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 사태에서 겪은 특별한 체험
2022년 11월 초, 제가 본분을 이행하는 지역에서 전염병 발생 상황이 점점 심각해졌습니다. 며칠 사이에 주변의 몇 개 구역이 모두 고위험 지역이 되었고, 곧이어 현성 전체가 봉쇄되면서 전면 자가 격리가 실시되었습니다. 그 후, 제가 살던...
2023년 1월, 리더의 안배로 저와 리신(李欣) 자매는 교회의 문서 사역을 함께 맡았습니다. 저는 훈련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리신 자매는 제게 그다지 많은 사역을 맡기지 않았습니다. 어려움이나 문제가 생길 때면 리신 자매가 원칙에 입각해 교제해 주어 크게 신경 쓸 필요도 없었고, 사역에 대한 부담도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3월에 제가 교회 리더로 선출되면서 어깨가 무거워졌습니다. 리더의 본분은 교회 전체 사역을 책임지고 각종 문제도 해결하는 것이기 때문에 늘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윗선 리더로부터 사역 실행에 관한 편지를 자주 받았습니다. 양육 사역, 복음 사역, 정화 사역, 문서 사역 및 사람 양성 등 각 사역의 계획과 안배, 존재하는 오류와 문제점, 그리고 향후 해결 방안 등 모든 것에 대해 상세히 회신해야 했습니다. 맡고 있는 사역이 많다 보니 때로는 한 가지 일을 끝내자마자 또 다른 사역을 실행하러 교회에 가야 했습니다. 매일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았습니다. 그렇게 한동안 바쁘게 지내고 나니, 잠시 멈춰 서서 체험 간증 영상을 보거나 가볍게 찬양을 들으며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급하게 실행해야 할 사역이 많이 남았다는 생각에 서러운 마음이 들었고, 이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조금도 자유롭지 않다고 느껴졌습니다. 한번은 윗선 리더가 교회 정화 사역의 진척이 더디고, 몇 건의 제명 자료가 계속 취합되지 않는 것을 보고 제가 본분에 책임감을 갖지 않는다고 책망했습니다. 당시 저는 따지고 싶었지만, 리더의 책망이 옳다는 것을 알았기에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했습니다. 그 후 저는 교회에 가서 평가 자료를 취합했고, 몇 주 동안 쉴 새 없이 바쁘게 일한 후에야 제명 자료 몇 건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서도 곧장 점검하고 실행해야 할 다른 사역이 몇 가지 남아 있었습니다. 그 시기에 저는 늘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정신없이 바빠서 신경이 곤두서 있었습니다. 너무 피곤해서 언제쯤 푹 쉴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 들었고, 매일 이렇게 바쁘게 지내다 보니 정말 억압감이 느껴졌습니다. 예전에 문서 본분을 이행할 때는 사역량이 그리 많지도 않았고, 곁에서 리신 자매가 짐을 덜어주어 별다른 부담이 없던 터라 그때가 무척 그리웠습니다. 리더 본분을 맡은 후로는 매일 바쁘게 지내다 보니 억압감을 느꼈고, 이 본분을 그만두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론 이런 생각은 너무 비이성적일뿐더러, 형제자매들도 제가 고생을 감당할 그릇이 안 된다고 생각할 게 분명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계속 협력해 나가야 했습니다.
