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억압감에서 벗어나다

2025.6.9

2021년 5월, 저는 교회 리더로 선출되어 주로 복음 사역과 양육 사역을 맡았고, 각 사역을 세부적으로 점검하고 감독해야 했습니다. 때로는 윗선 리더가 각 사역에 대해 세부적인 안배를 하면, 이를 신속하게 이행해야 하고, 만약 사역 성과가 좋지 않으면 항상 문제를 정리하고 진리 원칙을 구해 해결해야 했습니다. 제가 막 이 본분을 맡았을 때는 많은 일에 대해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익숙해지려면 많은 시간을 들여야 했고, 이에 저는 큰 압박감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 본분을 이행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높여주심과 은총임을 알기에 열심히 협력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약 두 달 후, 한 파트너 자매가 다른 곳으로 옮겨가고, 저와 왕징(王静) 자매만 남아 교회 사역을 맡았습니다. 원래 세 명이 하던 일이 저희 두 사람에게 몰리니 사역은 더 바빠졌습니다. 가끔 힘들게 손에 있던 일을 처리하고 나면 잠시 쉬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또 회신해야 할 편지들이 와서 늘 처리해야 할 일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길어지면서 저는 지쳤고, ‘언제쯤이면 일이 좀 줄어서 편하게 쉴 수 있을까?’ 하고 바라게 되었습니다. 가끔 외출해서 일은 마치면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고, 밖에서 좀더 있으면서 머리를 식혔다가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접대 가정의 자매가 매일 세 끼 식사를 준비하고, 나머지 시간은 쉬거나 하나님 말씀을 보는 것을 보면, 무척 부럽기도 하고, 예전에 한 가지 사역을 했을 때 누렸던 여유와 한가한 시간이 그리웠습니다. 그때는 지금처럼 업무량도 많지 않고, 매일 눈 뜨자마자 사역을 하지 않아도 됐는데, 이 생활은 너무 힘들었습니다! 저는, 겉으로는 본분을 이행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마음속은 온통 반발심으로 가득했습니다. 형제자매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을 마치 임무 완수하듯 대응했고, 어떻게 하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얼른 일을 처리하고 편하게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가끔 문제가 많을 때는 초조하고 화가 나면서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한 번은 일을 처리하러 집에 가게 되었는데, 집에 도착하자마자 온몸의 짐을 다 내려놓은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해야 할 일이도 없고,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으니 그 생활이 너무 편안했습니다! 원래는 집에서 하루만 있으면 다 끝낼 수 있는 일이었는데, 저는 이틀이나 머물렀습니다. 당시 속으로 자책감을 느끼며, 일을 마쳤으면 얼른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모처럼 한 번 집에 왔다는 생각에 하루 더 머물면서 푹 쉬기로 했습니다. 나중에 왕징 자매가 빨리 돌아와서 일을 처리하라고 재촉해 어쩔 수 없이 돌아갔습니다. 저는 리더로 있는 동안 늘 소극적이고 수동적이었고, 내적 상태도 점점 엉망이 되었습니다. 본분 이행에도 별다른 성과가 없는 데다, 리더가 교제하고 도와주어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 때문에 결국에는 교체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스스로를 반성하지도 않았는데, 나중에 제가 양육 본분을 이행할 때 이전에 알던 한 자매를 만나고 나서야 마음이 조금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자매는 리더로서 일 년여 간 훈련을 거쳐 빠르게 성장했고, 예배와 교제를 할 때도 매우 실제적이었습니다. 리더를 맡으면 신경쓸 일도 많고, 힘들고 피곤하지만, 생명은 빠르게 자란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리더를 하는 데 늘 반발심을 품었습니다. 육은 편하고 안락했지만 정작 무엇을 얻었나요? 만약 제가 이런 추구와 관점을 바꾸지 않고 여전히 육을 헤아려 고생과 피곤을 두려워한다면, 아무리 오랜 세월 믿었다 해도 생명에는 성장이 없을 것입니다. 이런 생각이 들자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도대체 왜 하나님을 믿지? 하나님을 믿어서 도대체 무엇을 얻으려는 걸까? 내가 이렇게 계속 추구해야 할까? 만약 육을 저버리고 수고하며 대가를 치르고 마음을 다해 본분을 이행할 수 있다면 더 많은 진리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 후,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본분을 늘 건성으로 대충 이행하고 몸을 사리는 사람들이 있다. 