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위치를 제대로 찾는 것이 중요하다
저는 교회에서 사무 사역을 맡고 있습니다. 한번은 이야기 중에 교회 리더가 전신(甄心) 자매를 언급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리더는 전신 자매에 대해 자질이 좋고 순수하게 이해하며 진리를 교제하는 것도 실제적이라 말하며 양육 사역을 맡기기 위해 그녀를 양성할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얼마 후 그녀는 리더로도 뽑혔습니다. 이런 결과를 보는 제 마음은 심란했습니다. ‘예전에 우리 둘은 협력해서 사무 사역을 하는 사이였는데, 그녀는 이제 리더가 되었고 나는 지금껏 사무 사역을 하고 있어. 나는 왜 이렇게 형편없는 걸까?’ 오전 내내 마음이 답답해서 본분에도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리더가 제게 전신 자매의 뒤를 이어 사무 사역 책임자를 맡는 건 어떤지 물었습니다. 저는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책임자라는 타이틀을 걸었더라도 결국 사무 사역이야. 아무리 잘해도 알아주는 사람도 없어. 리더를 맡는 것과는 달라. 리더야말로 교회에서 중점적으로 양성하는 대상이고, 형제자매들의 우러름과 지지를 받을 수 있지.’ 저는 사무 사역은 열등하다고 느껴져 그다지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만약 이 본분을 맡게 되면 앞으로 형제자매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몇 년이나 하나님을 믿었으면서도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발전이 없어서 계속 사무 사역만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그렇다면 얼굴을 어떻게 들고 다니지?’ 그러나 또 생각해 보니 본분이 주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허락이 있는 것입니다. 설령 자신의 뜻에 맞지 않더라도 일단은 순종해야 하지 개인의 기호를 따라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내키지 않지만 리더에게 그 본분을 이행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저는 리더가 또 상진(尙進) 형제의 자질이 좋아 생명 진입에 조금만 더 힘쓰면 리더 일꾼이 될 수 있을 테니, 그를 더 많이 양성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저는 더욱 괴로웠습니다. ‘상진 형제가 맡은 사역의 책임자가 바로 나야. 상진 형제마저 리더의 주목을 받아 양성되려 하는데, 어떻게 내 이름은 언급되는 법이 한 번도 없을까? 난 상진 형제의 사역 책임자면서도 발탁되기는커녕 아직도 제자리걸음이니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내가 그렇게 형편없나? 나는 사역을 파악하고,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는 능력도 어느 정도 갖추고 있어. 리더가 어떤 일에 관해 상의할 때 내 의견을 얘기하고 제안도 하는데, 리더는 왜 내 능력을 봐주지 않을까? 한 번이라도 내 이름을 언급하면서 양성할 만하지만 사무 사역에 필요한 사람이라고 말해 준다면, 내가 그렇게 형편없는 사람이 아니란 걸 보여 줄 수 있을 텐데. 그럼 내 마음도 좀 더 편해질 거야.’ 그 후로 며칠간, 이 일을 생각하기만 하면 가슴이 턱 막혔고 기운이 나지 않아 형제자매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본분을 이행할 때도 책임감을 가질 수 없었고, 형제자매들이 저에게 문제를 보고해 와도 이전처럼 진심으로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리더가 저 보고 전신 자매의 모임 그룹에 물건을 전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자 정말로 내키지 않아 생각했습니다. ‘전신 자매가 날 어떻게 볼까? 예전에 같은 본분을 이행하던 사이였는데, 지금 본인은 리더이고 나는 여전히 사무 사역을 하고 있으니 나를 변변치 못하다면서 무시하지 않을까?’ 하지만 가지 않으면 사역에 지장을 줄 테니 어쩔 수 없이 눈 딱 감고 가기로 했습니다. 모임 장소에 도착한 저는 전신 자매가 알아보지 못하도록 거실 소파에 앉아 허리를 숙이고 머리는 무릎 사이에 파묻은 채 30분 넘게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형제자매가 말을 걸어와도 전신 자매가 절 알아볼까 봐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그때 자신이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고, 울고 싶을 만큼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저는 참지 못하고 다른 방으로 뛰어 들어가 밤하늘을 보며 조용히 눈물을 흘렸습니다. ‘나는 양성할 가치도 없어. 다른 사람은 다 리더를 하는 와중에 나는 사무 사역만 할 뿐이야.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여기까지 생각한 전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나 싶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어렴풋이 떠올랐습니다. “적그리스도에게 있어 지위와 명예는 그의 생명이다. … 깊은 산 숲속에 데려다 놓아도 그는 명예와 지위에 대한 추구를 내려놓지 못할 것이다.” 