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과오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2025.9.17

중국 장라이(江萊)

2020년, 저는 본분을 이행하던 중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고 저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공격하고 배척하여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했다는 이유로 교체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몹시 소극적이었습니다. 그렇게 큰 악을 행했으니 출교될지도 모르고, 구원받을 희망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리더는 제가 자신의 행동과 걸어온 길에 대해 어느 정도 반성하고 깨달은 것을 보고 다시 본분을 맡겨 주었습니다. 하나님 집에서 제게 또 본분을 이행할 기회를 주셨다는 것이 너무나 뜻밖이었고, 감사한 마음에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다짐했습니다. ‘반드시 본분을 잘 이행해서 이전의 과오를 만회하고, 다시는 예전처럼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는 잘못된 길을 가지 않겠어.’

그 후, 저는 두 교회의 복음 사역을 책임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복음 전도의 원칙을 잘 몰라 사역 과정에서 생기는 많은 문제와 어려움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원칙을 묵상하고 구하는 데 공을 들였습니다. 예배 때 형제자매들이 복음 전도 과정에서의 체험과 수확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 내심 부러웠고, 다른 사람은 본분을 이행하면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만 저는 그들과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심각한 과오를 저지른 사람인데도 오늘 하나님께서 회개할 기회를 주셨으니, 다른 사람보다 몇 배는 더 노력해야 하고 다시는 어떤 실수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매일 교회를 쉴 새 없이 드나들었고, 때때로 현기증이 나도 쉬지 않고 꿋꿋이 본분을 이행하며 속으로는 또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본분 이행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악을 행하거나 교란하지만 않는다면 이전의 과오를 만회할 수 있을 거야. 아직 구원받을 기회가 있을 거라고.’ 얼마 후, 제가 책임진 복음 사역에 성과가 나타나면서 새로 전도된 신자들도 정상적으로 예배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동안의 복음 전도 수확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책임자도 제 교제를 인정해 주어 저는 무척 기뻤습니다. ‘요즘 내가 본분 이행에 힘쓴 덕분에 형제자매들에게도 인정을 받고, 예배 시간에 교제할 때 빛 비춤도 있었어. 성령의 인도하심도 느낄 수 있었고. 지금 상태를 계속 유지하고 본분을 더 잘 이행하려고 노력하면서 방해하거나 교란하지 않고 선행을 많이 예비한다면, 마지막에 가서는 하나님께서 나의 이전 과오를 보지 않으실지도 몰라.’ 나중에 리더는 또 제게 여러 교회의 복음 사역을 맡겼습니다. 그중 몇몇 교회가 저희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알고는 몸도 좋지 않은데 이렇게 가다가는 분명 지쳐서 몸이 견디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리더에게 제 상황을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만약 제가 본분을 거절하면 하나님께서 저를 어떻게 보실까 하는 생각에 입을 열지 못했습니다. 그 후로 저는 사역에 더 빨리 익숙해지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일했고, 몸이 좋지 않을 때도 억지로 버텼습니다. 때로는 자매에게 부탁해 오토바이로 저를 예배 장소까지 데려다 달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잦은 밤샘으로 몸은 점점 쇠약해져 온몸에 힘이 없고 팔다리가 축 늘어지는 바람에 침대 머리맡에 기대 겨우 버티며 예배에 참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당시 저도 마음이 무척 약해져서 집에 가서 몸조리를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교회 사역에 협력할 사람이 절실한 상황이었기에, 이런 중요한 시기에 본분을 포기하고 몸조리를 하러 집에 돌아가면 하나님께서 저를 어떻게 보실지, 제게 좋은 앞날이 있을지, 구원받을 수 있을지 걱정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힘들어도 저는 꿋꿋이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나중에 치료를 통해 제 병세는 점차 조금씩 호전되었습니다.

