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거만한 인간의 변화 과정

2017.12.23

허난성 장이타오

『하나님, 당신의 공의롭고 거룩하고 실제적인 심판에 패괴된 제 모습 완전히 드러났어요. 복을 바라며 오랫동안 헌신했고, 남보다 뛰어나고 싶어 바울처럼 힘써 사역했죠. 심판의 말씀 통해 이기적이고 비열한 자신 보았어요. 땅에 엎드린 저, 부끄러워 당신 볼 면목 없어요. 지나온 길 돌아보니, 모든 것 당신의 보호와 인도였어요. 절 구원하는 당신의 크신 사랑 보았어요. 하나님, 당신의 심판에서 참사랑 느꼈고, 자신을 알게 되어 진정 회개했어요. 깊이 패괴된 저, 심판과 정결함 필요해요. 심판이 없었다면, 어둠에서 헤맸을 거예요. 당신의 말씀이 저를 빛의 길로 인도했어요. 당신 사랑하고 당신 위해 사는 게 가장 뜻깊은 삶이에요. 지나온 길 돌아보니 심판, 형벌은 당신의 축복이자 참사랑이었어요. 진리 깨닫고 당신 향한 사랑 순결해졌으니, 아무리 큰 고난도 달게 받을게요.』(<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ㆍ넘치는 사랑 베푸신 하나님> 중에서) 저는 이 찬양을 부를 때마다 오랜 세월 저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이 떠올라 감사의 마음으로 충만해집니다. 하나님은 심판과 형벌로 저를 변화시켜 이 오만 방자하고 야심으로 가득한 패역의 자식이 사람의 면모를 갖추게 해 주셨지요. 하나님의 구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농촌에서 태어났습니다. 집안 형편이 좋지 않은 데다 부모님도 유순한 분들이어서 툭하면 남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곤 했지요. 저는 어릴 때부터 무시를 받았고, 얻어맞거나 수모를 당하는 것도 다반사라 늘 슬프게 울었습니다. 저는 그런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언젠가 말단 공직이라도 차지해 남들 위에 서고 싶었고, 사람들에게 존경의 시선을 받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하고 있을 때 문화대혁명이 일어났습니다. 홍위병들이 들고일어나고, 노동자들이 파업했으며, 학생들은 동맹휴교를 하고 매일 같이 혁명을 외쳤습니다. 사회는 난장판이 되었고 민심은 흉흉해졌지요. 대학 입시 제도도 금지되었고요. 그렇게 시험 볼 기회를 잃은 저는 너무나 실망스러웠고, 큰 병이라도 걸린 사람처럼 괴로웠습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진학해서 공직에 오르는 게 불가능하다면 돈이라도 열심히 벌자. 돈만 있으면 사람들이 우러러볼 테니까.’라고 마음먹고 사방으로 돈 벌 기회를 찾아다녔습니다. 집이 가난해서 장사 밑천도 없었던 저는 일가친지들에게 500위안을 빌려 고기집을 차렸습니다. 남보다 잘살겠다는 일념으로 밤늦게까지 쉬지 않고 일하며 많은 고생을 했지요. 그렇게 몇 년이 지나자 제 일솜씨는 점점 좋아졌고 장사도 번창했습니다. 집안 형편도 빠르게 피기 시작했고요. 많은 사람이 제게 부러운 시선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1990년 봄, 동네 사람이 제게 예수님을 믿으라며 전도했습니다. 곧 주님을 믿게 된 저는 성경을 연구하고 성경 지식을 쌓으며 성경의 구절들을 외우는 데 집중했습니다. 얼마 안 가 유명한 구절들을 많이 숙지하고 이해하게 되었지요. 마태복음 16장 26절에 예수님이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라고 말씀하신 구절과 또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베드로가 곧장 그물을 버리고 그분을 따르는 구절을 보게 된 저는 ‘돈은 쓸 만큼 있으니 됐어. 더 벌어 봤자 죽을 때 가지고 갈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주님께 인정받으려면 베드로를 본받아야 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장사를 때려치우고 온종일 교회에서 열심히 뛰어다녔지요. 의욕에 넘치던 저는 순식간에 19명의 친지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다시 그 19명의 사람들을 통해 230여 명에게 전도했습니다. 그 후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라는 예수님 말씀을 본 저는 흐뭇함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버리고 헌신하며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를 널리 알렸으니 주님의 도를 행한 거라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길을 걷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지요. 그러므로 다음 시대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면 땅에서 왕권을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여겼습니다. 이런 야심에 지배되자 의욕은 더욱 커졌습니다. 저는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며 포용하고 인내하시는’ 예수님을 본받아 솔선수범하면서 어떤 고생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형제자매의 집에 가 물을 긷고 땔감을 때고 농사일을 도왔으며, 형제자매들이 아프기라도 하면 바로 달려갔습니다. 돈이 없는 사람에게는 제 돈을 지원해 줬고, 어려움에 직면한 사람을 보면 바로 가서 도왔습니다. 그러자 얼마 안 가 교회 형제자매들이 입을 모아 저를 칭찬했고, 교회 상급 책임자의 신임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1년 후, 저는 교회 책임자로 선발되어 교회 30곳을 목양하고 400여 명의 신자를 관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자리에 오르자 기분이 무척 좋았습니다. 제 노력이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이와 동시에 저는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 더 많은 사람의 찬사와 존경을 받겠다는 새로운 목표를 세웠습니다. 다시 1년의 노력 끝에 저는 교회의 상급 책임자가 되어 5개 현(縣)의 사역자를 인솔하고 420곳의 교회를 목양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도 저는 태만해지지 않고 외적인 좋은 행위나 사역자와 형제자매들이 바라보는 제 이미지에 특히 신경을 썼습니다. 