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분은 복을 얻기 위한 조건이 아니에요
저는 어려서부터 병약했습니다. 열 한 살 때 재생불량성 빈혈 진단을 받아 면역력이 무척 약하고 몸이 허약했죠. 팔다리에 힘이 없어 조금만 많이 걸어도 지치고, 병세가 심각할 때는 거의 누워서 지내야 했어요. 의사 선생님 말이, 심한 경우 면역력이 너무 떨어져서 쉽게 감염되고, 그러면 고열이 계속된다고 했습니다. 또 한번 상처가 나면 출혈이 멈추지 않아 무척 위험한 병이라고 했죠. 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인 후 병세가 호전되어 교회에서 본분도 이행할 수 있게 됐어요. 그리고 여러 해가 지나자 더 이상 아무런 증상도 나타나지 않더라고요. 하나님께 무척 감사드렸습니다.
그 후 저는 동영상을 제작하는 사역에 참여했습니다. 참으로 영광이었죠. 하나님 집 영화와 동영상은 하나님 사역을 증거하는 것으로, 영상 제작 사역은 무척 의미 있는 일이니까요. 한편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열심히 하나님 위해 헌신하면서 좋은 영상을 만들어 그분을 증거한다면, 중요한 선행에 나도 한몫 하는 것이고, 그러면 하나님께 보호받는 건 물론이고 그분께 구원받아 대재난 가운데서 살아남을 수 있겠다는 그런 생각이요. 그래서 저는 업무에서도, 또 원칙에 있어서도 공을 들이며 하나님을 증거하는 작품을 많이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매번 완성품이 나올 때마다 제가 제작에 참여한 부분을 보면 마음이 뿌듯하고, 본분을 향한 의욕도 더욱 커졌어요. 작품을 더 많이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자료를 찾고 관련 기술을 배우며 형제자매들과 교류했는데, 어떤 때는 새벽 세 시까지 얘기를 나누기도 했죠. 원래부터 몸이 약해서 이렇게 밤을 새는 일은 무리였지만, 생각을 달리했어요. ‘최근 몇 년은 건강에 아무 문제도 없었고, 지금 밤을 새워 공부하는 것도 본분을 더 잘 이행하기 위해서야. 게다가 본분 이행에도 성과가 있으니 하나님도 분명 나를 지켜 주실 거야. 본분에서 성과를 많이 내고 크게 공헌하면 구원받을 희망도 그만큼 커지는 거니까, 지금은 좀 고생해도 괜찮아.’
하루는 책임자가 갑자기 이런 말을 꺼냈습니다. “형제님, 지금 형제님 몸 상태도 별로 안 좋은데, 사역량이 너무 많아서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병이 재발할까 봐 걱정이에요. 이럴 게 아니라 병원에 가서 검사를 좀 받아보는 게 어때요? 이상이 없다고 하면 본분을 계속하고, 상태가 좋지 않으면 우선 몸조리부터 하는 거예요. 치료에 협조하면서 본분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돼요.” 그 말을 듣고 도무지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어요. ‘지금은 본분 이행에 아주 중요한 시기라 형제자매들도 다들 적극적으로 본분에 임하고 있어. 그런데 만약 몸에 이상이 발견돼서 본분을 못 하게 되면 이다음에 구원받을 수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움츠러들더라고요. 그래서 하나님께 당신 뜻을 알고, 제 패괴 성품을 인식해서 당신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할 수 있게 깨우쳐 달라고 기도드렸죠.
