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감에서 해방되는 방법

2025.4.14

어렸을 때 저는 말수가 적고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것도 좋아하지 않아서 부모님과 친척, 친구들에게 자주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아이는 못써, 너무 둔해.” 어른들도 항상 제 앞에서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네 언니를 보렴, 얼마나 철이 들었는지. 말도 예쁘게 하고. 넌 하나도 영리하지 못해.” 서서히 저는 제가 아무 데도 쓸모없고, 어디를 가도 남들보다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학교에서 수업을 들을 때도 다른 사람들이 제가 말을 잘 못한다고 비웃을까 봐 감히 발표도 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말주변이 좋고 머리 회전이 빠른 사람을 부러워했고, 그런 사람은 모두가 좋아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후, 막 예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교제하기 시작했을 때 저는 교제를 잘하지 못하면 형제자매들이 비웃을까 봐 무척 긴장했습니다. 그래서 매번 예배 때마다 저는 별로 말하지 않았고 형제자매들은 자주 저에게 더 많이 교제해야 한다고 격려해 주곤 했습니다. 형제자매들이 모두 마음을 활짝 열고 자신의 체험과 인식을 교제하는데 아무도 비웃는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저는 더 이상 얽매이지 않게 되었고, 말도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후에 저는 설교자로 선출되어 몇몇 교회를 맡게 되었습니다. 저처럼 말주변이 없는 사람도 설교자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저에게는 너무 의외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이니 저는 열심히 사역해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지 말아야 했습니다. 한 번은 리더가 저와 다른 두 설교자를 예배에 불렀습니다. 저는 그 두 설교자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인식을 교제하는 데 빛이 있고 말에도 조리가 있는 것을 보고 너무 부러웠습니다. ‘이 사람들은 자질과 말주변이 좋구나. 난 저들에 비하면 한참 부족하네. 난 왜 이렇게 멍청할까? 말도 잘 못하고.’ 이런 생각이 든 저는 조금 의기소침해졌습니다. 당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했을 때 약간의 빛이 있었지만 저의 언어 구사력이 떨어진다는 생각에 남들이 비웃을까 두려워 교제할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후에 사역하면서 몇 가지 어려움을 만났는데 저는 계속 소극적인 영적 상태에서 살면서 ‘난 안돼’라고 규정지으며 이 본분을 잘 이행하지 않았고 사역 성과도 줄곧 좋지 않았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저는 본분이 조정되어 교회 한 곳만 맡게 되었습니다.

제가 맡은 교회의 두 자매와 함께 막 협력하기 시작했을 때, 저는 자신이 너무 형편없다고 느끼지는 않았습니다. 꽤 적극적으로 본분을 이행했고 성령의 깨우침과 인도하심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한 자매가 실제 사역을 하지 못한 이유로 책임을 지고 사임했습니다. 다른 한 자매는 자질이 너무 떨어져서 본분이 조정되었습니다. 후에 장통 형제와 안징 자매가 선출되어 저와 파트너가 되었습니다. 장통은 체험과 인식을 교제하는 데 꽤 실제적이고, 분명하기까지 하며 자질도 괜찮은 편이었습니다. 안징은 예배와 교제로 실제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두 사람의 장점을 보니 저는 자신이 그들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후 함께 사역에 대해 상의할 때 저는 항상 몸을 사리며 위축되어 있었고 그들이 의견을 다 발표하고 나면 저는 간단히 동조할 뿐이었습니다. 가끔 그들의 의견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해 의견을 내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저는 이내 저의 자질이 부족하고 일도 꿰뚫어 보지 못한다는 생각에 자신의 의견을 부정해 버렸습니다. 또 몇 번은 제가 제시한 의견이 그들의 동의를 얻지 못하자 더욱 ‘난 안돼’라고 생각하며 의견을 잘 내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떤 핵심 사역은 제가 자발적으로 나서서 하지도 않았는데 제가 제대로 못하면 사역에 지장을 줄까 걱정했기 때문입니다. 