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본분 조정에 순종하지 못했는가

2025.9.12

중국 왕위안(王遠)

저는 하나님을 믿은 지 얼마 안 돼 교회에서 영상을 제작하고, 그 후로는 또 줄곧 문서 본분을 이행했고, 게다가 접하는 사람들도 늘 윗선 리더들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본분들을 이행하면 진리를 많이 깨닫게 되어 나중에 구원받을 희망도 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무 사역을 하는 몇몇 형제자매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이 매일 외부적인 일로 바쁜 것을 보고, 그 형제자매들은 그저 열정만 있을 뿐, 대부분은 진리 원칙도 모르고 생명 진입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리더 일꾼과 문서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이 구원받을 기회가 더 크다고 더욱 확신하게 되었고, 줄곧 문서 본분을 이행할 수 있었던 것을 무척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023년 4월, 저는 문서 본분에서 성과를 내지 못해서 조정이 되었고, 그 후 교회에서 정리 사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리더에게서 이런 편지를 받았습니다. “지금 네트워크 기술을 아는 사람이 시급한데, 형제님은 이 방면에 특기가 있으니 이 본분을 맡기려고 합니다.” 이 편지를 보자 제 마음은 진정되지 않았고 반발심으로 가득 찼습니다. ‘도대체 안배를 할 줄 아는 거야, 마는 거야? 나는 오랫동안 문서 본분을 이행했고, 사람을 분별하는 방면의 원칙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데, 왜 내 특기를 근거로 본분을 안배해 주지 않는 거지?’ 그 이틀간 앞으로 네트워크 기술 본분을 해야 한다고만 생각하면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이 본분은 그냥 힘만 쓰는 일이야. 매일 각종 소프트웨어를 다루고, 접하는 사람과 일도 적으니 얻는 진리도 적을 거야. 아무리 잘해도 힘 쓰는 자에 불과하고, 결국엔 도태되고 말겠지. 하지만 리더와 문서 본분을 이행하면 매일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 원칙을 접하고, 훈련도 많이 받고, 깨닫는 진리 원칙도 많아서 생명도 빨리 성장하고, 나중에 구원받을 희망도 클 거야.’ 하지만 이성의 차원에서 저는 그래도 마지못해 받아들였습니다.

처음에는 자오레이 형제가 제게 기술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배우는 동안 저는 제가 다룰 줄 모르는 강의 프로그램도 많고, 예전에 배웠던 기초적인 것들도 거의 다 잊어버렸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파고들며 연구할 생각도 하지 않고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만약 열심히 배워서 기술을 빨리 익히게 되면, 리더가 내가 잘 배우는 것을 보고 이 본분을 장기간 맡기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자 저는 그다지 열심히 배우지 않았고, 자오레이 형제가 준 좋은 기술 업무 강좌들도 볼 마음이 없었습니다. 배운 지 며칠 되지 않았을 때, 접대 가정에 안전상의 문제가 생겨 저희는 훈련을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본분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속으로 무척 다행이라고 여겼습니다. 리더에게 배운 상황을 보고할 때도 고의로 제가 익힌 기술 몇 가지를 빼고 보고했습니다. 그러면 리더가 제 학습 성과가 좋지 않은 것을 보고 틀림없이 제가 이 방면에 특기가 없다고 여겨 다른 본분을 안배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리더가 뜻밖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자기기를 수리하는 형제가 타지에서 본분을 이행해야 해서 그 일을 이어받을 사람이 급히 필요해요. 형제님은 네트워크 기술을 습득하지 못했으니 컴퓨터 수리를 공부해 보세요. 습득할 수 있을지 한번 봅시다.” 이 소식을 듣고 저는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어째서 이런 결과가 나온 거지? 수리를 배우느니 차라리 네트워크 기술을 배우는 게 낫겠어! 이건 믿지 않는 사람이 힘만 써서 일하는 것과 같은데, 무슨 진리를 얻을 수 있겠어? 예전에 한 형제가 형제자매들에게 전자기기 수리해 주는 일을 8년이나 했다고 하던데, 나도 만약 습득하게 되면 그 형제처럼 앞으로 계속 이 본분을 이행하게 되는 거 아닐까?’ 그 순간 저는 완전히 절망에 빠졌습니다. ‘설마 나는 앞으로 사무적인 사역만 하고, 힘만 써야 할 운명이란 말인가? 하나님의 사역도 끝나 가는데, 나에게 아직 구원받을 희망이 있을까?’ 생각할수록 억울해서 며칠은 밥 생각도 나지 않고 온종일 한숨만 나왔습니다. 형제자매들은 제 상태를 보고 이 환경에 순종해야 한다고 교제해 주었지만, 저는 속으로 무척 반발했습니다. ‘말이야 듣기 좋지. 만약 공과를 배우고 순종하게 되면 앞으로 이 본분만 해야 할 텐데, 그럼 나는 힘 쓰는 자가 되는 거잖아? 그런데도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겠어?’ 그 후 저는 의기소침한 기분으로 수리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고, 속으로는 아무런 의욕이 나지 않았습니다. 