가끔 교회 사역을 서둘러야 할 때가 있는데, 그는 제멋대로만 하려 하고, 요즘 컨디션이 안 좋다거나 기분이 좋지 않고 의욕이 없다고 생각되면 수고하며 대가를 치르면서까지 교회 사역을 하려 하지는 않는다. 너무나도 나태하고 안일을 탐하는 것이다. 그는 마음에 의욕이 없어 축 늘어져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그래도 리더에게 책망을 받거나 형제자매로부터 게으르다는 평판은 받고 싶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억지로 다른 사람들을 따라서 한다. 하지만 속으로는 너무나도 원하지 않고, 달갑지 않으며, 내키지 않아 한다. 그리고 억울해하고 서운해하며 분해하면서 사는 것이 피곤하다고 생각한다. 성격대로 하고 싶지만, 하나님 집의 요구와 규정을 감히 뿌리치거나 어기지도 못한다. 그렇게 억압이라는 정서가 차차 생기는 것이다. 이런 억압의 정서가 마음속에 뿌리내리고 시간이 흐르면 사람의 겉모습이 퇴폐적이고 무기력해 보이게 된다. 로봇처럼 자기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른다. 어찌 되었든 매일 하라면 하라는 대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다. 비록 겉으로 보기에는 손발을 멈추지 않고 하면서 본분을 이행하는 환경에서 벗어나지 않지만 마음은 억압을 느끼면서 사는 것이 피곤하고 답답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가장 큰 바람은 언젠가 더는 사람의 간섭이나 하나님 집 규정의 제약, 하나님 집의 배정을 받지 않는 것이다. 하고 싶은 대로 하고, 하고 싶을 때 하고, 기분 좋으면 조금 하고 내키지 않으면 하지 않으며, 그 어떤 질책이나 책망, 훈계도 받지 않고, 그 누구의 감독이나 감시, 간섭도 받지 않는 것이다. 그런 날은 얼마나 좋고 자유로우며 해방감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막상 떠나려니, 내려놓으려니 내키지 않는다. 본분을 이행하지 않다가 언젠가 자신이 정말 마음대로 할 수 있고 자유롭고 해방되면 자연스럽게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되고, 하나님이 원하지 않게 되면 복을 받지 못할까 봐 두려워한다. 어떤 사람들은 진퇴양난에 빠진다. 형제자매에게 고충을 털어놓자니 말하기 부끄럽고, 하나님께 기도하자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원망하자니 자신이 옳지 않은 것 같고, 원망하지 않으려 하니 괴롭다. 자기 삶이 어쩜 이토록 답답하고 마음 같지 않을까,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들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살고 싶지 않고, 모두와 똑같이 보폭을 맞추기 싫은 것이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고 싶은데 어쩌면 이렇게 어려운 것일까 고민한다. 예전에는 몸이 피곤했는데 이제는 마음마저 힘들다. 자기도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른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이는 억압적 정서로 초래된 것 아니냐? (그렇습니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5)>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제가 리더를 하면서 느끼는 압박과 고통은 이 본분이 바쁘거나 힘들어서가 아니라 제 사상과 관점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늘 안락함과 육의 즐거움을 추구했고, 본분이 조금 바쁘고 피곤해서 육이 만족을 얻지 못하면 답답하고 고통스러워했습니다. 특히 파트너 자매가 다른 곳으로 옮겨간 후 사역량이 늘면서 매일 사역을 다 처리하지 못하자, 조바심이 나서 늘 화를 내고 남을 꾸짖었습니다. 심지어 접대 가정 자매가 이행하는 본분이 가볍고 자유롭다며 부러워하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본분을 잘하기를 추구한 것이 아니라, 육의 안락함을 추구했던 것입니다. 저는 늘 억압감 속에 살면서 본분을 너무 소홀히 했고, 일말의 책임감도 없었습니다. 전혀 신뢰할 가치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혐오하실 만했습니다!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나서 제가 육을 탐하는 근원에 대해 조금은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고 진리를 깨닫기 전까지는 사탄의 본성이 사람의 내면에서 주도권을 잡고 사람을 지배한다. 그 본성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겠느냐? 예를 들어, 너는 왜 이기적으로 구는지, 왜 자신의 지위를 지키려 하는지, 왜 그렇게 정에 치우치는지, 왜 그 불의한 것과 악을 좋아하는지, 그러한 것들을 좋아하는 근거는 무엇인지, 그것들은 어디에서 왔는지, 너는 왜 그것들을 받아들이기 좋아하는지 등이 있다. 너희는 그것이 주로 사람의 내면에 사탄의 독소가 들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제 알았다. 사탄의 독소는 무엇이냐?