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하지 못하면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없다

2025.4.14

미국 매리언(Marion)

저는 교회에서 새 신자 양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교회에 들어온 새 신자들 중 일부가 예배에서 별로 말을 안 하고, 예배에도 제대로 참석하지 않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고 싶으면 오고, 오기 싫으면 오지 않는 식이었습니다. 제가 따로 그들과 교제할 때면, 그들은 돈 버는 방법이나 부자가 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좋아하는 반면,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려고 하면 곧바로 핑계를 대며 전화를 끊어 버렸습니다. 저는 이 새 신자 몇 명이 진리에 대해 관심이 없고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같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신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저도 완전히 꿰뚫어 본 게 아니기에 좀 더 붙들어 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들은 여전히 달라지지 않았고, 차츰 예배에도 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제야 저는 이 몇몇 새 신자들의 상황을 리더에게 보고했습니다. 리더는 제게 물었습니다. “자매님은 이 새 신자들을 어떻게 양육하신 겁니까? 예전에 다른 형제자매들이 양육할 때엔 그들 모두 예배에 정상적으로 참석했는데, 왜 자매님이 맡으시고 나서는 이렇게 되었나요? 혹시 교제를 제대로 하지 않았거나 책임을 다하지 않은 건 아닌가요? 만약 우리가 본분을 건성으로 대충 이행하며 무책임하게 군 탓에 새 신자들이 제대로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게 된 거라면 그건 회피할 수 없는 우리의 책임입니다.” 저도 리더가 사역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임을 알았지만 마음속으로는 계속해서 따지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언제든 변할 수 있는 법이니 새 신자들이 예전에는 예배에 잘 참석했다고 해서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라는 보장은 없어. 더구나 이 몇몇 새 신자들은 내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예배에 제대로 참석하지 않았던 사람들이야. 갑자기 이렇게 된 것은 아니라는 거지. 단지 나는 시간을 좀 더 두고 양육해 보려는 생각에 당신에게 바로 알리지 않았을 뿐이야. 하지만 만약 새 신자들이 예배에 참석하지 않은 책임이 다 내게 돌아온다면 그 결과는 내가 감당해야겠지. 책망과 훈계를 받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어쩌면 교체될 수도 있을 거야.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이 새 신자들의 상황을 진작 보고해서 마지막에 이 책임을 온전히 떠안는 일을 피했을 텐데 말이야.’ 비록 상황을 파악한 리더가 제 책임을 추궁하진 않았지만, 그때 이후로 저는 새 신자와 만날 때면 알게 모르게 더욱 조심스러웠습니다. 어느새 신자에게 문제가 생기거나 예배에 참석하지 않은 것을 알게 되면 저는 곧장 리더에게 보고했습니다. 가끔 리더가 이런 걸 자신에게 알리는 이유가 무엇이냐며 이 새 신자를 양육할 생각이 없는 거냐고 물었을 때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닙니다. 리더로서 새 신자들의 상황을 파악해 두셔야 하잖아요.” 제 말을 들은 리더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가끔 제가 상황을 보고하면 리더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양육해 보다가 그래도 새 신자들이 정말로 예배에 참석하기 싫어한다면 강요할 수 없으니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전적으로 동의하며 생각했습니다. ‘이제 새 신자들이 어떤 상황인지 리더도 알게 되었으니 나는 그저 붙들어 주기만 하면 돼. 효과가 좋으면 좋은 거고, 만약 그렇지 못해 새 신자들이 예배에 참석하기 싫어한다 하더라도 리더도 갑작스럽다고 느끼지 않을 거야. 