몇 달 후, 저는 복음 사역 책임자로 선출되었습니다. 이 본분을 맡게 되자 저는 몸이 좋지 않아 감당하지 못할까 봐 걱정되었지만, 마음속으로는 또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만약 내가 아픈 상황에서도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다면, 어쩌면 하나님께서 나의 이전 과오를 용서해 주실지도 몰라. 그러면 내게도 구원받을 기회가 생기는 거야.’ 이런 생각이 들자 저는 이 본분을 기꺼이 이행하고 싶어졌습니다. 한번은 리더가 제게 예배에 참석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배 전날 오후, 제 병세가 갑자기 악화되었습니다. 배가 심하게 아프고 온몸에 힘이 없었으며 머리도 아파서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의사는 제게 반드시 수액을 맞고 침상에서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당시 제 마음은 무척 복잡했습니다. ‘왜 내 병이 또 심해졌을까? 지금 본분을 이행하기에도 이렇게 바쁜데, 파트너 자매는 매일 복음을 전하느라 쉴 틈도 없는데, 나는 왜 이렇게 중요한 시점에 본분을 이행할 수 없는 걸까? 하나님께서 이 환경을 통해 나를 드러내고 도태시키시려는 건 아닐까? 만약 정말로 본분을 이행할 수 없게 된다면, 내게 무슨 좋은 앞날이 있겠어?’ 이런 생각들이 들자 마음이 몹시 괴로웠고, 마치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 같았습니다. 수액 때문인지 저는 밤에 혼미한 상태로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이 일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던 중 갑자기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사람은 고통스러운 연단 속에서 가장 쉽게 사탄의 권세 아래로 떨어진다. 이런 연단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해야겠느냐? 의지를 북돋워 하나님 앞에 네 마음을 내놓고 마지막 남은 시간을 전부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 하나님이 어떻게 연단하든 계속 진리를 실천해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하고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구해야 하며 자발적으로 교제하기를 구해야 한다. 이럴 때, 네가 수동적으로 대응할수록 더 쉽게 소극적이 되고 더 쉽게 후퇴하게 된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연단을 겪어야 참된 사랑이 생기게 된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깨달았습니다. 고통스러운 연단 속에 있을수록 더욱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저는 더 이상 제 앞날과 종착지를 생각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더 많이 기도드리고, 앞으로 좋은 앞날과 종착지가 있든 없든 제 마음을 하나님 앞에 드리며,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든 기꺼이 순종하기로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치 저를 지켜보시며 제가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기를 기다리고 계시는 것 같았습니다. 제 마음은 점차 평온해졌고, 어느 정도 안정되었으며 이러한 환경 속에서 기꺼이 진리를 구하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제 자신의 내적 상태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본질과 패괴를 알지 못했고 자신의 패역은 더욱 알지 못했다. 그는 예전에 그리스도를 대적했던 비열한 행위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고 크게 통회하지도 않았으며 그저 조금 해명했을 뿐이다. 그는 마음속 깊이 하나님께 온전히 굽히지 않았다. 비록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엎드리기는 했지만, 자신을 마음속 깊이 성찰하지 않고 끊임없이 사역하는 것에만 만족했다. 바울은 자신을 알아 가는 것과 자신의 옛 성품을 변화시키는 것을 가장 중요한 문제로 여기지 않았다. 그는 오직 입에만 달고 있는 진리로 만족했고, 다른 사람에게 공급하는 것으로 자신의 양심을 달래는 것에 만족했으며, 예수의 제자들을 더 이상 핍박하지 않는다는 사실로 스스로를 위로하고 지난날 자신이 지은 죄를 용서하는 것에 만족했다. 그가 추구한 목표는 그저 훗날의 면류관과 일시적인 사역이고, 풍성한 은혜였을 뿐, 충분한 진리를 추구하지도 않았고 지난날 깨닫지 못한 진리에 더 깊이 진입하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에 대한 그의 인식은 거짓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형벌과 심판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가 사역을 할 수 있다고 해서 그가 자신의 본성과 본질에 대해 알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외적인 행위에만 치중하고 변화가 아닌 인식에만 힘썼다. 그가 사역을 한 것은 전적으로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예수가 그에게 나타난 결과였다. 그는 처음부터 그런 의지를 가졌던 것이 아니고, 옛 성품이 책망받은 후에 사역을 한 것도 아니다. 