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담을 지기 싫었던 마음의 이면

2025.9.17

중국 양화이(楊淮)

2022년 9월, 저는 리밍(李明) 자매님과 함께 협력하여 새신자를 양육했습니다. 저는 이 본분을 막 훈련하기 시작했고, 리밍 자매님은 오랫동안 새신자들을 양육해 왔기 때문에 저는 자매님에게 많이 의지했습니다. 사람을 양성하거나 새신자의 여러가지 어려움과 문제를 해결하는 일 등은 대부분 자매님이 다 했습니다. 가끔 리밍 자매님이 저에게 사람을 양성하는 문제에 대해 상의할 때도 저는 건성으로 대했습니다. 자매님이 주로 책임지면 된다고 생각했고, 저는 제가 맡은 새신자만 잘 양육하면 된다고 여겼습니다. 남는 시간에는 형제자매들의 체험 간증을 보거나 찬양을 들을 수 있었기에, 이렇게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참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사역의 필요로 리밍 자매님이 다른 교회로 가게 되자 저는 갑자기 큰 부담감을 느꼈습니다. ‘이렇게 많은 새신자들을 나 혼자서 다 양육할 수 있을까? 갑자기 양육 담당자를 어디서 찾겠어? 지금 사람을 찾고 양성하려면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또 얼마나 들여야 할 거야. 기존 새신자 양육도 바쁜데, 초심자가 새로 오면 내가 또 양성해야 하잖아. 그럼 더 바빠져서 여유 시간이 하나도 없게 될 거야.’ 그렇게 속으로 반발심이 생겼습니다. 저는 그저 리더가 저와 협력할 사람을 빨리 안배해 제 사역량을 줄여주기만을 바랐지만, 당장에는 적합한 양육 담당자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리밍 자매님은 떠나는 길에 한 자매가 자질과 이해력은 괜찮은데 젊어서 아직 안정이 안 되었다며 저더러 그 자매를 더 많이 양성해 주라고 했습니다. 저는 입으로는 알겠다고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몹시 답답했습니다. ‘한 자매를 양성해 내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대체 얼마나 신경 써야 하는 거야?’ 그 며칠 동안 저는 본분에 무척 수동적이었습니다. 새신자에게 어떤 문제나 어려움이 있어도 해결할 마음이 들지 않았고, 그저 형식적으로 새신자들과 예배를 드릴 뿐이었으며,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전동 자전거를 타고 가던 중에 자전거가 고장 나 저는 어쩔 수 없이 자전거를 끌고 한 시간 넘게 걸어서야 집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저는 너무 지쳐 온몸에 힘이 쭉 빠졌습니다. 저는 이 일이 우연히 제게 임한 것이 아님을 알고 스스로 반성하며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리밍 자매님이 다른 곳으로 옮겨간다는 소식을 들은 후부터 제 마음속에는 반발심과 원망만 가득했습니다. 제 상태가 올바르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스스로 반성하고 당신께 회개하길 원하오니, 저를 이끄시어 제가 당신 뜻을 깨닫게 해 주시옵소서.”