지난 몇 년간 하나님을 믿으며 열정적으로 본분을 이행했는데, 결국 힘 쓰는 자라니, 저는 심지어 앞으로 어떤 결말을 맞게 될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그 후로도 며칠은 본분을 이행할 의욕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런 상태로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내적 상태가 옳지 않은 것 같아서 양심에 가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지금 저는 순종할 수가 없습니다. 마음이 몹시 소극적이고, 이 본분을 이행하면 좋은 앞날과 종착지가 없을 것만 같습니다. 하나님, 제 상태가 옳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당신의 뜻을 깨달을 수 있도록 저를 깨우치고 이끌어 주셔서, 이 환경에 순종하여 본분을 잘 이행하게 해 주십시오.” 기도를 드린 후,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지금부터 열심히 추구해야 하는데, 어떻게 추구해야 하느냐? 어떤 일에서 자주 하나님을 거역하는지 반성해야 한다. 하나님은 몇 번이고 너에게 상황을 마련해서 공과를 배우게 하고, 그 일을 통해 너를 변화시키고 하나님 말씀을 네 안에 만들어서 네가 이 방면의 진리 실제에 진입하고, 네가 그 일에서 사탄의 패괴 성품이 아닌 하나님 말씀에 따라 살아가고, 하나님 말씀을 네 안에 만들어서 네 생명이 되게 하려고 했다. 그런데 너는 그럴 때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에게 순종하지 않고,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하나님 말씀을 마땅히 지켜야 할 원칙으로 삼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살아 내지 않았다. 너는 하나님 마음을 아프게 했고, 구원받을 기회를 하나씩 하나씩 잃어 갔다. 그렇다면 어떻게 바로잡아야 하겠느냐? 오늘부터 네가 반성할 수 있는, 분명히 느낄 수 있는 문제에서 하나님의 지배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진리 실제와 생명으로 삼고, 삶의 방식을 바꿔야 한다. 그리고 이런 일이 닥쳤을 때 육을 저버리고, 자신의 기호를 버리고, 진리 원칙에 따라 행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실행의 길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20)> 중에서)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깨달았습니다. 최근 들어 연이어 본분이 조정되었는데, 제가 순종하지 않으려 할수록 조정된 본분이 제 뜻에 맞지 않았습니다. 알고 보니 그 이면에는 제가 자발적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신을 반성하고 진리를 구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숨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을 오해해서, 하나님께서 저를 온전케 하여 진리를 얻게 하실 기회를, 그분이 저를 드러내고 도태시키려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으로 정말이지 하나님 마음을 너무 아프게 해 드렸습니다! 저는 우선 순종하고 나서, 이번에 몇 차례 본분이 조정되는 과정에서 어떤 패괴를 드러냈는지 반성하고, 진리를 구해 해결하는 데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그 며칠간 저는 계속 반성했습니다. ‘나는 왜 본분 조정에 순종하지 못할까? 나는 늘 리더와 문서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만이 구원받을 수 있고, 사무적인 사역을 하는 사람은 구원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내 관점이 진리에 부합할까?’ 그렇게 구하던 중,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구원받는 것이 어떤 것인지 꿰뚫어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혹자는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으면 구원받을 거라고 생각하고, 혹자는 영적 도리를 많이 이해하면 구원받을 거라고 생각하며, 또 혹자는 리더 일꾼이 되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전부 사람의 관념과 상상이다. 핵심은 구원받는 것의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 구원받는 것은 주로 죄악과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 진실로 하나님께로 돌아오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죄악에서 벗어나고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려면 반드시 무엇을 갖춰야겠느냐? 진리를 갖춰야 한다. 사람이 진리를 얻으려면 수많은 하나님 말씀으로 무장해야 하고, 하나님 말씀을 체험하고 실행할 줄 알아야 한다. 진리를 깨닫고 실제에 진입하는 것이야말로 구원에 이른 것이다. 구원받는 것은 하나님을 얼마나 오래 믿었는지, 얼마나 많은 지식을 쌓았는지, 은사와 재능이 있는지, 얼마나 고생했는지 등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구원받는 것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은 오직 진리를 얻었는지 여부이다. 