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겁쟁이가 되지 않겠습니다
2022년 7월, 저는 교회에서 새 신자를 양육하는 본분을 맡았고, 리싱(李星) 자매는 양육 집사로서 제 사역을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교회 리더인 왕러(王樂) 자매는 리싱 자매를 좋게 평가했고, 우리 앞에서 늘 리싱 자매가 자질도 좋고 사역 능력도...
2002년 하반기의 어느 날, 저는 본분을 이행하던 중 갑자기 경찰에 체포되었습니다. 경찰은 저를 한 여관으로 데려가더니 제가 은행에서 송금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보여 주며 돈의 출처와 집 주소, 교회 리더가 누구인지 등을 캐물었습니다. 제가 입을 열지 않자, 그들은 온갖 수단으로 저를 고문했습니다. 기마 자세를 강요하고, 구둣발로 제 뺨을 세차게 후려쳤습니다. 10여 명의 경찰이 돌아가며 저를 심문했고, 잠을 재우지 않는 ‘독수리 길들이기’라는 고문까지 가했습니다. 제가 눈을 감기만 하면 경찰은 가차 없이 뺨을 때리거나 발로 걷어찼고, 귓가에 대고 갑자기 소리를 지르기도 했습니다. 오랫동안 잠을 자지 못한 탓에 저는 정신이 몽롱해지고 고열에 시달렸으며, 머리가 어지럽고 이명 현상까지 나타났습니다. 사람이 겹쳐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경찰의 고문이 20일째 되던 날, 제 육체는 이미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바닥에 쓰러져 일어날 기력조차 없었고, 눈도 뜰 수 없었으며, 의식마저 흐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숨쉬기조차 어려워 이러다 언제든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당시 저는 극심한 두려움에 휩싸였고, 어머니와 아내, 자녀들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만약 제가 죽으면 가족들이 그 충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무너지면 어떡하나,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몽롱한 상태에서 경찰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너같이 완고한 놈은 맞아 죽어도 싸! 아무 데나 묻어 버리면 아무도 모를걸!” 그들은 또 말했습니다. “네가 사는 곳만 불면 사건은 종결이야. 우리도 너랑 같이 밤새우며 고생하고 싶지 않다고.”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오늘 밤 아무 말도 안 하면 정말 버티지 못할 거야. 차라리 별로 중요하지 않은 걸 말할까? 나를 접대해 주신 연로하신 자매님은 교회 일을 잘 모르시니, 내가 그분 댁에 머문다고 인정해도 교회에 큰 해를 끼치진 않겠지? 잡힌 지 벌써 20일이나 됐으니 자매님 댁의 하나님 말씀 서적도 벌써 옮겨졌을 테고. 경찰이 증거를 못 찾으면 자매님을 어쩌진 못할 거야.’ 이런 생각이 들자 저는 하나님께 기도할 생각조차 못 했습니다. 경찰이 자매님의 집을 가리키자 저는 그곳에 산다고 인정했고, 자매님 댁 식구가 몇 명인지까지 말해 버렸습니다. 말이 입에서 떨어지자마자 저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제가 유다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극심한 두려움에 휩싸여 온몸이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몹시 자책하고 후회하면서, 어떻게 제가 유다가 되어 자매를 팔아넘길 수 있었는지 스스로가 증오스러웠습니다! 시간을 되돌려 제가 뱉은 말을 다시 주워 담고 싶었지만, 모든 것이 이미 늦어 버렸습니다. 자매님은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저를 접대해 주셨는데, 저는 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자매를 팔아넘겼다는 생각에 양심의 가책은 더욱 심해졌고, 인성이 조금도 없는 저 자신이 미웠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환난 가운데서 나에 대한 충성심이 조금도 없었던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 긍휼을 베풀지 않을 것이다. 나의 긍휼은 여기까지이고, 또 나는 나를 배반했던 자를 좋아하지 않으며 친구의 이익을 팔아먹은 자와 왕래하는 것은 더더욱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나의 성품이다. 그 사람이 누구든 상관없다.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누구든 내 마음을 심히 상하게 하는 사람은 두 번 다시 나의 관용을 얻지 못하고, 누구든 나에게 충성하는 사람은 내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너는 종착지를 위해 충분한 선행을 예비해야 한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칼날처럼 제 심장을 찔렀고, 제 양심은 더욱더 가책과 참소를 받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성품은 공의롭고 거룩하여 사람이 거스를 수 없으며, 하나님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을 배반하고 형제자매를 팔아넘기는 자를 증오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연로하신 자매를 팔아넘겨 수치스러운 유다가 됨으로써 이미 하나님의 마음에 상처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더는 구원하실 리 없었습니다. 저 스스로 하나님을 믿는 길을 막아 버린 것이었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자 제 마음은 찢어지는 듯 아팠습니다. 저는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고통과 자책 속에서 살았습니다. 하나님께 죄를 지었고, 자매님께도 죄를 지었기에 저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후, 경찰은 제 입에서 더는 알아낼 것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있지도 않은 죄명을 씌워 1년 6개월의 형을 선고했습니다. 당시 제 몸이 너무 쇠약하여 운동 시간에 몇 걸음만 걸어도 숨이 찼기 때문에, 경찰은 제가 죽을까 봐 두려워 저를 50일간 구금한 후 보호 관찰로 풀어 주었습니다. 하지만 본 지역을 떠나는 것을 금지했고, 매달 행적을 보고하고 3개월마다 공안국에 가서 사상 보고를 하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저는 당시 경찰이 그 자매님 댁에 찾아갔고, 그 일로 자매님도 더 이상 본분을 이행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집에서 한 달여를 지내던 중, 경찰이 또 저를 잡으러 집에 들이닥쳤고, 저는 황급히 외지로 도망쳐 막노동을 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이 공사장까지 쫓아와 저를 잡으려 했고, 저는 또다시 한밤중에 공사장에서 도망쳤습니다. 그 시기는 제 인생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교회와 연락이 끊겼고, 친척과 친구들에게도 버림받았습니다. 