그 후 교회에서 사람들이 중국 공산당에게 체포당하는 일이 생겨 수습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저와 동역자 자매는 정신없이 바빠, 제가 맡고 있던 양육 사역을 돌보지 못했습니다. 속으로는 시간을 내어 양육 담당자들의 상황을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요즘 수습하느라 바쁘기도 하고 양육 사역의 성과가 하루아침에 좋아질 리 없을뿐더러, 처리해야 할 다른 사역도 있으니 바쁜 일이 끝나면 양육 사역을 점검하자고 생각했습니다. 윗선 리더는 편지를 보내 뒷수습 때문에 다른 사역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하면서, 양육 사역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까지 세워 주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제 마음속에 반발심이 일었습니다. ‘안 그래도 맡고 있는 일이 너무 많은데, 이렇게 많은 걸 요구하면 나보고 어떻게 감당하라는 거야! 왜 내 고충은 하나도 헤아려 주지 않는 거지? 내가 슈퍼맨도 아니고, 어떻게 이 많은 일을 한꺼번에 잘 해낼 수 있겠어?’ 저는 조금 짜증 나고 답답한 나머지 리더의 편지는 보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사역들을 안 할 수도 없었습니다. 만약 새 신자들이 제때 양육 받지 못해 교회를 떠나기라도 한다면, 책망받는 건 둘째 치고, 중요한 건 과오를 남겨 교체될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양육 사역의 진척 상황과 새 신자들의 문제를 파악하러 갔습니다. 하지만 적극성이나 자발성이 떨어졌던 저는 사역 점검도 건성건성 형식적으로만 하면서, 리더에게 보고할 수 있을 정도로만 임무를 완수하려 했습니다. 그 당시 겉으로는 매일 쉴 새 없이 바빠 보였지만, 어쩔 수 없이 여러 사역에 끌려다녔을 뿐 막상 사역을 실행할 때면 이것저것 빼먹기 일쑤여서 다시 해야 하는 일도 많았습니다. 저는 매일 의기소침하고 피곤했으며, 사역의 성과도 갈수록 저하되었습니다. 동역자 자매가 저보고 책임감이 없다고 말하자, 저는 억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역을 맡아서 매일 같이 밤낮으로 일하는데, 어떻게 나한테 책임감이 없고 마음도 쓰지 않는다는 말을 할 수 있지? 이건 내게 너무 과한 요구잖아!’ 생각할수록 속상하고 답답했습니다. 저는 정말 이 본분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고통스럽게 지내느니 차라리 자리에서 물러나 좀 더 가벼운 본분을 맡는 편이 나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숨 막히게 살지 않아도 될 테니 말입니다. 저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소극적인 감정에 완전히 짓눌렸습니다. 그날 밤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마음이 너무 고통스러워 더는 버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어떤 방면의 공과를 배워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저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도록 저를 깨우쳐 주시고 이끌어 주십시오.’
기도 후,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 무슨 의미이겠느냐? 바로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하고 싶을 때 하고, 하고 싶은 방식으로 하는 것은 일과 삶에 대한 요구이다. 그러나 법률, 혹은 생활 환경, 혹은 특정 집단의 규칙, 제도, 규정, 규율 등의 여러 가지 원인으로 인해 자기의 바람이나 상상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속 깊이 억압을 느낀다. 이런 억압은 정확히 말하면 사람이 서운함을 느끼는 것이다. 나아가 어떤 사람들은 억울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은 정확히 말해 사람의 성질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여러 원인과 객관적 환경 및 조건의 제약으로 인해 사람이 자신의 성격대로 할 수 없고 자유롭게 방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본분을 늘 건성으로 대충 이행하고 몸을 사리는 사람들이 있다. 가끔 교회 사역을 서둘러야 할 때가 있는데, 그는 제멋대로만 하려 하고, 요즘 컨디션이 안 좋다거나 기분이 좋지 않고 의욕이 없다고 생각되면 수고하며 대가를 치르면서까지 교회 사역을 하려 하지는 않는다. 너무나도 나태하고 안일을 탐하는 것이다. 그는 마음에 의욕이 없으면 축 늘어져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그래도 리더에게 책망을 받거나 형제자매로부터 게으르다는 평판은 받고 싶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억지로 다른 사람들을 따라서 한다. 하지만 속으로는 너무나도 원하지 않고, 달갑지 않으며, 내키지 않아 한다. 그리고 억울해하고 답답해하면서 사는 것이 피곤하다고 생각한다. 성격대로 하고 싶지만, 하나님 집의 요구와 규정을 감히 뿌리치거나 어기지도 못한다. 