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을 추구하면 좋은 미래가 보장될까?

2026.1.15

어릴 적부터 주변의 가족과 선생님들은 제게 공부를 열심히 해야 나중에 대학에 가서 좋은 삶을 살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평생 고생하며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희 집이 가난해서 마을 사람들이 무시하는 것을 보고, 저는 대학에만 가면 나중에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고 그러면 마을 사람들도 더는 우리 집을 얕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책 속에 아름다운 여인도 있고 황금 집도 있다’는 구절이 있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저는 공부를 열심히 하면 책에서 풍부한 지식을 얻을 수 있고, 지식이 많고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더 부유한 사람이 되며, 지식만이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당시 가족들이 제게 하나님을 믿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저는 입으로는 그러겠다고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지금은 공부가 가장 중요해. 대학에 가서 좋은 직장을 구한 다음에 열심히 믿어도 늦지 않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계속 예배에 참석하지 않았고, 가끔 가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보여 줘도 이야기책처럼 대충 훑어볼 뿐이었습니다. 저는 오직 대학에 가는 것을 통해 아름다운 미래를 설계할 생각에만 빠져 있었습니다.

당시 제 성적은 괜찮은 편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저를 볼 때마다 성적도 좋고 철도 들었다며 앞으로 분명 크게 될 거라고 칭찬했고, 친척들도 늘 공부를 열심히 하라며 앞으로 우리 집안에서 꼭 대학생이 나올 거라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기쁘면서도 의외였습니다. 어릴 적부터 집이 가난해서 남들에게 무시당하며 자랐고, 사람들 속에서 늘 위축되어 자신이 남들보다 못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남들이 성적 때문에 저를 좋게 봐주다니, 역시 교육 수준이 높으면 확실히 남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 저는 아직 성적이 1등은 아니니 이를 악물고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 후 저는 현(縣)의 명문 고등학교에 합격했고, 대학에 갈 수 있겠다는 큰 희망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되면 저를 아는 사람들은 분명 저를 다시 보게 될 것이었습니다. 고3이 되자, 선생님은 늘 “수능이 인생의 격을 결정한다”, “지금 사회는 경쟁이 치열해서 우승열패, 적자생존의 법칙이 적용된다”, 또 “젊어서 노력하지 않으면 늙어서 슬퍼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명문대 졸업장만이 좋은 미래를 보장해 준다는 것을 깨닫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더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저는 자주 점심시간에도 쉬지 않고 교실에서 문제를 풀었고,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가는 것조차 시간 낭비처럼 느껴졌습니다. 시험을 볼 때마다 제 점수와 등수에 아주 신경을 썼고, 등수가 오르면 마음이 흐뭇했지만 오르지 않거나 떨어지면 몹시 괴롭고 초조했습니다. 비록 저는 무척 열심히 공부했지만, 반에서 등수는 대부분 12, 13등에 머물렀습니다. 저는 너무 고통스러웠고, 스트레스가 심했습니다. 하지만 대학에 가야만 좋은 삶을 살 수 있고 남들에게 무시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계속 공부에만 매달렸고 조금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습니다.

수능을 석 달 앞두고 제 마음에 큰 파장을 일으킨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학교에서 모의고사를 봤는데, 재수생 한 명이 명문대 합격선에서 몇 점이 모자란다는 이유로 투신자살을 한 것이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제 마음은 한동안 진정되지 않았습니다. 그의 점수는 저보다 훨씬 높았는데, 단지 몇 점 차이 때문에 목숨을 끊은 것이었습니다. 저는 교실에 앉아 교과서가 산더미처럼 쌓인 주위의 책상과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들을 둘러보며 갑자기 막막함을 느꼈습니다. 저는 저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멀쩡한 젊은 생명이 단지 몇 점 차이 때문에 죽다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가? 학생은 오직 점수만을 위해 사는 걸까? 점수가 목숨보다 더 중요한가? 시험 등수가 정말 한 사람의 평생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단 말인가? 