그가 어떻게 사역하든 그의 옛 성품은 변화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의 사역은 그가 지난날에 지은 죄를 속량하지 못하고 그저 당시의 교회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뿐이다. 이렇게 옛 성품이 고쳐지지 않은 사람, 즉 구원을 얻지 못한 사람, 더욱이 진리가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해도 예수께 열납되는 사람이 될 수 없다. … 그는 항상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사역을 잘하고 보통 사람들보다 뛰어나다. 나는 주님의 부담을 생각한다. 아무도 나만큼 주님의 부담을 생각하지 못했고, 아무도 나만큼 깊이 회개하지 못했다. 나는 큰 빛 비춤을 받았고, 큰 빛을 보았으니 누구보다도 깊이 회개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당시 바울의 생각이었다. 그는 해야 할 사역을 끝낸 후 이렇게 말했다. “내가 싸워야 할 싸움을 다 마치고 달려야 할 길을 마쳤으니 나를 위해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 그가 싸우고 사역하고 달려온 것은 전적으로 의의 면류관을 위한 것이었지, 적극적으로 나아간 것은 아니었다. 바울이 사역을 대충 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사역은 그저 자신의 과오를 만회하고 더 이상 양심에 참소받지 않기 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하루빨리 사역을 끝내고, 그가 달려갈 길을 마치고, 싸워야 할 싸움을 다 마쳐 자신이 소망하는 의의 면류관을 빨리 얻게 되기만을 바랐다. 그가 바라는 것은 자신의 체험과 참된 인식으로 예수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빨리 사역을 끝내 예수를 만났을 때 사역한 것에 대한 상을 받는 것이었다. 그는 사역으로 자신을 위로하고 사역으로 거래함으로써 훗날의 면류관과 맞바꾸려고 했다. 그가 추구한 것은 진리도 하나님도 아닌 오로지 면류관이었다. 그런 추구가 어찌 기준에 부합할 수 있겠느냐? 그의 속셈, 그가 한 사역, 그가 치른 대가, 그의 모든 희생은 자신의 아름다운 환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오직 자신의 사사로운 소망에 따라 사역했다. 그가 모든 사역에서 치른 대가는 기꺼이 원해서 치른 것이 아니라 그저 거래에 불과했다. 그는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거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기꺼이 대가를 치렀던 것이다. 그렇게 치른 대가가 또 몇 푼의 가치가 있겠느냐? 누가 또 그 깨끗하지 못한 대가를 인정할 수 있겠느냐? 누가 그런 대가에 흥미를 갖겠느냐? 그의 사역에는 내일에 대한 몽상과 아름다운 청사진으로 가득 차 있을 뿐, 사람의 성품이 어떻게 변화되는지에 대한 길은 전혀 없었다. 그에게는 가식적인 자비가 너무나 많았고, 그의 사역은 생명을 공급한 것이 아니라 고상한 척하며 거래를 한 것이었다. 그런 사역이 어떻게 사람들을 사람의 원래 본분을 회복하는 길로 인도할 수 있겠느냐?(<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려 있다> 중에서) 하나님은 바울이 이전에 예수님을 박해하고 예수님의 제자들을 체포했던 자신의 악행과 하나님을 대적했던 자신의 본질을 진실로 인식하지 못했다고 폭로하셨습니다. 그는 그저 잘못을 아는 것에만 만족했고 앞으로는 그런 일로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겠다고 했을 뿐, 겉으로 버리고 헌신하며 수고롭게 사역하는 것으로 자신의 죄를 속하려 했고, 마지막에는 공의로운 면류관이 자기를 위해 예비되었다고까지 말했습니다. 이로 보건대, 바울이 버리고 헌신한 것은 피조물의 본분을 다한 것이 아니었고 진실한 회개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사역으로 속죄하고 사역을 공의로운 면류관과 맞바꾸려 한 것이니, 이는 외식이며 하나님을 기만하고 하나님과 거래한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제가 이전에 본분을 이행하면서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여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며 과오를 남겼을 때, 저는 제 과오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깨닫지 못했습니다. 또한 그 일로 하나님과 형제자매들에게 늘 죄스러운 마음을 느끼지도 못했습니다. 그저 제가 교회 사역에 끼친 손해와 형제자매에게 미친 영향을 보고, 제가 하나님을 대적했으니 이대로 가다가는 하나님께 징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속으로 두려워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다시 본분을 이행하게 되었을 때 저는 열심히 헌신하고 사역했습니다. 교회가 어떤 본분을 맡기든 저는 받아들이고 순종했으며, 심지어 병으로 서 있기도 힘들 때조차 꿋꿋이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저의 이 모든 헌신과 노력은 모두 속죄하기 위한 것이었고, 언젠가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고 상을 얻으려는 망상이었습니다. 저의 노력과 헌신, 수고로운 사역은 진심이 아니었고,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기 위함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바울처럼 속죄하고 이전의 과오를 만회하여 결국 좋은 결말과 종착지를 얻기 위함이었습니다. 