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 속에서 느낀 하나님의 사랑
20년 전, 저는 류마티스 관절염을 심하게 앓아서 구석구석 안 아픈 곳이 없었습니다. 큰 병원 여러 군데를 돌아다녀도 신통치 않아서 결국 호르몬 약물로 증상을 억제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약을 먹지 않으면 마디마디가 뻣뻣하고 통증이 심해서...
2012년에 제가 교회 리더로 있을 때, 유다가 된 사람이 제 정보를 넘기는 바람에 전 현지 파출소의 경찰한테 잡혔어요. 경찰들은 3박 4일 동안 저를 괴롭혔어요. 세 팀으로 나눠서 번갈아 가면서 저를 감시했는데, 제가 잠깐이라도 졸면 도자기 그릇으로 머리를 때리고 소리 지르고 욕설을 퍼부었어요. 또 윗선 리더가 누구냐고 계속 캐물었는데, 제가 말을 안 하니까 수갑 찬 제 손을 잡아채서 뒤로 힘껏 잡아당기기까지 했어요. 심지어 제가 말 안 하면 두 아이를 대학에서 쫓아내겠다고 협박까지 하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그들의 꾐에 넘어가지 않고 끝까지 말하지 않았어요. 나중에는 너무 졸리다 보니까 귀에서 이명이 들리고 머리도 윙윙거렸어요. 그때 어떤 경찰이 “지금 상태로 일주일이나 더 버틸 수 있겠어? 우리는 시간 많아. 어차피 네 뇌가 통제가 안 될 때까지 버티다 보면 넌 뭐든지 말하게 될 거야.”라고 했어요. 그때 저는 너무 정신이 몽롱해서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어요. 또 다른 경찰은 험악하게 말했어요. 제가 자백하지 않으면 저를 비밀리에 다른 성으로 보내서 가족들까지 절 찾지 못하게 만들겠다고요. 그 말을 들으니 정말 너무 무서웠어요. 만약 저를 다른 성(省)으로 보내 버리면 분명히 계속해서 저를 괴롭힐 거고, 그러다 고문으로 죽기라도 하면 구원받을 기회조차 없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 경찰들이 적어도 일곱 명의 정보는 불라고 했어요. 저는 그들에게 너무 심하게 고문을 당해서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할 정도였는데, 혹시라도 제가 정신을 놓아 버려서 교회의 중요한 정보를 불어 버리고 하나님을 배반한 유다가 될까 봐 걱정했어요. 그렇게 되면 더 심한 벌을 받게 될 거니까요.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며칠 전에 잡힌 네 명의 형제자매들은 이미 벌금을 내고 풀려났으니, 그들에 대해 말한다고 해도 경찰이 당장 또 잡아가지는 않겠지. 그리고 예전에 잡혀서 나를 팔았던 한 사람은 이미 교회에서 제명되었으니, 설령 경찰이 그를 잡는다 해도 교회 정보를 알 리 없고 교회에도 별다른 손실은 없을 거야.’ 그래서 저는 그 다섯 명의 이름을 말했어요. 근데 예상 밖으로 경찰 간부 한 명이 저를 향해 수첩을 냅다 던지더니 손가락으로 저를 가리키면서 소리쳤어요. “너 나랑 한번 해보자는 거지? 이 사람들은 이미 ‘교육’이 끝난 사람들이야!” 그러자 다른 경찰들이 대장이 화내는 걸 보고 전기 담요로 제 머리를 감싸고, 무릎을 밟은 채로 신발이랑 양말을 벗기고 가죽 벨트로 발바닥을 인정사정없이 때리는 거예요. 그러면서 또 안 불면 손톱 밑에 이쑤시개를 박아 넣겠다고 협박했는데, 한 명은 그 말을 하면서 차에 가서 이쑤시개를 가져오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저는 너무 무서웠어요. ‘만약 그들이 정말 이쑤시개로 나를 찌르면 견딜 수 있을까? 저들이 나를 죽이려는 게 분명해.’ 이런 생각에 마음이 약해지면서 평소에 저를 자주 접대해 주셨던 한 형제님이 생각났어요. 그분은 연세도 많으시고 예배 장소를 제공하기만 하시니, 그분에 대해 말한다고 해도 교회에 큰 손해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 형제님의 진짜 이름과 주소를 적었죠. 경찰은 제가 말한 사람이 적다고 계속 심문했어요. 그때 정신이 번쩍 들었는데, 전 영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갑자기 마음이 텅 비었고, 너무나 무서웠어요. 제가 형제자매들을 팔아서 유다가 되었으니, 하나님은 절대로 저를 용서하지 않으실 거고, 제 신앙생활은 이제 끝난 거나 마찬가지란 생각이 들었어요. 전 그 마귀들이 너무나 미웠고, 그들의 꾐에 넘어간 제가 너무나 원망스러웠어요. 그 후로 경찰이 다른 사람의 정보도 대라고 했을 때 제가 단호하게 거절하자 결국에는 저를 풀어 줬어요.
