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질투심을 해결했는가

2025.9.26

중국 쑹이(頌一)

2019년 10월, 저는 모한(莫晗) 자매와 함께 영상 소스 촬영에 협력했습니다. 저는 예전에 촬영을 배운 적이 있어서 제가 촬영한 소스의 합격률이 모한 자매보다 훨씬 높았습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나는 촬영 쪽으로 재능이 좀 있나 봐. 아직 초보인데도 이렇게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많이 만들어 내다니, 책임자님이 보시면 분명 나를 보기 드문 촬영 인재라고 생각하실 거야.’ 은근히 기뻤던 저는 한편으로 모한 자매가 못마땅했습니다. ‘예전에 사진 동호회까지 했다면서 실력은 별로네!’ 그 후 책임자는 예배 때 제 기술이 좋고 본분을 대하는 태도가 진지하다며 모한 자매보고 저한테 많이 배우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제 기분은 꿀맛이었습니다. 그 뒤로 저는 본분을 더욱 열심히 이행했습니다. 어떤 때는 한낮의 무더위를 견뎌가며 갈대밭에서 혼자 소스를 촬영했고, 한번은 아픈 몸을 이끌고 폭우 속에서 촬영을 강행하기도 했습니다. 좋은 소스를 많이 촬영하기만 하면 다들 저를 높이 평가할 테니, 이런 고생쯤은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얼마 후, 저는 책임자가 저를 매우 신임한다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업무 교류를 할 때마다 늘 제게 촬영 경험을 많이 이야기하게 했고, 학습 시간에도 저부터 분석하고 정리하게 했습니다. 책임자가 저를 이렇게나 신임하는 것을 보고 제가 인재라는 저의 생각은 더욱 굳어졌습니다.

하루는 저녁에 책임자가 저희 팀에 와서 팀의 사역을 책임질 팀장을 한 명 선발하겠다고 했습니다. 원칙에 대해 교제한 후, 모한 자매와 다른 자매 한 명이 저를 팀장으로 추천했습니다. 은근히 기뻤던 저는 속으로 ‘본분을 이행한 보람이 있어. 다들 눈여겨보고 있었네.’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겉으로는 겸손한 척하며 말했습니다. “저는 안 돼요. 업무는 제법 하지만 생명 진입이 부족해서 팀장 사역을 감당할 수 없어요.” 나중에 책임자는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모한 자매를 팀장으로 선발했습니다. 모한 자매는 일 처리가 신중한 편이고 원칙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으며, 생명 진입도 저보다 나은 반면 저는 촬영 기술만 조금 좋을 뿐 하나님을 믿은 기간이 짧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지금은 확실히 한가지 사역만 하는 것이 적절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결과를 보고 나니 마음이 무척 복잡했고 상실감이 밀려왔습니다. 온종일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아무런 의욕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모한 자매가 팀장을 맡는 것이 적합하다는 것을 아는데도 괴로웠습니다. ‘책임자님은 내가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생명 진입도 별로 없는, 그저 일만 할 줄 아는 봉사자라고 생각해서 나를 양성할 생각이 없는 게 아닐까?’ 그 후로 전 책임자가 저희와 예배를 드릴 때, 저를 더 주목하는지 모한 자매를 더 주목하는지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간혹 책임자가 모한 자매의 내적 상태를 세세하게 파악하고, 몇 차례 모한 자매를 따로 불러 교제하는 것을 보면서 제 생각은 더욱 굳어졌습니다. 책임자님이 모한 자매를 더 신임한다고 생각하니 상실감이 들고 괴로웠으며, 모한 자매를 원망하기까지 했습니다. 한번은 책임자가 모한 자매의 소스 촬영 역량이 향상되었다며 촬영 경험을 나눠 보라고 하자, 자매를 향한 제 질투심은 더욱 커졌고 그녀가 제 영예를 빼앗아 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고 나서부터는 모한 자매와 지내는 것이 무척 어색했고, 심지어는 자매가 하는 이야기에 반감이 들어 그녀의 말에 반박하며 반기를 들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저의 그런 태도를 보고 모한 자매는 어느 정도 속박을 받았습니다. 