠한 과오를 범했거나 어리석은 일, 우매한 일, 무지한 일을 저지른 것이다. 그리고 그 과오, 어리석은 일, 무지한 일 때문에 의기소침한 상태에 빠진다. 그들의 의기소침함은 자신을 정죄하는 것인 동시에 자신이 어떤 사람임을 규정하는 것이다. … 그러한 일들을 저지른 적이 있는 사람들은 흔히 무심결에, 혹은 어떠한 특수 상황이 발생했을 때 특수한 환경 배경 속에서 불안감을 느낀다. 이 불안감으로 인해 그는 자기도 모르게 극도로 의기소침한 상태에 빠지며, 의기소침한 상태가 그를 결박하고 제약한다. 설교를 듣거나 진리를 교제할 때마다 머릿속에서, 마음 깊은 곳에서 의기소침함이 서서히 고개를 든다. 그러면 그는 자신을 이렇게 힐책한다. ‘내가 할 수 있겠어? 내가 진리를 추구할 수 있겠어? 내가 구원받을 수 있겠어? 내가 어떤 인간인데? 과거에 그런 짓을 했으니, 그런 인간이었으니 나는 구제 불능인 게 아닐까? 하나님께서 과연 나를 구해 주실까?’ 때로 어떤 사람들은 의기소침한 정서를 버리고 거기서 벗어나 본인의 진심과 본인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서 본분, 의무, 책임을 다하며, 더 나아가 몸과 마음 전부를 바쳐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 말씀에 공을 들이기도 한다. 그러나 일부 특수한 환경과 배경이 임했다 하면 그런 의기소침한 정서가 다시 우위를 점하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이렇게 참소한다. ‘너는 그런 짓을 했었잖아. 과거에 그런 인간이었잖아. 네가 구원받을 수 있겠어? 네가 진리를 실행한들 소용이 있을까? 네가 저지른 그 일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실까? 네가 한 짓을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실까? 네가 이렇게 대가를 치른다고 해서 예전에 범한 과오를 만회할 수 있을까?’ 그의 내면 깊은 곳에는 늘 자책과 참소가 존재하며, 의문과 힐책이 떠나지 않는다. 그는 시종일관 의기소침한 정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자기가 저지른 추악한 일 때문에 언제나 내면이 불안하다. 그 때문에 그는 하나님을 몇 년이나 믿었음에도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는지 듣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구원받는 일이 자기와 관계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것 같다. 자기가 과연 사함과 구속을 받을 수 있을지, 자기한테 과연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받고 구원받을 자격이 있는지, 그는 하나도 알지 못한다. 답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확실한 정론이 없기 때문에, 그의 깊은 내면은 항상 의기소침하다. 그는 마음속으로 자기가 과거에 저지른 짓을 한번 또 한번 떠올리고, 반복적으로 머릿속에서 재생한다. 그 일의 경과를 회상하고, 그 일의 전후를 회상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항상 죄악감이 든다. 그 일 때문에 수년간 시종일관 의기소침한 상태다. 본분을 이행하고 어떤 일의 책임자가 돼도 자기는 구원받을 가망이 없다고 생각한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2)>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니 마음에 와닿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형제자매를 팔아넘긴 후부터 저는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유다가 되었다는 오점은 가시처럼 제 마음에 박혀, 하나님께서 제 과오를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고 저 같은 사람은 구원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비록 교회가 저의 과오대로 저를 출교하지 않고 본분을 이행할 기회까지 주었지만, 제 과오를 생각할 때마다 저는 소극적인 상태에 빠져 스스로 구원받을 희망이 없다고 단정 지었습니다. 수많은 형제자매들이 체포된 후 생사를 아랑곳하지 않고 온갖 혹형을 겪으면서도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는 그 의로운 모습을 보면서, 저는 얼굴을 들 수 없을 만큼 부끄러웠고, 짐승만도 못하며 줏대 없이 부끄러운 유다가 된 제 자신을 미워했습니다. 저는 겉으로는 본분을 이행하고 있었지만, 마음속으로는 늘 ‘나는 하나님을 배반한 유다인데, 하나님께서 나 같은 사람을 구원하실까? 하나님께서 내 과오를 용서하실 수 있을까? 본분을 잘 이행하면 내 과오를 만회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분명 저 같은 사람을 혐오하실 것이라고 생각했고, 형제자매들이 생명 진입과 성품 변화 추구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스스로 자격이 없다고 여겼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제 과오에 얽매여 소극적인 감정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진리를 추구할 의지조차 없었고, 그저 힘을 좀 쓰고 과오를 약간이나마 만회하는 것에 만족하며 지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사람이 어떤 환경에 처하든, 어떤 과오가 있든 성품 변화를 추구하기를 바라시는 것이었는데, 저는 이렇게 하나님을 오해하고 멀리했으니, 제게 어찌 인성이 있다고 하겠습니까?