그렇게 억압이라는 정서가 차차 생기는 것이다. 이런 억압의 정서가 마음속에 뿌리내리고 시간이 흐르면 사람의 겉모습이 퇴폐적이고 무기력해 보이게 된다. 로봇처럼 자기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른다. 어찌 되었든 매일 하라면 하라는 대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다. 비록 겉으로 보기에는 손발을 멈추지 않고 하면서 본분을 이행하는 환경에서 벗어나지 않지만 마음은 억압을 느끼면서 사는 것이 피곤하고 답답하다고 생각한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5)> 중에서) 하나님 말씀의 폭로를 보고 저는 깨달았습니다. 제가 본분을 이행하며 늘 억압감을 느끼고 고통스러웠던 주된 이유는 제가 속박받기 싫어하고 제 마음대로 하려고만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일단 제 뜻에 맞지 않는 환경에 처해 제멋대로 할 수 없게 되면, 억압된 감정이 일어났습니다. 제가 문서 본분을 이행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리더가 제게 그다지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았고, 업무를 배울 때도 리신 자매가 지도해 주었으며, 어려움이 생기면 곧장 교제하며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사역도 비교적 수월해서 스트레스가 없었기에, 저는 그런 본분을 이행하는 게 제 뜻에 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리더 본분을 맡은 후로는 책임져야 할 사역이 많아졌습니다. 교회의 여러 사역에 모두 신경 쓰고 참견해야 했으며, 모든 문제에 실제로 관여해서 해결해야 하다 보니 저는 억압감을 느껴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그 후 교회에서 또다시 사람들이 체포당하는 일이 발생해 수습해야 했을 때, 저는 더욱 바빠졌습니다. 스트레스를 조금이라도 덜어 보려 양육 사역을 뒤로 미루고 싶었지만, 윗선 리더는 양육 사역에 대한 감독을 조금도 늦추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제 계획은 무산되었고, 육적으로 많은 고생을 해야 했기에 저는 순종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안 하자니 남들이 저 보고 고생할 줄 모른다고 할까 봐 두려웠고, 더 두려운 것은 새 신자를 잘 양육하지 못한 책임을 지는 것이었기에, 저는 마지못해 순종했습니다. 하지만 전 속으로 억압감을 느꼈고, 무슨 일을 하든 마음이 딴 데 가 있었으며, 본분도 건성건성 순서에 따라 형식적으로만 이행했습니다. 그 결과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했습니다. 동역자 자매가 제게 한마디 하자 저는 더욱 따지고 들고 억지를 부렸고, 자리에서 물러나 관두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저는 정말이지 꽉 막힌 사람이었습니다! 그 후 저는 제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더 이상 이렇게 강퍅하게 굴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어서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도 보았습니다. 『사회에서 본연의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망나니, 멍청이, 얼간이, 깡패, 건달, 무뢰한 같은 사람이다. 그들은 기술을 배우거나 역량을 키우려 하지 않고, 제대로 된 직장이나 생계를 도모할 직업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이들이 사회에서 망나니, 무뢰한 같은 사람이다. 그들은 교회로 섞여 들어와 공짜로 무언가를 얻으려 하고 복을 받으려 하는데, 기회주의자에 속한다. 이런 기회주의자는 본분을 전혀 기꺼이 이행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억압을 느낀다. 그리고 늘 자유로운 삶을 꿈꾼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옷을 입으며,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자고 싶을 때 자는 그런 삶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그는 고통이라면 조금도 받고 싶지 않아 하며, 그저 놀고먹기만 하려 한다. 이런 사람은 사는 것조차 피곤하다고 생각하며 부정적 정서에 얽매여 있다. 그들은 마음대로 할 수 없기 때문에 항상 지치고 곤혹스러워하며 본연의 일이나 중요한 일을 하려 하지 않는다. 하나의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속하려 하지 않고 그것을 자신의 본업이나 본분, 의무나 책임으로 여겨 그것을 잘해서 결실을 맺겠다거나 그것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건성으로 임하면서 본분 이행을 빌어 생계를 유지하려 한다. 압박감이나 통제가 조금이라도 생기거나 그에게 조금이라도 엄격히 대하여 약간의 책임을 지우면 그는 마음이 불편해지고 억압을 느낀다. 또한 그런 부정적 정서가 생기면서 사는 것이 너무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고 괴로워한다. 