기도를 마친 후, 저는 하나님 말씀 중 한 구절인 ’하나님의 부탁에 부담을 가질수록 너는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가 더 쉬워진다.’가 생각나 서둘러 그 부분을 찾아보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고, 기도하는 훈련을 하며, 하나님의 부담과 부탁을 받아들이는 것은 모두 네가 앞으로 나아갈 길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부탁에 부담을 가질수록 너는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가 더 쉬워진다. 혹자는 일어나서 협력하며 섬기라 해도 싫어하는데, 그런 자는 게으르고 안락을 탐하는 사람이다. 네가 일어나 협력하며 섬길수록 더 많은 것을 체험하게 된다. 너의 부담과 체험이 많아지기 때문에 온전케 될 기회 또한 많아진다. 그러므로 진심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면 하나님의 부담을 생각할 수 있게 되고,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 온전케 될 기회도 많아진다. 지금 이런 사람들을 온전케 하고 있다. 성령이 너를 갑절로 감동시킬수록 너는 하나님의 부담을 생각할 때가 많아지고, 하나님께 더 많이 온전케 되고 얻어져서 마침내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 된다. 현재 어떤 사람들은 교회에 대한 부담을 느끼지 못하고, 태만하게 굴며 자신의 육체만을 생각하는데, 그런 자들은 너무나도 이기적이고 눈먼 사람이다. 네가 이 일을 분명히 알지 못하면 부담도 느끼지 못한다. 하나님의 마음을 많이 헤아릴수록 하나님이 네게 더 많은 부담을 더해 줄 것이다. 이기적인 사람은 그러한 고난을 받는 것도, 대가를 치르는 것도 원치 않는다. 그 결과 하나님께 온전케 될 기회를 놓치게 되니 스스로를 함정에 빠뜨리는 일이 아니겠느냐?(<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온전케 되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부탁을 대할 때 부담이 있는지는 사람이 온전케 될 수 있는지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본분 이행에 부담을 갖고 진리를 추구하며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은 성령의 깨우침과 인도를 받아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진리를 깨닫고 생명이 성장하게 되지만,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서 굉장히 게으르고 부담지기 싫어하며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않는 사람은 성령의 역사를 얻을 수 없고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다. 제 상태에 비추어 보니, 제가 바로 하나님께서 폭로하신 게으르고 안일함을 탐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역량이 많아져 육적으로 고생해야 하자 저는 반발심을 느끼며 협력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본분을 대하는 저의 이런 태도로는 분명 진리를 얻어 온전케 될 수 없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마음이 괴로웠고, 하나님의 고심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금 리밍 자매님이 떠나고 제가 양육 사역을 책임져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저를 힘들게 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저를 훈련시키려는 것입니다. 새신자를 양육하든 사람을 양성하든, 이제는 문제나 어려움이 생겨도 의지할 사람이 없게 되니 저는 하나님께 더욱 의지하며 진리를 구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진리로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배우게 하시려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육적인 것만 생각하고 고생과 힘든 것이 두려워 부담지기 싫어하며, 하나님께서 저를 온전케 하고 진리를 얻게 하실 기회를 밀어냈으니, 참으로 어리석었습니다!