한 번은 장통이 장찬 자매에게 양육 사역을 맡기는 것을 제안했습니다. 저는 장찬에 대해 잘 아는 편이었는데, 그녀는 본분을 늘 건성으로 대충 이행하고 책임감이 없었습니다. 지난 번에는 실제 사역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교체되었고 지금까지도 자신에 대해 별로 인식하지 못해서 이렇게 중요한 사역을 맡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작은 목소리로 저의 의견을 말했습니다. 장통은 듣고 나서 장찬을 만나러 갔고 돌아와서는 그가 이미 알아봤는데, 장찬은 지금 어느 정도 반성하고 인식하고 있으며 또 사람의 예전 모습만 보지 말고 발전적인 안목으로 사람을 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안징도 장통의 의견에 동의했습니다. 저는 장통이 리더를 맡은 시간이 짧은 편이라 일부 원칙에 대해 아직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데다가 장찬에 대해서도 잘 모르니 단지 한 번 만난 것만으로 판단한 것이 꼭 정확하지는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장찬이 본분을 이행하는 상황을 좀 더 지켜보거나 그녀를 잘 아는 형제자매를 찾아 좀 더 알아보자고 제안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장통은 자질이 좋고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어서 그의 교제를 통해 장찬이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게 되었을지도 몰랐습니다. 게다가 안징도 그의 의견에 동의했고 저는 자질이 떨어지고 일도 꿰뚫어 보지 못하니 ‘그냥 이야기하지 말자’하는 마음에 더 이상 제 주장을 고집하지 않았습니다. 한동안 시간이 흐른 후, 장찬은 또 실제 사역을 하지 않은 이유로 교체되었습니다. 양육 사역이 지장과 영향을 받는 것을 보고 저는 마음이 무척 괴로웠습니다. 애초에 제가 제 의견을 고집해서 원칙과 결합해 장통과 교제했더라면 이런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비록 저는 자책했지만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 반성하지 않았고 나중에 또 어떤 일들을 겪고 나서야 자신을 반성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번은 예배 때, 장통이 정이 형제에게 양육 팀장을 맡기자고 건의했습니다. 저는 정이가 비교적 열심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을 믿은 지 얼마 안 됐고 이상 방면의 진리에 대해 아직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해서 우선 양성은 시킬 수 있어도, 팀장을 맡게 되면 단번에 사역을 감당하지는 못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제 의견을 말했습니다. 뜻밖에도 장통은 듣고 나서 저에게 이렇게 대꾸했습니다. “왜 자매님한테는 전부 어렵고 막히는 거죠? 저희가 먼저 정이를 만나서 그의 상황을 알아보면 안 되나요?” 장통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저는 얼굴을 들 수 없었고, 너무 괴롭기까지 했습니다. 속으로 ‘장통은 자질이 좋고 어떻게 사역하는지 알고 있어. 나는 자질이 떨어지고 사람과 일을 꿰뚫어 보지 못해. 내가 계속 고집부려서 만일 정말 사역을 막고 있는 거라면 어떻게 하지? 더 이상은 내 주장을 고집하지 말자’고 생각했습니다. 예배가 끝난 후 저는 장통이 한 말만 떠오르면 괴롭고 자신의 자질이 너무 부족해서 이 사역을 해낼 수 없으니 차라리 자기 주제를 파악해서 얼른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리더가 알고 나서 그녀의 체험과 결부시켜 저를 도와줬습니다 리더의 일깨움을 통해 저는 자신이 왜 항상 물러나고 싶어했는지, 왜 항상 의기소침한 영적 상태에서 살았는지 반성하기 시작했습니다. 후에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람의 내면에는 모두 옳지 않은 상태가 있다. 소극성이나 연약함, 우울함, 나약함을 지니고 있을 수도 있고, 혹은 비열한 속셈이 있을 수도 있으며, 혹은 체면이나 사욕, 이익 등에 연연할 수도 있고, 혹은 자신의 자질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소극적인 상태가 생길 수도 있다. 늘 이런 내적 상태에서 살면 성령 역사를 얻기가 매우 힘들다. 성령 역사를 얻기가 매우 힘들면 내면에 적극적인 것이 적고, 소극적인 것이 나와 너를 교란한다. 