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을 통해 얻게 된 복
중국 샤오란 2014년에 공산당이 맥도날드 살인 사건으로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를 모함하고 형제자매를 마구 잡아들였죠. 우리 동네서도 많은 리더가 잡혀갔고 어떤 새 신자들은 두려워 소극적이 됐었죠. 그런 상황에서 제가 여러 지교회 사역을 맡게 된...
2009년, 친척이 저에게 하나님나라 복음을 전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세에 진리를 선포해 사람의 패괴를 정결케 하고, 인류를 죄악에서 구원하여 고통스러운 삶에서 벗어나게 하시며, 마지막에는 아름다운 종착지로 인도하시면 더 이상 슬프고 고통스럽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생각했습니다. ‘이게 바로 내가 바라던 삶이잖아!’ 저는 기쁘게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고, 얼마 안 가 교회에서 본분을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몇 년간 가족들도 평안하고, 생활도 순탄했습니다. 저는 늘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의욕적으로 모든 것을 버리고 헌신했습니다.
2019년 가을, 어느 날 오후에 큰딸이 파출소에서 온 전화를 받았습니다. 남편이 도급맡은 공사장에서 사고가 나서 인부 한 명이 작업 도중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고, 남편은 유치장에 구류되어 처분을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어쩌다 이런 일이? 얼마를 배상해야 할까? 우리 집은 원래 돈도 없어서 배상할 능력이 전혀 안 되는데. 남편까지 잡혀가면 우리 집은 끝나는 거 아닌가?’ 저는 뭐라 말할 수 없는 심정이었습니다. 딸은 “엄마는 하나님 믿잖아요. 그런데 왜 집에 이런 일이 생겨요?”라며 원망했습니다. 고향 친척들도 이 소식을 듣고는 “어쩌다 재수 없게 그런 일을 당했대! 몇 년간 번 돈 다 날리는 거 아니야?” 하며 원망하기도 하고, “배상금이 얼마나 나올지 모르겠네!” 하며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다들 이러쿵저러쿵 떠들었지만, 돈을 마련할 방법을 함께 고민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오히려 비아냥거렸습니다. 그런 말을 들으니 가슴이 시렸습니다. 게다가 사망자 유가족이 찾아와 소란을 피울까 걱정되어 며칠 동안 불안에 떨며 먹지도 자지도 못했습니다. 배상금 문제를 생각할 때마다 한숨이 나왔습니다. ’남편이 지난 몇 년간 밤낮으로 번 돈은 빚 갚고 기계랑 공구 사는 데 다 써서 집에 남은 돈이 없는데 수십만 위안을 어떻게 마련하지?’ 저는 이 어려움을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 거액의 배상금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친척이나 친구는 아무도 의지가 안 됩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 손에 맡기오니, 이 난관을 헤쳐나가도록 도와주세요.” 두세 달 뒤 법원의 조정 끝에 상대측은 28만 위안을 요구했습니다. 변호사는 배상금을 지불하고 상대측이 합의서를 써 주면 남편이 징역을 살지 않아도 되지만, 배상하지 못하면 형을 선고받을 거라고 했습니다. 28만 위안은 저에게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숫자였습니다! 여자인 제가 어디서 그렇게 큰돈을 구한단 말입니까? 하지만 배상하지 못하면 남편이 징역을 살아야 했기에, 저는 사방으로 돈을 구하러 친척들을 찾아다녔습니다. 하지만 친척들은 다들 온갖 핑계를 대며 거절했습니다. 친척들의 냉담함에 너무나 처량하고 절망적인 기분이었습니다. 근심스러운 나머지 눈물만 났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이 어려움을 헤쳐나가게 도와주시길 바라며 몇 번이고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지만 배상 기한이 다가오는데도 그 많은 돈을 도저히 마련할 수 없자, 저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원망이 터져 나왔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잘만 살던데, 나는 하나님을 믿으며 가정도 일도 버리고, 남편과 남동생이 믿지 못하게 막아도 꿋꿋이 본분을 이행했어. 또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었는데, 왜 하나님은 날 지켜 주시지 않고 이렇게 큰 재앙을 만나게 하시는 걸까?’ 생각할수록 억울한 마음에 하나님께 울부짖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지난 몇 년간 계속 본분을 이행했는데 어째서 저를 지켜 주시지 않습니까? 이렇게 큰일이 태산처럼 저를 짓눌러서 숨이 막히고,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어떡해야 합니까?” 원망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건 알았지만, 정말 막다른 길에 몰리니 순종할 수가 없었습니다. 며칠간 저는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온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볼 마음도 생기지 않았고, 마음이 하나님과 멀어진 느낌이었습니다. 결국 집에서 도저히 배상금을 마련하지 못해 남편은 1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런 결과를 마주하니 마음이 너무나 괴로웠습니다. ‘남편이 감옥에 가면 집안에 돈 버는 사람이 없는데, 앞으로 생활은 어떻게 해야 하나?’ 눈앞의 어려움 앞에서 누구도 의지해선 안 되고 오직 자신에게만 의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고민 끝에 풀타임으로 본분을 이행할 수는 없고 매일 반나절은 나가서 일을 하기로 했습니다.