그 친구는 왜 그렇게 극단적인 생각을 했을까?’ 저 역시 그 재수생처럼 높은 점수를 얻고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는 생각에, 스스로에게 반문했습니다. ‘대학에 가는 것이 나의 유일한 길일까? 대학에 못 가면 또 어때? 지식이 정말 한 사람의 운명을 바꿀 수 있을까?’ 너무나 많은 의문과 풀리지 않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채웠습니다. 저는 할아버지가 떠올랐습니다. 할아버지는 교육 수준이 높고 책도 많이 읽으셨지만, 평생 농부로 사셨습니다. 지식은 할아버지의 운명을 바꾸지 못했습니다. 사촌 언니도 생각났습니다. 사촌 언니는 대학을 졸업하고 대도시에서 일하게 되어 마을 사람들의 부러움과 칭찬을 한몸에 받았지만, 정작 자신은 그 직장이 충분히 좋지 않다고 불평했습니다. 저는 제가 그렇게 노력한 끝에 할아버지처럼 배운 것을 써먹지 못하게 될지, 아니면 사촌 언니처럼 남들의 부러움을 사면서도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될지 알 수 없었습니다. ‘만약 내가 정말 좋은 대학에 합격하고, 졸업 후 좋은 직장을 얻어 남들에게 인정을 받고, 그 후에 결혼해서 가정을 꾸린다면, 내 아이에게도 나처럼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라고 해야 할까? 세대마다 이런 삶의 패턴을 반복하는데, 사람은 정말 이렇게 사는 것 외에 다른 길은 없는 걸까?’ 저는 제 미래에 대해 전례 없는 막막함을 느꼈습니다. 제가 왜 사는지, 무엇을 추구해야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 후,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고, 제 의문은 풀렸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득한 우주에 수많은 생령이 번식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생명의 법칙을 따라 순환하며, 불변의 법칙을 지키고 있다. 죽은 사람은 산 사람의 이야기를 갖고 떠나고, 산 사람은 또 죽은 사람의 역사적 비극을 재연하며 살아간다. 인류는 이런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왜 사는가? 우리는 왜 죽는가? 누가 이 세상을 주관하고 있는가? 누가 이 인류를 창조했는가? 이것이 정녕 대자연의 조화일까? 인류가 진정으로 자기 운명을 지배할 수 있을까?’ …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부록 3 사람은 하나님의 경영 안에 있어야 구원받을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게 바로 내가 지금 의문을 품고 있는 내용이잖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누구에게도 제 마음속 깊은 곳의 그런 생각들을 말한 적이 없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아신 걸까요? 하나님께서는 제 생각과 마음을 이해하시고, 나아가 온 인류의 삶의 현주소를 알고 계셨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느꼈고,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은 제가 계속해서 읽어 나가도록 이끌었습니다.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인류에게 사회 과학이 생긴 이래, 과학과 지식은 인류의 마음을 차지했으며, 나아가 인류를 지배하는 도구가 되었다. 그로 인해 인류는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는 충분한 공간과 유리한 여건을 잃게 되었고, 인류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자리는 점점 사라졌다. 하나님의 자리가 없는 인류의 내적 세계는 어둡고 절망적이며 공허하다. 뒤이어 사회 과학자, 역사학자, 정치가들이 일어나 사회 과학론, 인류 진화론 등을 발표하여 하나님이 인류를 창조했다는 진리에 어긋나는 관점을 인류의 머리와 마음에 채워 넣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만유 창조를 믿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었고, 반대로 진화론을 믿는 사람은 점점 늘어났다. 또한 갈수록 많은 사람이 하나님 사역의 기록과 구약시대 하나님의 말씀을 신화나 전설로 대하기 시작했다. 사람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존엄과 위대함은 희미해졌고,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이 만유를 주재한다는 믿음도 아득해졌다. 사람은 더 이상 인류의 존망이나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인류는 먹고 마시고 즐기는 공허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 과학, 지식, 자유, 민주, 즐김, 안락으로 사람이 얻는 것은 그저 일시적인 위안에 불과하다. 인류는 이런 것들이 있어도 불가피하게 계속 죄를 짓고, 사회의 불공평을 원망한다. 또한 이런 것들이 있어도 인류의 탐구하려는 갈망과 욕망이 멈추지는 않는다. 사람은 하나님이 창조했기에, 인류의 무의미한 희생과 탐구는 사람에게 점점 더 많은 고뇌를 안겨 줄 뿐이다. 그리하여 사람은 불안에 떨며 인류의 미래와 앞길을 어떻게 직면해야 할지 모르게 되었으며, 심지어는 과학과 지식을 두려워하고, 공허함을 더욱 두려워하기에 이르렀다. 