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도 힘써 진리를 추구해야 한다
제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을 때가 마흔여섯이었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이번이 하나님의 인류 구원 사역의 마지막 단계이고 하나님은 궁극적으로 구원한 사람들을 다음 시대로 이끄신다는 걸 알게 됐죠. 전 너무 기뻐서 모든 걸 다 버리고 헌신하며 본분을 이행하겠다는 자신이 넘쳤어요. 그때는 그래도 젊었으니까 기력이 달리는 일은 없었죠. 젊은 형제자매들이랑 같이 본분을 이행해도 제가 나이가 많다고 느끼지 못할 정도였어요. 찬송하고 춤춰도 힘들지 않고 활력이 넘쳤어요. 가끔 복음 전하러 간다고 자전거 타고 40킬로 이상 가도 힘든 줄 몰랐어요. 그래서 전 그렇게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며 본분을 이행하면 하나님의 사역이 끝날 때 무조건 구원받는 사람에 속할 거라고 생각했죠. 그러다 예순다섯 살이 되던 해에 한쪽 귀에 이명이 생겼는데, 자주 윙윙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초반에는 그러다 괜찮겠지 싶어서 신경 쓰지 않았어요. 근데 갈수록 더 심해지기만 했고, 가끔은 다른 사람의 말도 잘 안 들리고, 심하면 머리가 어지럽기도 했어요. 그래서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는데, 의사 말로는 이제 치료가 안 된다면서 그 귀는 아예 듣지 못할 거라고 했어요. 그 당시 정말 아주 소극적으로 변하더라고요. 이런 생각이 들었죠. ‘이제는 가망이 없구나. 한쪽 귀가 멀어서 다른 사람이 하는 말도 제대로 못 듣게 되면 본분 이행에 지장이 갈 게 뻔한데, 앞으로 하나님 집에서 무슨 쓸모가 있을까? 이제 본분도 이행하지 못하면 내가 구원받을 가망도 없는 게 아닌가? 하나님나라에서는 나 같이 귀와 눈이 어두운 사람을 원할까?’ 이런 생각이 들수록 더욱더 의기소침해지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 이런 소극적인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어요.
어느 날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게 됐어요. 『온전케 되기를 바라는 자에게는 모두 온전케 될 기회가 있다. 장차 너희 모두 그 종착지에 들어갈 것이니 걱정하지 마라. 네가 온전케 되기를 바라지 않고 아름다운 경지로 들어가는 것도 원치 않는다면, 그것은 너 자신의 일이다. … 누구에게나 온전케 될 기회는 있다. 원하고 추구하기만 하면 모두 성과를 얻을 것이고, 어느 누구도 버림받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네 자질이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훌륭하면 훌륭한 대로 그에 맞춰 너에게 요구한다. 네가 무지하고 글을 모르면 그런 조건에 맞춰 요구할 것이며, 네가 글을 알면 그 기준에 맞춰 요구할 것이다. 또 네가 나이가 많으면 나이에 맞게 요구하고, 네가 접대할 수 있다면 그 상황에 맞춰 요구할 것이다. 네가 접대는 할 수 없고, 복음을 전하거나 교회를 돌보거나 다른 업무적인 사역을 하는 등 한 부분의 역할만 수행할 수 있다고 하면, 또 그 역할에 맞춰 너를 온전케 할 것이다. 너는 오직 충성하고, 끝까지 순종하고,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기만 하면 된다. 이는 네가 이르러야 할 세 가지로, 최고의 실천이다. 사람에게 최종적으로 이르라고 하는 것도 바로 이 몇 가지이다. 여기에 이른 사람은 온전케 될 수 있다. 하지만 너는 우선 진심으로 추구하고 능동적으로 향상하려고 노력해야지, 이 일을 소극적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사람의 삶을 정상으로 회복시켜 사람을 아름다운 종착지로 이끌어 간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보게 됐어요.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구원에 이르고 온전케 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죠. 본분 이행의 양에 따라 온전케 하시는 것도 아니었어요. 하나님의 요구는 오직 힘닿는 데까지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고, 진리를 추구해서 하나님께 충성하고 순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추는 거였어요. 그러면 하나님은 인정해 주신다고 하셨죠. 나이가 어떠하든,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건 오직 충성심와 순종이었어요. 근데 전 하나님의 뜻을 모르다 보니까 이제 나이가 많고 귀도 먹어서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니 구원받을 가망도 없다고 착각했던 거예요. 하나님은 나이가 많으면 나이에 맞게 요구하신다고 하셨어요. 제가 비록 나이 들고 한쪽 귀가 먹었지만 아직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가 하나 남아 있는 거잖아요. 비중이 큰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면 제가 감당할 수 있는 걸 하면 되는 거죠. 그 뒤로 저는 형제자매들과 복음을 전하게 됐는데, 너무 기쁘더라고요.