이어서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본분을 이행할 때도 무책임한 태도를 보인다. ‘이끌어 주는 사람이 있으면 따르고, 이끄는 대로 따라가고, 무슨 일이든 시키는 대로 할 거야. 그러나 책임을 지고 마음을 졸이거나 노심초사하고 마음과 힘을 다하는 건 난 못 해.’라고 생각한다. 그는 이러한 대가를 치르지 않으려 한다. 그저 힘만 쓸 뿐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하니, 이는 진실로 본분을 이행하는 태도가 아니다. 본분을 이행할 때는 마음을 들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사람에게 양심이 있으면 마음을 들일 수 있다. 언제나 마음을 들이지 않는다면, 이는 그 사람에게 양심이 없다는 의미이다. 양심이 없는 사람은 진리를 얻을 수 없다. … 마음을 들여 본분을 이행하고 책임을 질 수 있으려면 고통을 겪고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것은 말로만 떠든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본분을 이행하는 데 마음을 들이지 않고 항상 힘만 쓰고자 한다면, 분명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없을 것이다. 그저 형식만 갖추었을 뿐 본분을 어떻게 이행했는지 스스로도 알지 못할 것이다. 마음을 들이면 점차 진리를 깨닫게 될 테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깨닫지 못할 것이다. 본분을 이행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데 마음을 들이면, 점차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자신의 패괴와 부족함을 발견하며 자신의 다양한 내적 상태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네가 힘만 쓰는 데 집중할 뿐, 마음을 들여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는다면 네 마음속 실제 내적 상태, 네가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보이는 다양한 반응, 그리고 패괴 표출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네게 존재하는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을 경우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 스스로 알지 못한다면 문제는 심각하다. … 만약 네가 마음속으로 늘 본분 이행이나 진리에 관련된 일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표면적인 일에 얽매이고 이러한 육적인 일에 마음을 쓰며 살아간다면, 진리를 깨달을 수 있겠느냐?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고 하나님 앞에서 살 수 있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사람은 구원받을 수 없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께서 본분을 이행하면서 대가를 치르려 하지 않고, 늘 육적인 것만 생각하며 편히 쉬려 하고, 사역에 전혀 책임감이 없는 사람은 진리를 얻지 못하며 하나님께서도 칭찬하지 않으신다고 폭로하신 것을 보았습니다. 새신자 양육을 처음 시작했을 때를 돌이켜보면 저는 파트너 자매에게 의지했습니다. 자매님은 새신자를 오랫동안 양육했으니 새신자에게 어려움이 생기면 자매님이 가서 교제하고 해결하면 된다고 생각했고, 저는 관심도 갖지 않고 신경도 쓰지 않으며 완전히 방관자가 되었습니다. 본분을 이행하면서도 고생하거나 힘들기는 싫었고, 틈만 나면 제가 좋아하는 일들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저는 스스로 본분에 대한 부담이 없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리밍 자매님이 떠난다는 소식을 듣고 저는 마치 기둥을 잃은 것 같았습니다. 앞으로 그 많은 사역을 혼자 짊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힘들까 싶어 육적인 것을 고려하며 계산하기 시작했습니다. 늘 가볍고 쉬운 일만 골라서 하려고 했고, 제 뜻에 맞지 않으면 소극적이고 수동적이 되어, 마땅히 양성해야 할 사람도 양성하지 않고, 새신자 양육도 형식적으로만 대충 했습니다. 예전에는 늘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고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야 한다고 말했지만, 막상 정말 고난을 받고 대가를 치러야 하자 뒤로 물러서며 힘조차 쓰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제게 어찌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마음이 있었겠습니까? 여기까지 생각하니 무척 자책감이 들었습니다. 그 후 저는 적극적으로 새신자들의 어려움과 문제를 파악하고 교제하며 도와주었고, 시간을 내어 사람들을 더 양성했습니다. 신경 쓸 일도 많아지고 고생도 더 했지만, 마음은 평안하고 안정되었습니다.

