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과 형벌은 하나님의 진실한 사랑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마지막에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증거하겠느냐? 하나님이 공의의 하나님이고, 그의 성품이 바로 공의이자 진노, 형벌, 심판임을 증거한다. 즉, 사람이 증거하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 성품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심판을 통해 사람을 온전케 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고, 또 사람을 구원한다. 하지만 그의 사랑에는 어떤 것들이 들어 있느냐? 심판과 위엄, 진노와 저주가 들어 있다. 지난날 하나님은 사람을 저주했지만, 사람을 완전히 무저갱에 버리지는 않았다. 그는 그런 방식으로 사람의 믿음을 연단했다. 그는 사람을 온전케 하려고 했지 전부 사지로 몰아넣으려 한 것이 아니었다. 육의 본질은 사탄에게 속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조금도 틀림이 없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가 한 말씀대로 사실이 임하게 하지는 않았다. 그가 너를 저주하는 이유는 그를 사랑하게 하고, 네 육의 본질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 또한, 그가 너를 형벌하는 이유는 너를 각성시켜 네 내면의 부족함을 알게 하고, 사람이 형편없고 자격 없는 존재임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 위엄, 진노는 모두 사람을 온전케 하기 위함이라고 하는 것이다. 현재 하나님이 행하는 사역과 너희에게 나타내는 공의 성품은 전부 사람을 온전케 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고통과 시련을 겪어야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알 수 있다> 중에서) 지난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언급하면 저는 자비와 긍휼, 그리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을 떠올렸습니다. 심판과 형벌이 사랑이라는 하나님 말씀은 그다지 이해가 되지 않았죠. 그러던 중 이러한 측면에서 실제로 체험한 후 얼마간 깨달음을 얻었고, 하나님의 말씀이 전부 진리이자 실제임을, 심판과 형벌은 곧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자 구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전에 저는 양육 사역을 맡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2020년 9월,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아 교체되었죠. 교회 리더는 조이스(Joyce) 자매에게 제가 하던 사역을 대신하게 했습니다. 저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씁쓸했습니다. 전에는 제가 조이스의 사역도 책임지고 있었는데 갑자기 상황이 바뀌어 이제 그 자매가 제 사역을 책임지게 되었으니까요. 그러니 제가 너무 부족한 사람처럼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책임자에서 단번에 평범한 양육자가 되었습니다. 저를 아는 형제자매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제가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닐까 걱정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제대로 본분을 이행하지 않은 것이 무척 후회스러웠습니다. 얼마 후, 팀원들과 사역에 관해 상의하고 있었는데,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내가 책임자는 아니지만, 어쨌든 새 신자를 양육해 본 경험이 있으니 부담을 갖고 내 생각을 많이 이야기해야 해. 내가 한몫할 수 있다는 걸 모두에게 보여 주자. 그러면 형제자매들도 나를 대단하게 보지 않겠어?’ 그래서 저는 적극적으로 생각을 이야기하고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이렇게 몇 번의 토론과 교류 끝에 모두 어느 정도 제 관점에 동의하게 됐죠. 문제점에 대해 상의할 때마다 저는 거의 매번 안건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저는 ‘역시 내 사역 능력이 팀 내에서 돋보이네. 나는 책임자가 아니지만, 그래도 책임자 사역을 할 수 있어. 이러면 형제자매들도 나를 대단하게 보겠지. 어쩌면 언젠가 다시 나를 책임자로 뽑아 줄지도 몰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저는 본분 이행에 더 적극적인 태도로 임했습니다. 예배 전에 항상 자발적으로 형제자매들의 내적 상태를 살피고 관련된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 해결해 주었죠. 비록 시간과 에너지가 드는 일이었지만, 이 사역들을 잘 해내면 제 실력을 증명해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 정도 대가쯤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늘 적극적으로 본분을 이행했고, 사역 과정에서 문제점을 어느 정도 발견했으며, 제가 제시한 해결 방안이나 건의는 모두에게 어느 정도 인정받았습니다. 