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분에는 대소경중이 없다

2024.7.6

필리핀 카렌(Karen)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기 전에 저는 선생님에게 칭찬받는 데 익숙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관심이 제게 집중되기를 바랐고, 모두에게 높은 평가를 받길 좋아했죠. 2020년 5월,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습니다. 저는 하나님 말씀을 열심히 먹고 마셨고, 예배에도 적극적으로 참석했습니다. 예배드릴 때 제일 먼저 인식을 교제하는 건 늘 저였죠. 형제자매도 제가 교제를 잘한다고 늘 칭찬했습니다. 제가 좋은 자질을 지닌 것 같고, 다른 사람보다 이해도 잘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습니다. 나중에 저는 예배 그룹 팀장으로 뽑혔습니다. 이 많은 사람 중에서 저를 선택하다니 제가 정말 자질이 좀 되나 보다라는 생각에 정말 기뻤습니다. 얼마 후 저는 그룹 예배 진행을 책임지게 됐습니다. 형제자매 모두가 저를 주목하고 저를 높이 평가했습니다. 저도 예배드릴 때 형제자매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그들의 내적 상태와 어려움을 살피고, 그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보내 주었습니다. 교제하지 않은 사람, 예배에 참석하지 않은 사람이 있으면 따로 격려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고요. 형제자매들은 저와 상당히 친했고, 같이 얘기할 때마다 늘 즐거워했습니다. 제가 새 신자 양육에 잘 맞는 것 같았습니다. 양육 집사가 되고, 더 높은 지위에 오를 수도 있겠다 싶었죠. 그렇게 되면 다른 팀장의 사역을 체크하면서 더 많은 사람에게 높이 평가받고 칭찬받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겼습니다. 리더가 저는 복음을 전하는 데 소질이 있으니 복음 전하는 일에 전념하라고 하는 겁니다. 하지만 저는 별로 기쁘지 않았습니다. ‘난 양육하는 사람이야. 양육과 관련된 모든 사역에 익숙하다고. 왜 계속 양육 사역을 시키지 않고 복음을 전하라는 거지? 양육 사역에서는 내 특기를 발휘할 수 있지만, 복음 전하는 일은 처음부터 다시 훈련해야 한다고. 지금은 그저 참도를 알아보고 싶어 하는 사람한테 설교 들으러 오라고 하는 것뿐이잖아. 그렇게 간단한 사역은 누구나 할 수 있어. 그런 사역에서 어떻게 날 뽐내? 게다가 난 지금 팀장이야. 복음 전하는 일을 하면 고작 팀원밖에 안 되는데 누가 날 높이 평가하겠어?’라는 생각이 들었죠. 당시엔 너무 괴로워서 정말 복음 전하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고, 도저히 순종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리더에게 물었습니다. “왜 저더러 새 신자 양육을 그만두고 복음을 전하라는 거죠? 저는 두 사역을 동시에 할 수 있어요. 둘 다 소화할 수 있다고요.” 리더가 말했습니다. “자매는 말재주가 좋잖아요. 자매의 특기로는 복음 전도에 적합해요. 복음 사역에 자매가 더 필요해요.” 리더의 말을 듣고 나니 받아들이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복음을 전하는 일에서는 아무도 저를 높이 평가하지 않을 것 같아 우울했습니다.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죠. “난 양육 사역을 오래 해 왔고, 성과도 좋았어. 형제자매도 나를 높이 평가했는데, 이제 이것도 다 끝이구나.” 너무 속상해서 복음 전할 기분도 나지 않았습니다. 설교 들으러 오라고 초대하는 일은 대충 형식적으로 할 뿐 제대로 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죠. 오히려 속상한 기분을 잊으려고 사람들과 수다 떨고 농담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썼습니다. 언제쯤이면 다시 새 신자 양육을 할 수 있을까 늘 생각하면서요. 그 결과, 1개월이 지나도록 저는 복음 전하는 일에서 조금도 성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제야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구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늘 양육하는 게 좋아서 이 환경에 순종하기가 참 힘듭니다. 제가 당신의 뜻을 깨닫고 순종할 수 있도록 저를 인도해 주세요.’

