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한 나는 어떻게 변화되었는가

2025.9.12

중국 류빈(劉斌)

2023년 8월, 저는 장항 형제와 협력하며 몇몇 교회의 복음 사역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사역에 문제가 생기면 제가 먼저 장항 형제와 상의하고 의논했습니다. 장항 형제도 본분에 부담이 있어 사역에서 문제나 오류를 발견하면 저와 교제하며 해결의 길과 방안을 제시했고, 저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채택했습니다. 그러다 저는 장항 형제가 문제를 해결하고 교류 서신을 작성하는 면에서 다소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장항 형제는 이제 막 훈련을 시작했으니 부족한 점이 있는 건 당연해. 내가 올바르게 대하고 많이 교제하며 도와줘야지.’ 저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며 그가 쓴 편지를 수정하고 보완해 주고, 격려도 자주 했습니다.

얼마 후, 저는 장항 형제가 교류 서신을 쓰는 데 여전히 몇 가지 문제가 있는 것을 보고 저도 모르게 그를 무시하고 경멸하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제가 문제를 처리하고 편지에 회신한 것에 대해 리더가 대부분 인정해 주었고, 복음 사역의 문제와 오류도 점차 바로잡혀 사역에 어느 정도 성과가 나타나자, 저는 스스로에게 만족하는 내적 상태로 살면서 제게 사역 능력이 좀 있다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점차 본분을 이행할 때 예전처럼 장항 형제의 의견을 묻거나 구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에게 물어봐도 좋은 제안도 없을뿐더러 결국 제 뜻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후부터 저는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고 저 편지는 어떻게 처리해야 한다는 둥 형제에게 지시하기 시작했고, 경멸하고 질책하는 말투로 그가 문제를 단편적으로 보고 피상적으로 해결한다고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시간이 흐르자 장항 형제는 조금씩 제 눈치를 살폈습니다. 한번은 제가 형제에게 교류 서신을 쓰라고 하고, 편지의 아이디어를 알려 준 적이 있습니다. 나중에 그가 제 뜻대로 쓰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저는 화가 치밀었습니다. ‘이 문제는 이미 말해 줬잖아! 내 아이디어와 방안은 실제로 실행 가능한 것으로 증명되었는데, 당신이 쓴 내용으로는 문제를 아예 해결할 수 없다고!’ 저는 따지듯 물었습니다. “왜 제가 말한 대로 쓰지 않았습니까? 형제가 이렇게 쓴 건 문제의 핵심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거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요.” 장항 형제가 말했습니다. “저도 형제님 생각대로 쓰고 싶었지만 몇 번을 시도해도 잘 안 써져서 제가 깨달은 대로 썼습니다.” 당시 계속해서 그를 질책하고 싶었지만, 문득 제 말에 혈기가 섞여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습니다. 또 한 번은 장항 형제가 교류 서신을 다 쓰고 제게 보여 주었는데, 그 안에 몇 가지 문제가 있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저도 모르게 또 그를 경멸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질책하고 꾸짖는 말투로 말했습니다. “여길 보세요. 문제를 단편적으로 봤잖아요! 그리고 여기도요. 교제하는 내용이 핵심을 짚지 못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니까요!” 제 말이 끝나자 장항 형제는 고개를 숙인 채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괴로워하는 장항 형제의 모습을 보니 마음속으로 조금 가책을 느꼈습니다. ‘내가 왜 그렇게 형제를 경멸하고 질책했을까?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지만 비슷한 일이 또 생기자 역시 저절로 그를 경멸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장항 형제는 비교적 수동적으로 본분을 이행했고, 어려움과 문제를 만나면 늘 제게 먼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심지어 스스로 자질이 부족해서 이 본분을 잘 감당할 수 없다며 그만둘 생각까지 했습니다. 