사람은 늘 의지로 자제하려고 하며 어떻게든 극복하려고 노력하지만,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 주된 원인은 소극적인 것이나 부정적인 사물을 분별해 내지 못하고 본질을 꿰뚫어 보지 못해 육을 버리거나 사탄을 저버리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다. 또 사람이 항상 이런 소극적이고 침체되고 타락한 상태에 빠져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을 앙망하지도 않고 그날그날 그럭저럭 살다가 결국에는 성령의 역사를 얻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진리를 깨달을 수 없고, 무슨 일을 해도 길이 없으며, 무슨 일을 보아도 꿰뚫어 볼 수가 없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패괴 성품을 벗어 버려야 자유와 해방을 얻을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제가 항상 소극적이고 의기소침한 영적 상태로 살았던 이유가 체면과 사욕과 같은 것들에 단단히 얽매여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배 때 하나님의 말씀을 교제했던 일들을 생각해 보니 저도 조금의 빛은 묵상해낼 수 있었지만 항상 자신의 말주변, 언어 구사력이 나쁘다는 생각에 교제를 잘하지 못하면 남들에게 무시를 당할까 봐 교제할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얻었던 조금의 깨달음과 빛도 그렇게 사라져 버렸습니다. 다른 설교자는 자질과 말주변이 좋은데 저는 표현력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저의 자질은 너무 부족하고 창피하다고 생각해 소극적이고 태만하게 본분을 이행했고 성과도 별로 없어 결국에는 본분을 조정당했습니다. 이번에도 똑같았습니다. 저는 파트너 형제자매의 자질이 좋고 교제도 저보다 나은 것을 보고 함께 사역에 대해 상의할 때 자신이 말을 잘 못해서 남들에게 무시를 당하고 체면이 구겨질까 봐 의견을 발표하는 것은 엄두도 내지 않았습니다. 가끔 옳은 견해와 의견들이 채택되지 않을 때도 저는 감히 제 주장을 고집하지 못하고 항상 자기 체면을 고려하고 부정적인 감정에 단단히 통제당해 본분마저 떠넘기고 싶어 했습니다. 저의 허영심과 체면은 정말 너무 강했습니다! 이렇게 계속 살다가는 성령의 역사를 얻지 못할 것이 분명하고 진리를 이해하지도, 얻지도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제가 자신을 인식하고 이런 영적 상태를 바로잡을 수 있도록 저를 깨우치고 인도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후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자신의 명예와 지위에 대한 적그리스도의 사랑은 일반인을 뛰어넘는다. 이는 그의 성품 본질 안에 있는 것으로, 한때의 취미도 아니고 한순간 환경의 영향을 받은 것도 아니다. 그것은 그의 생명 속에, 뼛속에 들어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것을 그의 본질이라고 한다. 즉, 적그리스도는 무엇을 하든 다른 게 아닌 자신의 지위와 명예를 가장 먼저 고려한다는 것이다. 적그리스도에게 있어 지위와 명예는 그의 생명이자 평생 추구해야 할 목표이다. 그는 무슨 일을 하든 가장 먼저 이런 것을 고려한다. ‘내 지위는 어떻게 될까? 내 명예는 또 어떻게 될까? 내가 이 일을 하면 좋은 명성을 얻을 수 있을까? 사람들 마음속의 내 지위가 올라갈 수 있을까?’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들인데, 이것으로 그에게 적그리스도의 성품과 본질이 있음이 충분히 증명된다. 그래서 그는 문제를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적그리스도에게 지위와 명예는 부가적인 요구 사항이 아니고,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신외지물(身外之物)은 더더욱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적그리스도의 본성과 뼛속, 핏속에 들어 있는 것으로, 선천적으로 갖고 있는 것이다. 적그리스도의 태도는 지위와 명예가 있어도 괜찮고 없어도 괜찮은 것이 아니다. 그럼 어떤 것이겠느냐? 명예와 지위는 그에게 있어 매일의 삶과 상태, 추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9조(3)>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적그리스도는 특히 명예와 지위를 애지중지하게 여기고 무슨 일을 하든지 다 자신의 명예와 지위를 위해서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은 적그리스도의 본질에 결정된 것입니다. 자신의 모습과 대조해 보았을 때도 이러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저는 자신이 무엇을 해도 안 된다고 생각하며, 무슨 일을 하든 몸을 사리며 위축되어 있었고, 마음속으로 얽매여 있었는데, 그 이유가 바로 자신의 체면과 지위를 지키고 싶고 다른 사람에게 무시당하기 싫어서였습니다. 