나중에 이런 하나님 말씀을 읽었습니다. 『어떻게 본분을 대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이며 하나님의 뜻에 맞겠느냐? 우선 먼저, 너는 이 본분을 누가 안배했는지, 어떤 급 리더가 너에게 시킨 건지 분석하지 말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여야 한다. 분석하지 말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여야 하는 것, 이것이 한 조목이다. 이 밖에도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그것의 상하 귀천을 구분해서는 안 된다. “이는 하나님이 맡겨 주신 부탁이고 하나님 집의 사역이긴 하지만, 이런 일을 하면 남들이 깔볼 거야! 체면이 서는 일은 남들보고 하라고 하고, 티 나지 않고 뒤에서 힘을 내는 일은 나한테 시키네. 이건 불공평하잖아! 난 이 본분을 이행하지 않을 거야. 난 체면도 세우고 이름도 날리는 본분을 맡아야 해. 이름을 날리거나 체면을 세우지 못한다 해도 내게 이득이 되고 몸이 편한 본분이어야 돼.” 네가 이렇게 말한다면, 이 태도가 옳은 것이냐? 자기 입맛에 맞는 것만 고르는 건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자기 취향에 따라 선택하는 것이다. 이는 본분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본분을 거절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거역하는 모습이다. 그 안에는 개인적인 취향과 바람이 섞여 있다. 네가 자신의 이익과 체면 등 갖가지 요소를 고려하면, 그것은 순종하는 태도로 본분을 대하는 것이 아니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합격한 본분 이행이란 어떤 것인가>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읽고 나서 반성해 보니 제가 제 취향에 따라 본분을 대했음을 깨달았습니다. 양육 사역에서는 제 특기를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팀장이라 다른 사람을 이끌 수도 있었고요. 새 신자 양육에 성과도 있었고, 형제자매 모두에게 높이 평가받고 칭찬도 들었습니다. 너무 즐거워서 해야 할 사역이 많아도 한 번도 원망하지 않았죠. 하지만 리더가 저를 복음 전하는 사역에 배치했을 때 그것은 단순히 설교 들으러 오라고 사람들을 요청하는 일이니 아무나 할 수 있지 않나, 복음을 전하게 되면 팀장 자리를 잃게 될 테고, 그럼 아무도 저를 높이 평가하지 않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 기분이 말이 아니었죠. 속으로 원망하며 하나님께 이치를 따지기도 했습니다. 복음을 전하겠다고 해 놓고도 그 본분을 이행할 기분이 나지 않아서 차라리 수다를 떨망정 어떻게 하면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을까 고민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 결국 복음을 전한 지 한 달 동안 아무 성과도 내지 못했죠. 제가 본분 이행 시 고려한 것은 다 제 체면과 지위였습니다. 제 뜻에 맞고 제 체면과 지위를 지킬 수 있는 것이면 쉽게 순종했고, 제 뜻에 맞지 않고 제 체면과 지위를 못 지키는 것이면 속상한 마음에 하나님을 원망하며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체면을 세울 수 있는지, 높은 지위를 얻을 수 있는지에 따라 순종할지 말지를 선택한 겁니다. 본분을 대함에 있어 진심이 하나도 없었던 거죠. 계속 이렇게 지위를 추구하면, 제가 많은 사역을 하고, 대단한 활약을 보이고, 여러 형제자매한테 높은 평가를 받는다 해도 하나님은 저를 싫어하고 기억하지 않으실 텐데,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결국 진리를 얻지 못하면 하나님께 도태되는 거 아닙니까? 이걸 깨닫고 나니 본분을 대하는 태도를 바로잡고 싶었습니다. 남이 어떻게 보든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고 싶은 생각뿐이었죠.