내가 본분 이행에 무책임하다고 하지도 않을 거고.’ 이렇게 생각하니 본분 이행에 그렇게까지 애를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매일 그저 매뉴얼대로만 새 신자를 양육할 뿐이었습니다. 새 신자들에게 전화를 걸 때도, 그들이 받으면 잠시 교제할 뿐 안 받으면 그냥 포기했습니다. 상대방이 전화를 받지 않는 걸 내가 어찌하겠느냐는 심정으로 새 신자들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한 예배에서 저는 리더가 앞으로 양육 사역을 파악할 때는 단순히 양육자가 새 신자들의 상황을 보고하는 것만 듣지 않고, 새 신자들에게 어느 방면의 진리를 교제했는지도 파악할 것이며, 구체적으로 어떻게 새 신자들을 붙들어 주었는지에 따라 양육자가 실질적인 사역을 했는지 하지 않았는지를 평가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만약 양육자가 성심껏 진리를 교제해 주지 않아 새 신자들이 예배에 제대로 참석하지 않거나 물러난다면 이것은 양육자의 책임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리더의 말을 들은 저는 속으로 따져 보기 시작했습니다. ‘새 신자들과 교제할 때마다 하나님의 어떤 말씀을 읽었고 어느 방면의 진리를 교제했는지 따로 적어 두지 않았어. 그럼 만약 어떤 새 신자가 예배에 참석하지 않게 되면 제시할 증거가 없는 거잖아. 그럼 리더가 내가 실질적인 사역을 하지 않고 새 신자 양육에 무책임하다고 여겨서 나를 책망하고 훈계하지 않을까?’ 그래서 저는 새 신자들에게 메시지와 하나님 말씀을 보내는 데 집중하기 시작했고, 매번 새 신자들에게 어떤 내용을 교제했는지도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제 메시지에 새 신자들이 답장을 하지 않아도 저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으며 ‘어쨌든 보내야 할 하나님 말씀은 다 보냈고, 교제해야 할 것도 다 교제했어. 예배에 참석하지 않는 새 신자가 있더라도 리더가 내 사역 기록들을 보면 무책임하다고 탓하지는 않을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제가 양육을 담당하는 새 신자 중 여전히 예배에 참석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리더가 저에게 어떻게 양육한 것인지 물었습니다. 저는 곧바로 사역 기록을 리더에게 보여 주고는 생각했습니다. ‘사전에 준비를 해 두고 이런 기록들을 남겨 놔서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아무 증거가 없었을 거야. 그럼 리더가 나를 뭐라고 나무랐을지도 몰라.’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리더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역 기록상으로는 별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몇몇 새 신자들이 계속해서 예배에 나오지 않아요. 분명 자매님의 사역에 문제가 있는 것일 텐데, 도대체 어떤 문제인지 지금은 간파하지 못하겠네요. 그런데 최근 자매님을 만날 때마다 늘 새 신자들의 문제를 보고해 오는 게 뭔가 이상하다고 여기긴 했어요. 자매님이 한번 잘 반성해 보시고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살펴보세요. 만약 새 신자들을 건성으로 대충 양육해서 이들이 물러나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거라면, 그건 저희가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것이고 무책임한 것입니다.” 리더의 말에 저는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순간 멍해졌습니다. 제 문제로 새 신자들이 물러난 것이라면 그건 제가 악을 저지른 것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오늘 리더가 갑자기 저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에는 당신의 허락이 있으신 것이니, 여기에는 분명 제가 배워야 할 공과가 있을 것입니다. 저도 제 문제로 인해 이 새 신자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너무 무감각하여 저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부디 하나님께서 제가 저 자신을 알고 제때 바로잡을 수 있도록 저를 깨우치시고 이끌어 주세요.’