자매는 제가 늘 따지려 들고 반기를 들려고만 하니 너무 고통스럽고 저와 함께 지내는 것이 정말 힘들다고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도 자매를 이렇게 질투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은 알지만, 저 자신을 제어할 수가 없었습니다. 예전에는 좋은 강의 영상을 보면 모한 자매에게 추천해 주곤 했고, 자매가 촬영한 소스에 문제가 있으면 지적해서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책임자가 자매를 신임한다는 생각이 든 후부터는 업무적으로 자매를 돕고 싶지 않았고, 자매가 촬영한 소스는 구도가 별로라 영상미가 없다며 면전에서 비꼬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이 몇 번 반복되자 모한 자매는 자신이 자질이 부족해서 이 본분에 적합하지 않은 것은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제 공격에 자신감을 잃은 모한 자매를 보고, 저는 괴롭기는커녕 오히려 조금 기뻤습니다. 자매가 소극적이게 되면 책임자가 자매는 안 되겠다고 판단하고 다시 저를 신임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저희가 소스 한 세트를 빨리 촬영해야 했는데, 모한 자매가 온종일 촬영 장소를 찾느라 바쁜 것을 보고 반감이 들었습니다. 자매가 좋은 장소를 찾아 촬영한 소스가 채택되면 책임자가 자매를 더욱 신임하게 될까 봐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자매의 의욕을 꺾으려고, 그녀가 그렇게 열심히 하는 것은 남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으려고, 명예와 지위를 얻으려고 그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제 말을 듣고 모한 자매는 본분을 이행할 때 다소 속박을 받게 되었습니다. 또 한번은, 책임자가 계속 모한 자매의 내적 상태에 대해 교제하고 해결해 주는 것을 보고 질투가 났습니다. 제 교제 차례가 되자 저는 자신을 인식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일부러 책임자 앞에서 제가 모한 자매에게 너무 무리한 요구를 했다고 말했습니다. 자매가 하나님을 믿은 지 오래됐으니 진리 실제가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생명 진입 면에서 도움을 받고 싶었는데, 자매가 도와주지 않아 못마땅했다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예전에 만났던 형제자매들은 다 저를 도와주었다는 말까지 덧붙였습니다. 말을 마치고 나니 저는 양심에 찔렸습니다. 책임자가 모한 자매에게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자, 자매는 제 말을 듣고 무척 괴롭다면서 자신이 하나님을 믿은 지 오래되어 도리는 어느 정도 알지만 진리 실제는 별로 없고 저에 대한 사랑도 없었다고 대답했습니다. 자매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고 자신을 반성하는 것을 보고 저는 너무 부끄러워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 저는 반성하기 시작했고, 제가 명예와 지위를 위해 모한 자매를 억압하고 깎아내렸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후 저는 하나님께서 지위를 위해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억압하고 배척하는 적그리스도를 폭로하신 말씀을 보고 비로소 제가 표출한 패괴에 대해 조금이나마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적그리스도가 공개적으로 사람을 억압하고 배척하고 공격하며 다른 사람의 문제를 까발릴 때는 타깃이 있다. 그가 이런 수법을 사용하는 대상은 의심할 여지 없이 진리를 추구하고 그를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이런 사람들을 무너뜨림으로써 자기 지위를 공고히 하는 목적을 이루고자 한다. 이렇게 사람을 공격하고 배척하는 성질은 악독하며, 그의 언어와 말하는 방식은 공격성을 띤다. 즉, 까발리고 정죄하고 비방하고 심한 말로 중상모략하며, 심지어는 사실을 왜곡해 긍정적인 것을 부정적인 것이라고, 부정적인 것을 긍정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흑백을 전도하고 시비를 뒤섞음으로써 상대를 무너뜨리고 그 체면을 떨어뜨리는 목적을 달성한다. 