그 뒤로 저는 전력을 다해 복음 전도에 매진했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 제 초대로 참도를 알아보러 왔던 사람들 중 일부가 하나님의 사역을 받아들였죠. 리더가 제게 잘했다고 칭찬했습니다. 기분이 좋았습니다. 복음을 전한 시간이 길지 않은데 남들보다 좋은 성과를 거두고 리더의 칭찬까지 들었으니 제게 꽤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했던 거죠. 복음 전하는 일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복음 전도를 통해서도 제 재능을 드러내 보이며 더 많은 사람의 인정을 받을 수 있겠구나 싶었으니까요. 그 이후로 배로 더 열심히 복음을 전했고, 본분 이행 성과도 점점 더 좋아졌습니다. 그러다 2021년 3월에 저는 교회 리더로 뽑혔습니다. 저는 감격해서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본분을 이행하려면 온 교회의 형제자매를 이끌고, 모든 사역을 책임져야 해. 날 뽐낼 좋은 기회니까 최선을 다해 완수하자.’ 그때 저는 적극적으로 사역했습니다. 늘 형제자매에게 메시지를 보내 본분 이행에 어려움은 없는지 살폈고, 누가 본분을 이행하는 데 부족함을 보이면 실제적으로 그들을 가르쳤습니다. 늘 모든 사역을 체크하며 본분을 이행할 자질이 있는 형제자매를 양성하기도 했고요. 제가 언니나 누나처럼 형제자매를 잘 돌본다고 생각했습니다. 형제자매도 모두 저를 의지했고요. 그들은 제게 자신들의 어려움을 기꺼이 털어놓았습니다. 한 자매는 제가 자기 어려움을 해결해 줄 하나님 말씀을 금방 찾아낸다며 저를 칭찬했습니다. 형제자매에게 인정받고 칭찬받을 수 있어서 기뻤고, 그래서 더 신나게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약 한 달 뒤,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점점 더 늘어나면서 저희는 교회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리더로 뽑히지 않고 집사로 선정돼 몹시 실망스러웠습니다. 리더를 했을 때 더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요. 나도 리더의 사역을 잘할 수 있는데 왜 날 안 뽑았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새로 뽑힌 리더가 제게 사역을 맡겼을 때는 너무 속상해서 말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한테는 순종하기 힘든 환경이었죠. 그런데 문득 이런 하나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본분을 이행할 때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해서는 안 된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기분이 좋고 체면이 서는 방식대로 하면 이는 자기 뜻대로 하는 것이다. 네가 개인 취향에 따라 본분을 이행하면서도 그게 하나님의 요구이자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이라 여기며 개인 취향을 하나님께 강요한다면, 개인 취향을 진리로 삼아 실행하고 진리 원칙으로 삼아 지킨다면, 이는 잘못된 것이 아니냐? 그것은 본분 이행이 아니다. 그러한 본분 이행을 하나님은 기억하지 않는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 원칙을 구해야 제대로 본분을 이행할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곰곰이 되새기다 깨달았습니다. 무슨 일이 임하든 모두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이자 하나님이 주재하고 안배하신 일로, 제가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는지 보기 위한 것이었죠. 본분이 제 뜻에 맞지 않는다고 순종하지 않으려 하면, 하나님은 저를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니 조금 받아들이기 힘들다 해도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것이 마땅히 갖춰야 할 이성인 거죠. 이걸 깨닫고 나니 그렇게 괴롭지 않았습니다.

