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기호에 따라 본분을 선택하지 않게 되다
2006년, 저는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습니다. 그 후 저는 교회에서 줄곧 리더 일꾼을 맡았습니다. 매일 바쁘고 힘들었지만 전 볼멘소리하지 않았습니다. 리더와 책임자는 모두 비교적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므로 이러한 본분을 이행하면 형제자매들이...
저는 평범한 농민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내성적이고 말수가 적어 어려서부터 가족들과 친척들은 제가 말주변이 없고 동생만큼 사람들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종종 말했습니다. 밖에서 일할 때도 저는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거나 상사에게 잘 보이지 못해 힘들고 고된 일은 모두 제가 도맡아 했습니다. 동료들도 종종 제가 머리가 나쁘고 상황 판단도 잘 못한다며 조롱하고 비웃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스스로 머리가 나쁘고 두뇌 회전이 빠르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는 평가를 속으로 받아들였고, 더욱 저 자신을 닫아버렸습니다. 저는 종종 서툰 말솜씨로 상처를 받았습니다. 특히 말재간이 좋고 두뇌 회전이 빠른 사람을 보면 무척 부러워하며 그런 사람들은 어딜 가나 사람들의 호감을 산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후 막 예배에 참석했을 때 저는 매우 위축되어 있었습니다. 말재주가 없어 제대로 교제하지 못하면 형제자매들의 비웃음을 살까 봐 걱정했지만, 형제자매들은 제가 더 많이 교제할 수 있도록 격려해 주었습니다. 형제자매들이 내적 상태나 문제를 솔직하게 털어놓고, 누군가에게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폄하하거나 무시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엄청난 해방감을 느꼈습니다. 서서히 제 말수는 늘어갔고 저는 이런 교회 생활이 무척이나 좋았습니다.
2023년 2월, 저는 양육 집사를 맡았습니다. 제가 양육한 루이징 자매는 자질이 뛰어났습니다. 자매와 몇 번 같이 예배를 드렸는데, 자매는 교제도 매우 분명했고, 문제를 바라보는 것도 저에게 뒤지지 않았습니다. 그 후 루이징과 예배드릴 때면 저는 점점 얽매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자매는 저보다 두뇌 회전도 빠르고, 자질도 뛰어나 제가 자매를 양육하는 것은 제 역량을 넘어서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매에게 어떤 내적 상태가 있어도 저는 제 교제의 깊이가 부족해 자매에게 무시당할 것이 걱정되어 간단히만 얘기하고 화제를 돌렸습니다. 한 번은 루이징의 교만한 상태가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말을 할 때면 쉬이 다른 사람을 속박하여 저는 그 부분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루이징은 자질이 뛰어나고 말도 잘하며 본분 이행에도 어느 정도 성과가 있으니 교만한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저는 자질도 부족하고 표현력도 좋지 않아 제가 자매에게 제대로 교제해 주지 않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자매에게 비웃음을 살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루이징의 교만한 문제를 간단하게만 짚고 넘어갔습니다. 또 한 번은 예배에서 루이징은 가족들이 그녀가 하나님을 믿는 것을 반대한다고 이야기하면서 속박감을 조금 느낀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저는 마침 그와 관련한 체험이 있었기에 그녀에게 교제해 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말을 몇 마디 꺼내자, 루이징은 감정적인 면에서 자신은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사실 감정에 얽매이는 것 자체가 이미 본분 이행에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저는 서둘러 자매와 교제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루이징이 그렇게 말하자 더는 교제할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속으로 ‘내가 더 교제하면, 루이징은 내가 말이 많고 통찰력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괜히 창피를 자초하지 말자. 루이징은 자질이 훌륭하니까 내가 교제해 주지 않더라도 혼자 진리를 구해 해결할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 이상 교제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후에도 루이징의 내적 상태는 계속 좋지 않았고, 본분 이행에도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 후 예배를 드릴 때마다 루이징만 있으면 저는 심한 속박감을 느꼈습니다. 