그러다 이런 말씀을 보았습니다. 『현재 많은 사람이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을 위해 헌신해야 해.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을 위해 어느 정도 대가를 치러야 해.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해.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하고 내 본분을 잘 이행해야 해.’라고 생각하며 이런 내적 상태로 살고 있다. 이는 복을 받으려는 속셈에 지배된 것으로, 순전히 하나님이 내리는 상을 받기 위해, 그리고 면류관을 얻기 위해 헌신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의 마음에는 진리가 없으며, 틀림없이 글귀와 도리를 얼마간 이해한 것으로 곳곳에서 뽐낼 것이다. 이런 사람이 걷는 길이 바로 바울의 길이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한결같이 사역만 한다. 그는 사역을 많이 할수록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을 증명하고, 틀림없이 하나님을 만족게 하며, 하나님 앞에서 면류관을 얻을 자격이 있고 큰 복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그리스도를 위해 고생하고 전도하며 죽을 수 있는 사람, 목숨조차 돌보지 않는 사람, 또한 하나님이 맡긴 본분을 훌륭히 완수하는 사람이라면 바로 하나님께 가장 큰 복을 받을 사람이며, 분명 면류관을 얻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상상하고 추구한 것이며, 바울이 걸은 길이다. 바울이 바로 이런 사상에 지배받아 사역하고 하나님을 섬겼다. 이런 사상과 속셈은 사탄의 본성에서 비롯된 것 아니겠느냐? 그들은 세상 사람들처럼 이 세상에서는 지식을 추구해야 하며, 지식을 갖추고 나면 남들보다 뛰어나고 관직에 나아가고 지위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지위를 얻으면 재능과 포부를 크게 펼치며 자신의 가업과 사업을 눈부시게 끌어올릴 수 있다고 여긴다. 이방인들은 모두 이런 길을 가지 않더냐? 이런 사탄의 본성에 지배되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은 후에도 바울처럼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며 하나님 앞에서 충성심을 보여야 해. 그러면 나중에 큰 상과 면류관을 얻을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는 세상 사람들이 세상을 추구하는 것과 틀에 박힌 듯 똑같다. 그것들은 전부 똑같은 본성에 지배되는 것이다. 사람이 이런 사탄의 본성을 갖고 있으면, 세상에서 지식을 추구하고 학문을 추구하고 지위를 추구하고 남들보다 뛰어나기를 추구한다. 하나님을 믿으면 면류관과 큰 복을 얻기를 추구할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은 후에도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분명 이런 길을 걸을 것이다. 아무도 이 사실을 바꿀 수 없으며 이는 자연법칙이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이 가는 길은 베드로의 길과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어떻게 베드로의 길을 갈 것인가> 중에서) 하나님 말씀에서 폭로하신 것이 바로 제 내적 상태였습니다. 저는 본분할 때 고생하고 대가를 치러 가며 합격된 영상을 제작하는 것은 하나님나라 복음을 확장시키는 사역에 나도 한몫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 칭찬받고 축복받을 뿐만 아니라 끝에 가서는 상을 받고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었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밤 새워 고생해도 불평 한 마디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사역을 못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복을 받으려는 욕망이 좌절될 것 같으니까 본분을 이행하려는 의욕도 사라지고, 아무런 대가도 들이고 싶지 않았죠. 그러고 보니 저는 하나님 믿는 내내 그분과 거래를 하고 있더라고요. 하나님께 은혜와 축복을 요구할 수 있게 제가 만든 작품이 교회에서 사용되기만을 바랐죠. 입버릇처럼 고생하고 헌신하겠다고 하면서 사실은 복을 받고자 하는 목적을 위해 하나님을 속이고 이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너무나 비열한 속셈이었죠! 이 사실을 깨달은 뒤, 저는 더 이상 이런 상황을 거부하지 말고 순종해야겠다고, 그리고 진리를 구해 믿음의 불순물과 패괴 성품을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저는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습니다. 혈액 검사 결과 모든 수치가 정상인보다 낮게 나왔습니다. 의사 말로는 혈소판도 정상치보다 현저하게 낮아서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사소한 출혈이 큰 출혈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죠. 책임자와 형제자매들은 하나같이 당분간 몸조리부터 하고 건강이 어느 정도 회복되면 그때 본분을 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집으로 돌아와 정기적으로 검사 받으러 다니며 치료에 협조했습니다. 그런데 몇 개월이 지나도 몸이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이니까 조바심이 나더라고요. 