네가 이 세상의 자유 국가에 있든, 인권이 없는 국가에 있든 너는 인류의 운명에서 단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다. 네가 통치자이든, 통치를 받는 자이든 너는 인류의 운명, 비밀, 종착지를 탐구하고자 하는 욕망을 떨쳐 버릴 수 없고, 영문 모를 공허함을 떨쳐 버릴 수도 없다. 사회학자는 인류의 이러한 공통적 현상을 가리켜 사회 현상이라 말하지만, 나서서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위인은 한 명도 없다. 결국 사람은 사람인 것이다. 하나님의 자리와 하나님의 생명은 어떤 사람도 대신하지 못한다.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사회,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자유로운 공정한 사회뿐만이 아니다. 인류에게는 하나님의 구원과 생명 공급이 필요하다. 인류는 하나님의 생명 공급과 구원을 얻어야만 필요와 탐구욕, 그리고 심적 공허함을 해결할 수 있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부록 2 하나님은 전 인류의 운명을 주재한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다 읽고 나서 저는 깨달았습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고, 우리가 공허함과 무력감을 느끼는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자리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어릴 때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학교에 들어간 후 교과서에는 신에 대한 언급이 한 번도 없었고, 사람이 원숭이에서 진화했다고만 나와 있었습니다. 또 ‘지식이 운명을 바꾼다’, ‘모든 게 다 쓸모없고, 오직 공부만이 최고다’, ‘과학 지상주의’ 등 사탄에게서 온 사상과 말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지식과 과학을 숭상하게 했습니다. 저도 어느새 그런 말들을 받아들여 지식을 매우 높고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지식을 추구하기 위해 하나님 믿는 것을 부차적인 일로 여겼습니다. 당시 저는 인생에 대해 크게 혼란을 느끼고 있었고, 까닭 모를 공허함을 느낄 때도 많았는데, 사실 그것은 제가 하나님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비록 공부를 통해 저는 학식이 넓어지고 시야가 트였으며, 몇몇 사람들에게서 칭찬과 인정을 받기도 했지만, 지식은 인생에 대한 제 의문을 풀어줄 수 없었고, 올바른 인생의 길을 제시해 주지도 못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여전히 막막하고 무력했으며, 고통스러웠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리가 없는 인류의 내적 세계는 어둡고 절망적이며 공허하다‘,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사회,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자유로운 공정한 사회뿐만이 아니다. 인류에게는 하나님의 구원과 생명 공급이 필요하다.‘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구원받아야만 그 모든 공허함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요. 앞으로는 하나님을 잘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야지, 더는 하나님 믿는 일을 뒷전으로 미룰 수 없었습니다. 그 후, 저는 매주 예배에 한 번씩 참석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 있어 마음이 무척 편안했습니다.

수능이 끝난 후,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볼 시간이 더 많아졌고, 형제자매들과 함께 교회 생활을 하는 시간도 잦아졌습니다. 저는 교회 안에서 진리가 권세를 잡고 있으며, 형제자매들 사이에서는 빈부귀천이나 자격과 나이를 따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누구든 패괴를 드러내면 서로 마음을 열고 교제하며 도와주었고, 서로 얕보거나 비교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저는 그런 생활이 무척 좋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학 합격 통지서를 받은 저는 대학에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저는 대학에 가고 싶었습니다. 그동안 공부한 것이 결국 대학에 가서 번듯한 직장을 구하고, 월급도 좀 더 잘 받아서 남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고 가난하게 살지 않기 위해서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학에 가면 공부하느라 너무 바빠서 예배에 참석하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시간이 없을까 봐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망설이는 중에 가족에게 물어보니, 가족들은 “이 일은 네가 하나님께 잘 기도해 보고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제 어려움을 하나님께 털어놓으며, 제가 올바른 선택을 하게 이끌어 주시기를 바랐습니다.