제가 교제를 잘하지 못하면 루이징이 절 무시할 것이 두려워 마음이 고통스럽고 소극적으로 되었습니다. 제가 교제할 수 있는 것도 제대로 교제해 내지 못했고, 마땅한 책임도 다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답답하게 살았습니다. 저는 속으로 끊임없이 스스로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지?’라고 질문했습니다. 심지어는 하나님께서 제게 좋은 자질을 주지 않으셨다며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이 환경에서 벗어나 다른 본분으로 바꾸고 싶었습니다. 저는 제 내적 상태가 매우 안 좋다는 것을 알고는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지금 본분을 이행하면서 심한 속박감을 느낍니다. 너무 힘들고 괴롭습니다. 이 상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스스로 인식하고 그릇된 내적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게 저에게 깨우침을 주시고 이끌어주세요.’ 기도 후 저는 이와 관련한 하나님 말씀을 찾아 읽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외모도 뛰어나지 않고, 별로 똑똑하지도 않고, 말주변도 없는 탓에 가정에서든 사회에서든 남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이 애는 머리가 나쁘고, 빠릿빠릿하지도 못하고, 말재주도 없어. 다른 집 애는 사람 살살 녹게 말도 참 예쁘게 하던데, 이 애는 어떻게 된 게 종일 입이 댓 발 나와서는 사람을 봐도 한마디도 할 줄 몰라. 잘못을 해도 설명하거나 변명할 줄 모르고, 다른 사람 기분을 풀어 줄 줄도 몰라. 이 애는 멍청이야.” 부모가 이렇게 말하고, 친척과 친구들이 이렇게 말하고, 선생님도 이렇게 말한다면 그는 보이지 않는 가운데 그러한 환경으로부터 일정한 압박을 받을 것이다. 그러한 주변 환경을 경험하면서, 그에게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일종의 심리가 생긴다. 어떠한 심리겠느냐? 자기가 못생겼고,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마주치는 사람들 모두 자기를 싫어하고, 공부도 못하고, 둔하고, 숫기가 없어서 사람들 앞에서 말도 제대로 못 하고, 누가 뭘 줘도 부끄러워서 고맙다는 인사조차 못 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왜 말주변이 없을까? 남들은 왜 그렇게 말을 잘하는 거지? 나는 멍청이야!’ 그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부지불식간에 자기를 아주 한심하게 여긴다. 하지만 자기가 그렇게 한심하고 멍청하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기에 늘 속으로 자기한테 묻는다. ‘내가 정말 그렇게 멍청해? 난 정말 환영받지 못하는 거야?’ 부모가 싫어하고, 형제자매도 싫어하고, 선생님과 학교 친구들도 그를 싫어한다. 가족, 친척, 친구들이 틈만 나면 그를 두고 이런 말을 한다. “덩치 작고 눈이랑 코도 작은 걸 보면 나중에 커서도 별 볼 일 없을 거야.” 그가 거울을 보니 눈이 크지는 않다. 확실히 그렇다. 그런 환경 속에서, 그의 마음 깊숙이 자리하고 있던 반발심, 불만, 거부감, 받아들일 수 없다는 생각이 점차 자신의 부족함, 결점, 문제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쪽으로 바뀐다.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됐지만, 마음 깊숙한 곳에서 떨쳐낼 수 없는 정서가 생겨난다. 그러한 정서를 무엇이라 하겠느냐? 열등감이다. 열등감에 빠진 사람은 자기 장점이 대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자기는 남들의 호감을 얻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항상 자기가 멍청하고 사교성이 없다고 느낀다. 요컨대, 자기는 잘하는 게 아무것도 없고, 얼굴도 못생겼고, 머리도 나쁘고, 둔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눈에 띄지도 않고, 학교 성적도 안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자라면 열등감이 마음속에서 점차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한 후 일종의 벗어날 수 없는 정서가 되어 네 마음을 옭아매고 네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어른이 된 이후든, 사회에 나간 이후든, 결혼해서 독립한 이후든, 네 사회적 신분과 지위가 어떠하든, 어렸을 때부터 성장 환경에서 심어진 열등감은 네게 있어 해소할 수 없는 정서다. 심지어 하나님을 믿게 되어 교회에 온 이후에도 너는 여전히 네 외모가 그저 그렇고, 타고난 머리가 나쁘고, 말재주가 없고, 아무것도 못 한다고 여기며, 이렇게 생각한다. ‘뭐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그걸 하자. 리더를 목표로 할 필요도, 심오한 진리를 추구할 필요도 없어. 나는 기꺼이 가장 작은 자가 될 거야. 남들이 어떻게 대하든 상관없어.’ … 이런 열등감은 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이야기하면, 네 가정환경, 또 성장 환경이 네게 적당히 타격을 주거나 너를 부적절하게 규정한 탓에 네게 열등감이 생긴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 중에서) 하나님 말씀에서 저는 깨달았습니다. 제가 종종 의기소침하고 억압된 상태로 살았던 것은 열등감이라는 부정적인 감정 속에서 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말주변이 없었던 저는 집이든 밖에서 일을 할 때든 친척들과 동료들이 모두 저에게 말재간이 없고 사람들의 예쁨을 받지 못한다고 말해왔고, 저도 스스로 말솜씨가 서툴고 두뇌 회전이 둔하며 모든 부분에서 다른 사람에게 뒤떨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서서히 저는 열등감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특히, 저보다 잘난 형제자매들을 보면 열등감에 휩싸였고, 종종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감정 속에 살았습니다. 루이징과 마주할 때면 루이징이 두뇌 회전도 빠르고 말재간도 좋아 저는 스스로 표현력과 자질이 루이징보다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루이징과 같이 예배드릴 때면 속박감에 사로잡혀 자유롭게 말하지 못했습니다. 루이징의 내적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을 보고도 교제할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저는 늘 열등감이라는 부정적인 감정 속에 살았습니다. 하나님 집에서는 높고 낮음이나 귀천의 차이가 없음을 분명히 알면서도 저도 모르게 은사가 있고 자질이 뛰어난 사람을 우러러보곤 했습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정확히 대면할 수 없어 본분을 이행할 때면 종종 속박감을 느껴 성령의 역사와 이끄심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계속 가는 건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알아 서둘러 이런 상태를 바꾸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또 읽게 되었습니다. 『나약한 사람은 어떤 일이 닥치든 어렵겠다 싶으면 바로 물러난다. 왜 물러나겠느냐? 한 가지 원인으로는 열등감이 있다. 열등감 때문에 감히 사람들 앞에 서지 못하고, 자기가 다해야 하는 의무와 책임조차 다하지 못한다. 자기 능력과 자질이면 충분히 가능하고, 자기 인성과 경력으로 해낼 수 있는 일도 부담하지 못한다. 이러한 열등감은 그의 인성에 온갖 방면으로 영향을 끼치며, 그의 인격에도 영향을 끼치고, 당연히 그의 성격에도 영향을 끼친다. … 네 마음은 열등감으로 가득하며 네 열등감은 오래된 것이다. 일시적인 기분의 일종이 아니라, 네 영혼 깊숙한 곳에서부터 네 생각을 단단히 통제하고 있으며, 네 입을 단단히 막고 있다. 이 때문에 네 내면에 어떤 순수한 이해가 있든, 사람과 일에 대해 어떤 관점과 견해가 있든, 너는 속으로만 생각하고 고려할 뿐, 과감하게 입 밖으로 내어 말하지는 못한다. 남들이 인정해 주든, 아니면 지적하고 비판하든, 너는 그러한 결과를 받아들일 엄두도, 볼 엄두도 못 낸다. 무엇 때문이겠느냐? 네 열등감이 네 안에서 이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지 마. 넌 그럴 능력이 없어. 넌 그럴 자질을, 그럴 실제를 못 갖췄어. 넌 그래서는 안 돼. 그런 일을 하는 건 네가 아니야. 지금처럼 아무것도 안 하고,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열등감 아래서 사는 너야말로 진정한 너야. 너한테는 진리를 추구할 자격이 없어. 다른 사람들처럼 마음을 활짝 열고서 하고 싶은 말을 할 자격도, 남들에게 흉금을 터놓을 자격도 없어. 왜냐하면 넌 안 되니까. 남보다 못하니까.” 이런 열등감은 사람의 마음속에서 사람의 사상을 주도하면서, 한편으로는 정상인이 응당 다해야 할 의무와 응당 있어야 할 정상 인성의 생활을 억압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과 일을 바라보고,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는 방식과 방법, 그리고 방향과 목표를 주도한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사람이 열등감이라는 부정적인 감정 속에 살면 하나님 말씀에 따라 사람과 사물을 바라보거나 처신과 행동을 할 수 없으며, 자신이 해야 할 책임도 다하지 못하고 기존에 갖고 있던 자질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계속 가다가는 자신의 생명 진입이 지체될 뿐만 아니라, 심각할 경우 본분 이행에도 영향을 미치고 교회 사역을 방해하게 됩니다. 어려서부터 저는 저를 향한 외부의 평가로 열등감 속에 살았습니다. 