숨을 곳 하나 없이 여기저기 떠돌았고, 육교 밑에서 노숙하는 날도 잦았습니다. 당시 저는 너무나 무력했고, 하나님께서 저를 버리셨다고 느꼈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성품을 거슬렀으니 이런 보응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육체적인 고통은 견딜 수 있었지만, 하나님을 잃고 교회 생활을 하지 못하며 하나님 말씀을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이 저에게는 죽는 것보다 더한 고통이었습니다. 감히 하나님께 기도할 수도 없었고, 정말이지 그럴 면목도 없었습니다. 저는 유다가 되어 하나님께서 혐오하시는 자가 되었는데, 하나님께서 제 기도를 들어주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고, 후회가 극에 달해서 얼마나 많이 제 뺨을 때렸는지 모르고, 몇 번이나 죽음으로 고통에서 벗어나려 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다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라 하나님의 뜻을 조금이나마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현재 많은 이들은 알지 못해, 고난받는 것이 무가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에서 버림받고 가정은 평안하지 않으며 하나님 역시 기뻐하지 않으니 앞날이 막막하다고 말이다. 어떤 이들은 몹시 괴로운 마음에 죽고 싶어 하는데, 이는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자는 의지가 없고 나약하며 무능한 겁쟁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그를 사랑하길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사람은 그를 사랑할수록 더 큰 고통과 시련을 겪게 된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고통과 시련을 겪어야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알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저는 오늘날 이 환경에 처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공의이며, 제가 유다로서 마땅히 받아야 할 보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존재이므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해서는 안 되며,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을 위해 힘만 쓰는 자가 되더라도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저는 죽으려던 생각을 거두었습니다. 저는 땅에 무릎을 꿇고 울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죽어 마땅하고 저주받아 마땅합니다….” 한참 동안 저는 이 한마디만 반복하다가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2008년, 형제자매들이 저를 찾아와 제가 연로하신 자매를 팔아넘긴 것은 일시적인 육체의 연약함 때문이었고 교회에 큰 손실을 끼치지 않았으며, 그동안 본분 이행에 있어서도 일관적으로 괜찮은 모습을 보였다며 교회에서는 다시 제게 본분을 맡기기로 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감동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유다가 된 저는 징벌을 받아 지옥에 떨어져도 마땅한데, 하나님께서는 저의 과오대로 저를 대하지 않으시고 회개할 기회까지 주셨다는 생각에, 더욱 후회스럽고 저 자신이 증오스러워졌고 하나님께 너무나 큰 빚을 졌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다짐했습니다. ‘앞으로 교회가 어떤 본분을 맡기든 소중히 여기고, 본분을 잘 이행하여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할 것이다.’ 그 후, 공산당이 각지에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체포했고, 저희 교회의 리더 두 명도 연이어 체포되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이 유다가 되어 교회에서 출교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당시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저들도 유다가 되어 출교당했는데, 나도 유다 짓을 했으니 내가 출교당하는 것도 시간문제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자 마음이 은근히 아파왔고, 제 과오가 너무 커서 구원받을 희망도 거의 없다고 느꼈습니다. 어쩌면 언젠가 본분을 이행하다 잘못을 저질러 교회에서 출교당할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더욱 후회하며 굳게 서지 못했던 저 자신을 원망했습니다. 만약 그때 제가 굳게 섰더라면 오늘날 이렇게 괴로워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다 제가 죽음을 두려워하고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려 했던 탓입니다. 제 발로 걸어 생긴 물집이니,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더욱 필사적으로 본분을 이행하며 선행을 많이 쌓아 자신의 과오를 메우려는 생각만 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나 약속, 위로와 권면의 말씀은 모두 저와는 상관없고 제 몫도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저는 제명된 자들에 관한 자료를 정리하는 사역에 협력하게 되었습니다. 유다로 제명된 자들의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할 때마다 제가 유다가 되어 그 연로하신 자매에게 입혔던 상처가 떠올랐고, 그 일은 제 마음속에 낙인처럼 새겨졌습니다. 그 일이 생각날 때마다 저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칼로 찔리는 듯한 고통을 느꼈습니다. 그 일은 제게 영원한 오점이자 마음속 영원한 고통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심장병과 고혈압 등 여러 질병을 앓게 되었고, 몸 상태도 점점 더 나빠졌습니다. 저는 제가 보응을 받거나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되었고, 마음은 더욱 고통스럽고 연약해졌습니다. 때로는 본분을 이행하다 패괴를 드러내면 진리를 구해 패괴 성품을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제 과오가 너무 크고 그 성질이 너무 심각하다는 생각에 ‘하나님께서 과연 나를 구원해 주실까? 나를 깨우쳐 진리를 깨닫게 해 주실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계속 의기소침한 상태로 지냈습니다.