집에 돌아오니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어요. 문득 예전에 봤던 하나님 말씀이 떠올랐어요. 『환난 가운데서 나에 대한 충성심이 조금도 없었던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 긍휼을 베풀지 않을 것이다. 나의 긍휼은 여기까지이고, 또 나는 나를 배반했던 자를 좋아하지 않으며 친구의 이익을 팔아먹은 자와 왕래하는 것은 더더욱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나의 성품이다. 그 사람이 누구든 상관없다.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누구든 내 마음을 심히 상하게 하는 사람은 두 번 다시 나의 관용을 얻지 못하고, 누구든 나에게 충성하는 사람은 내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너는 종착지를 위해 충분한 선행을 예비해야 한다> 중에서) 하나님은 공의롭고 거룩하신데, 제가 형제자매들을 팔아 버린 유다가 되었으니 이건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른 거잖아요. 하나님은 분명 저 같은 사람을 더 이상 원하지 않으실 거라고 확신했죠. 제가 형제자매들을 팔았다는 생각만 하면 가슴이 찢어지는 듯이 아팠어요. 그 연로하신 형제님께서 저를 접대해 주셨는데, 제가 그분까지 팔아넘겼으니, 저는 제가 은혜를 원수로 갚는 짐승만도 못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자신이 미웠고, 제가 하나님을 배반했다는 사실이 너무나 후회스러웠어요. 그 며칠 동안 저는 거의 매일 눈물로 보냈어요. 형제자매들과 함께 모여 예배드리고, 각자의 본분을 이행하던 그 행복했던 시절이 그리웠지만 이제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 저는 하나님께 버림받은 유다가 되었고,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저질렀으니, 다시 믿는다고 해도 하나님은 저 같은 사람을 구원해 주시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죠. 하나님 말씀 책을 집어 들었지만 읽고 싶지는 않았고, 기도하고 싶지도 않았어요. 이제 제 신앙의 삶이 끝났다는 생각만 하면 너무나 괴롭고 의기소침해졌고, 그냥 빨리 죽어서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단 생각만 들었어요. 그렇게 극도로 다운돼 있을 때, “일말의 희망이라도 있다면 하나님은 구원하신다.”라는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것 같았어요. 그때 얼른 하나님 말씀을 찾아 읽어봤어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과거의 과오를 기억하든 안 하든, 지금 너희에게 일말의 희망이라도 있다면, 어떤 마음가짐을 지녀야 하겠느냐? ‘나는 성품 변화를 추구하고 하나님 알아 가기를 추구해야 해. 더 이상 사탄에게 속지 않으며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짓을 해서는 안 돼.’』(<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의 권면의 말씀을 보니까 감격스러워 눈물이 멈추지 않았어요. 그리고 너무 부끄럽더라고요. 하나님께서는 저의 과오대로 저를 대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회개할 기회를 주셨으니까 계속 추구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더 이상 자포자기할 게 아니라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면 집에서 말씀이라도 읽기로 했죠. 나중에 형제자매들로부터 제가 팔았던 사람들을 경찰이 다시 잡으러 가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경찰이 저를 접대해 주셨던 그 형제님을 잡으려고 집에 찾아갔지만, 형제님이 인기척을 듣고 피신하셔서 잡히지 않으셨다고 했죠. 다행히 교회에 큰 손실을 끼치지 않았기 때문에 교회에서 저를 출교시키진 않았어요. 그건 저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과 관용임을 아니까 하나님께 정말 감사하면서도 너무나 죄송하고, 너무나 후회스럽고 자책감이 들었어요. 그리고 ‘경찰이 심문했을 때, 내가 그들의 계략을 알아채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조금만 더 버텨서 유다와 같은 짓을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이렇게 큰 오점을 남기지는 않았을 텐데. 앞으로 또다시 경찰한테 잡히게 되면 그때는 굳게 서서 증거해야겠어. 맞아 죽어도 사탄한테 굴종하지 않고 형제자매들을 팔지 않을 거야.’라고 다짐했어요.
2013년 늦가을 무렵에 현(縣) 국가 보안대에서 지역 파출소 경찰을 보내 저를 강제로 공안국으로 끌고 갔어요. 끌려가는 길에 저는 다짐했어요. ‘이번에는 경찰들이 어떤 수작을 부리든, 심지어 고문으로 죽을지라도 절대로 형제자매들과 교회 정보를 팔지 않겠어.’ 공안국에 도착하자 국가 보안대 대장이 교회 헌금의 행방을 캐물으면서, 말하지 않으면 시(市) 여자 유치장으로 보내겠다고 협박했어요. 저는 그들이 교회의 돈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는데, 너무나 비열하고 파렴치해 보였어요. 그래서 그들이 아무리 협박해도 저는 입을 굳게 다물었죠. 결국 경찰은 저를 풀어 줬어요. 집에 돌아온 후에도 경찰들은 계속 저를 감시했고, 심지어 가족들한테까지 저를 감시하라고 시켰어요. 그래서 거의 2년 동안이나 제대로 예배 모임에 참석하지 못하고 본분도 이행하지 못했죠. 그러니 심적으로 처지더라고요. 제가 전에 하나님을 배반하고 유다와 같은 짓을 한 것으로 인해 지금은 아무런 본분도 이행하지 못하게 돼 속죄할 기회조차 없게 되었으니, 결국 도태되는 존재가 될 거라는 생각에 휩싸여 있었거든요. 그런 생각들을 하면 마음이 칼에 찔리는 듯이 아팠어요. 저는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인도해 달라고 기도했어요. 그러다 예전에 자주 불렀던 <시련 속에서 믿음이 있어야 한다>라는 찬양이 생각났어요. 『시련을 겪는 과정에서 사람이 연약해지거나 소극적이 되거나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거나 실행의 길에 대해 잘 알지 못하거나 하는 것은 다 정상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너는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믿음이 있어야 하고, 욥처럼 하나님을 부인하지 말아야 한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온전케 될 사람은 모두 연단을 겪어야 한다> 중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 알겠더라고요. 고난과 연단을 겪으면서 사람이 갖춰야 할 건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믿음이기에 저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을 게 아니라 순종해야 했어요. 비록 나가서 본분을 이행하지는 못해도 집에서 간증문을 쓸 수 있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의 고통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 같았어요.