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느냐? 예를 들어, 네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합니까?”라고 물으면 사람들이 모두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 말은 문제의 근원을 보여 준다. 사탄의 철학이나 논리는 이미 사람의 생명이 되었다. 사람이 무엇을 추구하든 사실 모두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모두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라는 이 말은 사람의 생명 철학으로, 사람의 본성을 대변하기도 한다. 이 말은 이미 패괴된 인류의 본성이 되었다. 바로 패괴된 인류의 사탄 본성을 생생하게 묘사한 말인 것이다. 사탄의 본성은 이미 완전히 패괴된 인류의 생존의 토대가 되었다. 몇천 년간 패괴된 인류는 사탄의 이 독소에 의지해 오늘날까지 살아왔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어떻게 베드로의 길을 갈 것인가> 중에서) 하나님 말씀의 폭로를 통해 깨달았습니다. 제가 이렇게 의기소침하고 타락한 이유는, 늘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 ‘세상을 사는 데는 먹는 것과 입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인생은 괴롭고 짧으니 어찌 제때 즐기지 않겠는가’와 같은 사탄 독소로 살아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육의 즐거움을 아주 중요하게 여겼고 인생이 이렇게 짧으니 자신을 잘 대해야 한다며 절대 육이 손해 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학 입시를 준비할 때, 다른 사람들은 밤을 새워가며 열심히 공부하는데 저는 공부 패턴이 너무 빠르면 육이 너무 고생스러운 것이 싫어서 한 번도 밤새워서 공부한 적이 없었고, 그저 성적만 떨어지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교회에 와서 본분을 이행할 때도 이런 관점에 따라 살면서, 리더가 되어 고생하고 대가를 치러야 해서 육이 편안할 수 없을 때, 몹시 답답하고 괴로워했습니다. 머릿속으로는 어떻게든 힘들지 않으려 하고, 육의 이익을 최우선에 두면서 저의 책임과 본분은 모두 뒤로 제쳐두었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본분을 맡고 있으면서 어떻게 각종 사역에서 성과를 낼지, 어떻게 책임을 다할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오직 제 육의 느낌만 고려하고, 육의 욕망을 충족시켰습니다. 조금만 더 고생해도 억울하게 생각하며 벗어나고 도망치려 했습니다. 저 자신이 너무 이기적이고 비열하며 양심과 이성이 조금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실 생각해 보면, 비록 육은 잠깐의 만족을 얻었겠지만 어떤 진리도 얻지 못했고 저의 본분도 다하지 못했으며 조금의 인격과 존엄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사는 것은 아무런 의미와 가치도 없었습니다. 여기까지 반성하자 저 자신이 너무 미웠고, 하나님께도 정말 죄송한 마음이 들면서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저는 또 하나님 말씀을 읽고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본연의 일을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더냐? 그는 의식주를 무척 단순하게 여겨 이런 일은 보통이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가 중시하는 것은 인생의 길, 사람의 사명, 인생관, 가치관이다. 앞날이 유망하지 않은 사람은 하루 종일 무엇에 골몰하느냐? 항상 어떻게 하면 게으름을 피우고 요령을 피울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잘 먹고 잘 놀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육의 안위를 확보하고 몸이 편할 수 있을지 고민하지 중요한 일은 고민하지 않는다. 그러니 하나님 집의 본분을 이행하는 장소와 환경에서 그는 억압을 느끼는 것이다. 하나님 집에서는 사람이 본분을 더 잘 이행할 수 있도록 본분 이행에 연관되는 일부 상식과 업무 지식을 배우기를 요구하고, 더 많은 진리를 깨달아 진리 실제에 진입하고 모든 일을 하는 원칙이 무엇인지 알 수 있도록 사람이 늘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기를 요구한다. 하나님 집에서 교제하고 언급하는 이 모든 것은 사람이 생활하고 본분을 이행하는 범위에 속하는 주제나 실제의 일과 관련된 것으로, 사람이 본연의 일을 하고 올바른 길을 걷게 한다. 본연의 일을 하지 않고 제멋대로인 사람은 이런 중요한 일을 하려 하지 않는다. 제멋대로 해서 이루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육의 안위와 기쁨, 평안이며 구속받지 않고 손해 보지 않으며 먹고 싶은 것을 실컷 먹고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하는 것이다. 그들의 인품, 그리고 그들이 마음속으로 추구하는 바로 인해 그들은 항상 억압을 느낀다. 