한 달 후, 저는 다른 교회로 옮겨가 새신자를 양육하게 되었습니다. 리더는 양칭 자매님이 사역 능력이 부족해 팀장을 맡기에는 역부족이라며 제게 팀장을 맡아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매우 큰 부담감을 느꼈습니다. ‘팀장은 새신자를 양육해야 할 뿐만 아니라, 사역의 편차를 정리하고 양육 담당자의 문제도 교제로 해결해 주어야 하잖아. 이렇게 많은 사역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그럼 얼마나 신경 쓸 게 많겠어!’ 저는 서둘러 핑계를 대며 거절했습니다. “양칭 자매님은 양육 사역을 오래 했고 원칙도 어느 정도 알고 있으니, 우선은 자매님이 계속 팀장을 맡게 하고 저도 옆에서 많이 돕겠습니다. 그래도 정말 안 되면 그때 가서 조정하시지요.” 리더는 제가 팀장을 맡기 싫어하는 것을 보고 억지로 권하지 않았고, 저는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양칭 자매님의 성품이 교만하고, 본분을 이행할 때 늘 경험에만 의존하고 규례를 지키며, 교제하고 지적해 줘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나중에도 여전히 똑같이 행동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양칭 자매님은 사역 능력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원칙을 교제해줘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질도 너무 부족해. 이대로 가다가는 사역에 차질이 생길 거야. 정말 팀장을 맡기에 적합하지 않아.’ 하지만 막상 자매님을 교체하면 누가 팀장을 할지 막막했습니다. 팀의 다른 형제자매들은 막 훈련을 시작해서 아직 원칙을 잘 몰랐습니다. 저 역시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그래도 한동안 새신자를 양육하며 원칙을 어느 정도 파악했기에 상대적으로는 제가 좀 더 적합했습니다. 그러나 팀장이 되면 부담감이 너무 크고, 모든 일을 다 신경 써야 하며 정신적으로 피곤하고 힘들 것이 떠올라 저는 얼른 그 생각을 접었습니다. 그리고 또 생각했습니다. ‘양칭 자매님에게 교제를 더 많이 해주고, 사역적으로 내가 더 도와주면 큰 문제는 없겠지.’ 그렇게 저는 양칭 자매님의 문제를 보고도 알리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때, 교회에 한 형제가 교통사고로 팔이 부러지는 일이 있었습니다. 듣자 하니 그는 본분을 이행할 때 늘 잔꾀를 부리고 건성으로 했으며, 교체된 후에도 자신에 대한 인식이 없고 회개와 변화도 없었는데, 이제 팔이 부러져 본분을 이행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일은 제 마음에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본분을 이행할 때 잔꾀를 부리고 제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며 끝까지 회개하지 않으면, 본분을 이행할 기회를 잃었을 때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형제의 일이 저에 대한 일깨움이자 경고라고 생각했고,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본분을 건성으로 대충 이행하며 경시하는 태도로 본분을 대한다면, 결과가 어떻겠느냐? 네가 제대로 이행할 수 있는 본분도 잘 이행하지 못해 합격하지 못하는 결과를 맞게 될 것이고, 하나님은 이런 식으로 본분을 이행하는 너의 태도에 매우 못마땅해할 것이다. 원래는 네가 만약 하나님께 기도하고 진리를 구하여 성심성의껏 할 수 있다면, 네가 이렇게 협력할 수 있다면, 네가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하는 일이 자연스럽게 성사되어 좋은 결과를 얻도록, 하나님이 앞에서 너를 위해 모든 것을 예비해 놓는다. 네가 최선을 다해 협력할 때, 하나님은 너를 위해 모든 것을 안배해 놓는다. 만약 네가 잔꾀를 부리며 불성실하게 본분을 이행하고, 그릇된 길로만 간다면, 하나님이 너에게 역사하지 않아 너는 기회를 잃게 된다. 하나님은 “너라는 사람은 안 되겠다. 쓸 수가 없구나. 옆으로 비켜라! 너는 몸을 사리고 농간 부리기를 좋아하지 않느냐? 게으름 피우고 편안함을 누리기를 좋아하지 않느냐? 그러니 영원히 편안히 있어라!”라고 말하며, 그 은혜와 기회를 다른 사람에게 남겨 줄 것이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이는 손해를 본 것이냐, 아니면 이익을 본 것이냐? (손해를 본 것입니다.) 손해가 너무나 막심하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저는 하나님의 성품은 공의로워 사람이 거스를 수 없음을 느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본분을 이행할 기회를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며,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진리를 구하고 원칙에 따라 행하며, 하나님께 순종하고 충성하여 기준에 맞게 본분을 이행하게 하려는 데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만약 제가 이런 기회를 소중히 여기지 않고, 본분을 이행할 때 잔꾀를 부리며 최선을 다하지 않고, 본분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면, 하나님께 버림받고 내쳐져 외면당할 것입니다. 처음 리더가 저더러 팀장을 맡으라고 했을 때 고생하고 힘들까 봐 본분을 거절했던 것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지금 양칭 자매님은 팀장에 적합하지 않고, 계속 맡겨 두면 양육 사역에 차질이 생길 것이 분명해 즉시 자매의 문제를 보고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자매가 교체되면 저더러 팀장을 맡으라고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신경 써야 할까 봐 두려웠습니다. 제 육적인 안일함을 위해 양칭의 문제를 보고도 알리지 않았고, 자매가 계속 교회 사역을 가로막고 해치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그때서야 저는 본분을 이행할 때 잔꾀를 부리는 것의 결과가 얼마나 심각한지 깨달았습니다. 계속 회개하지 않으면 그 형제처럼 본분을 이행할 기회를 잃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저는 서둘러 하나님께 회개하고 진리를 구해 제 문제를 해결하기를 원한다며 기도드렸습니다.