저는 ‘그동안의 내 노력을 모두가 기억해 주는구나. 리더가 사역을 점검하다 이런 내 모습을 알게 되면 다시 나를 발탁해 줄지도 몰라.’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리더가 저를 발탁하려는 기미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교회에 새 신자가 점점 많아지면서 사역을 담당할 인력도 더 많이 필요해졌습니다. 하지만 리더는 꼭 저를 보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이런 상황에 직면하자 기운이 빠졌습니다. ‘나는 이미 어느 정도 변화를 이뤘고, 본분 이행에서도 얼마간 성과를 거뒀어. 게다가 가뜩이나 교회에 인력이 부족한데 왜 나한테 기회 한 번 주지 않는 거지? 교체돼서 다시는 책임자가 될 기회조차 없는 걸까?’라고 생각했죠. 이렇게 노력하는데도 왜 상황이 달라지는 게 없는 건지, 대체 저한테 부족한 게 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얼마 후,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무래도 내 노력이 부족해서 눈에 띄지 않았던 것 같아. 본분 이행 성과도 이 정도로는 부족하고. 앞으로 더 노력해야겠어. 본분에서 좋은 성과를 내려고 노력하는 건 물론이고, 진리 추구와 생명 진입에도 더 공을 들이는 거야. 그럼 다른 사람들이 발전한 내 모습을 볼 수 있을 테고, 하나님께서도 다시 나를 긍휼히 여겨 기회를 주시겠지.’ 저는 열심히 ‘추구’하기만 하면 언젠가 만회할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설사 다시 책임자가 될 수는 없을지라도 최소한 팀 내에서 돋보이는 사람이 되고 싶었죠. 그래야 형제자매들이 저를 우러러볼 테니까요. 그 후 저는 양육 사역에 매진하기 시작했습니다. 새 신자들이 어떤 문제나 어려움에 부딪히면 마음을 다해 묵상하며, 하나님 말씀을 찾아 교제하고 해결해 주었습니다. 꿰뚫어 볼 수 없는 문제가 있으면 늘 부담을 갖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며 구했습니다. 얼마간 시간이 흐르자 새 신자 양육 성과가 점점 좋아졌습니다. 얼마 후 예배에서는 팀장이 저를 언급하며 제가 요즘 본분 이행에 부담을 갖고 임한다고, 새 신자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있고, 성과도 무척 좋다고 말했죠. 그 말을 듣자 저는 매우 흡족했고, 이제 모두가 제 본분 이행 성과를 보았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서 제가 본분 성과를 더 끌어올린다면 더 많은 형제자매의 우러름을 받을 것이고, 그럼 분명히 발탁될 기회가 생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 열심히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제가 맡은 사역 외에도 힘닿는 데까지 팀 내 사역을 맡아 진행했죠. 문제가 발견되면 즉시 책임자에게 알려 주고,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진리 추구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하나님 말씀을 보았고, 어떤 내적 상태든 수시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며 구했습니다. 예배 때도 늘 자발적으로 교제했고요. 하지만 이렇게 한동안 노력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발탁되지 못했습니다. 실망한 저는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리 본분 이행 성과가 좋아도 리더가 저를 발탁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럼 이렇게 노력하는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죠. 그 후로 저는 본분에 그렇게 힘을 쏟지 않았습니다. 정상적으로 예배하지 못하는 새 신자를 봐도 간단히 몇 마디 물어볼 뿐 자세히 알아보거나 붙들어 주거나 도와주지 않았죠. 간혹 예배 전에 자매가 제게 형제자매들의 문제나 부족한 점과 관련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 달라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건 제 담당 사역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또 아무리 잘해도 봐 줄 사람 하나 없을 것 같아 핑계를 대며 거절했습니다. 제 내적 상태는 점점 더 나빠졌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고, 하나님 말씀을 읽어도 깨우침과 빛 비춤을 얻지 못했으며 수시로 졸렸습니다. 영 안이 극도로 어두워져서 성령 역사를 느낄 수도 없었고요. 얼마 후 주변의 많은 형제자매가 발탁되었지만, 저는 여전히 보잘것없는 양육자로 남아 있었습니다. 저는 더더욱 낙담했습니다. ‘이렇게 오래 노력했는데 여전히 제자리걸음이야. 아무래도 나는 발탁될 희망이 없나 봐. 똑같이 하나님을 믿는데 누구는 책임자나 팀장이 돼서 남들의 우러름을 받고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발탁되질 않네. 이건 내가 하나님을 믿는 데 실패했다는 의미 아닐까?’ 몹시 소극적으로 변한 저는 무슨 일을 하든 힘이 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소극적으로 변한 걸까? 나는 왜 언제나 지위를 위해 살아가는 거지? 설마 내가 이렇게 오래 하나님을 믿은 것도 지위를 위해서였던 걸까? 나는 왜 이렇게 가련할까? 난 멀쩡하게 살아 있는 사람인데 지위가 없어졌다고 왜 이 모양이 된 걸까?’ 