자신이 왜 이렇게 체면과 지위를 애지중지하게 여기는지 반성했더니 근본 원인은 ‘사람은 체면으로 산다’, ‘사람은 이름을 남기고 짐승은 가죽을 남긴다’와 같은 사탄의 독소의 영향을 받아 허영과 체면을 너무 중요하게 여겨 사람들의 마음에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었고, 이렇게 살아야 의미가 있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상황, 어떤 사람들 사이에 있더라도 만약 저의 체면이 다칠 거 같으면 저는 도피를 선택했고 이런 방법으로 자신의 체면과 지위를 지켜냈습니다. 이번에 장통과 파트너가 되면서 저는 자신의 의견이 부정당해 체면이 깎였다고 생각했고 계속 리더를 맡으면 더 큰 망신을 당할까 봐 리더가 저의 본분을 조정해주기를 원했습니다. 사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제가 리더를 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저는 마땅히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형제자매의 실제 어려움을 해결하고 교회 사역을 수호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떻게 본분을 잘 이행할지 고려하지 않고 항상 자신의 체면과 지위를 지켰고 체면과 지위를 잃으면 소극적이게 되고 태만하게 사역했으니, 정말 양심과 이성이 없었습니다. 겉으로 볼 때 저는 적그리스도처럼 지위를 다투거나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지는 않았지만 인원 선출처럼 큰일에서 원칙을 고수하지 않고 항상 자신의 체면과 지위만 지킨 것은 적그리스도의 본질이 표출된 것입니다.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저는 바로 하나님께 회개 기도를 드렸습니다.

후에 저는 한 자매와 제 영적 상태에 대해 마음을 활짝 열어 나누었고, 그녀가 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보여줬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자질을 어떻게 판단해야겠느냐?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에 대한 이해도를 통해 사람의 자질을 판단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말재간이 좋고 머리를 잘 굴리며 사람들과 교류하는 데 매우 능숙하지만, 설교를 들을 때는 도무지 알아듣지 못하고, 하나님 말씀을 읽어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는 체험 간증을 얘기할 때 글귀와 도리만을 늘어놓아 문외한처럼 보이며, 영적인 이해력이 없다는 느낌을 준다. 이것이 바로 자질이 좋지 않은 사람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진리를 깨닫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중에서), 『너희가 말해 보아라, 바울에게 자질이 있었느냐? 바울의 자질은 어떤 수준이었느냐? (뛰어났습니다.) 너희가 이렇게 많은 도를 듣고도 이해하지 못했구나. 바울의 자질이 뛰어났다고 할 수 있겠느냐? (그렇다고 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자질이 부족했습니다.) 어째서 바울의 자질이 부족했다고 하느냐? (그가 스스로를 인식하지 못하고, 하나님 말씀을 이해하지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바울 역시 예수가 전하는 도를 들은 적이 있으며, 당연히 그가 사역하는 기간에도 성령 역사가 있었다. 그런데 그는 그렇게 많은 사역을 하고, 그렇게 많은 서신을 쓰고, 그렇게 많은 교회를 다니면서도 왜 진리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도리만을 읊었겠느냐? 이는 어떤 자질이겠느냐? 이게 바로 자질이 부족한 것이다. 이 밖에도 당시 바울은 예수를 핍박하고 주의 제자들을 체포했다. 그 후 예수가 하늘에서 큰 빛으로 바울을 치자 바울은 자신에게 닥친 그 큰일을 어떻게 대하고 인식했느냐? 그는 베드로의 인식법과 달랐다. 그는 ‘주님이 나를 치셨어. 나는 죄를 지었으니까 빨리 사역을 많이 해서 만회해야 해. 공을 세워 과오를 덮으면 상을 받을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했다. 그가 스스로를 인식했느냐? 그는 스스로를 인식하지 못했으며, “제가 예수님을 대적한 것은 본성이 악독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적그리스도의 본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대적했으니 좋은 사람이 못 됩니다!”