2015년에 교회에서 저한테 문서 관련 본분을 안배해 줬어요. 한번은 장밍(張明) 형제님이 하나님을 믿다가 잡혔던 체험을 이야기했어요. 형제님은 이렇게 말했죠. “다른 사람이 저를 팔아 감옥에 가더라도, 저는 절대로 다른 사람을 팔 수 없어요. 그건 너무 인간적이지 못한 짓이에요!” 그 말을 듣는데, 마음이 칼에 찔리는 것처럼 아픈 게 차마 고개를 못 들겠는 거예요. 형제님은 감옥에 가는 한이 있더라도 굳게 서려고 하는데, 저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마음 때문에 형제자매들을 팔아 버렸으니, 이 과오는 정말 용서받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렇게 하나님께서 저 같은 사람은 구원하지 않으실 거라는 생각이 들 때면 다시 무척 의기소침해졌어요. 나중에 죽어도 유다와 같은 짓을 하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섰던 형제자매님들의 간증 글들을 읽게 되었어요. 그분들은 상처투성이였지만, 그 강인함과 꼿꼿한 모습으로 하나님을 증거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걸 보니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에 비해 저는 육의 안락함을 얻기 위해 수치스러운 유다가 되었고, 형제자매들을 팔아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했으니, 정말 이기적이고 비열하며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라 살 자격조차 없는 것 같았어요. 그러니까 마음이 너무 괴로워서 언젠가 죽으면 해탈하게 될 거니 이런 마음의 고통을 감내할 필요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게다가 전부터 앓고 있었던 위장병이 더 심해졌고 다리의 류머티즘까지 재발하자 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잘 정도로 아팠어요. 그때 사역 파트너였던 자매님은 진리를 구해 자신을 반성해 보라고 일깨워 줬어요. 그때 전 이런 생각을 했어요. ‘반성할 게 뭐가 있어? 이 병은 하나님의 징벌이고, 내가 당연히 받아야 할 응보야. 그때 죽는 게 무서워서 유다 짓을 한 내 탓인 걸 어떡해? 이 오점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거고, 아무리 추구해도 나에게는 다른 형제자매들처럼 구원받을 기회가 없을 거야. 난 교회에서 시키는 대로 그냥 하는 거지. 봉사할 수 있을 때 봉사 좀 하다가 언젠가 봉사가 끝나면 죽으면 그만이야.’ 제가 진리를 구하지 않다 보니까 참 오랫동안 과오에서 해방되지 못한 채 살았고, 그 일은 가시처럼 제 마음에 박혀서 언급만 해도 가슴이 너무나 아팠어요.