어느 날, 한 자매가 저의 내적 상태를 알고는 자신의 체험을 교제하며 저를 도와주었고,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을 읽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데 사람의 패괴 정도에 따라 그 구원 여부를 정하느냐? 사람이 저지른 과오의 크기와 패괴 분량에 따라 사람을 심판하고 형벌 내릴지를 정하느냐? 사람의 생김새, 집안 출신, 소질 수준, 고생한 정도에 따라 사람의 종착지와 결말을 정하느냐? 하나님은 이런 것들에 근거하지 않는다. 그는 이런 것들을 보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너는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이러한 것들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으니, 너 또한 이런 것들로 사람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얻으려면 주변의 사람과 일, 사물로부터 공과를 배워야 한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사람의 과오가 얼마나 크고, 얼마나 패괴되었는지를 근거로 사람의 결말과 종착지를 정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과오를 저지른 후 진실한 회개가 있는지를 보시고, 최종적으로 그 사람에게 진리가 있는지, 성품에 변화가 있는지를 근거로 결말과 종착지를 정하십니다. 저는 제 관념을 내려놓고 진리를 구해 제 문제를 반성하고 해결해야 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점을 깨닫자, 수년간 억눌려 있던 제 마음이 많이 풀렸습니다. 저는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그동안 계속 소극적인 상태로 지내며 앞날과 종착지에 대해 전전긍긍하느라 진리를 추구할 마음조차 없었습니다. 자매를 통해 저를 도와주시니 감사합니다. 저는 당신께 회개하기 원합니다. 하나님! 제 문제를 해결하도록 저를 이끌어 주세요.”
기도 후,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의기소침한 정서에 빠지는 데는 또 하나의 원인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성인이 되기 전 또는 성인이 된 이후에 특수한 일을 겪었다. 바로 어떠한 과오를 범했거나 어리석은 일, 우매한 일, 무지한 일을 저지른 것이다. 그리고 그 과오, 어리석은 일, 무지한 일 때문에 의기소침한 상태에 빠진다. 그들의 의기소침함은 자신을 정죄하는 것인 동시에 자신이 어떤 사람임을 규정하는 것이다. … 설교를 듣거나 진리를 교제할 때마다 머릿속에서, 마음 깊은 곳에서 의기소침함이 서서히 고개를 든다. 그러면 그는 자신을 이렇게 힐책한다. ‘내가 할 수 있겠어? 내가 진리를 추구할 수 있겠어? 내가 구원받을 수 있겠어? 내가 어떤 인간인데? 과거에 그런 짓을 했으니, 그런 인간이었으니 나는 구제 불능인 게 아닐까? 하나님께서 과연 나를 구해 주실까?’ 때로 어떤 사람들은 의기소침한 정서를 버리고 거기서 벗어나 본인의 진심과 본인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서 본분, 의무, 책임을 다하며, 더 나아가 몸과 마음 전부를 바쳐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 말씀에 공을 들이기도 한다. 그러나 일부 특수한 환경과 배경이 임했다 하면 그런 의기소침한 정서가 다시 우위를 점하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이렇게 참소한다. ‘너는 그런 짓을 했었잖아. 과거에 그런 인간이었잖아. 네가 구원받을 수 있겠어? 네가 진리를 실행한들 소용이 있을까? 네가 저지른 그 일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실까? 네가 한 짓을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실까? 네가 이렇게 대가를 치른다고 해서 예전에 범한 과오를 만회할 수 있을까?’ 그의 내면 깊은 곳에는 늘 자책과 참소가 존재하며, 의문과 힐책이 떠나지 않는다. 그는 시종일관 의기소침한 정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자기가 저지른 추악한 일 때문에 언제나 내면이 불안하다. 그 때문에 그는 하나님을 몇 년이나 믿었음에도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는지 듣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구원받는 일이 자기와 관계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것 같다. 자기가 과연 사함과 구속을 받을 수 있을지, 자기한테 과연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받고 구원받을 자격이 있는지, 그는 하나도 알지 못한다. 