그렇다면 지금 너는 마음속으로 얼마나 많은 진리를 깨달았느냐? 하나님 말씀 중 네 생명이 된 것은 몇 구절이나 되느냐? 하나님의 모든 요구 중 어떤 것에 진입했느냐? 하나님을 그렇게 오래 믿었는데, 하나님 말씀 실제에 얼마나 진입했느냐? 만약 네가 모르거나 하나님 말씀 실제 중 그 어떤 것에도 진입하지 못했다면 내가 솔직히 알려 주겠다. 네가 구원받을 희망은 없으며, 너는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 네가 지식이 많고, 하나님을 오래 믿었으며, 외모가 봐 줄 만하고 말재간이 좀 있고, 또한 몇 년 동안 리더 일꾼을 했다고 해도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실행하지도 체험하지도 않아 참된 체험 간증이 없다면 네가 구원받을 희망은 여전히 없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기초이다> 중에서)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깨달았습니다.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그 과정에서 순종하는 마음을 가지고, 닥치는 일마다 진리를 구해 패괴 성품과 잘못된 사상 관점을 해결하는 데 집중한다면, 또한 자신의 육을 저버리고 진리 원칙에 따라 본분을 이행하고, 더는 하나님을 거역하거나 대적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사람은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구원받는 것은 사람이 도리를 얼마나 얘기할 수 있는지, 어떤 본분을 이행하는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습니다. 이전에는 리더 본분과 문서 본분을 이행하면서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접하고, 형제자매의 각종 상태와 문제를 깊이 생각해서 해결하고, 매일 생명 진입과 관련된 주제로 교제하면, 그만큼 많은 진리를 얻고 생명도 빨리 성장해서 나중에 구원받을 희망도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반면, 사무 본분은 그저 힘 써서 일하는 것으로 생각해서 생명 진입도 없고 결국에는 힘 쓰는 자밖에 될 수 없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저는 소극적이고 대항하는 상태에 빠져 그 본분을 이행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저의 이런 관점은 잘못된 것이었고,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하지 않았습니다. 교회에서 출교된 적그리스도들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리더 일꾼의 본분을 이행한 적이 있고, 얘기할 수 있는 글귀와 도리도 많고, 남들에게 교제도 아주 잘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시종일관 진리를 구해 자신의 패괴 성품을 해결하려 하지 않았고, 오랫동안 리더 일꾼의 본분을 이행했음에도 생명 성품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들 중 어떤 이들은 늘 지위를 추구하며 자기와 뜻이 다른 사람을 배척하고 형제자매를 억압하여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다가 출교되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글귀와 도리를 말하며 자신을 높이고 드러내 사람들을 미혹하고, 사람들을 자기 앞으로 데려와 독립 왕국을 세우다가 출교되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체포된 후 개인의 이익을 위하느라 경찰의 위협과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삼서(三書)’에 서명하고 유다가 되어 출교되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저는 지난 몇 년간 문서 본분을 이행하며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고, 제 관념대로라면 저는 어느 정도 진리를 얻고 진리 실제가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본분이 조정되어 사무적인 사역을 하게 되자 받아들이지도 순종하지도 못하고 소극적이고 대항하는 상태에 빠졌습니다. 이 또한 진리 실제가 조금도 없는 것입니다! 리더 본분, 문서 본분을 이행해야 구원받을 희망이 크다는 제 생각이 근본적으로 틀렸음을 알았습니다. 여기까지 반성하고 나서야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본분 이행 과정에서 공과를 배워 자신의 패괴 성품을 해결하는 데 중점을 두지 않는다면,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힘만 쓰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떤 본분을 이행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늘 자신을 반성하고, 자발적으로 진리를 구하고 실행하여 자신의 패괴 성품을 해결함으로써 최종적으로 진리를 얻느냐 하는 것이고, 그래야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그 후,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본분을 조정하는 일이 생길 경우, 교회의 결정이라면 당연히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한다. 