이런 생각을 하자 스스로가 무척 증오스러웠습니다. 저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며 피조물로서의 본분을 이행하고자 함입니다. 하지만 지금 저는 지위에 얽매여 이렇게까지 소극적으로 변하고 피폐해졌습니다. 저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지만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 제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깨우쳐 주시고 저를 구원해 주십시오.” 기도를 마치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적그리스도에게는 적그리스도의 성품과 본질이 있으며, 그가 일반 사람들과 다른 점이 바로 이것이다. 적그리스도는 교체된 후 표면적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마음속으로는 계속 반발심을 품으며 자신의 잘못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또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진실로 자기 자신을 인식하지도 못한다. 이는 이미 증명된 사실이다. 적그리스도에게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특징이 하나 더 있다. 즉, 어떤 곳에서 일하든 혼자 튀려고 하고, 남들이 자기를 우러러보고 앙망하기를 바란다. 리더나 팀장과 같은 명분이 서는 직무나 직함이 없어도 사람들 사이에서 남보다 높은 신분과 지위를 얻으려 한다. 자신이 사역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 자기 인성과 생명 체험이 어떤지에 관계없이 갖은 방법으로, 애써 기회를 찾아 자신을 드러내고, 사람들을 회유하고, 구슬리고, 꾀고 미혹하여 사람들이 자신을 우러러보게 하려 한다. 어떤 점을 우러러보게 하려 하겠느냐? 비록 그가 교체되었을지라도 썩어도 준치라고 자기는 여전히 매이기 때문에 닭보다 높이 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적그리스도의 교만과 독선, 남다른 점이 아니겠느냐? 그는 지위가 없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고, 일반 신자나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성실히 자기 본분을 이행하고, 자신의 위치를 지키며 그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고, 충성을 다하고 최선을 다할 수 없다. 그것으로는 전혀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고, 그런 일을 하는 것도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의 ‘원대한 계획과 큰 뜻’은 무엇이겠느냐? 사람들의 우러름과 앙망, 그리고 수중의 권력이다. 따라서 명의상 직함이 없더라도 적그리스도는 자신을 위해 분투하고, 자신을 위해 입을 열고 해명하면서 사람들 사이에서 애써 자기를 표현한다. 사람들이 보지 못하고 그들의 관심이 멀어질까 두려운 것이다. 자신의 인지도와 명망을 높일 기회를 악착같이 찾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은사와 장점을 보여 주고, 남들보다 뛰어나 보이려 한다. 적그리스도가 이런 일들을 할 때는 어떤 대가를 치르든 자신을 과시하고 추켜세우려 한다. 그래서 사람들 눈에 비록 자기가 더 이상 리더도 아니고, 별다른 지위도 없지만 여전히 남들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게 하려 한다. 그러면 그의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는 일반 사람이 되기를 꺼리고,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을 꺼린다. 권세와 명망을 손에 넣어 남보다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한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12조 복받을 희망이나 지위가 없으면 물러나려 한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자 하나님께서 눈앞에서 저를 폭로하시는 듯한 기분이었죠. 하나님께서는 적그리스도 부류의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 명예와 지위를 얻는 데 목적이 있으며, 사람들 사이에서 권세를 손에 넣고 남들의 우러름을 받으려 한다고 폭로하셨습니다. 적그리스도는 이러한 야심과 욕망을 채우기 위해 어떤 대가도 불사한 채 스스로를 과시하고 높이며, 사람의 마음을 회유합니다. 적그리스도의 모습을 저에게 대입해 보니 제가 추구한 것 역시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지위를 얻으려 했으며, 리더나 책임자가 되고자 했습니다. 또 사람들 사이에서 돋보이고 싶었고, 형제자매들의 우러름과 지지를 얻고 싶었습니다. 교체된 후로도 책임자가 되려는 야심을 내려놓은 적이 없었습니다. 사역에 대해 의논할 때마다 적극적으로 생각을 이야기하고 아이디어를 제공했으며, 본분 이행 과정에 존재하는 문제나 오류를 발견하면 바로바로 책임자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제가 문제를 발견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해결 방안도 제안할 수 있는, 똑똑하고 생각 있는 사람이라는 걸 책임자가 알고 저를 발탁 명단에 올려 주길 바랐던 것이었죠. 제가 열심히 제게 주어진 사역을 하는 것도 형제자매들에게 제가 실제적인 사역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 주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야 발탁될 기회를 얻을 수 있을 테니까요. 또 저는 부담을 갖고 본분을 이행하며, 중책을 맡을 수 있는 사람임을 모두에게 보여 주기 위해 제가 담당한 사역이 아니어도 자발적으로 했습니다. 아무리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들어도 기꺼이 했죠. 진리 추구도 소홀히 하지 않았고요. 모두의 동조를 얻기 위함이었죠. 저는 온갖 기회를 찾아 스스로를 어필하고 증명했습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께서 폭로하신 적그리스도의 모습 아니겠습니까?