그 후 저는 반성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의기소침한가? 문제의 근본 원인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렇게 구하던 중,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다 복을 받고, 상을 얻고, 면류관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다. 이런 생각은 모든 이의 마음속에 다 들어 있지 않느냐? 누구나 마음속으로 그런 생각을 한다. 이는 사실이다.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항상 말로 내뱉지 않아도, 나아가 복을 받으려는 자신의 속셈과 욕망을 숨겨도, 마음 깊은 곳의 그 욕망, 그 속셈과 동기는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다. 사람이 영적인 이론을 얼마나 많이 알고 어떤 체험적 인식이 있든, 어떤 본분을 이행할 수 있든,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으며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르든,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복받으려는 속셈은 영원히 포기하지 않는다. 또 사람은 언제나 이 복받으려는 속셈을 위해 고생을 마다치 않고 바쁘게 뛰어다닌다. 이는 사람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것 아니더냐? 복을 받으려는 속셈이 사라진다면 너희는 어떤 기분이겠느냐? 어떤 태도로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을 따르겠느냐? 마음속에 숨겨진 복받으려는 그런 속셈을 정말로 완전히 없앤다면 사람은 대체 어떻게 되겠느냐? 아마 많은 사람이 소극적이 될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본분을 이행할 의욕이 사라질 것이다. 영혼을 잃어버린 듯 하나님 믿는 일도 무의미하다고 느낄 것이다. 마음을 잃은 사람처럼 말이다. 그래서 복받으려는 속셈이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생명 성장의 여섯 가지 기준> 중에서)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속셈을 낱낱이 드러내셨습니다.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며 고난을 겪고 헌신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복을 받고 좋은 앞날과 운명을 얻기 위함이었습니다. 일단 복을 받지 못하게 되거나 좋은 앞날과 종착지를 얻지 못하게 되면 의기소침해져서 진리를 추구하지도 않고 진리를 실행하고자 애쓰지도 않으며, 심지어 하나님을 믿는 것조차 의미 없다고 느끼게 됩니다. 저 자신을 반성해 보았습니다. 처음 하나님을 믿기 시작했을 때부터 버리고 헌신하며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했던 것, 심지어 가족의 핍박과 종교계의 교란, 세상 사람들의 비방에도 굴하지 않고 본분을 이행했던 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나중에 복을 받고 좋은 종착지를 얻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체포된 후 죽음이 두려워 형제자매를 팔아넘겨 유다가 되고 심각한 과오를 남기자, 저는 하나님께서 저를 구원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지레짐작했습니다. 복 받을 길이 막혔다고 생각되자 더 이상 나아갈 믿음도 없이 매일 산송장처럼 지냈습니다. 나중에 다시 본분을 이행하게 되었지만, 그것은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제가 본분을 이행하며 대가를 치르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제 과오와 죄를 용서해 주시길 바라며, 나중에 복 받을 희망이라도 얻고 싶었을 뿐입니다. 체포된 형제자매들이 혹독한 고문을 겪으면서도 죽을 각오로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고 굳게 서서 증거한 것을 보았을 때, 유다가 되어 하나님을 배반한 제 모습이 너무나 대조적이었습니다. 제 과오가 하나님께서 혐오하시는 것이며 복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자, 저는 더 이상 진리를 추구하며 나아가려 하지 않고 자포자기하는 소극적인 감정 속에 빠져 살았습니다. 바울이 하나님께 죽임을 당한 후 자신은 하나님을 대적한 죄인의 괴수라고 인정했지만, 정작 예수님을 대적한 자신의 본성 본질에 대해서는 전혀 인식이 없었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는 고난을 겪고 옥에 갇히며 열심히 뛰어다니고 헌신한 것을 밑천 삼아 하나님께 면류관과 상을 요구했습니다. 