교회 책임자가 제 상황을 알고 교제하며 도와주었고, 집에 이런 일이 생겼으니 하나님의 뜻을 찾고 공과를 배워야 한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영 생활을 하던 중,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욥이 말한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라는 말은 이미 그가 어째서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었는지 그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 안에 구할 진리가 있다. 그의 입에서 나온 이 말에 불평이 담겨 있느냐? 원망이 담겨 있느냐? (담겨 있지 않습니다.) 이 말 속에 애매한 뜻이 있느냐? 부정적인 뜻이 있느냐? (없습니다.) 분명히 없다. 욥은 마지막까지 체험한 후에 창조주가 사람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 사람이 선택할 수 없음을 알았다. 이 말이 조금 서운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사실이 그렇다. 사람 일생의 운명은 하나님이 이미 다 안배해 놓았다. 네가 받아들이든 않든 그것은 사실이다. 너는 네 운명을 바꿀 수 없다. 하나님은 창조주이므로 너는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해야 한다. 그가 어떻게 하든 모두 옳다. 그는 진리이자 만물의 주재자이기 때문에 사람은 하나님에게 순종해야 한다. 이 만물에는 너도 포함되고, 모든 피조물도 다 포함된다. 그러니 네가 항상 반항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누구의 잘못이겠느냐? (사람 자신의 잘못입니다.)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다. 네가 항상 이유를 찾고 트집을 잡고 싶어 한다면 그것이 옳은 것이냐? 네가 항상 하나님에게 복을 받고 혜택을 얻고 싶어 한다면 그것이 옳은 것이냐? 그것은 모두 옳지 않다. 이런 관점들은 하나님을 잘못 인식하고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하나님을 믿는 관점이 옳지 않기 때문에 무슨 일이 닥치든 너는 하나님에게 반발하고 하나님과 겨루고 대항할 것이 뻔하다. 그러면서 너는 항상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것은 옳지 않아. 이렇게 하시는 것을 나는 이해할 수가 없어. 그렇게 하시면 다들 항의할 거야. 그렇게 하시면 하나님답지 않으셔!’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다운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 그는 언제나 하나님이다. 만약 네게 이런 이성과 인식이 없고 매일 직면하는 일에 대해 항상 연구하고 넘겨짚어 판단하면 결국 너는 사사건건 하나님과 겨루고 하나님에게 대항하게 될 것이고, 이런 내적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네가 만약 이런 인식을 가지고 피조물의 위치에 제대로 서서 일이 닥쳤을 때 이런 측면의 진리와 대조하고 그 진리를 실행하고 진입한다면, 네 내면에서 차츰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생겨나서 너도 모르는 사이에 ‘알고 보니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 옳은 일이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모두 좋은 일이야. 사람은 연구하고 분석할 필요가 없어. 자신을 하나님의 지배에 맡겨야 해!’라고 느끼게 될 것이다. 자신이 하나님께 순종할 수 없고 하나님의 지배를 받아들일 수 없을 때는 속으로 가책을 느끼며 ‘나는 제대로 된 피조물이 되지 못했어. 어째서 순종하지 못할까? 이건 창조주를 상심하게 하는 거잖아?’라고 생각할 것이다. 네가 제대로 된 피조물이 되려고 할수록 이 측면의 진리를 더 잘 깨닫고 명백히 알게 될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이 하나님을 대할 때 갖춰야 할 태도> 중에서) 이전에는 욥의 체험을 자주 보았지만 그저 하나의 이야기로만 여겼습니다. 오늘 욥이 그토록 큰 시련 속에서도 입술로 범죄하지 않았던 것을 다시 곱씹어 보며 그의 순종에 마음속으로 감탄했습니다. 욥은 산을 가득 메운 소와 양을 잃고, 막대한 재산과 자녀들을 잃었으며, 자신은 온몸에 악창이 났지만,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므로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든 사람은 마땅히 순종해야 하며, 이것이 피조물이 가져야 할 이성임을 알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고 기뻐하고, 거두어 가신다고 원망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위치에 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욥은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뇨?”