그들이 삶이 피곤하다고 느끼는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는 이런 부류의 사람은 이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성이 불건전한 사람으로, 하루 종일 비현실적인 생각에 빠진 채 뜬구름만 잡으며 꿈속에 살면서 기상천외한 생각만 하니 그들의 억압은 해결되기 어려운 것이다. 진리에 흥미가 없는 그들은 불신파에 속하기 때문에 그들이 하나님 집을 떠나 세상으로 돌아가 자신의 안식처를 찾도록 할 수밖에 없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5)> 중에서) 이 하나님 말씀이 제 마음에 크게 와닿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억압을 느끼는 근원은 바로 육적인 방종만 하고 싶어 하고, 속박되거나 고생하는 일은 조금도 하기 싫어하는 데 있다고 폭로하셨습니다. 육적인 욕망이 채워지지 않으면 억압과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은 모두 안이함을 탐하는 자들이며, 그들은 어떻게 자기 할 일을 하면서 자신의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교회에서 편히 지낼 궁리만 합니다. 진정으로 진리를 추구하고 제 할 일을 하는 사람은 본분을 자신의 책임과 의무로 여기기 때문에, 본분을 잘 이행하기 위해서라면 육이 좀 고생하고 스트레스를 약간 받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은 본분을 잘 이행해야만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추구해서 억압과 고통을 느끼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이런 사람을 좋아하시고 축복하십니다. 저는 리더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저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라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맡은 사역이 많아 신경 쓸 일이 많은 데다가 윗선 리더가 점검하고 감독까지 하면 안이하게 지낼 기회가 줄어들 테니 이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너무 힘들고 억압된다고 느꼈습니다. 매일 설렁설렁 아무런 스트레스 없이 지내야 좋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사회의 동네 깡패, 건달, 양아치, 불량배들을 생각해 보면, 그들은 온종일 제대로 된 일은 생각하지 않고, 여기저기 빌붙으며 허송세월합니다. 조금만 일해도 게으름을 피우니, 이런 사람들은 인격과 존엄성 없이 살아가고 어딜 가나 무시당하는 가장 천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저는 본분을 이행하면서 육체의 편안함만 추구하고, 본분에 신경 쓰거나 고생은 조금도 하기 싫어했으니, 실질적으로는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하나님 집에 얹혀사는 사람이었습니다. 리더를 하는 것이 조금 힘들기는 하지만, 매일 접하는 사람과 일이 많아 훈련받을 기회도 많습니다. 교회의 정화 사역 같은 경우, 사람을 분별하는 진리를 갖춰야 하고, 양육 사역의 경우에는 새 신자들의 기초가 아직 부실해서 이상 방면의 진리를 갖춰 그들을 양육하고 붙들어 주어야 합니다. 또한 다른 사역을 실행하는 경우 역시 저마다 상응하는 진리 원칙과 관련되는데, 이는 한 가지 본분만 이행해서는 얻을 수 없는 것들입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이런 진리를 얻을 기회를 소중히 여기지 않고, 리더 본분을 이행하느라 너무 바쁘고 힘들어서 제 마음대로 살 수 없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윗선 리더가 제 사역을 감독하자 마음속에 반발심이 일었고, 사역을 건성으로 실행하여 사역을 지체시켰습니다. 그러고도 스스로 반성하지 않고, 계속 억압된 감정 속에서 본분을 내팽개치려 했으니, 정말이지 저는 양심과 이성이 없어도 너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진리에 흥미가 없는 그들은 불신파에 속하기 때문에 그들이 하나님 집을 떠나 세상으로 돌아가 자신의 안식처를 찾도록 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읽으니 저는 마음에 찔리고 괴로웠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제 면전에서 저를 폭로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부류를 불신파로 규정하시고, 그들을 증오하고 혐오하셨습니다. 본분을 이행하는 저의 태도를 계속 바로잡지 않는다면, 전 머지않아 하나님께 드러나 도태될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고 나니 조금 두려워져서, 속으로 하나님께 조용히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더 이상 이렇게 허송세월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정상 인성과 온전한 이성을 갖추고 제 할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제가 저 자신을 더 깊이 알 수 있게 저를 이끌어 주십시오.”