그 이후로 며칠간 저는 항상 이 일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루는 체험 간증글을 보는데, 그 안에 있는 하나님 말씀 한 단락이 제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이 옳은 사람인지 아닌지 잘 살펴보아라. 네 속마음과 목적이 모두 나를 위한 것이냐? 네 말과 행동이 모두 내 앞에서 행해지고 있느냐? 나는 네 마음과 생각을 모두 감찰하고 있다. 너는 마음에 가책이 없느냐? 너는 다른 사람에게 가식적인 모습을 보이고 또 태연하게 잘난 척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데, 이는 스스로를 가리고 감싸는 것이다. 네 악을 가리고 감싸며, 심지어는 온갖 방법으로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려고 하니, 네 마음이 얼마나 간사한 것이냐!(<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그리스도의 최초의 말씀ㆍ제13편>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서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저지른 악을 감추고, 거짓말과 자신을 위장하는 등의 방법으로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함으로써 자신을 보전하려 하는데, 이것이 간사한 모습이라고 밝혔습니다. 저는 이 말씀이 바로 저의 내적 상태를 폭로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제가 왜 리더에게 새 신자들의 문제를 그렇게나 자주 보고했던 것인지 스스로 반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새 신자들에게 어떤 문제가 생기거나 그들이 예배에 참석하지 않은 것을 볼 때마다 저는 서둘러 리더에게 보고했습니다. 겉으로는 사실을 말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제 개인적인 속셈과 목적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리더가 새 신자들이 예배에 오지 않은 것을 보고 저에게 책임을 묻거나 심지어 저를 교체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에 미리 선수를 쳐서 새 신자들의 문제를 먼저 보고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리더가 이건 새 신자들의 잘못이지 제 책임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고, 붙들어 줘도 효과가 없는 새 신자들이 예배에 참석하지 않아도 그것 역시 새 신자들의 문제라고 여길 거라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제 책임을 완전히 회피하려고 했습니다. 반면 새 신자가 그 후에 예배에 참석하게 된다면, 그것은 제 공로인 것처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여기까지 반성한 저는 제 말 뒤에 이렇게 비열하고 추한 속셈이 숨겨져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저는 정말 너무나도 간사했습니다!

그 후 저는 어떻게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사람들을 속이고 기만하는 짓을 했는지 묵상해 보았습니다. 반성하는 과정에서 사람의 패괴 성품을 폭로한 하나님 말씀을 보고서야 비로소 자신에 대해 조금이나마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적그리스도의 사악함에는 확실한 특징이 있다. 분별할 수 있는 비결을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그것은 바로 그의 말이든, 행동이든 네가 그의 속내나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너와 대화할 때 이리저리 눈을 굴리지만 너는 그가 무슨 계략을 꾸미는지 알 수 없다. 그가 충성스럽고 무척 진지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네가 줄곧 그를 간파하지 못하면 네 마음속에 한 가지 생각이 들 것이다. 이 사람은 음침하고 헤아릴 수 없으니 참 이상한 사람이라는 생각 말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7조 사악함과 음험함, 그리고 간사함(2)> 중에서), 『적그리스도는 일 처리가 기이한데, 어떤 부분이 기이하겠느냐? 바로 그는 항상 수단을 써서 일을 처리하고, 말에 빈틈이 없어서 다른 사람이 그의 속셈과 목적을 추측하기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기이함이다. 그는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일을 하든 쉽게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자신의 부하나 청중이 자신의 뜻을 알아차리게 한다. 사람들은 그의 뜻을 이해한 후, 그의 의도와 동기에 따라 행동하고, 그의 명령을 집행한다. 결국에 일이 성사되면 그는 당연히 기뻐하지만, 성사되지 않더라도 아무도 그의 약점을 잡을 수 없고, 또 그의 일 처리 동기, 속셈,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를 전혀 꿰뚫어 볼 수 없다. 적그리스도는 일 처리를 기이하게 하며, 주로 내면에 음모와 은밀한 목적을 숨기고 있다. 이는 전적으로 모든 사람을 기만하고, 우롱하고, 통제하기 위함이다. 이것이 기이한 일 처리의 본질이다. 기이함, 이는 단순히 거짓말을 하거나 나쁜 짓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인이 짐작할 수 없는 더 큰 속셈과 목적이 있는 것이다. 만약 어떤 일을 했는데 다른 사람이 알게 하고 싶지 않아서 거짓말을 했다면, 이를 기이하다고 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이는 그저 간사함일 뿐, 기이함이라고 할 수 없다. 기이함은 간사함보다 어떤 점에서 깊이가 있겠느냐? (사람이 짐작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사람은 짐작하기 어렵다. 이것이 한 측면이다. 