그들과 아무리 진리를 교제해도 그는 바뀌지 않고 자신의 억압을 해결하지도 못한다. 그는 이런 부류의 사람이고 본연의 일을 하지 않는 인간이다. 겉으로 보면 그는 단지 원칙이나 규정을 지키지 않을 뿐 그렇게 큰 악행을 저지른 것 같지도, 나쁜 사람 같아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사실 그의 본성 본질은 본연의 일을 하지 않고 올바른 길을 걷지 않는 것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정상 인성의 양심과 이성이 없고 정상 인성의 지능에도 못 미친다. … 사회에서 본연의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망나니, 멍청이, 얼간이, 깡패, 건달, 무뢰한 같은 사람이다. 그들은 기술을 배우거나 역량을 키우려 하지 않고, 제대로 된 직장이나 생계를 도모할 직업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이들이 사회에서 망나니, 무뢰한 같은 사람이다. 그들은 교회로 섞여 들어와 공짜로 무언가를 얻으려 하고 복을 받으려 하는데, 기회주의자에 속한다. 이런 기회주의자는 본분을 전혀 기꺼이 이행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억압을 느낀다. 그리고 늘 자유로운 삶을 꿈꾼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옷을 입으며,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자고 싶을 때 자는 그런 삶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그는 고통이라면 조금도 받고 싶지 않아 하며, 그저 놀고먹기만 하려 한다. 이런 사람은 사는 것조차 피곤하다고 생각하며 부정적 정서에 얽매여 있다. 그들은 마음대로 할 수 없기 때문에 항상 지치고 곤혹스러워하며 본연의 일이나 중요한 일을 하려 하지 않는다. 하나의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속하려 하지 않고 그것을 자신의 본업이나 본분, 의무나 책임으로 여겨 그것을 잘해서 결실을 맺겠다거나 그것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건성으로 임하면서 본분 이행을 빌어 생계를 유지하려 한다. 압박감이나 통제가 조금이라도 생기거나 그에게 조금이라도 엄격히 대하여 약간의 책임을 지우면 그는 마음이 불편해지고 억압을 느낀다. 또한 그런 부정적 정서가 생기면서 사는 것이 너무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고 괴로워한다. 그들이 삶이 피곤하다고 느끼는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는 이런 부류의 사람은 이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성이 불건전한 사람으로, 하루 종일 비현실적인 생각에 빠진 채 뜬구름만 잡으며 꿈속에 살면서 기상천외한 생각만 하니 그들의 억압은 해결되기 어려운 것이다. 진리에 흥미가 없는 그들은 불신파에 속하기 때문에 그들이 하나님 집을 떠나 세상으로 돌아가 자신의 안식처를 찾도록 할 수밖에 없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5)> 중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본연의 일을 하지 않다’, ‘얼간이’, ‘깡패’ 와 같은 단어들을 보았을 때, 저는 특히 마음이 찔리고 괴로웠습니다. ‘얼간이’, ‘깡패’는 모두 가장 천박하고 가장 타락한 사람으로 이런 사람들은 온종일 먹고 마시고 노는 것만 추구하고, 본연의 일을 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하든 믿을 수 없고, 일관성도 없으며 책임감도 전혀 없습니다. 제가 추구했던 삶이 깡패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저는 리더로서 매일 어떻게 하면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고 책임을 다할지를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육이 편하고 자유로울지만 고민했습니다. 조금만 고생하면 반발하고 불만을 느끼며 본분을 귀찮은 짐처럼 여기고, 본연의 일은 조금도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믿을 수 없는 사람이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방인들도 ‘뿌린 대로 거둔다’는 원칙을 중시하며 생존하려면 고생하고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저는 어떤 고생도 견디지 못하고 조금만 고생해도 끊임없이 원망했습니다. 정말 쓸모없는 사람 아닙니까? 만약 저의 이런 타락한 사상을 고치지 않고, 계속해서 본연의 일을 하지 않는다면, 결국에는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사람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하며, 본분을 책임감 있게 이행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본연의 일이 마음에 있고, 그 일을 합니다. 비록 본분 이행이 조금은 힘들고 지치더라도 불평하지 않고 마음을 다해 이행합니다. 앞으로 저도 본연의 일을 하는 사람이 되기로 했습니다.