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다 좋다고 여겼고, 비록 이해하지 못해도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욥이 겪은 시련에 비하면 제가 겪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조금도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날마다 ’하나님은 일체를 주재하고 장관하시니,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해야 한다’고 외쳤지만, 막상 남편에게 사고가 닥치자 순종하지 못하고, 오히려 눈앞의 어려움을 해결해 달라고 거듭 하나님께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요구를 들어주시지 않자, 어째서 제게 이런 일이 닥치게 하시느냐며 따지기까지 했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괴롭히고, 사람의 뜻에 맞지 않게 일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본분을 내려놓고 제 살길을 찾으려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하나님의 주재를 전혀 알지 못했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생각해보니 하나님을 믿기 전에도 집안에는 순탄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때로는 순탄한 환경을 겪다가도 천재지변이나 인재를 만나기도 합니다. 사실 사람의 일생 운명이 어떠하며, 얼마나 많은 고난과 좌절을 겪을지는 모두 하나님께서 일찍이 정해 놓으신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믿지 않는 사람보다 더 잘 지내야 하고 재앙을 만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것이야말로 치우치게 이해한 것이고 하나님의 주재를 알지 못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우리의 필요를 가장 잘 아시고, 우리에게 알맞은 환경을 마련하여 체험하게 하십니다. 저마다 언제 어떤 일을 겪을지는 모두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달려 있습니다. 비록 겉으로 보기에 사람의 관념에 맞지 않더라도, 분명 우리의 생명에는 유익이 있을 것이니, 마땅히 순종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의 그 많은 은혜와 축복을 누리고 하나님 말씀의 양육과 공급을 누렸으면서도 전혀 감사할 줄 몰랐습니다. 제 뜻에 맞지 않는 일이 닥치자 하나님께 큰 원망을 쏟아냈으니, 너무나 비인간적이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깊이 후회하며 하나님께 회개 기도를 드리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기로 했습니다.
그 후 저는 왜 제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생기면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는지 스스로 반성했습니다. 그러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너는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어려움과 환난, 고통이 조금도 없기를 바란다. 너는 늘 이런 가치 없는 것들만 추구하고, 정작 생명은 한 푼의 가치도 없다고 여기며 자신의 사치스러운 생각을 진리보다 앞자리에 놓는다. 너는 너무도 무가치한 사람이다! 네가 돼지처럼 산다면 개돼지 따위와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육적인 것을 좋아하는 자는 모두 짐승 아니겠느냐? 영이 없는 죽은 자는 모두 걸어 다니는 송장 아니겠느냐? 내가 너희 가운데서 얼마나 많이 말했더냐? 내가 너희 가운데서 행한 사역이 적더냐? 너희 가운데서 너희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공급했느냐? 그런데 너는 어째서 얻지 못했느냐? 또 무슨 불평이 있단 말이냐? 네가 얻지 못한 것은 육을 너무 귀하게 여긴 탓이 아니더냐? 네 생각이 너무 사치스러운 탓이 아니더냐? 네가 너무 어리석은 탓이 아니더냐? 너는 이 복을 얻지 못한다면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지 않았다고 원망할 수 있겠느냐? 너는 하나님을 믿은 뒤 평안만 얻고자 한다. 자식에게 병이 없고, 남편에게 좋은 직업이 있고, 아들이 좋은 배우자를 찾고, 딸이 좋은 남자와 결혼하고, 너의 우마가 밭갈이를 잘하고, 한 해의 농사가 잘되길 바란다. 네가 추구하는 것들은 이런 것들이다. 너는 오직 편안하게 살기만을 바라고, 너의 집에 나쁜 일이 생기지 않길 바라며, 바람이 불어도 네 몸에는 불지 않고, 모래가 날려도 네 얼굴은 때리지 않으며, 홍수가 나도 네 집의 곡식은 잠기지 않고, 모든 재난이 너와 무관하길 바란다. ‘하나님의 품속’에서 살고 안락한 보금자리에서 생활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너처럼 육적인 것만 추구하는 못난 놈에게 마음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느냐? 