한의원에도 약을 지으러 갔었는데 의사가 이렇게 말했어요. “이 병은 오래 치료해야 해요. 지금 환자분 체질이 너무 허약해서 단번에 좋아지긴 힘듭니다.” 한의사의 말에 완전히 좌절했습니다. ‘한동안 집에서 치료하면 몸이 회복돼서 다시 영상 제작에 참여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치료한 지 1년이 다 되도록 어째서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거지?’ 1년 동안 하나님 집에서는 영화와 영상을 많이 만들었는데, 저는 건강 때문에 참여를 못하고 있으니, 이러다 나중에는 영상 본분을 못하게 될까 봐 애가 탔습니다. ‘충분한 선행도 없이 하나님 사역이 끝나도 구원받을 수 있을까?’ 생각할수록 풀이 죽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데 그렇게 절망적이고 처량할 수가 없었어요. 원망이 절로 생겼죠. ‘왜 다른 형제자매들은 다들 건강한데 나만 이런 병에 걸렸을까?’ 정말 억울하고 서글펐습니다. 집에 돌아온 뒤, 마치 바람 빠진 공처럼 뭘 해도 기운이 나지 않더라고요. ‘몸도 이 모양이고, 여기서 아무리 추구해도 지금 상황을 바꿀 수 없어. 중요한 사역에 참여하지 못하는데 무슨 구원받을 희망이 있겠어?’ 저는 자포자기한 채 매일 이방인들의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인터넷에서 사람들과 채팅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점점 소원해지고 마음도 점점 어둡고 공허해졌죠. 그러던 어느 날, 불현듯 깨달았습니다. ‘지금 내 상태가 이방인하고 똑같잖아? 하나님 믿는 사람의 모습이 있다고 할 수 있나? 이렇게 계속 망가지면 점점 타락해서 결국 하나님께 도태되고 말 거야.’ 그제서야 두려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되겠더라고요. 저는 스스로를 잘 돌아보고, 진리를 구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구하는 중에 하나님 말씀을 봤습니다. 『사람이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가장 패역한 일이며, 또한 그런 자는 가장 위험한 사람이다. 시종일관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이런 자는 불신파이다. 이런 사람은 복받겠다는 욕망이 수포로 돌아가는 순간 하나님을 떠나게 된다. 어째서 그렇겠느냐? (그가 추구하는 것은 복을 받고 은혜를 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 구원받는 것은 그에게 장식품이자 듣기 좋은 말에 불과하다. 그가 마음속으로 추구하는 것은 상, 면류관, 이득이며, 이번 생에 100배를 얻고 다음 생에는 영생을 얻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얻지 못한다면 본모습을 드러내며 하나님을 믿지 않고 떠날 것이다. 그가 마음속으로 믿는 것은 하나님의 사역이 아니고, 하나님이 선포한 진리도 아니다. 또 그가 추구하는 것은 바울과 똑같이 큰 복을 받고 큰 권력을 쥐며 큰 면류관을 쓰고 하나님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이지 구원받는 것도, 나아가 피조물의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는 것도 아니다. 이것이 그의 야심이자 욕망이다. 그래서 하나님 집에 혜택이나 뭔가 좋은 것이 있을 때마다 손에 넣으려고 하며, 자격과 서열을 논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는 ‘나한테는 그런 자격이 있어. 내 몫이 있어야 한다고. 반드시 그걸 쟁취해 내야 해.’라고 생각한다. 그는 스스로를 하나님 집의 앞쪽 서열에 둔 후 자기는 당연히 하나님 집의 그런 혜택을 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 여기에서, 그의 마음은 그가 추구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음을 알 수 있고, 또 그가 추구하는 것들은 진리와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십분 알 수 있다. 그가 아무리 많은 사역을 했을지라도 그의 목적과 속셈은 다름 아닌 바울처럼 면류관을 얻으려는 데 있었다. 그는 그것을 단단히 붙들고 한 번도 포기한 적이 없다. 아무리 진리를 교제해 줘도, 아무리 책망하고 훈계하고 폭로하고 해부해도 그는 복받으려는 속셈을 한사코 끌어안은 채 놓지 않았다. 하나님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복받으려는 욕망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을 보았을 때, 소극적으로 변해 물러나며 본분을 포기하고 멀리 도망갔다. 하나님나라 복음이 확장되는 과정에서 그는 진실로 본분을 이행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제대로 봉사하지도 않았다. 이는 그에게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믿음과 순종이 없으며, 진실한 체험 간증도 전혀 없었음을, 그저 양의 가죽을 쓴 늑대 한 마리가 양 떼 속에 섞여 있었던 것임을 오롯이 보여 준다. 결국, 철두철미한 불신파는 이렇게 철저히 드러나고 도태되었으며, 하나님을 믿는 그의 생애도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9조(5)> 중에서) 하나님 말씀은 제 안에 숨어 있는 비열한 속셈을 완전히 폭로하셨습니다. 비록 집에서 몸조리하기로 동의했지만 저는 속으로 빨리 나아서 다시 영상 제작에 참여하게 되기를 바랐죠. 본분을 많이 이행해야 구원받을 희망도 크다고 믿으면서요. 