늘 제가 다른 사람보다 못났다고 생각했고, 문제를 보더라도 언급하거나 말할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루이징과 만났을 때, 루이징의 교만한 성품이 매우 심각하고 말과 행동이 형제자매에게 속박감을 준다는 것을 보고 교제를 통해 지적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저는 제 자질이 루이징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며 제가 루이징에게 교제해 주는 것은 제 분수를 모르는 일이라고 여겨 교제할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루이징이 감정적으로 살며 본분 이행에도 영향을 준다는 것을 보았을 땐 저도 그와 관련한 체험이 조금 있었지만, 스스로 자질이 부족하다고 생각해 교제할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저는 열등감이라는 감정에 완전히 사로잡혀 두 입술이 달라붙은 것처럼 해야 할 말도 하지 못했고, 루이징이 패괴된 성품으로 사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교제할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저는 본분 이행으로 교회의 사역을 지키지 못했고, 저 자신도 고통스럽고 소극적인 상태에 빠져 해방감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정말 자신과 타인 모두를 해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너의 그러한 정서는 긍정적인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하나님께 대항하고 진리에 대항하는 것이다. 네가 보기에는 정상 인성에 속하는 일종의 정서겠지만, 하나님이 보기에는 단순한 정서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께 대항하는 방식이다. 사람이 부정적 정서라는 방식으로 하나님께, 하나님의 말씀에, 진리에 대항하는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 중에서) 지난날을 돌아보면, 저는 늘 열등감의 감정 속에서 살았습니다. 분명히 진리를 알면서도 실행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저에게 훌륭한 자질을 주지 않으셨다며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본분을 대할 때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이었으며, 심지어는 모든 것을 포기할 생각까지 했습니다. 이런 모습은 하나님께 부정적으로 맞서는 태도입니다. 스스로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느낀 저는 하나님께 기대어 부정적인 감정을 내려놓고 진입 실행의 길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그 후 하나님의 말씀을 또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자신을 정확히 평가하고, 인식하고, 열등감과 같은 정서에서 벗어날 수 있겠느냐? 너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 자신을 인식해야 한다. 자기 인성이 어떠한지, 자기 자질과 재능이 도대체 어떠한지, 자기한테 어떤 특기가 있는지 등을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예컨대 네가 원래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고 노래를 잘하는데 누군가가 음치라며, 음 이탈을 한다며 항상 트집을 잡고 너를 깎아내린다고 하자. 그러면 너는 네가 노래를 못한다고 생각해서 사람 앞에서 노래 부를 엄두를 못 낸다. 그 세인들 때문에, 그 바보나 어리석은 자들이 너에 대해 내린 부정확한 평가와 단정 때문에 네 인성에 마땅히 있어야 할 권리가 제한당하고 네 재간이 억압당한다. 결국 너는 노래 한 곡도 감히 못 부르게 되고, 아무도 없을 때, 너 혼자 있을 때만 큰 소리로 노래하며 억눌렸던 것을 해소할 엄두를 낸다. 평소에 너무 심하게 억압당했기 때문에 다른 때는 노래할 엄두를 못 내고, 혼자 있을 때만 겨우 노래를 부르며 자기 노랫소리가 맑게 울리는 시간을 즐긴다. 그 얼마나 아름답고 자유로운 시간이겠느냐! 그렇지 않으냐? 남이 네게 준 상처 때문에 너는 자기가 도대체 뭘 할 줄 아는지, 무엇에 능하고 무엇에 서툰지 알지 못하고 똑똑히 보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하나님 말씀에 근거해 자신을 올바르게 평가하고 가늠해야 한다. 자기가 배운 것, 자기 장점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하고, 할 수 없는 일, 자기 결점과 부족함은 반성하고 인식해야 한다. 자기 자질이 과연 뛰어난지 떨어지는지에 대해서도 정확한 평가와 인식이 필요하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저는 깨달았습니다. 열등감이라는 부정적인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정확하게 자신을 평가하고 판단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람과 일, 사물을 판단하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과거 저는 저를 향한 외부인들의 평가로 저 자신을 판단했습니다. 결국 어둡고 침울한 감정 속에 살며 헤어 나오지 못했습니다. 이제 저는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저 자신을 정확하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전 고민했습니다. 