바울이 고난을 겪고 헌신한 속셈과 목적은 바로 복을 받는 것이었고, 하나님과 거래하는 것이었지 진실한 회개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형제자매를 팔아넘겨 그렇게 큰 악을 행하고도, 본분을 이행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제 죄를 사해 주시고 복 받을 기회를 주시기를 바랐으니, 정말이지 너무나 비이성적이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제게 관용을 베푸시어 본분을 이행할 기회를 주셨으니, 저는 양심과 이성을 가지고 본분을 잘 이행해야 했습니다. 나중에 복을 받을 수 있든 없든 마땅히 순종해야 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줄곧 복을 받기 위해 당신과 거래해 왔습니다. 제가 너무 패역하고 비인간적이었습니다. 제가 힘을 다 쓰고 난 후에 당신께서 저를 멸하신다 해도 저는 당신의 공의를 찬미해야 마땅합니다. 하나님, 저는 진심으로 회개하고자 합니다. 이후의 결말이 어떠하든 저는 피조물의 본분을 잘 이행하고 더 이상 복을 추구하지 않겠습니다.”
나중에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을 보고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어느 정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조금만 과오를 저질러도 이렇게 추측한다. ‘하나님이 나를 드러내고 도태시킨 게 아닐까? 나는 하나님에게 죽임을 당하는 거 아닐까?’ 하나님이 이번에 사역하러 온 것은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최대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다. 과오 없는 사람이 없는데 만약 모두 죽인다면 그게 구원이겠느냐? 사람은 일부 과오는 고의로 저지르고 일부 과오는 자기도 모르게 저지른다. 자기도 어쩔 수 없는 일에서 네가 인식하고 나서 변화할 수 있다면 하나님이 네 변화를 기다리지 않고 너를 죽여 버리겠느냐? 하나님이 이런 식으로 사람을 구원하겠느냐? 그렇지 않다! 네가 패역 성품이 있든 자신도 어쩔 수 없든, 기억해라.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하며 서둘러 돌아서서 힘을 다해 진리에 공을 들여야 하고, 어떤 상황이 나타나든 자포자기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하는 것은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이다. 하나님은 구원하려는 사람을 아무렇게나 죽이지 않는다. 이는 분명하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정말로 결국 하나님에게 죽임을 당하더라도 하나님이 한 일은 틀림없이 공의로운 것이다. 때가 되면 무엇 때문에 그를 죽였는지 네가 알도록 할 것이고 진심으로 탄복하게 할 것이다. 지금 너희는 오로지 진리에 공을 들이고 생명에 진입하는 것만 중시하고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는 것만 추구하여라. 이는 틀림없다! 최종적으로 하나님이 어떻게 처리하든 틀림없이 공의로울 것이니 너는 이를 의심해서는 안 되고 걱정할 필요도 없다. 비록 지금 너는 하나님의 공의를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언젠가는 탄복할 것이다. 하나님은 일할 때 항상 광명정대하고 공개적으로 모든 것을 드러낸다. 너희가 이 방면에서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면 하나님이 하는 것이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이고 사람의 패괴 성품을 변화시키는 사역이라는 사실을 마음속으로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깨달았습니다. 사람이 과오가 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바로 벌하시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께서는 당시의 배경과 사람의 속셈, 그리고 사람의 본질에 근거하여 사람을 대하신다는 것을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시는 기간에 사람이 과오를 저질렀더라도 즉시 회개하고 변화하며, 진리를 구해 자신의 과오를 해결하고,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요구에 도달하고자 노력하면,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기회를 주십니다. 이것이 사람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원칙입니다. 저는 경찰의 고문으로 의식이 흐려진 상태에서 한순간 연약해져 형제자매를 팔아넘겼습니다. 하지만 교회와 형제자매에게 큰 손실을 끼치지 않았고, 그 후 제 자신을 뉘우치고 증오했습니다. 교회는 저를 출교하지 않았고 오히려 본분을 맡겨 주었는데, 이는 저에 대한 하나님의 관용과 긍휼이었습니다. 반면, 저희 교회에 두 사람은 여러 해 동안 교회 리더로 있다가 체포된 후 유다가 되어 형제자매를 팔아넘기고도 전혀 뉘우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삼서(三書)’에 서명하고 경찰을 데리고 다니며 형제자매를 지목하여 체포하게 했습니다. 그들은 큰 붉은 용의 앞잡이이자 주구가 되었으니, 그들의 본질은 바로 악마였고, 결국 교회에서 출교되었습니다. 이런 사실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사람을 대하시는 데에는 원칙이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한순간 연약해져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정보를 좀 말했더라도, 나중에 자신을 뉘우치고 진심으로 회개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배반하고 본질이 유다인 사람은 섞여 들어온 가라지이므로 마땅히 출교되어야 하고, 최종적으로는 하나님께 징벌을 받게 됩니다. 저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제 관념과 상상 속에서 살면서 하나님을 오해하고 자포자기했으니, 정말이지 사리 분별도 못하고 좋고 나쁨도 모르는 얼간이였습니다!