사역자들의 지지와 형제자매들의 높은 평가를 얻기 위해 저는 교회에서 진탕 먹고 마시는 것에 반대했으며, 모든 이성 교제와 부조리를 금지했습니다. 저의 ‘정직함과 정의감’은 사역자와 형제자매들의 지지와 동조를 얻었고, 그렇게 제 교만한 본성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졌습니다. 이 밖에도 저는 자주 언급되는 성경 구절을 막힘없이 외울 수 있었습니다. 교회의 하부급 책임자나 사역자들에게 설교할 때면 성경을 보지 않고도 성경 구절을 줄줄 읊었지요. 그러면 형제자매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교회에서 저는 뭐든 혼자 결정했고, 모든 형제자매는 제 말을 따랐습니다. 저는 늘 제 말이 옳다고, 제 견해가 뛰어나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교회를 관리하고 나누는 것도, 교회 책임자와 사역자들을 선발하는 것도 다른 사람과 상의하는 일 없이 전부 혼자 결정했지요. 그야말로 ‘왕권을 잡은’ 셈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강단에 서서 청산유수처럼 유창하게 말하는 제 모습에 도취되어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부러움과 앙망의 시선을 받고 있으면 모두에게 떠받들려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그것은 저를 더없이 흐뭇하고 흥분되게 했습니다. 특히 요한복음 3장 34절의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이니라”라는 구절을 읽었을 때 제 마음은 흡족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저는 부끄러움도 모른 채 제가 바로 하나님이 보내신 이라고, 하나님이 제게 성령을 주어 저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밝히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성경을 해석할 수 있고, 남들이 이해 못 하는 ‘비밀’과 남들이 깨닫지 못하는 ‘숨은 의미’를 안다고 여겼으니까요. 그렇게 저는 지위가 가져다준 희열에 잔뜩 도취된 채 제가 그저 하나의 피조물, 주님의 부르심을 입은 그릇에 불과하다는 것을 완전히 잊고 있었습니다.

교회가 부단히 확장되면서 저는 점점 더 유명세를 탔고, 현지 파출소에서는 저를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집에 옷을 가지러 갔다가 경찰과 딱 마주쳐 체포된 저는 3년의 노동 교화형을 선고받았습니다. 3년 동안 저는 각종 잔혹한 박해와 괴롭힘을 받았습니다. 온몸의 가죽이 다 벗겨지는 듯했고, 정말이지 하루가 1년 같았지요. 하지만 출소한 후에는 더욱 큰 믿음으로 복음을 전하며, 원래 자리에 ‘복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반년 후에 또 현지 정부에 체포된 저는 다시 3년의 노동 교화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들은 갖은 방법으로 저를 못살게 굴었고, 70일간 구치소에 가둬 놓았다가 노동교화소로 보내 벽돌 가마에서 벽돌을 나르게 했습니다. 마침 그때는 음력 7월 중복 날이라 가마의 온도가 70도에 육박했는데, 저는 매일 만 장의 벽돌을 날라야 했습니다. 배고픔과 그전에 겪은 고문으로 극도로 허약해진 제 몸은 혹서 속에서의 노동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악독한 교도관은 제 사정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았습니다. 주어진 일을 끝내지 못하면 등 뒤로 수갑을 채우고 무릎 꿇게 한 후, 양 겨드랑이와 오금에 술병을 끼우고 전기봉으로 구타했습니다. 그러면 수갑 안쪽의 날카로운 톱니가 살 속으로 파고들어 극도의 고통을 주었지요. 이런 잔인한 학대 속에서 일주일을 버티며 일한 저는 결국 가마실 안에서 쓰러졌고, 52시간이 지난 후에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상태는 식물인간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의식은 있지만 보고 듣는 것 외에는 혼자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니까요. 밥을 먹을 수도, 말을 할 수도, 걸어 다닐 수도 없었습니다. 대소변도 가리지 못했고요. 이렇듯 중국 정부의 잔인한 박해를 겪은 후 제 교만한 본성은 많이 꺾였습니다. 지난날 교회에서 위풍당당하게 우쭐거렸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고, 침울하고 비관적으로 변해 끝없는 고통과 무력함 가운데서 살게 됐지요. 그러던 어느 날, 노동교화소의 직원들이 못된 잔꾀를 부려 제게 ‘유전병’이 있다는 가짜 진단서를 발급하더니 아내에게 전화해 저를 데려가라고 했습니다. 당시 저희 가족은 저를 치료하기 위해 집에 있는 물건을 모조리 팔았습니다. 친척들은 저를 보러 와서 비웃고 조롱하고 비아냥거렸고요. 이런 상황을 마주하자 더욱 의기소침해진 저는 세상이 너무 어둡다고, 사람들 사이에는 인정도 사랑도 없고, 오직 핍박과 박해, 조소와 비방뿐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질병이 주는 고통과 희망 없는 삶 앞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이렇게 절망 속에 빠져 있을 때 전능하신 하나님이 구원의 손을 내밀어 주셨습니다. 집에 돌아온 지 한 달쯤 됐을 때, 형제님 두 명이 제게 하나님의 말세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이 또 새 사역을 행하셨고, 두 번째로 성육신하여 인류를 구하러 오셨다고 했습니다. 당시에는 아무래도 믿을 수가 없었지만, 말을 하지 못했던 저는 성경 구절을 찾아 보여 주며 그들의 말에 반박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부드럽게 말했습니다. “형제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겸손하고 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늘 새롭고 언제나 앞을 향해 나아가지요. 또한 하나님의 지혜는 누구도 측량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옛것을 고집해서는 안 됩니다. 형제님이 하나님의 은혜시대 사역을 고집한다면 하나님나라시대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게다가 성경에 나온 예수님의 당시 말씀에는 모두 그 함의와 실제 배경이 있습니다.” 