저는 늘 스스로 자질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렇다면 자질이 부족하거나 뛰어난 것을 판단하는 하나님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람의 자질을 어떻게 판단해야겠느냐? 진리를 대하는 태도와 진리를 이해할 수 있는지 여부에 근거해 판단해야 한다. 전문적인 업무는 매우 빨리 배우지만 진리만 들었다 하면 멍해지고, 졸리고, 속으로 어리둥절해서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자질이 부족한 것이다. 혹자는 자질이 부족하다는 말을 들으면 인정하지 않고 자신은 교양이 높으니 자질이 좋다고 생각한다. 교양이 높다고 자질이 좋다는 뜻이겠느냐? 그것은 자질이 좋다는 의미가 될 수 없다. 사람의 자질을 어떻게 판단해야겠느냐?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에 대한 이해도를 통해 사람의 자질을 판단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말재간이 좋고 머리를 잘 굴리며 사람들과 교류하는 데 매우 능숙하지만, 설교를 들을 때는 도무지 알아듣지 못하고, 하나님 말씀을 읽어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는 체험 간증을 얘기할 때 글귀와 도리만을 늘어놓아 문외한처럼 보이며, 영적인 이해력이 없다는 느낌을 준다. 이것이 바로 자질이 좋지 않은 사람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진리를 깨닫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자질이 좋고 나쁨을 판가름하는 기준이 바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수준에 달렸다고 알려주셨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은사가 있고 두뇌 회전도 빠르고 말재간도 좋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교제하신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자질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반면에, 학식도 보통이고 말재주도 그리 뛰어나지 않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고 실행 원칙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은 자질이 훌륭한 사람입니다. 예를 들면 바울은 은사도, 지식도, 말재주도 있어 유럽 전역에 하나님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깨달음이 없어 결국 주 예수도 인식하지 못했고, 스스로 주 예수에게 대적한다는 실체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가 열심히 사역했던 것은 면류관을 쓰고 상을 받기 위함이었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살아 있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라며 망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진리를 깨닫지 못한 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질이 부족한 자입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뜻을 깊이 묵상하며, 실행의 길을 찾았습니다.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정확하게 실행했고, 죽을 때까지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를 해냈습니다. 베드로야말로 자질이 훌륭한 사람입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람이나 사물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늘 말재간이 좋고 두뇌 회전이 빠른 것을 훌륭한 자질의 기준으로 삼으며 제가 이런 선천적인 조건을 타고나지 않았다고 해서 열등감과 소극적인 감정 속에 빠져 살았습니다. 본분을 이행할 때도 태만하여 제 생명 성장을 지체했을 뿐만 아니라 교회 사역에도 손실을 줬습니다. 또 생각해 보면 저는 비록 말재간이 그리 좋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조금은 깨달음이 있었고, 진리 교제를 통해 일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형제자매들은 제 자질이 평범한 수준이라고 얘기해주었습니다. 저는 하나님 말씀과 저에 대한 형제자매의 평가에 따라 정확하게 자신을 대해야 하며 더는 관념에 사로잡혀 자신을 규정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것들을 깨닫자, 제 마음은 훨씬 편안해졌습니다. 그 후 저는 루이징을 찾아 가 루이징에게 있는 문제를 하나씩 지적해 주고, 이와 관련한 하나님 말씀을 찾아 교제해 주었습니다. 루이징도 저의 지적과 도움을 받아들이며 진리를 구하여 회개하고 변화하기를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실행하니 마음이 훨씬 든든하고 편안해졌습니다.