저는 이 말씀이 제 내적 상태를 말씀하는 것 같아서 찾아봤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적그리스도에게 있어 지위와 명예는 그의 생명이다. 그가 어떻게 살아가든, 어떤 환경에서 생활하든, 어떤 직업에 종사하든, 추구하는 것과 목표가 무엇이든, 인생의 방향이 어디를 향하고 있든 모두 좋은 명예와 높은 지위를 갖는 것을 중심에 놓는데, 이 목적은 바뀌지 않는다. 이는 그가 영원히 내려놓지 못하는 것들이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진면목이자 그의 본질이다. 깊은 산 숲속에 데려다 놓아도 그는 명예와 지위에 대한 추구를 내려놓지 못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 가운데 갖다 놓아도 그가 마음속으로 신경 쓰는 것은 여전히 명예와 지위이다. 적그리스도 부류 사람들 역시 하나님을 믿긴 하지만, 그들은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는 것과 하나님을 믿는 것 사이에 등호 기호를 그려 넣곤 이 두 가지를 대등한 위치에 둔다. 즉,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길을 걸으면서 동시에 명예와 지위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곧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는 것이며,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는 것이 곧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고, 명예와 지위를 얻으면 진리와 생명을 얻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할 수 있다. 만약 그들이 어떤 명예와 이익, 지위도 얻지 못하고, 다른 이의 앙망과 우러름, 추종도 받지 못했다고 생각된다면, 깊은 실의에 빠져 하나님을 믿는 것은 의미도 가치도 없다고 여길 것이다. 그들은 속으로 ‘이렇게 하나님을 믿는 건 실패한 거 아닌가? 희망이 없는 거 아닌가?’라고 느낀다. 그들은 늘 마음속으로 이런 것을 궁리한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 집에서 한자리 차지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교회에서 높은 명망을 얻어 자기가 말하면 사람들이 들어주고 행동하면 지지해 줄지, 어디를 가든 자신을 따를 대상이 있을지, 교회에서 발언권과 명예, 이익, 지위를 갖게 될지 등을 궁리한다. 그들은 속으로 이런 것들을 특별히 중시한다. 이것이 바로 이 부류 사람들의 추구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9조(3)>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적그리스도는 어떤 일을 하든 자신의 명예와 지위를 가장 먼저 고려하고, 어떤 경우에도 명예와 지위에 대한 추구를 놓지 않으며, 지위를 자신의 생명처럼 중요하게 여깁니다. 저는 반성했습니다. 왜 저는 늘 사무 사역을 하기 싫어하고 리더가 될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해 지나치게 신경 썼던 걸까요? 주된 이유는 리더는 지위가 있고, 형제자매들의 우러름과 지지를 받을 뿐만 아니라 윗선 리더들도 신임하는, 교회의 중점 양성 대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전 리더가 되는 것이 좋은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체면이 설 뿐만 아니라 리더가 돼야만 전도가 유망하다고 여겼습니다. 반면 사무 사역은 외부적인 업무로,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만 이행하는 본분이라 아무에게도 인정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잘못된 생각과 관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씩 발탁돼 양성되고 또 누구는 리더로 뽑히는 걸 볼 때면 충격을 받고, 리더가 제 이름도 좀 언급해 주었으면 하는 생각 뿐이었던 겁니다. 그런데 리더가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을 양성할 때면 저는 너무도 고통스러웠고,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을 만큼 괴로웠습니다. 본분을 이행할 마음 역시 사라졌고, 매일 명예와 지위 때문에 시달리며 말도 못할 정도로 힘들어했습니다. 심지어 사는 것조차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느껴졌습니다. 제가 이토록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는데, 이게 바로 적그리스도의 길을 걷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기까지 깨닫고 나자 두려운 마음이 들어 전 황급히 하나님께 기도하고 회개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는 마음이 너무 강합니다. 저는 이런 패역한 내적 상태로 있고 싶지 않습니다. 부디 제가 명예와 지위의 얽매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주세요.”