구하는 중에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네가 사람인 이상 사람의 책임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이방인들이 무엇보다 강조하는 효도나 부모 부양, 가문을 빛내는 것 등은 말할 가치도 없다. 이러한 것들은 전부 공허하며, 실제적인 의미가 없다. 그럼 한 사람이 다해야 할 최소한의 책임은 무엇이겠느냐? 가장 현실적인 것은 지금 어떻게 해야 네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대충 형식만 취하는 데 만족한다면 그것은 책임을 다하는 것이 아니다. 글귀와 도리만 말할 수 있는 것도 책임을 다하는 것이 아니다. 진리를 실행하고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야말로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진리를 실행하여 성과를 내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실로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매사에 진리 원칙대로 해야만 진실로 책임을 다한 것이다. 사람의 방법으로 형식만 따르는 것은 건성으로 임하는 것이다. 진리 원칙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제대로 본분을 이행하고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네가 책임을 다하면, 이는 충성을 다하는 모습 아니겠느냐? 이것이 바로 충성을 다해 본분을 이행하는 모습이다. 본분을 이행할 때는 이러한 책임감과 의지, 바람을 갖고 충성스러운 모습을 보여야 하나님이 너를 마음에 들어 하고 인정한다. 이러한 책임감조차 없다면 하나님은 너를 건달이나 멍청이로 보아 경멸할 것이다. … 그러므로 하나님이 너를 마음에 들어 하기를 바란다면, 적어도 사람들이 너를 신뢰하게 해야 한다. 사람들 사이에서 신뢰받고 사람들 마음에 들고 인정받고 싶다면 최소한 존엄과 책임감을 갖고 신용을 지켜 믿을 만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럼 하나님 앞에서는 어떻게 해야겠느냐? 거기에서 나아가 직책을 다함으로써 충성심을 보여야 한다. 그러면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요구에 도달한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 인정받을 희망이 있지 않겠느냐?(<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8)>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나니 마음이 찔리고 괴로웠습니다. 제가 본분을 이행하면서 잔꾀를 부렸고 책임감도 없었으며, 전혀 믿음직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양칭 자매님이 자질이 너무 부족하고 팀장을 맡을 능력이 안 되며, 팀에 당장 팀장을 맡을 적합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여전히 부담을 지고 교회 사역을 지키려 하지 않았으니 정말 책임감이라고는 조금도 없었습니다! 부모님이 자녀를 다 키워 성인으로 만들었는데, 자녀가 장성해서 제멋대로 놀고 즐기기만 할 뿐 부모님이 아프시거나 노후를 보내시는 것을 전혀 돌보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은 양심도 없고 인성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하나님의 그 많은 말씀의 양육과 공급을 받았는데도, 양육 사역에 협력할 사람이 필요할 때 이기적이고 비열하게 제 육적인 안일함만 생각하고 교회 사역은 조금도 고려하지 않았으니, 정말 너무나 비인간적이었습니다! 저는 제 자신이 혐오스러워지고 제 행동이 부끄러웠으며, 더욱 후회하고 자책하게 되었습니다. 더는 이렇게 이기적이고 비열하게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후 저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육적으로 고생해야 하는 본분만 닥치면 반발하며 협력하기를 꺼리는 걸까? 문제의 근원은 무엇일까?’ 어느 날,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고 진리를 깨닫기 전까지는 사탄의 본성이 사람의 내면에서 주도권을 잡고 사람을 지배한다. 그 본성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겠느냐? 예를 들어, 너는 왜 이기적으로 구는지, 왜 자신의 지위를 지키려 하는지, 왜 그렇게 정에 치우치는지, 왜 그 불의한 것과 악을 좋아하는지, 그러한 것들을 좋아하는 근거는 무엇인지, 그것들은 어디에서 왔는지, 너는 왜 그것들을 받아들이기 좋아하는지 등이 있다. 너희는 그것이 주로 사람의 내면에 사탄의 독소가 들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제 알았다. 사탄의 독소는 무엇이냐?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느냐? 예를 들어, 네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합니까?”라고 물으면 사람들이 모두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 말은 문제의 근원을 보여 준다. 사탄의 철학이나 논리는 이미 사람의 생명이 되었다. 사람이 무엇을 추구하든 사실 모두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모두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라는 이 말은 사람의 생명 철학으로, 사람의 본성을 대변하기도 한다. 이 말은 이미 패괴된 인류의 본성이 되었다. 바로 패괴된 인류의 사탄 본성을 생생하게 묘사한 말인 것이다. 사탄의 본성은 이미 완전히 패괴된 인류의 생존의 토대가 되었다. 몇천 년간 패괴된 인류는 사탄의 이 독소에 의지해 오늘날까지 살아왔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어떻게 베드로의 길을 갈 것인가>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저는 깨달았습니다. 사탄은 학교 교육과 사회적 분위기, 그리고 일부 유명인과 위인들의 사상과 언론을 통해 사람을 해치고 패괴시킵니다. 그리고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 ‘인생은 괴롭고 짧으니, 어찌 제때에 즐기지 않겠는가?’와 같은 각종 사탄의 독소와 철학을 주입하며 패괴시킵니다. 사람은 이런 것들에 의지해 살면서 육적인 즐거움을 추구하는 목표와 방향으로 삼고, 육적으로 먹고 입는 즐거움과 사악한 흐름을 추구하기 시작하며, 점점 더 타락한 삶을 살아 정상적인 인성의 양심과 이성을 잃게 됩니다. 생각해 보니 저도 이와 마찬가지로 육적인 안일함을 굉장히 탐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기 전 회사에 다닐 때도 저는 편안함만 추구하며 고생하거나 힘든 것을 싫어했고, 돈이 많고 적음은 상관없이 먹고 마실 것이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변에 좋은 나날을 보내기 위해 고생하고 힘들게 애쓰는 사람들을 보면 저는 그들이 너무 어리석다고 생각했고, 인생은 고작 몇십 년인데 왜 스스로 힘들게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하면서도 저는 여전히 세속적인 관점을 가지고 늘 육신의 안일함만 생각하며 고생하고 힘든 것을 싫어했습니다. 때로는 며칠동안 계속해서 본분을 이행하며 정신적으로 긴장된 상태에 있으면, 저는 항상 기회를 찾아 육을 편안하게 하고 그렇게 힘들지 않게 하려고 했습니다. 부담을 지고 고난과 대가를 치러야 할 때면, 저는 늘 뒤로 물러서거나 다른 사람에게 미루고 싶어 했습니다. 진정으로 양심과 이성이 있는 사람은 본분을 이행할 때 항상 하나님의 사랑에 어떻게 보답할지를 생각하며, 최선을 다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본분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게 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기적이고 비열하게 제 육적인 이익만 고려했고, 본분을 이행할 때 요령을 피우며 전력을 다하지 않았습니다. 