그 후,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긍정적인 것 아니더냐? 적어도 ‘지식’이란 부정적인 의미가 아닌 긍정적인 의미를 가진 단어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사탄이 지식으로 사람을 패괴시킨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이유가 무엇일까? 진화론은 지식의 일부 아니더냐? 뉴턴의 법칙도 지식의 일부 아니더냐? 지구 인력 역시 지식의 일부 아니더냐? (그렇습니다.) 그럼 지식이 왜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는 방법 중의 하나로 포함되겠느냐?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지식에 진리가 조금이라도 담겨 있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 지식의 본질은 무엇이냐? 사람은 무엇에 기초하여 이 모든 지식을 배우느냐? 모두 진화론을 기초로 배우는 것 아니더냐? 사람이 탐구하고 정리한 지식은 모두 무신론에 기반한 것 아니더냐? 이 모든 지식이 하나님과 관련이 있느냐?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과 관련이 있느냐? 진리와 관련이 있느냐? (관련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사탄은 어떻게 지식으로 사람을 패괴시키겠느냐? 나는 방금 이런 지식들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과도, 진리와도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누군가는 ‘진리와 상관은 없지만 지식이 사람을 패괴시킨 것도 아니잖아?’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지식은 너에게, 행복은 사람의 두 손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가르치지 않더냐? 사람의 운명은 자신의 손에 달려 있다고 가르치지 않더냐? (그렇습니다.) 그런 말을 어떻게 보느냐? (마귀적인 말입니다.) 적합한 표현이다. 모두 마귀적인 말이다! 지식이란 것은 굉장히 복잡하다. 만약 단순히 어느 지식은 그저 지식에 불과하다고 한다면,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고 하나님이 만유를 창조한 사실을 모르는 상태에서 그 분야의 지식을 습득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지식을 배울 때, 하나님이 만유를 주재하고, 다스리고, 관리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그저 지식 안에서 끊임없이 연구하고, 탐구하고, 답을 찾는 것에 그칠 뿐이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연구만 한다면 영원히 진정한 답을 찾을 수 없다. 그렇지 않으냐? 그저 지식을 통해 생계 수단과 일자리를 마련하고, 돈을 벌어 그럭저럭 밥벌이를 할 뿐, 지식은 결코 너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배하게 하고 악을 멀리하게 하지 못한다. 사람은 배운 지식이 많을수록 하나님을 더 거역하고, 연구하고, 시험하려 들며, 하나님에 대한 반항심이 더 커진다. 지식이 사람에게 어떤 것을 가르쳐 주느냐? 모두 사탄의 철학이다. 사탄이 패괴된 인류 가운데서 퍼뜨린 생존 철학과 생존 법칙이 진리와 관계가 있겠느냐? 진리와 관계가 있기는커녕 오히려 진리에 위배된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5> 중에서) 하나님께서는 사탄이 어떻게 지식을 이용해 사람을 패괴시키는지 그 방식과 수단을 폭로하셨습니다. 저는 어떤 실용적인 지식은 우리가 기본적인 상식을 깨닫게 해 주고, 일과 생활에 어느 정도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사탄은 우리가 지식을 배우는 과정에서 우리에게 무신론, 진화론, 마르크스주의와 같은 사상 관점을 주입하여 우리가 점점 더 하나님을 부인하고, 멀리하며, 거역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한 자매님이 자신의 딸이 어릴 때는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고 자기를 따라 하나님을 믿었지만, 대학에 간 후에는 하나님 믿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도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게 되었다고 말했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사실 저도 그랬습니다. 저도 어릴 때는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었지만, 교과서와 학교에서 가르치는 지식에는 ‘신’이라는 단어가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온통 유물론과 진화론으로 가득차 있었고, 세상의 모든 것은 자연적으로 형성되었으며 사람은 원숭이에서 진화했다고 했습니다. 그로 인해 저는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사탄이 지식을 이용해 사람을 미혹하고 패괴시킨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당시에는 조금도 깨닫지 못했고, 오히려 지식에 대한 동경심이 생겨 지식의 바다에서 계속 헤엄치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사람을 미혹하고 패괴시키는 사탄의 수단인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그것은 마치 따뜻한 물에 개구리를 삶는 것과 같아서, 사람이 경계하지 않고 서둘러 물 밖으로 나오지 않으면 언제 사탄에게 잡아먹힐지 모르는 것이었습니다. 대학에서 가르치는 것은 모두 무신론적인 지식으로, 배우는 지식이 많을수록 저는 더욱 깊이 중독될 것이고, 결국 지식이 너무 많아져서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이 된다면 그때는 늦을 것이었습니다. 그건 제 앞길을 망치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건 너무나 끔찍한 결과였습니다!