2023년 3월 경, 제가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왼쪽 다리가 골절됐어요. 집에서 쉬는 동안 저는 걱정에 빠지게 됐죠. ‘이제 내 나이 칠십에 몸도 안 좋고, 귀도 먹고, 눈도 흐려진 상태인데 다리까지 부러졌으니 앞으로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그나마 복음 전파에서 충성심을 보이면서 선행을 좀 예비할까 했는데, 이제 다리가 부러져서 언제 나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니 앞으로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게 되면, 구원받을 가망이 없는 거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수록 괴롭더라고요. 그러니 저절로 이런 원망도 생겼어요. ‘난 예수님을 믿을 때부터 열정적으로 헌신했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인 뒤로는 본분을 이행하기 위해 가게 문도 닫았고, 몇 차례나 경찰에 쫓기면서 집에도 못 가는 신세가 될 정도로 20여년 동안 많은 걸 희생했어. 이대로 간다면 얼마든지 구원받을 거라고 믿었지만, 이제 하나님 사역의 끝자락에 와서 본분도 이행하지 못할 정도가 돼 버렸으니 앞으로 구원받을 가망이 있기는 할까? 지금보다 10년, 20년만 더 젊었어도 충분히 본분을 몇 년은 더 이행할 수 있을 거고, 그러면 구원받을 가망도 충분히 있을 텐데, 난 왜 하필이면 이 연령대에 태어난 걸까? 안 그래도 한 해가 다르게 늙고 기력이 쇠하는 게 느껴지는데, 앞으로 무슨 희망이 있을까?’ 그리고 찬송하고 춤추는 젊은 형제자매들의 영상을 볼 때면 너무 부러운 거예요. ‘저 형제자매들은 정말 좋은 시기에 잘 태어났구나. 젊고, 활력이 넘치고, 기억력도 좋고, 습득력도 뛰어나니 본분도 더 많이 이행할 수 있잖아. 지금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온전케 하시는 중요한 때인데, 하나님의 사역이 끝날 때에 저 젊은이들은 분명 구원받아 살아남을 거야. 나도 80, 90년대 같은 좋은 시대에 태어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왜 하필 50년대에 태어난 걸까? 하나님의 사역이 끝나는 때에 난 이미 늙어서 본분도 이행하지 못하게 되는데, 무슨 구원받을 가망이나 있을까? 언제 죽을지도 모르잖아.’ 그때는 이런 생각 때문에 정말 너무 기운이 빠졌고, 생각할수록 눈물밖에 안 나더라고요. 집에 믿지 않는 가족들은 맨날 먹고 놀기 바쁘고, 절 즐겁게 해 주려고 했지만 저는 전혀 즐겁지 않았어요. 이제 제 생에는 희망이란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제가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보기는 했지만, 그건 그저 규례를 지키는 것에 불과했고, 기도도 형식적인 것에 불과했을 뿐이었죠. 뭔가 제 마음은 하나님과 너무 멀리 떨어진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때 전 내적 상태가 바르지 못하단 걸 느꼈어요. 그래서 이런 소극적인 내적 상태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했죠.