이렇게 자신과 의견이 다른 이를 공격하고 배척하는 것은 어떤 심리에서 비롯되었겠느냐? 대부분 질투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흉악한 성품 안에서 질투는 늘 강렬한 증오를 품고 있다. 질투 때문에 다른 사람을 공격하고 배척한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적그리스도가 폭로당하고 고발당해 지위를 잃고 심적으로 타격을 입는다면 불복하고 불만을 가질 것이며, 나아가 강렬한 복수심을 품을 것이다. 복수심은 일종의 심리 상태이자 패괴 성품이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해를 끼치는 일을 했을 때, 혹은 다른 사람이 자신보다 뛰어날 때나 다른 누구의 말, 건의가 자기보다 훌륭하고 좋아 모두가 동조하는 것을 봤을 때 그는 자기 지위가 위협받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질투와 증오를 품고, 공격하고 복수하는 것이다. 복수할 때는 보통 선제공격으로 이뤄지는데, 주동적으로 공격해서 상대를 쓰러뜨리며, 상대가 제압당해야 분이 풀린다. 사람을 공격하고 배척하는 모습에는 또 어떤 것이 있겠느냐? (상대를 폄하하는 것이 있습니다.) 폄하하는 것도 그중 한 가지 모습이다. 네가 아무리 잘해도 그는 너를 폄하하거나 정죄할 것이다. 그는 너를 폄하하고 정죄해서 소극적인 상태에 빠뜨리고 연약해지고 일어나지 못하게 할 것이다. 그러면 그는 기뻐할 것이고, 또한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2조 자신과 의견이 다른 이를 공격하고 배척한다> 중에서), 『그는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을 보면 억압하고 유언비어를 퍼뜨리며, 비열한 수법으로 상대를 비방해 위신을 깎아내린다. 심지어는 상대를 짓밟음으로써 사람들 마음속 자신의 지위를 지키고자 한다. 이는 어떤 성품이겠느냐? 이는 단순히 교만하고 거만한 것이 아니라, 사탄의 성품, 악독한 성품이다. 자신보다 뛰어나고 훌륭한 사람을 공격하고 배척하니, 이것이 바로 음험하고 사악한 것이다. 그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람을 억압한다는 것은 그의 내면에 있는 마귀의 본성이 작지 않다는 의미이다! 그는 사탄의 성품으로 살아가며 남을 비방하고 모함하고, 괴롭히고 못살게 군다. 이것이 악을 행하는 것 아니겠느냐? 그는 이렇게 살아가면서도 자신이 괜찮다고,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을 보면 괴롭히고 못살게 굴며 짓밟는다. 이는 무슨 문제겠느냐? 이런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은 제멋대로인 자, 마음대로 행동하는 자 아니겠느냐? 이런 사람은 오직 자신의 이익과 느낌만을 생각하며, 자신의 욕망과 야심, 목적을 이루기 위해 교회 사역에 얼마나 큰 해를 끼치든 신경 쓰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 집의 이익을 희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사람들 마음속 자신의 지위와 명예를 지키고자 한다. 이런 사람은 교만하고 독선적인 자 아니겠느냐? 이기적이고 비열한 자 아니겠느냐? 이런 사람은 교만하고 독선적일 뿐만 아니라 몹시 이기적이고 비열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않는다.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있겠느냐?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은 전혀 없다. 그래서 제멋대로 행하며 어떤 자책감도, 두려움도, 근심 걱정도 없이 결과도 생각하지 않고 마음 내키는 대로 하는 것이다. 그는 늘 그렇게 행동하고 그런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그런 행동의 성격은 무엇이겠느냐? 작게 봤을 때, 이런 사람은 질투심이 너무 강하고, 명예나 지위에 대한 욕망이 너무 크며, 더없이 간사하고 음험한 것이다. 크게 봤을 때 이러한 문제의 본질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스스로를 최고로 여긴다. 또 자신이 모든 면에서 하나님보다, 진리보다 높다고 생각한다. 