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그에게 이런 인식이 있었느냐? (없었습니다.) … 그는 전혀 뉘우치지 않았고, 나아가 스스로를 인식하지도 않았다. 그에게는 이 두 가지가 모두 없었다. 이는 바울이라는 사람이 자질에 문제가 있으며, 진리를 이해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했음을 의미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진리를 깨닫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나서 저는 겉모습의 말솜씨, 은사, 머리에 따라 자질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진리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바로 바울의 경우처럼 말입니다. 그는 은사가 있고 말솜씨가 좋아 절반 이상의 유럽 땅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했지만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기 인식도 할 줄 몰랐습니다. 그는 그렇게 큰 악을 저지르고도 시종 자신에 대한 진실한 인식과 통회가 없었고, 오히려 공으로 과를 덮어서 나중에 하나님의 상을 받고 천국에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바울은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해서 자질이 나쁜 사람에 속합니다. 저도 전에는 늘 설교를 잘하고 머리가 좋으면 자질이 좋다고 여겨 언제나 이 기준으로 자신을 판단했습니다.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자신의 자질이 나빠서 리더의 사역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어려움이 닥쳤을 때도 저는 진리를 구하며 해결하지 않고 오히려 소극적이게 되고 태만하게 사역했습니다. 그 결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저는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진리를 이해하지 못했던 제 자신을 보니 정말 너무 어리석었습니다. 저의 자질이 비록 아주 좋은 건 아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받아들일 수 있고 자신의 표출된 패괴 성품도 어느 정도 인식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과 결부시켜 형제자매의 생명 진입에 관한 어려움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어서 본분을 이행할 수 없을 만큼 부족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깨닫자 저의 마음가짐이 조금은 바로잡혔고 정상적으로 본분을 이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며 자신의 영적 상태와 대조해 보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외모도 뛰어나지 않고, 별로 똑똑하지도 않고, 말주변도 없는 탓에 가정에서든 사회에서든 남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이 애는 머리가 나쁘고, 빠릿빠릿하지도 못하고, 말재주도 없어. 다른 집 애는 사람 살살 녹게 말도 참 예쁘게 하던데, 이 애는 어떻게 된 게 종일 입이 댓 발 나와서는 사람을 봐도 한마디도 할 줄 몰라. 잘못을 해도 설명하거나 변명할 줄 모르고, 다른 사람 기분을 풀어 줄 줄도 몰라. 이 애는 멍청이야.” 부모가 이렇게 말하고, 친척과 친구들이 이렇게 말하고, 선생님도 이렇게 말한다면 그는 보이지 않는 가운데 그러한 환경으로부터 일정한 압박을 받을 것이다. 그러한 주변 환경을 경험하면서, 그에게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일종의 심리가 생긴다. 어떠한 심리겠느냐? 자기가 못생겼고,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마주치는 사람들 모두 자기를 싫어하고, 공부도 못하고, 둔하고, 숫기가 없어서 사람들 앞에서 말도 제대로 못 하고, 누가 뭘 줘도 부끄러워서 고맙다는 인사조차 못 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왜 말주변이 없을까? 남들은 왜 그렇게 말을 잘하는 거지? 나는 멍청이야!’ … 이런 환경에서 자라면 열등감이 마음속에서 점차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한 후 일종의 벗어날 수 없는 정서가 되어 네 마음을 옭아매고 네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어른이 된 이후든, 사회에 나간 이후든, 결혼해서 독립한 이후든, 네 사회적 신분과 지위가 어떠하든, 어렸을 때부터 성장 환경에서 심어진 열등감은 네게 있어 해소할 수 없는 정서다. 