또 무엇이 있겠느냐? (사람들이 그의 약점을 잡을 수 없습니다.) 맞다. 주로 사람들이 그의 약점을 잡기 어렵다는 점이다. 설령 일부 사람이 그가 나쁜 짓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도 그가 대체 좋은 사람인지 아니면 나쁜 사람인지, 악인인지 아니면 적그리스도인지를 분별할 수 없다. 사람들은 그를 꿰뚫어 보지 못하면서도 그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그에게 미혹될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기이함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거짓말을 하거나 잔꾀를 쓰기 좋아한다. 이는 단지 간사함일 뿐이다. 하지만 적그리스도는 일반적인 간사한 사람보다 훨씬 음험하여, 마치 마왕처럼 아무도 그의 일 처리를 짐작할 수 없다. 그가 정의의 기치를 내걸고 수많은 악행을 저질러 사람을 해쳐도 사람은 여전히 그의 공적과 덕을 찬양한다. 이것을 기이함이라고 한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6조> 중에서) 하나님 말씀에서 적그리스도의 사악한 성품과 기이한 행동은 간사한 행동을 하는 패괴 표출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간사한 행동은 대놓고 거짓말을 하거나 사기를 치는 것이어서 다른 사람들이 비교적 쉽게 알아차릴 수 있지만, 기이한 행동은 개인적인 속셈, 목적, 의도를 깊이 숨기고 겉으로는 허상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보여 줌으로써 말이나 행동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뭔가 문제가 있다고 느껴도 아무 증거가 없으니 그 문제가 무엇인지 짐작이 안 됩니다. 이렇게 사람들을 속이고 떳떳하지 못한 목적을 달성합니다. 하나님 말씀에서 폭로한 내용에 비추어 저를 돌아보니, 겉으로는 새 신자들의 상황을 리더에게 바로바로 보고하며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리더에게 제가 본분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고 리더의 감독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듯한 허상을 보여 주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예배에 정상적으로 참석하지 않는 새 신자들에 대한 안 좋은 인상을 리더에게 미리 심어 놓으려는 의도로 그들의 문제를 보고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사전 작업을 해 두면 언젠가 새 신자들이 예배에 참석하지 않게 되더라도 리더가 저에게 책임을 추궁할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리더가 저의 사역 상황을 자세히 파악하려고 했을 때 겉으로 보기에는 제가 새 신자들과 교제한 내용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고, 제가 자발적으로 새 신자들과의 교제 시간을 정하며 그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보내 주었기 때문에 리더가 보기에 제가 새 신자들에게 무척 정성을 들이고 사랑을 베푸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저는 전혀 새 신자들을 진정성 있게 대하며 교제하지 않았습니다. 리더가 사역 기록을 확인하려고 하니 추후 보고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형식상 했던 것뿐입니다. 이런 모든 장면을 떠올려 보니, 저는 책임을 추궁당하지 않고 저의 지위와 앞날을 보전하기 위해 말로 남의 주의를 돌리고 빈틈없이 행동하며 이렇게나 많은 수작을 부렸던 것입니다. 사실상 제가 성심껏 본분을 이행하지 않아 새 신자들이 예배에 제대로 참석하지 않은 것인데 말입니다. 리더 역시 저의 본분에 문제가 있다고 느끼면서도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지 못하고, 저에게 책임을 추궁할 어떤 증거도 찾지 못했습니다. 저는 정말로 사람을 너무나도 잘 미혹했던 것입니다! 이전에 저는 저의 모든 행동을 기이한 행동과 연관 지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항상 처세에 능하고 노련하며 기이하게 행동하는 것은 주로 나이가 많고 경험이 많은 사람들에게 해당된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반면 저는 아직 젊고 경험도 별로 없으며 속내도 그렇게 복잡하지 않아서 기이한 행동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드러난 사실을 계기로 저에게도 적그리스도의 사악한 성품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예전에 있었던 또 다른 일화가 하나 떠올랐습니다. 질문이 많고 말도 아주 직설적인 새 신자가 있었는데, 제가 교제해 주었던 내용 중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으면 예배 도중 제 말을 대놓고 반박하곤 해서 정말 곤란했었습니다. 제 체면이 깎일까 봐 그녀와 예배드리는 것이 싫었지만, 리더에게 책망을 받을까 두려워 대놓고 말하지는 못했고, 대신 어떤 방법으로 이 새 신자의 양육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길지 고민했습니다. 한번은 이 새 신자가 지나가는 말로 지금의 예배팀은 예전 팀보다 사람이 적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는 바로 이를 핑계 삼아 리더에게 이 새 신자가 우리 예배팀의 인원이 적다고 불만을 표했다며 그녀는 사람이 많은 예배팀을 선호하니 다른 팀으로 배정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리더는 듣자마자 바로 그녀를 다른 팀으로 배정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성공적으로 이 새 신자를 다른 팀으로 떠넘겼고, 심지어 리더는 제가 본분에 부담을 느끼고 새 신자를 배려해 준 것이라고 착각했습니다. 저는 정말 간사하고 사악하며 사람을 속이는 데 너무 능숙했습니다!