영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느냐? 너는 짐승 아니겠느냐? 아무 대가도 없이 참도를 네게 베풀어 주었는데 너는 추구하지 않는다. 너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맞느냐? 진정한 인생을 베풀어 주었는데 추구하지 않는다. 그럼 너는 개돼지 따위가 아니겠느냐? 돼지는 인생을 추구하지 않고 깨끗함을 바라지도 않으며 인생이 무엇인지 모른 채 날마다 배불리 먹고 쿨쿨 잠만 잔다. 참도를 베풀어 주었건만 너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그런 돼지 같은 삶을 계속하고 싶으냐? 그런 사람이라면 살아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비루하고 저속하며, 더럽고 음란하게 살면서 추구하는 목표가 하나도 없으니 너의 일생은 가장 비천한 일생 아니겠느냐? 무슨 낯으로 하나님을 뵙겠느냐? 계속 그렇게 체험한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것 아니겠느냐? 네게 참도를 베풀어 주었지만 결과적으로 네가 얻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너 자신의 추구에 달려 있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베드로의 체험 ―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목상하니 무척 마음이 찔렸습니다. 제가 바로 하나님께서 폭로하신, 무턱대고 육적인 평안만 추구하는 마음도 영도 없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처음에 제가 하나님을 믿은 것은 집안에 늘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생겨 의지할 곳을 찾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시고 평안과 축복을 주신다는 말을 듣고는, 하나님을 위대한 구세주로 여기며 제가 열심히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축복으로 집안이 평안하고 무탈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남편이 공사를 도급받아 집안 형편이 좀 나아졌을 때는 연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더욱 적극적으로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하지만 남편이 맡은 공사장에서 사고가 나고 배상금을 물어줄 수 없게 되어 남편이 징역을 선고받자, 저는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지 않는다고 원망하며 하나님 말씀도 먹고 마시지 않으려 하고, 기도도 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도 의지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제 살길을 찾아 돈을 벌러 나가려고 했습니다. 생각해보니, 하나님께서는 말세에 성육신으로 오셔서 사람에게 풍부한 진리를 베푸시고, 사람이 하나님 사역을 체험하며 진리를 추구하여 성품이 변화되게 하시며, 마지막에는 구원받아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이는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크나큰 사랑이자 구원입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올바른 추구 목표 없이 그저 육적인 편안함만 즐기려 했고, ‘한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 온 가족이 복을 받는다’는 망상까지 품었습니다. 이는 종교인들이 하나님 믿는 관점과 마찬가지 아닙니까? 말세에 하나님께서 하시는 사역은 심판과 형벌의 사역으로, 진리를 선포하여 사람의 패괴 성품을 정결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고 얻어서 의미 있는 인생을 살기 바라십니다. 그러나 저는 한결같이 은혜와 축복만 구하고, 짐승처럼 육적인 편안함만 추구했으니, 이는 가장 못나고 천한 인생입니다. 이렇게 추구하다가는 결국 진리도 얻지 못하고 성품도 변화되지 못해 아무것도 얻지 못한 빈손이 되지 않겠습니까? 결국에는 하나님께 도태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제가 얼마나 어리석고 무지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그 후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적그리스도가 본분을 대하는 주된 속셈과 태도는 바로 본분 이행의 기회를 이용해 하나님과 거래를 하고, 자신이 원하는 이익을 얻는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사람이 가정을 버리고, 세상에서의 앞날을 포기한 채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하는데 당연히 뭔가 얻고 받는 게 있어야지. 