어느 날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보았고, 저의 잘못된 추구 관점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이 생겼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항상 날개를 펴고 높이 날고 싶어 하고, 혼자 날고 싶어 하고, 항상 작은 새가 되려 하지 않고 매가 되고 싶어 하지 않느냐? 이것이 무슨 성품이냐? 이것이 사람으로 사는 원칙이더냐?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그에 맞는 사람으로 살기를 추구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리이다. 너희가 사탄에 의해 너무 깊이 패괴되어 전통문화, 즉 사탄의 말을 진리이자 추구하는 목표로 삼는다. 이러면 잘못된 길로 나아가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길을 가기 쉽다. 패괴된 인류의 사상과 관점, 추구하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뜻과 진리에 위배되고,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재하고, 지배하며, 하나님이 인류의 운명을 주재한다는 이 법칙에 위배된다. 그러므로 그렇게 추구하는 것이 사람의 사상과 관념으로는 아무리 정당하고 합리적이라고 해도 하나님이 볼 때는 전부 긍정적인 사물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도 아니다. 네가 하나님이 인류의 운명을 주재한다는 사실을 위배하고 혼자 힘쓰며 운명을 자기 스스로 좌지우지하려고 했기 때문에 결국 늘 벽에 부딪혀 머리가 깨지고 피를 흘리게 되며 항상 실패하는 것이다. 어째서 실패하는 것일까? 바로 하나님이 규정한 법칙은 그 어떤 피조물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권병과 능력은 그 무엇보다도 높아서 그 어떤 피조물도 그것을 무너뜨릴 수 없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제 주제를 너무 모른다. 그러면 무엇이 사람으로 하여금 자꾸만 하나님의 주재를 벗어나고 싶게 하고, 자기 운명을 스스로 좌지우지하고 자기 미래를 스스로 계획하고 싶게 만들며, 자신의 앞날과 방향, 인생 목표를 제 스스로 관장하고 싶게 만들겠느냐? 그 출발점은 어디겠느냐? (사탄의 패괴 성품입니다.) 그럼 사탄의 패괴 성품이 사람을 어떻게 만드느냐? (하나님과 맞서게 합니다.) 하나님과 맞선 결과는 무엇이냐? (고통입니다.) 어디 고통스럽기만 하겠느냐? 그것은 멸망이다! 지금 당장은 고통스럽고 소극적이고 연약하며, 반발하고 원망한다. 그런데 이것으로 초래되는 결과는 무엇이겠느냐? 멸망의 재앙이다! 이것은 사소한 일이 아니고, 장난도 아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없는 사람은 이 사실을 간파할 수 없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받아들여야 패괴 성품을 해결할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께서 말씀에서 밝히신 것처럼 저는 늘 매가 되고 싶어 했지, 작은 새는 되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사무 사역을 하는 것은 작은 새와 같아 양성 가치가 없고 알아주는 사람도 없는 반면, 리더가 되는 것은 매와 같아 잠재력이 있고 신임과 존중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사람은 높은 곳으로 가고,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 “사람은 체면으로 산다.”, “부처는 향불을 받아야 하고, 사람은 기개가 있어야 한다.”와 같은 사탄 독소에 기대어 살았고, 사람은 살아 있는 한 계속해서 높은 곳을 향해 가야 하며 지위는 높을수록 좋은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여겼습니다. 이런 잘못된 생각이 저를 지배했기에 본분을 착실히 이행할 수 없었고, 늘 사람들의 우러름을 받을 수 있는 리더가 되기 만을 원했습니다. 주변 형제자매들이 리더로 뽑히는 걸 볼 때면 고통스럽고 괴로웠습니다. 심지어 내가 다른 사람보다 못한 것도 없는데 왜 그들은 리더가 되고 나는 사무 사역만 해야 하느냐는 생각에 원망과 반발심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사무 사역을 하는 사람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여겨 소극적인 상태로 살았고, 본분을 대충 이행했으며 소극적인 태도로 일을 게을리했습니다. 지위에 대한 집착이 너무 강했습니다! 사람이 각자 어떤 자질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본분을 이행할 수 있는지, 이 모든 것은 일찍이 하나님께서 운명적으로 정해 주신 것이고, 제가 지금 이행하고 있는 본분 역시 하나님의 주재로 안배된 것이기에 마땅히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합니다. 저는 항상 사무 사역은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고 여겼습니다. 이렇게 괴로운 삶을 사는 것은 모두 제가 잘못된 것을 추구하고, 제가 너무 패역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지 못하고 소극적이 되어 원망하는 마음을 품은 것은 본질적으로 하나님께 대항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간다면 하나님께 버림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 저는 또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만약 네가 교회 사역에 부담감이 있고 교회 사역에 참여하고 싶다면 그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자신이 진리를 깨달았는지, 진리를 교제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하나님의 사역에 진실로 순종할 수 있는지, 사역지침에 따라 교회 사역을 제대로 할 수 있는지 반성해야 한다. 