그 후 저는 자신의 내적 상태에 관한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셨습니다.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하나님이 가장 증오하고 포기하려는 자는 바로 이런 강퍅한 사람이다. 자기가 잘못했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반성하지 않고, 뉘우치기는커녕 죽어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심지어 핑계와 이유를 대면서 자신을 위해 변명하고 궤변을 늘어놓으며, 이렇듯 더 교활한 방식으로 남들의 이목을 속이려고 한다. 그 결과, 한 번 틀리면 계속 틀리며, 회개하고 잘못을 인정하려는 마음을 전혀 갖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매우 골치 아픈 자로, 구원받기 어렵다. 바로 하나님이 포기하려는 대상인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을 믿으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고 체험하는 것이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고 나서야 어떤 일이 닥치든 가장 중요한 것은 진리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본분을 이행하면서 분명 잘못을 했는데도 인정하지 않고, 책망과 훈계가 닥쳤는데도 받아들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핑계를 찾아 변명하며 자신의 잘못을 감추기 위한 수단까지 쓴다면, 이런 사람은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에게 반감을 보이시고 혐오하십니다. 생각해 보면 교회에서 저에게 새 신자 양육을 안배했을 때, 저는 사랑과 인내로 새 신자들을 붙들어 주며 도와주어야 했고, 그들이 이상(異象) 방면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도록 교제해 주며 최대한 빨리 그들이 참도(道)에 뿌리를 내리게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몇몇 새 신자들이 예배에 제대로 참석하지 않는 것에 대해 분명 저에겐 회피해서는 안 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리더가 물어보거나 책망했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되도록 새 신자를 붙들어 줄 방법을 생각해 보라는 리더의 지적과 조언도 무시했습니다. 도리어 잔꾀를 부리고 더 교활하고 기이한 방법으로 제가 본분을 잘 이행하지 못한 사실을 감추었으며, 리더가 제 본분 이행에 존재하는 문제와 편차를 파악하지 못하도록 속였습니다. 제 간교한 계획이 성공했을 때 저는 스스로 똑똑하다 여기며 남몰래 기뻐하고 뿌듯해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 말씀을 보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저의 보잘것없는 꿍꿍이와 잔머리를 속속들이 감찰하고 계시므로, 하나님 앞에서 저는 아무것도 숨길 수 없습니다. 본분 이행에 존재하는 문제는 언젠가 모두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번에 리더가 저를 일깨워 주지 않았더라면 저는 여전히 반성할 줄 모르고 회개하는 마음도 가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정말 너무나도 무감각했습니다! 저는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사역 중의 잘못이나 편차를 정리해 보거나 바로잡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의 체면과 지위를 지키기 위해 리더를 어떻게 속일지에만 온 신경을 쏟았고, 교활하고 기이한 방식으로 제가 본분 이행에 충실하지 않았던 사실을 감추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정작 새 신자들의 양육에는 마음을 쓰지 않고 그들의 문제와 어려움을 해결해 주지도 않았습니다. 그 결과 몇몇 새 신자들의 문제는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일부 새 신자들은 제대로 예배에 참석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떠넘겨 다른 팀으로 간 새 신자가 갑자기 양육하는 사람이 바뀌자 어색함을 못 이겨 예배 참석을 꺼리게 됐다는 사실은 저를 더욱 두렵게 했습니다. 다행히 형제자매들이 오랜 시간 인내하며 교제해 준 덕분에 그녀는 다시 예배에 참석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했던 모든 행동을 돌이켜 보니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새 신자들이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이를 위해 많은 심혈을 쏟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그 일을 그렇게 가볍게 여겼으니, 저는 정말 악을 행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리더가 저를 일깨워 주거나 책망하지 않았더라면 저는 지금껏 제가 위험한 경계에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했을 겁니다. 