2023년 12월에 체험 간증 영상을 봤는데, 거기에 인용된 하나님 말씀 한 단락이 딱 제 내적 상태와 맞았어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의기소침한 정서에 빠지는 데는 또 하나의 원인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성인이 되기 전 또는 성인이 된 이후에 특수한 일을 겪었다. 바로 어떠한 과오를 범했거나 어리석은 일, 우매한 일, 무지한 일을 저지른 것이다. 그리고 그 과오, 어리석은 일, 무지한 일 때문에 의기소침한 상태에 빠진다. 그들의 의기소침함은 자신을 정죄하는 것인 동시에 자신이 어떤 사람임을 규정하는 것이다. … 그러한 일들을 저지른 적이 있는 사람들은 흔히 무심결에, 혹은 어떠한 특수 상황이 발생했을 때 특수한 환경 배경 속에서 불안감을 느낀다. 이 불안감으로 인해 그는 자기도 모르게 극도로 의기소침한 상태에 빠지며, 의기소침한 상태가 그를 결박하고 제약한다. 설교를 듣거나 진리를 교제할 때마다 머릿속에서, 마음 깊은 곳에서 의기소침함이 서서히 고개를 든다. 그러면 그는 자신을 이렇게 힐책한다. ‘내가 할 수 있겠어? 내가 진리를 추구할 수 있겠어? 내가 구원받을 수 있겠어? 내가 어떤 인간인데? 과거에 그런 짓을 했으니, 그런 인간이었으니 나는 구제 불능인 게 아닐까? 하나님께서 과연 나를 구해 주실까?’ 때로 어떤 사람들은 의기소침한 정서를 버리고 거기서 벗어나 본인의 진심과 본인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서 본분, 의무, 책임을 다하며, 더 나아가 몸과 마음 전부를 바쳐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 말씀에 공을 들이기도 한다. 그러나 일부 특수한 환경과 배경이 임했다 하면 그런 의기소침한 정서가 다시 우위를 점하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이렇게 참소한다. ‘너는 그런 짓을 했었잖아. 과거에 그런 인간이었잖아. 네가 구원받을 수 있겠어? 네가 진리를 실행한들 소용이 있을까? 네가 저지른 그 일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실까? 네가 한 짓을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실까? 네가 이렇게 대가를 치른다고 해서 예전에 범한 과오를 만회할 수 있을까?’ 그의 내면 깊은 곳에는 늘 자책과 참소가 존재하며, 의문과 힐책이 떠나지 않는다. 그는 시종일관 의기소침한 정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자기가 저지른 추악한 일 때문에 언제나 내면이 불안하다. 그 때문에 그는 하나님을 몇 년이나 믿었음에도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는지 듣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구원받는 일이 자기와 관계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것 같다. 자기가 과연 사함과 구속을 받을 수 있을지, 자기한테 과연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받고 구원받을 자격이 있는지, 그는 하나도 알지 못한다. 답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확실한 정론이 없기 때문에, 그의 깊은 내면은 항상 의기소침하다. 그는 마음속으로 자기가 과거에 저지른 짓을 한번 또 한번 떠올리고, 반복적으로 머릿속에서 재생한다. 그 일의 경과를 회상하고, 그 일의 전후를 회상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항상 죄악감이 든다. 그 일 때문에 수년간 시종일관 의기소침한 상태다. 본분을 이행하고 어떤 일의 책임자가 돼도 자기는 구원받을 가망이 없다고 생각한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2)> 중에서) 이 말씀을 보면서 감명을 받았어요. 형제자매들을 팔아넘긴 후부터 저는 늘 죄책감에 시달렸는데, 유다라는 오점은 마치 가시처럼 제 마음에 깊이 박혔죠. 저는 하나님께서 제 과오를 용서하지 않으실 거라고, 저 같은 사람은 구원하지 않으실 거라고 생각하면서 무척 괴로워했거든요. 교회에서 제 과오에 따라 저를 출교시키지 않고, 본분을 이행할 기회까지 주었지만, 제 과오를 생각하면 ‘난 구원받을 희망이 없어.’라고 단정 지으며 의기소침한 상태로 살았어요. 수많은 형제자매들이 잡힌 후에 자신의 생사를 도외시하고, 온갖 고문 속에서도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고 아주 의롭게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면 제가 너무나 수치스럽고 부끄러웠으며, 짐승만도 못해 보이고 비겁하게 유다 짓을 한 제가 원망스러웠어요. 제가 겉으로는 본분을 이행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늘 이런 생각들이 떠나지 않았어요. ‘나는 하나님을 배반한 유다인데, 하나님께서 과연 나 같은 사람을 구원하실까? 내 과오를 용서하실까? 내가 열심히 본분을 이행한다면 내 과오를 만회할 수 있을까?’ 저는 하나님께서 분명 저 같은 사람을 혐오하실 거라고 생각했고, 형제자매들이 생명 진입에 대해 교제를 하거나 성품 변화를 추구하는 이야기를 할 때마다 저는 감히 끼어들 자격조차 없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장기간 이런 과오 때문에 곤혹스러워하며 의기소침한 정서 속에서 사느라 진리를 추구할 의지를 잃고, 그저 단순히 힘만 쓰는 것으로 만족하며 과오를 만회하려고만 했어요. 사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어떤 환경에 처하든, 어떤 과오가 있든 성품 변화를 추구하기를 바라시는데, 저는 그렇게 하나님을 오해하고 멀리했으니, 정말 인성이 없는 모습이었어요.