나중에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실행할 길을 찾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의 삶의 가치는 무엇이겠느냐? 그저 육적으로 놀고먹기 위함이겠느냐? (아닙니다.) 그럼 무엇이냐? … 한편으로는 피조물의 본분을 잘 이행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힘이 닿는 것,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는 것이다. 최소한 양심에 참소가 없고, 본인의 양심에 떳떳하며, 다른 사람에게 받아들여지는 정도까지는 되어야 한다. 조금 더 나아가서는 태어난 가정, 교육 수준, 자질을 떠나 사람의 생존에서 알아야 할 도리를 어느 정도 알아야 한다. 예컨대 사람이 걸어야 할 길, 사람이 살아야 할 삶, 의미 있는 삶 등 인생의 참된 가치를 모색해야 하는 것이다. 한 번 사는 삶을 헛되이 살아서는 안 된다. 또 다른 한편으로 네가 사는 동안 너는 네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대단한 사명과 본분, 책임을 완수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최소한 한 가지는 성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 사람의 삶의 가치, 걸어야 할 올바른 길은 가치 있는 일을 해내는 것이고, 한 가지 혹은 여러 가지 가치 있는 일을 완수하는 것이다. 이것을 사업이라고 할 수는 없으며 올바른 길, 올바른 일이라 한다. 네가 말해 보아라, 사람이 하나의 가치 있는 일을 완수하기 위해, 의미 있고 값진 삶을 살고 진리를 추구하고 얻기 위해 대가를 치르는 것이 가치 있지 않겠느냐? 네가 만약 진정으로 진리를 깨닫는 것을 추구하고 인생의 바른길을 걷기를 원하며,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고 의미 있고 값진 삶을 살기 원한다면 너는 온 힘을 기울이고 대가를 치르며 시간과 세월을 들이는 것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 기간에 약간의 질병을 겪더라도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이 너를 넘어뜨리지 못할 것이다. 평생 온종일 빈둥거리며 토실토실 건강하게 관리한 몸으로 장수하는 것보다야 훨씬 낫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이 둘을 비교하면 어떤 삶이 가치 있고 죽음에 직면했을 때 마음에 위안이 되고 아쉬움이 남지 않겠느냐? (의미 있는 삶을 살아 내는 것입니다.) 의미 있는 삶을 살아 내는 것은 마음속에 수확과 위안이 있는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6)>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나서 사람이 무엇을 추구해야 의미 있고 가치 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사람의 인생은 정말 잠깐입니다. 이렇게 한정된 시간에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진리를 추구하며 자신의 본분을 다해야 인생이 헛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이 끝날 때 아쉬움과 빚이 남지 않도록 해야 마음도 든든하고 평안합니다. 예전에 저는 육을 위해 살면서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조금만 힘들고 지쳐도 억압, 반발, 불만을 느끼며 전혀 인간답게 살지 않았고, 본분도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남은 것은 아쉬움과 빚뿐이고, 결국 아무런 진리도 얻지 못했으니, 정말 헛되이 살았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더 이상 이렇게 흐리멍덩하게 살 수 없어. 내가 다행히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총과 높여주심 덕분이야. 내 책임을 다해 육을 저버릴 줄 알고, 본연의 일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해.’ 이런 생각을 하자 마음이 환하게 밝아졌고, 앞으로는 어떻게 추구해야 할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또다시 교회 리더로 선출되었습니다. 무척 감사하게 생각하며, 이번 기회를 소중히 여겨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리더가 된 후에는 매일 해야 할 사역이 아주 많았습니다. 본분이 많아서 바쁠 때면, 여전히 육을 헤아리려는 생각을 드러냈고, 마음을 기울여 고민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사람이 하나의 가치 있는 일을 완수하기 위해, 의미 있고 값진 삶을 살고 진리를 추구하고 얻기 위해 대가를 치르는 것이 가치 있지 않겠느냐? 네가 만약 진정으로 진리를 깨닫는 것을 추구하고 인생의 바른길을 걷기를 원하며,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고 의미 있고 값진 삶을 살기 원한다면 너는 온 힘을 기울이고 대가를 치르며 시간과 세월을 들이는 것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 기간에 약간의 질병을 겪더라도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이 너를 넘어뜨리지 못할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6)>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저에게 믿음과 힘을 주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 육을 만족시키기 위해 본분을 대충 이행할 수 없었습니다. 육의 안락함은 잠깐뿐이고, 본분에 전력을 쏟지 못하면 남는 것은 아쉬움과 빚뿐이며, 그것은 영원히 지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자신을 저버리게 해달라고 기도드렸습니다. 그러자 마음이 조금 차분해지면서 정성들여 협력할 수 있었고, 어떻게 사역해야 실제 성과를 낼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잘 모르는 문제를 만나면, 다 같이 토론하며 하나님 말씀을 찾아 진리 원칙을 구했습니다. 이렇게 본분을 이행하니까 비록 더 바쁘고, 마음도 더 쓰이고, 한가하게 여유를 즐길 시간도 많지 않지만, 얻은 것도 많고, 갈수록 삶이 더 충실해졌습니다. 또한 더 이상 쉽게 소극적이 되거나 억압받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이런 변화가 생긴 것은 하나님 말씀이 이룬 성과입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클릭하세요! 하나님에게서 온 기쁜 소식이 당신과 당신의 가족에게 임할 것입니다.