저는 더 이상 적그리스도의 사악한 성품으로 살아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제가 걸어온 악의 길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회개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이제 막 조금이나마 깨달았을 때, 리더가 저에게 요즘 내적 상태는 어떤지 물었습니다. 저는 스스로 반성하고 깨달은 내용을 모두 리더에게 말했습니다. 리더는 저에게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정직한 사람이 되기를 실행하는 것은 많은 방면과 관계가 있다. 즉,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은 어느 한 방면에서 정직한 사람이 되는 기준에 이르면 되는 것이 아니라, 많은 방면에서 기준에 이르러야 정직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거짓말만 하지 않으면 정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관점은 옳으냐?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이 단순히 거짓말을 안 하는 것과 관계되느냐? 아니다. 이는 다른 여러 방면과도 관계가 있다. 우선, 어떤 일을 대하든, 그것이 네가 실제로 본 것이든 아니면 다른 사람이 알려 준 것이든, 다른 사람들과 같이 지내는 것이든 아니면 문제를 처리하는 것이든, 네가 이행해야 할 본분이든 아니면 하나님이 네게 직접 맡긴 일이든 모두 정직한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 정직한 마음으로 대하려면 어떻게 실행해야겠느냐? 마음속으로 생각한 것을 솔직하게 말하되, 빈말이나 상투적인 말이나 듣기 좋은 말, 아첨하는 말, 위선적인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마음속의 말을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마음속의 진짜 생각과 관점을 표현하는 것, 이것이 바로 정직한 사람이 해야 할 일이다. 마음속으로 생각한 것을 영원히 말하지 않고 속으로 삭이며, 입으로 말하는 것과 마음속으로 생각한 것이 언제나 일치하지 않는다면, 이는 정직한 사람의 모습이 아니다. 예를 들어, 네가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을 때, 누군가 너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어봤다고 하자. 너는 “저도 본분을 잘 이행하고 싶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그러지 못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사실 속으로는 네가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했으며 마음을 쓰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다. 너는 여러 가지 원인과 이유, 핑계를 대며 사실의 진상을 숨기고 책임을 회피했다. 이것이 정직한 사람의 모습이겠느냐? (아닙니다.) 네가 이렇게 말하면 어물쩍 넘어갈 수 있겠지만, 네 내면의 속셈과 내면에 있는 것의 본질은 패괴 성품이다. 그것을 꺼내서 분석하고 솔직히 털어놓을 수 없다면 정결케 될 수 없다. 이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너는 이렇게 사실대로 말해야 한다. “그동안 제가 본분을 이행함에 있어서 꾸물거리며 마음 쓰지 않고 건성으로 대충 했습니다. 기분이 좋을 때는 대가를 치를 수 있지만, 기분이 안 좋을 때는 해이해져서 대가를 치르지 않으려 하고 육적인 안일을 탐했습니다. 그래서 본본 이행에 아무런 효과가 없었습니다. 최근에 이를 바로잡아 최선을 다해 효율을 높이고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마음속 말이다. 앞에서 말한 것은 마음속 말이 아니라, 책망받거나 문제가 들켜서 책임을 추궁당할까 봐 두려워 갖가지 원인과 이유, 핑계를 대며 사실의 진상을 감춘 것이다. 먼저 사람의 입을 막은 뒤 책망을 피하기 위해 책임을 떠넘긴 것이다. 이것이 바로 거짓말이 생겨난 근원이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말을 하든 그중에 솔직한 말과 실제 상황도 있겠지만, 일부 핵심적인 말에는 거짓과 속셈이 섞여 있다. 그래서 어떤 말이 진실이고 어떤 말이 거짓인지 분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말에는 불순물과 과장이 섞여 있고, 어떤 말은 사실에 부합하며, 어떤 말은 사실에 위배된다. 거짓과 진실을 함께 사용해 진위를 판단하기가 어렵다. 이런 사람이 가장 간사하고, 분별하기 가장 어렵다. 진리를 받아들이고 정직한 사람이 되기를 실행할 수 없는 사람은 틀림없이 도태될 대상이다. 사람이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하겠느냐? 어떤 것이 정직한 사람의 실행 방식이겠느냐? 너희는 사실대로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활짝 열고 솔직히 털어놓으며 자신의 실제 내적 상태와 실제 문제를 교제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정직한 사람의 실행 방식이며, 이렇게 실행해야 옳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다 읽고 나자 마음속 울림이 느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우리를 잘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본분을 이행하는 데 문제나 편차가 발생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것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입니다.