이어서 그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주었고, 하나님의 말세 사역과 관련된 성경 속 예언을 찾아 보여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형제들의 교제로 저는 하나님 이름의 의의와 세 단계 사역의 실상, 사람을 경영하시는 하나님의 근본 취지와 성육신의 비밀, 성경의 실상 등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태어나 처음 들어본 것들이자, 오랜 세월 열심히 성경을 연구하면서도 깨닫지 못한 비밀과 진리였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들었고, 진심으로 승복했습니다. 이어 형제들은 제게 하나님의 말씀 책을 한 권 주며 “병에서 회복되시면 사역자와 형제자매들에게 복음을 전하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기쁘게 그 책을 받았습니다. 그때 저는 매일같이 침대에 누워 하나님 말씀을 보는 것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보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간절한 사모의 마음은 물 만난 고기처럼 즐겁고 만족스러웠습니다. 얼마 후 제 병은 조금씩 차도가 생겼고, 저는 곧 침대에서 내려와 거동하며 혼자 힘으로 생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집에서 교회 생활을 하면서 일주일에 두 번씩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에서 17, 8세의 어린 자매님을 제게 보내 예배드리게 했는데, 그는 제가 원래 있던 교파의 한 형제님 딸이었습니다. 예전에 교회 사역을 책임지고 있을 때 자주 그의 집에 가곤 했었지요. 저는 속으로 ‘교회 책임자가 안배를 잘 못하는 것 같네. 나를 인도하라고 이렇게 어린아이를 보내다니. 나를 무시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교만한 본성에 지배된 저는 무시하는 투로 “내가 하나님을 믿은 세월이 네 나이보다 많단다. 예전에 내가 너희 집에 갔을 때 네가 몇 살이었는지 아니? 그때 너랑 자주 놀아 줬었지. 그런데 이제는 네가 나한테 예배를 해 주겠다고 왔구나….” 어린 자매님은 제 말에 얼굴이 새빨개졌고, 저에게 속박받아 다시는 저희 집에 찾아올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교회에서는 어쩔 수 없이 다른 자매님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자매님도 나이가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저는 입으로는 별말 안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주님을 믿은 햇수며 경력이며, 성경 지식이나 교회 관리 경험이며 내가 당신보다 훨씬 위다! 나이를 보니 기껏해야 하나님을 믿은 지 서너 해밖에 안 된 것 같은데 나는 이미 21년이나 됐다고.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예배를 해 준다는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자매님은 말솜씨가 뛰어나고 시원시원했으며, 문제의 핵심을 짚을 줄 알았습니다. 예배를 드릴 때 그녀는 제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주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바울을 매우 숭배한다. 밖에서 강연하고 사역하는 것을 좋아하며 모임을 가지기 좋아한다. 연설하기 좋아하고 사람들이 자신의 말에 따르고 자신을 숭배하는 것을 좋아하고 자신을 둘러싸는 것을 좋아한다. 사람들 마음속에 자신의 자리가 있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들이 모두 그의 형상에 관심 갖는 것을 좋아한다. 이러한 모습들에서 그의 본성을 파헤쳐 보자. 그의 본성은 무엇이겠느냐? 그가 정말 이러한 모습을 보인다면 그 사람은 교만하고 하나님을 조금도 경배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 준다. 또한 그가 추구하는 것은 높은 지위에 서는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을 다스리고 점유하고 싶어 하며 그들 마음속에 자신의 자리를 마련하고 싶어 한다. 이것은 전형적인 사탄의 형상이다. 그의 본성 가운데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바로 교만하고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으며 사람들이 그를 경배하도록 하는 것인데, 이런 모습을 통해서 그의 본성을 명확히 알 수 있다.(<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 선 검처럼 제 마음을 찌르고 급소를 찔렀으며, 하나님을 믿으면서 제가 저지른 모든 행동의 비열한 속셈과 추한 모습, 그리고 제 본성과 본질을 날카롭게 드러냈습니다. 저는 견딜 수 없이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제가 드러낸 것들을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보자 제 본성이 너무나 교만하며 제 본질은 하나님을 적대시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지난날, 저는 사람들에게 높은 평가와 추앙을 받는 뛰어난 사람이 되고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열심히 성경을 연구했으며, 온 힘을 다해 성경 지식을 갖췄습니다. 그것을 통해 꿈에 그리던 지위와 명예, 이익, 그리고 사람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지요. 저는 남들이 저를 앙망하고 존경하는 것을 누렸고, 사역과 설교로 제 허영심을 충족시켰으며, 독단적으로 권력을 휘두르면서 스스로를 드러내고 뽐냈습니다. 강단에 설 때면 남들에게 떠받들리는 기분을 즐겼고, 심지어는 부끄러움도 모른 채 성경의 구절을 들어 스스로를 증거하고 높이면서 제가 바로 하나님이 보내신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야말로 교만하기 짝이 없는 작태였지요. 시간이 흐른 지금도 저는 제가 오랫동안 사역하고 설교한 것을 밑천 삼아 자매님들을 얕보고 무시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햇수가 오래됐고 성경 지식이 많으며 교회 관리 경험도 있으니 누구보다 대단하다고 생각하면서 아무도 안중에 두지 않았지요. 