나중에 저는 ‘왜 나는 이렇게 의기소침해하는 걸까? 문제의 근본 원인이 뭘까?’ 하고 돌아봤어요. 그렇게 구하던 중에, 저는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게 되었어요. 『사람은 다 복을 받고, 상을 얻고, 면류관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다. 이런 생각은 모든 이의 마음속에 다 들어 있지 않느냐? 누구나 마음속으로 그런 생각을 한다. 이는 사실이다.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항상 말로 내뱉지 않아도, 나아가 복을 받으려는 자신의 속셈과 욕망을 숨겨도, 마음 깊은 곳의 그 욕망, 그 속셈과 동기는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다. 사람이 영적인 이론을 얼마나 많이 알고 어떤 체험적 인식이 있든, 어떤 본분을 이행할 수 있든,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으며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르든,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복받으려는 속셈은 영원히 포기하지 않는다. 또 사람은 언제나 이 복받으려는 속셈을 위해 고생을 마다치 않고 바쁘게 뛰어다닌다. 이는 사람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것 아니더냐? 복을 받으려는 속셈이 사라진다면 너희는 어떤 기분이겠느냐? 어떤 태도로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을 따르겠느냐? 마음속에 숨겨진 복받으려는 그런 속셈을 정말로 완전히 없앤다면 사람은 대체 어떻게 되겠느냐? 아마 많은 사람이 소극적이 될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본분을 이행할 의욕이 사라질 것이다. 영혼을 잃어버린 듯 하나님 믿는 일도 무의미하다고 느낄 것이다. 마음을 잃은 사람처럼 말이다. 그래서 복받으려는 속셈이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생명 성장의 여섯 가지 기준> 중에서) 하나님께서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속셈을 다 들춰내셨어요.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면서 고생하고 헌신하는 모든 이유는 결국 복을 받기 위해서이고, 자기 미래와 운명 때문이라고 하셨죠. 그래서 복을 받지 못하거나 좋은 종착지와 미래가 보이지 않으면 금세 의기소침해져서는 진리를 추구하지도 않고, 진리를 향해 노력하지도 않으며, 심지어 하나님을 믿는 것조차 의미 없다고 느낀다고 하셨어요. 저를 돌이켜 보면, 처음 하나님을 믿기 시작했을 때는 모든 것을 버리고 헌신하며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했었어요. 가족들의 반대나 다른 교단의 방해, 세상 사람들의 비난에도 꿋꿋이 제 본분을 이행했었죠. 그때는 그렇게 하면 나중에 복을 받고 좋은 종착지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잡혀 들어가고 나서는, 죽음이 두려워 형제자매들을 팔아 유다가 되고 큰 과오를 남겼어요. 그때부터 저는 하나님이 저를 구원하지 않으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복을 받지 못할 것 같으니 더 이상 노력하려는 믿음도 사라졌고, 매일 산송장처럼 지냈어요. 나중에 다시 본분을 이행하기는 했지만, 하나님을 흡족게 해 드리기 위한 게 아니었어요. 단지 제가 본분을 이행하고 대가를 치르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제 과오를 용서해 주시고 죄를 사해 주셔서 나중에 복을 받을 수 있는 희망을 갖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던 거죠. 근데 잡혀간 형제자매들이 모진 고문으로 괴롭힘을 당했어도 죽을지언정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고 굳게 선 모습을 보면서, 저는 하나님을 배반한 유다가 됐고, 제 과오는 하나님께서 혐오하시는 것이어서 이제 복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는 생각에 진리를 추구하거나 노력해야겠다는 마음을 접고 그저 자포자기하는 의기소침한 정서를 안고 지냈어요. 바울이 생각나더라고요. 하나님께 죽임을 당한 후에 자신이 하나님을 대적한 괴수였다고 인정했지만, 그는 예수님을 대적했던 본성 본질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잖아요. 그저 단순히 고난을 받고 감옥에 가고, 열심히 뛰어다니며 헌신한 것을 하나님께 면류관과 상을 요구할 수 있는 자본으로 여겼어요. 바울이 고난받고 헌신했던 속셈과 목적은 결국 복을 받기 위한 것이었고, 하나님과 거래를 하려고 했던 것이지 진정으로 회개한 것이 아니었어요. 저는 형제자매들을 팔아넘기는 큰 악을 저지르고도 본분 이행을 빌미로 하나님께 죄를 사함 받고 복받을 기회를 얻으려고 했는데, 이는 정말 비이성적인 모습인 거죠! 지금 하나님께서 제게 관용을 베푸시면서 본분을 이행할 기회를 주셨으니, 저는 양심과 이성을 가지고 본분을 제대로 이행해야 하고, 앞으로 복을 받고 못 받고를 떠나 오직 순종하는 게 맞는 거더라고요.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하나님, 제가 계속 복을 받으려고 당신과 거래를 해 왔으니, 참으로 패역하고 인성이 없었습니다. 제가 봉사를 마치면 당신께서 저를 멸하신다 해도 당신의 공의를 찬양할 것입니다. 하나님, 진심으로 회개합니다. 앞으로 제 결말이 어떻게 되든, 저는 더 이상 복받기를 추구하지 않고 피조물로서의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겠습니다.’