답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확실한 정론이 없기 때문에, 그의 깊은 내면은 항상 의기소침하다. 그는 마음속으로 자기가 과거에 저지른 짓을 한번 또 한번 떠올리고, 반복적으로 머릿속에서 재생한다. 그 일의 경과를 회상하고, 그 일의 전후를 회상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항상 죄악감이 든다. 그 일 때문에 수년간 시종일관 의기소침한 상태다. 본분을 이행하고 어떤 일의 책임자가 돼도 자기는 구원받을 가망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진리 추구를 무엇보다 올바르고 중요한 일로 생각하고 직시한 적이 없다. 그는 자기가 과거에 범한 잘못, 혹은 자기가 저지른 일이 대부분의 사람이 보기에 몹시 안 좋거나 남들에게 정죄와 버림을 받을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하나님도 자기를 정죄하리라 여긴다. 앞으로 진리를 추구할지라도 구원에 이를 수 없다. 하나님의 사역이 어느 단계까지 진행됐든, 하나님이 얼마나 많은 말씀을 했든 그는 줄곧 진리를 추구하는 일을 올바르게 대하지 않는다. 이유가 무엇이냐? 그런 일을 체험한 뒤에 최종적으로 잘못된 결론을 내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의기소침한 정서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2)>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제 마음속 깊은 곳을 찔렀고, 저의 실제 상태를 그대로 드러내셨습니다. 제가 체포되어 유다가 되고 하나님을 배반하여 연로하신 자매를 팔아넘긴 그 일은 제 마음속에 낙인처럼 새겨졌습니다. 비록 교회가 저를 받아주고 본분까지 맡겨 주었지만, 저는 끝내 그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제가 유다가 되었고, 자매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저는 스스로 구원받을 기회가 없다고 단정 지었습니다. 형제자매들이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겪으면서도 굳게 서서 증거하는 체험 영상을 볼 때마다 저는 부끄러움을 느끼고 양심의 참소를 받았습니다. 유다로 제명된 자들의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할 때마다 제 마음은 칼로 찔리는 듯 아팠고, 그때 왜 굳게 서지 못했는지 스스로를 원망했습니다. 만약 굳게 섰더라면 마음이 이렇게 괴롭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겉으로는 본분을 이행하고 있었지만, 마음은 늘 의기소침했고, 항상 제가 다른 사람과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배반한 유다였고, 하나님께서 혐오하시는 사람이었는데, ‘하나님께서 과연 나를 원하실까? 나를 구원해 주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제 마음은 고통스럽고 불안했습니다. 심지어 감히 하나님께 기도조차 드리지 못하면서, 하나님께서 저를 혐오하시니 제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권면하고, 위로하고, 약속하고, 축복하시는 말씀들을 볼 때마다 저는 이 말씀들이 저와 같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을 받을 자격이 없고, 오직 저주와 징벌을 받을 자격만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하나님을 오해하는 상태로 지냈고, 진리를 추구하려는 마음도 없었으며, 단지 사역을 잘 해내어 속죄하는 것에 만족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제가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실 권리를 박탈하지 않으셨고, 본분을 이행하고 진리를 추구할 기회까지 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의기소침한 상태로 지냈고, 본분을 이행하다 패괴를 드러낼 때도 진리를 구해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유다 짓을 했던 자신만 생각하면 ‘아무리 노력하고 추구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당신을 배반한 사람을 구원해 주실 리가 있겠는가? 차라리 힘만 쓰면서 본분을 잘 이행하여 공으로 과오를 메우자. 어쩌면 언젠가 하나님께서 나의 충성스러운 봉사를 보시고 내가 받을 징벌을 가볍게 해 주실지도 몰라.’ 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줄곧 과오에 얽매여 의기소침한 상태로 지냈기 때문에, 지난 몇 년간 많은 일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힘써 일하는 것에 만족했을 뿐 제 생명 진입에는 힘쓰지 않아 진리를 얻을 많은 기회를 놓쳤습니다.