어느 날,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게 되면서 많은 걸 느꼈어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 『형제자매 중 일부 연로한 사람들, 다시 말해 60대에서 80, 90대의 사람들도 많은 나이로 인한 고충을 가지고 있다. 나이가 많다고 해도 그들의 생각이 그렇게 정확하거나 이성적으로 보이지 않고 생각과 관점이 진리에 부합해 보이지도 않는다. 이들 연로한 사람도 마찬가지로 고충이 있으니 그들은 항상 이렇게 걱정한다. ‘이제 몸도 따라 주지 않고 이행할 수 있는 본분도 한정적이구나. 이 정도 본분만 이행해서 하나님이 기억해 주시려나? 병에 걸려 돌봐 줄 사람이 필요할 때도 있을 텐데 돌봐 줄 사람이 없을 때는 홀로 본분을 이행할 수도 없으니 이를 어쩌면 좋을까? 나이를 먹으니 하나님 말씀을 읽어도 기억이 안 나고 진리를 깨닫기도 쉽지 않다. 진리를 교제할 때 횡설수설하며 논리적이지 않고 이렇다 할 체험도 없구나. 나이를 먹으니 기운도 없고 시력도 나빠지고 체력도 달린다. 다방면으로 고충이 많으니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툭하면 깜빡하고 실수한다. 때로는 흐리멍덩해서 교회나 형제자매에게 폐를 끼치니, 이래서는 구원받고 싶어도, 진리를 추구하고 싶어도 힘들겠다. 이를 어쩌면 좋을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면 ‘어떻게 이 나이에 하나님을 믿었을까? 왜 남들처럼 20, 30대 아니면 하다못해 40, 50대에 믿지 못했을까? 어째서 이렇게 늙어서야 하나님의 사역을 따르게 되었을까? 팔자가 사납다고 하자니 그렇지도 않다. 적어도 하나님의 사역을 따르게 되었으니 팔자가 좋은 편이다. 하나님의 은혜다! 단지 원치 않게 나이를 많이 먹어 기억력도, 건강도 좋지 않고, 열의는 큰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아 걱정인 것이다. 예배 시간에 조금만 듣고 있어도 졸리고, 눈을 감고 기도하면 잠들 때도 있다. 하나님 말씀도 입으로만 읽을 뿐, 조금만 읽어도 졸리고 노곤하여 읽어 나갈 수가 없다. 이를 어쩌면 좋을까? 이런 현실적 고충에도 진리를 추구하고 깨달을 수 있을까? 진리를 추구하고 깨닫지 못한다면 진리 원칙대로 실행할 수 없을 텐데 그렇게 되면 허투루 믿은 게 아닐까? 구원받지 못하는 건 아닐까? 그럼 어쩌지? 걱정이다! …’ … 젊은이들이 잘 먹고 마시며 잘 뛰고 달리는 것을 보면 부러울 따름이니 이런 젊은이들을 볼수록 근심만 깊어진다. ‘본분을 잘 이행하고 진리를 추구하며 진리를 깨닫고 실행하고도 싶은데 어쩌면 이렇게도 어렵기만 할까? 정말 늙으면 쓸모가 없어지는구나! 설마 하나님에게 노인은 필요 없는 걸까? 나이를 먹으면 정말 쓸모없어지는 걸까? 구원받지 못하는 걸까?’ 어떻게 생각해도 괴롭고 즐겁지 않다. 이렇게 좋은 시기와 기회를 그냥 보내고 싶지 않지만 젊은이들처럼 전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본분을 이행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런 연로한 사람들은 자기 나이 때문에 깊은 근심과 염려, 걱정에 빠진다. 고충과 좌절, 우여곡절과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자신의 나이를 원망하고 심지어 자신을 미워하며 싫어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어떻게 하든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별수도 없고 선택의 여지도 없다. 진정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냐? 방법이 없겠느냐? (노인도 힘닿는 데까지 자신의 본분을 이행해야 합니다.) 노인이 힘닿는 데까지 본분을 이행할 수 있는 것이 가능하다. 그렇지 않으냐? 노인이 설마 늙었다는 이유로 진리를 추구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노인이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느냐? 그들도 부분적으로 깨달을 수 있다. 젊은이들도 전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노인이 항상 착각하는 한 가지는 자신이 흐리멍덩하고 기억력도 없으니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진정 그런 것이냐? (아닙니다.) 청년은 노인보다 기운이 넘치고 체력도 좋지만 이해하고 깨닫고 인식하는 능력은 사실 노인과 똑같다. 노인도 청년을 거쳐 온 것이 아니더냐? 태어날 때부터 늙은 것도 아니다. 청년 역시 결국은 늙기 마련이다. 노인은 자기가 늙어서 체력이 달리고 건강하지 않으며 기억력이 나쁘다고 청년과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사실은 차이가 없다. 여기서 차이가 없다는 것은 무엇을 가리켜 하는 말이더냐? 