그러다 치료를 받아도 번번이 제가 바라던 결과가 나오지 않자 중요한 본분을 이행할 기회를 다시는 얻지 못하고, 복받으려는 욕망이 좌절될 것 같아서 하나님 믿을 동력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나에게만 불공평하다면서 낙담하고, 평정심을 잃고,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지냈습니다. 하나님 말씀도 먹고 마시려 하지 않고, 기도할 생각도 없고, 심지어 세상의 조류를 추구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불만을 터뜨렸어요. 그러고 보니 저는 오로지 복을 받기 위해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했더라고요. 복을 받지 못하면 하나님께 맞서고 사탄 성품을 여지 없이 드러냈으니, 정말 양심과 이성은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었죠. 이로써 과거에 애쓰고 헌신한 것은 모두 가짜 이미지에 하나님을 속인 행위라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동안 하나님은 제게 진리도 많이 공급하고 은혜도 많이 내려 주셨어요. 하나님이 지켜 주시지 않았다면 저는 이미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였죠. 그런데도 감사하고 보답할 생각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했으니, 저는 정말 어처구니없고 인성이 없었어요. 순간 커다란 뉘우침과 함께 저 자신이 정말 미웠습니다. 그저 복받으려는 제 속셈을 진정으로 해결하고 다시는 하나님을 거역하지 않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스스로를 인식하도록 깨우쳐 달라고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봤습니다. 『복받는 것이 정당한 추구 목표가 아니라면 정당한 추구 목표는 무엇이어야 하겠느냐? 진리를 추구하고, 성품 변화를 추구하여 하나님의 모든 배치와 안배에 순종하는 것, 이것이 사람이 갖추어야 할 추구 목표이다. 예를 들어, 너는 책망과 훈계가 닥쳤을 때 관념과 오해를 가지며 순종하지 못한다고 하자. 어째서 순종하지 못하겠느냐? 네 종착지나 복받으려는 꿈이 도전을 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극적인 상태에 빠지고 괴로워하며, 본분을 내팽개치고 이행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 원인은 무엇이겠느냐? 네 추구에 문제가 있어서이다. 그럼 어떻게 해결해야겠느냐? 서둘러 그릇된 생각을 버리고 진리를 구해 패괴 성품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것이 급선무이다. 너는 “나는 본분을 내팽개칠 수 없어. 피조물이 이행해야 할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고, 복받으려는 욕망을 내려놓아야 해.”라고 말해야 한다. 복받으려는 욕망을 내려놓고 진리 추구의 길을 걸으면 한결 홀가분해지는데 소극적인 상태에 빠질 리 있겠느냐? 설령 가끔 소극적인 상태에 빠진다고 할지라도 그 일에 속박받지는 않을 것이며,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기도하고 싸우면서 네 목표를 복받는 것과 종착지를 추구하는 것에서 진리 추구로 바꿀 것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진리 추구는 피조물의 본분이야. 오늘 나는 진리를 어느 정도 깨달았으니 가장 큰 수확을 얻은 거야. 이건 무엇보다 큰 복이야. 하나님께서 나를 원치 않으신다고 해도, 좋은 종착지가 없고 복받을 희망이 사라진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거야. 이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니까. 무슨 이유든 내가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고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하는 데 지장을 줄 수는 없어. 이건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내 원칙이라고.’ 이러면 육의 속박에서 벗어난 것 아니겠느냐?』(<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실행해야 생명 진입이 있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 덕분에 제가 왜 복받으려는 욕망이 좌절될 때마다 소극적으로 변해 원망을 쏟아내고, 심지어 자포자기 상태가 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 근원은 바로 저의 그릇된 추구 관점이었습니다. 저는 복을 추구하고 좋은 결말을 추구했고, 한 번 복받으려는 욕망이 좌절되면 소극적으로 변해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복을 받으려는 제 욕망이 너무나 강했기 때문이죠. 저는 피조물입니다. 복받는 것, 좋은 종착지를 얻는 것과 관계 없이 늘 자기 본분을 다해야 하죠. 설령 복을 못 받더라도 제 책임과 본분을 다한다면 적어도 아쉬움이 남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한 순간, 머릿속이 환해지더군요. 저는 하나님 말씀에서 알려 준 것대로 실행하기로 했습니다. 복받으려는 속셈을 내려놓고, 잘못된 추구 관점을 바로잡고, 최선을 다해 자기 본분을 다하겠다고, 설사 어느 날 병세가 악화된다고 해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죠. 이것이 피조물인 제가 갖춰야 할 이성입니다. 당시 다른 본분은 할 수 없지만, 집에서 글 쓰는 연습은 할 수 있었습니다. 제 체험적 인식을 글로 써서 예배 시간에 형제자매들과 나누는 것도 제 본분을 다하는 거죠. 이렇게 실행하고 나니 마음이 무척 편하더라고요.