그렇게 구하면서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이런 억압은 어찌하여 생기는 것이냐? 분명 육적인 피로로 인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에서 비롯되는 것이겠느냐? 만약 사람이 늘 육의 안일과 쾌락만을 찾거나 추구하며 고생하려 하지 않는다면, 그의 육이 조금이라도 괴롭거나 남보다 더 고생하거나 혹은 평소보다 피로할 때 그는 억압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것이 억압을 야기하는 원인의 하나이다. 만약 사람이 육적인 고생을 별것 아닌 것으로 생각해서 육의 안일을 추구하지 않고 진리를 추구하고 본분을 잘 이행하여 하나님을 흡족게 하기를 추구한다면, 육적인 고생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설령 때로 분주하고 피곤하여 지치더라도 한숨 자고 나면 괜찮아진다. 괜찮아지면 계속 분주히 보낸다. 그의 마음은 본분과 사역에 있으니 육적으로 조금 피곤하더라도 별것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람의 생각에 문제가 생겨 늘 육의 안일만 추구하고자 한다면, 육적으로 조금 억울하거나 만족을 얻지 못할 때 부정적 정서가 생겨난다. … 그는 이런 일로 자주 억압을 느끼고 형제자매들의 도움을 받으려 하지도, 리더의 감독을 받으려 하지도 않는다. 잘못을 저질러도 남들이 책망과 훈계를 하지 못하게 하면서 그 어떤 단속도 받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는 ‘내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행복을 찾기 위해서인데, 어째서 그렇게 스스로를 괴롭게 하는 걸까? 삶은 왜 이렇게 힘든 걸까? 사람은 행복하게 살아야 해. 이런 규정, 저런 제도 같은 걸 따질 게 아냐. 열심히 지켜 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어?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것을 할 거야. 당신들은 잠자코 있어.’라고 생각한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너무 제멋대로이고 방탕하고 단속받지 않는다. 그 어떤 사역 환경에서도 그 어떤 단속도 받으려 하지 않는다. 하나님 집의 규정, 원칙을 지키려 하지 않고, 처신하면서 지켜야 할 원칙 역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양심과 이성으로 해야 할 최소한의 것도 지키지 않는다. 그저 기분 내키는 대로 하고 즐거울 수만 있으면, 자기에게 득이 되거나 편한 일이면 하는 것이다. 그는 그런 단속을 받는 것은 자기답게 사는 것이 아니며, 스스로를 괴롭히는 자학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그렇게 살면 안 되고 자유와 해방 속에서 자신의 육체와 욕망, 자신의 이상과 소원, 자신의 생각을 마음껏 방종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가고 싶은 곳을 가며 뒷일이나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자신의 책임과 의무, 하나님을 믿으면 이행해야 하는 본분 혹은 지키고 살아 내야 하는 진리 실제, 걸어야 하는 인생의 길 역시 고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사회에서나 사람들 속에서 항상 제멋대로 하려 하지만, 어딜 가든 바라는 대로 이루지 못한다. 그는 하나님 집에서 인권을 중시하고 사람들에게 충분한 자유를 주며 하나님 집에서 인성과 인내, 관용을 중시하니 하나님 집에 오면 육체와 욕망을 마음껏 방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하나님 집에도 행정 법령과 규정이 있기에 그는 여전히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그의 이런 억압의 부정적 정서는 하나님 집에 오고 나서도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것이다. 그들이 사는 것은 그 어떤 책임이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진정한 사람이 되기 위한 것도 아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도 피조물로서의 본분을 잘 이행하고 사명을 완수하여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들이 어떤 무리 속에 있든, 어떤 환경에 처하든, 어떤 직업에 종사하든 상관없이 최종 목적은 자아를 찾고 자기만족을 실현하는 것이다. 처신의 취지도 이것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자기만족이 그들 평생의 소원이자 추구 목표인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5)> 중에서) 이전에는 제 억압된 감정이 리더를 하느라 너무 바쁘고, 스트레스나 어려움이 많아서 생긴 것이라는 생각만 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폭로를 통해 제 추구의 사상 관점에 문제가 있는 것이 제 억압감의 근원이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 마음대로 본분을 이행하려고만 했고, 조금이라도 스트레스를 받거나 어려움에 직면해 육적으로 만족하지 못하면 억압된 감정 속에 살았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사탄이 주입한 “인생은 괴롭고 짧으니, 어찌 제때에 즐기지 않겠는가?”, “오늘 술이 있으면 오늘 취하고”와 같은 독소의 영향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무릇 사람은 살면서 마땅히 자신을 아끼고 인생을 즐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학창 시절, 중학교 졸업 시험을 앞두고 시험 준비를 위해 주어지는 며칠간의 방학 기간을 떠올려보면, 친구들은 모두 시간이 부족하다며 마지막 스퍼트를 올리고 싶어 했지만, 저는 그게 너무 숨 막히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시험 성적이 대수냐고, 굳이 자신을 그렇게 힘들게 할 필요가 있냐며 몇몇 절친들과 놀러 다녔습니다. 