그리하여 어린 자매님 두 분을 얕보고 무시했으며 상처 주는 말을 했으니 이성도, 인간성도 없는 교만한 행동이었습니다. 저는 그제야 제 추구가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께 반기를 드는 것이며, 하나님에게서 그분의 선민을 빼앗는 행위임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살아 낸 것은 전형적인 사탄의 형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승복하게 된 저는 “하나님, 제가 너무 교만했습니다. 지위가 있을 때는 거들먹거렸고, 지위가 없을 때 역시 누구에게도 승복하지 않았습니다. 또 경력과 권위로 다른 이를 속박하고 무시했습니다. 저는 너무나도 염치없는 인간이었습니다! 오늘 당신이 저를 구원해 주시니 저는 당신의 말씀의 폭로와 심판을 받겠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이어서 자매님은 또 하나님 말씀을 찾아 보여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사람의 이성이 원래의 기능을 잃었고, 사람의 양심도 원래의 기능을 잃었다고 말한다. 내 눈에 보인 사람은 모두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이자 독사다. 사람이 내 앞에서 얼마나 가련한 척을 하든 나는 사람에게 연민의 정을 베풀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흑과 백의 차이를 전혀 모르고, 진리와 비진리의 차이도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은 이성이 이렇게 무감각함에도 여전히 복을 받고 싶어 하고, 이렇게 비열한 인성을 가지고도 여전히 왕이 되어 권력을 잡고 싶어 한다. 이런 이성을 가지고 누구에게 왕 노릇을 하겠느냐? 이러한 인성으로 어떻게 보좌에 오를 수 있겠느냐? 정말로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구나! 모두 제 주제도 모르는 소인배로구나! 복을 받고 싶어 하는 너희들에게 권하는데, 우선 거울을 찾아 자신의 추한 몰골을 비춰 보아라. 네가 왕이 될 재목이냐? 너는 복받을 만한 오관을 가졌느냐? 성품이 조금도 변하지 않고 진리를 조금도 실천하지 못하면서 아름다운 앞날을 생각하다니 참으로 망상이 아니고 무엇이냐!(<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성품이 변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적이 된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며 저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제 마음을 찔러 저를 심판하고, 부끄럽게 했지요. 예전 교파에 있을 때 왕권을 잡으려 했던 제 추태가 다시 한 장면씩 눈앞에 떠올랐습니다. 형제자매들 사이에서 저는 늘 높은 자리에 앉아 명령을 내렸고, 권세를 잡아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망상에 빠져 있었습니다. 형제자매들을 하나님 앞으로 이끌어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은 고사하고 저를 높이고 떠받들게 했지요…. 생각하면 할수록 제 모든 행동이 하나님의 혐오를 사고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임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을 볼 면목이 없었고, 형제자매들에게는 더욱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는 정말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제 야심과 욕망을 위해 치른 대가가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필사적으로 지위와 사람들의 높은 평가, 앙망을 추구한 것이 얼마나 그릇된 것인지 알게 되었지요. 밤낮없이 뛰어다니며 온갖 고생을 했고, 감옥에 갇혀 핍박받으며 죽다 살아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알기는커녕 교만한 본성이 점점 커져만 갔습니다. 하나님을 안중에 두지 않는 것은 물론, 하나님의 나라가 이뤄질 때 땅에서 왕권을 잡겠다는 헛된 꿈까지 꿨습니다. 이 밖에도 저는 예전 교파에 있을 때 중국 공산당의 핍박을 받은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더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신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예전 교파에서 지닌 명성과 지위, 안하무인에 유아독존 격인 제 교만한 성품으로 미루어 봤을 때 그런 과정이 없었다면 저는 결코 쉽게 지위를 버리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려는 사람들을 가로막는 악한 종이 되어 하나님을 끝까지 대적하다가 결국에는 징벌을 마주했겠지요! 저는 마음속으로 하나님의 구원과 저에 대한 크나큰 관용에 깊이 감사드렸습니다. 이렇듯 하나님 말씀의 폭로로 저는 많이 겸손해졌고, 형제자매들 앞에서도 감히 더 이상은 그렇게 교만하거나 비이성적으로 굴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로 제 병 또한 조금씩 호전되었습니다. 하루는 교회의 책임자가 제게 접대 본분을 안배했는데, 저는 영 탐탁지 않았습니다. 저에게 접대 본분을 시키는 건 소 잡는 칼을 닭 잡는 데 쓰는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거절하기도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알겠다고 했습니다. 접대 기간에 형제자매들은 집 안에서 예배를 드렸고, 저는 밖에서 주변을 살피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그러자 다시 ‘나한테 접대 본분을 이행하면서 문이나 지키라고? 이래서 내가 뭘 얻을 수 있겠어? 예전에 강단에 서 있을 때는 정말 그럴싸했는데. 오늘날 이 본분은 티도 안 나고 지위도 없잖아. 신분이 너무 낮아!’라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제 안의 반발심과 억울함은 더 커져만 갔습니다. 결국 저는 그 본분을 그만두고 싶어졌습니다. 참다못한 저는 교회 책임자에게 “본분을 좀 바꿔 주세요. 