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이후에 고치는지, 아니면 자신을 변명하고 문제를 감추기 위해 속임수를 쓰는지 말입니다. 예전의 저는 사탄 성품으로 살았습니다. 간사한 짓을 하고 일부러 속임수를 쓰며 잘못된 길을 걸어왔습니다. 더 이상 잘못된 길을 계속 갈 수 없었습니다. 저는 정직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들이고 싶었습니다. 본분을 이행하면서 편차나 문제가 발생하든, 리더가 제 사역 상황에 대해 물어보든 모두 진솔하게 마주하고, 정직한 마음으로 대하고, 사실대로 말하고 마음속 생각을 솔직히 말하고 싶었습니다. 뭐든지 있는 그대로 제가 하지 않은 것은 안 한 것이라고 하며 거짓말을 하지 않고, 자신을 위해 변명하지 않고 싶었습니다. 입으로 진실을 말하는 것 외에도, 항상 자신이 하는 말과 행동의 속셈을 되돌아보는 훈련을 하며 잘못된 속셈이 있으면 제때 고치고, 개인의 이익 때문에 교활한 수단을 쓰며 사람을 속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저는 한 새 신자가 몇 차례 연속으로 예배에 참석하지 않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 번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고, 메시지에도 답이 없었습니다. 그가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없었던 저는 이후에 예배에 아예 나오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새 신자가 나중에 예배에 참석하지 않게 되었을 때 리더가 저에게 책임을 묻지 않도록 리더에게 미리 상황을 보고해 놔야 할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이런 생각이 문득 드는 찰나, 제가 다시 예전처럼 수작을 부리려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습니다. 이때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너는 자신의 명예와 체면, 지위를 지키기 위해 어떤 수단을 쓰거나 자신이 잘못한 일을 감추거나 꾸밀 필요가 없다. 이러한 쓸데없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이런 것을 내려놓는다면 너는 아주 홀가분하게, 속박도 고통도 없이 온전히 빛 속에서 살 수 있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폐부와 심장을 감찰하십니다. 설령 제가 기이한 수단으로 사람을 속인다 해도 이 모든 것을 속속들이 감찰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결국 모든 것을 드러내십니다. 제가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하나님을 만족게 하기 위함이지 어떤 사람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니, 사람 앞에서 수작을 부려 자신을 감출 필요가 없습니다. 생각해 보면, 처음에 몇몇 새 신자들은 아무리 제가 열심히 붙들어 줘도 예배에 참석하지 않았고 신앙과 진리에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새 신자들의 상황을 파악한 리더는 이들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저에게 책임을 추궁하지 않았습니다. 이를 통해 교회에서 사람을 대하는 데 원칙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수작을 부려 책임을 회피하거나 자신이 빠져나갈 구멍을 위해 무언가를 꾀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예전에 저는 사탄 성품으로 살았고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건성으로 대충 하지 않고 마음가짐을 바로잡아 제 책임을 다하고 싶을 뿐입니다. 저는 하나님께 묵묵히 기도드렸습니다. 저는 변화되어 새 신자들을 최대한 붙들어 주고 돕기를 원하며, 만약 제가 교제해야 하는 진리를 다 교제했음에도 새 신자가 예배에 참석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저는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사실 그대로 리더에게 상황을 보고하겠다고 했습니다. 저의 마음가짐에 변화가 생긴 후 다시 그 새 신자에게 연락을 했을 때, 뜻밖에도 금방 답장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요즘 일 때문에 바쁘고 힘든 탓에 예배에 참석하지 못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그에게 교제해 주었고, 하나님 말씀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실행의 길을 찾은 그는 이후 예배에 잘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때 이후로 예배에 제대로 참석하지 않는 새 신자들을 만날 때면 저는 최선을 다해 붙들어 주며 도와주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교제해 주며 진솔한 마음으로 붙들어 주었습니다. 이후로 새 신자 대부분이 제대로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실행하니 제 마음이 너무 편안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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