장항 형제의 그런 상태를 보고 저는 제가 그에게 속박과 상처를 주었다는 것을 깨닫고, 비로소 진리를 구해 자신을 반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영 생활 시간에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내가 본 바에 의하면, 본분을 이행하는 많은 사람들이 능력이 좀 있으면 교만해지고, 특기가 있으면 자기가 대단한 줄 알고, 경험에만 의지하며 현 상태에 안주한다.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해도 듣지 않고, 자신이 갖고 있는 보잘것없는 그것이 바로 진리이고 지극히 높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무슨 성품이냐? 이것이 바로 교만한 성품이다. 그런 사람은 지나치게 비이성적이다. 교만한 성품을 갖고 있는 사람이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에게 순종하고, 끝까지 하나님을 따를 수 있겠느냐? 이는 더 어렵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성품을 아는 것은 성품 변화의 기초이다> 중에서), 『너희들이 자신을 아는 진리에 공을 들이면 좋겠다. 하나님이 왜 너희를 알아주지 않을까? 왜 너희의 성품을 혐오할까? 왜 너희의 언사를 증오할까? 너희는 충성심이 좀 있으면 뽐내고 공헌을 좀 하면 보답을 바란다. 또 조금 순종하면 타인을 업신여기고 보잘것없는 사역을 좀 하면 하나님은 안중에도 두지 않는다. … 너희의 언행에 자랑스러울 것이 뭐가 있단 말이냐? 본분을 이행하는 자나 이행하지 않는 자, 인도하는 자나 따르는 자, 하나님을 접대하는 자나 하지 않는 자, 헌금하는 자나 하지 않는 자, 전도하는 자나 받는 자 등등의 모든 사람이 자기 자랑만 하는데 우습지 않으냐?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지 못하고,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자신을 자랑하는데, 너희들의 이성이 자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생각되지 않는단 말이냐?(<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그리스도의 마음에 합하지 못하는 사람은 분명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이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저의 상태를 폭로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문제를 비교적 잘 꿰뚫어 보고, 교류 서신을 쓸 때 아이디어가 명확하다고 생각했고, 거기다가 항상 리더에게 인정받다 보니, 스스로를 아주 대단하게 여겼습니다. 그리고 장항 형제가 쓴 편지에 문제가 많은 것을 보고는 마음속으로 그를 업신여겼습니다. 그가 교류 서신을 제 아이디어에 따라 쓰지 않았을 때, 저는 이유도 묻지 않고 그를 질책하고 꾸짖으며 제 뜻대로 쓰라고 했습니다. 제가 계속 그를 질책하고 꾸짖은 탓에 그는 거기에 얽매여 감히 자신의 관점을 밝히지 못하게 되었고, 본분도 매우 수동적으로 이행했으며, 스스로 자질이 부족하여 그 본분을 감당할 수 없다고 규정하기까지 했습니다. 사실, 장항 형제는 여러 해 동안 복음을 전해서 사역을 점검하고 지도하는 데 어느 정도 경험이 있었지만, 제 눈치를 보느라 원래 가지고 있던 특기도 발휘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저는 교만하여 이성이 눈곱만큼도 없었고, 다른 사람을 옭아매고 상처만 주었습니다. 그게 어디 본분을 이행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명백히 악을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몇 년 전 교회 리더의 본분을 이행할 때 사역에 약간의 성과가 있었는데, 그러자 저는 동역자들을 안중에도 두지 않고, 늘 제 자질이 좋고 제 관점과 견해가 가장 정확하다고 여겼습니다. 사람을 선발해 쓰는 일이든 사역을 안배하고 사무를 처리하는 일이든 그들은 제 말을 들어야만 했습니다. 저는 누구도 다른 관점을 제시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누군가 이의를 제기하면 저는 즉시 그들의 관점을 뒤엎었으며, 때로는 지위를 내세워 그들을 꾸짖고 질책하여 모두가 저에게 얽매이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제가 교만하고 독선적이며 독단적으로 행동한 결과, 교회 사역은 심한 방해와 교란을 받았습니다. 지금 또 옛 병이 도진 것을 보고 저는 다소 소극적으로 변해한 채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나는 이 본분을 이행하면 안 되겠어. 계속하다가는 또 교만한 성품으로 살아서 장항 형제에게 상처를 줄 뿐만 아니라 사역에도 방해와 교란을 초래할 거야.’ 저는 소극적이고 오해하는 상태로 살면서 본분도 다소 수동적으로 이행했습니다.