두 달 후 사역 상의 필요로 다른 교회로 옮겨 복음을 전하게 됐습니다. 리더는 제게 많은 사역을 배정했습니다. 사역을 상의할 때 자주 제 의견을 물었고, 제가 이 본분에 잘 어울린다는 칭찬도 했죠. 전 생각했습니다. ‘리더가 나한테 이렇게 많은 사역을 배정한 건 나를 신임하기 때문이야. 리더를 실망시킬 순 없지. 내가 자질 있고 사역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증명해야겠어.’ 그때 제가 또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괴로워서 소극적이 됐습니다. ‘나는 왜 늘 이렇게 패괴 성품을 드러낼까? 이 패괴 성품의 근원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에 참 곤혹스러웠죠. 저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구했습니다. 나중에 이런 하나님 말씀을 봤습니다. 『어떤 사람은 바울을 매우 숭상한다. 밖에서 강연하고 사역하는 것을 좋아하며 모임을 가지기 좋아한다. 연설하기 좋아하고 사람들이 자신의 말에 따르고 자신을 숭상하는 것을 좋아하고 자신을 둘러싸는 것을 좋아한다. 사람들 마음속에 자신의 자리가 있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들이 모두 그의 이미지에 관심 두는 것을 좋아한다. 이러한 모습에서 그의 본성을 해부해 보자. 그의 본성은 무엇이겠느냐? 그가 정말 이러한 모습을 보인다면 그 사람은 교만하고 잘난 체하며 하나님을 조금도 경배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 준다. 또한, 그가 추구하는 것은 높은 지위에 서는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을 다스리고 점유하고 싶어 하며 사람들 마음속에 자신의 자리를 마련하고 싶어 한다. 이것은 전형적인 사탄의 형상이다. 그의 본성 가운데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바로 교만하고 잘난 체하며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고 사람들이 그를 경배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모습을 통해서 그의 본성을 명확히 알 수 있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자신의 명예와 지위에 대한 적그리스도의 사랑은 일반인을 뛰어넘는다. 이는 그의 성품과 본질 안에 있는 것으로, 한때의 흥미도 아니고 한순간 환경의 영향을 받은 것도 아니다. 그것은 그의 생명 속에, 뼛속에 들어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것을 그의 본질이라고 한다. 즉, 적그리스도는 무엇을 하든, 다른 게 아닌 자신의 지위와 명예를 가장 먼저 고려한다는 것이다. 적그리스도에게 있어 지위와 명예는 그의 생명이자 평생 추구해야 할 목표이다. 그는 무슨 일을 하든 가장 먼저 이런 것을 고려한다. ‘내 지위는 어떻게 될까? 내 명예는 또 어떻게 될까? 내가 이 일을 하면 좋은 명성을 얻을 수 있을까? 사람들 마음속에서 내 지위가 올라갈 수 있을까?’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들인데, 이것으로 그에게 적그리스도의 성품과 본질이 있음이 충분히 증명된다. 그래서 그는 문제를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적그리스도에게 지위와 명예는 부가적인 요구 사항이 아니고,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신외지물(身外之物)은 더더욱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적그리스도의 본성과 뼛속, 핏속에 들어 있는 것으로, 선천적으로 갖고 있는 것이다. 그의 태도는 지위와 명예가 있어도 괜찮고 없어도 괜찮은 것이 아니다. 그럼 어떤 것이겠느냐? 명예와 지위는 그에게 있어 매일의 삶과 상태, 추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적그리스도에게 있어 지위와 명예는 그의 생명이다. 그가 어떻게 살아가든, 어떤 환경에서 생활하든, 어떤 직업에 종사하든, 추구하는 것과 목표가 무엇이든, 인생의 방향이 어디를 향하고 있든, 모두 높은 명예와 지위를 갖는 것을 중심에 놓는데, 이 최종 목적은 바뀌지 않는다. 이는 그가 영원히 내려놓지 못하는 것들이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진면목이자 그의 본질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9조(3)>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보고 명예와 지위에 대한 적그리스도의 집착은 일반인을 뛰어넘는데, 이는 적그리스도의 생명에 내재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적그리스도는 무슨 일을 하든 일단 자신의 명예, 지위와 남들의 존경과 숭배를 받을 수 있는지부터 고려합니다. 사람 마음속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싶어 하고, 사람을 지배하고 점령하고 싶어 하죠. 