당신들은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이끌면서 저한테는 집에서 접대 본분이나 이행하고 문지기 노릇이나 하라니요? 이래서 제가 뭘 얻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자매님은 웃으며 “그건 잘못 생각하신 거예요. 하나님 앞에서 하는 본분에는 크고 작음도, 귀하고 천함도 없답니다.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맡은 바 역할을 다해야지요. 교회는 하나의 공동체잖아요. 역할은 달라도 결국엔 하나입니다. 같이 하나님 말씀을 볼까요?”라고 말하면서 제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주었습니다. 『오늘날 이 흐름에서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께 온전케 될 기회를 얻게 된다. 젊은 사람이든, 나이 든 사람이든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있다. 하나님은 사람의 각기 다른 역할에 따라 사람을 온전케 한다. 그러므로 네가 모든 힘을 다하고 하나님의 사역에 순종하기만 하면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있다. 너희가 아직은 온전하지 못하여 할 수 있는 역할이 한 부분이나 두 부분밖에 안 되지만 온 힘을 쏟아 하나님을 위해 헌신한다면 결국은 하나님께 온전케 될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각자의 역할을 다함에 관하여>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자매님의 교제를 듣자 마음이 평온하고 밝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온전케 하실 때 그 사람이 어떤 지위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 본분을 이행하는지 등은 보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요. 하나님이 온전케 하시는 것은 사람의 마음, 사람의 순종, 그리고 사람의 충성심이며,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그 사람이 최종적으로 성품 변화를 이룰 수 있느냐 하는 점이었습니다.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전력을 다하고 충성을 다하며, 또 진리 추구에 매진하여 패괴된 성품을 벗어 버릴 수 있다면 누구든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사람들이 수행하는 역할은 모두 다르지만 그 목적은 똑같이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고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는 것입니다. 진실로 하나님을 만족게 하기 위해 아무 속셈도 불순물도 없이 피조물의 본분을 다한다면, 눈에 띄지 않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본분 이행이라도 하나님은 소중하고 귀하게 여기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자신의 속셈과 욕망만을 채우기 위해 본분을 이행한다면 그것이 어떤 본분이든, 아무리 대단한 본분이든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는 없습니다. 저는 또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복을 받든 화를 입든 사람은 피조물로서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는 동시에 자신이 해야 할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 이것은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것이다. 너는 복을 받기 위해 본분을 이행해서도 안 되고, 화를 입을 것이 두려워 본분 이행을 거부해서도 안 된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성육신 하나님의 직분과 사람의 본분의 구별>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피조물로서 본분 이행은 마땅히 해야 하는 의무이며, 선택 여지가 없는 일임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 조건을 제시하거나 장삿속을 들이밀어선 더더욱 안 되겠지요. 복이나 면류관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실로 비양심적이고 비이성적인, 올바르지 못한 관점입니다. 제가 작은 사역, 사소한 본분을 꺼렸던 이유는 복을 받으려는 속셈과 지위를 바라는 야심에 지배됐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저는 지위와 권력을 갖고 큰 사역으로 사람들을 이끌 수 있으면 하나님께 기쁨을 드릴 수 있으며, 사역을 많이 할수록 하나님의 칭찬과 상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늘 지위에 연연하며 놓지 못했고, 큰 사역, 큰 본분을 해서 언젠가 큰 면류관을 얻으려 했지요. 제 안에 이렇게 그릇된 관점이 있었기에 교회에서 안배한 본분에 불만을 품고, 나아가 하나님의 뜻을 오해하며 원망했던 것입니다. 심지어 제게 접대 본분을 안배한 것은 소 잡는 칼로 닭을 잡는 것이라며 저를 무시하는 처사로 여겼지요. 저는 정말이지 교만하고 무지한 인간이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심판 앞에서 저는 또다시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하나님 말씀의 깨우침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됐고,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좋아하고 온전케 하시는지, 어떤 사람을 혐오하시는지 깨달았으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에 저는 하나님 앞에서 다짐했습니다. 기꺼이 교회의 가장 작은 존재가 되어 접대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고, 형제자매들이 어떤 방해도 없이 안심하고 저희 집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주변을 잘 지키며, 실질적인 행동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위로해 드리겠다고요.