1년 뒤, 약을 타러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말했습니다. “이제 다 나아서 약은 그만 드셔도 됩니다. 건강에 유념하시고 너무 무리하지만 않으면 됩니다.” 순간 너무 감격스러워서 하나님께 계속 감사드렸어요. 그 후 또다시 하나님 말씀을 봤습니다. 『나는 사람의 종착지를 정할 때, 그의 나이나 관록, 또는 그가 겪은 고난의 양을 보지 않는다. 그가 얼마나 가련한지에 따라 종착지를 정하는 일은 더더욱 없다. 그에게 진리가 있는지 여부만 볼 뿐, 그 외에 다른 선택 기준은 없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너는 종착지를 위해 충분한 선행을 예비해야 한다> 중에서) 정말 그래요. 하나님께서 사람의 결말을 정하실 때는 그 사람에게 진리가 있는지를 보시고 정하십니다. 마지막에 진리를 얻지 못하면 누구도 구원받지 못합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를 추구하지도, 성품 변화를 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렇게 아무리 애쓰고, 헌신하고, 공헌해도 끝에 가서 패괴 성품이 정결케 되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애쓰고 수고한 걸 내세워 하나님 은혜와 축복을 얻어 낼 생각을 하다니, 정말 어이가 없었죠. 혼자서만 김칫국을 들이킨 겁니다! 얼핏 보면 제가 병 때문에 본분의 기회를 잃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하나님은 병을 통해 제 잘못된 관점과 패괴 성품을 드러내셨어요. 제가 얼른 돌아서서 진리 추구에 힘쓰도록 말이죠. 이는 저에 대한 하나님의 크나큰 보호와 구원인 것입니다. 이런 것을 깨닫고 후회와 미안함을 느끼며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제 추구 관점을 바로잡고 싶습니다. 다시는 복을 받고 상을 받으려 하지 않겠습니다.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진리와 성품 변화를 추구하고 본분을 잘하여 당신을 만족게 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또다시 하나님 말씀을 보고 어떻게 본분을 대해야 하는지를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본분 이행에 합격하려면 네가 하나님을 얼마나 오랫동안 믿었는지, 네가 얼마나 많은 본분을 이행했는지, 하나님 집에 얼마나 많은 공적을 세웠는지, 본분을 이행하면서 얼마나 많은 경험을 가지게 되었는지 등과 상관없다. 하나님이 보는 것은 한 사람이 가는 길, 다시 말해 진리를 대하는 태도와 일 처리 원칙, 방향, 근원, 출발점 등이다. 하나님은 그러한 것들을 본다. 그것이 네가 가는 길을 결정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합격한 본분 이행이란 어떤 것인가> 중에서), 『사람의 입장에서 보자면, 하나님께 기여하면 상을 받아야 하고 또 크게 기여한 사람일수록 하나님의 기쁨을 얻는 것이 당연하다. 사람의 관점을 보면 그 본질은 거래의 성질을 띤 것이지, 자발적으로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반면,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진실하게 하나님을 사랑하고자 하고 또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하고자 하는 사람, 즉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고자 하는 사람일수록 하나님께 더욱 인정받을 수 있다. 하나님의 관점을 보면 사람에게 사람의 원래 본분을 회복하고 원래 지위를 회복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사람은 피조물이므로 선을 넘어 하나님께 그 어떤 요구도 해서는 안 되고 오로지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해야 한다. 바울과 베드로의 종착지는 그들이 얼마나 크게 기여했는지가 아니라 그들이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할 수 있었는지의 여부에 따라 판정되었다. 또 그들이 얼마나 많이 사역했는지, 그들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가 어떤지가 아니라 그들이 원래 추구한 것에 따라 결정되었다. 그러므로 자발적으로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고자 하는 것이 성공의 길이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자 하는 길이 가장 옳은 길이며, 옛 성품을 변화시켜 순결하게 하나님을 사랑하고자 하는 것이 성공의 길인 것이다. 성공의 길이란 피조물이 원래의 본분과 모습을 되찾는 길, 즉 회복의 길이며, 하나님이 처음부터 끝까지 행한 모든 사역의 근본 취지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려 있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보고 본분에는 높고 낮음과 크고 작음의 구분이 없음을 알았습니다.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느냐 없느냐는 어떤 본분을 이행하는지, 얼마나 중요한 사역을 하는지와는 크게 관계가 없습니다. 진리를 추구하고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여 생명 성품이 변화하면 하나님께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사실 본분은 피조물의 책무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지, 이익을 꾀하는 도구도 아니요, 상을 받기 위한 조건도 아닙니다. 그러니 복을 받든 화를 받든 자신의 본분을 다해야 하죠. 그 후 교회는 제 몸 상태를 고려해 제게 알맞은 본분을 배정해 주었습니다.
이제 저는 좋은 미래와 결말을 얻지 못할까 봐 걱정하지 않습니다.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진리를 알고, 그것을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죠. 앞으로 좋은 결말을 맞이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그와 관계 없이 본분 과정에서 책임을 다하는 것만으로 마음이 편안하고 평온합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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