그에게 하나님은 언급할 가치도 없을 정도로 미미한 존재이며, 그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자리는 전혀 없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들어서기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 할 다섯 가지 조건>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나니 마음이 몹시 찔리고 두려웠고, 모한 자매와 함께 협력하며 본분을 이행했던 기억들이 하나하나 머릿속에 저절로 떠올랐습니다. 소스 촬영에서 약간의 성과가 있었고 책임자가 저를 좀 더 관심 있게 보았다고 해서 저는 스스로 인재라고 생각했습니다. 팀장을 선발할 때 저는 당연히 제가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뜻밖에 모한 자매가 팀장으로 선발되자 저는 소극적이게 되고 상실감에 빠져 모한 자매를 원망하고 질투하면서, 자매가 제 입지를 빼앗아 갔다고 생각했습니다. 책임자의 마음속에서 제 자리를 되찾기 위해 저는 모한 자매를 배척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평소 자매의 의견에 반기를 드는 것은 물론이고, 자매가 촬영한 소스에 부족한 점이 보이면 비꼬고 깎아내리며 자매의 의욕을 꺾었습니다. 자매가 스스로를 규정짓는 것을 보고는 뒤에서 기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고는 책임자가 자매는 안 되겠다며 다시 저를 신임하도록 자매가 그대로 소극적인 상태에 빠지길 바라 마지않았습니다. 자매가 사방으로 분주하게 다니며 촬영 장소를 찾는 것을 보고, 저는 그녀가 좋은 소스를 촬영해서 책임자의 신임을 더 받게 될까 봐 자매보고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고 있다고 하면서 공격했습니다. 심지어 예배 때 책임자가 자매에게 많이 교제해 주는 것을 보고 불만을 품은 저는 책임자가 자매에게 진리 실제도 없고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도 없다고 생각하도록 책임자 앞에서 자매를 깎아내렸습니다. 제가 이렇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매를 공격한 것은 정말이지 너무나 비열하고 사악했습니다! 제가 저지른 이런 악행들이 자신의 지위를 지키려는 적그리스도의 모습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모한 자매와 협력한 이래로 자매는 늘 저를 포용하고 인내해 주었고, 때로는 제 내적 상태가 좋지 않으면 자신의 체험을 이야기하며 저를 이끌어주고 도와주었습니다. 자매는 자신이 업무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늘 열심히 배우며 좋은 소스를 촬영하기 위해 노력했고, 야외 촬영 시 아무리 힘들고 고단해도 좀처럼 불평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생명 진입 면에서나 본분을 대하는 태도 면에서나 자매는 저보다 나았기 때문에, 그녀가 팀장으로 선발된 것은 완전히 원칙에 부합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질투심 때문에 매번 자매를 억압하고 배척했으니, 정말 인성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줄곧 적그리스도의 성품을 교제하고 해부해 주셨는데, 저는 거기에 비추어 자신을 반성하기는커녕 패괴 성품을 따라 자매를 억압했고, 하나님에 대한 최소한의 경외심조차 없었으니, 제 행동으로 인해 어찌 하나님께서 역겹고 혐오스럽지 않으셨겠습니까? 모한 자매와 함께했던 기억을 하나하나 떠올려 볼수록 후회되고 자책감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사탄의 본성을 따라 너무나 많은 악행을 저지른 저 자신이 원망스러웠습니다.

그 후로 한동안 저는 무척 의기소침했습니다. 제가 명예와 지위를 위해 악행을 저지르고 적그리스도의 길을 걸었다는 생각만 하면 후회가 막심했고, 깊은 밤 이불 속에서 몰래 울었습니다. 심지어 제게는 형제자매들에게 솔직히 털어놓을 용기도 없었습니다. 털어놓고 나면 다들 저를 그런 사람으로 보고는 싫어하고 거부할까 봐, 혹여 본분을 이행할 기회마저 잃게 될까 봐 두려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할 용기도 없었습니다. 저 같은 사람은 애초에 하나님께서 혐오하고 내치셨을 게 분명하니, 기도해도 들어주시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극심한 의기소침과 고통 속에 빠져버렸습니다.

