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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오다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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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모의

하나님 사랑은 가득해 사람에게 값없이 베풀고 사람을 둘러싸고 있다. 사람은 순진무구하고 아무 걱정 없이 하나님의 눈 아래서 행복하게 산다. … 네가 양심과 인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따스함을 느끼고 걱정과 사랑을 받는다고 느끼고 행복하다고도 느낄 것이다.”(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ㆍ하나님의 사랑은 사람에게 얼마나 중요한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저는 항상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감동을 억제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제가 전에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거역했다가 길 잃은 한 마리 양이 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었을 때, 하나님께서 저를 떠나지도 포기하지도 않으시는 그 사랑으로 하나님 집에 돌아오도록 인도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저는 주 안의 형제자매들, 그리고 아직도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못한 친구들에게 제가 하나님 집으로 돌아오게 된 체험을 나누고자 합니다.

어릴 때, 저는 항상 부부 싸움을 하는 부모님 밑에서 공포에 떨며 살았습니다. 그런 까닭에 제게는 온전한 삶의 목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죽는 것은 두려웠습니다. 사람이 왜 태어나는지, 또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그저 아득한 속에서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만 들었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 어머니가 이웃의 권유로 예수님을 믿게 되면서 저도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하나님이 창조주이시고, 인류를 죄에서 구속하시기 위해 친히 성육신하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사람의 속죄제가 되셨음을 알게 되었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나도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사랑에 격려받아, 저는 주님을 잘 믿어 그 사랑에 보답하겠다고 굳게 다짐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인생에 방향과 목표가 있게 되었고, 자주 예배를 드리고 성경을 읽고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마음도 점점 즐거워졌습니다. 더욱이 성경에서 말세가 오면 하나님께서 구름을 타고 오셔서 저희들을 하늘로 끌어올린다는 내용을 보고는 기대로 가득 찼습니다. 게다가 목사님도 예배드릴 때면 항상 저희들에게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사도행전 1:11)라는 이 성경 말씀을 해석해 주셨으니까요. 저는 예수님께서 꼭 흰 구름을 타고 오셔서 우리를 하늘 집으로 데려가실 것이라고 더더욱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2005년, 저는 한국 남자 친구를 사귀게 되어 그를 따라 한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데다 중국인들이 다니는 교회를 찾지 못한 저는 갈수록 연약해지면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을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결혼을 했지만 저희 부부는 문화적 차이가 너무 컸던 탓에 더 이상 같이 생활할 수 없게 되어 얼마 지나지 않아 이혼하게 되었습니다. 결혼 생활에 좌절을 겪은 저는 마음에 큰 상처를 입고 심적 고통이 심했습니다. 게다가 친척이나 친구 하나 없는 타국에서 너무나도 외로웠습니다. 저는 단지 묵묵히 기도로 하나님께 마음속 고충을 털어놓으며 하나님께서 저에게 중국인 교회를 찾도록 인도해 주져서 하나님 집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1년 후, 저는 어떤 장로 교회의 중국인 예배 모임을 찾게 되어 너무나 기뻤습니다. 드디어 다시 교회에서 하나님께 경배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저를 실망케 한 것은 그 교회 목사님이 매번 예배에서 저희들에게 성경 구절을 읽어 주고는 겉면의 뜻만 해석해 주기 때문에 새로운 빛 비춤이나 누림이 조금도 없고 생명 공급도 받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형식적인 예배에 불과했습니다. 예배 때에는 서로 귓속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모바일 게임을 하는 사람도 있었으며, 또 잠을 자는 사람도 있었고, 애인을 사귀러 온 사람도 있었으며, 심지어 어깨동무하고 앉아 있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저는 ‘교회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곳이고 성전이야.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예배드리면서도 전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으니 하나님께서 보시고 얼마나 혐오하실까! 이런 부정한 곳은 주님께 버림받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목사님과 전도사님은 그런 광경을 못 본 척하면서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사악한 세상의 타락된 온상에서 살면서 점차 방탕함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여가 시간에는 늘 친구들과 같이 술이나 마시고 다녔기 때문에 제게서 하나님을 믿고 있는 사람의 그림자는 전혀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마음이 주님에게서 멀어지려고 할 때마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마태복음 12:43~45)라는 주님의 말씀이 머릿속에 떠오르곤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님의 말씀에 단속받아 보호를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자신이 하나님의 노를 사서 주님께 혐오받고 버림받아 더러운 귀신들의 손아귀에 떨어질까 봐 두려웠기 때문에 주님을 너무 멀리할 엄두는 내지 못했고, 도를 지나치는 일을 할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2016년 크리스마스 때, 교회에서는 활기찬 분위기를 만들기 위하여 예술에 재능이 있는 몇몇 형제자매들에게 프로그램을 만들어 공연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때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자매가 찬양을 불렀습니다. 『‘아담에 대한 하나님 부탁’, 이 그림은 감동적이면서도 따스한 그림이다. 그림 속에 하나님과 사람만 있으나 그 친밀한 관계는 사람을 부러워하게 한다. 하나님 사랑은 가득해 사람에게 값없이 베풀고 사람을 둘러싸고 있다. 사람은 순진무구하고 아무 걱정 없이 하나님의 눈 아래서 행복하게 산다. 하나님은 사람을 걱정하고 사람은 하나님의 보호 아래서 살고 있다. 사람의 일언일행은 다 하나님과 밀접히 관련되어 갈라놓을 수 없다. 하나님은 인류를 창조한 그 순간부터 인류에 대하여 책임이 있었다. 그의 책임은 무엇인가? 그는 사람을 보호하고 보살피려 하였다. 그는 사람이 그의 말씀을 믿고 그의 말씀을 따를 수 있기를 바랐는데, 이것도 역시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첫 기대이다 … 하나님의 마음속에 사랑과 걱정이 있는가, 없는가? 여기서 하나님의 사랑과 근심을 느낄 수 있고 확실히 더듬을 수 있다. 네가 양심과 인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따스함을 느끼고 걱정과 사랑을 받는다고 느끼고 행복하다고도 느낄 것이다. 네가 이런 것을 느끼게 될 때 하나님에 대하여 어떠할 것인가? 하나님을 그리워하고 하나님에 대하여 마음속에 공경과 사랑이 생기지 않겠는가? 마음이 하나님을 가까이하지 않겠는가? 보다시피, 하나님의 사랑은 사람에 대해 얼마나 중요한가!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이해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ㆍ하나님의 사랑은 사람에게 얼마나 중요한가)