반성하던 중,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람은 다 복을 받고, 상을 얻고, 면류관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다. 이런 생각은 모든 이의 마음속에 다 들어 있지 않느냐? 누구나 마음속으로 그런 생각을 한다. 이는 사실이다.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항상 말로 내뱉지 않아도, 나아가 복을 받으려는 자신의 속셈과 욕망을 숨겨도, 마음 깊은 곳의 그 욕망, 그 속셈과 동기는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다. 사람이 영적인 이론을 얼마나 많이 알고 어떤 체험적 인식이 있든, 어떤 본분을 이행할 수 있든,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으며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르든,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복받으려는 속셈은 영원히 포기하지 않는다. 또 사람은 언제나 이 복받으려는 속셈을 위해 고생을 마다치 않고 바쁘게 뛰어다닌다. 이는 사람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것 아니더냐? 복을 받으려는 속셈이 사라진다면 너희는 어떤 기분이겠느냐? 어떤 태도로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을 따르겠느냐? 마음속에 숨겨진 복받으려는 그런 속셈을 정말로 완전히 없앤다면 사람은 대체 어떻게 되겠느냐? 아마 많은 사람이 소극적이 될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본분을 이행할 의욕이 사라질 것이다. 영혼을 잃어버린 듯 하나님 믿는 일도 무의미하다고 느낄 것이다. 마음을 잃은 사람처럼 말이다. 그래서 복받으려는 속셈이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가 본분을 이행하거나 교회 생활을 하다 보면 자신이 가정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헌신할 수 있고, 복받으려는 속셈에 대해 인식이 있고 이미 포기했으며, 지금은 그런 속셈에 지배되거나 속박받지 않는다고 여긴다. 그래서 자신에게는 복받으려는 속셈이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다르다. 사람은 일을 바라볼 때 그저 겉면만 본다. 시련이 닥치지 않았을 때는 사람은 스스로 훌륭하다고 여긴다. 교회를 떠나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인하지 않고 또한 하나님을 위해 계속 헌신하면 자기에게 변화가 있다고, 더는 열성과 일시적인 감정에 의해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추구할 수 있고, 본분 이행 과정에서 끊임없이 진리를 구하고 진리를 실행해 패괴 성품이 정결케 되고 실제 변화가 조금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의 종착지, 결말과 직접 관계된 일이 닥쳤을 때 그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겠느냐? 그때 본모습이 낱낱이 드러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생명 성장의 여섯 가지 기준> 중에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데에는 다 속셈과 목적이 있으며, 전부 앞날과 운명을 위해, 자신이 복을 받기 위해 믿는다고 드러내셨습니다. 만약 언젠가 복을 받지 못하고 앞날과 운명이 없어진다면,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의미 없다고 느끼고 의기소침한 상태에 빠지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바울을 생각해 보면, 그는 당시 주 예수님을 대적하고 주의 제자들을 체포하고 박해했지만, 이후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하나님께서 큰 빛으로 그를 쓰러뜨리고 사도로 부르셨습니다. 바울이 수년간 복음을 전하면서, 처음에는 죄를 속죄하기 위해 공으로 과오를 덮으려고 했고, 자신의 패괴 성품을 변화시키기 위해 진리를 추구하는 데에는 전혀 힘쓰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그는 수년간 사역했지만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의 본성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오랫동안 수고하고 사역하여 죄가 이미 씻겼고, 과오보다 공이 크다고 생각하며 공개적으로 하나님께 면류관을 요구했고, 결국 하나님께 도태되었습니다. 저는 제가 걸어온 길 역시 바울의 길이었음을 반성했습니다. 저는연로하신 자매를 팔아넘겨 유다가 되었기 때문에, 복받을 희망이 희박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교회 리더 두 명이 유다가 되어 출교당하는 것을 보고는, 저 역시 언젠가 교회에서 출교당할까 봐 걱정하며 소극적으로 변했고 진리를 추구하려는 마음마저 사라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더는 저를 구원하지 않으실 것 같고, 아무리 노력하고 추구해도 좋은 결말과 종착지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한 목적이 오직 복을 받기 위함이었지, 진리를 얻어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함도 아니었고, 피조물의 본분을 다해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기 위함도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난 몇 년간 줄곧 과오에 얽매여 앞날과 종착지에 대해 전전긍긍했습니다. 비록 제 과오에 대해 어느 정도 후회하고 증오했지만, 제 본성 속에 있는 복을 추구하는 관점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제야 저는 제가 진실로 하나님께 회개한 것이 아니라, 헌신과 희생으로 하나님께 속죄하여 제 양심의 참소를 받지 않으려 했던 것임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토록 큰 악을 저지르고도 여전히 하나님과 거래를 하고 있었다니, 너무나 추악하고 이기적이며 비열하다는 것을 깨닫고 제 마음은 더욱 후회스럽고 저 자신이 증오스러웠습니다.