이어서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이 말씀에서 하나님은 적그리스도의 패괴 본질을 낱낱이 폭로하셨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적그리스도에게는 자신의 명예와 지위가 타격을 받고 박탈되는 것이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심각한 일이다. 설교를 아무리 많이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그는 자신이 진리를 전혀 실행하지 않고 적그리스도의 길을 간다는 사실, 자신에게 적그리스도의 본성 본질이 있다는 사실로 괴로워하거나 뉘우치는 게 아니라 지위를 얻고 더 높은 명망을 얻기 위해 늘 온갖 궁리를 한다. 적그리스도 부류의 사람들이 하는 모든 일은 그저 사람 앞에서 자신을 뽐내는 것이지,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왜 이렇게 말할까? 이런 사람들은 지위를 너무 좋아해서 그것을 목숨으로 여기고, 인생의 추구 목표로 여기기 때문이다. 또 그들이 지위를 너무 좋아해서 진리의 존재를 믿지 않고, 심지어 마음속으로는 하나님의 존재를 전혀 믿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아무리 지위와 명예를 위해 주판알을 튕기고, 또 아무리 거짓된 모습으로 사람을 속이고 하나님을 속인다 해도 그들의 내면 깊은 곳에는 아무런 지각도 자책감도 없고, 불안함은 더더욱 없다. 그들은 한결같이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는 동시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하나님이 하는 모든 일을 부정한다. 왜 이렇게 말하겠느냐? 바로 적그리스도는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모든 명예와 지위는 다 사람이 스스로 쟁취하는 거야. 사람들 사이에서 입지를 굳히고, 명예와 지위를 얻어야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 있어. 절대적 권력과 지위를 얻어야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사람답게 사는 거지. 그와 반대로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매사에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고 기꺼이 피조물의 지위에 서서 정상인의 모습을 살아 낸다면, 그렇게 사는 건 너무 못난 거야. 아무도 우러러봐 주지 않잖아. 사람의 지위와 명망, 행복은 스스로 쟁취하는 거야.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태도로 쟁취하고 빼앗아야 얻을 수 있지, 남이 쥐여 주는 게 아니야. 수동적으로 기다리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라고 말이다. … 적그리스도는 마음속으로 굳게 믿고 있다. 명예와 지위가 있는 사람만이 존엄을 갖춘 사람이자 진정한 피조물이며, 지위가 있어야 상과 면류관을 얻을 수 있고 하나님께 인정받을 자격이 있다고, 지위가 있으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으며 지위가 있는 사람만이 진정한 사람이라고 말이다. 그는 지위를 무엇으로 여기고 있느냐? 지위를 진리로, 사람이 추구해야 할 최고의 목표로 여기고 있다. 그러니 문제가 되지 않겠느냐? 이렇게 지위를 중요시하는 자는 영락없는 적그리스도이며, 바울과 같은 부류의 사람이다. 그는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정직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을 최고의 지위로 향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에게 그것은 사람됨의 목표와 기준이 아니라 그저 과정, 완전히 하나님께 보여 주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이렇게 이해하는 것은 너무도 황당하고 그릇되다! 오직 진리를 증오하는 그릇된 놈만이 이렇게 터무니없는 생각을 할 것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9조(3)>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자 더더욱 가슴이 아프고 괴로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제 마음속 어두운 면을 들추어내 얼굴을 들 수가 없었죠. 