게다가 자신을 반성하고, 문제의 본질과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해야 한다. 이는 사람에게 도움이 많이 되고 또한 사람이 반드시 실행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간단한 일은 평범한 사람도 밝히 알고, 올바르게 대할 수 있다. 여기에는 그렇게 어려운 점도, 넘지 못할 장벽도 없다. 사람은 본분 조정에 관한 일이 생기면 최소한 순종해야 하고, 자신을 반성하여 어느 정도의 수확도 거둬야 하며, 자신의 본분 이행이 합격인지에 대해 올바로 평가해야 한다. 하지만 적그리스도는 그렇지 않다. 어떤 일에서든 그들의 모습은 평범한 사람과는 다르다. 어떤 점이 다를까? 그들은 순종하지 않고, 적극 협력하지도 않으며, 전혀 진리를 구하지도 않는다. 그 대신 속으로 반감을 품고, 반발하고, 분석하고, 연구하며 머리를 짜내어 추측한다. ‘왜 나보고 이 본분을 이행하지 말라는 걸까? 왜 내 본분을 중요하지 않은 본분으로 조정했을까? 설마 나를 드러내 도태시키려는 걸까?’ 그들은 속으로 일어난 일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분석하고, 고민한다. 일이 닥치지 않으면 상관없지만, 일이 닥치면 그의 내면은 거센 파도가 일듯 세차게 요동치고, 생각하는 문제가 많아진다. 겉으로 볼 땐 남들보다 문제를 더 잘 사고하는 것 같지만, 사실 적그리스도 부류의 사람은 평범한 사람보다 더 사악하다. 사악하다는 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느냐? 그는 일을 고려할 때, 극단적이고, 복잡하며, 은밀하다. 정상적인 사람, 양심과 이성이 있는 사람은 생각지 못하는 일이 그의 마음속에서는 밥 먹듯 흔히 생각하는 일이다. 본분을 조정하는 이런 간단한 일에 있어 사람은 마땅히 순종하는 마음을 품어야 한다. 하나님 집에서 시키는 대로 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바를 하며, 무슨 일을 하든 힘이 닿는 대로 해내고, 전심전력을 다해야 한다. 하나님이 하는 일은 틀림이 없다. 이렇게 간단한 진리는 양심과 이성이 조금만 있는 사람은 다 실행할 수 있다. 하지만 적그리스도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 바로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집의 안배에 순종하는 법이 없고, 시종일관 자신의 본분, 명예, 이익, 지위를 복받을 희망이나 훗날의 종착지와 긴밀하게 연관 짓기 때문이다. 마치 그의 명예와 지위를 잃게 되면 복받거나 상받을 희망이 사라지고, 자기 목숨을 앗아 가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는 ‘조심해야겠어. 경솔하게 굴면 안 돼! 하나님 집, 형제자매들, 리더 일꾼, 심지어 하나님까지도 믿을 수 없어. 모두 내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고. 사람한테 가장 믿음직하고 신뢰할 만한 존재는 바로 자기 자신이야. 스스로를 위해 계산하지 않는다면, 누가 남을 생각해 주겠어? 또 누가 남의 앞날을 생각해 주겠어? 남이 훗날 복을 받을지 말지를 누가 생각해 주겠어? 그러니까 난 스스로를 위해 세심하게 계획하고 계산해야지. 실수해서도 조금이라도 경솔히 굴어선 안 돼. 그러다가 이용당하면 어떡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집의 리더 일꾼을 경계하고, 다른 사람이 그를 분별하고 간파해서 교체할까 봐, 복받으려는 꿈을 망쳐 놓을까 봐 두려워한다. 그는 명예와 지위를 반드시 지켜야 복받을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적그리스도는 복받는 일을 하늘보다도, 목숨보다도 크게 생각하고, 진리 추구나 성품 변화, 구원받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며, 본분을 잘 이행하거나 기준에 맞는 피조물이 되는 것보다도 더 중요하게 여긴다. 그는 기준에 맞는 피조물이 되는 것, 본분을 잘 이행하는 것, 구원을 받는 일을 다 사소한 일, 언급할 가치도 없는 하찮은 일로 생각하고, 복받는 일만 평생에 영원히 잊지 못할 일로 여긴다. 어떤 큰일이나 작은 일이 닥치든 복받는 것과 연관 짓고 조심하고 신중하며 자신을 위해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해 둔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12조 복받을 희망이나 지위가 없으면 물러나려 한다> 중에서) 하나님께서는 적그리스도에게 정상적인 이성이 조금도 없으며, 그가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하는 목적은 오직 하나, 복을 받으려는 것뿐이라고 폭로하셨습니다. 교회가 어떤 본분을 안배하든, 적그리스도는 어떻게 순종하고 받아들여 본분에 전력을 다할지를 먼저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눈앞의 본분이 자신의 앞날과 종착지에 영향을 미칠지를 고려하며 조심스럽게 계산합니다. 본분이 조정된 후에는 복을 받고자 하는 자신의 욕망이 깨질까 봐 걱정하고, 자신이 앞으로 복을 받는 데 불리하기만 하면 반감을 품고, 반발하고, 시기하고, 연구하는 등, 본성이 무척 사악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드러내심에 비추어 보니, 제가 드러낸 성품이 바로 적그리스도와 같았습니다. 리더가 사역의 필요와 저의 특기에 따라 네트워크 기술을 배우라고 안배한 것은 교회 사역을 지키기 위함이었고, 정상적인 인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순종하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네트워크 기술 본분이 사무적인 사역에 속하므로 진리도 거의 얻지 못하고 구원받을 기회도 적다고 여겨 반발하고, 속으로 리더를 원망했습니다. 