그렇게 구하던 중, 저는 또 두 단락의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에 대해 조금이나마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과오와 오점이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모독하는 말을 했었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부탁을 거부하고 본분을 이행하지 않다가 하나님께 버림받았으며, 어떤 사람은 시험이 닥쳤을 때 하나님을 배반했고, 어떤 사람은 체포된 후 ‘3서’에 서명해 하나님을 배반했다. 또 어떤 이는 몰래 제물을 훔쳐먹거나 낭비했고, 어떤 이는 늘 교회 생활을 교란하고 하나님의 선민들을 해하였으며, 어떤 이는 패거리를 짓고 다른 사람을 괴롭혀 교회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이 밖에도 어떤 이는 수시로 관념과 죽음을 퍼뜨려 형제자매들을 해하였고, 어떤 이는 부적절한 남녀관계를 맺고 음란한 짓을 하면서 극도로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어쨌든 모든 사람에게는 어느 정도 과오와 오점이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진리를 받아들이고 회개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죽어도 회개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 본성 본질 그리고 일관된 태도에 근거하여 사람을 대해야 한다. 회개할 수 있는 자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지만, 죽어도 회개하지 못하는 자는 제명하거나 출교시켜야 한다. 어떤 자는 악하고, 어떤 자는 어리석고 우둔하며, 또 어떤 자는 짐승이다. 사람은 모두 다르다. 어떤 악인은 악령이 들린 것이고, 또 어떤 악인은 마귀 사탄의 심부름꾼이다. 그들 중에는 본성이 몹시 악랄한 자도 있고, 간사한 자도 있으며, 지나치게 재물을 탐하는 자도 있고, 음란한 짓을 즐기는 자도 있다. 각 부류 사람이 보이는 태도는 모두 다르다. 그렇기에 사람의 본성과 일관된 태도에 근거하여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 … 하나님은 사람의 상상처럼 그렇게 간단하게 사람에게 처분을 내리지 않는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에 대해 혐오하거나 반감을 가질 때, 혹은 그 사람이 어떤 배경에서 어떤 말을 할 때, 하나님은 사람의 내적 상태를 매우 잘 이해하고 있다. 하나님이 사람의 내면과 본질을 감찰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늘 이렇게 생각한다. ‘하나님께는 신성뿐이야. 하나님은 공의로우셔서 사람이 거스르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셔. 하나님은 사람의 어려움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과 입장을 바꿔 생각하지도 않으시지.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면 하나님은 그를 징벌하실 거야.’ 결코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역, 사람에 대한 태도를 이렇게 이해하고 있다면, 이는 단단히 틀린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결말을 정할 때 사람의 관념과 상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 성품에 근거하며, 각각의 사람이 행한 대로 갚아 준다. 하나님은 공의롭다. 언젠가 모든 사람이 이 사실을 깊이 인정하게 될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 말씀으로 정복된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구원받을 기회가 여러 번 있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구원함에 있어 최대한 너그럽게 대한다. 다시 말해, 사람에게 최대한 관용을 베푼다. 사람이 잘못을 깨닫고 올바른 길로 돌아온다면, 즉 회개하기만 한다면, 하나님은 구원받을 기회를 줄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지위의 복을 내려놓고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한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하나님의 성품이 너무나 공의로우심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공의 안에는 심판과 진노뿐만 아니라 긍휼과 관용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대하실 때 특별히 원칙이 있으셔서, 사람의 일시적인 과오를 근거로 사람을 규정하지 않으시고, 사람이 행한 일의 성질과 배경, 그리고 그 사람의 분량과 초래된 결과를 종합적으로 헤아리십니다. 만약 사람이 일시적인 연약함 때문에 팔아넘겼지만, 교회에 큰 손실을 끼치지 않았으며,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을 부인하거나 배반한 것이 아니고, 그 후에 진실로 회개할 수 있다면,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하지만 체포된 후 완전히 큰 붉은 용의 편에 서서 형제자매와 교회의 이익을 팔아넘기고 심지어 큰 붉은 용의 앞잡이가 되는 자들은 드러난 악인이며 구제 불능의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지 않으십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당했고, 오랫동안 쉬지 못해 육체가 한계에 다다른 상황에서 연로하신 자매를 팔아넘겼습니다. 비록 교회에 큰 손실을 끼치지는 않았지만 그 후 저 역시 후회하고 저 자신을 증오했습니다. 저의 행위는 심각한 과오에 해당했지만, 하나님 집에서는 여전히 제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반면 그 두 교회 리더는 체포된 후 아무런 고문도 당하지 않은 상황에서 단지 육체의 고통이 두려워 유다가 되었고, ‘삼서’에 서명했을 뿐만 아니라 10여 곳 교회의 리더와 일꾼들을 팔아넘겨 여러 교회의 사역을 마비시키고 중대한 손실을 초래했습니다. 그들은 일시적인 육체의 연약함이 아니라 그들의 본질이 바로 유다였고, 구제 불능의 악인이었습니다. 