나중에 이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의 공의 성품에 대해 조금 알게 됐어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조금만 과오를 저질러도 이렇게 추측한다. ‘하나님이 나를 드러내고 도태시킨 게 아닐까? 나는 하나님에게 죽임을 당하는 거 아닐까?’ 하나님이 이번에 사역하러 온 것은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최대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다. 과오 없는 사람이 없는데 만약 모두 죽인다면 그게 구원이겠느냐? 사람은 일부 과오는 고의로 저지르고 일부 과오는 자기도 모르게 저지른다. 자기도 어쩔 수 없는 일에서 네가 인식하고 나서 변화할 수 있다면 하나님이 네 변화를 기다리지 않고 너를 죽여 버리겠느냐? 하나님이 이런 식으로 사람을 구원하겠느냐? 그렇지 않다! 네가 패역 성품이 있든 자신도 어쩔 수 없든, 기억해라.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하며 서둘러 돌아서서 힘을 다해 진리에 공을 들여야 하고, 어떤 상황이 나타나든 자포자기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하는 것은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이다. 하나님은 구원하려는 사람을 아무렇게나 죽이지 않는다. 이는 분명하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정말로 결국 하나님에게 죽임을 당하더라도 하나님이 한 일은 틀림없이 공의로운 것이다. 때가 되면 무엇 때문에 그를 죽였는지 네가 알도록 할 것이고 진심으로 탄복하게 할 것이다. 지금 너희는 오로지 진리에 공을 들이고 생명에 진입하는 것만 중시하고 본분을 잘 이행하는 것만 추구하여라. 이는 바람직하다! 최종적으로 하나님이 어떻게 처리하든 틀림없이 공의로울 것이니 너는 이를 의심해서는 안 되고 걱정할 필요도 없다. 비록 지금 너는 하나님의 공의를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언젠가는 탄복할 것이다. 하나님은 일할 때 항상 광명정대하고 공개적으로 모든 것을 드러낸다. 너희가 이 방면에서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면 하나님이 하는 것이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이고 사람의 패괴 성품을 변화시키는 사역이라는 사실을 마음속으로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이 말씀을 보면서 깨달았어요. 사람이 과오를 저질렀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무조건 벌하시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배경과 사람의 속셈, 그리고 그 사람의 본질에 따라 대하시는 거였어요.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시는 기간에 사람이 과오가 있으면 빨리 회개하고 변화하고, 진리를 구해 자신의 과오를 해결하고,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요구에 이르기 위해 노력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그 사람에게 기회를 주시더라고요. 이게 하나님의 대인 원칙이었어요. 제가 경찰한테 괴롭힘을 당해 정신이 혼미한 배경하에서 순간적으로 연약해져 형제자매들을 팔았지만, 교회와 형제자매들한테 큰 손실을 끼치지는 않았어요. 그 후에 저는 몹시 후회하고 자신을 미워했어요. 교회에서는 저를 출교시키지 않고 오히려 본분을 이행할 수 있도록 해 줬는데, 그게 바로 저를 향한 하나님의 관용과 긍휼이잖아요. 반면에 우리 교회에서 장기간 리더를 했던 두 사람은 경찰에 붙잡힌 후 유다가 되어 형제자매들을 팔아넘겼어요. 그들은 조금도 뉘우치는 모습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3서’에 서명하고 경찰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형제자매들을 지목해 체포하도록 도우면서 큰 붉은 용의 앞잡이 노릇을 했어요. 그들의 본질은 마귀였기에 결국 교회에서 출교됐어요. 이런 사례를 통해 하나님은 원칙적으로 사람을 대하신다는 걸 알 수 있죠. 한순간의 연약함으로 별로 중요하지 않은 정보를 말했지만, 그 후에 스스로 뉘우치고 진심으로 회개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다시 기회를 주시죠. 반면에 하나님을 배반하고 본질이 유다에 해당하는 자들은 교회에 섞여 들어온 가라지 같은 존재라서 출교시켜야 하죠. 결국에는 하나님의 벌을 받게 되는 거고요. 저는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여 제 관념과 상상으로 살면서 하나님을 오해하고 자포자기했으니, 제가 바로 천지 분간을 못 하고 사리 분별이 안 되는 어리석은 사람이었어요!
어느 날, 한 체험 간증 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정말 많은 걸 느끼게 됐어요. 영상 속의 형제님은 붙잡힌 후에 자기를 섬겨 주었던 접대 집 자매님을 팔아넘겼는데, 그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대요. 나중에 왜 자신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유다가 될 수 있었는지 곰곰이 반성해 보니, 결국 원인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었다고 했죠. 저 또한 반성해 보니까 실패의 근원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었는데, 그건 하나님에 대한 참된 믿음이 없었고, 하나님의 주재를 믿지 않았기 때문이었어요. 그러면서 하나님의 이 말씀을 봤어요. 『전체 인류를 통틀어, 전능자의 눈 아래에서 보살핌을 받지 않는 자가 있느냐? 전능자의 예정 속에서 생존하지 않는 자가 있느냐? 사람의 생사존망은 자신의 선택에서 비롯된 것이냐? 사람의 운명은 자신이 주관할 수 있는 것이더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음을 원했는지 모르지만 죽음은 오히려 그들을 멀리 피해 갔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삶의 강자가 되길 원하고 죽음을 두려워했는지 모르지만, 부지불식간에 죽는 날이 다가와 그들을 죽음의 심연 속으로 떨어지게 하였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ㆍ제11편> 중에서) 이 말씀을 보면서 사람의 생사는 모두 하나님의 손에 의해 지배된다는 걸 깨달았죠. 