이번 체험을 통해 저는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나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진리와 인류를 구원하는 모든 뜻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다해 하나님의 말씀을 자주 보기만 하면 모든 일에서 진리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자신의 관념과 상상을 없앨 수 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사모하게 되어 매일 새벽 4~5시면 일어나서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것이 반복되자 하나님의 말씀을 어느 정도 기억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뜻도 얼마간 느낄 수 있었으며, 마음이 몹시도 즐거웠습니다. 그런 나날을 보내던 중이었습니다. 복음 사역을 맡고 있던 한 형제님이 저희 집에 자주 머물다 가곤 했는데, 복음을 전하다가 어려움이 생기자 제게 몇 번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 해결해 달라고 했습니다. 제가 하나님 말씀을 아주 빨리 찾는 것을 본 그는 그다음부터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하나님 말씀을 찾아 달라고 하며 저를 아주 부러워했습니다. 그러자 제 교만한 본성이 슬그머니 다시 고개를 들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을 맡으면 뭐 하나. 문제가 생길 때마다 나한테 도와 달라고 하는데. 하나님 말씀도 내가 더 많이 보고 많이 알고 있을걸. 나는 이미 진리를 얻었다고. 내가 복음을 전하는 일을 맡으면 당신보다 훨씬 잘할 수 있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형제님을 무시하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자 그를 싫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 책임자가 저희 집에 와서 요즘 내적 상태가 어떠냐고 물어봤습니다. 저는 자신만만한 말투로 “좋아요. 매일 하나님 말씀 보고 기도하고 있어요. 제가 하나님 말씀을 많이 알고 있으니까 그 형제님도 항상 저한테 하나님 말씀을 찾아서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하더라고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거만한 태도로 대답하는 저를 본 그는 하나님의 말씀 책을 펼치며 말했습니다. “우리 같이 말씀을 볼까요?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지위가 높을수록 야심이 커지고, 알고 있는 도리가 많을수록 성품은 교만해진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가 아닌 지위를 추구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요구는 너무나 많다> 중에서)어떤 부분의 진리와 실제에 대해 듣든 그것을 자신에게 비추어 보아라. 그 말씀을 네 삶 속으로 가져와 실천할 수 있다면, 분명 수확이 있을 것이고 변화가 생길 것이다. 그러나 그 말씀을 배 속에 채우고 머릿속에 기억해 두는 데 그친다면 너는 영원히 변화될 수 없다. … 제대로 기초를 다져라. 처음부터 글귀나 도리상의 기초를 다지면 문제가 생긴다. 이는 모래사장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아서 아무리 높은 집을 지어 봤자 무너질 공산이 크다. 그런 것은 오래가지 못한다.(<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실행>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저는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제 오만 방자한 사탄의 본성이 또 한 번 튀어나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요. 지난날, 저는 예수님을 믿으면서 고매한 성경 지식과 도리를 중요시했고, 그것을 밑천으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며 갈수록 교만해졌습니다. 그러다 이제 감사하게도 이렇게 많은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보게 되었는데, 저는 또다시 옛길을 가려 했습니다. 그럭저럭 쓸 만한 머리로 하나님 말씀을 몇 구절 외우고는 진리를 얻었다고 생각했고, 거만해져서 누구에게도 복종하지 않았으며, 남과 지위를 다투고 우열을 가리려 했으니, 정말 염치없는 행동이었습니다! 저는 글귀와 도리를 갖춰 봤자 점점 더 교만해질 뿐이며, 오직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진리를 깨달아야만 성품 변화를 이루고 사람의 면모를 살아 낼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형제님은 저보다 하나님을 믿은 햇수가 오래됐고, 아는 것도 훨씬 많았지만, 자신을 낮춰 제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이는 그 형제님의 장점이자 하나님 말씀과 사역을 체험하고 진리를 깨달아 얻은 성과였지요. 그런데 저는 그 형제님을 본받아 삶 속에서 하나님 말씀을 실천하고 정상 인성으로 사는 데 집중하기는커녕 그를 얕보고 미워했습니다. 저는 정말로 교만하고 무지한 장님이었습니다! 이것을 깨닫자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워졌습니다. 제 교만한 본성이 정말로 부끄럽고 추하며, 혐오스럽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또한, 저처럼 조금의 이성도 없을 정도로 교만한 사람은 누구보다 쉽게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대로 변화하지 않고, 착실히 진리를 추구하지도 않는다면 스스로를 망칠 게 분명했습니다. 여기까지 인식하자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은 곧 저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임을 마음속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통해 저는 제 오만 방자한 본성을 어느 정도 증오하게 되었고, 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마땅히 진리와 성품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저는 무엇이 제 생각을 흔들어 늘 오만 방자한 사탄의 성품을 드러내게 하는지, 제가 이토록 교만하고 비이성적이 된 근원은 무엇인지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되었지요. 