교회가 그들을 출교시킨 것은 완전히 원칙에 부합하며,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저는 제가 하나님을 믿은 지 여러 해가 되었음에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오해하고 경계하는 상태로 살면서, 사람에게 과오만 있으면 하나님께서 정죄하시고 구원받을 기회를 주시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너무나 간사하고 사악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에서 실행의 길을 찾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해결하려면, 우선은 자신의 패괴 성품을 인식하고 자신이 저지른 잘못과 자신이 걸어온 굽은 길, 자신의 과오와 과실을 분석하고 인식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본성을 정확히 알고 인식할 수 있다. 또한, 사람이 왜 잘못된 길을 가고 진리 원칙에 위배되는 일을 많이 저지르는지, 그런 일을 저지르는 성질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 밖에도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요구가 과연 무엇인지, 사람이 왜 항상 하나님 요구를 따르지 못하는지, 왜 늘 하나님 뜻을 어기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지 알아야 한다. 이런 것들을 하나님 앞에 가져와서 기도하고, 분명히 인식하면 자신의 내적 상태를 바로잡을 수 있고, 자신의 마음가짐을 바꿀 수 있으며,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오해를 해결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든 부정한 속셈을 품고, 허튼 생각을 하기 일쑤다. 그는 자기 내적 상태의 옳고 그름을 성찰하지 않고, 또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분별해 보지도 않는다. 이런 사람이 바로 바보다. 바보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바로 일을 잘못해서 책망과 훈계를 받으면 계속해서 소극적이 되고, 심지어 자포자기해서 자기는 끝났으니 구원을 못 받는다고 단정 짓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보의 가장 가련한 모습이 아니겠느냐? 바보는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스스로를 반성할 줄 모르고, 어려움을 만나도 진리를 구해 문제를 해결할 줄 모른다. 여간 어리석은 게 아니지 않으냐? 자포자기하면 문제가 해결되느냐? 소극적인 상태에서 발버둥친다고 문제가 해결되느냐? 사람은 잘못을 저지르거나 문제가 생기면 진리를 구해 해결해야 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자신이 무엇 때문에 악행을 저질렀는지, 악을 행한 의도와 출발점은 무엇인지, 왜 그렇게 하려고 했는지, 어떤 목적을 이루려고 했는지, 누가 너를 선동하고 부추기고 미혹해서 그렇게 한 것인지, 아니면 너 자신이 의식적으로 그렇게 한 것인지, 이런 문제들을 반드시 돌아보고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알 수 있다. 자신이 악을 행한 본질을 인식하지 못하고 거기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이 문제는 해결할 방법이 없다. 많은 사람이 나쁜 짓을 저지르고도 끝내 자신을 반성하지 않고 인식하지 않는데, 그런 사람이 진실로 회개할 수 있겠느냐? 구원받을 희망이 있겠느냐? 사람은 본래 사탄의 후예로서, 하나님 성품을 거스른 적이 있건 없건 본성 본질은 똑같다. 자신을 많이 반성하고 인식해야 하며, 자신이 어느 정도까지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했는지, 또 진리를 받아들이고 실행할 수 있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이런 것들을 파악하고 나면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사람인지 알게 될 것이다. 사실, 패괴된 인류는 그 본성 본질을 놓고 볼 때 아주 위험하다. 진리를 받아들이기가 정말 버겁고, 쉽지 않은 일이다. 악행을 저질러서 본성 본질이 드러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당장에는 악행을 저지르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고 그 사람이 남보다 낫다고 할 수도 없는데, 단지 상황이나 기회를 만나지 못해서 악행을 저지르지 못했을 뿐이다. 네가 그런 과오를 범했다면, 지금 지녀야 할 태도는 무엇이고 하나님 앞에 고백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보려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반드시 기도하고 구함으로써 그 일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추구해야 할지 알 수 있고, 더는 과거에 저질렀던 그 잘못들의 영향과 속박을 받지 않게 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추구해야 하나님에 대한 관념과 오해를 해결할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제 마음은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지난 과오를 보지 않으시고,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진리를 받아들이고 본분에서 충심과 책임을 다하며 실제 행동으로 하나님께 회개하기만 하면, 그 사람에게서 변화를 보시고 구원받을 기회를 주십니다. 베드로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주 예수님께서 잡히셨을 때 그는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했지만, 뼈저리게 후회한 후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순종하는 데 힘썼습니다. 결국 그는 하나님을 위해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아름다운 증거를 남겼습니다.