시험 전의 긴장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직장 생활을 시작한 후에도 저는 육체의 기호에 따라 선택했습니다. 직원에 대한 요구가 엄격한 회사 규정을 보면 억압감이 들고 속박받는다고 느끼는 것도 모자라 퇴사하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이것이야말로 멋진 삶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후에도 제 추구 관점은 여전해서, 편하고 스트레스 없는 본분을 이행하고 싶어 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본분이 바빠지거나 스트레스가 커지면 억압된 감정이 생겨 마음속으로 반발했고, 본분을 건성건성 형식적으로 이행했으니, 인성이라곤 조금도 없었습니다. 저는 지금 공산당이 하나님 선민을 미친 듯이 체포하고 핍박하고 있는 상황이라, 윗선 리더가 새 신자들의 미숙한 분량을 고려해 그들이 하루빨리 참도에 뿌리내릴 수 있게 양육하고 붙들어 주는 일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리더가 양육 사역을 좀 더 철저히 점검하고 감독하는 것은 전적으로 새 신자들의 생명을 책임지는 일로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모습이자, 리더의 책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저는 육체가 더 많은 고생을 하고 더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이유로 반발하고 원망하며 양육 사역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그로 인해 일부 새 신자들이 제때 양육 받지 못해 생명에 손실을 입었습니다. 진리를 사랑하고 책임감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부탁을 대할 때,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하나님의 요구에 부응할지부터 생각합니다. 아무리 큰 어려움이나 스트레스에 직면해도 그는 적극적으로 맞서고, 모든 사역을 진지하고 책임감 있게 실행합니다. 이에 비해 저는 리더의 본분을 맡고 있으면서도 사역에 대한 책임감이 전혀 없어서 그저 형식적으로만 실행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본분을 대한 저는 신뢰 받지 못했고 제 인격과 존엄성을 망가뜨렸습니다. 만약 제가 계속 하나님께 회개하지 않는다면, 분명 교회 사역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하여 하나님께 정죄 받고 도태될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드러나지 않았더라면, 오랜 저의 잘못된 추구 관점을 깨닫지 못한 채 계속 그런 추구가 멋진 줄 알았을 것입니다. 정말이지 어리석고 황당하기 그지없습니다!
그 후,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실행의 길을 찾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본연의 일을 하며 기꺼이 본분을 이행한다. 그들은 한 가지 사역을 능히 감당할 수 있으며 자신의 자질을 바탕으로 하나님 집의 규정에 따라 사역을 제대로 해낸다. 물론 처음에는 이런 생활에 적응하는 게 좀 어려워서 몸과 마음이 힘들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진정으로 협력하고자 하는 의지나 정상인, 좋은 사람이 되어 구원받고자 하는 바람이 있다면, 어느 정도 대가를 치러야 하고 하나님이 징계하도록 해야 한다. 네 마음대로 하고 싶을 때 그것을 등지고 내려놓아 제멋대로인 성질과 사리사욕을 조금씩 줄여야 할 것이다. 또 중요한 일과 시기, 사역에서는 하나님의 도움을 구해야 한다. 네게 의지가 있다면 하나님의 채찍질과 징계를 구하고, 진리를 깨달을 수 있도록 하나님의 깨우침을 구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더 좋은 결실을 볼 수 있다. 네게 정말 의지가 있어서 하나님 앞에서 기도로 간구한다면 하나님은 행사할 것이며 네 내적 상태와 사상을 바꿔 줄 것이다. 성령이 약간 역사하여 네게 감동과 깨우침을 주면, 네 마음은 달라질 것이며 네 내적 상태도 변화할 것이다. 네게 변화가 생기면 이렇게 사니 억압받지 않는 것 같다고 느낄 것이며, 억압적인 내적 상태와 정서가 다소 바뀌고 해소되어 예전과는 달라질 것이고, 이렇게 사는 것이 힘들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즐겁다고, 이렇게 살고 처신하고 본분을 이행하고, 고생하고 대가를 치르며 규칙을 지키고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 좋다고, 이것이 바로 정상인이 살아야 할 삶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진리에 기대 살고 본분을 잘 이행하면 마음이 놓이고 평안하고 삶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5)>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제 할 일을 하는 사람을 좋아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본분을 이행하다가 어떤 어려움이나 스트레스에 직면하든 어른스럽게 책임과 의무를 감당하고, 회피하기보다는 받아들이고 순종하며, 하나님 집의 원칙과 요구에 따라 일합니다. 그러지 못할 때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의지하며 진리를 구하는데, 그들의 추구와 치른 대가에 따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깨우쳐 주시고 이끌어 주십니다. 이런 사람만이 가치 있는 삶을 삽니다. 