이는 적그리스도의 본질에 의해 결정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유난히 명예와 지위를 소중히 여기는 저를 반성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을 때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받고 사람들 마음속에 자리 잡기를 바랐던 저는 하나님을 믿고 난 후에도 예전처럼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받고 숭배받기를 바랐습니다. 예배를 진행하는 게 좋았고, 교제하는 게 좋았고, 형제자매에게서 높이 평가받는 게 좋았습니다. 누군가에게서 우러름 받는 느낌을 즐겼죠. 리더가 아닌 집사가 됐을 때는 명예와 지위를 잃은 것 같아 속으로 원망했고, 남들이 저를 우습게 볼까 봐 걱정했습니다. 다른 교회로 가서 복음을 전하게 됐을 때도 저를 증명해서 높은 평가를 받고 싶어 했고요. 제가 추구하는 바는 바울과 다를 게 없었습니다. 바울은 밖에서 강연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둘러싼 채 우러러보고 숭배하는 걸 좋아했죠. 바울은 사람들 마음속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싶어 했고, 종국에는 자신이 사는 것이 그리스도라는 말을 할 정도로 본성이 너무 교만했습니다. 제가 본분을 이행할 때도 어떻게 하면 형제자매에게 높이 평가받고 숭배받아 그들 마음속에 자리 잡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었으니 저는 정말 교만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었고, 본분 이행도 제 명예와 지위를 위해 한 것이지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기 위해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적그리스도의 길을 가고 있었으니 정말 위험한 상황이었던 겁니다! 제가 리더로 뽑히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보호였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드러나지 않았다면, 여전히 제 교만함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고, 제가 이미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도 몰랐을 겁니다! 그제야 겁이 났습니다. 제 잘못된 추구 때문에 죄책감과 함께 슬픔도 밀려왔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명예와 지위를 좇다가 잘못된 길로 들어서서 몹시 괴롭습니다. 말씀으로 저를 폭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시는 명예와 지위를 좇지 않고, 하나님의 모든 안배에 순종하겠습니다. 형제자매가 저를 어떻게 보든 저는 제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그 후에 이런 하나님 말씀을 봤습니다. 『피조물로서 마땅히 추구해야 할 것은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고, 선택의 여지 없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사랑받을 만한 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자 하는 사람은 개인의 이익과 소망을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가장 옳은 추구 방식이다. 네가 추구하는 것이 진리이고 실행하는 것이 진리이며 얻은 것이 성품의 변화라면, 너는 옳은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반면, 네가 추구하는 것이 육적인 복이고, 실행하는 것이 자신의 관념 속 진리이며, 성품에 어떤 변화도 없고 육신의 하나님께 전혀 순종하지 않은 채 여전히 막연한 상태에서 살고 있다면, 네가 추구하는 것은 반드시 너를 지옥으로 데려갈 것이다. 그것은 네가 실패의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다. 네가 온전케 될지, 도태될지는 너 자신의 추구에 달려 있다. 다시 말해, 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려 있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려 있다> 중에서) 이 말씀은 제게 큰 도움이 됐습니다. 저는 진리를 추구하고 생명 성품의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올바른 길이요,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는 것은 실패의 길임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계속 명예와 지위를 추구해 왔습니다. 새 신자를 양육할 때는 형제자매의 높은 평가와 칭찬을 추구했고, 리더가 된 후에는 저 자신을 대단하게 봤죠. 성품에 변화가 있기는커녕 점점 더 교만해졌습니다. 제가 계속 이렇게 추구하면 결국 하나님께 도태될 것이 분명했습니다. 바울처럼 말이죠. 