하루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무척 감동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니느웨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컸든 간에, 니느웨 사람들이 금식을 선포하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재 위에 앉은 그 순간 하나님의 마음은 점차 누그러져 뜻을 되돌리기 시작하였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성을 멸할 것이라 선포하기 바로 직전, 즉 그들이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기 직전에도 하나님은 그들에게 노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일련의 회개가 있은 후 니느웨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는 점차 관용과 긍휼로 바뀌었다. 하나님의 두 성품이 하나의 일에서 동시에 나타났는데, 이는 결코 모순되지 않는다. 여기서 모순되지 않음을 사람은 어떻게 이해하고 인식해야 하느냐? 완전히 다른 두 본질은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기 전과 후에 하나님에게서 나타나고 드러난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은 하나님의 참되고 거스름을 용납하지 않는 본질을 보게 되었다. 하나님은 자신의 태도를 통해 하나님이 사람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고 사람을 긍휼히 여기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께 진정으로 회개하는 것이 어렵고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사람에게 노할 때 하나님은 사람이 진실로 회개할 수 있기를 바라고, 사람의 참된 회개를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면 하나님은 계속 아낌없는 긍휼과 관용을 베풀 것이다. 사람의 악행은 하나님의 진노를 부르지만, 하나님 말씀을 듣고 하나님 앞에서 참된 회개를 하는 자와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나는 자는 하나님의 긍휼과 관용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니느웨 사람들을 대한 일에서 하나님의 태도는 아주 명확하게 드러났다. 즉, 하나님의 긍휼과 관용을 얻는 것은 어렵지 않고, 하나님은 사람의 참된 회개를 원한다는 것이다. 또한 사람이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나면 하나님은 마음을 되돌리고 사람에 대한 태도를 바꾼다는 것이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이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나니 마음속에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고, 저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이 느껴졌습니다. 저는 마치 어둠 속 막다른 골목에서 한 줄기 빛을 본 것 같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제가 명예와 지위를 위해 그토록 많은 악행을 저지르고 자매에게 상처를 주었는데도, 하나님께서는 저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여전히 말씀으로 저를 깨우치고 이끌어 주셔서 제게 있는 문제를 인식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본인이 드러났다고 해서 자포자기하거나 소극적이고 나약한 정서에 빠져 지내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가장 중요한 것은 회개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소돔 성 사람들과 니느웨 사람들을 생각해 보니 그들은 똑같이 하나님께서 멸하실 정도로 악을 행했지만, 니느웨 사람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하나님의 혐오를 사 이미 멸망당할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을 깨닫고는 즉시 하나님 앞에 나아가 회개하며 죄를 시인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자신들의 진실한 회개 덕분에 하나님의 긍휼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악행을 증오하시지만 여전히 그들을 염려하시고 그들에게 긍휼을 베푸시며, 최대한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이 사실에 전 무척 감동했습니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참으로 진실합니다! 생각해 보니 모한 자매와 지낸 지 거의 일 년이 다 되어 갑니다. 그동안 늘 자매를 질투하고 배척하기만 하고 반성하지 않았던 저는 정말 무감각한 사람이었습니다. 만약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폭로가 아니었다면, 저는 제게 있는 문제를 전혀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고, 사탄의 본성에 따라 더 많은 악행을 저질렀을 것입니다. 심판과 형벌이 바로 하나님의 보호였고,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서 전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제게 있는 문제를 직시하고 하나님께 회개하겠다고 기도드렸습니다.