어느 날,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너는 이 세상에 울며 태어나는 순간부터 너의 직책을 이행하기 시작한다. 하나님의 계획과 예정을 위해 네가 맡은 역할을 이행하고, 너의 인생 여정을 시작한다. 너의 배경이나 앞으로의 여정이 어떻든 하늘의 지배와 안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자신의 운명을 주관할 수 있는 사람 또한 아무도 없다. 이 같은 사역은 오직 한 분, 즉 만물을 주재하는 이만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은 사람 생명의 근원이다> 중에서) 저는 사람의 운명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으며, 사람은 자신의 운명을 바꿀 능력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어떤 미래를 맞이할지,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어떤 삶을 살게 될지, 가난할지 부유할지는 모두 하나님의 예정과 주재에 달려 있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지식이나 한낱 졸업장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저희 할아버지의 경우, 비록 책을 많이 읽으셨지만 하나님께서 농부로 살도록 정해 놓으셨기에 많은 지식을 배우고도 운명을 바꾸지는 못하셨습니다. 사람의 운명은 정말 자신의 손에 달려 있지 않으며, 공부를 많이 한다고 해서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저는 공부를 통해 제 운명을 바꾸려고 했는데, 그런 생각은 정말 너무나 무지했습니다. 그 점을 깨닫고 나서, 저는 저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기로 했습니다.

그 무렵 저는 하나님의 다른 말씀들도 보았는데, 그중 한 구절이 특히 인상 깊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젊은이는 이상(理想), 기개, 힘차게 전진하고자 하는 기질이 없어서는 안 된다. 젊은이는 앞날에 대해 낙담하거나, 삶에 대한 희망이나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잃어서도 안 된다. 젊은이는 오늘날 자신이 선택한 진리의 길을 꿋꿋하게 걸어갈 의지를 지니고, 나를 위해 일생을 바치겠다는 자신의 소망을 이루어야 한다. 젊은이는 진리가 없어서는 안 되고, 거짓과 불의를 감싸서도 안 되며, 마땅히 가져야 할 입장을 굳건히 지켜야 한다. 줏대 없이 흐름에 몸을 맡기지 말고, 정의와 진리를 위해 헌신하고 분투하는 정신을 가져야 할 것이다. 젊은이는 흑암 세력의 압제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이 살아가는 의미를 바꾸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젊은이는 역경에 순응해서는 안 되며, 허심탄회한 마음과 형제자매들을 용서하는 정신을 가져야 한다. 물론, 이는 모든 사람에 대한 내 요구이자 권고이며, 더 나아가 모든 젊은이를 향한 위로의 말이다. 너희는 마땅히 나의 말에 따라 실행해야 한다. 특히 젊은이는 사리를 분별하고 정의와 진리를 찾겠다는 의지를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너희는 아름답고 선한 모든 것을 추구하고, 모든 긍정적인 사물의 실제를 얻어야 한다. 또한, 자신의 삶에 책임을 져야지, 이를 하찮게 여겨서는 안 된다. 사람이 세상에 와서 나를 한 번 마주치기가 하늘의 별 따기와 같고, 진리를 찾고 얻을 기회도 얻기 어렵건만, 너희는 어찌하여 이 좋은 시간을 소중히 간직해 금생에 추구할 바른길로 삼지 않는 것이냐? 또 어찌하여 항상 진리와 정의를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이냐? … 너희의 인생은 본디 정의, 진리, 거룩함으로 가득한 것이어야지, 이렇게 빨리 타락하여 음부에 떨어져선 안 된다. 너희는 이것이 너무도 불행하다고 느끼지 않는단 말이냐? 너희는 이것이 너희에게 너무도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단 말이냐?(<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나이 든 자와 젊은 자들에게 전하는 말> 중에서) 하나님의 그 말씀들은 제게 올바른 인생의 방향을 찾아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아름다움과 선함의 근원이셨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음으로써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을 분별하고, 각종 사악한 흐름을 분별할 수 있게 되었으며, 어떻게 정상 인성을 살아낼 수 있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모든 것은 제 생명에 필요한 것들이었습니다. 제가 만약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계속해서 지식을 추구하기로 선택했다면, 저는 각종 사탄의 철학과 독소에 물들어 점점 더 깊이 패괴되었을 것입니다. 마치 제가 학교에서 공부할 때처럼 말입니다. 저는 성적이 그저 그랬는데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특별히 열심히 공부했고, 결국 자신을 힘들게 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도 점점 더 멀어졌습니다. 본래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존재이므로 마땅히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데, 사탄의 유혹과 미혹 때문에 저는 학교에 가서 공부할 줄만 알았지 하나님을 믿고 경배해야 한다는 것은 몰랐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진리를 추구하고 구원받기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도 모른 채 오직 책에만 파묻혀 너무나 많은 시간을 낭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많은 진리를 선포하셨는데도 제가 아직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알고 저는 무척 후회스러웠습니다. ‘만약 내가 몇 년 더 일찍 예배에 잘 참석했더라면 진리를 좀 더 깨달을 수 있지 않았을까? 만약 내가 다시 몇 년 더 대학에 다닌다면, 하나님의 사역이 끝나 버릴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되면 나는 분명히 구원받을 기회를 잃게 될 거야.’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저는 하나님의 절박한 뜻을 느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가 그분 앞으로 돌아와 그분의 구원을 받아들이고, 더는 사탄에게 고통받지 않기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저는 그 기회를 더는 놓칠 수 없었습니다.