그 후 저는 또 반성했습니다. 제가 늘 열등감에 사로잡혔던 이면에는 또 어떠한 패괴된 성품이 있었을까요? 어느 날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자신의 명예와 지위에 대한 적그리스도의 사랑은 일반인을 뛰어넘는다. 이는 그의 성품 본질 안에 있는 것으로, 한때의 취미도 아니고 한순간 환경의 영향을 받은 것도 아니다. 그것은 그의 생명 속에, 뼛속에 들어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것을 그의 본질이라고 한다. 즉, 적그리스도는 무엇을 하든 다른 게 아닌 자신의 지위와 명예를 가장 먼저 고려한다는 것이다. 적그리스도에게 있어 지위와 명예는 그의 생명이자 평생 추구해야 할 목표이다. 그는 무슨 일을 하든 가장 먼저 이런 것을 고려한다. ‘내 지위는 어떻게 될까? 내 명예는 또 어떻게 될까? 내가 이 일을 하면 좋은 명성을 얻을 수 있을까? 사람들 마음속의 내 지위가 올라갈 수 있을까?’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들인데, 이것으로 그에게 적그리스도의 성품과 본질이 있음이 충분히 증명된다. 그래서 그는 문제를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적그리스도에게 지위와 명예는 부가적인 요구 사항이 아니고,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신외지물(身外之物)은 더더욱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적그리스도의 본성과 뼛속, 핏속에 들어 있는 것으로, 선천적으로 갖고 있는 것이다. 적그리스도의 태도는 지위와 명예가 있어도 괜찮고 없어도 괜찮은 것이 아니다. 그럼 어떤 것이겠느냐? 명예와 지위는 그에게 있어 매일의 삶과 상태, 추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9조(3)>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통해 적그리스도가 명예와 지위를 매우 소중히 여기고 그것을 목숨처럼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제 모습도 적그리스도와 같았습니다. 제가 생각하고 고민하는 모든 것이 진리 추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 저의 명예와 지위를 생각하며 득실을 따지는 것뿐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저는 저를 향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매우 신경 썼습니다. 친척, 친구, 동료들 모두 저에게 말재주가 없다고 하자 저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줄였고 스스로를 가두었습니다. 그러면 최소한 자존심은 조금이나마 덜 상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후 형제자매 간에는 모두 솔직하게 대해야 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솔직하게 털어놓아도 비웃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명예와 지위에 대한 집착이 너무 강했던 저는 자질이나 말재간이 좋은 사람과 함께 예배드릴때면 형제자매들이 말재간이 없는 저를 얕볼 것으로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최대한 적게 말하는 방법으로 저의 부족함을 가리고 제 명예와 지위를 지키고자 했습니다. 양육 집사로서 사람들이 본분 이행이나 생명 진입에 있어 문제에 맞닥뜨리면 그걸 해결해 주는 것이 저의 소임이었지만, 저는 제가 말을 장황하게 하고 세세하게 설명하면 형제자매들이 절 무시할 것이라고 걱정하며 이행해야 하는 본분을 내려놓는 한이 있더라도 저의 체면과 지위를 지키려고 했습니다. 저는 ‘사람은 이름을 남기고 짐승은 가죽을 남긴다.’, ‘사람은 체면으로 산다.’와 같은 사탄의 독소로 살았습니다. 체면과 지위를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며 최소한 이행해야 하는 책임도 다하지 않은 채 매우 이기적이고 비열했습니다. 이런 제가 어떻게 본분을 이행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적그리스도의 길을 걸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계속 회개하지 않는다면 성령 사역을 받을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하나님께 도태될 것입니다. 앞으로 저는 하나님께 회개하고 이러한 부정적인 정서의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한 번은 새신자들과 예배드리다가 이이 자매가 하나님 말씀을 명확하고 밝게 교제하고, 표현도 유창한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형제자매들은 모두 계속 고개를 끄덕였고, 그러자 제 마음에서 또 약간의 열등감이 생겨났습니다. 