그 후, 저는 제 상태가 정상이 아님을 깨닫고 의식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무엇을 위해 이 모든 것을 배치했겠느냐? 그것은 너의 본모습을 들춰내기 위함도, 너를 드러내 도태시키기 위함도 아니다. 최종 목적은 너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너를 온전케 하고 구원하는 데 있다. 어떻게 너를 온전케 하겠느냐? 어떻게 너를 구원하겠느냐? 먼저 너에게 패괴 성품이 있음을 알게 하고, 너의 본성 본질, 부족함, 결점 등을 인식하게 한다. 네가 이러한 것들을 알고 깨달아야 비로소 진리를 추구하고 패괴 성품을 차츰 벗어 버릴 수 있다. 이는 하나님이 네게 준 기회로, 이는 하나님의 긍휼이다. 너는 기회를 잡을 줄 알아야지, 하나님께 대항해서도 하나님과 겨루어서도, 하나님을 오해해서도 안 된다. 특히 하나님이 네 주변에 안배한 사람과 일, 사물에 대해 늘 네 뜻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여기며 벗어나려 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오해해서도 안 된다. 그런 식으로 대하면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는 것이 아니므로 진리 실제에 진입하기가 매우 어렵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얻으려면 주변의 사람과 일, 사물로부터 공과를 배워야 한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드러내시는 것은 사람을 도태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구원하려는 것입니다. 이로써 사람이 자신의 패괴 성품을 알고 진리를 추구함으로써 성품 변화에 이르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저는 제 분량이 불쌍할 만큼 작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드러남 앞에서 적극적으로 진리를 구해 자신의 패괴 성품을 해결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소극적으로 변하고 도피하려 했으니,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도 아니었던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사탄에 의해 너무 깊이 패괴되었습니다. 사역에 약간의 성과가 있다고 스스로를 아주 대단하게 여기며 교만하고 거만했고, 협력하는 형제를 경멸하고 질책하여 그에게 속박과 상처를 주었습니다. 하나님, 저는 교만한 성품으로 살고 싶지 않습니다. 저를 구원하시어 저의 교만하고 거만한 본성에 대해 참된 인식을 갖게 하시고, 자신을 증오하며 성품 변화를 추구하게 해 주십시오.”

그 후, 저는 제 상태에 딱 맞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교만은 사람이 지닌 패괴 성품의 근원이다. 사람은 교만할수록 비이성적이고, 그럴수록 하나님을 더 쉽게 대적한다. 이 문제가 어느 정도로 심각하겠느냐? 사람에게 교만한 성품이 있으니, 다른 사람이 안중에 없는 것은 물론이고 가장 심각할 경우 하나님조차 안중에 두지 않고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전혀 없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따르고 있지만,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지 않고, 늘 자신에게 진리가 있다고, 자신은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교만한 성품의 본질이자 근원으로, 사탄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므로 교만의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다른 사람을 안중에 두지 않는 것은 작은 일이다. 관건은 사람의 교만한 성품이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지 못하며, 언제나 하나님과 권력을 다투고 다른 이를 통제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으며, 하나님을 사랑한다느니 하나님께 순종한다느니 하는 것은 더 언급할 가치도 없다. 교만하고 잘난 체하는 사람, 특히 이성을 잃을 정도로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께 순종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높이고 증거하기까지 한다. 그런 자는 하나님을 가장 크게 대적하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전혀 없다. 사람이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려면 먼저 교만한 성품을 해결해야 한다. 너의 교만한 성품이 철저히 해결될수록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더 커지며,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있어야만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고, 진리를 얻어 하나님을 알 수 있다. 진리를 얻은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사람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 말씀의 폭로로 저는 사람이 교만한 본성으로 살고,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겪어 성품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언제 어디서든 악을 행하며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바로 그렇지 않았습니까? 