만약 이 몇 가지에 이를 수 있다면 리더 일꾼 선거에 나가도 좋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건 사람이 최소한 자기 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우선 본인이 사람을 분별할 줄 아는지, 진리를 깨닫고 원칙대로 일을 처리할 수 있는지를 봐라. 만약 이런 요구에 이를 수 있다면 리더 일꾼이 되기에 합당하다. 만약 스스로 가늠할 수 없다면 주위에 너와 가깝고 잘 아는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된다. 만약 모두가 네 자질이 리더를 맡을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현재 네가 맡은 본직 사역부터 잘하는 게 좋겠다고 얘기한다면 얼른 자기를 인식하도록 해라. 네 자질이 부족하다면 리더가 될 생각만 하지 말고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착실하게 자신의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며 마음의 평안을 얻는 것도 괜찮다. 만약 네가 리더가 될 수 있다면, 네가 정말 그런 자질과 재능, 사역 능력이 있고 부담도 있다면 하나님 집에서 마침 이런 인재가 필요한 상황이라 틀림없이 너를 발탁해서 양성할 것이다. 하지만 무슨 일이든 하나님의 때가 있는 법이다. 발탁되고 싶은 너의 그 바람은 야심이 아니다. 하지만 리더가 되기 위한 자질과 조건을 갖춰야 한다. 자질이 부족한데도 늘 리더가 되려 하고, 중책을 맡으려 하고, 사역 전반을 책임지려 하고, 얼굴을 내밀려고 한다면, 잘 들어라, 그것은 야심이다. 야심은 재앙을 가져올 수 있으니 경계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성취욕이 있고 진리에 공을 들이기를 원한다. 여기에는 문제가 없다. 어떤 사람들은 자질이 있고 리더가 되기 위한 조건을 갖추고 있고 진리에 공을 들일 수 있다. 이건 좋은 일이다. 자질을 갖추지 못한 일부 사람들은 자기 본분을 잘 지키고 눈앞에 놓인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며 원칙에 맞게, 하나님 집 요구에 맞게 처신해야 한다. 이것이 그에게는 더 좋고, 더 안전하고, 더 현실적이다.』(<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5)> 중에서), 『발탁되고 양성되는 일에 대해 사람은 올바른 이해와 올바른 태도를 지녀야 하고 이 일에서 진리를 구해야 한다. 자기 뜻대로 해서도 안 되고 야심과 욕망을 품어서도 안 된다. 만약 네가 스스로 자질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님 집에서 한 번도 너를 발탁해 주지 않고 너를 양성할 계획도 없다면 낙담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진리를 추구해서 계속 노력하도록 해라. 너에게 분량이 좀 생겨서 실제 사역을 할 수 있게 되면 하나님 선민들이 자연스럽게 너를 리더로 선출할 것이다. 만약 네가 자신의 자질이 부족하고 앞으로도 발탁되고 양성될 기회가 없고 네 야심을 채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이건 좋은 일이 아니냐? 그것은 너에게 보호가 되는 일이다! 네가 자질이 부족한데 눈이 먼 바보들이 너를 리더로 선출하는 일이 생긴다면 그건 너를 불구덩이 속으로 밀어넣는 것이 아니겠느냐? 너는 어떤 사역도 할 수 없다. 눈도 멀고 마음도 멀어서 손만 대면 방해가 되고 손만 쓰면 악행이 된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자신의 본직 사역을 제대로 하는 것이 낫다. 그러면 최소한 웃음거리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고, 거짓 리더가 되어 남에게 손가락질당하는 것보다 낫다. 사람이라면 자기 분수를 알고 자신을 정확히 알아야 잘못된 길을 가고 큰 잘못을 저지르는 일을 피할 수 있다.』(<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5)>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보고 나자 마음속에 깊은 울림이 느껴졌습니다. 저는 늘 제가 주변 형제자매들보다 잘났다고 생각했고, 항상 리더가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정말 리더로서 적합했을까요? 제가 진정 리더의 자질을 갖추고 있었을까요? 리더는 진리를 추구하고, 사역 능력이 있어야 하며, 인성이 좋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하고 싶다고 해서 아무나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리더의 조건을 갖추지 못하고 실제적인 사역을 못하는 사람이 리더가 되어 봤자 리더로서 제대로 서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거짓 리더가 되기도 합니다. 돌이켜 보면 저도 교회 사역을 책임진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질이 충분치 않고 사역 능력이 부족해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못했고 생명 진입과 관련해 형제자매들이 겪는 문제와 어려움도 해결해 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조정되었습니다. 