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네가 지위와 명성이 대단할지라도, 지식과 재물이 많고, 지지자들이 많을지라도 거기에 구애받지 않고 하나님 앞에 와서 하나님의 소명과 부탁을 받아 하나님이 맡겨 주는 일을 한다면, 네가 하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의미 있고 인류 가운데서 가장 정의로운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네가 지위나 개인적인 목적을 위해 하나님의 소명을 거부한다면, 네가 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이 저주하고 심지어 증오하는 일이 될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부록 2 하나님은 전 인류의 운명을 주재한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다 읽고 나서, 저는 하나님의 뜻을 더욱 분명히 깨닫게 되어 마음속으로 큰 격려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칭찬과 축복을 받을 수 있고,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저주당하고 미움받는지 명확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하나님 앞에 나아와 하나님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치는 사람은 하나님께 칭찬과 축복을 받습니다. 만약 사람이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하나님의 부르심과 부탁을 거절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거역이며,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버리시는 대상이기도 합니다. 저는 제가 피조물로서 만약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지식만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숨을 헛되이 낭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제가 대학에 다닐 그 몇 년의 시간을 자신의 피조물 본분을 다하는 데 쓸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 오셔서 사역으로 사람을 구원하신다는 기쁜 소식을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해 주어, 저처럼 방황하는 더 많은 사람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한다면, 그것이 가장 의미 있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베드로가 생각났습니다. 그는 어릴 적부터 품행이 단정하고 학업 능력이 우수하여 부모님은 그가 학업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세상에서 출세하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높은 지식과 학문을 쌓아 명예와 이익, 지위를 얻으려 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고 도를 전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는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를 마친 뒤 더는 공부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그는 고기를 잡으며 평범한 사람의 삶을 살았지만,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갈망했고, 줄곧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기를 추구했기에, 마침내 하나님께 인정받았습니다. 베드로의 추구를 보며 저는 부러움을 느꼈고, 동시에 대학 진학을 포기할 용기도 얻었습니다.

어느덧 대학에 등록해야 할 날이 다가왔고, 한 친구가 저에게 같이 등록하러 가자고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저는 그 친구에게 대학에 가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후, 몇몇 동기와 친구, 믿지 않는 가족들이 차례로 저를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회에 나가서 졸업장 없으면 좋은 직장 못 구해”라고 말했고, 어떤 사람은 “남들은 가고 싶어도 못 가는 대학인데, 너는 붙어 놓고도 안 가다니,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라고 했습니다. 오빠는 “네가 대학에 가면 내가 3천 위안도 주고 좋은 핸드폰도 사 줄게!”라고 말했습니다. 예전에는 제가 그들의 눈에 말 잘 듣고 철든 아이, 성적이 우수한 모범생, 앞날이 창창한 청년이었는데, 이제는 ‘머리가 어떻게 된’ 말 안 듣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는 생각에 마음이 씁쓸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보호에 감사드렸습니다. 제가 인생의 정도를 걷고 있고, 가장 정의로운 사업을 선택했다는 것을 생각하자 저는 다시금 자신감으로 가득찼고,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바라보든 내버려 두기로 했습니다. 저는 여전히 평소처럼 예배에 참석하고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 말씀 찬양진리 위해 전부를 버려라>를 즐겨 불렀습니다.

1.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너는 네 일생을 신중하게 고려하고 대해야 한다. 즉, 자신을 어떻게 하나님께 바칠지,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야 더 의미 있게 믿을 수 있을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상, 어떻게 해야 더 순결하고, 더 아름답고, 더 선하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한다. 지금 어떻게 정복될 것인지에만 만족하지 말고 앞으로의 길을 어떻게 가야 할지도 생각해야 한다. 온전케 될 의지와 용기가 있어야 하고, 항상 자신은 안 된다고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너는 진리를 위해 고통받아야 하고, 진리를 위해 헌신해야 하며, 진리를 위해 굴욕을 참아야 하고, 더 많고 많은 진리를 얻기 위해 더 많고 많은 고난을 참아야 한다. 이것이 네가 해야 할 일이다.