육은 안일했고 고생도 별로 하지 않았지만, 저는 진리를 얻을 수많은 기회를 잃었습니다. 저는 거듭 본분을 미루고 거절하며 여러 차례 하나님을 거역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하나님께 버림받고 도태될 수밖에 없으니, 죽음의 길을 걸은 셈이었습니다! 그때서야 저는 성경 잠언에 기록된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시키려니와’라는 말씀의 의미를 진정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뒤늦게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만약 그 형제의 교통사고 소식을 듣지 못했다면 저는 아직도 스스로 반성하지 않았을 것이고, 안일함을 탐하는 것의 심각한 결과를 깨닫지도 못했을 것이며, 더욱이 회개하고 변화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나중에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실행의 길을 찾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정직한 사람의 모습은 어떤 것이냐?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는 정직한 사람의 모습이다. 둘째, 정직한 사람의 가장 중요한 모습은 모든 일에서 진리를 구하고 실행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네가 스스로 무척 정직하다고 말할지라도,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한다면, 그것이 정직한 사람의 모습이겠느냐? 네가 “저는 자질이 부족해도 마음은 정직합니다.”라고 말하면서도, 막상 본분이 주어졌을 때, 고생할까 두려워하고 잘 이행하지 못하면 결과에 책임을 지게 될까 두려워 핑계를 대며 거부하거나 다른 이가 이행하도록 제안한다면, 그것이 정직한 사람의 모습이겠느냐? 그것은 분명 정직한 사람의 모습이 아니다. 그렇다면 정직한 사람은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하느냐? 반드시 하나님의 안배에 순종하며, 자신이 이행해야 하는 본분에 충성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해 드리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여기에는 몇 가지 측면의 모습이 있다. 하나는 정직한 마음으로 본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신의 육적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딴마음을 품지 않으며, 자신의 이익을 꾀하지 않는 것, 이것이 정직한 모습이다. 다른 하나는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해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고 일을 제대로 처리하는 것, 너의 마음과 사랑을 전부 본분에 사용해 하나님을 만족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정직한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며 보여야 하는 모습이다. 만약 네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깨달았으면서도 행하지 않는다면 이는 마음과 힘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몸을 사리는 것이다. 본분을 이행하며 몸을 사리는 사람이 정직한 사람이겠느냐? 절대 아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교활하고 간사한 사람을 쓰지 않으며, 반드시 도태시킨다. 하나님은 오직 정직한 사람에게만 본분을 이행하게 한다. 충성스럽게 힘쓰는 자라 해도 반드시 정직한 사람이어야 한다. 언제나 건성으로 임하고 몸을 사리는 사람은 전부 간사한 사람이자 마귀로,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다. 모두 도태될 대상이다. 혹자는 ‘정직한 사람으로 살려면 거짓말을 하지 않고 솔직하게 말하기만 하면 돼. 사실 정직한 사람으로 사는 건 쉬워.’라고 생각하는데, 이 주장이 어떠하냐? 정직한 사람으로 사는 것이 그렇게 좁은 범주의 일이겠느냐? 절대 그렇지 않다. 너는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어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이것이 정직한 사람이 지녀야 할 태도다. 그러므로 정직한 마음이 더없이 귀하다고 하는 것이다. 이 말의 숨은 뜻은 무엇이겠느냐? 그 마음은 네 행위를 지배하고 네 내적 상태를 바꿔 놓으며, 네가 올바른 선택을 하게 하고, 하나님께 순종하여 하나님께 인정받게 한다. 이 마음은 더없이 귀하다. 네가 그렇게 정직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면, 그러한 내적 상태로 살 것이고, 그러한 행위와 노력이 있을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저는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정직한 사람, 본분에 부담을 갖고 책임감이 있는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그런 사람은 자질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마음이 하나님 집을 향할 수 있어 마음과 힘을 다해 본분을 이행하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계획하지 않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칭찬하십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하기를 원했습니다. 비록 팀장이 되면 사역을 하다가 어려움에 맞닥뜨리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짐을 지우지 않으십니다. 그러니 저는 마땅히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교회 사역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최선을 다해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발휘하면서 요령을 피우거나 잔꾀를 부리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본분을 이행해야 합니다. 저는 노아가 방주를 짓던 때가 생각났습니다. 그 시대에는 공업이 발달하지 않았고 교통도 제한적이었습니다. 게다가 노아는 전문적인 조선 기술자도 아니었기에, 방주를 짓는 그 거대한 공사는 노아에게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의 부탁이 임했을 때 물러서지 않았고, 자신의 육적인 이익을 위해 계산하거나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분부가 임하자 즉시 실행에 옮겼고 조금도 지체하지 않았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삼고 하나님의 부담을 자신의 부담으로 삼았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부탁을 대하는 태도는 단순하고 순종하는 마음이었으니, 이것이 가장 귀하고 하나님께서 칭찬하시는 것입니다. 리더가 저에게 팀장을 맡겨 형제자매들을 이끌고 양육 사역을 잘하게 하려 한 것은 그저 조금 더 고생하고 대가를 치르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순종하는 태도가 조금도 없었으니, 저와 노아가 본분을 대하는 태도는 실로 하늘과 땅 차이였습니다! 단순하고 정직하며 말을 잘 듣고 순종적이었던 노아와 비교해보니 저는 너무나 부끄럽고 창피했습니다. 지금 양육 사역이 가로막혀 있으니, 저는 마땅히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먼저 나서서 사역을 맡으며 제가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을 힘써 다하여 여한을 남기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양칭의 문제를 사실대로 보고했고, 리더는 그녀를 교체했으며, 제가 팀장이 되었습니다.