관련 콘텐츠

참으로 공의로우신 하나님

일본 장린 2012년 9월, 저는 교회 사역을 맡으면서 리더 옌주어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나중에 옌주어가 형제자매들에게 집마다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하라고 한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집의 복음 전파 원칙에 심각하게 어긋나는 안배였습니다....

하나님을 여러 해 동안 믿었는데 왜 변화가 없을까

허난성 진루 최근 들어 저는 형제자매들이 제 부족한 점을 지적하거나 제 의견을 받아들여 주지 않을 때면 못마땅해하거나 그 자리에서 반박하곤 했습니다. 나중에는 반성했지만, 막상 또 일이 생기면 저도 모르게 패괴 성품을 드러냈지요. 저는 이것 때문에...

투서를 넣는 과정에서 얻은 수확

중국 후베이 자오밍2011년 4월, 저는 사역상 필요 때문에 다른 지역 교회로 가서 리더 야오란의 사역을 이어받았습니다. 야오란 자매는 사역을 인수인계해 주며 교회 상황 전반을 설명해 주었고, 자신의 딸 샤오민이 양육 집사이니 교회 사역을 파악하는...

열등감의 그늘에서 벗어나다

저는 어렸을 때 특히 낯을 가렸습니다. 집에 손님이 온 걸 보면 늘 부모님 뒤에 숨었고, 부모가 ‘삼촌’, ‘이모’라고 불러 보라고 시키면 마지못해 부르곤 했습니다. 그럴 때면 엄마는 우스갯소리로 손님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가 벙어리라 말을...

카카오톡으로 대화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