2. 너는 가정의 화목을 누리기 위해 진리를 버리지 말고, 일시적인 향락을 위해 일생의 존엄과 인격을 잃지 마라. 너는 마땅히 아름답고 선한 모든 것을 추구하고 더 의미 있는 인생길을 추구해야 한다. 그렇게 속되게 살며 추구하는 목표가 하나도 없다면 여전히 인생을 헛되게 보내는 것이 아니냐? 네가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느냐? 진리 하나를 위해 너는 모든 육적 향락을 포기해야 하며, 약간의 향락을 위해 모든 진리를 버려서는 안 된다. 이런 사람은 인격도 없고 존엄도 없고 살아갈 의의도 없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베드로의 체험 ―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진리를 추구하고 정의로운 일을 위해 살기를 바라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만약 우리가 순간의 즐거움 때문에 진리를 포기한다면 그것은 존엄성을 잃는 것이고, 나아가 살아가는 가치와 의미를 잃는 것입니다. 예전에 저는 무엇이 의미 있는 인생인지 몰랐습니다. 학교에서 지식을 배우고 좋은 대학에 가서,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좋은 미래를 맞이하는 것이 성공한 인생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학교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공부했음에도 저는 처신하는 법을 배우기는커녕, 오히려 방향을 잃었고, 제가 하나님에게서 왔으며 이 숨결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잊었습니다. 나아가 저는 사탄에게 해를 입고 우롱당했으며, 하마터면 사탄처럼 하나님을 대적하고 부인하는 사람으로 변해 아무런 가치나 존엄성도 없이 살 뻔했습니다. 결국 저는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비록 가족과 친구들은 저를 이해하지 못하고 헐뜯었으며, 앞으로 저는 부유하게 살지 못하고 남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게 될 수도 있었지만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하며 진리를 깨닫고 생명을 얻는 것이 가장 의미 있는 일이기에, 그 고난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어떻게 설득하든 저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힘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후 저는 대학에 가지 않고, 교회에서 본분을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교제와 폭로를 통해, 저는 제가 지식을 추구했던 것에 대해 더 많은 인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지식을 습득해 나가는 과정에서 사탄은 온갖 방식을 동원한다.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단순한 특정 지식을 활용하기도 하고, 사람이 자신의 욕망을 채우거나 꿈을 이루게 만들기도 한다. 사탄은 대체 너를 어떤 길로 끌고 가려고 이러는 걸까? 사람은 지식 학습이 비난할 만한 일이 아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좋게 말해서, 원대한 이상과 포부를 가진다는 것은 패기가 있다는 뜻이고, 그것이 삶의 올바른 길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고 크게 성공하는 게 더 멋진 삶 아닌가? 가문을 빛내고 이름을 후세에 떨칠 수 있으니 좋은 일이지 않은가?’라고 생각한다. 세상 사람이 보기에 이는 좋은 일이고, 정당한 일이고, 긍정적인 일이다. 그러나 음흉한 속셈을 가지고 있는 사탄이 사람을 그러한 길로 유도하는 것으로 그칠까? 당연히 아니다. 사실, 얼마나 원대한 이상을 품고 있든, 얼마나 현실적이고 정당한 바람을 가지고 있든, 사람이 실현하고자 하는 것, 그리고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두 단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 두 단어는 모든 사람의 삶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것으로, 이것이야말로 사탄이 사람에게 주입하려고 하는 것이다. 어떤 두 단어겠느냐? 바로 ‘명예’와 ‘이익’이다. 사탄은 과격한 방식이 아닌 매우 부드럽고 사람의 관념에 잘 맞는 방식을 써서 사람이 부지불식간에 사탄의 생존 방식과 생존 법칙을 받아들이도록 하고, 인생의 목표와 방향을 세우게 한다. 또한 자기도 모르는 사이 인생의 꿈을 가지게 한다. 그 인생의 꿈은 겉으로 내세우는 말이 아무리 그럴듯하게 포장되어도 결국에는 ‘명예’와 ‘이익’에서 벗어날 수 없다. 어떤 위인이나 유명인이든, 모든 사람이 평생 동안 좇는 것은 ‘명예’와 ‘이익’ 두 가지뿐이다. 사람은 명예와 이익만 있으면, 부귀영화를 누리고 인생을 즐길 수 있는 밑천이 생긴 것이라고 생각한다. 