그래야 공평하고 합리적인 거야. 만약 본분을 이행했는데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면, 진리를 좀 얻었다고 할지라도 수지가 맞지 않아. 성품 변화를 이뤘다고 하더라도 그다지 실속은 없고. 구원받는다고 하지만, 누가 확인할 수 있겠어!’ 이런 불신파들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모든 요구를 본체만체하고 인정하지도 믿지도 않으며, 부정하는 태도를 취한다. 본분을 대하는 적그리스도 부류의 태도와 속셈을 볼 때, 그들은 분명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불신파, 투기꾼이며, 사탄에 속하는 존재이다. 너희는 사탄이 충성을 다해 본분을 이행한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느냐? (없습니다.) 만약 사탄이 하나님 앞에서 ‘본분’을 다한다면, 그 본분에는 따옴표가 붙어 있을 것이다. 수동적으로 어쩔 수 없이 한 것이고, 하나님에게 배치되고 이용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그리스도 부류는 적그리스도 본질이 있고 진리를 좋아하지 않으며 싫어하기 때문에, 더욱이 사악한 본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피조물의 본분을 무상으로, 무조건 이행하지 않고, 또 본분을 이행하면서 진리를 추구할 수도 얻을 수도 없으며, 하나님 말씀의 요구대로 행동하지도 않는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9조(7)> 중에서) 하나님께서는 적그리스도의 본성이 이기적이고 비열하며, 진리를 싫어하고, 본분을 이행하는 것 역시 하나님과 거래하는 것이라고 폭로하셨습니다. 그들은 본분을 이행하며 모든 것을 버리고 헌신하는 대가를 치렀으니 하나님께서 마땅히 사람의 요구대로 은혜와 복을 주셔야 공평하고 합리적이며,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공의롭지 않다고 여깁니다. 저 역시 적그리스도와 똑같이 본성 본질이 추하고 사악했습니다. 제가 지난 몇 년간 남편의 방해와 친척들의 비웃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이 본분을 이행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더 큰 복을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본분을 이행하면 하나님께서 제 삶을 걱정 없이 평안하고 순탄하게 축복하고 지켜 주실 것이라고 믿어 왔습니다. 예기치 않게 남편의 공사장에서 사고가 나고, 집에서 배상금을 마련하지 못해 남편이 징역형을 받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이를 감당하기가 어려워 제가 버리고 헌신한 것을 빌미로 하나님께 따지며, 왜 저를 지켜 주시지 않는지, 왜 이런 큰 재앙을 만나게 하셨는지 따져 물었습니다. 저는 바로 “이익이 없이 움직이지 않는다.”, “아주 작은 이익이라도 반드시 얻어낸다.”, “스스로를 위하지 않는 자는 천벌을 받는다.”와 같은 사탄의 생존 법칙에 따라 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와 어울리든 대가를 치렀으면 반드시 보답이 있어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후에도 당연히 하나님과 거래하며 하나님을 위해 고생하고 헌신했으니 축복받는 것이 당연하고,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공의롭지 않은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본분을 이행함에 있어 거래나 요구가 없습니다. 마치 노아가 모든 것을 바쳐 방주를 지을 때와 같습니다. 노아는 오직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하기 위해 120년을 매일같이 고생하고 대가를 치렀고, 개인의 이익과 손해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을 이용하여 복을 얻으려는 목적을 이루려 했으니,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만하고 이용하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저의 본성은 적그리스도처럼 사악하고 간사했으며, 저는 바로 하나님께서 폭로하신 불신파이자 기회주의자였습니다. 저의 행동이 너무나 패역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너무나 아프게 했다는 것을 깨닫고, 저는 마음속으로 후회하고 자책하며 다시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너무나 비인간적이고 이성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한 것이 전부 당신과 거래하고 당신을 기만한 것이었으니, 당신을 너무나 실망시켜 드렸습니다. 회개하오니, 당신께서 마련하신 환경에 순종하며, 더는 당신을 거역하지 않고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겠습니다.”