한번은 한 체험 간증 영상을 보고 마음에 크게 와닿았습니다. 영상 속의 형제는 체포된 후 자신을 섬기던 자매를 팔아넘겼고, 말로 다할 수 없는 영적인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왜 하나님을 배반하고 유다가 될 수 있었는지 반성했는데, 그것은 바로 죽음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 또한 제 실패의 근원이 죽음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믿음이 없으며 하나님의 주재를 믿지 못하는 데 있음을 반성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전체 인류를 통틀어, 전능자의 눈 아래에서 보살핌을 받지 않는 자가 있느냐? 전능자의 예정 속에서 생존하지 않는 자가 있느냐? 사람의 생사존망은 자신의 선택에서 비롯된 것이냐? 사람의 운명은 자신이 주관할 수 있는 것이더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음을 원했는지 모르지만 죽음은 오히려 그들을 멀리 피해 갔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삶의 강자가 되길 원하고 죽음을 두려워했는지 모르지만, 부지불식간에 죽는 날이 다가와 그들을 죽음의 심연 속으로 떨어지게 하였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ㆍ제11편> 중에서) 저는 깨달았습니다. 사람의 생사는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제가 경찰에 체포되어 맞아 죽을지 아닐지는 하나님께서 결정하시는 일이었습니다. 설령 고문으로 죽는다 해도, 굳게 서서 증거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다면 그 죽음은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 10:28). 사람의 육체가 박해로 죽더라도 사람이 목숨을 걸고 굳게 서서 증거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칭찬하시는 일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처럼 말입니다. 그들은 주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모두 박해를 받았습니다. 어떤 이는 사지가 찢겨 죽었고, 어떤 이는 목이 베였으며, 어떤 이는 돌에 맞아 죽었고, 베드로는 하나님을 위해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혔습니다. 그들은 고귀한 생명으로 하나님을 힘 있게 증거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그들의 육체는 죽었지만, 그들의 영혼은 하나님께로 돌아가 다른 방식으로 살아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생명을 대가로 사탄을 부끄럽게 했습니다. 만약 경찰에게 고문당해 죽을까 봐 두려워 살기 위해 형제자매와 교회 정보를 팔아넘기고 하나님을 배반하여 유다가 된다면, 비록 목숨은 부지할지언정 진리를 실행한 증거도, 하나님께 순종한 증거도 없게 되어 사탄의 비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육체는 살아있으나 죽은 자에 속하며, 마지막에는 지옥에 떨어져 징벌을 받아야 합니다. 저는 죽음의 참된 의미를 꿰뚫어 보지 못하고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려 사탄과 타협했고, 그 결과 영원히 마음에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 육체가 고통을 겪는 것보다 훨씬 더 괴로운 일임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만약 죽기를 각오하고 굳게 서서 증거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다면, 그렇게 사는 것이야말로 ‘사람’답게 사는 것입니다. 묵상하는 중에 저는 제 실패에 또 다른 원인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막 잡혔다가 풀려난 형제자매나 중요하지 않은 본분을 맡은 일부 형제자매를 팔아넘기는 것은 교회 이익에 큰 손실을 끼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관점은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저의 배신으로 형제자매가 체포되면, 그들이 혹형을 견디지 못해 다른 사람을 팔아넘길 수도 있고, 그 후에는 더 많은 형제자매가 체포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사탄의 간계에 제대로 걸려드는 것이었습니다. 