명예와 이익만 있으면, 유흥과 육적인 향락을 거리낌 없이 즐길 수 있는 밑천이 생긴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명예와 이익을 거머쥐기 위해 기꺼이,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몸과 마음, 심지어 자신의 모든 것, 미래와 운명마저 사탄에게 확실하게 넘겨 버린다. 그러고는 이에 대해 전혀 의구심을 갖지 않고, 자신에게 속한 것을 되찾을 줄도 모른다. 사람이 사탄을 이렇게 의지하고 사탄에게 충성하게 된 이상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겠느냐? 틀림없이 불가능할 것이다. 사탄에게 완전히 지배당하고, 그 늪에 빠져 헤어 나올 수 없게 된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6>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나서야 저는 제가 애초에 사탄의 유혹에 빠져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는 잘못된 길을 걷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탄은 정말 음흉하고 사악합니다. 사탄은 먼저 아주 정당해 보이는 일을 이용해 사람이 책을 읽고 학문과 지식을 배우게 합니다. 그런 다음 사람이 공부하는 과정에서 은근슬쩍 ‘지식이 운명을 바꾼다’, ‘모든 게 다 쓸모없고, 오직 공부만이 최고다’, ‘출세해서 가문을 빛내자’, ‘마음을 쓰는 자는 남을 다스리고, 힘을 쓰는 자는 남에게 다스림을 받는다’와 같은 각종 사탄의 사상과 말을 사람의 마음속에 주입합니다.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지식을 숭배하고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게 하여, 높은 학력을 얻으면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고, 가문을 빛낼 수 있으며, 농사일을 하는 고된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게 만듭니다. 저는 대학에 가는 것을 통해 제 운명을 바꾸고, 소위 말하는 좋은 삶을 쟁취하려고 했습니다. 저는 점수와 시험 등수를 매우 중시하기 시작했고, 노력해도 좋은 성적을 얻지 못하면 늘 실망하고 우울해했습니다. 비록 공부하는 삶을 공허하고 지루하다고 느끼거나, 등수를 비교하며 고통스러워할 때도 많았지만, 저는 기꺼이 그 고통과 수고를 감내했고, 벗어나려고 하거나 저항할 줄 몰랐습니다. 문득 제 짝꿍이 생각났습니다. 그녀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늘 밤늦도록 불을 밝히고 공부했는데, 과도한 불안감으로 이상한 병에 걸려 결국 휴학하고 치료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또 그 투신자살한 재수생도 떠올랐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단지 몇 점 차이였지만, 그는 점수를 목숨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 결국 투신자살을 선택했습니다. 그것 역시 명예와 이익을 추구한 결과였습니다. 그런 사실들을 통해 저는 사람을 유혹하여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게 만드는 사탄의 흉악한 속셈을 보았습니다. 사탄은 단지 우리를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사람을 괴롭히고 제멋대로 희롱하며, 결국에는 사람을 삼켜 버립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폭로해 주시지 않았다면, 저는 명예와 이익이 사람을 패괴시키는 사탄의 수단이라는 것을 전혀 꿰뚫어 보지 못했을 것이고, 명예와 이익을 얻기 위해 받지 않아도 될 많은 고통을 받았을 것이며, 더욱이 하나님과 멀어져 하나님의 구원을 거부했을 것입니다. 예전에 저는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10여 년간 열심히 공부했고, 하나님 믿는 일은 무시하거나 심지어 잊고 있었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었다면, 형제자매를 안배하시어 저를 돕고 제가 교회 생활을 하게 해 주시지 않았다면, 저는 얼마나 오랫동안 방황하며 헤맸을지 모릅니다.

지난 몇 년간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저는 하나님을 믿는 이 길이 인생의 정도라는 것을 점점 더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진리와 오묘한 비밀을 우리에게 열어 주셨습니다. 예를 들어, 온 인류가 어떻게 오늘날까지 발전해 왔는지, 사람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사람이 사탄에게 패괴된 진상이 무엇인지, 어떻게 패괴 성품을 해결하여 진정한 사람의 모습을 살아낼 수 있는지, 어떻게 하나님을 알고 경배하는지, 어떻게 합격한 피조물이 되는지 등등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이 진리들 속에서, 저는 인생의 방향을 보았고, 제가 살아가는 가치도 찾았습니다. 제게 임한 하나님의 구원에 매우 감사드리며, 저를 하나님의 면전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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