자질로 보나 사역 능력으로 보나 저는 확실히 리더의 조건에 부합하지 않았습니다. 사무 사역은 제가 비교적 익숙해서 실제적인 사역을 어느 정도 할 수 있었습니다. 교회가 개개인의 자질과 특장점에 따라 사역을 안배하는 것은 개인이 자신의 역할을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해 줄 뿐만 아니라 교회 사역에도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저는 리더의 자질과 조건을 갖추지 못했으면서 제 분수도 모르고 늘 자신을 우수하고 다른 사람보다 잘났다고 생각해 언제고 발탁되기만을 바랐습니다. 리더가 다른 사람은 양성하면서 저는 선발하지 않자, 리더가 절 눈여겨 보지 않는다고 원망하며, 본분을 대충 이행하고 하나님께 소극적으로 대항했습니다. 제가 너무 교만했습니다. 저 자신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여기까지 깨닫고 나니 저 자신이 정말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올바르게 현재의 본분을 대할 수 있게 되었고, 자신의 자리에 똑바로 서서 성실하게 본분을 이행하고자 하는 바람이 생겨났습니다.
그 후 저는 <나는 작디작은 피조물>이란 제목의 하나님 말씀 찬양을 한 곡 들었습니다.
1. 하나님, 제게 지위가 있든 없든 저는 이제 자신을 알게 됐습니다. 제 지위가 높다면 그것은 당신의 높여 주심이고, 제 지위가 낮다면 그것 또한 당신의 결정입니다. 모든 것이 당신의 손에 달렸으니 저는 어떤 선택도, 원망도 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이 저를 이 나라, 이 민족 가운데서 살게 하셨으니 저는 당신의 권세에 오롯이 순종할 따름입니다. 이 모든 것은 당신의 결정이기 때문입니다.
2. 저는 어떤 지위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피조물일 뿐이니까요. 당신께서 저를 무저갱에, 유황불 못에 넣으신다고 해도 저는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당신께서 저를 쓰셔도 저는 피조물이고, 당신이 저를 온전케 하셔도 저는 피조물입니다. 당신께서 저를 온전케 하지 않으셔도 저는 변함없이 당신을 사랑할 것입니다. 저는 그저 일개 피조물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3. 저는 창조주께서 만드신 보잘것없는 피조물이자, 당신께서 지으신 인류 중의 한 사람에 불과합니다. 당신이 저를 만드셨고, 오늘날 또 저를 당신의 손안에서 지배하시니 저는 당신의 도구, 당신의 부각물이 되길 원합니다. 이 모든 것은 당신께서 정하신 것이므로 누구도 바꿔 놓을 수 없습니다. 만사 만물이 다 당신의 손안에 있습니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너는 왜 부각물이 되기 싫어하느냐?>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니 마음이 밝아졌습니다. 제 지위의 높고 낮음은 모두 하나님이 운명적으로 정하신 것이고, 제게 지위가 있든 없든 전 단지 작디작은 피조물일 뿐이며, 지위가 높아도 피조물, 낮아도 피조물이라는 저의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저에게 사무 사역을 하도록 안배했으니 제 자리에 똑바로 서서 제가 가진 특기를 아낌없이 발휘해 이 사역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비로소 저라는 피조물이 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여기까지 깨닫고 마음의 해방을 얻은 저는 묵묵히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다시는 하나님께 소극적으로 대항하지 않겠습니다. 저에게 지위가 있든 없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며 자신의 본분을 잘 이행하겠습니다.’ 그 후 저는 제게 주어진 환경을 더 이상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을지 궁리하고 착실하게 사무 사역을 이행하였습니다. 이렇게 실행하며 마음속으로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그 후 저는 제가 사무 사역을 하려 하지 않았던 또 하나의 이유를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 안에 있던 터무니없는 관점 때문이었습니다. 사무 사역을 하는 사람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고, 그들은 열등하며 구원받을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양성되고 중용되는 사람들만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고, 그들만이 구원받을 희망이 있다고 여겼습니다. 이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관점을 겨냥해 저는 다시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집에서는 늘 하나님의 부탁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말하고,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는 것에 대해 말한다. 그럼 본분은 어떻게 생기는 것이겠느냐? 크게 보자면, 인류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경영 사역으로 인해 생긴다. 작게 보자면, 하나님의 경영 사역이 사람들 가운데서 전개되면서 여러 가지 사역이 생기는데, 그러한 사역은 사람이 협력하고 완성해야 하는 것이다. 