저는 조금씩 스스로를 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돌아보면 돌아볼수록 제 사상 관점이 적그리스도와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언행은 전부 명리와 지위를 염두에 두고 이뤄졌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남의 우러름을 받는 게 목적이었고, 지위를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하나님을 믿기 전에 저는 사람들 사이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것을 추구했고, 남들의 지지와 동조를 얻는 걸 좋아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후로는 또 줄곧 리더 일꾼이 되기 위해 추구했으며, 남들에게 우러름 받고 교회에서 중용되고자 노력했습니다. 교체된 후에도 지난 과오를 생각하며 뉘우치지 않았고, 어떻게 제대로 회개할지 생각하지 않았으며, 열심히 본분을 이행하여 하나님께 진 빚을 갚으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본분 이행의 기회를 이용해 스스로를 과시했죠. 다시 지위를 얻겠다는 마음으로 본분 이행 과정에서 고생하며 대가를 지불했습니다. 한동안 노력하고 난 후에도 발탁되지 않자 낙심해서는 본분 이행 과정에서 아무리 대가를 지불하고 큰 성과를 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니 제가 지불한 대가가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지위를 얻지 못하자 본분마저 제대로 이행하고 싶지 않았고, 심지어는 하나님을 오해하고 원망하면서 하나님께 이치를 따지고 소극적으로 변해 대항했습니다. 저는 명예와 지위에 완전히 눈이 멀어 피조물로서 마땅히 지녀야 할 양심과 이성을 잃어버렸습니다. 저는 언제나 지위를 추구했으며, 사람들 사이에서 평범한 존재로 살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적그리스도처럼 사악하고 몰염치하며 조금의 이성도 없었죠. 특히 “그는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정직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을 최고의 지위로 향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에게 그것은 사람됨의 목표와 기준이 아니라 그저 과정, 완전히 하나님께 보여 주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라는 하나님 말씀을 읽을 때는 호되게 뺨을 맞는 기분이었습니다. 진리를 추구하고 실행하는 것은 원래 긍정적인 사물이며, 사람의 본분입니다. 사람은 마땅히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저는 진리 추구와 진리 실행을 지위를 얻기 위한 포석으로 여겼습니다. 이렇게 비열한 속셈을 품고 본분을 이행했으니 하나님께 전혀 인정받지 못한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또 일을 바라보는 제 관점이 그릇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항상 지위와 권세를 갖고 높은 사람, 유명한 사람이 되어 남들의 우러름과 숭배를 받는 것이야말로 가치 있는 삶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지위를 얻지 못하고 평범하게 따르는 자가 된다면 한심한 거라고, 하나님을 믿는 데 크게 실패한 거라고 여겼죠. 일을 보는 제 관점이 너무도 그릇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합당한 자격을 갖춘 피조물이 되기를, 자신의 자리를 잘 지키며 성실하게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고 피조물의 책임을 다하기를 요구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 원래 자리에서 벗어나 높은 사람, 큰 사역을 하고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이 되고 싶어 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에게 우러름 받고 싶어 했습니다. 이는 사탄 성품 아닐까요? 사실 양육 사역에서 얼마나 대가를 지불하고 얼마나 큰 역할을 하든, 그것은 다 제가 마땅히 이행해야 할 본분이자 책임입니다. 하지만 저는 늘 그것을 빌미로 스스로를 어필하면서 지위를 얻고자 했습니다. 야심과 욕망이 충족되지 않았을 때는 더 이상 열심히 본분을 이행하고 싶지 않았고요. 저는 제 야심을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의 이 ‘충성심’은 기만과 거래 심리로 점철되어 있었으니 이게 어디 진리를 실행하고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었겠습니까? 전부 하나님을 이용하고 기만하는 것으로, 걷는 길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길이었지요! 하나님은 더없이 공의롭고 거룩하시며, 사람의 마음과 폐부를 감찰하십니다. 제가 시종일관 그릇된 길에서 추구하는데 어떻게 성령 역사를 얻을 수 있었겠습니까? 저는 갈수록 내적 상태가 나빠졌고 어둠 속에 떨어졌습니다. 이는 하나님께 방치되고 하나님의 징벌 속에서 살아간 것 아닐까요? 저는 그제야 명리와 지위를 추구하는 것이 실로 두려운 일임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제 주제를 몰랐습니다. 자신이 실제적인 사역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도 생각하지 않은 채 늘 지위를 추구하며 발탁되기를 바랐죠. 저는 정상 인성과 이성이 없으며, 스스로를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때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언젠가는 명예와 이익이 얼마나 큰 사탄의 족쇄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너희가 이를 깨닫고 나면, 사탄의 통제와 사탄이 묶어 놓은 족쇄에 철저하게 맞서게 될 것이다. 