그 후,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적그리스도에게 지위와 명예는 부가적인 요구 사항이 아니고,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신외지물(身外之物)은 더더욱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적그리스도의 본성과 뼛속, 핏속에 들어 있는 것으로, 선천적으로 갖고 있는 것이다. 적그리스도의 태도는 지위와 명예가 있어도 괜찮고 없어도 괜찮은 것이 아니다. 그럼 어떤 것이겠느냐? 명예와 지위는 그에게 있어 매일의 삶과 상태, 추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적그리스도에게 있어 지위와 명예는 그의 생명이다. 그가 어떻게 살아가든, 어떤 환경에서 생활하든, 어떤 직업에 종사하든, 추구하는 것과 목표가 무엇이든, 인생의 방향이 어디를 향하고 있든 모두 좋은 명예와 높은 지위를 갖는 것을 중심에 놓는데, 이 목적은 바뀌지 않는다. 이는 그가 영원히 내려놓지 못하는 것들이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진면목이자 그의 본질이다. 깊은 산 숲속에 데려다 놓아도 그는 명예와 지위에 대한 추구를 내려놓지 못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 가운데 갖다 놓아도 그가 마음속으로 신경 쓰는 것은 여전히 명예와 지위이다. 적그리스도 부류 사람들 역시 하나님을 믿긴 하지만, 그들은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는 것과 하나님을 믿는 것 사이에 등호 기호를 그려 넣곤 이 두 가지를 대등한 위치에 둔다. 즉,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길을 걸으면서 동시에 명예와 지위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곧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는 것이며,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는 것이 곧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고, 명예와 지위를 얻으면 진리와 생명을 얻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할 수 있다. 만약 그들이 어떤 명예와 이익, 지위도 얻지 못하고, 다른 이의 앙망과 우러름, 추종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한다면, 깊은 실의에 빠져 하나님을 믿는 것은 의미도 가치도 없다고 여길 것이다. 그들은 속으로 ‘이렇게 하나님을 믿는 건 실패한 거 아닌가? 희망이 없는 거 아닌가?’라고 느낀다. 그들은 늘 마음속으로 이런 것을 궁리한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 집에서 한자리 차지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교회에서 높은 명망을 얻어 자기가 말하면 사람들이 들어주고 행동하면 받들어 줄지, 어디를 가든 자신을 따를 대상이 있을지, 교회에서 발언권과 명예, 이익, 지위를 갖게 될지 등을 궁리한다. 그들은 속으로 이런 것들을 특별히 중요시한다. 이것이 바로 이 부류 사람들의 추구이다. 그들은 왜 늘 이런 것들을 중시하겠느냐? 하나님 말씀을 읽고 설교를 들었는데도 이런 일에 대해 마음속으로 인식이나 분별이 생기지 않은 것이겠느냐? 하나님 말씀과 진리가 그들의 관념이나 사상 관점을 바꿔 놓지 못한 것이겠느냐? 절대 그렇지 않다. 문제는 그들 자신에게 있다. 전적으로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진리를 싫어하기 때문에 적그리스도는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는 그들의 본성 본질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9조(3)> 중에서) 하나님께서는 무슨 일이든 적그리스도는 자신의 명예와 지위를 위해서 하며, 명예와 지위를 자신의 목숨처럼 소중히 여겨서, 지위를 쟁취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하나님 집의 이익에 손해를 끼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 자신을 돌아보니 명예와 지위를 대하는 제 태도 역시 적그리스도와 다를 바 없는 게 아니겠습니까? 촬영 본분을 이행하며 작은 성과를 거둬 책임자의 신임을 받으면서부터, 저는 스스로 대단하다고 여기며 남에게 신임받는 느낌을 즐겼습니다. 책임자가 저에 대해 가지고 있는 좋은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본분에서 어떤 대가를 치르고 어떤 고난을 겪든 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겼고, 사람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으면 모든 것을 가진 것 같았습니다. 책임자가 모한 자매를 팀장으로 선발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제가 차지하고 있었던 지위를 빼앗겼다는 생각에 견디기 힘들 정도로 고통스러웠습니다. 