바울은 복음을 전해 많은 사람을 얻었고, 그가 쓴 많은 서신도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종교계 사람들은 모두 그를 숭배하고 우러러봤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조금도 자신을 인식하지 못했고, 그의 패괴 성품은 변화하지 않았기에 결국 지옥에 떨어졌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진리 추구의 길을 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언젠가 후회하게 될 거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중에 체험 간증 영상을 보다가 이런 하나님 말씀을 봤습니다. 『모든 일에 충성을 다해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려면 한 가지 측면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하며, 하나님이 맡기는 모든 부탁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네 입맛에 맞거나 흥미를 갖는 것이든, 네가 싫어하는 것이든,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어려운 것이든, 너는 다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한다. 받아들이는 것은 물론,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배우고 체험하고 진입도 해야 한다. 고생하고 수고스럽고 모욕을 당하며 고립된다 할지라도 충성을 다해야 한다. 이렇게 실행할 수 있어야 모든 일에 충성을 다하게 되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다. 너는 그것을 자신의 사업이 아닌 본분으로 여겨 이행해야 한다. 본분을 어떻게 이해해야겠느냐?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이 한 사람에게 행하라고 맡긴 일이다. 사람의 본분은 바로 이렇게 생겨난 것이다. 하나님이 네게 맡긴 부탁, 그것이 바로 너의 본분이다. 네가 하나님의 요구대로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본분은 하나님이 맡긴 사명이니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받든 말든 제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살아야지 누군가의 숭배 대상이 되기 위해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했습니다. 전에는 본분을 대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지 못하고, 늘 취향에 따라 대했습니다. 본분을 대소경중으로 나눠 체면도 서고 사람들이 우러러볼 만한 것은 적극적, 자발적으로 임했고, 체면도 안 서고 사람들이 우러러보지도 않을 일은 받아들이길 꺼렸죠. 불평하며 소극적으로 맞서기까지 했고요. 이제는 따져 고르며 취향에 따라 본분을 대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체면이 서는 본분이든 체면이 서지 않는 본분이든 모두 교회의 사역입니다. 큰일, 작은 일, 중요한 일, 덜 중요한 일의 구분이 없죠. 하나님의 눈에 본분은 모두 같습니다. 교회는 우리의 특기에 따라 본분을 배정합니다. 본분을 이행하며 각자의 특기와 기능을 발휘하는 것이 교회 사역과 우리 각자의 진입에도 유리합니다. 저도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여 제 본분을 잘 이행해야 하는 거고요.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다시는 취향에 따라 본분을 대하지 않겠습니다. 체면이 안 서더라도 전심전력을 다해 제 본분을 이행하여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겠습니다.’

예배하는 날이었습니다. 저는 리더가 제게 그날의 예배 진행을 맡기길 바랐지만, 예배할 때 다른 자매가 진행하는 것을 봤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예전에는 내가 저 자매를 이끌었는데 이제는 저 자매가 내 팀장이 됐네. 그리고 예전엔 늘 내가 예배를 진행했는데 지금은 아냐. 더는 앞에 못 나서게 됐어. 형제자매가 날 우습게 보진 않을까?’ 저는 창피해서 그룹의 대화를 보고 싶지 않고 다른 그룹 예배에 참석하고 싶었습니다. 순간 제 마음가짐이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저는 바로 하나님께 제가 체면과 지위를 내려놓을 수 있게 인도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기도하고 나니 마음이 조금 평온해졌고, 체면이 서냐 마냐를 따질 것이 아니라 본분을 이행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마음도 괴롭지 않았죠. 나중에 형제자매에게 그간의 체험을 솔직히 털어놓으면서 하나님 말씀을 통해 자신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얘기했습니다. 그러니까 기분이 좋고 마음도 홀가분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여전히 평범한 복음 전파자입니다. 본분을 대소경중으로 나누지 않습니다. 더는 팀장이나 집사, 교회 리더가 아니더라도 계속 제 본분을 잘 이행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저를 변화시켜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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