저는 겉으로 버리고 헌신하며 수고롭게 사역하는 것을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좋은 결말과 종착지와 맞바꾸려는 망상을 품었으니, 하나님과의 관계는 그야말로 적나라한 이해관계였습니다. 저는 이전에 제가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여 하마터면 출교될 뻔했던 것은, 제가 하나님을 믿은 이래로 줄곧 명예와 이익, 지위를 추구했기 때문임을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파트너인 샤오위(小雨) 자매가 저보다 뛰어난 바람에 제가 돋보이지 않자, 제 후광을 빼앗긴 것만 같아 마음속으로 자매를 질투하고 배척하며 판단했습니다. 저는 샤오위 자매가 막 리더로 선출되어 사역에 전혀 익숙하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윗선 리더가 사역상의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 저희에게 예배에 참석하라고 통지했을 때 일부러 자매를 참석하게 했습니다. 그때 자매가 아무 말도 못 하고 망신을 당하면, 리더도 자매가 별 볼 일 없다고 여겨 더는 자매가 돋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속으로 계산했던 것입니다. 샤오위 자매가 제 사역의 문제를 지적하자 저는 체면이 손상되었다고 느껴, 스스로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자매의 패괴가 드러난 것을 붙잡고 과장해서 떠벌리며 다른 사람들이 모두 자매를 따돌리게 만들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안전상의 문제로 집에서만 본분을 이행할 수 있었는데, 샤오위 자매가 매일 밖에 나가 사역하고 형제자매들도 모두 자매와 교제하기를 원하자, 저는 더더욱 자매가 저에 대한 관심을 독차지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질투심은 더욱 강해졌고, 샤오위 자매에 대한 편견도 더욱 커졌습니다. 해마다 있는 교회 선거 때가 되자, 저는 샤오위 자매의 문제를 빌미로 삼아 그녀가 선거에 참가하기에 부적합하다고 떠벌렸습니다. 그렇게 하면 아무도 제 지위를 위협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선거 사역을 교란했고, 샤오위 자매에게도 큰 상처를 주었습니다. 이 모든 행동은 저의 성품이 악독하며, 제가 걷는 길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길임을 드러냈습니다. 저는 이런 일들에 관해 하나님을 대적하는 저의 사탄 본성을 반성하고 깨달아 회개하고 변화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겉으로 고통받고 헌신하는 것으로 제 과오를 만회하여 아름다운 종착지를 얻으려고 했습니다. 이것은 형태만 바꾼 채 하나님과 거래하는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이런 행동의 본질은 하나님을 기만하는 것이며, 이렇게 가다가는 속죄하기는커녕 악행만 쌓게 되고, 마지막에는 하나님을 대적한 것으로 인해 하나님께 징벌을 받게 될 것이었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믿은 수년간 걸어온 길을 돌이켜 보니, 갑자기 저의 오랜 추구가 너무나 어처구니없게 느껴졌습니다. 그때 저는 제 자신이 역겹고 증오스러웠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은 저 자신을 원망하며 제 머리를 세게 쥐어박고 싶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좀 더 보면서 저의 본성 본질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현재 많은 사람이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을 위해 헌신해야 해.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을 위해 어느 정도 대가를 치러야 해.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해.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하고 내 본분을 잘 이행해야 해.’라고 생각하며 이런 내적 상태로 살고 있다. 이는 복을 받으려는 속셈에 지배된 것으로, 순전히 하나님이 내리는 상을 받기 위해, 그리고 면류관을 얻기 위해 헌신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의 마음에는 진리가 없으며, 틀림없이 글귀와 도리를 얼마간 이해한 것으로 곳곳에서 뽐낼 것이다. 이런 사람이 걷는 길이 바로 바울의 길이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한결같이 사역만 한다. 그는 사역을 많이 할수록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을 증명하고, 틀림없이 하나님을 만족게 하며, 하나님 앞에서 면류관을 얻을 자격이 있고 큰 복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그리스도를 위해 고생하고 전도하며 죽을 수 있는 사람, 목숨조차 돌보지 않는 사람, 또한 하나님이 맡긴 본분을 훌륭히 완수하는 사람이라면 바로 하나님께 가장 큰 복을 받을 사람이며, 분명 면류관을 얻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상상하고 추구한 것이며, 바울이 걸은 길이다. 바울이 바로 이런 사상에 지배받아 사역하고 하나님을 섬겼다. 이런 사상과 속셈은 사탄의 본성에서 비롯된 것 아니겠느냐? 