노인이든 청년이든 패괴 성품이 같고 여러 사물을 대하는 태도, 관점이 같으며, 여러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과 입장 역시 같다는 말이다. … 그러니 노인이 할 일이 없는 것도, 본분을 이행할 수 없는 것도 아니며, 진리를 추구할 수 없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해야 할 일이 많은 것이다. 네가 현세에서 축적한 여러 그릇된 견해와 황당한 논리 그리고 여러 전통적인 생각과 관념, 우매하고 완고한 것, 보수적인 것, 비이성적인 것, 치우친 것들이 마음속에 너무 많이 쌓여 있다. 청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이것들을 파헤치고 해부하여 인식해야 한다. 너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도 아니고, 툭하면 근심하고 염려하며 걱정하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네 임무도 아니고 네 책임도 아니다. 먼저, 노인은 올바른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비록 나이는 많고 몸도 상대적으로 더 노화되었지만 마음가짐은 젊어야 한다. 비록 네가 늙어 생각도 느리며 기억력도 나쁘지만 여전히 자기 자신을 인식할 수 있고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으며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면, 이는 네가 늙지 않았고 자질이 떨어지지 않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만약 70, 80대가 되어서도 진리를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분량이 너무 작아 아직 닿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 진리 앞에서 나이의 구분은 없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상)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3)> 중에서) 하나님은 노인들이 이런 상태를 갖고 있는 것을 아시기에 이런 말씀을 선포하셔서 실행의 길을 가리켜 주셨어요. 하나님께서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볼 수 있는 대목이었죠. 하나님은 사람의 심장과 폐부를 감찰하시잖아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게 바로 제 진짜 내적 상태였어요. 전 젊은 형제자매들이 사고가 유연하고 에너지가 넘치고, 하나님 집에서 다양하게 본분을 이행하고 있는 걸 볼 때 너무 부러웠거든요. 젊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온전케 하시는 좋은 때를 만났는데, 전 눈도 흐리고, 귀도 먹고, 기억력도 나빠서 말씀을 봐도 기억하지 못하는 나이고, 더구나 다리까지 부러져 아무런 본분도 이행하지 못하는 형편이니 이제 제 삶에는 희망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고, 구원에 이를 수 있는 확률도 훨씬 낮다고 생각했어요. 그것 때문에 저는 자주 소극적인 상태로 비관하고 실망하며 살았죠. 근데 하나님께서 실행의 길을 알려 주신 거예요. 나이 들어서 본분을 이행하지 못한다고 길이 없는 게 아니었어요. 나이 들어 밖에 나가서 본분을 이행하지 못해도 충분히 진리를 추구하면서 패괴 성품을 해결할 수는 있는 거니까요. 저처럼 나이 든 걸 인정하지 못하고 계속 젊은 사람들과 경쟁하고 비교하려는 건 저에게 교만한 성품이 있어서죠. 전 이제 나이 들어서 중요한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니까 구원받지 못할까 봐 걱정하면서 하나님께 자꾸 제가 원하는 걸 바라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지 못했는데, 그것도 패괴 성품 때문이었죠. 그리고 저는 본분 이행에서 늘 사람들에게 높은 평가를 얻기를 바라면서 명예를 추구하기도 했는데, 그것도 다 패괴 성품에 해당하는거죠. 그런 패괴 성품은 제가 반성하고 인지하고 진리를 구해 해결해야 하는 것들이죠. 그리고 지금까지 하나님을 믿어 온 시간도 있고, 하나님 말씀을 어느 정도 체험하고 깨달은 것도 있잖아요. 그럼 나가서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면 집에서 체험 간증문을 써서 하나님을 증거할 수도 있잖아요. 그것도 본분을 이행하는 거죠. 게다가 젊은이들은 기억력도 좋고 두뇌 회전도 빠르고 일 처리도 신속하죠. 근데 그렇다고 패괴 성품이 없는 건 아니잖아요. 젊은 사람도 노인과 마찬가지로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체험해야죠. 지금 제가 나이가 들었지만 아직도 진리로 해결해 나가야 할 패괴 성품이 많고 많잖아요. 그게 제가 해야 할 일이죠.