『사탄이 하는 모든 일은 자신만을 위한 것이다. 사탄은 하나님을 뛰어넘고, 하나님에게서 벗어나 자신이 권세를 잡으려 하며, 하나님이 지은 만물을 점령하려 한다. 그러므로 사람의 본성이 곧 사탄의 본성이라고 하는 것이다. … 사람의 사탄 본성에는 수많은 철학이 들어 있다. 어떨 때는 스스로도 의식하거나 알지 못하지만, 너는 매분 매초 그것으로 살아가며, 그것이 옳다고,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기까지 한다. 사탄의 철학이 사람의 진리가 되어 사람은 완전히 사탄의 철학으로 살아가며, 거기에서 조금도 어긋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람은 시시각각 사탄의 본성을 드러내고 있으며, 언제나 사탄 철학으로 살아간다고, 사탄의 본성이 바로 사람의 생명이라고 말하는 것이다.(<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어떻게 베드로의 길을 갈 것인가>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제 마음은 점점 밝아졌습니다. 사람은 사탄에 의해 패괴된 후 사탄처럼 오만 방자하고 하늘 무서운 줄 모르며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는 본성을 갖게 된 것입니다. 또한, 남들이 자신을 하나님으로 여겨 떠받들고 경배하기를 원하게 되었지요. 사탄은 사회적 영향력과 위인, 유명인들의 말을 이용해 자신의 각종 사상과 처세 철학, 생존 법칙을 사람의 마음에 주입함으로써 사람이 기대 살아가는 생명이 되게 했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사상을 조종하고 행동과 처세를 지배하여 사람을 점점 더 교만하고 비이성적으로 바꿔 놓았지요. 그러고 보면 저는 어릴 때부터 남들에게 당한 괴롭힘과 무시 때문에 권력과 지위가 있는 사람을 부러워했었습니다. 게다가 ‘출세하여 조상과 가문을 빛낸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고 사람은 높은 곳으로 향한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등 사탄의 생존 법칙이 어릴 때부터 마음속에 깊이 뿌리내려 제 삶을 지배하고 있었기에 세상에 있을 때든 교회에 있을 때든 필사적으로 지위와 명리를 추구하고, 높은 자리를 차지해 남들 위에 서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탄의 독소에 물든 저는 늘 자신을 대단하고 좋은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언제나 형제자매들 앞에서 고참인 양 거들먹거렸고, 제 장점으로 다른 이의 단점을 가늠하면서 안하무인 격으로 행동했으며, 뭐든 혼자 결정했고 심지어는 스스로를 하나님이 보내신 이라고 착각하며, 하나님과 함께 왕권을 잡는 날을 꿈꿀 정도로 교만했습니다. 이러한 사탄의 독소로 교만해진 저는 인성과 이성을 잃었으며, 사탄처럼 어디서나 권세를 잡고 높은 자리를 차지해 사람들을 속박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야말로 사탄 마귀의 추악한 몰골로 살아가고 있었지요. 이러한 사탄의 독소는 저를 너무나 참담하고 심각하게 망가뜨렸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더 이상 이러한 것들에 기대 살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이것들로 인해 모진 고초를 겪었고 이루 말할 수 없이 추하게 살면서 당신의 증오와 혐오를 마주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온 힘을 다해 진리를 추구하고 싶습니다. 진정으로 양심과 이성을 갖춘 정상인이 되어 참된 사람의 면모를 살아 내고 당신의 마음을 위로해 드리겠습니다. 하나님, 당신의 심판과 형벌이 저를 떠나지 않게 해 주십시오. 당신의 역사로 저를 정결케 해 주십시오. 한시라도 빨리 성품 변화를 이뤄 진정한 사람의 면모를 살아 내고 당신께 얻어질 수만 있다면, 당신의 더 심한 심판과 형벌, 채찍질과 징계도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

하루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에게는 독선적이거나 자만하는 성분이 없고, 오만 방자하거나 교활한 성분도 없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들은 모두 사탄에게서 비롯된다. 사탄은 모든 추함과 악함의 근원이다. 사람이 사탄과 같은 속성을 갖게 된 이유는 사탄에 의해 패괴되고 가공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사탄에 의해 패괴되지 않았으므로 오직 하나님의 속성만 있을 뿐, 사탄의 속성은 없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그리스도의 본질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중에서) 제 마음은 또 한 번 하나님의 말씀에 감동받았습니다. 하나님은 그토록 지고하고 위대하신데도 자신을 낮추고 감추셨고, 사람들 사이에서 사역하시면서 한 번도 자신이 하나님임을 증거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신분과 지위를 알리는 일도, 더욱이 하나님이라고 자처하는 일도 없으셨지요. 그저 묵묵히 사람들 사이에서 살며 진리를 선포해 사람에게 공급과 인도를 해 주시고,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너무나도 위대하고 거룩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생명 안에는 교만하고 독선적이거나 자만하는 성분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자신이 바로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시며, 지고하신 존재, 또 자신을 낮추는 사랑스러운 존재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소유와 어떠하심을 확인한 저는 제 교만이 얼마나 수치스럽고 무식한 것인지 절실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를 본받아 진정한 사람의 면모를 살아 냄으로써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었지요. 그때부터 그리스도를 본받아 진정한 사람의 면모를 살아 내는 것은 제 목표가 되었습니다.