나중에 마지못해 본분을 이행하기로 약속하고서도 열심히 배우지 않았고, 심지어 잔꾀를 부려 제가 습득한 기술을 줄여서 보고함으로써 제가 이 본분에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리더가 오해하도록 만들려고 했습니다. 나중에 리더가 저에게 수리 기술을 배우라고 한 것도 형제자매들이 전자기기를 정상적으로 사용해서 영 생활을 하고 본분을 이행하도록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수리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진리를 추구하고 얻는 데에 불리하고 그저 힘 쓰는 일에 불과하다고 여겼기에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리더가 제게 본분을 조정한 것은 원칙에 따른 실행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조정을 통해 저의 하나님 믿을 때의 불순물과 본분을 대하는 잘못된 관점을 드러내고, 제가 진리를 구해 이런 패괴 성품들을 해결하도록 한 것이니 제 생명 진입에 유익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도리어 원망하고 오해하며, 하나님께서 사무 본분을 통해 저를 드러내고 도태시키려 하신다고 추측했습니다. 하나님께 의심과 경계심으로 가득했으니, 정말이지 너무 사악했습니다! 하나님의 드러내심을 통해 반성해 보니, 지난 수년간 제가 버리고 헌신한 것은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본분 이행을 통해 하나님께로부터 아름다운 종착지를 얻으려 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본분이 조정된 후 복을 받을 희망이 깨졌다고 생각해서 본분을 건성으로 대충 이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인성이 없고, 너무나 이기적이고 비열했습니다.

그 후,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명대로 일을 했을 때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몰랐고, 하나님이 무엇을 이루려는지도 몰랐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명하여 그가 해야 할 일을 지시했을 뿐 많은 설명은 하지 않았다. 노아는 명대로 행했지 사사로이 하나님의 뜻을 추측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께 대항하지 않았고 두 마음을 품지도 않았다. 그는 순진하고 단순한 마음으로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고 순종하는 것이 바로 그가 일을 하는 데 있어 가졌던 신념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부탁을 대함에 있어 그토록 명쾌하고 단순했다. 노아의 본질, 즉 그 행위의 본질은 순종이다. 의심하지 않고 대항하지 않으며 개인적 이익이나 이해득실을 고려하지도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홍수로 세상을 멸한다고 말씀하자 그게 언제냐고 묻지 않았고, 상세한 내용도 묻지 않았으며, 하나님이 왜 세상을 멸하는지에 대해서도 묻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의 명대로 행했을 뿐이다. 하나님이 무엇으로, 어떻게 지으라고 명한 대로 그는 일일이 행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곧바로 행동을 개시했다. 그는 하나님을 흡족게 해 드려야겠다는 태도를 바탕으로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했다. 노아는 자신이 재난을 피하기 위해 그랬던 것이냐? 아니다. 그는 하나님께 얼마 후 세상을 멸할 것인지 물어보았느냐? 그러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는 자신이 방주를 짓는 데에 시간이 얼마나 소요될지 하나님께 물어보았느냐? 아니면 노아 스스로 알고 있었느냐? 노아도 몰랐다. 그는 단순하게 순종하고 명령대로 행했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1>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노아가 본분을 대하는 태도가 하나님께서 칭찬하시는 것이며, 저 또한 본받아 진입해야 할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하셨을 때, 노아는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부탁을 대함에 있어 대항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뜻을 추측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단순하게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했습니다. 저도 노아를 본받아 힘닿는 데까지 제 본분을 다하는 한편, 복을 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진실하게 순종하기를 구해야 합니다. 또한, 저는 본분을 이행하며 공과를 배우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합니다.