그리고 네가 사탄이 주입한 것에서 벗어나려고 할 때, 사탄과 완전히 결별하고 사탄이 준 모든 것을 진심으로 증오하게 될 것이다. 그때야 사람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사모하게 된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6>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너무도 진실했습니다! 저는 항상 지위를 추구했고, 사탄에게 농락되어 극도로 고통받았습니다. 또 성령의 인도를 잃고 어둠 속에 떨어졌고요. 명리와 지위는 저를 너무도 힘들게 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지나치게 고집스럽고 강퍅한 스스로가 증오스러웠죠. 생각해 보면, 저는 늘 명리와 지위를 추구하며 적그리스도의 길을 걸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저를 일깨우고 폭로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제가 잘못된 추구를 깨닫고 올바른 길로 돌아서게 하시려고 말이죠. 하지만 저는 그것을 알지 못한 채 하나님을 오해하고 원망하며, 소극적으로 변해 대항했습니다. 정말 너무도 막무가내였죠! 이런 생각을 하니 죄스러운 마음을 지울 수가 없어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더 이상 명리와 지위를 추구하고 싶지 않습니다. 진리를 구해 패괴 성품을 해결하고 진실로 회개하고자 합니다. 저를 깨우쳐 주고 이끌어 주십시오.”
그 후,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많은 일을 하고 큰 사업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뭔가 위대한 업적을 남기는 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사람이 자신의 능력에 따라 착실하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다. 하나님은 네가 아주 위대해지는 것도, 존귀해지는 것도, 어떤 기적을 만들어 내는 것도 필요하지 않다. 또 하나님은 너에게서 그 어떤 놀라움을 보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이런 것들은 다 필요 없다. 하나님은 오로지 네가 착실하게 하나님 말씀에 따라 실행하기만을 바란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해했으면 바로 행하고, 듣고 깨달았으면 이행하고, 들었으면 마음속에 새기고, 그리고 실행해야 할 때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너의 생명과 실제가 되고 그 말씀을 살아 내기를 원할 뿐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만족한다. 네가 언제나 위대해지는 것, 고상해지는 것, 지위를 얻는 것, 높은 위치에 서는 것을 추구하면, 하나님이 보고 무슨 느낌이 들겠느냐? 하나님은 혐오하고, 멀리할 것이다. 네가 위대해지고 고상해지기를 추구할수록, 남보다 뛰어나고 두각을 드러내며 출중해지고 훌륭해지기를 추구할수록 하나님은 너를 싫어한다. 네가 반성하거나 회개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너를 혐오하고 버릴 것이다. 절대 하나님이 싫어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겠느냐? 성실하게 진리를 받아들이고, 피조물의 위치에 제대로 서고, 착실하게 하나님 말씀대로 행동하고, 본분을 잘 이행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어 사람다운 모습으로 살면 되는 것이고, 하나님은 만족할 것이다. 사람은 절대 야심을 품거나 헛된 꿈을 꾸지 말고, 명리나 지위를 추구하지 말고, 두각을 드러내기를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 초인이나 위인이 되는 것, 사람들 속에서 남보다 돋보여 다른 사람의 숭배를 받는 것은 더더욱 추구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패괴된 인류가 동경하는 것으로, 사탄의 길이다. 하나님은 그런 부류의 사람을 구원하지 않는다. 계속 명리나 지위를 추구하면서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자들은 구제 불능이고, 결말은 오직 하나, 즉 도태되는 결말을 맞이할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려면 조화로운 협력이 필요하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유명하고 위대한 사람, 대단한 사람이 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착실히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성실하게 순종하기를 바라시죠. 하지만 저는 본분을 지키지 않았으며 평범한 사람이 되는 데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높은 지위, 남보다 위에 서는 것을 추구했으니 정말 너무도 교만했지요! 하나님은 창조주시며, 하나님은 더없이 위대하고 존귀하십니다. 