사람들에게서 더 이상 높은 평가와 중시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 마치 버팀목을 잃어버린 것처럼 느껴져 온몸에 힘이 빠졌습니다. 책임자의 신임을 다시 얻기 위해 저는 모한 자매를 비꼬고 배척하며 억압했습니다. 또 악을 행하여 자매에게 상처를 주고 교회 사역을 지연시켰을 뿐만 아니라, 저 자신도 어둠 속에서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습니다. 이게 다 제가 맹목적으로 명예와 지위를 추구해서 생긴 일입니다. 저는 “천상천하 유아독존”, “한 산에 두 호랑이가 있을 수 없다”와 같은 사탄의 독소에 따라 살며 늘 돋보이고 싶었습니다. 책임자가 자매에게 조금이라도 더 관심을 보이는 것을 보면 질투하고 미워하는 것도 모자라 자매를 원수처럼 여기고 마음속으로 용납하지 못했으니, 제가 걷는 길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길이었습니다! 명예와 이익이 바로 사탄이 사람에게 씌운 보이지 않는 멍에이며, 사람을 패괴시키고 해치는 수단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폭로와 심판이 저의 무감각한 마음을 일깨워 주지 않았다면, 저는 여전히 패괴 성품에 따라 살았을 것이고, 계속 그렇게 살았다가는 언젠가 온갖 악행으로 인해 하나님의 성품을 거슬러 하나님께 도태되고 징벌받았을 것입니다.

그 후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람이 명리와 지위, 이익만을 추구한다면 영원히 진리 생명을 얻지 못한다. 결국, 손해 보는 것은 자신이다. 하나님이 구원하는 대상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네가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으며, 네 패괴 성품을 반성하여 인식하지 않는다면 진실한 회개를 할 수 없고, 생명 진입도 불가능하다. 진리를 받아들이고 자신을 아는 것, 이는 너의 생명이 성장하여 구원에 이르는 길이고, 네가 하나님 앞에 나아와 하나님의 감찰과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여 진리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기회이다. 만약 네가 명예와 지위,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진리 추구를 포기한다면, 이는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여 구원에 이르는 기회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네가 선택하는 것은 명리와 지위, 자신의 이익이지만 네가 포기하는 것은 진리이고, 네가 잃게 되는 것은 생명과 구원받을 기회다. 어느 쪽이 가볍고 어느 쪽이 무거우냐? 이익을 선택하고 진리를 포기한다면 너는 어리석은 자 아니겠느냐? 한마디로 소탐대실이라고 할 수 있다. 명리와 지위, 돈, 이익은 모두 잠시적인 것, 연기처럼 사라지는 것이고, 반면 진리 생명은 영원한 것이고, 영원불변한 것이다. 사람이 명리와 지위를 추구하게 하는 패괴 성품을 해결한다면 구원받을 희망이 생긴다. 이 밖에, 사람이 얻는 진리는 영원하여 사탄도, 어떤 사람도 빼앗아 갈 수 없다. 너는 이익을 포기하지만, 진리와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며, 이 성과는 너에게 돌아간다. 이는 너 자신을 위해 얻는 것이다. 사람이 진리 실행을 선택한다면, 비록 이익을 잃을지라도 하나님의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누구보다 총명한 사람이다. 만약 사람이 이익을 얻기 위해 진리를 포기한다면, 생명과 하나님의 구원을 잃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누구보다 어리석은 사람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성품을 아는 것은 성품 변화의 기초이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저는 깨달았습니다. 명예와 이익, 지위를 얻는 것은 잠시뿐이고, 오직 진리를 얻는 것만이 영원하다는 사실을, 그리고 자기에게 닥친 일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서 사적인 이익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처신해야만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고, 그것이야말로 가장 가치 있는 삶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저는 욥이 생각났습니다. 욥은 신분과 지위가 대단했지만, 자신의 신분을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높은 지위를 지니고 사람들의 우러름을 받을 때도 그는 그것에 연연해하지 않고 여전히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났습니다. 