본분을 이행하는 제 모습과 비교해 보니, 저는 어려움이나 스트레스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억압된 감정 속에 살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구하지도 않고 본분을 회피할 생각만 했습니다. 전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사람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이전에 한 가지 본분만 이행할 때 저에 대한 요구가 높지 않았던 것은 제 분량이 너무 작고 훈련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제가 리더의 본분을 이행하며 책임이 막중해졌으니, 자연스레 저에 대한 요구도 높아진 것입니다. 마치 한 가정의 자녀가 일할 수 있고 집안일을 감당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부모의 요구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만약 그가 고생할 게 두려워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다면, 이는 인성이 없는 자이니 부모도 좋아하지 않을 게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은혜를 베푸시어 이렇게 중요한 본분을 이행하게 하시고, 더 많은 책임을 제게 맡기신 것을 생각해 보니, 하나님의 뜻은 제가 더 많은 진리를 깨닫고, 생명을 더 빨리 성장시켜, 어른스럽게 자신의 책임을 감당하고, 양심과 이성이 있는 사람이 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나니 제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저는 더 이상 하나님의 고심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비록 지금 맡고 있는 사역이 많고 스트레스가 심하지만, 저는 본분을 대하는 제 태도를 바로잡고, 진리 원칙에 공을 들여야 했습니다. 또 모르는 것은 동역자 자매나 윗선 리더에게 자주 구하고, 천천히 제 부족함을 채워가며 하나님의 요구에 부응해야 했습니다.
9월, 공산당의 단속이 점점 더 심해져서 저희는 집에 숨어 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록 밖에는 나갈 수 없었지만, 매일 여러 문제에 관해 구하고 보고하는 형제자매들의 편지와 시급히 실행해야 할 사역에 관해 설명하는 윗선 리더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환경의 제약은 각 사역의 실행과 문제의 처리 및 해결에 어느 정도 지장을 초래했고 저희는 매일 이런 일들로 마음고생하고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습니다. 윗선 리더도 번번이 편지를 보내 여러 사역의 진척 상황을 점검하자, 제 마음속에서는 또다시 반발심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사역을 너무 자주 깐깐하게 감독하는 거 아냐? 집에 숨어 지내면 한숨 돌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사역이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었잖아. 편하게 좀 있어 볼 틈이 없네. 앞으로 계속 이렇게 본분을 이행해야 한다면 얼마나 숨 막힐까!’ 저는 제 상태가 또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 즉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제 마음을 지켜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 후,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너는 한 명의 성인으로서 이런 일을 반드시 감당해야 하며 원망도, 저항도, 나아가 도피나 거부도 하지 말아야 한다. … 사회에서든, 하나님 집에서든 모두가 똑같다. 이것은 네가 감당해야 할 책임이자 한 명의 성인으로서 짊어져야 할 중임이고 감당해야 할 일이니 피해서는 안 된다. 만약 네가 항상 이 모든 것으로부터 도피하고 벗어나려 한다면 억압적인 정서가 찾아와 너를 계속 옭아맬 것이다. 반면, 네가 올바르게 이해하고 이 모든 것을 받아들여 네 삶과 인생의 일부로 여긴다면 이 문제들은 네게 부정적 정서가 생겨나는 이유가 될 수 없을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5)>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은 간단하고 쉬운 일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만약 이런 환경에서 도피하려고만 한다면 저는 늘 억압된 감정에 휘말릴 것입니다. 리더가 사역을 감독하는 것도 제가 본분을 잘 이행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저는 패괴 성품을 지니고 있어 본분을 늘 건성으로 이행하기 때문에, 리더가 감독해야 패괴 성품에 따라 제멋대로 굴지 않습니다. 이는 제가 본분을 잘 이행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저는 더 이상 예전처럼 억압된 감정 속에 살아서는 안 되고 제 태도를 바로잡고, 리더의 감독을 올바로 마주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제 상태가 점차 바로잡혀갔고 그 후로 저는 여러 사역에 정상적으로 협력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생각할 수 있고 할 수 있는 모든 일에는 온 힘을 다해 협력했고 제가 할 수 없는 일은 즉시 리더에게 편지를 써서 해결의 길을 구했습니다. 비록 지금도 사역 상의 어려움과 스트레스가 여전히 많지만 억압이나 고통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책임감이 생겼습니다. 억압된 감정에서 벗어나 어른스럽게 자기 책임을 감당하도록 저를 이끌어 준 것은 하나님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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