사탄의 속셈은 바로 더 많은 형제자매가 자신의 협박과 회유에 굴복해 서로를 팔아넘기게 하여, 더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부인하고 저버리게 만들고, 최종적으로는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함으로 인해 하나님께 멸해지고 구원받을 기회를 완전히 잃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실, 어떤 형제자매를 팔아넘기든 그 성질은 모두 유다가 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는 것이며, 하나님 보시기에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오점입니다. 이 점을 인식하고 나니, 저는 중공이 더욱더 미웠고, 진리를 깨닫지 못한 제 자신이 너무나 가여웠습니다.
그 후, 저는 어떻게 제 과오를 대해야 하고, 어떻게 실행해야 하나님의 관용을 얻을 수 있을지 구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사함과 용서를 받을 수 있느냐? 이는 네 마음에 달렸다. 네가 진심으로 죄를 인정하고, 자기 잘못과 문제점을 진실로 깨닫는다면, 네가 범한 과오가 됐든 죄업이 됐든, 그 죄를 진실로 인정하는 태도가 네게 있고 네가 정말 그 일을 증오하고 돌아설 의사가 있고, 앞으로 다시는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면, 언젠가는 하나님에게 관용과 용서를 받을 수 있다. 즉, 하나님이 네가 과거에 범한 무지하고, 어리석고, 더러운 일을 바탕으로 네 결말을 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정도가 되면 하나님은 네가 저지른 일을 전혀 마음에 두지 않는다. 너도 다른 정상인과 다를 게 없어진다. 단, 전제는 네게 반드시 진심이 있어야 하며 진정한 태도로 회개해야 한다는 점이다. 마치 다윗처럼 말이다. 다윗은 자기가 범한 과오 때문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느냐? 그 양을 헤아릴 수 없다. 몇 번이나 울었느냐?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흘린 눈물을 한마디로 형용하자면 ‘침대가 눈물에 뜰 정도였다’. 네 과오가 얼마나 심각한지는 몰라도 만약 지나치게 심각하다면 너 역시 침대가 눈물에 뜰 만큼 울어야 할 수도 있다. 그 정도로 죄를 인정하고 회개해서 하나님에게 용서받아야 할 수도 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네 과오는 하나님이 보기에 죄업이 될 테고, 사함 받을 수 없게 된다. 그러면 너는 심각한 상황에 봉착한다. 나머지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 하나님에게 사함 받고 싶다면 우선 네 진심을 꺼내 보여야 한다. 한편으로는 진심으로 죄를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진심을 보이며 네 본분을 잘 이행해야 한다. 그러지 않는 경우는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 두 가지를 해낸다면, 정말 네 진심과 성의로 하나님을 감동시켜 네 죄를 사해 주도록 한다면, 너도 남들과 다를 것이 없어진다. 하나님이 다른 사람들을 보는 관점으로 너를 볼 것이요,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으로 너를 대할 것이다.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행하는 심판과 형벌, 시련과 연단을 네게도 행하고, 너를 불공평하게 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네게 진리를 추구하고자 하는 의지와 염원이 생길 뿐만 아니라,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똑같은 방식으로 너를 깨우치고, 인도하고, 너에게 공급할 것이다. 당연하게도 네게 이러한 진심과 간절한 태도가 생겼으니 하나님이 너를 불공평하게 대할 리가 없다. 너도 다른 사람들처럼 구원받을 기회를 얻을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2)>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저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과오를 어떻게 대하시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자신이 저지른 죄를 진실로 증오하는지, 마음으로부터 하나님께 진실되게 회개하는지, 그리고 진리 원칙을 구해 본분을 잘 이행하는지를 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악행을 혐오하시지만, 사람이 회개하는 마음 또한 소중히 여기십니다. 