그들은 세상 사람들처럼 이 세상에서는 지식을 추구해야 하며, 지식을 갖추고 나면 남들보다 뛰어나고 관직에 나아가고 지위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지위를 얻으면 재능과 포부를 크게 펼치며 자신의 가업과 사업을 눈부시게 끌어올릴 수 있다고 여긴다. 이방인들은 모두 이런 길을 가지 않더냐? 이런 사탄의 본성에 지배되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은 후에도 바울처럼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며 하나님 앞에서 충성심을 보여야 해. 그러면 나중에 큰 상과 면류관을 얻을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는 세상 사람들이 세상을 추구하는 것과 틀에 박힌 듯 똑같다. 그것들은 전부 똑같은 본성에 지배되는 것이다. 사람이 이런 사탄의 본성을 갖고 있으면, 세상에서 지식을 추구하고 학문을 추구하고 지위를 추구하고 남들보다 뛰어나기를 추구한다. 하나님을 믿으면 면류관과 큰 복을 얻기를 추구할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은 후에도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분명 이런 길을 걸을 것이다. 아무도 이 사실을 바꿀 수 없으며 이는 자연법칙이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이 가는 길은 베드로의 길과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어떻게 베드로의 길을 갈 것인가> 중에서) 저의 내적 상태는 하나님께서 폭로하신 그대로였습니다. 복을 받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본분을 이행했고, 복을 받기 위해 고통을 감수하고 대가를 치르며 병든 몸으로 꿋꿋이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복을 받기 위해 어떻게든 제 본분을 잘 이행하려 했으며, 복을 받기 위해 무척 말을 잘 듣고 순종하는 척했습니다. 제가 한 모든 것은 복을 받으려는 속셈의 지배를 받은 것이었습니다. 제가 본분을 이행하다가 교회 사역을 교란했을 때, 저는 하나님 앞에 오점과 과오가 있으니 잘 만회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징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본분을 소홀히 할 수 없었습니다. 본분을 이행할 때 현기증이 나면 약을 먹으면서 본분을 이행했고, 이것이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본분을 이행하면서 약간의 성과가 생기고 하나님의 인도하심도 보게 되자, 저는 복 받을 희망이 있다고 느껴 본분을 이행하려는 의욕이 더욱 커졌고, 자주 병든 몸으로 사역하면서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고통받은 증거들이 저의 밑천이 되었습니다. 저는 제가 이렇게 많이 노력했으니 하나님께서 저를 칭찬하고 은혜를 베푸셔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병세가 악화되자 마음이 침울해지고 불평도 생겼습니다. ‘나는 기꺼이 본분을 이행하려고 하는데 왜 이렇게 병세가 심할까? 본분을 이행할 수 없으면 어떻게 구원을 받겠어?’ 이전의 과오들은 마치 저와 하나님 사이에 생긴 깊은 균열과도 같았습니다. 그로 인해 저는 구원받는 것이 요원하게 느껴졌고, 더 많이 사역하고 더 많이 만회해야만 이 균열을 메우고 다시 하나님께 긍휼을 얻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서야 저는 제가 진리를 전혀 깨닫지 못했고, 하나님에 대한 인식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사람이 더 많이 고통받으며 본분을 이행할수록 더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있다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몸이 버티지 못할 정도로 지쳐도 쉬지 않았고, 이렇게 병든 몸으로 사역하면 하나님께서 제가 고통을 감내하는 것을 보시고 저를 칭찬하고 축복해 주실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이 힘닿는 데까지 본분을 이행하기를 바라십니다. 하지만 저는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한결같이 제 관념과 상상에 따라 실행했고, 결국 몸이 망가지고 나서는 하나님께서 저를 지켜 주시지 않는다고 원망하며 모든 책임을 하나님께 떠넘겼습니다. 저는 정말이지 적반하장에, 이치에 맞지 않는 행동을 했습니다! 저는 또한 깨달았습니다. 오늘 제가 병고를 겪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저를 도태시키시려는 것이 아니라, 제 속셈이 잘못되고 제가 걷는 길이 틀렸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환경을 통해 저의 패괴와 결함을 드러내시어 제가 스스로를 인식하고 반성하게 하신 것이며, 저를 구원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오해하고 원망했으니, 정말 양심도 이성도 없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통회하며 울면서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지난 1년간 당신께서는 줄곧 환경을 마련하시어 저를 정결케 하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당신의 뜻을 조금도 구하지 않고, 오히려 줄곧 복 받기만을 추구하며 당신을 오해했습니다. 저는 너무 이기적이고 비열하며, 당신께 너무나 죄스럽습니다. 저는 회개하고 변화하고 싶습니다.”