문제를 조금 해결할 줄 알고 글솜씨가 남보다 조금 낫다고 스스로를 아주 대단하게 여기며, 매사에 장항 형제를 업신여겼습니다. 문제를 해결할 때나 사역을 상의할 때 그의 의견을 묻는 일이 거의 없었고, 가끔 묻더라도 형식에 불과했고, 늘 오만한 태도로 그를 지휘했습니다. 장항 형제가 교류 서신을 제 아이디어에 따라 쓰지 않은 것을 보고, 저는 형제의 입장에서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를 고려하거나, 취할 만한 점이 있는지, 혹은 어떻게 보완해야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지 궁리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의 아이디어를 바로 뒤엎고 제가 말한 대로 쓰라며 그를 질책하고 꾸짖었습니다. 저는 제 견해를 기준으로 여기고 장항 형제가 자신의 관점을 갖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로 인해 장항 형제는 구속을 받아 그 뒤로 편지를 쓸 때는 위축되었고, 심지어 스스로 자질이 부족하다며 그만두려고까지 했습니다. 사실, 가끔은 형제가 쓴 편지의 아이디어가 타당할 때도 있었습니다. 다만 교제가 단편적이어서 마땅히 형제가 쓴 것을 바탕으로 보완해 주어야 했지만, 저는 기어이 형제가 쓴 것을 부정하고 억지로 제 말을 따르게 했습니다. 이게 바로 제 뜻을 진리로 여긴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제 본성은 너무나 교만했습니다. 저는 ‘오직 나만이 존귀하고’, ‘오직 나만이 가장 위대하다’와 같은 사탄의 독소에 따라 살면서 장항 형제에게든, 과거에 협력했던 형제자매에게든 속박과 상처만 주었고, 교회 사역에도 방해와 교란을 초래했습니다. 그제서야 저는 제가 무척 교만하고 거만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하는 마음이 전혀 없이, 바로 하나님과 적이 되는 길을 걷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은혜시대의 바울이 생각났습니다. 그는 복음 전파에 재능과 은사가 있어 복음을 전해 사람을 얻고 여러 곳에 교회를 세웠으며, 여러 통의 서신도 썼습니다. 그는 이것들을 밑천으로 삼아 아무도 안중에 두지 않았고, 자신이 어떤 사도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늘 자신을 높이고 다른 사도들을 폄하하다가, 마지막에는 교만이 극에 달해 자신이 사는 것이 곧 그리스도라고 공개적으로 증거함으로써 하나님의 성품을 거슬러 하나님의 저주와 징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의 모습이 바울과 똑같지 않았습니까? 이러한 것들을 깨닫고 나니, 덜컥 겁이 났습니다. 제가 만약 계속 회개하지 않고 성품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저의 결말은 바울과 같아져서 하나님께 혐오받고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 후, 저는 장항 형제에게 제 상태를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사과했고, 그도 마음을 열고 자신의 상태를 이야기했습니다. 그 후부터 저는 인내심을 갖고 장항 형제에게 문제를 어떻게 보고 편지에 어떻게 회신해야 하는지 알려 주었고, 때로는 그가 정말 잘 쓰지 못하는 것을 보면 그가 쓴 것을 기초로 수정하고 보완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실행하니 제 마음이 좀 더 평안하고 안정되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교만했던 또다른 이유를 반성해 보니, 바로 제 은사와 특기를 밑천으로 삼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면서 각 부류의 사람에게 서로 다른 재능을 주었다. 혹자는 문학에 재능이 있고, 혹자는 의학에 재능이 있으며, 혹자는 기술 연구에 재능이 있고, 또 혹자는 과학 연구에 재능이 있는 식이다. 사람이 지닌 이 재능들은 하나님이 베풀어 준 것이니 우쭐거릴 만한 것이 못 된다. 또한, 어떤 재능을 갖고 있든 그것이 진리를 깨달았다는 의미는 아니며, 진리 실제를 지니고 있다는 의미는 더더욱 아니다. 어떤 재능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 하나님을 믿게 됐다면, 마땅히 그 재능을 본분 이행에 써야 하며, 이는 하나님이 열납하는 일이다. 만약 어떤 재능이 있다고 우쭐거리거나 하나님과 거래를 하려고 든다면 그것은 너무나도 이성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떤 기술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 집에 와서는 자기가 남들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며 특별 대우를 받고 싶어 한다. 그들은 평생 가는 철밥통이 있다고 여기면서 그 기술을 밑천으로 삼는데, 이는 너무도 교만한 것이다! 그럼 이러한 은사와 재능을 어떻게 봐야겠느냐? 