하나님의 시련이 임하여 자신의 지위와 자녀, 재산을 모두 잃었을 때도, 그는 잿더미에 앉아 여전히 하나님의 공의를 찬양했습니다. 그는 자기에 대한 남들의 견해나 평가, 시선에 개의치 않고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환경에 순종했습니다. 욥은 실제 행동으로 피조물다운 삶을 살아냈던 것입니다. 다시 저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기술이 좀 있어서 소스를 촬영할 줄 알았던 저는 잠깐 사람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제 신분과 지위를 망각한 채 자기가 대단한 줄 알고 남들에게 신임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보다 나은 사람을 보면 질투하고 미워하는 것도 모자라, 악을 행하여 사람에게 상처까지 주었으니, 욥에 비하면 저는 너무 이성이 없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장눠(張諾) 자매가 저희 팀에 왔고, 그녀도 곧 팀장으로 선발되었습니다. 업무상 모르는 것이 있으면 장눠 자매에게 물어보는 주변 자매들과 가끔 장눠 자매가 본분에 책임감을 가지고 있고 업무를 열심히 배운다고 말하는 책임자를 볼 때면, 제 마음은 무척 괴롭고 상실감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예전에는 책임자가 저를 신임하는 편이었는데, 이제는 장눠 자매가 오니 제가 자매보다 못한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하루는 컴퓨터 앞에 앉아 제가 표출한 모습들을 돌이켜 보았습니다. 장눠 자매가 잘하는 것을 보면 왜 제가 괴롭겠습니까? 주변 자매들이 모두 장눠 자매를 높이 평가하는 것을 보면 왜 이런 상실감이 들겠습니까? 다 제 명예와 지위와 연관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제게 또다시 남과 비교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저는 더 이상 명예와 지위에 얽매이거나 속박받고 싶지 않습니다. 남들이 저를 어떻게 보든 저는 오직 제 본분을 잘 이행하기 원하오니, 제 마음을 지켜 주시옵소서.’ 그러고 나서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남들이 너보다 뛰어나고 너보다 진리를 잘 깨닫는다면 남에게 배워야 한다. 이는 좋은 일 아니겠느냐? 모두가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할 일이다. 인류 역사상 하나님을 따른 사람 가운데 욥이라는 사람이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6천 년 경영 사역 중 영광스러운 일이겠느냐, 아니면 망신스러운 일이겠느냐?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이는 영광스러운 일이다. 우리가 이 일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겠느냐? 어떤 관점을 지녀야겠느냐?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고 경축하며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을 찬미해야 할 것이다. 이는 좋은 일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7조 사악함과 음험함, 그리고 간사함(1)>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제 마음이 한결 환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형제자매의 본분 이행 성과가 점점 좋아진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하신 사역이 열매를 맺었다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이는 하나님의 마음에 위안이 되는 일이니 바람직한 일입니다! 그러니 더 이상 패괴 성품에 얽매여 하나님을 대적할 수는 없었습니다. 다음 날, 저는 자발적으로 자매에게 제 내적 상태를 솔직히 털어놓았습니다. 그렇게 실행하고 나니 마음이 무척 홀가분했고, 자매와의 관계도 훨씬 가까워졌습니다. 그 후로는 책임자가 간혹 자매가 업무 역량이 빨리 늘고 양성할 가치가 있다면서 자매를 신임하는 것을 보면 상실감이 들 때도 있었지만, 더 이상 예전처럼 괴롭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매에게 배우고 그녀의 장점을 받아들이는 데 집중했습니다. 그렇게 실행하니 마음이 한결 가볍고 홀가분해졌고, 자매의 도움 덕분에 제 업무 역량도 어느 정도 향상되었습니다.

저 자신이 드러나는 체험은 제게 고통스럽지만 귀중한 일이었습니다. 제게 이런 환경을 마련하여 체험하게 하신 하나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제가 지금 이만큼이라도 변화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 덕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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