크리스천 기도

저는 노래를 듣는 내내 찬양의 한 글자 한 구절에 흥분을 감출 수 없었고, 감동의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렸습니다. 저는 마치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함께함도 있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만물과 공기, 햇빛도 물도 누리고 있어. 이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이 깃들어 있지 않은 것이 어디 있단 말인가! 내가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모든 것들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마음은 오히려 하나님을 멀리하고 있었으니, 하나님께서 얼마나 마음 아프셨을까?’ 더욱이 “네가 양심과 인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따스함을 느끼고 걱정과 사랑을 받는다고 느끼고 행복하다고도 느낄 것이다.”라는 구절에서 저는 하나님께서 저를 부르시고 계시고 저의 영을 부르시고 계신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2007년, 제가 남편과의 생활을 유지해 나갈 수가 없어 오갈 데 없이 헤매고 있었을 때, 하나님은 제게 외국인 이주여성 보호센터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보호센터에서는 저에게 무료로 숙식을 제공해 주고, 무료로 변호사를 선임하여 이혼 절차도 도와주었습니다. 또 제가 국적 신청 때문에 도움이 필요할 때도 하나님께서 제게 장로 교회를 마련해 주신 덕분에 예배부의 부장님이 보증인이 되어 주셨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원래 보증을 잘 서 주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특히, 제가 외국인이었고, 당시에는 교회에 서너 번밖에 나가지 않았을 때였음에도 불구하고 저에게 선뜻 도움을 주셨다는 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저를 묵묵히 도와주셨기 때문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 국적을 신청하려면 본인 명의로 3천만 원 상당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어야 하는데, 저는 3백만조차도 없었습니다. 그때 출입국 사무소 직원이 저에게 회사의 재직 증명서를 발급받아 생활 능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으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조금도 저를 힘들지 않게 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항상 저에게 도움이 가장 필요할 때마다 기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것은 모두 하나님의 주재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이 그토록 넓고 깊었어도 저는 패역하게도 하나님을 잊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었죠. 그 찬양은 저의 마음과 영을 감동시켰습니다. 저는 더 이상 타락되어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이 없이 처음의 믿음을 회복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졌습니다.

2017년 2월 19일, 저는 머리와 눈이 심히 아파 병원에 갔었는데, 치료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때 교회에 다니는 이(李) 자매가 저에게 한의사를 하는 친구가 있는데 일주일 동안 치료하면 효과를 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자매를 따라 치료를 받으러 가게 되었습니다. 그날, 우리는 김 형제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분은 한의사의 친구였습니다. 뜻밖에 거기에서도 주님을 믿는 형제를 만나게 되니 저는 그것이 하나님의 안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형제님과 성경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 형제님은 우리에게 ‘열 처녀의 비유’를 읽어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제게 물었습니다. “자매님, 주님께서 돌아오시기를 바라십니까?” 그래서 제가 “당연하죠!”라고 대답했더니, 그 형제님은 “그럼 주님께서는 어떻게 오실까요?”라고 되묻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조금도 주저 없이 “성경에는 구름을 타고 오신다고 했어요”라고 말했더니, 그 형제님은 “아시나요? 실은 주님께서 이미 돌아오셨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 “마가복음 13장 32절에서는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아무도 주님께서 언제 오시는지 모르는데, 주님께서 돌아오셨다는 걸 형제님은 어떻게 아셨죠?”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형제님은 직접 대답하지는 않고 저에게 하나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예언에 관한 성경 구절을 몇 군데 찾아 주었습니다.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누가복음 12장 40절), “번개가 하늘 아래 이편에서 번뜻하여 하늘 아래 저편까지 비췸 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바 되어야 할찌니라”(누가복음 17장 24~25절),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시록 3장 20절),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요한복음 10장 27절)