팀장으로 막 훈련을 시작했을 때 저는 부족한 점이 많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도 많아 자주 야근을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마음속에 또 부정적인 생각이 일어 팀장은 신경 쓸 곳이 너무 많으니 원래의 본분이 더 편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제 자신이 또다시 육적인 것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육을 저버리기를 원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오늘날, 나의 뜻대로 행하고, 나의 부담을 생각하며, 진심으로 나를 위해 전 존재를 바치는 자가 있다면 나는 그를 사랑하고 시시각각 깨우쳐 주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할 것이다. 나는 “진심으로 나를 위해 헌신하는 자는 내가 반드시 크게 축복해 줄 것이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축복’이란 무슨 의미겠느냐? 너는 알고 있느냐? 이는 현재 성령 역사에 비추어 말하면 내가 너에게 더해 준 부담을 의미한다. 교회에 부담을 갖고 진심으로 나를 위해 자신을 내놓는 자라면 그의 부담과 그의 진심은 모두 나의 축복이다. 또한, 내가 그의 마음에 더해 준 계시 역시 나의 축복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그리스도의 최초의 말씀ㆍ제82편>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저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팀장이 된 후 제가 접하는 사람과 일이 많아졌고, 문제나 어려움이 생길 때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진리를 구해 해결하는 법을 배워야 했습니다. 이는 제 생명 성장에 더 유익했고,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마음속으로 큰 격려를 받았고, 의지도 생겼습니다. 그 후 저는 적극적으로 사역을 점검했고, 형제자매의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을 발견하면 진리를 교제하여 해결해 주었으며, 사역상의 문제에 대해서도 진리 원칙을 구했습니다. 이렇게 실행하니 제 자신의 생명 진입과 본분 이행에서 모두 약간의 성장이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매번 형제자매들과 교류하고 나면 그들도 수확이 있다고 말했고, 저도 무척 기뻤습니다. 자발적으로 부담을 지려고 하니 저 자신도 얻는 것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도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육을 위해 살지 않고 본분을 잘 이행하려 하니 마음이 평안하고 안정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클릭하세요! 하나님에게서 온 기쁜 소식이 당신과 당신의 가족에게 임할 것입니다.