심지어 하나님을 믿게 되어 교회에 온 이후에도 너는 여전히 네 외모가 그저 그렇고, 타고난 머리가 나쁘고, 말재주가 없고, 아무것도 못 한다고 여기며, 이렇게 생각한다. ‘뭐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그걸 하자. 리더를 목표로 할 필요도, 심오한 진리를 추구할 필요도 없어. 나는 기꺼이 가장 작은 자가 될 거야. 남들이 어떻게 대하든 상관없어.’(<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 중에서), 『열등감이 네 마음속 깊숙이 뿌리를 내리면 네게 심각한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네가 사람과 일을 바라보고,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는 것도 주도한다. 그렇다면 열등감의 주도하에 사람은 타인을 어떻게 바라보고 일을 어떻게 바라보겠느냐? 남들은 다 자기보다 낫다고 보고, 적그리스도도 자기보다 낫다고 본다. 적그리스도는 성품이 악하고 인성이 나쁜데도 본받아야 할 대상으로, 따라 배워야 할 본보기로 여기면서 이렇게 말한다. “봐. 성품이 나쁘고 인성이 악하다고는 해도 저 사람은 은사가 있어. 사역 능력도 나보다 낫고. 사람들 앞에서 자기 능력을 자유롭게 보여 주잖아. 저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이야기하는데 얼굴도 안 빨개지고 떨지도 않는 걸 보면 배짱이 좋은 거지. 난 못 해. 난 저런 용기가 없어.” 이는 무엇 때문이냐? 네 열등감이 사람의 본질에 대한 네 판단에 영향을 주고, 사람을 바라보는 각도와 입장에 영향을 준 것이 원인 중 하나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그러면 열등감은 네 처신에 어떻게 영향을 주느냐? 너는 이렇게 말한다. “난 타고나길 지독한 바보야. 은사도 없고, 특기도 없고, 뭘 빨리 배우지도 못해. 그런데 누구누구를 좀 봐. 방해하고 교란할 때도 있고 제멋대로 행동할 때도 있지만, 적어도 은사가 있고 특기가 있잖아. 어디서든 저런 사람을 먼저 쓰지. 난 안 돼.” 어떠한 일이 닥쳤을 때 너는 일단 자신을 규정하고 가둬 버린다. 그게 무슨 일이든 뒤로 물러나서 적극적, 자발적으로 나서지 않으며, 일을 맡기를 두려워한다. ‘난 타고나길 멍청해. 어딜 가도 환영받지 못해. 주제넘게 나서지 말자. 할 줄 아는 게 좀 있다고 해도 자랑하지 말자. 누가 추천해 준다면 내가 그런대로 괜찮다는 뜻이겠지만, 추천을 받은 것도 아니면서 내가 자발적으로 이 일을 맡을 능력이 된다고, 잘할 수 있다고 말하는 건 안 돼. 확실하지도 않은 말을 함부로 뱉을 수는 없는 거야. 만에 하나 제대로 못하면 어쩌려고? 책망을 받으면 어떡해? 그게 무슨 망신이야! 그러면 너무 창피하지 않겠어? 그런 사람이 될 수는 없어.’ 보아라, 네 처신에 영향이 있지 않으냐? 너의 그러한 처신 태도는 어느 정도 열등감이라는 정서의 영향과 통제에 의한 것이며, 어느 정도는 열등감이라는 정서로 초래된 부정적 결과라고 할 수 있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저는 하나님께서 저희를 너무 잘 알고 계셔서 제 마음속의 생각을 폭로하신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원래 제가 의기소침했던 데에는 단지 체면을 중시해서 뿐만이 아니라 또 다른 이유가 숨어 있었습니다. 바로 주변 사람들과 환경의 영향을 받아 열등감이 생겨서 자신을 올바르게 보지 못하고 항상 자신은 무엇을 해도 안 된다는 생각에 늘 몸을 사리며 위축되어 있었고 마음이 억눌려 해방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어렸을 때를 돌이켜 보면, 말수가 적어서 항상 어른들에게 이쁨 받지 못하고 둔하고 멍청하다는 싫은 소리를 자주 듣곤 했습니다. 사실 어렸을 때 제가 말은 못했지만 제 마음속에는 어느 정도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체면이 걸려 입 밖에 내지 못했을 뿐이었습니다. 수업을 들을 때 감히 발표하지 못한 것도 제가 그 문제들을 몰라서가 아니라 말주변이 나빠서 잘 말하지 못할까 봐였습니다. 예배 때도 하나님의 말씀을 다 읽고 나면 조금의 빛을 묵상해 낼 수 있었지만 자신의 말주변이 나쁘다는 생각에 교제할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또 장통이 원칙에 맞지 않게 사람을 선출하는 것을 보고 저도 그를 일깨워주고 싶었지만 그는 자질이 좋고 자신은 무엇을 해도 안 된다는 생각에 저는 바로 자신의 생각을 부정해 버리고 더 이상 구하고 토론하거나 좀 더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결과 사역에 손실을 입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열등감 속에 살면서 무슨 일이든 항상 피동적이고 소극적으로 대했고, 다른 사람과 자신을 볼 때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전적으로 자신의 의견에 따라 판단했습니다. 