하나님은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친히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와 진리를 선포하셨지만, 한 번도 자신을 과시하는 법 없이 묵묵히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을 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낮춤과 감춤은 정말 너무도 사랑스럽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더욱 부끄럽고 면목이 없어진 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육을 저버리고 진리를 실행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 후 저는 본분 이행에 마음을 쏟으며 어떻게 해야 새 신자들을 잘 양육할 수 있을지 열심히 고민했습니다. 더는 높은 지위 따위를 추구하지 않고, 평범한 사람이 되어 성실하게 제 본분을 이행하고자 했죠. 이렇게 실행하자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습니다. 본분 이행에 마음을 쏟자 하나님께서도 제가 양육 사역에서 좋은 방법을 찾을 수 있게 깨우쳐 주셨고요. 본분 이행의 성과 또한 시나브로 좋아졌습니다. 한번은 새 신자 예배를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양육하는 자매가 온 지 얼마 안 되어 새 신자들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어떻게 연락해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사실 저는 자발적으로 도와야 한다는 걸 알았지만, 사람들에게 연락하고 통지하는 등 예배 전 준비 작업이 모두 너무 눈에 안 띄고 사소한 일 같았습니다. ‘내가 자발적으로 이 일을 하겠다고 하면 내 체면이 깎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죠. 하지만 그때, 이 관점이 옳지 않다는 것을 의식했습니다. 본분에는 큰일, 작은 일이 없습니다. 연락하고 통지하는 것 또한 본분인데 왜 할 수 없겠습니까? 이런 생각을 한 저는 자발적으로 형제자매들에게 연락하는 것을 돕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행했을 때, 저는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하나님의 감찰을 받고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고 온 힘을 다해 본분을 이행하면 마음에 평화와 평안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때로는 형제자매들이 양육 사역과 관련된 세부 내용들을 물어보곤 했습니다. 책임자가 너무 바빠 일일이 대답해 줄 시간이 없으면 제가 힘닿는 데까지 교제해서 해결해 주었죠. 저는 더 이상 남들의 우러름을 받을 수 있을지, 지위를 얻을 수 있을지 등을 따지지 않고, 어떻게 해야 형제자매들과 조화롭게 협력할 수 있을지, 그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을지만 생각했습니다. 야심과 욕망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하자 본분을 이행할 때의 상태가 달라졌고, 부담도 더 커졌습니다. 문제점도 더 많이 발견하게 됐고요. 제 내적 상태 역시 점점 좋아졌고, 마음속은 갈수록 평안하고 밝아졌습니다. 이렇게 처신하니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죠. 저는 하나님 말씀이 곧 진리이며, 정말 사람을 변화시키고 정결케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 말씀과 진리에 따라 처신하고 행동하며, 창조주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는 것이야말로 피조물인 제가 살아가는 근본이었습니다. 앞으로 저는 지위가 있든 없든, 하나님이 저를 어디에 두시든 하나님의 지배에 따르고, 착실하게 피조물로서의 본분을 이행하겠습니다.
돌아보면 저는 늘 명리와 지위를 애써 추구했습니다. 그 결과 스스로를 괴롭혀 심신이 피폐해졌죠. 만약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심판하고 폭로하고 드러내시지 않았다면 제가 사탄에게 이렇게 깊이 패괴되었다는 것도, 지위욕이 이렇게 크다는 것도 몰랐을 것입니다. 늘 명예와 이익을 다투는 상태로 살면서 사탄에게 농락되고 해를 입었을 테죠. 사람다운 모습으로 살아갈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체험을 통해 저는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이 사람에 대한 한없는 보호이자 구원, 그리고 사랑임을 진실로 깨달았습니다.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처럼 말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정결케 되고 성품이 변화되며 의미 있는 삶을 살고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려면,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징계와 매가 떠나지 않게 함으로써 사탄의 지배와 권세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빛 속에서 살아야 한다. 너는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이 빛이요, 사람을 구원하는 빛이고, 사람에게 가장 좋은 축복이며, 가장 큰 은혜이자 가장 좋은 보호임을 알아야 한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베드로의 체험 ―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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