속으로 ‘이이 자매 표현력 좋은 것 좀 봐. 교제에도 빛이 있다니. 나는 전달력도 떨어지는데 형제자매들은 하나님을 믿은 시간이 오래된 내가 새신자보다 교제에 빛이 없다고 비웃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별로 교제하고 싶지 않아졌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었을 때 저는 제가 또 체면과 지위 속에 산다는 것을 의식하고는 하나님께 제가 이런 그릇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게 이끌어 달라고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또다시 각종 부정적 정서가 생겼을 때 스스로 의식과 분별력을 가지고 그것이 네게 미치는 위해가 무엇인지 알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이와 동시에 이러한 부정적 정서를 차츰차츰 내려놓아야 한다. 이러한 정서가 생겼을 때 네가 자제력과 지혜를 가지고 내려놓을 수 있어도 좋고, 혹은 진리를 구해 해결하고 처리해도 좋다. 아무튼 네가 올바른 방식과 태도로 올바른 입장에서 사람과 일을 바라보고,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는 데에 영향만 없으면 된다. 이러면 진리를 추구하는 길에서 네게 지장을 주고 너를 가로막는 것들이 점점 줄어든다. 너는 점차 하나님이 요구한 정상 인성의 범위 내에서 아무런 방해 없이, 또는 방해가 나날이 줄어드는 가운데 진리를 추구하고, 각종 환경하에 자신이 드러내는 패괴 성품을 해결하게 된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 중에서) 하나님 말씀은 제게 실행의 길을 주셨습니다. 앞으로 부정적인 감정이 나타날 때면 의식적으로 이를 분별하고 내려놓아야 합니다. 돌이켜보면 지난 시간 저는 부정적인 정서에 살며 늘 제 체면과 지위만을 생각했는데, 정말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지금 저는 이이 자매와 함께 예배드리는데, 하나님의 뜻은 저를 드러내시거나 저의 못남을 나타내시려는 것이 아니라 이이가 교제한 빛을 통해 저의 부족함을 채우고, 제가 조금이라도 더 얻길 바라십니다. 이렇게 생각하자 더는 속박감을 느끼지 않고,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힌 후 이이의 교제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이의 교제에서 저는 약간의 깨우침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이의 교제가 끝난 후 저는 제가 인식한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그 예배에 있던 모두에게 약간의 수확이 있었고, 달성한 성과도 좋은 편이었습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저는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리임을 볼 수 있었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람과 사물을 바라보거나 처신과 행동을 해야 해방감을 느끼고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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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저는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습니다. 그 후 저는 교회에서 줄곧 리더 일꾼을 맡았습니다. 매일 바쁘고 힘들었지만 전 볼멘소리하지 않았습니다. 리더와 책임자는 모두 비교적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므로 이러한 본분을 이행하면 형제자매들이...
이탈리아 추이바이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자신의 운명을 위해 마땅히 하나님께 인정받아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너희가 스스로를 하나님 집의 일원이라고 시인한 만큼 어디서나 하나님을 안심하게 하고, 하는 일마다 하나님을 흡족게 해야 한다는...
2024년 2월 초 즈음, 전 교회에서 문서 본분을 맡고 있었어요. 초반에는 제가 생명 진입의 깊이도 얕고 다방면적으로 부족한 것도 많으니 문서 본분에서 훈련을 많이 하면서 진리를 많이 깨닫고 원칙을 많이 파악하면 생명이 빨리 성장할 수 있겠다는...
중국 가오량(高亮) 저는 가난한 시골 가정에서 자랐어요. 중학교를 졸업하고는 바로 취직을 했고 나중에 결혼해서 자식을 얻었죠. 그 뒤로도 열심히 돈을 벌었지만 궁핍에서 벗어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어요. 제 상황을 잘 아는 매부가 굴착기 운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