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우리아의 아내를 차지하여 하나님의 엄한 징벌을 받았지만, 깊이 후회하여 늙었을 때 소녀가 이불을 덮어 주어도 다시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그는 평생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준비했고,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모두 하나님을 경배하게 하는 등 실제 행동으로 하나님께 회개했습니다. 저는 베드로와 다윗의 체험에서 길을 찾았습니다. 바로 저의 과오를 올바르게 대하고, 자신을 잘 반성하며, 진리를 구해 과오를 해결하고, 진실로 하나님께 회개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저는 제가 자매를 팔아넘겨 증거를 잃은 데에는 주로 두 가지 원인이 있음을 반성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제가 정에 너무 얽매였기 때문입니다. 경찰의 혹독한 고문이 제 목숨을 위협했을 때, 저는 마음속으로 어머니와 자녀, 아내를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제가 죽으면 그들이 충격을 감당하지 못할까 봐 걱정되어 하나님을 배반하고 자매를 팔아넘겨 수치스러운 유다가 되었습니다. 사실 생각해 보면, 가족의 운명은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고, 그들이 평생 겪어야 할 고난과 고통은 모두 하나님께서 이미 정해 놓으신 것입니다. 제가 그들 곁을 지킨다 해도 그들이 겪어야 할 고난은 그대로 겪어야 하니, 제가 바꿀 수 있는 것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일들을 꿰뚫어 보지 못하고 정에 얽매여 있었으니, 너무나 어리석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제가 죽음의 문제를 꿰뚫어 보지 못했고,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경찰에게 20일 동안 고문을 당했을 때, 제 육체가 버틸 수 있는 능력은 한계에 다다랐고, 당시 저는 죽음이 너무나 두려워 사탄에게 타협하고 말았습니다. 주 예수님의 제자들은 주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어떤 이는 돌에 맞아 죽고, 어떤 이는 말에 끌려 죽었으며, 어떤 이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의를 위해 핍박을 받았고, 그들의 죽음은 사탄을 이기고 사탄을 부끄럽게 한 증거였으며, 하나님께서 기념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 16:25) 하지만 저는 죽음을 두려워하고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려 자매를 팔아넘겼습니다. 비록 제 육신은 살아 있지만, 저는 매일 영혼의 고통을 견뎌야 했고, 살아도 산송장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제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핍박을 받아 정말 경찰에게 맞아 불구가 되거나 죽었다 해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칭찬하시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이 점을 깨닫고 저는 마음속으로 다짐했습니다. 만약 앞으로 제가 다시 큰 붉은 용에게 체포된다면, 목숨을 내놓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서서 증거하여 이전의 과오를 메우겠다고 말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교회에 또다시 대대적인 체포가 닥쳤고, 교회에서는 제게 뒷수습을 맡겼습니다. 저는 여러 사역을 논의할 때마다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데 힘쓰며 제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평소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패괴 성품을 드러내면 주도적으로 진리를 구해 해결했고, 체험 간증문 쓰기도 훈련했습니다. 저는 또한, 장래에 좋은 결말과 종착지가 없을지라도 제 본분을 잘 이행하고, 힘써 진리를 추구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위로해 드리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지난 몇 년간 저는 줄곧 의기소침한 상태로 지냈습니다. 비록 후회하고 저 자신을 증오했지만, 끝내 진리를 구해 제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지난 세월 제 생명은 성장하지 못했으며 진리를 얻을 많은 기회를 놓쳤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인도를 통해 하나님에 대한 저의 오해와 간격이 해결되었고, 더는 과오의 얽매임과 제약을 받지 않고 정상적으로 본분을 이행하며 진리를 추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마음속 깊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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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 저는 교회에서 새 신자를 양육하는 본분을 맡았고, 리싱(李星) 자매는 양육 집사로서 제 사역을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교회 리더인 왕러(王樂) 자매는 리싱 자매를 좋게 평가했고, 우리 앞에서 늘 리싱 자매가 자질도 좋고 사역 능력도...
스페인 뤄위몇 년 전, 저는 비슷한 또래의 형제자매들과 함께 양육 본분을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형제자매들은 모두 열의가 넘치고 본분에 책임감도 있어서 주변에서 칭찬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런 모습이 몹시 부러웠던 저는 언젠가 그들처럼 주변의 우러름을...
중국 치자오(齊釗)2004년에 저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고 하나님 집에 오게 됐어요. 형제자매들과 예배드리면서 가끔 형제자매들이 병이 있었는데도 계속 본분을 이행했더니 기적처럼 병이 나았다는 체험을 들었어요. 또 형제자매들이 쓴 체험 간증에는 암에...
중국 후베이 자오밍2011년 4월, 저는 사역상 필요 때문에 다른 지역 교회로 가서 리더 야오란의 사역을 이어받았습니다. 야오란 자매는 사역을 인수인계해 주며 교회 상황 전반을 설명해 주었고, 자신의 딸 샤오민이 양육 집사이니 교회 사역을 파악하는...