관련 콘텐츠

폭로로 드러난 내 모습

스페인 샤론(Sharon)2021년의 어느 날, 한 자매가 제게 말했습니다. 여기서 다른 교회로 가게 된 아리안나(Arianna) 자매가 제가 본분을 건성으로 대충 이행한다고 했다고요.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 생긴 문제나 어려움을 제때 해결하지 않아...

감독을 받아들이지 않은 일에 대한 반성

최근 몇 년간 저는 교회에서 줄곧 정리 사역을 담당했습니다. 해당 본분을 이행한 지가 비교적 오래되었고, 원칙도 잘 파악하고 있는 편이라 평소 본분을 이행하는 것에 대해 그다지 압박감이 크지 않고, 가볍게 사역을 완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을 높이고 증거하는 법을 알았어요

중국 쉬루(徐露)2021년 4월, 저는 천정신(陳正欣) 자매와 협력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저는 전에도 복음을 전해 봤기 때문에 웬만큼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얼마 후 본분 성과에서 천정신을 앞질렀습니다. 저는 자매 앞에서 항상 자기 자랑을 하며...

열등감과 이별하다

저는 어릴 때부터 성격이 꽤 내성적이라 말수가 적고 사람들에게 인사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평소에 밖에 나가려다가도 이웃들이 밖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덜컥 겁부터 나서, 부득이한 일이 아니면 밖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학창 시절, 선생님께...

카카오톡으로 대화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