그 후, 저는 제게 큰 도움이 된 하나님 말씀 찬양 한 곡을 들었습니다.

성공 여부는 사람의 추구에 달렸다

1. 피조물로서 마땅히 추구해야 할 것은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고, 선택의 여지 없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사랑받을 만한 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자 하는 사람은 개인의 이익과 소망을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가장 옳은 추구 방식이다. 네가 추구하는 것이 진리이고 실행하는 것이 진리이며 얻은 것이 성품의 변화라면, 너는 옳은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2. 네가 추구하는 것이 육적인 복이고, 실행하는 것이 자신의 관념 속 진리이며, 성품에 어떤 변화도 없고 육신의 하나님께 전혀 순종하지 않은 채 여전히 막연한 상태에서 살고 있다면, 네가 추구하는 것은 반드시 너를 지옥으로 데려갈 것이다. 그것은 네가 실패의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다. 네가 온전케 될지, 도태될지는 너 자신의 추구에 달려 있다. 다시 말해, 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려 있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려 있다> 중에서

저는 찬양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으며 마음이 환해졌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사역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 겉으로 얼마나 큰 고통을 받는지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만족게 해 드리기를 추구하는지, 본분을 이행할 때 진리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는지, 패괴 성품에 변화가 있는지를 보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베드로가 바로 그러했습니다. 그는 진리를 추구하여 마침내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고 죽기까지 순종함으로써 피조물이 마땅히 보여야 할 모습을 살아 냈으니,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칭찬하시는 것입니다. 만약 늘 복 받기만을 추구하고, 하나님을 위해 사역하고 고통받는 것만 중시하며, 본분을 이행할 때 진리를 구하지 않고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지도 않으면서, 오히려 하나님께 요구하고 하나님과 거래하며 패괴 성품에 조금의 변화도 없다면, 이는 실패의 길입니다. 저는 또한 하나님께서 오늘 하시는 사역이 바로 사람의 양심과 이성을 회복시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을 경배하게 하는 것임을, 이것이야말로 피조물이 마땅히 보여야 할 모습임을 깨달았습니다. 이것들을 깨닫자 제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고, 앞으로 어떻게 길을 가야 할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일이 닥치면 저는 의식적으로 제가 어떤 잘못된 관점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패괴 성품을 표출했지를 반성했고, 파트너 자매와 함께 자신의 내적 상태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고 이야기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 실행하고 진입했습니다. 이렇게 실행함으로써 저는 제 패괴 성품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하게 되었고, 사역의 성과도 이전보다 조금 나아졌습니다.