한번은 하나님 말씀을 보고 있는데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한 구절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무슨 뜻으로 그 말씀을 하셨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지요. 하지만 체면이 깎일까 봐, 또 형제자매들이 저를 무시할까 봐 두려워 자신을 내려놓고 교제해 달라고 하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제가 다른 사람을 도와줬지, 저에게 문제가 생겨 다른 사람의 도움을 구한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얼마 후, 제가 마음을 열고 교제하기를 꺼려하는 이유는 교만한 본성에 지배되어 남들에게 무시당하는 상황을 피하고 싶어 하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육을 버리고 형제자매들에게 교제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뜻밖에도 형제자매들은 저를 무시하기는커녕 인내심을 갖고 하나님의 뜻을 교제해 주었습니다. 제 의문은 아주 빨리 해결되었지요. 그리고 또 한번은 한 형제님이 제게 교회 사역에 관한 편지를 전달하라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만 방자한 본성 때문에 제 생각대로 일을 처리하다 보니 제때 편지를 보내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사역에 지장이 생길까 봐 마음이 급해진 형제님은 저를 책망하고 폭로했지요. 당시 저는 무척 괴롭고 부끄러웠지만, 책망과 훈계가 임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순종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진리를 실천할 수 있는지 하나님께서 검증하시는 순간이 온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오늘 이 책망과 훈계 앞에서 제 마음은 괴롭고, 반발하고 싶은 생각도 듭니다. 늘 높은 자리에 서서 다른 이를 질책하기만 했을 뿐, 진리에 복종한 적이 없으며, 사탄의 몰골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 당신의 이 많은 사역을 체험하며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이는 사람이야말로 누구보다 이성적인 사람이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는 사람임을, 그런 사람만이 인격과 사람의 면모를 지니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오늘 저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제 육을 버리고자 합니다. 제 마음을 감동케 해 주시고 제 의지를 온전케 해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고 나자 마음이 매우 평안하고 즐거워졌습니다. 체면과 지위를 내려놓고 달가운 마음으로 형제님의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지요. 그 후 형제님은 제가 받아들이지 못할까 봐 하나님의 뜻을 교제해 주었고, 저 역시 제 체험과 인식을 얘기했습니다. 우리는 서로 기쁘게 미소 지었고, 저는 마음속으로 저를 구원하고 변화시켜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렸습니다.

이렇게, 전능하신 하나님의 반복되는 심판과 형벌로 제 교만한 성품은 조금씩 변화했고, 겸손하게 처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전처럼 오만 방자하게 굴면서 아무에게도 굽히지 않고 무슨 일이든 독선적으로 처리하는 모습이 없어졌으며, 형제자매의 의견을 구하고 그들과 조화롭게 협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어느 정도 사람의 면모를 갖춘 셈이지요. 그때부터 저는 많이 순수해졌으며, 사는 것도 자유롭고 즐거워졌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구원에 감사드릴 뿐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없었더라면 저는 어둠과 죄악 속에서 몸부림치며 영원히 패괴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구원이 없었더라면 제 본성은 점점 더 교만해져서 사람들에게 저를 하나님으로 여겨 경배하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성품을 거슬러 징벌받으면서도 무엇 때문에 징벌받는지 몰랐겠지요. 하나님의 계속되는 심판과 형벌을 통해 저는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도 진실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줄곧 사랑으로 저를 감화시키셨고, 제가 돌아서기를 기다려 주셨습니다. 제가 얼마나 패역하고 까다롭든, 하나님을 얼마나 원망하고 오해하든 하나님은 따지지 않으셨으며, 언제나처럼 세심하게 각종 환경을 배치해 제 마음과 영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또한 제가 사탄의 괴롭힘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빛 속에서 살면서 진정한 인생길을 걷게 해 주셨지요. 하나님은 20년 넘게 참고 기다리며 저를 위해 셀 수 없이 많은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정말이지 하해와도 같아 끝을 알 수 없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은 제 보물이자 생명 체험으로 얻은 가장 귀한 재산이 되었습니다. 저는 영원히 잊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고난을 겪은 것은 그만한 가치와 의미가 있습니다! 비록 지금의 저는 하나님의 요구에 한참 멀지만, 성품 변화를 추구하여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더 깊이 체험할 자신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저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는 진정한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시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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