이로써 사람에게 책임과 사명이 생기게 되고, 그 책임과 사명이 바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준 본분인 것이다. 하나님 집에서 사람이 협력해야 하는 각종 사역이 바로 사람이 이행해야 할 본분이다. 그렇다면 본분에는 상하 귀천이나 크고 작음의 차이가 있겠느냐? 그런 차이는 없다. 하나님의 경영 사역과 관계가 있고, 하나님 집의 사역에 필요하고, 하나님의 복음을 확장하는 데 필요한 것이라면 그것이 곧 사람의 본분이다. 이것이 바로 본분의 유래이자 정의이다. … 네가 어떤 측면의 본분을 이행하든, 그것은 하나님이 너에게 준 사명이다. 때로는 그것이 중요한 물건 하나를 간수하거나 보관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런 일은 사소한 일로서 네가 맡은 책임이라고 할 수밖에 없겠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너에게 맡긴 것이고, 네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고 하나님에게서 받은 것이다. 그것이 바로 네 본분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합격한 본분 이행이란 어떤 것인가> 중에서), 『본분을 이행한다고 해서 진리 실제를 갖춘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본분 이행은 하나의 방식, 방법에 불과하다. 사람은 모두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진리 추구를 통해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며, 조금씩 진리를 깨닫고 받아들이게 된다. 그런 다음 진리를 실행하여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고, 사탄의 패괴 성품의 결박과 통제에서 벗어나 진리 실제가 있는 사람, 정상 인성을 지닌 사람이 된다. 정상 인성을 지닌 사람만이 본분을 이행하고 일을 할 때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고, 하나님도 만족할 수 있다. 사람은 본분 이행이 하나님께 인정받아야 비로소 합당한 자격을 갖춘 피조물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얻으려면 주변의 사람과 일, 사물로부터 공과를 배워야 한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은 본분을 대하는 저의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관점을 바로잡아주었습니다. 저는 본분이란 게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시는 경영 사역에서 비롯된 것으로, 높고 낮음이나 귀천이 없으며, 크고 작음의 차이도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그것은 사람이 마땅히 다해야 할 책임이자 의무로, 최선을 다해 완수해야 합니다. 교회 사역은 여러 방면의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들이 협력하여 완성하는 것으로, 어떤 본분이라도 없어서는 안 됩니다. 그동안의 저는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늘 관념과 상상에 의존해 사무 사역을 하는 것은 열등한 것이며 구원받을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완전히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는지는 그 사람의 지위나 이행하고 있는 본분이 무엇인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리더가 되었다고 해서 진리가 있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리더가 되었더라도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사역할 때 원칙이 없다면 결국에는 교체되거나 도태될 것입니다. 마치 실체가 드러난 적그리스도와 거짓 리더들처럼 말입니다. 교회는 중요한 본분을 이행하도록 그들을 양성했으나, 그들은 진리를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고 개인적인 경영을 하며 하나님 집에 대항하다 결국 드러나고 도태됐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결말을 결정하실 때, 그 사람이 양성되었는지, 중용되었는지, 높은 지위가 있는지를 보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이 진리를 얻었는지, 생명 성품에 변화가 있는지를 보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는지 평가하시는 기준입니다.
그간의 체험을 통해 저는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는 것의 성질을 명확히 알게 되었습니다.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는 것은 올바른 길이 아니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또한 이 체험을 통해 자기 주제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고, 자신을 올바로 대하게 되었으며, 리더 자리를 향한 강렬한 욕망도 많이 사라졌습니다. 어떤 형제자매가 리더로 뽑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여전히 마음에 약간의 동요가 있지만, 이제는 이 문제를 올바르게 대할 수 있게 되었으며 크게 얽매이지도 않습니다. 또한 형제자매들과 정상적으로 협력하며 본분을 이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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