마치 베드로가 예수님께서 고난받으실 때 세 번 주님을 부인했지만, 나중에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리고 자신을 뉘우치고 통곡하며 예수님께 죄를 자백하고 회개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 후 그는 예수님의 중대한 부탁을 받아들여 여러 교회를 목양하는 중책을 맡았고, 마지막에는 하나님을 위해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하나님을 사랑함을 증거했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 앞에서 진실로 회개하여 하나님께 온전케 되었습니다. 또 다윗은 한 번 간음죄를 지었고,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이 그에게 임하여 집안에 재앙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하나님께 죄지은 것을 뉘우치며 침상이 눈물에 뜰 정도로 통곡했습니다. 노년에 소녀가 그의 시중을 들 때도 다윗은 손끝 하나 대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진실로 회개했습니다. 저는 베드로와 다윗을 본받아,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고자 합니다. 저는 하나님께 회개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소극적인 감정이 저를 이렇게 오랫동안 얽매었던 것은 모두 제가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당신을 너무나 깊이 오해했으며, 저 자신이 너무 무뎌서 줄곧 진리를 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당신의 말씀을 읽고 당신의 뜻을 깨달았으니, 당신의 요구대로 실행하고 더는 당신을 오해하지 않으며, 진실되게 당신께 회개하고 싶습니다.” 그 후 저는 형제자매에게 제 과오를 솔직하게 털어놓고 교제하며, 제 실패의 근원을 해부했습니다. 교회가 제게 새신자를 양육하도록 안배했을 때, 저는 마음을 다해 진리로 무장했고, 새신자를 양육하다 어려움을 만나면 하나님께 기도하고 의지하며 진리 원칙을 구했습니다. 여러 차례 하나님의 인도를 보면서 저는 깊이 감동했습니다. 비록 제게 심각한 과오가 있었지만, 제가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은 여전히 저를 인도하고 깨우쳐 주셨고, 성령의 역사와 인도를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제가 진심으로 회개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실제로 저를 도와주시는 것을 보고, 저는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저는 점차 소극적인 감정에서 벗어나 제 과오를 올바르게 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번 체험을 통해 저는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대하시는 것이 마치 부모가 자녀를 대하는 것과 같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자녀가 부모의 뜻을 거역하고 잘못을 저지를 때, 부모는 그저 아이를 질책하고 훈계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차근차근 타이르며 이끌어 주어 자녀가 바른길로 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도 사람이 과오를 저지른 것을 보시면 비록 말씀으로 엄하게 심판하고 드러내시며, 정죄하시고 형벌을 내리시지만, 또한 사람이 어떻게 과오를 해결하여 진실한 회개에 이를 수 있는지 길을 가리켜 주시고,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여 구원에 이르기를 바라십니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나 큽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이런 인식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인도 덕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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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진신(金欣)어머니는 제가 결혼하기 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버지는 57세에 고혈압으로 혈관이 파열되어 반신불수가 된 후 15년을 누워만 지내다가 고통스럽게 돌아가셨고요. 아버지가 침상에 누워 고통스러워하던 모습은 제 마음에 어두운...
카메룬 미셸 저는 가난한 집에서 자랐어요. 그래서 은행 관리자처럼 높은 지위에 오르길 꿈꿨었죠. 그럼 우리 집이 경제적으로 힘들지 않을 테니까요. 대학 졸업 후 전 직장을 구하기 위해 여기저기 이력서를 냈어요. 근데 원하는 직장을 얻는 건 쉬운 일이...
2016년 말, 저희 아이가 계속 설사를 했습니다. 약을 많이 먹어도 듣지 않았는데, 제가 하나님을 믿은 지 며칠만에 아이의 병이 나았습니다. 얼마 후, 오랫동안 저를 괴롭히던 두통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좋아졌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하나님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