그리고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게 됐어요. 『나는 사람의 종착지를 정할 때, 그의 나이나 관록, 또는 그가 겪은 고난의 양을 보지 않는다. 그가 얼마나 가련한지에 따라 종착지를 정하는 일은 더더욱 없다. 그에게 진리가 있는지 여부만 볼 뿐, 그 외에 다른 선택 기준은 없다. 너희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은 사람도 똑같이 징벌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는 어느 누구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너는 종착지를 위해 충분한 선행을 예비해야 한다> 중에서) 『오늘날 이 흐름에서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께 온전케 될 기회를 얻게 된다. 젊은 사람이든, 나이 든 사람이든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있다. 하나님은 사람의 각기 다른 역할에 따라 사람을 온전케 한다. 그러므로 네가 모든 힘을 다하고 하나님의 사역에 순종하기만 하면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있다. 너희가 아직은 온전하지 못하여 할 수 있는 역할이 한 부분이나 두 부분밖에 안 되지만 온 힘을 쏟아 하나님을 위해 헌신한다면 결국은 하나님께 온전케 될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각자의 역할을 다함에 관하여>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깨닫게 됐어요. 하나님께서 사람을 온전케 하시는 근거는 나이나 그가 겪은 고난의 양이 아니라 진리가 있는지, 생명 성품의 변화가 있는지를 보시는 거였죠. 근데 전 늘 젊은 사람은 활력이 넘치고 사고가 유연하고 신문물도 쉽게 익히고 받아들이니까 하나님 집에서 다양한 본분을 이행할 수 있어서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특히 젊은 사람들이 등용되는 걸 볼 때면 저는 사람이 나이가 들면 하나님 집에서 크게 쓸모가 없고 하나님도 원하지 않으시니 구원받을 가망이 없다고 착각했어요. 전 하나님의 집을 젊고 유용한 사람은 두고 나이 들고 쓸모없는 사람은 내보내는 세상의 직장처럼 생각했던 거예요. 그건 하나님에 대한 저의 오해이고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기도 하죠. 사실 하나님 집에서 사람을 등용하는 건 복음 사역의 필요에 따른 거잖아요. 사역별로 재능이 맞는 사람들이 협력하는 거고요. 그렇다고 그게 하나님께서 나이 든 사람을 내치신다는 게 아니고 그런 사람이 구원받을 가망이 없다는 것은 더더욱 아니잖아요. 하나님께서 보시기엔 나이가 있든 어리든 모두 평등하죠. 단지 나이가 다르고 건강 상태가 다를 뿐이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사람이 진입해야 하는 진리는 같은 거죠. 정말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세요. 하나님은 사람의 나이를 보시는 게 아니라 진리를 추구하는지, 진리를 얻었는지를 보시는 분이시죠.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원칙 없이 일 처리한다면 아무리 젊고 자질이 뛰어나고, 대단한 본분을 맡아도 소용이 없는 거죠. 그 또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되니까요. 전 나이 들어서 중요한 본분을 맡을 수는 없지만 아직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 듣고, 치매가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럼 당연히 진리를 추구하면서 제게 주어지는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쓰면서 수확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게 맞더라구요.