그 후,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복받기를 추구 목표로 삼은 것은 무엇이 잘못되었겠느냐? 이는 진리를 완전히 위배한 것이고,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다. 복받는 것이 정당한 추구 목표가 아니라면 정당한 추구 목표는 무엇이어야 하겠느냐? 진리를 추구하고, 성품 변화를 추구하여 하나님의 모든 배치와 안배에 순종하는 것, 이것이 사람이 갖추어야 할 추구 목표이다. … 복받으려는 욕망을 내려놓고 진리 추구의 길을 걸으면 한결 홀가분해지는데 소극적인 상태에 빠질 리 있겠느냐? 설령 가끔 소극적인 상태에 빠진다고 할지라도 그 일에 속박받지는 않을 것이며,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기도하고 싸우면서 네 목표를 복받는 것과 종착지를 추구하는 것에서 진리 추구로 바꿀 것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진리 추구는 피조물의 본분이야. 오늘 나는 진리를 어느 정도 깨달았으니 가장 큰 수확을 얻은 거야. 이건 무엇보다 큰 복이야. 하나님께서 나를 원치 않으신다고 해도, 좋은 종착지가 없고 복받을 희망이 사라진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거야. 이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니까. 무슨 이유든 내가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고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하는 데 지장을 줄 수는 없어. 이건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내 원칙이라고.’ 이러면 육의 속박에서 벗어난 것 아니겠느냐?』(<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실행해야 생명 진입이 있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저는 실행의 길을 찾았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마땅히 진리를 추구하고 성품 변화를 추구해야 하며,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환경 속에서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해야 합니다. 복을 받든 화를 당하든 자신의 본분을 다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으며 가야 할 올바른 길입니다. 이전에는 제 마음이 복 받으려는 욕망으로 가득 차, 재앙이 닥쳤을 때 벗어나려고만 했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상태 속에서 사느라 너무나 고통스럽고 괴로웠습니다. 오늘 진리를 깨달은 저는 앞으로 복을 받을 수 있든 없든, 오직 저의 본분을 지키며 열심히 진리를 추구하고 성품 변화를 추구하기로 했습니다. 그 후 저의 내적 상태는 정상을 되찾았고, 안심하고 본분을 이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비록 가정의 어려움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저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체험하기 원했고, 더는 이성 없이 하나님께 요구하거나 제 능력으로 어려움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저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인도를 보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1년 넘게 감옥에 있는 동안, 큰딸이 동생의 생활과 공부를 잘 돌봐주어 제가 신경 쓸 일이 없었고, 배상금 문제도 상대 유가족이 저희가 도저히 갚을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고는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줄곧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저를 도우시고 가장 힘든 시기를 넘기도록 이끌어 주셨음을 진실로 느꼈습니다.
1년여의 시간을 통해 비록 고통과 시련도 겪었지만, 저의 이기적이고 비열한 본성과 하나님을 믿으며 걸어온 그릇된 길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올바르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주재하고 안배하신 모든 것이 선하며, 제 생명에 유익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재앙을 만나는 것이 나쁜 일이 아니며, 어떤 고통을 겪든 진리를 깨닫고 생명이 성장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것임을 진정으로 체험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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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샤오란 2014년에 공산당이 맥도날드 살인 사건으로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를 모함하고 형제자매를 마구 잡아들였죠. 우리 동네서도 많은 리더가 잡혀갔고 어떤 새 신자들은 두려워 소극적이 됐었죠. 그런 상황에서 제가 여러 지교회 사역을 맡게 된...
중국 멍판(夢凡) 2022년 12월, 저는 삼차 신경통을 앓게 되었습니다. 수술 후에도 머리 오른쪽이 계속 감각이 없었고, 자주 어지럽고 괴로웠습니다. 때로는 걸을 때 술에 취한 사람처럼 어지러워 제대로 서 있지도 못했습니다. 의사는 뇌혈류 부족으로...
처음 하나님을 믿을 당시, 저는 매우 열정적이었습니다. 믿은 지 두 달 만에 사무 본분을 이행하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접대도 담당하면서 안팎으로 바쁘게 지냈지만, 한 번도 피곤하거나 힘들다고 싫어한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구원받으려면 선행을 많이...
그리스 바이올렛(Violet)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을 때 추구하는 것은 다 나중에 복을 얻는 것이다. 이는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목적으로, 모든 사람이 이러한 속셈과 기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에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