그것들이 하나님 집에서 쓸모가 있다고 해도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는 도구에 불과할 뿐, 진리와는 상관이 없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8조 그는 사람들이 진리와 하나님이 아닌 오직 그에게 순종하도록 한다(3)>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저는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어떤 특기를 가졌든, 예를 들어 노래나 춤, 글쓰기, 복음 전파 등 어떤 것을 잘하든, 이러한 재능과 은사는 모두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것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것들을 주신 것은 우리가 본분을 이행하는 데 그것들을 활용하여 본분을 잘 이행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제가 글쓰기에 약간의 특기가 있었으니, 마땅히 제 특기를 발휘하여 협력하는 형제자매들을 도와 함께 교회 사역을 잘 해나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께서 주신 이러한 은사와 특기를 밑천으로 삼아 자기만족에 빠졌을 뿐만 아니라, 매사에 장항 형제를 깔보고 속박하며 제 말을 듣게 했습니다. 그러면서 성품은 점점 더 교만해지고 인성과 이성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그때야 비로소 은사와 특기는 단지 사람이 본분을 잘 이행하도록 돕는 하나의 도구일 뿐이며, 은사와 특기가 있다고 해서 진리를 깨달았거나 성품이 변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은사만 있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근본적으로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없으며, 심지어 악을 행하며 하나님을 대적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주신 이 작은 은사와 재능을 밑천으로, 제게 재주와 능력이 있다고 여기면서 자신의 신분과 지위를 전혀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정말 부끄러움을 몰랐으니, 하나님께서 얼마나 역겨워하고 혐오하셨겠습니까!

나중에 한번은, 저희가 양육 사역에서 몇 가지 문제와 오류를 발견하여 교류 서신을 써서 해결해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저는 장항 형제와 함께 교제한 후 형제에게 먼저 작성하라고 했습니다. 장항 형제가 다 쓴 것을 제게 보여 주었을 때, 저는 일부 세부 사항이 여전히 빠져 있는 것을 보고 속으로 또 약간 경멸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제게서 또 교만한 성품이 드러났음을 의식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말해 보아라. 완벽한 사람이 있겠느냐?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아무리 능력과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 또한 완벽한 사람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이것은 사실이자, 사람이 자신의 장점이나 단점을 올바로 대하고자 할 때 마땅히 갖춰야 하는 태도이며, 사람이라면 마땅히 지녀야 하는 이성이다. 이런 이성이 있다면, 너는 올바른 태도로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대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장점과 단점 또한 올바른 태도로 대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다른 사람과 조화롭게 협력할 수 있다. 네가 이 측면의 진리를 깨달으면, 이 측면의 진리 실제에 진입하여 형제자매와 함께 화목하게 지내며 서로 장점을 배워 단점을 보완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되면 네가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어떤 일을 하든, 모두 점점 더 잘하게 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저를 깨우쳤습니다. 사람과 조화롭게 협력하는 데에 이르려면 모든 사람의 장점과 단점을 올바르게 대해야 하고, 다른 사람의 단점과 부족한 점을 볼 때 경멸하고 깎아내릴 것이 아니라 서로 보완해 주어야 한다는 것, 그렇게 해야 본분에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주신 자질과 특기는 다릅니다. 장항 형제는 편지로 교류하는 데 능숙하지 않으니, 저는 그의 부족한 점을 올바르게 대해야 하고, 제 장점과 그의 단점을 비교해서는 안 됩니다. 사실 장항 형제에게도 장점이 있었습니다. 그는 여러 해 동안 복음과 양육 사역을 책임지며 많은 경험을 쌓았고 사역에도 성과가 있었지만, 그로 인해 교만하고 독선적으로 굴지 않았고, 꿰뚫어 보지 못하는 문제는 제게 구했으며, 제가 사역에 존재하는 문제를 지적해 줄 때도 잘 받아들였습니다. 이러한 장점들은 모두 제가 갖추지 못한 것이자 제가 마땅히 본받아야 할 점입니다. 여기까지 깨닫고 나니, 장항 형제의 모자란 부분과 부족한 점을 올바르게 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그 편지를 수정하고 보완했습니다. 편지를 넘겨주었을 때, 자신을 저버리고 교만한 성품으로 살지 않는 것이 정말 좋았습니다. 마음이 평안하고 기뻤으며, 다른 사람을 옭아매거나 상처를 주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이렇게 조금이나마 변화될 수 있었던 것은 다 하나님 말씀의 인도로 이룬 성과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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