열등감은 제가 사람과 일을 바라보는 관점을 완전히 좌우했고, 제가 사물에 대해 판단하고 추구하는 길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열등감이 저에게 끼친 피해는 정말 너무나 컸습니다. 이어서 저는 또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너의 그러한 정서는 긍정적인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하나님께 대항하고 진리에 대항하는 것이다. 네가 보기에는 정상 인성에 속하는 일종의 정서겠지만, 하나님이 보기에는 단순한 정서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께 대항하는 방식이다. 사람이 부정적 정서라는 방식으로 하나님께, 하나님의 말씀에, 진리에 대항하는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나서야 저는 열등감의 본질과 피해가 패괴 성품이 사람에게 미치는 해악에 못지않게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깨달았습니다. 이런 감정 속에서 사는 것은 하나님과 대적하고 진리와 대적하는 것이니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구원받을 기회까지 날려버릴 수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저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줄곧 열등감에 시달려 왔고 늘 무슨 일을 해도 난 안된다고 여겼습니다. 특히 자질이 좋은 사람과 함께 있으면 자신이 너무 형편없다는 기분이 더욱 들었고 마음이 억눌리고 괴로워서 하나님께서 저에게 좋은 자질과 머리를 주시지 않았다고 원망까지 했습니다. 사실은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불복하고 불만족한 것입니다. 이런 모습의 본질은 하나님께 대적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계속 사는데도 어떻게 도태되지 않겠습니까? 이런 것들을 깨달은 저는 열등감 속에 사는 것이 정말 위험하고,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으며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후에 저는 또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어떻게 해야 자신을 정확히 평가하고, 인식하고, 열등감과 같은 정서에서 벗어날 수 있겠느냐? 너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 자신을 인식해야 한다. 자기 인성이 어떠한지, 자기 자질과 재능이 도대체 어떠한지, 자기한테 어떤 특기가 있는지 등을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예컨대 네가 원래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고 노래를 잘하는데 누군가가 음치라며, 음 이탈을 한다며 항상 트집을 잡고 너를 깎아내린다고 하자. 그러면 너는 네가 노래를 못한다고 생각해서 사람 앞에서 노래 부를 엄두를 못 낸다. 그 세인들 때문에, 그 바보나 어리석은 자들이 너에 대해 내린 부정확한 평가와 단정 때문에 네 인성에 마땅히 있어야 할 권리가 제한당하고 네 재간이 억압당한다. 결국 너는 노래 한 곡도 감히 못 부르게 되고, 아무도 없을 때, 너 혼자 있을 때만 큰 소리로 노래하며 억눌렸던 것을 해소할 엄두를 낸다. 평소에 너무 심하게 억압당했기 때문에 다른 때는 노래할 엄두를 못 내고, 혼자 있을 때만 겨우 노래를 부르며 자기 노랫소리가 맑게 울리는 시간을 즐긴다. 그 얼마나 아름답고 자유로운 시간이겠느냐! 그렇지 않으냐? 남이 네게 준 상처 때문에 너는 자기가 도대체 뭘 할 줄 아는지, 무엇에 능하고 무엇에 서툰지 알지 못하고 똑똑히 보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하나님 말씀에 근거해 자신을 올바르게 평가하고 가늠해야 한다. 자기가 배운 것, 자기 장점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하고, 할 수 없는 일, 자기 결점과 부족함은 반성하고 인식해야 한다. 자기 자질이 과연 뛰어난지 떨어지는지에 대해서도 정확한 평가와 인식이 필요하다. 만약 자기 문제를 명확하게 보고 제대로 인식하기가 힘들다면 분별력 있는 주변 사람에게 평가를 부탁한다. 그의 말이 정확하든 아니든, 최소한 네가 자기에 대해 기본적인 판단을 내리고 자기를 규정하는 데에 참고 사항은 되어 줄 것이다. 