그 후 저는 줄곧 과오에 속박되는 제 문제를 도대체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루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다가 실행의 길을 찾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크고 작은 과오를 범한 사람들이 많을 테지만, 심각한 과오 또는 도덕적 마지노선을 넘어서는 과오를 범한 사람은 얼마 안 될 것이다. 크고 작은 과오를 범한 사람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고 심각한 과오, 도덕적 마지노선과 윤리에서 벗어난 과오를 범한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그것만 이야기하겠다. 심각한 과오를 범한 사람들에 관해 내가 말하는 것은 도덕적 마지노선을 넘어선 과오인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성품과 행정 법령을 거스른 것과 관련이 없다. 알겠느냐? 나는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본질, 하나님의 신분과 지위를 거슬렀다고 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모독했다고도 말하지 않았다. 도덕적 마지노선이라는 범위를 벗어난 경우만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과오를 범한 사람이 어떻게 하면 의기소침한 정서에서 헤어 나올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다. 이러한 사람들이 걸을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로, 아주 간단한 문제다. 우선, 네가 과거에 저지른 일을 마음속에서 내려놓을 수 있다면, 혹은 상대에게 사과할 기회가 있다면, 상대에게 보상할 기회가 있다면, 가서 상대에게 보상하고 사과함으로써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얻어라. 그럴 기회도 없고 그럴 여건도 되지 않는데 자기에게 문제가 있음을 정말 마음 깊이 깨달았고, 자기가 저지른 일의 성질이 얼마나 심각한지 인식했고, 진정으로 통회한다면, 하나님 앞으로 나와 죄를 인정하고 회개해야 한다. 매번 그 일이 떠올라 마음에 참소가 있을 때가 바로 네가 하나님 앞으로 나와 죄를 인정하고 회개할 때다. 너는 반드시 진심과 진정을 다해 하나님으로부터 사함 받고 용서받아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사함과 용서를 받을 수 있느냐? 이는 네 마음에 달렸다. 네가 진심으로 죄를 인정하고, 자기 잘못과 문제점을 진실로 깨닫는다면, 네가 범한 과오가 됐든 죄업이 됐든, 그 죄를 진실로 인정하는 태도가 네게 있고 네가 정말 그 일을 증오하고 돌아설 의사가 있고, 앞으로 다시는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면, 언젠가는 하나님에게 관용과 용서를 받을 수 있다. 즉, 하나님이 네가 과거에 범한 무지하고, 어리석고, 더러운 일을 바탕으로 네 결말을 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정도가 되면 하나님은 네가 저지른 일을 전혀 마음에 두지 않는다. 너도 다른 정상인과 다를 게 없어진다. 단, 전제는 네게 반드시 진심이 있어야 하며 진정한 태도로 회개해야 한다는 점이다. 마치 다윗처럼 말이다. 다윗은 자기가 범한 과오 때문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느냐? 그 양을 헤아릴 수 없다. 몇 번이나 울었느냐?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흘린 눈물을 한마디로 형용하자면 ‘침대가 눈물에 뜰 정도였다’. 네 과오가 얼마나 심각한지는 몰라도 만약 지나치게 심각하다면 너 역시 침대가 눈물에 뜰 만큼 울어야 할 수도 있다. 그 정도로 죄를 인정하고 회개해서 하나님에게 용서받아야 할 수도 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네 과오는 하나님이 보기에 죄업이 될 테고, 사함 받을 수 없게 된다. 그러면 너는 심각한 상황에 봉착한다. 나머지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의 사함과 용서를 얻는 첫 단계는 바로 네가 진심을 갖추고, 진실로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는 실제 행동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2)>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깨달았습니다. 자신의 과오를 대할 때는 먼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죄를 인정하고 자신을 반성해야 하며, 그다음으로 자신의 과오에 대해 진리를 구해 자신에 대한 진실한 인식과 증오에 이르고, 진실로 회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다윗이 과오를 저지른 후 자신의 잘못을 진실로 뉘우치고 하나님께 회개하며 다시는 같은 죄를 짓지 않겠다고 한 것처럼, 이 진실하게 회개하는 마음은 너무나 소중합니다! 저는 더 이상 제 과오를 회피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며, 앞으로는 같은 잘못을 다시 저지르지 않아야 합니다. 그 후, 본분을 이행하다가 다시 명예와 지위를 추구할 때면, 저는 하나님께 저를 저주하고 징벌하시어 제가 더는 패괴 성품에 기대 행동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드리고 구했습니다. 그렇게 실행하니 육체를 저버리려는 마음이 더욱 굳건해졌습니다. 이전에 저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무척 신경 쓰며 늘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제 이미지를 지키려고 했지만 지금은 의식적으로 제 자신의 패괴를 솔직하게 털어놓고 드러냅니다. 이렇게 실행하니 마음이 안정되고 평안해졌습니다. 본분을 이행하다가 문제가 닥쳐도 저는 의식적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원칙을 구할 수 있게 되었고, 더는 이전 과오에 속박되지 않게 되어 마음이 훨씬 자유로워졌습니다.

이번 병고는 저의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관점을 드러내 주었고, 제가 하나님을 믿으며 걸어온 잘못된 길을 보게 해 주었습니다. 만약 이런 환경이 없었다면, 저는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고 계속 이렇게 걸어갔을 것이며, 마지막에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도태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앞으로 저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하고, 피조물의 본분을 잘 이행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해 드리고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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