제가 경찰에 붙잡혀 맞아 죽을지 살지는 하나님께서 결정하시는 거였죠. 설령 고문으로 시달리다가 죽게 된다 하더라도, 제가 굳게 서서 하나님을 증거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면, 제 죽음은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게 되는 거죠.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잖아요.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 10:28) 사람의 육은 박해받아 죽임을 당할 수 있지만, 목숨을 내걸고 굳게 서서 하나님을 증거한다면 그건 하나님께 인정받는 일인 거죠.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처럼 말이죠. 그들은 복음을 전하다가 박해를 받았잖아요. 어떤 이는 거열형에 처해졌고, 어떤 이는 목이 잘렸으며, 어떤 이는 돌에 맞아 죽임을 당했어요. 그리고 베드로는 하나님을 위해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히기까지 했어요. 그들은 소중한 생명으로 하나님을 위해 힘 있게 증거했죠. 겉보기에는 그들의 육체가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영혼은 하나님께 돌아가 다른 방식으로 살고 있는데, 그들은 생명의 대가로 사탄을 부끄럽게 만든 거였어요. 경찰한테 고문당해 죽을까 봐 두려워 자기가 살겠다고 형제자매들과 교회 정보를 팔아넘겨 하나님을 배반하는 유다가 된다면, 목숨은 부지할 수 있을지라도 진리를 실행한 간증도, 하나님께 순종한 간증도 없기에 사탄의 웃음거리로 전락할 수밖에 없어요. 그럼 하나님이 보시기에 육은 살아 있을지라도 죽은 사람과 같고, 결국에는 지옥에 떨어져 벌을 받게 되죠. 저는 죽음의 의미를 꿰뚫어 보지 못해 비굴하게 목숨을 부지하려고 사탄과 타협했으니, 영원히 양심의 가책을 받는 고통은 육체가 겪는 고통보다 훨씬 더 컸어요. 제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굳게 섰다면, 그게 ‘사람’다운 삶을 산 게 되는 거죠.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제가 실패한 데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더라고요. 저는 갓 풀려난 형제자매들이나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본분을 이행하는 형제자매들을 배신하는 건 교회 이익에 큰 손실을 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정말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관점이었어요. 제 배신 때문에 형제자매들이 붙잡힌다면 그들이 모진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또 다른 사람들을 배신할 수도 있는데, 그렇게 되면 더 많은 형제자매들이 붙잡힐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럼 그게 사탄의 간계에 넘어가는 꼴이 되는 거죠. 사탄은 더 많은 형제자매들이 그 협박과 회유에 넘어가 서로 배신하게 만들고, 더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부인하고 저버리게 하여, 최종에는 하나님을 대적함으로 멸망당하고 구원받을 기회를 완전히 잃게 만드는 게 목적이잖아요. 사실 누구를 배신하든 성격은 다 유다가 되는 거고,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는 것이며, 하나님 보시기에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오점이 되는 거죠. 이것마저 깨닫고 나니, 저는 중국 공산당을 더 증오하게 되었고, 진리를 몰랐던 가련한 제가 너무 원망스러웠어요.
그 후에, 저는 제 과오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어떻게 실행해야 하나님의 관용을 얻을 수 있을지 구하기 시작했어요. 그때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게 됐어요.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사함과 용서를 받을 수 있느냐? 이는 네 마음에 달렸다. 네가 진심으로 죄를 인정하고, 자기 잘못과 문제점을 진실로 깨닫는다면, 네가 범한 과오가 됐든 죄업이 됐든, 그 죄를 진실로 인정하는 태도가 네게 있고 네가 정말 그 일을 증오하고 돌아설 의사가 있고, 앞으로 다시는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면, 언젠가는 하나님에게 관용과 용서를 받을 수 있다. 즉, 하나님이 네가 과거에 범한 무지하고, 어리석고, 더러운 일을 바탕으로 네 결말을 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정도가 되면 하나님은 네가 저지른 일을 전혀 마음에 두지 않는다. 너도 다른 정상인과 다를 게 없어진다. 단, 전제는 네게 반드시 진심이 있어야 하며 진정한 태도로 회개해야 한다는 점이다. 마치 다윗처럼 말이다. 다윗은 자기가 범한 과오 때문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느냐? 그 양을 헤아릴 수 없다. 몇 번이나 울었느냐?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흘린 눈물을 한마디로 형용하자면 ‘침대가 눈물에 뜰 정도였다’. 네 과오가 얼마나 심각한지는 몰라도 만약 지나치게 심각하다면 너 역시 침대가 눈물에 뜰 만큼 울어야 할 수도 있다. 그 정도로 죄를 인정하고 회개해서 하나님에게 용서받아야 할 수도 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네 과오는 하나님이 보기에 죄업이 될 테고, 사함 받을 수 없게 된다. 그러면 너는 심각한 상황에 봉착한다. 나머지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 하나님에게 사함 받고 싶다면 우선 네 진심을 꺼내 보여야 한다. 한편으로는 성실하게 죄를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진심을 보이며 네 본분을 잘 이행해야 한다. 그러지 않는 경우는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 두 가지를 해낸다면, 정말 네 진심과 성의로 하나님을 감동시켜 네 죄를 사해 주도록 한다면, 너도 남들과 다를 것이 없어진다. 하나님이 다른 사람들을 보는 관점으로 너를 볼 것이요,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으로 너를 대할 것이다.