그러면 네가 열등감이라는 부정적 정서의 본질적 문제를 해결하고, 열등감이라는 부정적 정서 속에서 차츰차츰 걸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열등감이라는 정서는 사람이 분별하고 각성하고, 진리를 구할 수 있다면 쉽게 해결이 가능하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저는 열등감을 내려놓는 길을 찾았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자신을 인식하고 자신을 판단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주변의 친한 사람들에게 자기에 대한 평가를 물어볼 수도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이제 열등감 속에 사는 것이 너무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열등감에서 벗어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도와주세요.” 그 후 저는 파트너 형제자매에게 저에 대한 평가를 물어보았고 그들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자매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교제할 때도 자신의 폐괴된 영적 상태와 결부시킬 수 있어 형제자매의 실제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해 줄 수 있으니까 자매님이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형편없지 않아요. 비록 자매님의 자질이 아주 좋은 건 아니지만 자매님이 열심히 하기만 하면 그래도 실제 사역을 어느 정도 해낼 수 있어요.” 형제자매의 이런 평가를 들으니 저는 마음이 조금은 놓였습니다. 속으로 ‘내가 어떤 형제자매들보다 표현력은 떨어지더라도 내가 교제하는 것을 형제자매들도 듣고 이해할 수 있어. 열등감 등에 얽매이지 말고 내가 교제할 수 있는 만큼만 교제하자.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나를 우러러볼까 고려할 게 아니라 어떻게 실제적으로 교제해야 문제를 해결해 내고, 형제자매들이 이로움을 얻을 수 있을까에 집중하자. 또 내가 자질이 부족해도 많은 훈련을 통해 스스로 보완하고 자질을 높일 수 있어.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안 돼. 소극적으로 자신을 규정하지도 말고 긍정적인 면에서 진입해야 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것들을 깨달은 저는 자신을 올바르게 대하게 되었고, 다시 본분을 이행했을 때 마음가짐도 더욱 좋아졌습니다.

최근 저는 또 설교자로 선출되었는데 저에게는 좀 의외였습니다. 자신이 이 사역을 감당할 수 없을까 봐 또 걱정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 하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너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 자신을 인식해야 한다. 자기 인성이 어떠한지, 자기 자질과 재능이 도대체 어떠한지, 자기한테 어떤 특기가 있는지 등을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 중에서)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판단해야 합니다. 예전에 제가 이 본분을 잘 이행하지 못했던 이유가 꼭 자질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제가 열등감 속에 살며 열심히 협력하지 않아 성령의 역사를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더 이상 열등감 속에서 자신의 체면과 지위를 고려해 살 수는 없었습니다. 형제자매가 저를 뽑아준 이상 저는 마땅히 최대한 협력하고,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하나님께 더 많이 의지하고 형제자매에게 구해야 합니다. 이렇게 생각했을 때 저는 마음이 훨씬 가볍고 해방되는 기분이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복음사역을 맡은 한 자매가 저희 쪽에 와서 사역을 실천했습니다. 자매는 진리를 교제했고 사역 능력도 꽤 좋았으며, 저희에게도 사역하는 과정에 생기는 많은 오류와 허점을 지적해 주었습니다. 이런 자매가 저에게 사역 능력이 없다고 말할까 봐 두려웠지만 저는 금방 제가 또 제 체면과 지위를 고려한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 자신을 저버리고 저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게 자매에게 더 많이 배우게 해달라고 기도드렸습니다. 이후 함께 소통하고 사역할 때 저도 적극적으로 의견과 생각을 제시했고, 함께 소통하면서 제가 앞으로 어떻게 실천할지에 대한 길들을 찾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인도해 주셔서 저는 열등감에서 해방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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