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패괴는 드러나게 마련이므로,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신 환경에서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붙잡고 스스로를 반성하며, 진리를 구해 해결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합니다. 그래야 수확을 거둘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모든 사람을 공의롭게 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번도 리더 본분과 문서 본분을 이행해야만 구원받을 수 있고, 사무 본분을 이행하면 인정받을 수 없다고 말씀하신 적이 결코 없습니다. 어떤 방면의 본분을 이행하든, 중요한 것은 사람이 진리를 구해 공과를 배울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체험 간증 영상에서 어떤 형제자매들은 접대 본분을, 어떤 이들은 전자기기 수리 본분을 이행합니다. 이 모든 것이 사무적인 사역이지만, 그들은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진리를 구해 자신의 패괴를 해결하는 데 중점을 두어 생명 성품에 변화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결말과 종착지를 정하시는 원칙을 몰랐기에, 늘 제 생명 진입에 유리하다고 생각되는 본분만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반성하고 생명 성품의 변화를 추구하는 데에는 중점을 두지 않았습니다. 설령 제가 계속 문서 본분을 이행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것이 제가 진리를 얻었음을 의미하겠습니까? 제 성품이 변화되었음을 의미하겠습니까?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결국에는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나니, 이제 제가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은 눈앞의 본분을 잘 이행하는 것이고, 최종적으로 구원받을 수 있을지는 제가 고려할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 후 저는 본분에 마음을 쏟기 시작했고, 본분을 이행하는 동시에 제 마음과 생각, 그리고 패괴 성품을 반성하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수리를 배우려면 메인보드 설계도를 보고 각종 부품의 작동 원리를 파악해야 했는데, 처음 배울 때는 골치가 아팠습니다. 속으로 ‘수리 기술이 꽤 어렵네. 나 같은 자질로 배울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때로는 계속 보고 있으면 배우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반성을 통해 저는 제가 본분을 이행하다 어려움을 만나면 뒤로 물러서는 것은 주로 본분을 착실히 이행하지 않고, 육을 즐기며 발전하려 하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마음이 조금도 없기 때문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방면의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 먹고 마시고, 형제자매들의 체험 간증을 보며 실행의 길을 찾았습니다. 본분을 이행할 때 어려움을 만났다고 물러서서는 안 되며, 노아를 본받아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노아는 당시 방주 만들기가 얼마나 어렵고 작업량이 얼마나 많든 그 어려움에 겁먹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온 힘을 다해 협력하고, 방주를 만드는 과정에서 생기는 각종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여 마침내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했습니다. 지금 제가 이행하는 본분의 어려움은 노아의 그것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게다가 수리를 공부할 때는 자료도 있고 형제자매들이 경험도 나눠 주니, 하나님을 의지하여 착실하게 협력하기만 하면 이런 어려움들은 능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 제가 마음을 다잡고 차근차근 배우기 시작했을 때, 비록 배우는 속도는 느렸지만 습득할 수 있었고, 제가 생각했던 것만큼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한동안의 훈련을 통해 저는 수리 기술을 일부 습득했을 뿐만 아니라, 생명도 조금 성장했습니다. 하루하루가 보람이 있었습니다.

이번 본분 조정을 겪으며 저는 본분을 대하는 제 잘못된 관점을 어느 정도 인식하고 바로잡게 되었고, 동시에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하는 제 속셈이 옳지 않음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여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기 위함이 아니라, 복을 받기 위함이었으니 하나님의 뜻에 합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저는 그저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잘 순종하여 눈앞의 본분을 잘 이행하기를 원할 뿐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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