성경을 다 읽자 그 형제님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깨어 기다리고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오시는 그날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언에 의하면 주님께서는 인자의 형상으로 돌아오실 것이라고 했지요. ‘인자’라 함은 사람이 되신 하나님, 즉 말씀이 육신이 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오시는 정확한 시간은 모르겠지만 하나님의 음성인가에 근거하여 하나님이신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양은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듣기에 음성을 알아들으면 하나님을 따르게 되죠…”라고 했습니다. 그때 저는 과거에 목사님이 예수님께서 성육신으로 돌아왔다고 증거하는 것은 모두 가짜라고 했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러자 그 형제님의 말은 저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목사님께 “어떤 사람이 저에게 주님이 성육신으로 돌아오셨다고 전하고 있는데, 그들은 무슨 교회인가요?”라는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그들이 ‘동방번개’라며 저더러 빨리 그곳을 떠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과는 접촉하지도 말고 그 사람들이 주는 책은 읽지도 말라면서 저에게 이단을 경계하라는 성경 구절을 보내 주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목사님이 한 말이 당연히 맞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는 그들의 교통을 듣지 않을 것이고, 그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20일 오후, 김 형제와 그 자매가 다시 제가 치료를 받고 있는 곳에 찾아와 제게 다시 오신 주님께서 하시는 역사에 대해 교통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마침 그날 오전에 저는 고향에 계시는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터였고, 게다가 그들이 전하는 말씀에 대해 의구심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하는 말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3일이 지났지만 그 형제님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저에게 복음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복잡했던 저는 그 형제님을 가라고 쫓았습니다. 제가 “말하지 마세요. 더 이상 계속하시면 제가 가겠습니다!”라고 했더니, 그 형제님은 제가 정말 듣지 않는 것을 보고는 어쩔 수 없이 돌아갔습니다. 저는 그 형제님이 다시는 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이튿날 정 형제라는 분과 함께 다시 찾아와 계속 저에게 복음을 전해 주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끈질긴 사람이네.’라고 생각하면서도 체면 때문에 적당히 응대하는 척하며 교류는 전혀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저의 무관심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정 형제님은 참을성 있게 “주님은 이미 성육신으로 인간 세상에 오셔서 심판 형벌의 사역을 하셨습니다.”라고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주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나타남을 찾고 구하는 형제자매마다 역사(歷史)의 비극을 재연하지 말고, 하나님을 또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당대의 바리새인이 되지 말기를 바란다. 너희는 마땅히 하나님의 다시 오심을 어떻게 영접할 것인지를 세심히 고려해야 하고, 어떻게 진리에 순복하는 사람이 될 것인지 자기의 머리를 명석하게 해야 한다. 이것은 흰 구름을 타고 돌아오는 예수를 기다리는 각 사람의 직책이다. 우리는 마땅히 영의 눈을 밝게 해야지 그런 허황된 글귀에 빠져 있어서는 안 된다. 마땅히 하나님의 현실의 역사를 생각해야 하고, 하나님의 실제적인 면을 보아야 한다. 언제나 마음이 들떠 모든 것을 잊은 채 온종일 황홀경에 빠져 있지 말고, 주 예수가 하늘의 어느 흰 구름을 타고 홀연히 너희들 가운데 강림하여 지금까지 그를 전혀 알지도 못하고 본 적도 없고 그의 뜻을 어떻게 준행하는지도 모르는 너희를 데려가기를 바라고 있지 말라. 그래도 현실적인 것을 좀 생각해 보아라!』(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앞에 쓴 말씀) 비록 하나님의 말씀은 귀에 얼마 들어오지 않았으나 그 형제님이 그렇게도 인내심과 사랑으로, 그리고 귀찮아하지도 않고 교통해 주는 것을 보고는 속으로 ‘우리 교회 사람들은 모두 참 연약해서 믿음도 없고 사랑도 다 식었는데, 어째서 ‘동방번개’를 믿는 사람들은 이렇게 큰 믿음이 있고 또 사랑이 넘치는 걸까? 대체 무슨 힘이 그들로 이렇게 끈기 있게 복음을 전하도록 뒷받침해 주고 있는 걸까?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면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야!’라고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