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행하는 심판과 형벌, 시련과 연단을 네게도 행하고, 너를 불공평하게 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네게 진리를 추구하고자 하는 의지와 염원이 생길 뿐만 아니라,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똑같은 방식으로 너를 깨우치고, 인도하고, 너에게 공급할 것이다. 당연하게도 네게 이러한 진심과 간절한 태도가 생겼으니 하나님이 너를 불공평하게 대할 리가 없다. 너도 다른 사람들처럼 구원받을 기회를 얻을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2)> 중에서) 이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사람의 과오를 어떻게 대하시는지를 알게 되었어요.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자신이 지은 죄를 진심으로 미워하는지, 하나님께 진심으로 회개하는지, 진리 원칙을 구하여 본분을 잘 이행하는지를 보시더라고요.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악행을 미워하시지만, 회개하는 마음은 소중히 여기셨어요.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실 때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했지만, 나중에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리고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통곡하며 예수님께 죄를 자백하고 회개했잖아요. 그 후에 베드로는 예수님이 주신 중책을 받아들여 교회들을 양육하는 짐을 짊어졌고, 최종에는 하나님을 위해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를 했어요. 베드로는 하나님 앞에서 참된 회개를 함으로 하나님의 온전케 하심을 받았죠. 또 다윗의 경우는 간음을 저질렀을 때 하나님께서 공의로운 성품을 보이심으로 집안에 계속 재앙이 끊이지 않았어요.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하나님께 죄지은 것을 뉘우치며 눈물로 침상을 띄울 정도로 울었어요. 또 노년에 젊은 처녀가 그의 곁에서 이불을 따뜻하게 해 주었지만, 다윗은 그 여인을 건드리지도 않았어요.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회개를 보였죠. 저도 베드로와 다윗을 본받아 진지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기로 했어요. 그러면서 회개 기도를 했어요. ‘하나님, 제가 그동안 의기소침한 정서에 빠져 있었던 이유는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당신을 너무나 깊이 오해했기 때문이고, 또 제가 너무나 무감각해서 계속 진리를 구하지 않았기 때문임을 알게 됐습니다. 이제 당신의 말씀을 읽고 당신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면서 더 이상 당신을 오해하지 않고 당신의 요구대로 실행하고 진실로 회개하겠습니다.’ 그 후에 저는 형제자매들에게 제 과오를 솔직하게 털어놓고 제가 실패한 근본 원인을 해부했어요. 교회에서 저한테 새 신자 양육을 맡겨 주면 저는 진리를 갖추려고 노력했고, 새 신자 양육 과정에 어려움이 생길 때는 기도하고 하나님께 의지하면서 진리 원칙을 구했어요. 그렇게 할 때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느낄 수 있었고, 정말 감동받았어요. 비록 저한테 심각한 과오가 있었지만,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저를 인도하시고 깨우쳐 주셨고, 제가 성령님의 역사와 인도하심을 체험하게 해 주셨어요. 이번 일을 통해 제가 진심으로 회개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실제로 저를 도와주신다는 걸 피부로 느끼게 되면서 끊임없이 하나님께 감사드렸어요.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저는 서서히 의기소침한 정서에서 벗어나게 됐고, 제 과오를 올바르게 대할 수 있게 되었어요.
이렇게 체험하고 나니까 하나님께서는 부모가 자녀를 대하는 것처럼 사람을 대하신다는 걸 깨달았어요. 자녀가 부모의 뜻을 거역하고 잘못을 저질렀을 때, 부모는 그저 아이를 꾸짖고 훈계만 하는 게 아니라, 차근차근 타이르고 이끌어 주며 아이가 올바른 길을 가기를 바라잖아요. 하나님은 사람이 과오를 저지른 걸 보실 때, 비록 말씀으로 엄하게 심판하고 드러내시며 정죄하고 형벌을 내리시지만, 한편으로는 사람이 과오를 해결하여 진정한 회개에 이를 수 있는 길을 알려 주시고,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여 구원받기를 바라시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정말 너무도 컸어요. 하나님께 감사드려요. 제가 이러한 것들을 깨달을 수 있었던 건 모두 하나님이 인도하신 덕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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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저는 류마티스 관절염을 심하게 앓아서 구석구석 안 아픈 곳이 없었습니다. 큰 병원 여러 군데를 돌아다녀도 신통치 않아서 결국 호르몬 약물로 증상을 억제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약을 먹지 않으면 마디마디가 뻣뻣하고 통증이 심해서...
한국 싱다오『하나님, 제게 지위가 있든 없든 저는 이제 자신을 알게 됐습니다. 제 지위가 높다면 그것은 당신의 높여 주심이고, 제 지위가 낮다면 그것 또한 당신의 결정입니다. 모든 것이 당신의 손에 달렸으니 저는 어떤 선택도, 원망도 하지...
한국 건쑤이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통해 사람을 온전케 하느냐? 그의 공의 성품을 통해 온전케 한다. 하나님의 성품은 기본적으로 공의, 진노, 위엄과 심판, 저주이며, 하나님은 사람을 온전케 할 때 주로 심판의 방식을...
저는 62세에 주 예수를 믿었습니다. 주님께서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천국에 들어가 영생을 얻는다는 약속을 주셨다는 사실을 알고, 저의 인생에도 희망이 생긴 느낌이었습니다. 이렇게 큰 복이 저에게 왔다고 생각하니 무척 기뻤습니다. 그래서 열심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