나중에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게 됐어요. 『지금 너희 중 누가 하나님 집에서 우연히 본분을 이행한 것이냐? 어떤 배경에서 나와 본분을 이행하든 모두 우연이 아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아무나 몇 명 찾는다고 해서 그들이 이 본분을 이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만세 전에 정해 놓은 것이다. 정해 놓았다는 것은 어떤 뜻이냐? 자세한 내용은 어떻게 되느냐? 바로 하나님이 자신의 전체 경륜 안에서 일찍부터 계획해 놓았다는 뜻이다. 네가 몇 번 인간 세상에 올지, 말세에 네가 어느 집안, 어느 가정에서 태어날지, 네 가정이 어떤 조건일지, 네가 남자일지 아니면 여자일지, 어떤 특기가 있고 교육 수준이 어떨지, 네 말주변이 어떻고 자질과 외모가 어떨지, 네가 몇 살에 하나님 집에 와서 본분 이행을 시작할지, 언제 어떤 본분을 이행할지, 하나님은 일찍부터 하나하나 정해 놓았다. 네가 아직 태어나기도 전에, 네가 전생에 여러 번 인간 세상에 왔을 때 하나님은 네가 마지막 단계 사역에서 이행해야 할 본분을 모두 안배해 놓았다. 이건 농담이 아니다! 네가 지금 여기서 설교를 듣는 것도 하나님이 정한 일이다. 그건 사소한 일이 아니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깨달았어요. 제가 어느 년대에 태어나서 언제 하나님을 믿게 되는지도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거더라고요. 그리고 앞으로 제가 본분을 이행할 수 있을지 없을지, 앞으로의 종착지와 맞이할 운명까지도 하나님께 달린 거였어요. 전 늘 제가 시대를 잘못 태어났다고 원망하면서 순종하는 태도가 전혀 없었는데, 그건 정말 이성적이지 못하고 교만한 거였어요. 제가 50년대로 태어나긴 했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말세에 나타나시고 사역하시는 시대를 만나 다행히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됐고,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보게 됐고, 하나님의 양육하심과 목양하심을 받게 됐고, 지금까지 하나님을 계속 따를 수 있게 됐잖아요. 이것만으로도 이미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높여 주심을 입은 거잖아요. 제 나이 또래 이방인들을 보면 한세상 살아 왔어도 자기가 왜 세상에 왔는지, 사람은 왜 살아야 하는지도 모른 채 그저 평생 돈을 벌고, 남들과 비교하고, 육적으로 누리는 것밖에 모르고 죄악 속에서 발버둥 치기만 하고 있잖아요. 근데 저는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진리를 좀 깨닫게 되면서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어떤 삶이 가장 가치 있는지 알게 됐고, 사람의 운명은 모두 하나님 손에 달려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사람이 이행해야 하는 본분, 인류의 종착지 등에 대해서도 알게 됐고요. 전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많이 받고도 족한 줄 모르고 그저 팔구십년대에 태어나게 해 주지 않으셨다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따지며 억지를 부렸거든요. 정말 인간성이 없었죠. 하나님께서 제게 수많은 역사를 행하시고, 제가 겪을 수 있는 일들을 많이 배치해 주시고, 제가 소극적일 때마다 형제자매를 보내셔서 교제를 나누게 해 주셨고, 계속 말씀으로 저를 깨우쳐 주시고 이끌어 주시면서 제가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소극적인 상태에서 나올 수 있게 해 주셨어요. 그게 다 하나님의 사랑이잖아요.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제가 너무 양심이 없는 것 같아 괴롭더라고요. 그래서 기도했어요 ‘하나님, 전 정말 은혜를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이렇게 은총을 베풀어 주셨는데 전 계속 하나님을 오해했습니다. 이번에 다리가 부러지면서야 반성을 시작했습니다. 이런 일이 없었으면 전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며 복음을 많이 전하면 복도 많이 받을 거라는 저만의 관념 속에 살면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 줄도 몰랐을 겁니다. 앞으로 당신께서 어떻게 하시든, 저의 결말이 어떠하든 모두 당신의 공의로움인 줄 믿고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나니 제 내적 상태도 많이 좋아졌어요. 그 뒤로 저는 집에서 글쓰기 훈련을 하면서 하나님 앞에 마음을 평온히 하고 저를 반성하기 시작했어요.
몇 달 후에 다리가 많이 좋아지면서 걷기 시작했고 다시 본분을 이행하게 됐어요. 그리고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제 패괴 성품을 해결하기 위해 진리를 찾고 구하는 일도 중시했고 더는 나이의 통제와 속박을 받지 않고 올바르게 대하게 됐죠. 그동안 계속 나이에 구속받고 있었는데, 정말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으면 저는 거기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을 거예요. 정말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서 마음의 짐을 덜게 됐고, 더는 나이 많아서 구원받지 못하지 않을지, 좋은 종착지를 얻지 못하는 건 아닐지를 걱정하지 않게 됐어요. 이제 마음에 진정한 자유를 찾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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